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구천을 힐끔 쳐다보았다.“누군가 했더니 항도 하 씨 가문 하구천이었군!”“난 원래 이걸윤의 손 따위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어!”“하지만 듣자 하니 항도 하 씨 가문에서 누가 암암리에 현상금을 걸었다더군. 누가 이걸윤의 한 쪽 손을 가져오면 당신이 가서 몇천억을 주겠다고 했다던데!”“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나도 한 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하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장내의 수많은 사람들의 의아해하는 눈빛이 하구천에게 쏠렸다.이걸윤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에 대해 항성과 도성에서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암암리에 하구천이 현상금을 걸었다는 하현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단지 하구천과 이걸윤 이 두 의형제의 태도가 가식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한 명은 상대방의 문주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상대방의 손을 베려고 한다.하구천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는 정말로 오늘 하현이 이걸윤의 손을 베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현장에 나타났다.문제는 이런 수작이 다른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고 하현 이 자식은 기가 막히게 하구천의 생각을 꿰뚫었다는 것이다!이걸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낀 하구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이 소주, 이런 개자식의 말 믿는 거야?”“그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고 한 번에 우릴 다 죽이려고 이러는 거야. 그래야 자기가 이 구역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으니까!”“이 소주, 내 말 못 믿겠으면 나한테 이 판을 맡겨!”“난 하현 이놈이랑 내기를 할 거야. 내가 바로 이놈의 손모가지를 잘라 주지!”이걸윤은 곁눈질로 하구천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하구천, 우리 둘의 우정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어찌 이깟 놈의 이간질 때문에 우리 사이가 틀어지겠어?”“걱정하지 마. 난 이놈 말 믿지 않아!”하구천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걸윤의 얼
하지만 활시위가 당겨졌으니 쏘지 않을 수 없다.하현이 서약서에 지장을 찍자 이걸윤도 그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다음 양측은 각각 한 부씩 서약서를 가졌고 재판을 맡은 공증 재판단도 한 부 받았다.하구천은 이 광경을 보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무 말없이 옆으로 물러나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았다.“그럼 시작하겠습니다!”하현이 손뼉을 치자 원래의 깨끗한 지면 위에 둥근 받침대가 봉긋 솟아올랐다.둥근 탁자 위에는 좁고 긴 카지노판이 있었다.사방팔방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사각지대 하나 없이 두 사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이번 판은 그야말로 보안이 아주 철저해서 날아가는 파리도 CCTV에 찍힐 정도로 분위기가 삼엄했다.무작위로 선발된 보안 요원들은 테이블 양쪽으로 정렬하여 하현과 이걸윤 두 사람이 입장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이걸윤은 냉소를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보안검색요원들이 자신의 몸을 수색하도록 내버려둔 후 중앙 자리로 가서 앉았다.하현은 어깨에 걸친 양복 외투를 벗어던지고 천천히 도박장으로 들어가 몸수색을 마쳤다.두 사람의 동작은 물 흐르듯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각 방면에서 온 관전객들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어쨌든 이번 한판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 걸려 있는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도성 전체에는 여섯 개의 카지노가 있었다.카지노 하나의 매장만 해도 연간 매출이 수조원에 달한다.그 말인즉슨 누구나 카지노를 손에 넣기만 하면 바로 최고 갑부 대열에 오르는 것이었다.만약 이걸윤이 이긴다면 금의환향한 첫 번째 임무를 깨끗하게 승리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하현이 이기면 그는 공식적으로 항성과 도성의 최고 실세가 되는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이판은 승패뿐만 아니라 양측이 앞으로 항성과 도성에서의 지위를 건 싸움이었다.하수진, 동리아, 최영하, 강옥연 등도 모두 그 자리에 와 있었다.하수진은 항도 하 씨 문주의 딸이자 항도 재단 집행총재였고 동리아는 항성 최
기껏해야 스물몇 살쯤 되어 보이는 딜러가 단정한 옷차림으로 나타났다.딱 봐도 경험이 별로 없어 보였다.자료를 보니 그녀는 방금 카지노 관광객 중에서 무작위로 선발되어 딜러가 되었고 단 15분 정도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었다.말하자면 그녀는 얕은 카지노 상식과 주의사항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가 이번 한번 딜러를 맡음으로써 받는 금액이 1억에 가깝다는 것이다.그래서 이 행운의 관광객은 벌벌 떨면서도 규칙대로 하현과 이걸윤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카드 열 장을 꺼내서 두 사람에게 고르라고 했다.하현과 이걸윤은 군말 없이 카드를 뽑았다.딜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카드를 오픈하고 안에 있는 크고 작은 킹을 꺼내어 섞은 다음 두 사람 앞에 놓았다.그녀의 동작은 많이 어설펐다.가끔 한두 장의 카드가 노출이 되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동작을 제지하거나 방해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녀의 이런 어설픈 동작이 오히려 그녀가 어떤 속임수도 쓰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하지만 하구천은 매서운 눈빛으로 딜러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그녀가 왠지 낯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그러나 어디서 본 것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카드를 섞은 후 딜러는 나지막이 말했다.“두 분 중 누가 먼저 시작하시겠습니까?”하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이번엔 주인 격이니까 내가 먼저 해야지.”“만약 이 소주가 괜찮다면 바로 패를 돌리지.”“어차피 난 이 소주의 한 손이 베어지길 기다리면 되니까!”이걸윤이 껄껄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 한동안 내 앞에서 누구도 감히 이렇게 죽자고 덤비는 놈이 없었는데 말이야.”“뭐,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제대로 짓밟아 주겠어!”“당신 같은 사람은 매달 몇 명도 더 밟아 죽일 수 있어!”“이번 달은 당신 하나 밟아 죽이면 그걸로 완벽할 것 같군!”“그래? 잠시 후에도 당신이 지금처럼 그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이
딜러는 하현에게 카드를 한 장 더 추가했다.또 A였다.합계는 11.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걸윤의 숨결마저 얼어붙었다.한 장을 더 추가해도 하현의 점수가 21점이 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가 다섯 장의 카드를 가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 장 더!”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하현의 입에 쏠렸다.딜러가 다시 한 장을 펼쳐 보였다.이번에는 10이었다.패는 순식간에 21이 되었고 히든카드가 무엇이든 간에 하현의 패는 21점을 초과해 버린 것이다.하현이 카드를 펼치자 사람들은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하현의 히든카드는 9였다.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의심했다.하현이 가진 카드는 9, 10, 두 장의 A였는데 지금 펼친 10까지 더하면 이미 21을 한참 초과했다.이게 무슨 뜻인가? 죽으려고 작정한 건가?“하하하, 하현, 너무 찌질한 거 아니야!”“20으로도 날 못 이길까 봐? 그래서 계속 카드를 달라고 한 거야?”“당신이 무슨 도박의 신인 줄 알아?”“자폭해도 싸!”이걸윤은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 같은 수준이 날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이걸윤의 말속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그는 원래 하현 같은 인물이 자신이 거는 체면이나 심리적 암시에 꽤나 면역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하현이 좋은 패를 들고도 자폭하는 것을 보고 이걸윤은 자신의 심리적 암시가 하현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이때부터 그는 더 크게 판을 키워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맞은편에 앉은 하현은 안색이 꽤나 좋지 않아 보였다.그는 손에 든 카드를 움켜쥐고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온몸을 약간 떨고 있었다.딜러는 순간 이걸윤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소주, 패를 오픈해 주시죠.”“그럴 필요없어. 이번 판은 비겼어. 하 씨, 운이 좋았어!”이걸윤은 직접 패를 펼쳐 보였다.그의 히든카드는 K였
이걸윤의 말이 장내에 울리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오늘 밤 이 이벤트는 ‘도박왕 쟁탈전’이 아니라 ‘항성과 도성의 쟁탈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하현이 이긴다면 상황은 단순했다.이걸윤을 쫓아냄으로써 항성 4대 가문은 하현에게 머리를 숙이게 된다.그러나 이걸윤이 이긴다면 그동안 하현이 열심히 이룩한 모든 자산을 다 얻게 된다.이런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이걸윤은 항도 하 씨 가문을 박살 내버리고 새로운 문벌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걸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소주,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뭘 물어보고 그래? 몇 푼 안 되는 거 가지고. 날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니야?”“놀려면 큰판에서 놀아야지!”“내가 지면 항성에서의 모든 자원뿐만 아니라 대구와 남원의 것까지 모두 다 줄게!”“이것만으로도 당신은 어마어마한 새로운 문벌을 만들 수 있을 거야.”“하지만 당신이 진다면 말이야. 다른 거 다 필요없어. 오직 당신 목숨 하나면 돼.”“어때? 이걸윤, 한번 놀아 볼 거야?”엄청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게 내뱉는 하현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목숨을 건 게임이 된 것이다!이걸윤도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참 재미있군. 당신이 내 목숨을 원한다면 그래, 기꺼이 상대해 주지!”“내가 지면, 내가 죽는 거고!”“당신이 지면 당신이 죽는 거야!”“이봐! 서약서에 추가해!”하현은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한 번에 휘갈겨 사인을 한 뒤 차갑게 입을 열었다.“패 돌려!”딜러는 양측이 목숨을 건 판을 벌이자 잔뜩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그녀는 벌벌 떨며 두 사람에게 카드를 주었다.아까보다 확실히 동작이 느렸다.공증 재판단들도, 다른 곳에서 생중계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숨을 죽이며 팽팽한 긴장감 위에 칼날처럼 서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하현은 냉엄한 얼굴로 자신의 히든카드를 보았다.카드는 더 이상 추가할 뜻이 없는 듯했다.이 모습을 본 이걸윤의 마음속엔 벌써 승리의 깃발이 나부꼈다.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하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이걸윤의 행동을 보고 하현의 눈에 순간 멍한 빛이 떠올랐다.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은 예의 담담한 표정을 되찾았다.하현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이걸윤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하현, 여의치 않으면 어서 카드를 추가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손도 써보지 못하고 질 거야!”이걸윤은 자신의 최면과 심리적 암시에 영향을 받은 하현이 이번 차례를 못 넘길 것이라고 믿었다.하현의 눈에서 고뇌하는 기색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그는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장 더!”딜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하현에게 카드를 한 장 주었다.2였다.카드를 보았을 때 이걸윤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그는 하현이 이렇게 작은 숫자의 카드를 받을 줄은 몰랐다.심호흡을 하고 난 뒤 이걸윤은 표정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말했다.“1에 2를 더해도 3밖에 안 돼. 하 씨, 당신이 10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겨우 13이야. 당신 계속 카드를 추가해야 할 것 같은데.”하현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고 그는 여전히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한 장 더.”딜러는 하현에게 또 한 장을 주었고 이번에는 10이었다.A, 2, 10...하현의 패는 모두 13이었다.간단히 말해서 그는 이미 자폭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이 광경을 본 이걸윤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그리고 그는 애써 담담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좋아, 지금 벌써 13이니 꽤 괜찮군.”“하지만 당신이 나보다는 작은 것 같은데. 어쨌든 난 20이니까. 거의 다 왔다고 볼 수 있지. 내가 제안 하나 하지. 카드 한 장 더 어때?”분명 이 카드 한 장으로 하현은 자폭할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마찬가지 경우의 수로 아주 작은 확률이지만
다만 세 번째 최면도 여전히 효과가 있었다.하현은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이 모습을 본 이걸윤은 심리적 암시에 의존하는 자신의 최면이 더 이상 큰 효과가 없고 반드시 전체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하현을 압도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계속 밀어붙여야 했다.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하현, 판돈을 좀 더 올릴까?”이때 이걸윤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떠올랐다.“과감하게 패를 더 추가해서 날 이기면 나와 하수진과의 약혼은 파기되는 거야. 어때?”그는 유혹의 손길을 펼쳤다.하수진은 순간 벌떡 일어났다.“하현, 저 사람 말 무시해!”누가 봐도 하현의 패는 이미 너무 커 보였다.동리아도 하수진을 거들었다.“이번 판만 넘기면 우린 크게 이길 수 있어. 약혼은 무슨!”최영하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하현, 충동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이 말을 듣고 이걸윤은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 외에도 난 당신의 개가 될 수도 있어. 당신이 누굴 물라고 하면 당장 가서 그 사람을 물어 버릴 수 있어!”“어때? 괜찮잖아? 안 그래?”“좋잖아! 내가 약속할게! 정말이야!”하현이 기다린 것은 바로 이 말이었다.이때 그는 딜러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한 장 더!”이 말이 나오자 장내는 술렁거렸다.모두가 하현의 말에 경악했다.이것은 완전히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탄식을 내뱉었다.하현이 자폭하며 죽음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딜러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더니 길쭉한 집게손가락으로 하현에게 카드 한 장을 주었다.7이었다.A, 2, 10, 7...딱 20이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에게도 놀랐지만 운명처럼 그의 손에 날아온 큰 행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연이어 세 장의 카드를 추가했는데 패가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천을 힐끔 쳐다보았다.갑자기 튀어나온 훼방꾼에게 싸늘한 시선이 떨어졌다.계속 도발하려던 하구천은 하현의 싸늘한 눈빛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구천은 무의식적으로 카지노 테이블에 있는 이걸윤에게 눈길을 주었다.그러나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이걸윤의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할 수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이걸윤은 자신을 바라보는 무덤덤한 하현의 표정을 보고 오른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튕겼다.예전에는 무소불위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했던 최면이 어찌 된 일인지 아무 소용이 없었다.이걸윤의 입가에는 한 줄기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이 소주, 이제 손가락 아무리 튕겨 봐야 아무 소용없어.”“최면, 심리적 암시. 그 따위 나한테 아무 소용없다구.”이걸윤의 안색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하현은 진작에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던 것 같았다.“하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내가 속임수를 썼다고 주장할 거면 증거를 갖다 대. 증거를.”“그렇지 않으면 넌 추잡하게 꼬투리나 잡아 날 비방하는 놈이 되는 거야!”“그리고 카드를 더 추가하지 않을 거면 어서 카드를 오픈해!”“시간이 거의 다 되었어. 이제 당신의 모든 자산은 내 것이 되는 거야!”“이제부터 난 다시 대하에서 최고의 문벌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거라고!”비록 하현의 행동들이 이걸윤을 놀라게 하긴 했지만 하현의 패가 20인 것을 보고 이걸윤은 또 비아냥거리며 도발했다.하현에게 최면이 걸리지 않은들 어떠랴?이미 20이었다!절대로 형세를 뒤집을 수 없다!그는 하현의 히든카드가 A일 정도로 그의 운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현, 20이면 당신의 패도 나쁘지 않군. 딱 나랑 똑같아.”“하지만 당신의 히든카드가 A가 아니라면 당신은 오늘 날 이길 수 없어!”“그리고 이 상황에서 당신의 히든카드가 A일 확률은 아주아주 작아!”이걸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