”별거 아닙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공짜로 당신을 구해 준 건 아니니까요. 십억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김일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게 수표책을 꺼내 수표에 사인을 하고는 하현에게 건넸다.수표를 건넨 김일영은 동시에 명함도 꺼냈다.이로써 그는 하현을 높이 인정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하현은 거절하지 않고 수표를 받았고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선생님!”“당신은 정말 무학의 대가입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하현이 돈을 받은 것이 대가의 풍모답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람을 구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이희광과 조남헌도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하현의 실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그들의 마음속엔 오늘 하현이 남궁나연 일행을 가볍게 제압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이제 사람들은 누가 고수인지 제대로 알았을 것이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김일영이 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거예요?”하현이 멀어지자 남궁나연이 입을 열었다.“내가 이미 반은 변곡점을 돌파해 놓았어. 그래서 하현이 쉽게 발작을 제압한 거야!”“왜 갑자기 발작한 거냐고? 그게 내 잘못이야? 난 잘못한 거 없어!”남궁나연은 지난 모든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남궁나연의 일행들도 모두 의아했다.남궁나연은 말로만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무학의 고수였다.어떻게 그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하현이 이렇게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하현은 발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춰 서며 말했다.“당신의 방법은 잘못된 게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지.”“김일영은 오랜 세월을 기력이 쇠약해진 채 지내왔어. 힘줄과 사지육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자기 강한 기운이 몸을 훑고 지
학비가 오천만 원이라는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방금 이서국에게 사기를 친다며 욕을 퍼붓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용해졌다.오천만 원이라니!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1년 동안 모으지도 못하는 돈이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0이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의 액수였다.하현이 보여준 무학의 기술은 비범했지만 오천만 원은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던 이서국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오, 오천만 원! 이제 보니 국술당이 공짜로 옷과 밥을 제공하는 우리 국민무학당보다 더 파렴치하잖아?!”“입만 열면 오천만 원이야! 오천만 원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맞아요! 도둑이 따로 없어요!”“사람 한 명 구했다고 뭐 아주 천정부지로 몸값이 오를 줄 알았나 본데!”“예전에 국술당도 비싸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터무니없진 않았다구요!”“완전히 사기꾼 아니야!”“파렴치한 장사꾼 같으니라고!”하현의 문하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하현을 헐뜯으며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그들은 하현이 자신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현은 냉담한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은 내가 학비를 너무 터무니없이 받는다고 생각해?”“당신들한테 무학을 배울 기회를 안 주면서 학비만 받아챙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맞아요!”사람들이 화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당신이 이러는 건 돈 없는 가난한 우리들을 무시하는 거라고요!”“돈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하고 말이죠!”“뭐? 돈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한다고?”“좋아! 그럼 조건을 한 가지 더 보태지!”“자신이 무학에 타고난 재능을 지녔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돼. 오히려 내가 월급을 주겠어!”결연하고 강인한 하현의 목소리에 장내는 파장 후 시골 장터처럼 고요해졌다.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많은 사람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이서국 일행은 고개를 떨구었다.공짜 무도복이며 식사며 돈만 잃고 이득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잔치 뒤 어질러진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개업하자마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임을 직감한 국민무학당은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하자마자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맞고 말았다.하현은 조남헌에게 눈짓을 한 뒤 나머지 일 처리를 부탁했다.이서국 같은 소인배 일당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방금 사람을 구한 대가로 받은 수표까지 더해져 사람들은 더더욱 하현을 경외하게 되었다.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남궁나연 일행이 하현 앞으로 다가왔다.그들의 안색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어색하고 복잡하고 난감한 기분이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남궁나연이 먼저 입을 열며 아홉 명의 교관들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하현, 우리한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하현이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그들에게 시선을 던졌다.보아하니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사과하러 온 것 같았다.무술을 익힌 자에게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수련에 있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 열 명을 모두 받아들였다.국술당의 인기는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 것이다.그래서 하현도 망설이지 않고 남궁나연 일행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준 것이다.물론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하고 무엇을 가르칠지는 모두 하현이 결정할 일이다.이희광과 조남헌은 하현의 능력과 기개에 또 한 번 감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대찬 행동과 결연한 의지로 공작새처럼 도도했던 남궁나연 일행을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이튿날 아침 일찍 문을 연 국술당은 입구부터 벌써 사람들로 미어터졌다.은행 카드를 흔들며 어서 등록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이희광 일행은 모두 입이 귀에 걸렸다.어쨌거나 무사히 문을 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등록하러 온
”아!”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세 한번 좋군요.”“하지만 여긴 무림의 강호도 아닌데 무맹 사람들이 어쩐 일이죠?”“비아냥대지 마!”중년 남자는 음흉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장검 위에 갖다 대었다.“무맹의 규율에 따라 모든 무관은 무맹의 제재를 받지!”“무학이라는 두 글자만 믿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야.”“어젯밤 우리는 당신네 국술당이 온갖 사기를 일삼으며 터무니없는 학비를 내걸고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당신들이 사기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 문맹 사람들이 철저히 조사할 거야!”“무맹 사람들은 먼저 벌하고 나중에 보고를 올려도 되는 특권이 있으니 막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그렇지 않다면 내가 당신을 좀 거칠게 다루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중년 남자는 여유로운 몸짓과 말투로 하현에게 말했다.무맹이라고 말할 때는 특히 거만한 자태가 극을 이루어 보기 흉할 지경이었다.그는 자신이 어떤 권세와 권위를 가졌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것 같았다.말을 마치며 그는 하현의 대답 따위는 원래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바로 손을 크게 흔들며 차갑게 말했다.“모두 내 명령을 잘 들어. 전부 샅샅이 조사해!”“조그마한 문제라도 있으면 이 국술당은 바로 폐쇄야!”“누가 감히 저항하거나 하면 손발을 부러뜨려도 좋아!”“모든 책임은 나 조삼석이 질 거야!”조삼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십 명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국술당 전체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이희광 일행은 발끈하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하현은 오히려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고 담담한 표정으로 조삼석 일행을 쳐다보았다.“조 씨? 서북 조 씨 사람이야?”하현은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며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어제 이서국 일행도 당신 사람들인 모양이지?”“어제 내 앞에서 체면을 구겼으니 오늘 구겨진 체면을 되찾으시겠다?”“이런 수법 좀
”맞아요.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을 건데 하현 선생님이 왜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한테 일부러 설명까지 했겠어요?!”“학생에 대한 책임, 무학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 이게 어떻게 사기일 수 있어요?”사람들은 정말로 심사숙고 끝에 크나큰 신뢰를 가지고 하현을 찾아온 것 같았다.“당신들은 정말 어리석군! 번지르르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겠어?”“그리고 어젯밤 그와 맞섰던 남궁나연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봐? 그들이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지?”“어제는 죽기 살기로 으르렁대더니 왜 오늘은 둘이 한 지붕 아래 있지?”남궁나연의 말이 나오자 방금까지 소리치던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내놓지 못했다.자신의 말이 학생들의 자신감을 흔들어 놓자 조삼석은 그들을 깔보며 비아냥거리다가 입을 열었다.“당신들, 사실은 하현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그래서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 무맹 사람들이 온 거야!”“내가 데려온 사람들은 다 고수야. 그들이 손을 쓰기만 하면 하현이 사기꾼인지는 금방 탄로 날 거야!”조삼석은 반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을 이었다.“고수 여러분, 모두 공정하게 조사해 주세요!”하현은 냉담한 시선으로 이들을 쓱 훑어보았다.조삼석 뒤편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무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다섯 명 있었다.그중 두 사람은 선인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을 지녔다.무학 강좌에서 자주 보이는 얼굴이었다.TV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는 사람으로 무학에 대한 식견도 아주 풍부했다.무술에 전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두 사람이 덕망 높은 대가들임을 알고 있다.분명 오늘 그들은 뭔가를 작정하고 국술당에 들이닥친 게 틀림없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무학의 대가들에게 쏠렸다.조삼석은 방금 압수한 교본 몇 권을 건네주며 말했다,“고수 여러분, 이것은 방금 국술당에서 압수한 교본입니다.”“한번 봐 주십시오!”고수들은 교습 매뉴얼을 받아
무학의 고수들이 하는 말을 듣고 조삼석은 냉소를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당신이 사기꾼이라는 것은 이미 증거가 확실해!”“무슨 할 말이 더 있어?!”“이 자식들이!”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는 이희광을 제지하려는 듯 손을 흔들었고 무학의 고수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고수님들, 단지 내가 기록한 몇 마디만 보고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마세요!”“변명할 생각하지 마!”“함부로 결론 내리지 말라니?!”이 씨 성을 가진 고수가 두 손을 뒷짐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무술을 익힌 지 몇 년인데 이따위 교본을 보고도 괜찮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 딱 보면 어떤 수준인지 알아!”“당신의 교육 매뉴얼은 전부 평범한 것에 불과해. 그냥 여기저기 있는 말들 짜깁기한 수준이라고!”“만약 당신이 신체를 단련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평범한 무도관을 차린다면 우리가 뭐라고 하지 않았을 거야. 이 정도면 합격이지!”“하지만 당신은 진정한 무학의 이념과 교육철학을 내걸고 등록금을 받고 있어. 그것도 아주 비싼. 그런 사람이 가르치는 매뉴얼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 문제 아닌가?”“아주 파렴치한 일이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다른 고수들도 눈을 부라리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침묵을 지켰다.모두들 하현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함이 눈동자에 가득 서려 있었다.이를 감지한 조삼석이 입을 열었다.“하 씨.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인정하시지!”“당신만 자백한다면 무맹 고위층에게는 내가 잘 말해 볼게. 벌도 좀 가볍게 받을 수 있도록 하고!”“그런데도 계속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완강히 저항한다면 나도 하는 수 없지. 날 탓하지 말길 바라.”“내가 셋을 셀 테니까 그 안에 인정하지 않으면...”“멍충이들!”조삼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그
하현의 교본은 기초적인 것부터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여 전체 무학을 연마하도록 편집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식법, 내가권 연마 등 아주 체계적으로 교습법이 정립되어 있었다.그의 수업 매뉴얼대로만 무술을 익히면 누구나 천하무적이 될 것 같았다.적어도 한 사람이 열 명 정도 상대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탄탄했다.순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조삼석의 시선이 교본에서 멀어지며 하현에게 떨어졌다.하현이 이렇게 양심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하현은 고수들을 힐끗 쳐다보았다가 학생들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무술을 배우려고 날 찾아온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여기 왔는지 잘 압니다. 모두 날 믿고 있죠!”“그러니 내가 학생을 책임져야 합니다!”“오천만 원은 교습에 꼭 필요한 돈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해요!”“그 돈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무학을 익히는 데 그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돈을 받았으니 난 성심을 다해 가르쳐야 합니다.”“그 학생들이 무술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성실하고 차근차근하게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고요.”“내가권과 내식법을 전수하겠다고 한 것은 무학을 함부로 쉽게 생각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사람마다 체질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가르칠 때 학생의 적성에 맞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그런데 너무 학생이 많으면 우리가 잘 못 가르칠 수 있습니다.”“물론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환불해도 됩니다!”“세 배로 환불해 주겠습니다!”“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 국술당은 1기에 50명만 받으니 등록금을 환불받은 뒤에 다시 무학을 배우려고 지원해도 됩니다. 하지만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합니다.”“편하신 대로 하세요!”환불?세 배로?!이 씨 성을 가진 고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하현이 가르치는 교수법에는 확실히 나름의 깊은
”이봐! 국술당 문 닫아! 아무도 못 나가게 얼른!”“하 씨 이놈을 일단 잡아!”“그리고 나서 처분을 기다리자고!”조삼석은 냉랭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휙휙 휘두르며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던 수십 명의 남자들은 모두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채 머뭇거렸다.그들도 모두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었고 국술당 같은 양심적인 무도관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어느 면으로 보나 이런 무도관의 존재는 무도를 더욱 융성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근거 없는 사실로 국술당을 폐쇄하려고 여기 온 무맹 사람들의 말에 그들은 동의할 수 없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하현같이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을 건드리는 일에 그들은 더더욱 손을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뭐야? 하나같이 다 귀가 먹었어?”“내 말이 안 들리는 거야?”조삼석은 이를 갈며 또 한 번 고함을 질렀다.“국술당은 사기 혐의를 받고 있어. 주인의 혐의가 가장 크니 당장 무도관 문 닫아!”수십 명의 무맹 사람들은 조삼석의 명령을 계속 반항하기도 힘들었다.그렇지만 섣불리 나서기도 싫었다.난처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개자식들! 네놈들이 감히!”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현장에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무맹 사람들의 앞길을 막았다.“누가 우리 국술당이 사기를 쳤대요? 정말 웃기네!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온갖 구실 다 갖다 붙이고 있어!”“감히 우리 선생님한테 손 하나 까딱했다가는 내가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무맹이라고 하니 뭐 눈에 보이는 게 없어요? 세상이 다 발아래로 보이는 겁니까? 이렇게 함부로 밀어붙여도 되는 거냐구요?”“하현 선생님을 보호해! 국술당을 지켜야 해!”학생들의 감정이 격앙되어 양측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다.“흥분하지 마세요. 이 일은 내가 해결합니다.”하현이 학생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몇몇 학생들이 그의 앞을 둘러싸 완전히 보호막을 쳤다.열정적인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