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능력이 있으면 와봐, 네가 얼마나 대단하지 좀 보자.” 슬기는 이를 악물었다. 어찌됐든 눈 앞에 있는 놈에게 짓밟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 너희 둘 다 기억해! 오늘 내 신분이 확인이 되면 내가 너희들을 오늘 안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박시훈은 현기증이 났다. 이러다 자신이 이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독설을 퍼붓고 허겁지겁 회사를 떠났다. 회장 사무실에서 슬기와 겨울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은 모두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비서, 무슨 일 있었어? 하현 회장님은? 큰 일이 난 거 아닐까?” 요 며칠 하현이 오지 않았는데 지금 갑자기 새 회장이 왔다고 하니 그녀는 하현의 안위가 좀 걱정되었다. “회장님은 분명 별 일 없으실 거야.”슬기는 이 말을 마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빨리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한 바탕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어떡하지……”전화가 불통이 되자 김겨울은 당황했다. 슬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가, 먼저 회사에서 출발해. 내 아파트로 가는 게 더 안전하겠어. 다른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 회장님께 연락해보자.”……같은 시각 서울 외곽. 하현의 포르쉐는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아무렇게나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였다. 반쯤 피운 후에야 비로소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나와라, 쉬쉬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잠시 후, 길가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뒤에 쇠파이프를 든 일곱 여덟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보아하니 몇 사람은 타지 사람이었다. 하현이 비웃으며 말했다. “원래 길바닥 큰 형님들이시니 모두 제주에서 오셨겠군요?”“그래서 뭐?” 앞장선 대머리가 우두머리였다. 그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형들이 어디서 왔건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고, 너는 그냥 이것만 알면 돼. 형들이 너를 길바닥에 데려다
“너……”보스는 잠시 당황했다. 눈 앞에 있는 이 놈은 너무 조용하고 침착했다. 관건은 방금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에게 맞았는데, 그 혼자서 뭘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너…… 너 대체 뭘 원하는 거야?”보스는 놀라 두려워하며 말했다. “말해봐.”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한다면, 내가 너를 놔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다 해도 나를 탓하지 마라.”“네……” 이 보스는 머리에 온통 식은땀이 흘렀다. 눈앞에 있는 이 젊은이의 기세가 너무 무서워서 하마터면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릴 뻔 했다. 일어서서 몸을 약간 앞으로 구부리며 말했다.“형…… 형님, 알고 싶으신 거 다 말씀하세요. 제가 다 말씀 드릴게요!”“한 여자, 부자로 보이는 한 여자가 우리에게 당신을 손보라고 했어요. 그녀가 요구한 한 가지는 당신을 불구로 만드는 거였어요. 만약 당신이 눈에 거슬리면 죽여도 된다고요.”“나를 죽여?”하현은 웃었다. “그녀가 하씨야?”“우리는 돈만 받고 일해서 몰라요. 하지만 그 여자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어요. 제 부하가 몰래 찍은 사진인데……” 말하면서 이 보스는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내밀었다. 하현은 핸드폰을 받아 들고 아무렇지 않게 힐끗 쳐다보았다. 핸드폰 화면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하현은 좀 낯이 익다고 느꼈지만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씨 집안의 변두리 사람인가?” 하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왔다. 자신이 하씨 집안을 떠난 지 3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안에 작은 물고기, 작은 새우조차도 감히 그를 귀찮게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 여자 어디 갔어?”하현이 물었다.“모……몰라요…… 하지만 그녀 옆에 하얀 얼굴을 한 녀석이 따라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가 서울에 있는 어떤 기업을 그 하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그랬어요……”그 보스는 애써 회상을 하며 아는 것을 모두 말했다. 하현이 그를 죽일까 봐 두려웠다.
변백범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 밤 중 서울의 거리는 갑자기 시끌벅적 해지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거리를 누비며 호텔과 클럽, 유흥업소에 들어가 후비고 다니면서 박시훈을 찾아내려고 했다. 이때 박시훈은 다시 진세리의 아파트로 향했다. 오늘 모처럼 늙은 요괴가 그를 괴롭히지 않자, 그는 신이 나서 진세리가 있는 곳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이번엔 진세리가 그를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게 했고, 촛불 만찬을 준비해 두었다. 둘은 먹고 마시면서 키스를 하였다. 박시훈은 비록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보아하니 진세리 이 여자는 문으로 보내진 오리라 날 수 없었다. “진세리, 나는 전에 네가 이런 천성을 타고 났는지 몰랐어. 나를 이렇게 편하게 모실 수 있다니?” 박시훈은 소파에 기대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진세리는 그의 머리를 마사지 해주었다. 이런 여신급 여인으로 하여금 하인처럼 자신을 마사지 하도록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보나 생리적으로 보나 정말 기쁨의 극치였다. 진세리는 비록 마음이 뒤엉켜 견딜 수 없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렇게 편하시다니, 저에겐 어떻게 보상해 주실 건가요?”“안심해, 네가 나를 기쁘게 해줬으니 나도 너를 푸대접하지는 않을 거야……”박시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일 나랑 같이 회사에 가자, 지금부터 너는 하엔 그룹 회장의 비서야. 한 사람 아래 만 명이면 만족하지?”진세리의 몸은 살짝 흔들렸고 얼굴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하엔 그룹 회장 비서 이슬기를 본적이 있다. 그래서 이 자리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았다. 그 때 그녀는 완전히 함몰되었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남자가 이렇게 능력이 있는 걸 보니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를 따라간다면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이 때 진세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붉은 입술을 깨물며 박시훈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회장님……저 원해요……”“쾅!”두 사람
사람들이 비켜서자 험상궂은 얼굴을 한 변백범이 들어왔다. 박시훈을 위아래로 훑어 본 후 웃으며 말했다. “맞아, 돈을 원해. 몇 십억만 형에게 용돈으로 주는 게 어때?”“내가 농담한걸 가지고 진짜로 돈을 달라고? 너희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해?”박시훈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 사람들이 돈을 요구하는 이상 상대방이 그의 신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엔 그룹의 회장으로서 서울에서는 감히 그를 건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 안 해! 오늘 돈을 안 주면 너를 불구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알아서 해.”변백범은 차갑게 입을 열었고 말하면서 거실 찻잔을 발로 걷어 차 바로 두 동강 냈다. “악!” 진세리는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주둥이 닥쳐! 감히 다시 한 번 소리를 내면 이 어르신이 네 주둥이를 찢어 버릴 거야!” 변백범은 진세리를 노려보았다. 진세리는 창백한 얼굴이 되어 그 순간 자신의 입을 틀어 막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박시훈은 이런 모습에 놀라 회장 신분은 까맣게 잊고 허겁지겁 무릎을 꿇었다. “형…… 형님…… 제가 지금은 그렇게 많은 돈은 없어서…… 내일, 내일 제가 모아서 갖다 드려도 될까요?”박시훈은 좀 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변백범의 신발을 핥을 뻔했다. 이 남자의 콧물 한 바가지,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리며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면서 변백범은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하 도련님이 이렇게 하찮은 녀석을 찾기 위해 자기 사람들을 한 무리나 보냈다고?하지만 하현이 시킨 일에 대해 변백범은 조금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 때 변백범은 발로 걷어 차면서 지나갔다. 박시훈은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 후에 차갑게 말했다. “내일? 어르신이 내일까지 너를 모시며 기다릴 시간이 있을까?”“형님, 형님, 진짜 내일 드릴게요. 제가 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 오려면 은행이 문 열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박시훈은 울며불며 하소연했다.“안심하세요.
“하현…… 이 쓸모 없는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야?”박시훈이 물었다. 하현은 입을 열지 않았고, 오히려 변백범이 차갑게 말했다. “하 도련님은 나의 보스야. 네가 감히 도련님 앞에서 지껄이다니, 너를 불구로 만들어버리겠어!”박시훈은 어리둥절했다. 하현 같은 찌질이가 보스라고?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거 정말 국제적으로 웃긴 일 아니야?알고 보니 이 사람들은 이 쓸모없는 하현이 불러와서 연극을 하면서 일부러 자신을 위협한 것 아닌가?이 때, 박시훈은 격노하며 일어섰고, 하현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데릴사위야. 네가 감히 사람을 불러서 나를 놀라게 하다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하엔 그룹 회장이야! 너 때문에 내일 설씨 집안은 파산할거야! 너 죽기만를 기다려라!”이 때 곁에 있던 진세리도 일어났다.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감히 와서 우리를 위협하다니, 내가 은아에게 말해서 반드시 너를 쓸어버리게 할거야. 그 땐 밥 달라고 해도 자리가 없을 거야.”확실히 하현을 본 뒤 박시훈과 진세리 두 사람은 군림하던 마음을 되찾았다. 그들의 마음 속에서 하현은 한낱 데릴사위로서 누구나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데릴사위를 두려워하겠는가? 하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시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하씨 집안이 나를 알아보려고 이렇게 쓸모없는 녀석을 보냈다면 나를 너무 무시 한 거네.”“너를 알아본다고? 훌륭한 하씨 가문이 이렇게 하찮은 녀석을 알아봐야 하나? 어르신이 오늘 너를 때려 죽여서 네가 놀라게 할 거야!” 박시훈은 욕설을 퍼붓고 앞으로 나가 주먹으로 내려쳤다. 하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발을 걷어찼다.“퍽!”박시훈의 몸이 거실 벽을 향해 심하게 날아 올라 새우처럼 몸이 쭈그려졌다. 죽은 것만 못한 느낌이었다. “하현, 네가 나를 때려! 이 데릴사위가 감히 나를 때리다니!”박시훈은 이를 갈았다. “서류 하나 들고 하엔 그룹 회장이라고 할
지금 이 순간, 땅 바닥에 주저앉은 진세리는 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여자는 늘 허영심이 많고, 다소 식견이 있었다. 방금 경험한 일련의 일을 통해 그녀는 벌써 알아차렸다. 정말 하현이 이 무리의 보스인 것 같았다. 그에게 저런 우두머리가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는 분명 쓸모없는 데릴사위일 뿐인데!3년 동안 자신이 매번 은아네 갔을 때 이 폐물은 화장실에서 발이나 씻기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이 하기 싫은 냄새 나는 양말까지도 이 쓸모없는 녀석한테 가지고 가서 씻으라고 했었는데. 하지만……그는 분명히 길바닥의 보스였다. 이거야 말로 진세리가 알고 있던 것을 뒤집는 것이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의 신분을 알았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이 순간, 진세리는 정말 무서웠다. 이 길바닥 사람들은 모두 사악하고 악랄했다. 만약 정말 손을 댄다면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행방불명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현…… 하 도련님……”진세리는 하현 앞에서 힘겹게 무릎을 꿇었다. 그의 허벅지를 끌어 안았고 온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지금 진세리는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어느 날 자신이 데릴사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거기다 그의 허벅지를 끌어 안고 용서를 빌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현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방금 말하지 않았어? 나를 문 밖으로 쓸어낸다고? 내가 밥 먹을 자리도 없을 거라고?”“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진세리는 부들부들 떨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은아의 얼굴을 봐서라도 저 좀 봐주세요. 저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그리고, 오늘 밤 본 일은 얘기하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보증 할게요!”“보증?”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보증을 할 준비가 됐는데?” “저…… 저……”진세리가
회장 사무실. 이슬기와 김겨울이 같이 있었는데 문을 미는 소리에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일어났다. 눈 앞에 늙은 부인을 만났을 때 슬기와 겨울은 모두 긴장했다. 이 여인의 기세가 너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굉장한 압력을 주는 이런 위엄은 보통사람들과는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슬기의 출생 내력도 심상치 않았지만 그 순간 조금 자제했다. 겨울은 일반 가정 출신이라 지금은 감히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선미는 사늘한 표정으로 슬기와 겨울을 보았다. 얼굴에서 서리가 내렸다. 회상 비서가 이렇게 자태가 아름다운 두 아가씨이니 박시훈 그 하얀 얼굴이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누구세요? 여기는 회장님 사무실입니다. 어떻게 마음대로 들어오셨어요?” 슬기는 정신을 가다듬고,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하선미는 차갑게 슬기를 살피며 경멸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너 이 작은 계집애 주제에 내가 누군지 알 자격이나 있니? 너희 회장님이나 불러 와!”슬기는 이 말을 듣고 눈썹을 더 찡그렸다. 요 며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것인가?어제는 박시훈이 회장으로 가장해서 나타났고, 오늘은 또 노파가 왔다. 거기다 이 사람의 태도는 너무 난폭하고 회장님 사무실에서도 여전히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회장님은 일이 있으셔서 늦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회장님의 비서니 일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슬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하선미는 냉소적인 얼굴로 일어섰다. 느린 걸음으로 슬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다음 장면은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 그녀를 보고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손을 들어 슬기의 따귀를 한 대 갈겼다. “너 뭐 하는 물건이야? 네가 나랑 말할 자격이나 있어? 그 사람한테 즉시 굴러 들어오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무릎 꿇게 만들 거야! 그가 올 때까지 너는 무릎 꿇고
“당신의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심하세요. 저는 흉악한 여자와 경쟁하는데 흥미가 없어요!”슬기는 비록 입가에 피가 나도록 얻어 맞았지만 이때만큼은 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이 때 김겨울은 끝내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슬기가 산채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슬기의 앞을 재빠르게 가로막으며 속삭였다. “슬기언니, 말 좀 그만하고 회장님 오시라고 해. 무슨 일이든 혼자는 감당할 수 없어. 그녀는 결국 회장님……”“이렇게 그를 감싸면서, 여전히 노부의 남자를 뺏는 게 아니라고?”하선미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김겨울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너도 무릎 꿇어! 그렇지 않으면 이따가 너도 같이 해치울 거야!” 김겨울의 표정은 착잡했다. 하지만 슬기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가는 그 결말이 무엇일 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선미는 자신의 남자를 빼앗은 두 여인 모두 무릎을 꿇게 하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얀 얼굴이 정말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걸까? 정말 자기가 회장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오늘 그는 영원히 노리개일 뿐 출세할 날이 없다는 걸 알게 해줘야겠다.“자, 너희 둘 뭐 할말 있어? 누가 너희 회장님께 전화할 준비가 됐나?”하선미는 휴지를 꺼내 불쾌하다는 듯 손을 닦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슬기의 표정은 싸늘했지만 겨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우리 회장님은 보통 분이 아니에요. 당신 지금 우리에게 한 행동을 나중에 책임 질 수 없을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하선미는 뭔가 가장 듣기 좋은 농담을 들을 듯 실소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 아니야? 물론 당연히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지. 할머니가 키운 하얀 얼굴이 보통사람 일리가 있겠어?” 이 말을 하자, 슬기와 겨울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