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혁씨, 제가 다시 말하게 하지 마세요. 모두들 기다리고 있어요.”안수정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설민혁은 마지막으로 설씨 어르신의 얼굴을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결국 그는 내버려두었다. 설씨 집안의 대표가 망신을 당하는 것은 결국 설씨 집안이 망신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설씨 어르신은 설민혁을 모르는 듯 시선을 돌려 버렸다. 좀 창피하면 어떠냐?안수정씨가 기분이 나쁘면 그게 더 큰 일이지.이 장면은 설민혁으로 하여금 완전히 운명이라고 단념하게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하현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잠시 후 폭소가 터졌다. 이런 자리에서 무릎을 꿇다니? 이건 정말 웃긴 일이다!설민혁은 얼굴을 붉히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현, 이 모든 것은 다 네가 한 짓이야. 맹세하건데, 나 설민혁이 복수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너 기다려. 군자는 10년 동안 원수를 갚아도 늦지 않는다 했으나 언젠가 내가 너를 내 앞에서 무릎 꿇게 해서 오늘의 치욕을 백 배, 천 배로 갚아 줄 거야!너 같은 보잘것 없는 놈이 안씨 가문에게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어졌을 때, 나는 네가 무슨 무기로 나와 싸우는지 볼 것이다!설민혁이 보기에 하현이 안씨 집안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감정 솜씨 때문이었다. 안씨 가문은 반드시 그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이 이용당하면 십중팔구 한 발로 걷어 차이게 될 것이다. 그 때가 설민혁이 복수할 때였다. 10년도 늦지 않는다는 군자의 복수, 다른 사람도 참을 수 있으니 나 설민혁도 참을 수 있다!“안씨 아가씨, 이번 공연 좋고 멋있었어요. 이 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저희 집 공연할 때 몇 번 불러도 될까요? 하하하하!”“우리가 최대한 돈을 많이 썼어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우
안수정은 지금 동의하지도 않고 부인하지도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설씨 어르신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 없었다. 오늘의 기회를 계기로 설씨 집안이 강하게 일어설 줄 알았는데 지금 벌어진 일은 설씨 집안에 치명적인 재난이었다. 설민혁은 설씨 집안 미래의 회장인데 오늘 설민혁은 이미 서울에서 웃음거리가 됐고, 서울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만약 설씨네 집안이 정말 그의 손에 넘어간다면 이후에는 누가 설씨와 합작을 할 것인가?설씨 집안은 쇼핑몰 프로젝트에 의지해 먹고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엔 그룹 역시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 하씨가 자본을 빼면 설씨 집안 역시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이 때, 멀리서 하엔 그룹의 식탁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설씨 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 회장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한편, 설씨 어르신의 시선은 멀리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 오늘 이 일은 모두 하현 때문에 생긴 일이니 그 폐물이 책임을 지고 잘 처리해야 한다!그가 설씨 집안의 사위가 되려면 설씨 집안을 위해서 당연히 헌신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 설씨 어르신의 얼굴빛은 계속해서 변했지만 그는 한 순간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곧 종업원들이 와서 식기를 치우고 정교한 다기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 종업원들이 설민혁을 볼 때 모두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설씨 집안의 테이블은 다기 교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물도 차가웠는데, 이 광경은 설씨 어르신을 화나게 해 거의 심장병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냥 참아야만 했다. ……같은 시각, 주최석에 앉은 하현은 설씨 집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설은아 뿐이었다. 설은아를 만났을 때 반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는 듣지도 묻지도 못했다. 만약 방금 설은아가 설민혁에게 좋은 말 몇 마디를 해주었다면 아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민혁은 설
안흥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박수를 치차 바로 스태프가 엄숙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골동품 꽃병을 안고 와 단상에 올려 놓았다. “여러분, 관심이 있으시다면 순서대로 품평을 하기 전에 이 물건의 진위에 대해 자유롭게 논평해 보시기 바랍니다.”안흥섭은 빙그레 웃었다. 이 말을 듣고 장내에 있던 상류층 사람들 역시 사양하지 않고 몇몇 나이가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앞으로 나가 세세하게 감별하기 시작했다. “안씨 대가님, 너그럽지가 않으시네요. 이 물건은 어찌 보면 모두 가짜같이 보이네요!”“맞아요! 더 할 나위 없이 가짜네요!”“대가님, 어디서 사셨는지 말해주세요. 2만원 드릴까요?”많은 사람들이 논평을 하는 가운데 안흥섭은 화를 내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이건 내가 한 노점에서 사온 건데, 만 원 주고 사왔어요.”이 말을 하자 모두 하나가 됐다. 만 원짜리 도자기가 어떻게 진짜 일 수가 있지?하지만 문제는 안흥섭 같은 거물이 산 물건이 어떻게 가짜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그 사람은 감정을 하는 이 일의 시조로써 여태껏 뭘 빠뜨리고 본 적이 없었다.하현 역시 시작하지 않고 인파를 따라 부스 앞쪽으로 걸어갔다. 이것은 다채로운 빛깔의 희미한 도자기 화병이었는데, 색채가 조화롭게 보이지만 너무 화려해서 아무리 봐도 고대에서 가질 수 있는 기술로는 보이지 않았다. “제가 먼저 한 번 볼게요.”이 때 장택일도 사양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장택일은 골동품협회 회장이다. 서울 골동품계에서 그의 명성이 너무 커서 그가 걸어 나왔을 때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 감히 숨조차 쉬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시선이 동시에 장택일에게 쏠렸는지 모른다. 서울 골동품협회 회장으로서 장택일은 감정을 하는데 있어 조예가 깊었다. 비록 안흥섭만큼 대단하진 않았지만, 이미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나쁘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는 지금 감히 아
처음 이 도자기를 보았을 때, 다들 약간 어리둥절했다. 이치대로라면, 안흥섭의 골동품 품평회에는 가짜가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흥섭은 또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평을 하도록 했다. 이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이것은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장택일이 이렇게 확언하는 것을 듣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원래 그랬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의 지식이 늘었다고 느꼈다. 이 때 장택일이 확신하는 것을 듣고 안흥섭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장씨, 이것이 옛날 물건이 아니라 현대 물건이라고 그렇게 확신을 하시는데 그럼 제가 한 번 묻겠습니다. 지금 세상 어디에서 이렇게 정밀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구워 줍니까? 아무 시장이나 가면 살 수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이 말을 듣자 주위에서는 오히려 선의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안흥섭은 그냥 농담을 던졌다. “안씨, 당신 말은……”장택일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이 순간 약간 망설였다. 그는 이 도자기 병이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안흥섭의 태도가 조금 망설이게 하고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 이 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아니면 제가 한 번 볼게요.”이 말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향했다. 이 녀석은 안흥섭이 밀어주는 젊은이가 아닌가? 그가 어떤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현, 방금 네가 우연히 추측해서 맞았을 뿐인데, 지금 또 인기를 얻으려고 사기꾼 짓을 하려고 하는 거야?” “우리 선생님이 이미 이렇게 명백하게 말씀을 하셨는데, 네가 나와서 무슨 소란을 피우려고 하는 거야!”“사람들 앞에서 망신 당하지 말고 빨리 꺼져!”장민수는 하현에게 매우 불쾌하여 지금 빠르게 입을 열어 질책하였다. 가뜩이나 아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가 암시하는 바를 알고, 같이 따지기 시작했다. “얘야. 장택일 회장님이 이미 결론을 다 냈는데, 네가 그걸 보겠다고 하다니, 너 정말 장택일 회장님
이 때 안흥섭은 웃을 듯 말 듯하며 하현을 쳐다보았다. 사실 설씨 집안 사람들이 하현을 배척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즐거웠다. 이 순간 그는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하현을 욕하며 손가락질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하현이 설씨 집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설은아와 이혼해야 안흥섭에게 기회가 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흥섭이 잠시 기다렸지만 다른 설씨 사람들이 감히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는 마음속으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설씨 어르신은 빠르게 주변을 살핀 후에야 살짝 웃었다. “여러분,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제가 이 친구에게 이 골동품 품평회의 이 자리를 양보하겠습니다. 저에게 분명 이유가 있으니 여러분은 방해하지 말고 그가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주세요.”안흥섭이 이렇게 말하자 바로 장내가 조용해졌다. 비록 사람들은 모두 데릴사위를 멸시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감히 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하현은 의미심장하게 설지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 여자는 정말 멍청하다고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설민혁에 의해 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때도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눈앞의 도자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하현은 장택일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풍격과는 다르게 좌우로 한 번씩 둘러보았다. 이따금씩 손가락을 뻗어 가볍게 털었다. 어떻게 감정을 하는 것처럼 볼 수 있겠는가?이 광경을 보고 안흥섭이 입을 열자 조용해졌던 연회장이 지금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방금 모두는 그가 능력이 좀 있어 안흥섭이 하현을 인정한다고 여겼는데, 지금 그의 동작을 보고 있자니 마치 한 명의 광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감정?이 사람이?듣자 하니 이 녀석이 지난번에 무슨 개똥같은 운이 있어서 경매에서 《부춘산거도》를 감정했다고 하던데, 그가 이번에도 자신이 이런 개똥 운을 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다음으로 그가 어떻게 망
그러나 이 때, 한쪽에 있던 장택일이 살짝 눈초리를 주며 손을 뻗어 장민수를 가로막고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 비록 하현의 동작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약간의 연극도 있었지만, 또 약간은 연구하는 것 같았다. 이런 점들을 보니 그가 터무니없이 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어느 지방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던 기법 같았다. “쟁______”하현은 다시 손가락을 튕기고 잠시 후 도자기에 귀를 붙이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제서야 그는 도자기를 내려놓고, 안흥섭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 이 물건을 팔 준비가 됐습니까?”안흥섭은 웃으며 말했다.“만약 물건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나온다면 나는 10억에 팔 수 있어.”10억?이 가격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숨을 멈췄다. 이 물건은 명백한 위조품인데 10억에 팔겠다고?설령 10억으로 안씨 가문의 우정은 살 수 있다지만 문제는 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이 위조품은 만 원도 안 되는 것이었다. “10억이라면 제가 살게요.”결국 다른 사람의 가격을 기다리지 않고 하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흥섭은 의미심장하게 하현을 한 번 본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너한테 팔지.”“하하하……”이 광경을 보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뜻밖에도 이렇게 어린 데릴사위가 10억을 내고 사겠다고? 그가 이렇게 많은 돈을 낼 수 있을까? 장민수는 계속 비웃으며 말했다.“하현, 너 너무 재미있다. 싼 물건을 주운 모양인데, 네가 10억을 낼 수 있겠어?”“이 물건은 기껏해야 만 원짜리인데, 자기가 싸게 산 모양이네!”“그럼, 장회장님은 이게 위조품이라고 하셨는데, 네가 정색을 하고 여기서 시치미를 떼는 거야?”방금 안흥섭이 말하길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모두들 지금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말했다. 데릴사위를 풍자하면 어떤가?장택일 회장의 제자 장민수는 보지도
하현은 담담하게 장민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장회장님이 관심이 있으신 만큼 제가 공자 앞에서 문자 좀 쓰겠습니다.”장택일의 표정은 냉랭했다. 하현은 분명히 그를 비웃고 있었다. 그는 이 토끼 새끼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보고 싶었다. 하현은 이어서 말했다. “장회장님은 문성공주 얘기를 분명 들어 보셨을 것 같은데요?”장민수는 얼굴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듣자 골동품계의 전설이 하나 떠올랐고 그 순간 온몸이 약간 흔들렸다.“그 말은……”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없어!”역사적으로 문성공주에 관한 기록은 후삼국 시대와 화목한 일이 가장 주된 내용이었지만 골동품계에서는 문성공주의 전설이라는 한 가지 관문이 있었다. 문성공주는 어려서부터 도자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고려 태조는 그녀와 화친을 시작할 때 일찍이 궁중의 진상품 중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이 물건은 듣기로 이전 왕조 고구려 태조가 가장 좋아하는 도자기 중의 하나였다. 이 도자기는 결코 중원의 물건 중 하나가 아니라, 당시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여러 번 부름을 받았을 때 받은 것이다. 후삼국 시대에서도 신라는 운명을 다해가는 나라였다.신라에서도 특별히 한 두 가지 좋은 도자기가 전해져 왔다. 다만 이 물건은 고려 태조가 문성공주에게 하사했다는 전설이 있을 뿐이고, 신라에서 왔다고 한다. 또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넘어간 지보였다고 한다. 이 물건은 매우 신기하게 전해져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서 고향을 그리는 듯 은은한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전설에 따르면 문사병이라는 이 물건의 이름은 문성공주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물건은 역사상 몇 차례 출현하였으나, 종국에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출현한 때는 대한제국 시절이었는데 후에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이 문사병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오랜 세월 동안
“이……이게 진짜 문성공주의 문사병이라고?”장택일의 얼굴 표정이 잠시 굳어지더니, 의혹에서 충격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기가 막힌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어떤 것이 문사병인지 알고 있었고, 이 물건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던 일부 사람들도 그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아마도 문사병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안흥섭의 어조와 장택일의 떨림에서 쉽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삼국 시대의 도자기 병이라니?이런 물건은 매우 드물고, 게다가 일단 왕실과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값은 더더욱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와 동시에 안수정 역시 충격을 받았다. 멀리 있던 설은아도 말을 잇지 못했다. 하현이 소문난 골동품까지 감정을 할 수 있다니?가벼운 얼굴의 안흥섭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택일의 얼굴을 보면서, 어찌 이 두 여자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순간 하현은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순간 하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모두 달라졌다. 이 녀석은 쓸모없는 데릴사위이지만, 감정의 솜씨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깊이 감추어져 있어 드러나지가 않는구나! 이 때 안흥섭은 웃으며 말했다. “하현, 나도 생각을 못했어. 도자기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니.”“나는 그날 처음 이 문사병을 보고 나서도 위조품이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닌 거야. 사고 난 뒤 한참 동안 연구하고 나서야 정체를 알게 됐어.”“너는 이 현장에서 그 내력을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니, 영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안흥섭의 칭찬을 받자 하현은 가볍게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감정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정말 노는 것일 뿐이었고, 그는 이 방면에서 또 무슨 성과가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만약 장택일 선생과 제자 두 사람이 생트집을 잡아 다시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설 의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때 어떤 사람이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안씨 대가님. 그럼 이 문사병이 위조품이 아니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
그들의 눈에는 하현이 간민효를 잡아먹기라도 할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민효의 손을 놓았다.하지만 그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간민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보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쨌든 당신 덕에 위기를 모면했어요.”“내가 미리 독을 넣긴 했지만 비행기가 그대로 출발해서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은 모두 나한테 책임이 있었을 거구요.”간민효는 멍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래저래 난 하현 당신에게 신세를 졌어요.”“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 간민효의 친구가 된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 간민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심이에요!”“내가 없어도 내 명함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약혼자를 찾아가도...”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명함을 꺼내 하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들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하현은 손안에 든 명함을 보았다.이것은 특수 목기로 조각한 것이었다.이름 하나와 전화번호만 새겨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명함은 딱 봐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명함을 살피기 시작했다.명함 모서리에 몇 가지 비밀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역시 금정 간 씨 가문다웠다.5대 문벌 중 문벌의 기원지인 금정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금정 간 씨 가문!금정 간 씨 가문은 다른 오래된 문벌보다 신비에 가까운 기세를 가진 강력한 집안이었다.이 여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신분도 간석준보다 훨씬 높았다.이런 생각들이 하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그는 간민효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아, 고맙습니다.”그러나 하현은 간민효의 명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특히 깁스를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한 ‘독’이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 아름다운 검은 옷의 여인에게 신의 경지에 가까운 독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의외의 실패를 맛볼 수가 있다.동시에 하현은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신분이 비할 바 없이 높고 독극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게다가 간 씨 성을 가지고 있다.이쯤 되고 보니 상대의 신분은 알 만할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신분을 캐지 않았다.하현은 이제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상대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관심을 둘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곧이어 중년 수사대장이 하현을 찾아와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다.하현은 금정으로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스튜어디스에게 공을 넘겼다.양효리라는 이름의 스튜어디스는 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다송이 그녀를 막았다.이 모습이 하현의 흥미를 끌었다.양효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다송 같은 여자와 절친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와 뒤엉키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양효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부지불식중에 이다송에게 물들어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자신과 얽힌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곧 일등석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특수 약물을 뿌린 뒤여서 그런지 좀 전의 피비린내는 모두 싹 사라졌다.하현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그러자 간 씨 성을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