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나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으며 매혹적인 눈매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한기가 가득했다.그녀의 눈빛을 보아하니 설유아가 자신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일부러 마중 나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해나를 쳐다보았다.“설유아, 당신이랑 함께 일하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이런 자리에 초대했어요.”“내가 너무 지나쳤나요?”하현의 팔짱을 끼고 있던 설유아의 다정한 모습에 이해나의 매혹적인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우리 상류층 만찬에 외부인을 데리고 왔군요.”“샤르마 커가 알면 기분 나빠할 텐데.”“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좀 골치 아프거든요!”샤르마 커?인도 특유의 성 씨를 듣자 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해나를 바라보았다.이제야 하현은 설유아가 왜 자신을 이 모임에 데리고 가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아마도 방패막이가 필요했던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하현은 화가 나지 않았다.하현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인도인이란 얘기를 아침에 만천우한테서 전해 들은 터였다.겉으로 보기에 상대방은 설유아를 노리고 온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하현은 인정과 도리에 따라 스스로 이 방패막이가 되기로 했다.설유아는 지금 이해나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지 방긋 웃으며 말했다.“그냥 친구들 모임인 줄 알았어요. 하현은 내 형부이자 가장 친한 친구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같이 왔죠.”이해나는 하현은 매섭게 쳐다보았다.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인도상회 사람이라 당연히 하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듣자 하니 그들의 브라흐마 아부와 가까운 용이국조차도 하현의 손에 당했다고 들었다.다만 그녀는 최희정과 접촉한 적은 있었다.최희정의 말에 의하면 하현은 대구 정 씨 집안의 세력과 설은아의 지위를 믿고 무성에 와서 제멋대로 위세를 떨쳤다고 했다.
이해나가 보기에 샤르마 커는 훤칠한 키에 특이한 향까지 풍겨 딱 봐도 지위가 높은 사람 같았다.게다가 그의 가문은 인도에서도 명실상부한 집안에 복제약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실력과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한 샤르마 커가 카스트의 속박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업적은 더 높았을 것이다.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브라흐마 아부도 그를 매우 중히 여긴다는 점이다.브라흐마 아부는 인도상회의 부이사장이다!이런 사람들이 샤르마 커를 아낀다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한다.한마디로 하현과 샤르마 커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사이다.비교할 만한 가치도 없다.이해나는 하현이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샤르마 커의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그녀는 하현이 가지 않으면 안 가겠다는 설유아의 완강한 태도를 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현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형부, 차에 타세요.”이해나의 표정을 본 설유아는 다소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사실 설유아는 무성 상류층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게다가 하현의 보호까지 받았으니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설유아는 하현을 끌고 뒷좌석에 앉았다.이해나는 ‘쾅'하고 문을 사납게 닫으며 하현을 힐끔 쳐다본 후 액셀을 거칠게 밟아 도로를 질주했다.차는 곧 프라이빗 클럽 입구에 도착했다.비록 무성은 고원에 있는 도시긴 했지만 이 프라이빗 클럽은 이남의 건축이 자아낼 법한 정취를 담고 있었다.하나의 큰 뜰 안에 또 다른 뜰이 있었다.중간중간 물이 흐르는 개울 위로 작은 다리들이 놓여 있는 것이 딱 봐도 고급스러운 풍취가 느껴졌다.문에 들어섰을 때 이해나는 설유아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고 자신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 하현을 막았다.“하현, 맞죠?”“당신은 분수도 몰라요?”이해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강한 카리스마를 풍겼다.“분수를 모르다니요?”하현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이해나는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
”오늘 설유아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인도에서 온 샤르마 커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구요!”“이 일도 최 여사님께 벌써 승낙받은 거구요!”“당신이 나타난다면 샤르마 커가 기분이 몹시 언짢을 거예요!”이해나는 까칠한 얼굴로 퍼붓듯이 말했다.“그러니까 여기서 꺼져요!”“여기 십만 원 줄 테니까 어서 택시 타고 가서 배달이나 시켜 먹어요!”“남은 돈은 내 성의로 쳐요!”잠시 후 이해나는 핸드백에서 십만 원을 꺼내 바람에 휙 날렸다.하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이때 방금 안으로 들어갔던 설유아가 돌아왔다.“하현, 왜 아직도 안 들어와요?”설유아가 직접 와서 하현의 손을 이끌었다.하현이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하현이 속이 안 좋아서 밥을 안 먹겠다고 하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요.”이해나는 하현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얼른 끼어들었다.이해나는 오늘 일을 성사시키려고 눈에 불을 켠 것 같았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다시 삼십만 원을 꺼내 하현 앞에 내던졌다.“십만 원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죠?”“여기 삼십만 원이에요!”이해나는 자신이 좀 더 대범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렇게나 돈을 내놓았다.설유아는 하현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하현, 어디 몸이 안 좋아요?”“병원까지 데려다줄까요?”“아니, 처제를 보니 아픈 것도 다 나았어.”“처제가 내 만병통치약이네!”하현은 빙그레 웃으며 이해나를 무시한 채 설유아에게 고개를 돌렸다.“같이 들어가자구.”“며칠 동안 밥을 못 먹었는데 오늘은 실컷 먹어야겠어.”말을 하면서 하현은 설유아의 손을 꼭 잡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설유아는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하현의 손을 꽉 잡았다.손을 잡고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해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화가 나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할 뻔했다.“개자식! 체면을 세워 줄 때 챙겼어야지! 기회를 주는 데도 꾸역꾸역 거절하시겠다?! 흥!”
이해나는 고개를 바짝 엎드린 채 샤르마 커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늦게 와 흥을 깨뜨려서 정말 죄송해요.”“하하하, 해나. 그게 무슨 말이야?”“늦긴 뭐가 늦어?”샤르마 커는 샴페인을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설유아에게 뜨거운 시선을 돌렸다.“이분이 바로 당신이 말한 그 설유아 씨?”“네, 맞아요.”이해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대하 10대 가문인 대구 정 씨 가문의 아홉 번째 방주인 설은아의 동생이죠.”“요즘 핫한 인플루언서에 연예인이죠. 게다가 대학생이라 아직 순수미가 살아 있어요!”“샤르마 커, 오늘 밤 아주 복받으신 겁니다.”“그렇군. 설유아, 안녕하세요.”샤르마 커는 오른손을 내밀며 능글능글한 미소로 설유아를 바라보았다.“난 샤르마 커예요. 인도 샤르마 가문에서 왔죠.”“당신이 인도 카스트 제도에 대해 잘 모를 테니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우리 가문은 타고난 장사꾼이죠. 부자란 얘기고요. 대충 이해하겠죠?”“앞으로 잘 부탁해요!”손을 내민 샤르마 커는 환한 미소와 뜨거운 눈망울에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설유아의 하얗고 예쁜 얼굴은 인도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상위 카스트에서 독차지했을 것이다.샤르마 가문까지 내려올 리가 없다.그래서 지금 샤르마 커는 자신의 뜨거운 욕망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설유아를 유린하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서 들끓었다.브라흐마 아부가 오늘 밤 준비한 이 임무와 선물이 그는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샤르마 커, 안녕하세요.”하지만 설유아는 샤르마 커가 예상하는 것처럼 손은 내밀지 않고 미소로만 답하며 여전히 하현의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만나서 반갑습니다.”“저도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이분은 내 남자친구 하현입니다.”설유아도 바보가 아니었다.사회생활이 몇 년째인데 이런 분위기를 읽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그녀는 진작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
”뭐?”“전 형부?”“방패막이?”“아, 그렇구나. 이거 참 재미있군요.”샤르마 커는 그제야 깨달은 듯 하현을 실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전 형부라.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할 때가 많아요.”“당신네 대하인들은 때에 따라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자가 현명한 자라고 하더군요.”“당신은 현명한 자가 되기는 글렀구요.”“그래서 내가 충고 한마디 하는데, 웬만하면 나서지 마세요.”“그렇지 않으면 당신 같은 하찮은 사람은 발버둥을 쳐 봐야 시신도 수습하기 힘들어요.”샤르마 커는 담담하게 아무 일 아닌 듯 말했지만 말 속에는 위협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설유아가 하현의 팔짱을 낀 채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자 샤르마 커는 질투와 증오의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이때 설유아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하현은 정말로 내 남자친구예요!”“당신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가소로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부잣집에서 온 사람들이 여자 등이나 처먹고 사는 데릴사위를 온전히 봐줄 리 만무했다.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연인 같지가 않은데 설유아가 완전히 헛다리 짚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누가 믿겠는가?“설유아,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농담 그만해요.”샤르마 커가 비아냥거리며 웃었다.“어떻게 이런 사람과 연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두꺼비가 어떻게 백조 고기를 먹을 수 있겠냐고요?”샤르마 커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사람과 연인 관계를 맺고 싶겠어?말도 안 돼!“쪽!”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설유아의 작은 허리를 바짝 당겨 감싸 안은 후 그녀의 얼굴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두꺼비가 백조 고기를 어떻게 먹냐고요? 이렇게 하면 되죠? 그게 뭐 어렵다고.”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고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 말을 잇지 못했
하현의 말을 들은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아무리 해도 설유아 같은 멋진 여자가 하현 같은 하찮은 남자와 연인 관계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마치 자신이 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려는 듯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샤르마 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거 알아요. 만약 그렇다면 내가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죠!”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설유아의 가느다란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입술에 뽀뽀를 했다.하지만 이는 영화처럼 약간의 눈속임을 덧붙인 것이었다.겉으로는 두 사람의 입이 맞닿는 것처럼 보였지만 얼굴만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그래도 이 광경은 사람들을 놀래키기 충분했다.설유아는 깜짝 놀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이 모습을 자신의 언니나 엄마가 보기라도 한다면 아마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최희정은 자신의 큰딸에 이어 막내딸까지 하현과 엮이는 꼴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사람이었다.더군다나 이건 양다리나 마찬가지였다.“개자식, 당신 미쳤구나.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말끔하게 머리를 넘긴 인도 남자가 앞으로 나와 하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당신네 대하인들은 우리 인도에 비하면 기껏해야 발아래 보일까 말까 한 존재들이라고!”“그런데 지금 감히 당신이 우리 샤르마 커의 여자를 빼앗다니!”“머리에 총 맞았어?”“이렇게 예쁜 여자는 높은 지위의 남자랑만 어울린다고!”“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따위 짓이야? 감당할 수 있어? 먹여 살릴 수 있냐고? 지킬 수 있냔 말이야?”현장에 있던 남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인도는 대하와 급이 다른 나라라고 생각한 것이다.대하의 여인들은 일찍이 독립이라는 개념을 배웠지만 인도의 여인, 특히 아름다운 여인은 항상 권력자의 부속품이나 노리개였다.계급이 낮은 사람은 예쁜 여자를 곁에 둘 자격조차 없다.일시적으로 얻었다고 해도 그
”당신, 잘 들었어? 설유아는 당신이 먹여 살릴 필요없다잖아!”“잘 들어. 난 인도에서 세 번째 계급으로 비록 높은 권위는 아니지만 집안의 재산은 수조 원이 넘어.”“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설유아를 먹여 살릴 수 없어.”하현이 얼토당토않는 태도를 보이자 머리를 빗어넘긴 인도 남자가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입심이 이렇게 좋으시니 아마 자산이 몇십조 원쯤 되나 본데.”“대하 10대 가문 중 어느 곳에서 왔는지 모르겠군. 5대 문벌 중 어디야?”“얼른 말해 봐. 내가 겁먹을 수 있도록 어디 한번 떠들어 봐. 이러면 내가 재미가 없어지잖아!”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는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이 남자가 하현을 비꼬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맞는 얘기였다.데릴사위가 어떻게 몇십 조, 몇십억을 가질 수 있겠는가?그렇게 돈이 많은데 뭐 하러 데릴사위 노릇을 하겠는가?정말 그렇게 돈이 많다면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면서 데릴사위 소릴 듣지는 않을 것이다.“수십조?”남자의 말을 들은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솔직히 내가 돈이 얼마나 있는지 나도 잘 몰라.”“돈에는 관심이 없거든.”“나한테 돈은 숫자일 뿐이야.”“내가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하루 몇십만 원 벌면서 월급 받을 때였어.”“돈에는 관심이 없다고?”하현의 말에 몇 명 아름다운 여인들이 콧방귀를 뀌었다.무슨 갑부라도 되는 줄 아나?돈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른다고?뭐? 돈에 관심이 없어?가장 기쁜 날이 하루 몇십 만원 벌면서 월급받을 때였다고?잘난 척도 정도껏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나?설유아조차도 하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하현이 무성 황금 회사 주식도 별로 안중에도 없는 걸 보고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았다!이해나는 더더욱 냉소를 지으며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하하하!”샤르마 커 일행은 미친 듯이 웃
”알았어! 알았다구!”차현이라 불리는 인도 남자는 굽신거리며 말했다.“하현, 내가 너무 심했다면 용서해.”“당신의 그 원대한 목표를 날 죽이는 데 쓰지 마!”“아이고, 무서워.”“내 몸이야말로 당신의 그 원대한 목표 중 작은 일부분이잖아!”공포에 질린 척하며 하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차현의 모습에 장내는 완전히 웃음바다로 변했다.아름다운 여인들 눈에는 하현이 허풍선이처럼 보였다.“하현, 당신 같은 인물은 무성에서 단연 으뜸이야! 벌써부터 친구가 된 것 같으니 내가 말을 놓아도 되겠지?”샤르마 커가 껄껄 웃자 그의 목에 둘러 있던 금목걸이도 덩달아 번쩍번쩍거렸다.그는 하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내가 이번에 무성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무성에 의약 기지를 건설하고 국제적으로 긴급히 필요한 약을 빠른 시일 내에 조달하는 거야!”“난 원래 은행에서 몇천억 융자할 생각이었는데 하현 당신이 그렇게 돈이 많다니 갑자기 당신한테 돈을 빌리고 싶어졌는 걸!”“하현, 어때? 투자만 한다면 1년 안에 원금 회수는 물론이고!”“10년 이내에 원금의 3배 이상을 벌어들일 거야!”“어때?”“관심 있어?”“당신한테 몇천억쯤 일도 아니잖아?”“그냥 손 흔들어서 밑에 있는 사람한테 시키면 몇 초도 안 되어서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야?”한 무리의 남녀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껄껄 웃었다.샤르마 커는 간악한 사람이었다.겉으로는 하현의 체면을 세워 주는 척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전혀 아니었다!완전히 하현의 얼굴을 마룻바닥에 대고 박박 문지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형부, 가요!”이 모습을 본 설유아는 화가 나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하현을 데리고 떠나려고 했다.그녀는 하현이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함부로 투자하는 사람도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눈앞에 있는 인도 사람들은 딱 봐도 신뢰가 가는 인물들이 아니었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갈 수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설은아는 얼굴이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부장님이 이천억, 아니 이조를 준다고 해도 난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설 대표님,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어요!”“아니 그냥 잠 한 번 자는 것 가지고 뭘 그래요? 결국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닙니까?”“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가 없어서 꿈도 못 꾼다고요!”“그런데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혼도 한 번 했겠다 잠 한 번 자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남의 편의를 봐주고 내 이익을 챙기면 되는 거죠.’“이번에 잘 하면 앞으로도 대표님은 육 씨 도련님의 사람이 되어서 금정에서 편하게 사업할 텐데, 그런 기회를 발로 차버려요?”“대표님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정에선 사업하기 힘들어져요!”“왜 돈을 앞에 두고 내팽개치려는 거예요?”이국흥은 이 바닥에서 닳을 대로 닳은 인물이었다.이런 일에 경험도 많고 비열함 따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이리저리 이로울 대로 몰아가고 있었다.정신력이 보통인 여자가 아니라면 그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뻔뻔스러운 행동에 쉽게 넘어가고도 남았다.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이 부장님, 내가 돈이 필요하긴 해요!”“하지만 돈 때문에 내 몸과 영혼을 팔진 않을 겁니다!”설은아에겐 분명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었다.“좋아요, 안 받으셔도 됩니다!”“없던 일로 하죠!”이국흥은 테이블을 탁 치며 노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은 우리 금정은행에 따로 오백억 빚이 있습니다!”“계약대로 다음 달에 갚아야 하고요!”“기한이 지나면 우리 금정은행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 자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대표님도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 겁니다!”
”대출이 갱신이 안 되어서 우리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어요.”“직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고 공장 생산도 중단되었어요.”“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정말 파산할 거예요.”설은아는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했다.“이 부장님, 우리 회사랑 거래하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요.”“부장님도 우리 집안에 대해 잘 알고 계시고요. 우리 뒤에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대구 정 씨 가문이 있어요.”“도와주신다면 그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이국흥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설은아를 바라보았다.“설 대표님,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대표님 회사는 지금 장부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위험평가를 통과할 수가 없어요!”“내가 직업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업윤리를 어겨 가면서까지 대표님을 도와드릴 순 없잖습니까?!”“안타깝지만 우리 은행에서 이번 대출 연장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하지만 우리 은행에서 대표님께 기회를 안 드리는 건 아닙니다...”말을 마치며 이국흥은 미리 준비해 둔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서남 천문채 육 씨 도련님이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는군요.”“이건 이천억을 빌린다는 차용증입니다. 대표님이 여기 서명만 하면 당장 효력이 발생하고요.”“언제든지 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육 씨 도련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룻밤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육 씨 도련님?!설은아는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녀는 분명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모양이었다.그래서 그녀의 눈빛에선 겨울 칼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넘실거렸다.“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직업윤리도 없고 염치도 없으세요?”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국흥은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무슨 말씀인지 알 텐데요.”“난 대표님이 육 씨 도련님의 요구대로 했으면 합니다!”“그분이 누굽니까? 서남 천문채에서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까? 잘 아시면서 왜 그러
”아, 아니...”“대, 대사님! 대사님!”이때 나천우는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으며 하현을 쫓아가려고 발버둥쳤다.임단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나천우를 뒤따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은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나천우 부부가 급한 마음에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하현을 뒤쫓으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나천우를 뒤쫓아온 형나운은 나천우의 전화기를 툭 쳤다.“천우 오빠, 또 일을 그르치려고 그래?!”그녀는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다.“지금 하현이 화가 나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게 생겼는데 부하들이 쫓아간들 어쩌겠어?”“하현이 돕지 않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나천우는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형나운, 우리가 잘못했어.”“우리가 눈이 멀었나 봐.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제대로 볼 줄 몰랐으니 말이야!”“하지만 너랑 나랑 오랜 인연을 생각해서 부디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잘 좀 봐달라고 말 좀 해 줘!”“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돈 문제는 절대 신경 쓰지 마!”“맞아.”이때 임단도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형나운, 그러면 주소라도 알려줘. 우리가 가서 삼고초려라도 해 볼게!”“좀 진정해. 이렇게 쫓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형나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해 볼게.”그 시각 진회강 강변에 위치한 금정은행 본사 앞.설은아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은행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마침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하현이 설은아의 모습을 보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그녀의 사정을 급히 떠올리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하현이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마침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아보니 형나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 사장 부부가 잘못을 깨닫고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해요.”“내 얼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