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백진의 말에 하구천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일리가 있는 말이에요!”“역시 고모는 항상 일리가 있는 말씀만 하신다니까!”“하현, 나도 당신한테 목숨을 내놓는 이런 판에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않아. 무릎 꿇고 머리만 세 번 조아린다면 당신을 놓아줄 수 있다고!”“봐, 내가 얼마나 당신한테 잘해 줘!”“원래 당신과 나 사이의 원한으로 말하자면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칼로 무참히 베어도 시원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난 당신한테 삶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잖아.”“어때? 내가 배포가 좀 크지 않아? 이렇게 패기 넘치고 아량이 넓은 사람 봤어?”하구천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당신이 내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어.”“그렇게 되면 섬나라에서 온 저 친구들이 당장 당신한테 달려들 거야! 나도 저들을 막을 수가 없어!”“아마 당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테니까!”하구천이 손짓을 하자 섬나라 고수들이 하나같이 눈에서 살기를 드러내며 하현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들의 눈동자에는 적개심과 원한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섬나라 음류 검객을 죽이고 천 리를 건너와 신당류의 본산을 습격한 두 사건은 섬나라 무하계에 씻을 수 없는 망신을 안겼다.기회가 되기만 한다면 이 사람들은 하현을 난도질하고도 남을 것이다.멀지 않은 곳에서 섬나라 사람들이 하현을 향한 깊은 적개심을 드러내며 탁자를 쾅 하고 치며 말했다.“하 씨 네놈! 이 개자식! 감히 우리 무카이 마키 일가를 멸문시키다니!”“난 오늘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너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야!”가만히 듣고 있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말이었다.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분개하며 눈을 희번덕거렸다.눈앞에 빨간 깃발을 흔드는 투우사를 보고 흥분한 수소들처럼 하현을 당장 쳐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섬나라 고수들이 이렇게 떠들어대자 장내는 순식간에 살벌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항성과 도성에서 온 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
”참, 하현. 내가 자리에 오르면 가장 먼저 관문을 열 거야. 섬나라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협력을 하는 거지.”“그럼 내가 아주 눈에 거슬리겠네?”“당신은 내가 섬나라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상석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그럼 자! 얼른 내 목을 베!”하구천은 다시 팔걸이의자에 앉았다.하문준은 하구천의 도발에도 꿈쩍하지 않고 무시했다.지금 하구천은 말할 수 없이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당신은 그럴 배짱도 없는 것 같은데!”말을 마치자마자 하구천은 혼자 낄낄거리더니 손짓을 하며 냉담하게 말했다.“저놈을 죽여! 내 일에 걸리적거리지 않게!”섬나라 사람 몇 명이 한 발짝씩 내딛더니 너 나 할 것 없이 허리에 찬 섬나라 장도를 꺼내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섬나라 사람들은 하현을 난도질해 죽일 작정인 듯 보였다.하구천이 상석에 오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누가 뭐래도 하현이었다.“하구천.”이때 하현이 마침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나랑 한 판 놀아 보자고 했잖아?”“아직도 당신이 그 마음 그대로라면 좋아! 내가 같이 놀아 줄게!”“그런데 감히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당신 전신이라며?”“그런데 방금 나한테 뺨 몇 대 맞아서 설마 그 자리를 되찾을 용기조차 없어진 건 아니지?”하현이 일부러 하구천의 약점을 들추며 그의 화를 돋우었다.하구천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이때 얼굴에 문신을 새긴 중년 남자가 나오더니 하구천을 향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하 소주, 왜 당신이 직접 나서려고 하는 거야?”“난 줄곧 우리 홍성에 맞서는 저놈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 얼마나 힘이 대단하길래 저렇게 날뛰는지!”“드디어 오늘 그런 기회가 왔군. 내가 하 소주를 대신해 저놈을 잡아 보겠어!”“저 사람은 홍성 교관 진홍성이야!”“진태유와 진홍두의 생부!?”“홍성이 막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 진홍성이 손에 식칼을 들고 남규 거리를 쓸어버렸
하현의 손이 진홍성의 얼굴을 후려쳤다!?홍성 교관이?항성과 도성의 태산과도 같은 진홍성이?전설의 거물 진홍성이 등장하자마자 하현에게 한 방을 맞고 바로 날아갔다고?!게다가 진홍성은 죽지만 않았다 뿐이지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사람처럼 널브러졌다.노부인의 생신 현장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만이 가득했다.숨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제멋대로 날뛰던 하구천과 하백진은 이 모습을 보고 눈동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하현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홍성을 때려눕히다니!소란스럽게 거들먹거리던 섬나라 사람들은 순간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의기소침해졌다.“이럴 수가!?”항성에서 내로라하는 집안 부인들은 충격에 휩싸인 듯 고운 얼굴에 잿빛 그늘이 가득했다.진홍성의 명성은 너무나 컸다.그녀들의 눈에 진홍성이 몸을 날렸다는 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적의 힘을 뜻한다.하현이 최근에 아무리 유명해졌다고는 해도 진홍성을 만나면 찍소리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들이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쓰자마자, 그것도 뺨 한 대로 진홍성이 이렇게 고꾸라질 줄은 몰랐다.그야말로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사건이었다.특히 허민설을 비롯한 하구천의 추종자들은 한동안 넋이 나간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하, 하현이 진홍성을 때려눕혔다고?”“이곳에는 수많은 총이 하현을 겨누고 있었고 수많은 섬나라 고수들이 칼날을 치켜세우고 있었는데...”허민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는 듯 연신 자신의 뺨을 때렸다.“어떻게 이런 일이?”“저 칼날이 두렵지도 않은 건가? 여기서 어떻게 맨몸으로 진홍성에게 맞설 수가 있지?”오히려 동리아와 최영하 일행은 예상했다는 듯 의미심장한 눈빛을 띨 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그녀들은 이미 하현의 힘이나 스타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손을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하구천의 표정은 냉랭했다.자신감도 충만했다.하현의 말에 속을 만큼 바보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어찌 되었건 하현은 미야타 신노스케를 죽이고 이걸윤을 제압하고 텐푸 쥬시로를 생포하고 천도를 죽인 사람이다...이것만은 확실했다.그러나 비록 하구천이 당당하게 큰소리는 쳤지만 하현과 직접 맞붙을 의도는 없었다.그가 해야 할 일은 보다 쉽게 하현을 죽이고 항도 하 씨 가문을 장악한 뒤 무한한 명성을 쌓는 것이었다.굳이 하현과 끝까지 죽기 살기로 싸울 마음은 없었다.생각에 이에 미치자 하구천은 팔걸이의자에 앉아 하현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오늘은 노부인의 생신날이야. 아주 경사스러운 날이지. 당신한테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난 당신을 손대지 않을 거야!”“그러니 여기서 자꾸 시간 끌지 말고 얼른 무릎이나 꿇어!”“그렇지 않으면 당신 험한 꼴 보게 될 거야! 내 명령 한 마디만 이 뒤에 있는 고수들이 단번에 당신을 때려눕힐 수 있어!”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 명에 가까운 고수들이 앞으로 나왔다.항도 하 씨 가문 고수들 이외에도 섬나라 고수들까지 더해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이미 이 사람들의 마음속은 하현에 대한 분노로 들끓은 지 오래였다.비록 하현의 실력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지만 한번 제대로 걸리기만 한다면 그들은 섬나라의 원흉인 하현을 죽이는 일에 절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하구천의 반응을 살피던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하구천, 어쨌든 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항성과 도성 젊은 세대를 이끄는 인물이라고 칭송받았지.”“항성과 도성에서 상석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고.”“그랬더니 이거 너무 뻔뻔해졌는 걸!”“내가 무서워서 덤벼들지 못하겠으면 직접 말로 해.”“능력 없으면 내 앞에서 뻔뻔하게 거들먹거리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 없어! 적어도 아직은!”그러자 하현은 다시 섬나라 고수들을 실눈으로 바라보며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이 데려온 섬나
비아냥거리는 하현의 표정이 냉랭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섬나라 사람들의 귀를 후벼팠고 섬나라 사람들과 하구천과의 친밀한 관계를 사정없이 부추기고 있었다.섬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음류든 염류든 다른 어떤 세력이든 자존심이란 게 있는 고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분노가 달아올랐다.섬나라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를 최고라고 여기고 극동지역에서 가장 고귀한 민족으로 여겼다.오늘 그들은 하구천이 상석에 앉는 것을 도우러 왔다.스스로를 하구천의 뒷배이자 든든한 조력자라고 생각해서 온 것이나 그의 싸움꾼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에게 이런 자존심 구기는 말을 듣고 보니 어느새인가 그들은 하구천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생각해 온 것 같았다.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눈가에 경련이 일어나서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저 자식이!”하구천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섬나라 사람들 중 무카이 마오가 제일 먼저 버럭 하며 일어섰다.그는 허리춤에 있던 섬나라 장도를 칼집에서 꺼내더니 순식간에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기세 좋게 걸어 나갔다.“개자식! 오늘 다 죽여 버리겠어! 이 빌어먹을 놈!”“네가 내 형님을 죽이고 내 조카딸을 죽인 것도 모자라 섬나라 음류 고수들을 죽였어!”“오늘 내가 네놈을 산산조각 내어 산허리에 뿌리고 말 테야!”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당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같이 보내줄 테니까!”“이! 이놈이! 이 쳐 죽일 놈!”무카이 마오는 양손에 칼을 쥔 채 분노로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하현 앞으로 돌진했다.하구천은 그를 말려 보려고 했지만 분노에 휩싸인 무카이 마오의 얼굴을 보고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구천은 그저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무카이 마오, 하현은 함부로 덤벼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음험하고 아주 교활한 놈이라니까! 조심해
키타가와 시미즈의 말에 하구천은 눈동자를 반짝였다.“그렇게 실력이 좋다니 난 무카이 마오가 저 무식한 하현을 죽이기만을 기다리면 되는군!”하구천은 누구든 하현을 죽여 주기만 하면 되었다.주변 사람들은 하현의 실력에 놀랐지만 키타가와 시미즈의 말을 들은 후 하구천은 무카이 마오가 섬나라 음류의 복수를 위시해 하현을 무참히 베어버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순간 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무카이 마오를 바라보며 그가 금방이라도 하현을 두 동강 낼 장면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촹!”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무카이 마오는 손에 들고 있던 섬나라 장도를 힘차게 움켜쥐었다.순간 맹수처럼 사나운 기운이 그의 눈동자에서 불을 뿜었다.“하현, 조심해. 이건 섬나라 황실에서 하사한 검이야! 전설로만 전해지던 국검이라고!”“온갖 피를 다 묻혀온 사나운 칼이야. 수많은 목숨들이 이 칼에 저세상으로 갔지!”“이 칼이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어! 조심해!”방금 무카이 마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던 최영하가 입을 열었다.하현은 최영하를 향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그 칼로 그를 가족들 품으로 보내주면 되겠군!”“이 개자식이!”하현의 말을 들은 무카이 마오의 얼굴에는 갑자기 험악한 기색이 역력했다.절세의 검을 든 자기 앞에서 감히 하현이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순간 무카이 마오는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올려 휘둘렀고 검은 하현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칼날이 번쩍이며 스쳐간 순간 길을 잃은 파리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났다.이 검은 날렵할 뿐만 아니라 멋있기까지 했다!천하의 무공은 빠르고 거칠었다.이 칼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칼을 발아래로 두는 존재 같았다.“좋아!”하구천 진영에서 하백진, 허민설 등이 참지 못하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이 칼은 정말 멋졌다!키타가와 시미즈는 더욱 감탄하는 얼굴로 무카이 마오를 우러러보았다.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영웅이
아주 빠른 칼날이었다!아주 멋진 칼이었다!난폭하지 그지없는 칼이었다!섬나라 사람들은 모두 흥분의 도가니였다.무카이 마오가 얼마나 대단한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자 그들은 마치 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본 듯이 흥분했다.섬나라 사람들은 무카이 마오를 연호하기 시작했다.“무카이 마오! 무카이 마오! 천하무적 무카이!”“저놈을 죽여!”“극강의 나라의 저력을 보여줘!”섬나라 여자들은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무카이 마오를 연호했다.순간 무카이 마오는 다시 한번 칼을 들어 올리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개자식아! 지옥으로 떨어져!”말이 끝나자마자 무카이 마오는 힘껏 칼자루를 휘둘렀다.번뜩이는 칼날을 보고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아까보다 더 날쌘 칼날이었다!빛의 속도로 떨어지는 칼날이었다!단칼에 세상 모든 걸 두 동강이 낼 기세였다!무카이 마오의 컨디션이 어느 때보다 좋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다.칼을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발밑의 속도도 빨라졌다.“솨솩!”칼을 든 무카이 마오는 거침없이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저 칼날이 하현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면 하현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에 모두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너무 느린데!”하현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하더니 갑자기 한 발짝 내디뎠다.그는 물러서지 않고 망설임 없이 칼날 속으로 돌진했다.곧이어 그는 사정없이 오른손을 내던지고는 무카이 마오의 얼굴을 향해 뿌리쳤다.“퍽!”천둥 같은 울림과 함께 무카이 마오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붕 날아올라 대리석 기둥에 온몸을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천하의 무공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법이었다!하지만 섬나라 황실에서 하사받은 단칼도!날쌘 몸놀림도!하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모두 산산조각이 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촹!”하현은 무카이 마오에게 다가가 그가 놓친 칼자루를 받았다.순간 하현은 망설임 없이 칼끝을 무카이
섬나라 염류 고수 야규 로쿠로는 이를 악물었다.그는 잠시 눈꼬리를 매섭게 뽑아내며 애써 냉정을 되찾으려고 했다.동시에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섬나라 염류의 비장의 무기를 시전한다면 눈앞의 이 대하 놈을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어떻게 이놈이 이렇게 강할 수 있단 말이야?”섬나라 음류인 카타가와 시미즈는 벌린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그녀는 원래 무카이 마오가 섬나라 음류의 구겨진 자존심을 어떻게 세우는지 보려고 했을 뿐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무카이 마오가 지다니!키타가와 시미즈는 마음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도무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그리고 몇몇 섬나라 고수들도 모두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눈앞의 상황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연신 눈을 비볐다.많은 사람들 속에 텐푸 쥬시로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하현과 여러 번 맞붙어 호되게 당한 텐푸 쥬시로만이 하현의 무시무시함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신당류 종주인 그도 천 리 밖에서 생포당한 몸이라 망신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다른 유파들도 자신처럼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 싶던 차였다.그러니 그가 어떻게 그들을 비난하며 나설 수 있겠는가?“솩!”하현은 오른손을 뻗어 황실에서 선사한 칼을 천천히 문지르며 말했다.“역시 좋은 칼이군.”“섬나라 칼로 섬나라 짐승들을 베는 맛이 아주 일품이야...”“다음은 누구야? 누가 나설 거야?”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눈빛은 천하를 내려다보고 호령하는 신령 같은 당당함과 강인함이 묻어 있었다.섬나라 사람들은 그제야 흠칫 놀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이제 그들 마음속에 들끓었던 분노는 온데간데없었다.그들은 더 이상 하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무카이 마오를 보고 이를 갈았다.특히 음류에서 온 고수들은 분노가 가득 서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이 개자식이!”“감히 섬나라의 칼로 우리 섬나라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저 뚱보는 누구야? 여자 처음 봐? 왜 우릴 자꾸 쳐다보는 거야?”“변태가 틀림없어. 봐 봐. 아직도 내 다리만 쳐다보잖아!”“정말 재수없어! 오늘 우리가 스타킹도 안 신고 나온 건 어떻게 알고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아 짜증나!”“저런 남자는 부끄러움도 몰라. 아마 우리가 꽃다운 처녀란 걸 모르나?”“저렇게 빤히 쳐다보면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좋은 자리에 시집갈 수 있겠어?”“아 정말!”“변태 같은 놈!”“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단 말도 모르나?!”“주제도 모르고 넘보다니!”여자들은 서로 재잘거리며 떠들었다.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산들도 이때 고개를 살짝 들었다.나박하에게 시선을 던진 순간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어머? 나박하? 나박하잖아!”이산들은 한눈에 나박하를 알아보았다.꽤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순간 지난 일을 떠올리던 이산들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그녀는 아리따운 얼굴에 조롱하는 기색을 떠올렸다.“너네들 저 사람 몰라? 우리 금정에서 분리수거 사업을 하던 사람이잖아! 예전엔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완전 파산한 빈털터리!”“그가 고급차를 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운전해서 버는 돈은 한 달 고작 벌어 봐야 얼마 되지도 않아!”처음에 나박하를 쫓아다닐 때만 해도 이산들은 자신이 부잣집에 시집가는 줄 알았다.하지만 나박하가 별 볼 일 없어지자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른 임수범에게로 환승했다.나박하가 몰락한 뒤 그녀는 그를 한없이 원망했다.자신의 청춘을 엄한 놈에게 바쳤다고 생각하니 눈앞에서 그를 짓밟아 죽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어머? 정말이야? 이산들, 정말이냐고?”“저런 사람이 네 꽁무니를 따라다녀?”여자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들썩거렸다.“집에 거울도 없대? 자기가 어떤 몰골인지도 모르나 봐!”“얼굴도 별 볼 일 없고 가난한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래?”“혹시 뭘 잘못 먹은 거
”전 여자친구예요. 이산들.”“그녀는 수년 동안 날 따라다녔고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죠. 그녀에게는 세상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뜻밖에도 형제와도 다름없는 그와 함께하고 있었죠!”“내가 관청에서 자산을 동결당해 일을 멈추었을 때 그녀는 내 마지막 남은 현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꼬임에 내 도장으로 함부로 보증도 서서 결국 많은 빚을 떠안았어요...”“하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어요. 그때 형수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지난 일을 떠올리자 나박하는 다시 그 감정에 휩싸인 듯 마음 깊이 고마움을 표했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가 원망스러워요?”“원망스럽지만... 요 며칠 동안 깨달았어요.”나박하의 얼굴엔 당당한 기색이 떠올랐다.“한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죠.”“정말 능력이 있으면 직접 복수하면 되는 거예요.”“안타깝게도 지금 난 능력이 별로 없어요.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만 해도 벅차죠.”“복수할 자격도 능력도 없어요.”“그녀는 여러모로 나보다 훌륭해요.”“지금은 금정개발 구매 담당자로 연봉에 상여금까지 합하면 1년에 몇억은 벌 거예요.”“그리고 형제와도 같았던 임수범은 건축 자재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지위가 나랑 비교가 안 되죠. 그래서 날 함부로 짓밟을 수 있는 거고요!”“임수범은 금정개발 사장인 임단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어요.”“지금의 난 더더욱 그들을 건드릴 수 없어요!”나박하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그러나 그는 두 사람이 마치 버려진 개를 짓밟듯 자신을 대했다는 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입에 올릴 수 없었다.그저 속으로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금정개발이 그렇게 대단해요?”하현이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시총 이천억도 안 되는 이제 막 시작한 회사라고 들었는데.”“하고 많은 부동산 개발 회사 중에 보잘것없는 정도 아니에요?”
나박하는 한숨을 내쉬었고 하현은 한 남자의 삶의 고된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하현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누가 당신 일을 방해했죠?”“과거의 라이벌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할 수가 있어요?”나박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한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형제 같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내가 사랑했던 여자였어요...”“내가 초라해지자 두 사람은 완전히 얼굴을 돌리고 모른 척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날 짓밟았어요!”“그가 몇 년 동안 내 사업에서 많은 돈을 몰래 빼돌렸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내통하고 있었고요...”“난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그래서 그들은 내가 재기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거예요. 기를 쓰고 날 짓밟았죠.”“내가 재기하면 가장 먼저 그들을 죽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난 이제 사업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나한테 차가 있으니 이걸로 차량 운전이나 하면서 살래요.”“그러면 그 사람들도 나한테서 마음을 놓을 것이고 나도 자유로워지겠죠.”“분리수거 사업이 다 정리되면 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노후를 보낼 생각이에요.”그동안의 일들을 쭉 늘어놓은 나박하는 후련한 듯 소탈한 미소를 보였다.하지만 하현은 그의 강인함 뒤에 못내 내려놓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한때 승승장구하던 분리수거 업자가 정부 정책의 변화 때문에 한순간에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나박하 정도의 능력이라면 재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과거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짓밟힌 쓰라린 기억은 결국 그를 무너뜨리고 말았다.그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도록 아플까?그 슬픔이 얼마나 그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그는 닥쳐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받아들일 수밖에.하현은 짐짓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뻗어 위로
간민효를 구한 뒤 하현은 현장 처리 등을 그녀에게 맡겼다.간민효의 능력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 잘 처리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그러고 난 뒤 그는 나박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부탁했고 두 사람은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갔다.원래 하현은 길가에 있는 아무 노점에나 들어가려고 했는데 나박하가 굳이 하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두 사람은 금정호텔로 갔다.나박하는 현장에서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꾹 다물었다.그런 나박하의 성품이 하현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됨됨이로만 봤을 땐 충분히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다만 지금까지는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뿐이다.그들의 차는 곧 금정호텔 입구에 멈췄고 나박하는 무슨 일이 생각난 듯 은행 카드 한 장을 재빨리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 이 카드에는 내가 요 며칠까지 모은 백억이 있어요. 이것이 내가 지금 모을 수 있는 모든 자산입니다.”“이걸 형수님께 전해주세요. 우선 급한 데 먼저 쓰시라고요. 급하게 갚을 필요도 없어요.”“며칠 더 일찍 주려고 했는데 역부족이어서 며칠을 더 꼬박 모아서 겨우 이만큼 모았어요.”“형수님한테 내가 무능해서 이 정도밖에 은혜를 갚지 못하네요...”나박하는 은혜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 같았다.하현은 나박하를 처음 만난 날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빈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결국 하현은 나박하가 내민 카드를 되돌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돈, 다시 넣어 둬요. 은아의 자금난은 해결되었어요.”자신의 진심을 나박하가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엄도훈이 금정은행의 나천우 대표를 소개해 줬고 나 사장이 내 체면을 봐줘서 어떻게 대출이 성사되었어요.”“해결됐어요?”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장보아의 얼굴은 한기로 가득 뒤덮였다.그녀는 눈꼬리를 일그러뜨리며 하현을 흘겨보다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그때 갑자기 남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이놈아! 감히 나한테 총부리를 갖다 대? 너 죽고 싶어?!”“퍽!”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발로 남자를 차버렸다.남자는 땅바닥에 구르다가 완전히 기절하고 말았다.하현의 거침없는 행동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현은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결단력도 대단했다.장보아는 놀라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개자식, 당신 도대체 누구야?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하현은 대답 대신 손에 든 총구의 방향을 돌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탕!”총소리와 비명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고 하현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은 모두 얼굴을 감싼 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하현이 순식간에 예닐곱 명의 부하들을 쓰러뜨리자 간지삼조차 얼굴색이 변했다.그들 모두는 하현이 이 정도로 대범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장보아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감히 내 사람을 건드리다니! 죽고 싶어?!”하현은 아무런 대답 없이 한 발짝 내디딘 다음 장보아가 미처 반응할 겨를도 주지 않고 그녀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밀었다.하현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어 놓고 냉랭하게 말했다.“당신은 그럴 자격 있어? 확실해?”간지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하현, 그 손 내려놔! 제발!”“이 사람은 금정 간 씨 가문 외척이야.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장보아 역시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며 소리쳤다.“맞아. 난 금정 간 씨 가문 사람이야. 간민효의 사촌 언니라고! 감히 날 건드려?!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덤비는 거야?!”“탕!”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총구를 살짝 비틀어 장보아의 어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총소리가 사방을 찢어 놓았고 장보아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자신이 그렇게 소리치는데도 하현이
”은인이라고?”장보아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간민효는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바로 이 사람이야! 하현!”“지난번 비행기에서도 날 구해 줬어.”“말하자면 이 사람은 날 두 번이나 구해 준 거야.”“두 번?”간민효의 말을 듣고 장보아의 시선이 하현에게 쏠렸다.장보아는 도무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의혹만 가득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사람이 널 두 번이나 구해 줬단 말이야?”“널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라고?”간민효는 짧게 대답했다.“맞아.”“그런데 날 이렇게 싫어하니 정말 마음이 아파!”장보아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이봐! 이 사람을 잡아!”“감히 널 싫어하다니! 이 자리에서 바로 밟아 버려!”간민효는 화들짝 놀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그게 무슨 뜻이야?”장보아는 하현을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젊은 나이에 병왕을 짓밟을 수 있다니 놀랍군! 그것도 무학의 성지에서 온 병왕을 말이야!”“분명히 한통속인 게 틀림없어!”“어서 죽여!”그녀의 부하들은 그녀의 명령을 듣고 모두 총을 꺼내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장보아가 한마디만 더 하면 가차 없이 쏠 생각인 것 같았다.하현은 장보아가 그러든 말든 핸드폰을 꺼내 장보아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날 죽이려고?”“지금 나한테 총을 겨눈 거야?”“정말로? 진심이야?!”간민효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보아는 난폭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맞아. 당신은 해골파 사람임에 틀림없어. 사람의 목숨을 이용해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거야!”“당신의 목적은 바로 간민효에게 접근하는 거지.”“경고하겠어! 당신이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 나를 속일 수는 없어!”하현은 그녀의 제복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증거 있어?”“증거고 뭐고 그따위 거 필요없어!”장보아의 얼굴엔 도도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사람을 구하
“어? 그래?”“알고 보니 당신은 꼭 보답을 받아야 되는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군, 안 그래?”간민효는 활짝 웃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하현의 턱을 살살 만졌다.“이렇게 하면 어때? 내가 이 한 몸 허락할게!”하현은 얼굴이 붉어지며 헛기침을 했다.“당신 정말! 그런 말만 자꾸 할 거야?”“정상이라면 평생 은혜를 갚겠다거나 뭐 그런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간민효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건 못생긴 사람들한테나 하는 말이고. 당신처럼 잘생긴 사람한테는 당연히 몸을 허락해야지!”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절대 안 돼!”“우리 강호 사람들이 의협심으로 사람을 구하는 건 당연한 거야!”하현의 말을 들은 간민효는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러니까 당신 말은 내가 못생겨서 싫다는 거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당신도 알잖아?! 난 거짓말은 못하는 사람인 거!”하현의 말을 들은 간민효는 뾰로통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금정에서 줄을 세우면 연경까지 닿고도 남을 것이다.그런데 이놈은 왜 자신한테 눈길도 주지 않는 거지?두 사람을 쳐다보는 간지삼의 시선에 의아함이 가득한 걸 보고 하현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민효, 우리 쓸데없는 얘긴 그만하자고.”“사람들을 불러 어서 현장이나 처리해.”해골파 사람들을 완전히 다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만약 이 사람들이 정말로 장생전과 관계가 있다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간민효는 핸드폰을 쳐다보며 말했다.“신호가 차단되었으니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자.”하현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붕!”바로 그때 산길에 몇 대의 도요타 엘파 차량이 몰려왔다.차량은 녹색 일색이어서 눈에 거슬리도록 도드라졌다.곧이어 문이 열렸고 검은 제복을 입은 여자가 마찬가지로 검은 제복을 입은 남녀 몇 명을 데리
“퍽퍽퍽!”얼굴에 해골을 새긴 남자의 몸이 날아가는 순간을 이용해 하현은 몸을 휘돌러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해골파 사내들은 온몸을 휘청거리며 하나같이 본능적으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매서운 하현의 손바닥은 그들의 뺨을 툭툭 스쳐 지나갔고 그들은 나부끼듯 쓰러졌다.손바닥이 아니라 전기 충격 같은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회색 옷을 입은 노인과 간민효의 놀란 시선 속에 하현의 몸놀림은 거침이 없었고 매서웠다.검은 옷의 사내들이 날아올라 뒤엉킨 가운데 마지막 남은 사내도 무너졌다.그는 ‘퍽’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형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그는 방아쇠를 당길 기회가 있었지만 감히 당길 용기가 없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그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마구 걷어차여 땅바닥에 널브러졌다.죽었는지 살았는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이봐. 우리 강호의 규칙에선 포로를 죽이지 않아.”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그의 뒤를 따르는 몇 명의 여자들도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현은 다시 칼을 들이대며 해골파 사내를 발로 걷어차 정신을 잃게 한 뒤에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들의 규칙은 당신들이나 지켜.”“내가 죽이든 말든 당신들과 무슨 상관있어?”하현은 말을 마치며 부두목의 단전에 발을 디뎌 그대로 밟아 버렸다.하현이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하현의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했기 때문이다.전쟁터를 오래 경험한 그들조차도 하현 앞에서는 자신들이 세 살배기 아이처럼 더없이 순진하게 느껴졌다.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잠시 후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젊은이, 내 이름은 간지삼이야.”“우리 아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다니! 쯧!”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발밑에 깔린 사람을 보았다.옷차림을 보아하니 모두 해골파에서는 거물급인 듯했다!그런데 결과는?그냥 슬쩍 밟았을 뿐인데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이게 정말 엄도훈이 그토록 열변을 토하며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말한 해골파인가?설마 엄도훈이 일부러 자신한테 겁을 주려고 한 건 아니겠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비분강개하며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들개처럼 달려들었다.그들은 손에 총, 칼, 활, 쇠방망이 등을 쥐고 있었고 사슴을 앞에 둔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렸다.그들의 노기가 하늘을 찌를 태세였다.이때 간민효는 차량 뒤에서 뛰쳐나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말을 하면서 동시에 그녀는 검은 사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총알은 나가지 않았고 ‘차칵’하는 소리만 황망하게 들렸다.“부두목!”그리고 이때 정신을 잃었던 부두목을 본 검은 옷의 사내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포효했다!“이 개자식! 감히 우리 부두목을 저렇게 만들다니!”“죽여 버리겠어!”얼굴에 해골을 새긴 한 남자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형제들아! 이 개자식을 죽이지 않고 부두목의 복수를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두목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어서 죽여!”사내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고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다고 느낀 것이다.순간 그는 발밑에 힘을 꽉 주었고 발밑의 자갈들이 회오리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촤촤촤촥!”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몸 위로 자갈이 날아들었고 그들은 순식간에 모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았다.활과 쇠방망이들은 갈 곳을 잃고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졌다.곧이어 하현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 앞에 다가와 손바닥을 휘갈겼다.해골파들은 안색이 급변하며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의 손놀림이 너무나 빨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