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도 하 씨 가문 본가가 선택한 이곳은 처음에는 척박하고 연고가 없는 무덤이 마구 널려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그래서 결국 항도 하 씨 가문은 한번 고꾸라지고 말았다.하지만 거의 백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이곳은 깨끗하고 맑은 풍광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되었다.그 안에는 유유히 흐르는 시냇물 사이로 작은 정자도 있었다.대하에 현존하는 각양각색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이곳은 원명원의 복제품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특히 야경은 항성에서 단연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온갖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하백진과 하구천은 이 절경을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구천과 하백진조차도 항도 하 씨 본가를 드나들려면 신분 확인이 필요했다.그야말로 이곳은 항성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입구를 지나자 오래된 작은 정원이 하백진과 하구천의 눈앞에 나타났다.이곳은 바깥에서의 화려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소박하고 정갈한 맛이 물씬 풍겨났다.하지만 항도 하 씨 가문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거대한 가문의 시작이 이 작은 정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정원 한가운데에는 회색 가운을 입은 여인들이 손을 모으며 나란히 서 있었다.소리 없이 조용한 가운데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엄숙함이 밀려왔다.이들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이 밖에도 그녀들이 지키고 있는 통로 한가운데 오래된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여든 살쯤으로 보이는 노파가 정갈한 옷차림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미동이 없어서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그러나 그녀에게는 우아하기 그지없는 상류층의 기운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말할 수 없는 위엄이 사방을 에워쌌다.이 모습을 본 하구천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앞으로 나섰다.“할머니, 손자가 할머니 보러 왔어요.”하백진도 거들었다.“엄마.
노부인의 화가 한풀 꺾이는 것을 보고 하구천은 자신도 모르게 기뻐하며 노부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할머니, 일이 이렇게 되어 저도 속상해요. 저도 원래는 할머니를 찾아오고 싶지 않았다구요...”“하지만 하수진은 지금 넷째 숙부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데다 저는 넷째 공주의 일마저 엮여 버렸지 뭐예요.”“나더러 폐가 사건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넷째 공주는 저한테 버림을 받았다고 비난하고 있어요...”“지금은 인터넷에 댓글부대마저 동원되었어요...”“언론사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고요...”“종합해 보면 하수진 이 여자가 든 칼이 날 꼼짝달싹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이 백 년 동안 쌓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요절내고 있어요...”“할머니 손자가 스스로 해결할 방법도 있지만 그건 효과가 너무 느려요...”“아무리 해도 할머니 생신 전까지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그래서 오늘 이 손자가 감히 할머니한테 도움을 청하러 왔어요...”“할머니가 나서서 이번 고비만 좀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할머니 생신이 끝나실 때까지 잘 기다렸다가 할머니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게요. 다시는 밖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게요!”“예쁘고 꼬물꼬물한 손자도 많이 낳아드릴 수 있어요!”하백진도 옆에서 조곤조곤 하구천의 말을 거들었다.“엄마, 구천이는 장손이에요.”“엄마가 구천이를 돕지 않으면 얘가 곤란해질 텐데 그럼 누가 구천이한테 시집오려고 하겠어요?”노부인의 얼굴에는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그녀는 가만히 의자에 기대어 있다가 잠시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수진이는 능력도 수완도 역량도 충분한 아이야...”“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진이는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핏줄이 아니야. 아무리 날고 기어 봐도 수양딸일 뿐이지!”“만약 수진이가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아 보겠다고 한다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에서는 아마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높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겠지...”“하지만 지금 수
노부인의 말을 듣고 하구천과 하백진의 안색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그전엔 하현과 하수진이 쓸데없는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구천과 하백진의 진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하문준이 돌아온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조용하고 무기력해 보이던 하문준은 돌아온 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하수진을 풀어주는 일만 했다.하수진 때문에 하구천은 연달아 뒤로 밀려나기만 했다.심지어 하문준은 하현과 하수진을 통해 일을 집행시킨 일도 있지 않은가?하백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러게. 어떻게 하현이 금의환향한 이걸윤을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겠어? 노국의 넷째 공주를 어떻게 이렇게 처리할 수 있겠냐고?”“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야!”“하지만 그들 뒤에 넷째 오빠가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하백진은 하문준이 가진 역량과 무서운 실력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구천은 심호흡을 하고 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럼 할머니 뜻은...”하구천을 상석에 앉히고자 하는 것이 노부인의 뜻이었다.노부인이 하문준을 싫어하고 하문성을 편애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하지만 하구천도 노부인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왜? 이제는 대놓고 당당하게 문주인 네 숙부에게 덤벼들려고?”“잊지 마. 네 숙부는 이 가문의 문주라는 걸.”“비실비실한 네 수하들을 데리고 문주를 상대하려고 하는 것이냐?”“그걸로 누구 코에 붙이려고?”노부인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더군다나 난 너희들 내부의 선의의 경쟁을 막지 않아. 유능한 사람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지. 단 어디까지나 선이란 게 있는 것이야.”“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는 것. 최소한의 도리 같은 것 말이야.”“문주를 암살하려고 한다는 소문으로 더 이상 주변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싶지 않구나.”하구천은 눈을 껌뻑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알겠어요.”“그
”문주 어르신.”“아버지.”하구천과 하백진이 항도 하 씨 본가를 떠나던 그 시각.하현과 하수진 두 사람은 해변에 있는 당난영의 거처로 향했다.당난영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하문준은 해변 별장 근처 모래사장에서 바비큐 그릴을 준비하고 있었다.하현과 하수진이 도착했을 때 바비큐 그릴 위에 생굴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향긋한 냄새를 사방에 풍기고 있었다.하현은 사양하지 않고 향긋한 냄새로 코끝을 자극하는 굴을 집어 ‘후룹'하고 들이마시듯 한입에 털어 넣었다.“섬나라에서 온 굴은 정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군요.”“섬나라 사람들은 다 별로지만 그들의 음식은 배울 점이 많습니다.”하현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하문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상석에 앉은 자는 적들에 대해 강약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하네. 이렇게 작은 것은 한입에 털어 넣고 큰 것은 군대부터 하나하나 철저히 살펴 공평하고 치우치지 않은 시야를 가져야 해.”“한 나라가 싫다고 해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돼. 반대로 한 나라를 좋게 본다고 해서 너무 치켜세워서도 안 되지.”“실사구시만이 진정 부강한 나라를 이룩할 수 있어.”하문준의 말에 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하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잘 들었어? 지금 문주 어르신께서 당신한테 상석에 앉은 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쳐 주고 계신 거야.”하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웃었다.하현이 일부러 화제를 돌리는 것을 보고 하문준도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않고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좋아. 야식 먹으러 왔으니 이런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자고.”“닭 날개 몇 개 더 구워지면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된 셈이구만.”하현은 옆에 있는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더니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문주 어르신, 요즘 바쁘시죠?”“십 년 전 일은 잘 진행되고 계십니까?”하현의 눈에 오늘 하문준이 여기에 나와 한잔하자는 걸 보니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아주
”정확히 말하면 섬나라의 신당류일 거야.”하문준은 직접 닭 날개 하나를 집어 하현에게 주었다.“다른 곳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임무를 맡겼을지도 몰라.”“하지만 자네와 섬나라 신당류가 좀 불편한 사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은 자네한테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어.”“호위대 사람들을 같이 보내 주겠네. 호위대의 리더는 하구봉이야.”“자네는 그와 맞춰 행동하면 되네.”“이 일이 성공을 거둬 이의평을 데려온다면 하구봉은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는 셈이 되지.”“물론 자네의 은혜는 내 평생 잊지 않겠네.”하현은 눈꼬리를 가늘게 뽑았다가 잠시 후 옅은 미소를 띠었다.“문주 어르신, 다른 곳이라면 정말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신당류라면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텐푸 쥬시로가 지난번 도망갔을 때 제가 직접 섬나라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기회가 주어졌으니 놓치면 안 되죠.”“언제 출격할까요?”하문준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그의 동작과 함께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를 뚫고 요트가 파도를 헤치며 접안을 시도했다.요트 위에는 위장복을 입은 호위대가 있었다.“군사를 움직이는 데 있어 가장 첫 번째는 신속성이죠.”“지금 출발해서 동틀 무렵에 돌아오겠습니다.”하현이 웃으며 흔쾌히 승낙하고 일어나 요트에 올랐다.하현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수진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신당류를 처리하는 일은 아버지 밑에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요.”“왜 외부인을 보내셨어요?”하문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네 할머니께서 이미 손을 쓰셨기 때문이야.”“방금 들은 바로는 할머니가 천도를 내세워 하현을 24시간 내에 출국시키라고 명령하셨다더군.”“천도의 성격을 알지 않느냐? 하현이 그 시간 안에 떠나지 않으면 반드시 무슨 일을 저지르실 거야.”“하현도 대단한 친구지만 천도가 누구냐? 최고의 전투신 아니냐?!”“그는 여러 해 동안 노부인의 곁은 지켰어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처럼 하문준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잠시 후 그는 조용히 말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하현이 천도를 능가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거야?”“잊으셨군요. 그가 직접 섬나라 음류검객을 참살했다는 걸요. 그에 놀라 텐푸 쥬시로는 줄행랑을 쳤죠.”“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어요?”하문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껄껄껄 웃었다.“좋아, 좋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느냐?”“그의 실력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면 손쉽게 신당류를 처리하고 이의평을 데려올 수 있을 거야.”“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 되는 것이고.”“할머니는 다 좋은데 자신감이 너무 넘치세요.”“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천도 하나로 항도 하 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다 제압할 수 있다고 믿으시니까요.”“이번에는 시대가 변했다는 걸 똑똑히 보여 드려야 해요...”...세 시간이 흐른 새벽 4시, 섬나라.이 지역은 섬나라의 남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개인 영지였다.바다 건너 해변가에는 건물들이 즐비하게 위용을 드러내며 우뚝 서 있었다.구름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건물들은 신선의 나라에 신비롭게 떠 있는 묘령의 성 같았다.오래된 건물 외에도 현대식 건물들도 사이사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골프장, 크루즈 터미널, 공항 등 없는 것이 없었다.아마 이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군사기지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그러나 이곳은 실제로 신당류의 본거지였다.그 말인즉슨 군사적으로도 굉장히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건물의 외곽에는 높이가 3미터에 달하는 성벽이 있었다.성벽 위에는 항상 신당류의 고수들이 주둔하며 철옹성처럼 견고히 지키고 있었다.그리고 이곳은 섬나라 안에서도 무학의 성지로 유명한 곳이었다.다름 아닌 섬나라 6대 유파 중 하나인 신당류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1대 검객 텐푸 쥬시로도 이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얼마 전 텐푸 쥬시로가 항
호위대 맨 앞에 서 있는 하구봉의 표정은 냉랭했다.그의 바로 앞에 서 있는 한 줄의 그림자가 뒷짐을 진 채 냉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하현!하구봉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그를 향한 두려움이 일렁거렸다.애초에 그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은 모두 이 남자 때문이었다.하문준이 호위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하구봉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세상 밖으로 나올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이번이야말로 하구봉은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하구봉은 이번에 자신이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린다면 문주 자리를 놓고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현재로선 문주 자리는 당분간 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이런저런 생각이 하구봉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의 시선도 하현에게서 자연스럽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 위로 떨어졌다.이 건물은 하현 일행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기껏해야 300미터 정도였다.절벽과도 같은 성벽을 타고 올라온 하현 일행 앞에 건물 가장자리에 돌담처럼 둘러쳐져 있는 벽은 더 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어느 날 갑자기 기습자가 철옹성 같은 성벽을 뚫고 올라올 줄은 신당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아니면 수백 년 동안 이 신당류에 그 누구도 습격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래서 신당류는 감히 누가 자신들을 공격하랴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에 가득 찼던 것이다.이로 인해 그들은 눈앞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못했다.심지어 건물 앞의 경비는 성벽에 있던 경비보다도 훨씬 적었고 적외선 순찰로 비춰 보니 행동도 확연히 느릿느릿했다.“하현, 우리가 어떤 임무를 맡고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하구봉이 전방을 주시하며 깊은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조직의 리더인 이의평을 잡아야 해.”“확실한 소식통이 그러던데 역시나 그가 십 년 전 그 일의 집행자였다더군!”“그를 잡을 수만 있다면 십 년 전 일은 똑똑히 밝혀질지도 몰라.”하현은 하구봉을 힐
그렇지 않다면 지금 하구봉의 처지로 어떻게 이런 임무를 맡았겠는가?다만 하구봉은 하현이 여기 나타난 목적을 알 수 없었다.그는 잠시 하현을 실눈으로 바라본 후에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현, 사실대로 말해 봐.”“당신은 항도 하 씨 가문과 얽히고설킨 관계잖아. 심지어 당신도 항도 하 씨 가문 방계라고도 할 수 있고.”“그래서 말인데, 항도 하 씨 가문 내부 싸움이 당신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항도 하 씨 가문의 일에 이렇게 깊숙이 개입한 이유가 뭐냐고?”“설마 외부인인 주제에 혹시 항도 하 씨 가문의 상석을 노리는 건 아니야?”“상석?”하현은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당신들의 눈에는 그 자리가 어마어마한 자리로 보이는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당신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그래, 난 지금 항도 하 씨 가문 일에 개입해 있어. 왜냐하면 이 가문의 일이 대하 남쪽 문호의 안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야.”“상석에 앉은 사람이 대하 남쪽 문호의 안위를 잘 지켜주기만 한다면.”“그게 하구천이든 하수진이든, 아니면 당신이든 난 아무 상관없어.”“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해도 당신은 못 알아들을 거야.”“하지만 당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도달하면 내가 말한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하현은 손을 뻗어 하구봉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거들먹거리듯 자신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됐어, 하구봉. 이제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제 시작해야겠어.”“해가 떠 버리면 너무 늦어지거든.”하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손짓했다.뒤에 있던 사람들 중 용전 항도 지부에서 온 정예들은 빠르게 흩어졌다.그들을 이끄는 인솔자는 다름 아닌 최영하였다.하현이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을 데려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지만 그들은 누가 보더라도 최정예였다.용전은 줄곧 대외적으로 대하를 지켜주는 초석 역할을 톡톡히 해 왔으며 용옥, 용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