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연도 옆에서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 뭐가 그렇게 급해? 딱 만나게 됐을 때 무릎을 꿇어야 재미있지. 하루이틀은 조급해 하지마!”“그건 그렇네.”설민혁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있는데 날이 아직 멀었네. 만약 감히 그가 번복하면 나는 그의 두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오늘 밤 우리의 일을 잊지 마.”설지연은 설레는 표정과 함께 아직 아무도 없는 책상에 시선을 고정시켰다.“하엔 그룹 새 회장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직도 자리가 비어 있지? 나의 미래의 남편 될 사람인데 그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설민혁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내가 그 사람이었으면 나도 분명 늦었을 거야. 그는 강남 하씨 가문의 대표라 신분도 안씨 가문보다 높아. 그가 온다는 건 이미 안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준 건데 결국 안 오더라도 안씨 집안이 감히 그를 찾아 다니며 귀찮게 할 수 있겠어?”설지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의 미래의 남편은 거만했다. 하지만 계속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이 어떻게 말을 걸 수 있겠는가? 주위를 둘러보던 젊은 미녀들이 그 자리를 바라보며 꿈틀거리는 모습에 설지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희 이 방탕한 년들, 감히 내 미래의 남편을 꼬실 생각을 하다니! 나 설지연이 여기 있으니, 너희들은 기회가 없어……”설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한편 마음속으로는 하엔 그룹 새 회장이 오늘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어차피 설씨 가문은 그 회사와 합작을 하고 있으니 이후에라도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오늘 만약 그가 와서 다른 작은 아가씨들에게 발길이 먼저 간다면 그것 또한 큰 골칫거리였다. ……바로 이 때, 조용하던 연회장이 갑자기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반듯하게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일어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한치의 원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씨 대가님 안녕하세요!”“대가님, 저의 우상이십니다!”“대가님
설 씨 어르신은 지금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눈빛과 표정이 한 순간에 무거워졌다. 하현이 어떻게 안흥섭 곁에서 걸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 일은 똑똑히 밝혀내야 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원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정말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하현 이 쓸모없는 놈이 뭘 믿고 저러는 거야?”설지연은 달갑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그녀는 하현을 만났을 때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눈 앞의 이 쓸모없는 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 어이가 없게도 안흥섭 곁에서 걷고 있다니 마치 왕손 귀척과 같았다! 비록 다른 사람들만큼 흔들리진 않았지만 설은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최근 이 쓸모없는 남편은 그녀로 하여금 그를 신비롭고 아주 뛰어나게 여기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태껏 하현이 이렇게 높은 곳에 서서 안흥섭과 같은 탑 클래스의 사람들을 알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이게 《부춘산거도》 때문인가? 그래서 안흥섭 대가에게 눈도장이 찍힌 건가?”설은아가 중얼중얼 입을 열었다. 이걸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설씨 어르신이 이 말을 듣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은아, 무슨 《부춘산거도》? 분명하게 얘기를 해봐.”설은아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얼마 전 경매에서 하현이 명화 《부춘산거도》를 감정 했었거든요. 그 당시 안수정 큰 딸이 가짜라고 했는데 하현이 진짜라고 했었어요. 결국 안수정이 그 자리에서 안흥섭 대가에게 전화를 했고 결국 그 그림이 진짜라고 판명이 됐어요. 수백억의 가치……”“그랬구나……”설씨 어르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현이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눈먼 고양이가 죽은 쥐와 부딪혀 이렇게 안흥섭을 알게 되고 망년지교까지 됐구나. “그래? 그럼 그 그림은?”설씨 어르신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만약 그 그림이 설은아의 손에
“맞아, 우리 설씨 집안에서는 지위가 개 만도 못한데 지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띄워주고 있는 거야!” “우리가 그의 신분을 까발려야 하지 않겠어요? 보잘것없는 데릴사위가 뭘 뿌리고 다니는 거야? “설민혁! 무슨 말을 하는 거야!?”“……”순간 설씨 가족들의 시선이 설민혁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설씨 집안의 부사장으로서 이 일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고 싶어했다. 설민혁의 안색은 어두웠고 지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책임지고 주도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지금 구멍속으로 숨고 싶었다. 하현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하고 싶을 뿐이었다. 또 혹시 하현 이 폐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쓸모없는 놈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루도 안돼서 그는 서울시 전체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설민혁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설은아는 고개를 떨구고 쓴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마다 이 데릴사위를 인재로 여기며 비할 데 없이 높이기 시작했다. 하필 설씨네 사람들만 그를 폐물로 여겼다. 안흥섭도 그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겼는데, 설씨네 가족만 이처럼 그를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야 말로 크나큰 아이러니였다. “누구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 여기가 어디인지 안보여! 우리 설씨 집안을 죽일 셈이냐?”설씨 어르신은 쌀쌀맞게 입을 열었다. 그도 확실히 알지는 못했지만 하현이 지금 어떻게 그 자리에 나타났든지 간에 그가 그 자리에 지금 이렇게 나타난 이상 안씨 가문이 그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반박하거나 하현을 조롱하는 것은 안씨 가문에 대한 도발이었다. 설씨 어르신은 또 치매에 걸린 게 아니었기에 지금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은아야, 너는 그의 남편인데, 가서 안씨 대가께 술을 권하지 않겠니?”눈을 돌리자, 설씨 어르신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그가 안흥섭 대가와 아무리 줄이 있어도, 폐물은 폐물이야.”“나는 그가 우리 설씨 집안이 일류가문에 발을 들여놓을 만큼 돕지 않는 이상 그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어!”설씨 어르신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설씨 어르신을 바라보면서 이 순간 마음이 괴로웠다. 설씨 어르신은 이 부분에 대해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하현을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하현이 안씨 집안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충분한 이익을 얻으려 하였다. 뻔뻔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설은아가 보기에 하현은 설씨 집안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안흥섭 옆자리에 앉을 자격을 갖췄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수 있겠는가?안흥섭이 어떻게 해서 그를 중요시하게 됐든 그가 그 자리에 앉았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것이다. 감정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 하더라도 대가 안흥섭이 그를 한 번 높게 보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벌써 그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골동품 품평회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만찬부터 먼저 시작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현은 설씨 집안을 보는 데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만찬이 끝날 무렵 안수정이 냉담한 표정으로 건너와 설씨네 책상 앞에 섰다. 설씨 어르신은 안수정을 보고 그 순간 비틀거리며 일어섰으나, 감히 나이를 내세워 거만하게 굴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안씨 따님, 안녕하세요. 저는 설씨 집안……”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수정은 바로 말을 자르며 말했다.“당신들 중에 설민혁이 누구예요? 듣기로는 당신이 내기에서 졌다면서요?”안수정은 예의 없게 굴었지만, 상반되게도 그녀는 이런 대가족에서 태어나 교양과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다만 방금 밥을 먹을 때 하현이 조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아 그녀는 조금 초조해졌다. 연회 전의 일이 하현으로 하여금 자신을 싫어하게 만든 것으로 여겨졌다. 지금 그녀가 아무리 얼음 미녀라
이 말이 나오자 설민혁 뿐아니라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눈을 찡그렸다. 만약 연회장에서 쫓겨나면 설씨네 집안은 서울에서 지낼 필요가 없게 된다. 설씨 집안에서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순간 그 곳에 있던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설민혁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만약 그가 계속 안수정을 거절한다면 설씨 집이 망할까 두려웠다. “안씨 아가씨, 정말 농담일 뿐이에요. 믿지 못하겠으면 그 쓸모없는 놈을 불러 물어보면 알 수 있어요.”설민혁은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지경에 왔어도 그는 하현에 대해 조금도 존중함 없이 입을 열었고, 입을 열고 닫는 모든 것이 칠칠 맞지 못했다. 안수정은 원래 하현을 위해 안 좋은 의사를 표하러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이 놈이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을 쓸모없는 놈이라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냉랭하게 설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물어봐야 되나요? 당신은 무릎 꿇을 필요가 없어요. 제 장부에 적어 둘게요. 당신들 지금 나가세요. 다른 사람들은 제가 나중에 천천히 당신들과 계산 하겠어요!”안수정의 태도는 분명했다.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나는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꺼지게 할 수 있다. 거기다 이 일 후에 설민혁 뿐만 아니라, 설씨 집안 사람들이 계속 귀찮게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설씨 어르신은 지금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비록 그는 하현 같은 폐물을 매우 싫어하지만, 그에게 한 방 먹인 걸 후회했다. 이 보잘 것 없는 놈이 감히 설민혁을 찾아와 귀찮게 굴고 어이없게도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감히 안수정이 싫어하는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안씨 집안은 제주에서 일류가문이다. 이런 집안과 비교하면 설씨 집안은 땅강아지와 개미, 먼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안씨 집안이 설씨 집안을 죽이려고 한다면 어렵지 않게 바로 죽일 수 있지 않겠는가?안수정은 안씨
“설민혁씨, 제가 다시 말하게 하지 마세요. 모두들 기다리고 있어요.”안수정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설민혁은 마지막으로 설씨 어르신의 얼굴을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결국 그는 내버려두었다. 설씨 집안의 대표가 망신을 당하는 것은 결국 설씨 집안이 망신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설씨 어르신은 설민혁을 모르는 듯 시선을 돌려 버렸다. 좀 창피하면 어떠냐?안수정씨가 기분이 나쁘면 그게 더 큰 일이지.이 장면은 설민혁으로 하여금 완전히 운명이라고 단념하게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하현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잠시 후 폭소가 터졌다. 이런 자리에서 무릎을 꿇다니? 이건 정말 웃긴 일이다!설민혁은 얼굴을 붉히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현, 이 모든 것은 다 네가 한 짓이야. 맹세하건데, 나 설민혁이 복수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너 기다려. 군자는 10년 동안 원수를 갚아도 늦지 않는다 했으나 언젠가 내가 너를 내 앞에서 무릎 꿇게 해서 오늘의 치욕을 백 배, 천 배로 갚아 줄 거야!너 같은 보잘것 없는 놈이 안씨 가문에게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어졌을 때, 나는 네가 무슨 무기로 나와 싸우는지 볼 것이다!설민혁이 보기에 하현이 안씨 집안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감정 솜씨 때문이었다. 안씨 가문은 반드시 그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이 이용당하면 십중팔구 한 발로 걷어 차이게 될 것이다. 그 때가 설민혁이 복수할 때였다. 10년도 늦지 않는다는 군자의 복수, 다른 사람도 참을 수 있으니 나 설민혁도 참을 수 있다!“안씨 아가씨, 이번 공연 좋고 멋있었어요. 이 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저희 집 공연할 때 몇 번 불러도 될까요? 하하하하!”“우리가 최대한 돈을 많이 썼어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우
안수정은 지금 동의하지도 않고 부인하지도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설씨 어르신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 없었다. 오늘의 기회를 계기로 설씨 집안이 강하게 일어설 줄 알았는데 지금 벌어진 일은 설씨 집안에 치명적인 재난이었다. 설민혁은 설씨 집안 미래의 회장인데 오늘 설민혁은 이미 서울에서 웃음거리가 됐고, 서울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만약 설씨네 집안이 정말 그의 손에 넘어간다면 이후에는 누가 설씨와 합작을 할 것인가?설씨 집안은 쇼핑몰 프로젝트에 의지해 먹고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엔 그룹 역시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 하씨가 자본을 빼면 설씨 집안 역시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이 때, 멀리서 하엔 그룹의 식탁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설씨 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 회장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한편, 설씨 어르신의 시선은 멀리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 오늘 이 일은 모두 하현 때문에 생긴 일이니 그 폐물이 책임을 지고 잘 처리해야 한다!그가 설씨 집안의 사위가 되려면 설씨 집안을 위해서 당연히 헌신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 설씨 어르신의 얼굴빛은 계속해서 변했지만 그는 한 순간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곧 종업원들이 와서 식기를 치우고 정교한 다기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 종업원들이 설민혁을 볼 때 모두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설씨 집안의 테이블은 다기 교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물도 차가웠는데, 이 광경은 설씨 어르신을 화나게 해 거의 심장병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냥 참아야만 했다. ……같은 시각, 주최석에 앉은 하현은 설씨 집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설은아 뿐이었다. 설은아를 만났을 때 반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는 듣지도 묻지도 못했다. 만약 방금 설은아가 설민혁에게 좋은 말 몇 마디를 해주었다면 아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민혁은 설
안흥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박수를 치차 바로 스태프가 엄숙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골동품 꽃병을 안고 와 단상에 올려 놓았다. “여러분, 관심이 있으시다면 순서대로 품평을 하기 전에 이 물건의 진위에 대해 자유롭게 논평해 보시기 바랍니다.”안흥섭은 빙그레 웃었다. 이 말을 듣고 장내에 있던 상류층 사람들 역시 사양하지 않고 몇몇 나이가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앞으로 나가 세세하게 감별하기 시작했다. “안씨 대가님, 너그럽지가 않으시네요. 이 물건은 어찌 보면 모두 가짜같이 보이네요!”“맞아요! 더 할 나위 없이 가짜네요!”“대가님, 어디서 사셨는지 말해주세요. 2만원 드릴까요?”많은 사람들이 논평을 하는 가운데 안흥섭은 화를 내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이건 내가 한 노점에서 사온 건데, 만 원 주고 사왔어요.”이 말을 하자 모두 하나가 됐다. 만 원짜리 도자기가 어떻게 진짜 일 수가 있지?하지만 문제는 안흥섭 같은 거물이 산 물건이 어떻게 가짜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그 사람은 감정을 하는 이 일의 시조로써 여태껏 뭘 빠뜨리고 본 적이 없었다.하현 역시 시작하지 않고 인파를 따라 부스 앞쪽으로 걸어갔다. 이것은 다채로운 빛깔의 희미한 도자기 화병이었는데, 색채가 조화롭게 보이지만 너무 화려해서 아무리 봐도 고대에서 가질 수 있는 기술로는 보이지 않았다. “제가 먼저 한 번 볼게요.”이 때 장택일도 사양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장택일은 골동품협회 회장이다. 서울 골동품계에서 그의 명성이 너무 커서 그가 걸어 나왔을 때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 감히 숨조차 쉬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시선이 동시에 장택일에게 쏠렸는지 모른다. 서울 골동품협회 회장으로서 장택일은 감정을 하는데 있어 조예가 깊었다. 비록 안흥섭만큼 대단하진 않았지만, 이미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나쁘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는 지금 감히 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