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난영의 명령에 경호원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너 나 할 것 없이 손에 든 총기를 늘어뜨렸다.그들은 한편으로는 당난영의 안전을 지켜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몸이라 순간 갈등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총구를 내려놓아야 했다.“하현이라고 했나? 우리 운빈이 너무 충동적으로 대한 것에 사과하지.”“하지만 오로지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넘쳐서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길 바라.”당난영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하운빈을 쳐다보며 말했다.“운빈아, 어서 하현에게 사과해.”하운빈은 언짢은 얼굴로 대답했다.“부인, 항도 하 씨 가문에서 한낱 외부인에게 이렇게 공손하게 대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당난영은 안색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야.”“사과해!”하운빈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다가 힘겹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하현, 죄송합니다.”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을 뿐입니다. 당신을 탓할 이유는 없지요.”“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니까요.”“저는 좀체 경거망동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 정도였지만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신은 아마 죽었을 겁니다.”하운빈은 이런 상황이 마뜩잖았지만 하현이 자신을 쉽게 제압하던 순간을 떠올리자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얼핏 보면 하현은 나이도 많지 않은 것이 마치 사기꾼 같기도 했다.하지만 하운빈이 곰곰이 되짚어보니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임세인을 구했고 당난영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히 입을 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그의 능력을 증명하기 충분해 보였다.적어도 하구천을 제외하고는 항성과 도성에서 당난영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젊은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나에게도 아랫사람을 잘 못 가르친 잘못이 있네.”당난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겠네.”“부인, 별말씀을 다하십니다.”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당난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잠시 후 얇은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은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군.”“당신이 다 알아챘으니 나도 더 이상 숨기지 않겠어.”“십 년 전 아들을 낳았지. 그렇지만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요절하고 말았어.”“내 생애 가장 큰 고통이었지!”“수년간 항도 하 씨 가문에서는 아무도 그 일을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다네.”“어디서 들었든, 짐작에 불과하든 한 가지만 묻겠네. 내 병을 어떻게 치료할 생각인가?”“내 아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겠는가?”어느새 당난영의 얼굴에는 자조하는 빛이 역력했다.그녀는 죽은 아들을 되살려야만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써도 모두 허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말씀드렸다시피 부인께서 내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분명히 부인의 병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당난영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만약 내가 허락한다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하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부인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반드시 해결할 것입니다.”“항도 하 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부인을 속이고 이런 일을 감행하고자 한다면 부인은 얼마든지 제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어쨌든 현재까지 부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한번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당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내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하구천과, 아니 심지어 항도 하 씨 가문과 맞서겠다는 의미야!”“그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해?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겁니다.”“그리고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당난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약속하지. 하지만 자네의 치료
”그만, 아무도 건드리지 마!”바로 그때 당난영은 비틀거리며 벌떡 일어났지만 안색은 이미 평소와 다름없이 회복되어 있었다.“하현은 내 병을 고치고 있는 거야.”“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해선 안 돼!”하운빈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저놈이 부인께 이리 무례한 짓을 하다니...”“무례를 범한 것이 아니야. 그는 정말 날 치료해 주었어.”당난영도 처음에는 하현이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살짝 미심쩍게 생각했었다.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검붉은 피를 내뿜고 있었고 지금은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한결 편안해졌다.하운빈 일행은 당난영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핏기 하나 없이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당난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그제야 인간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믿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방금 뺨 몇 대와 찻물을 부은 것 외에 한 일이 없는데 당난영의 표정이 이렇게 변하다니!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하운빈 일행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눈앞의 장면을 주시했다.항성 10대 명의도 북유럽 명의도 섬나라 황궁 명의도 부인의 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은 손바닥 몇 대와 찻물로 해결하다니!이 모든 것은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부인, 저는 방금 부인의 뺨을 때림으로써 부인 마음속에 묵은 오랜 분노를 끌어냈습니다.”“십 년 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그 한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지요.”“앞으로 한 달 동안 푹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밤마다 보이던 악몽도 사라질 것이고 아들을 잃었던 그날로 돌아갈 것입니다.”하현은 탁자 위의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다만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며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닙니다.”당난영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확실히 이전보다 훨씬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이제 그녀는 하현에 대한 의심과 의문을 거두
”일은 그때 당시에 일어났지만 알아내려면 오늘이라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일이지요.”“십 년이 흘렀지만 알아내고자 한다면 분명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사건에 대해 제가 증거를 찾아드릴까요?”“제가 제시한 증거를 부인과 문주께서 믿을 수 있겠습니까?”당난영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녀는 힘겹게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오늘은 내가 더 이상 당신을 대접할 여력이 없네. 미안해.”“대신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주겠네.”“만약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제시한 요구가 없더라도 하구천은 절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가 없을 거야!”하현은 일어나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 한 통을 한 후에 최영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하운빈 일행은 하현과 최영하가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하운빈 일행은 그제야 깨달았다.범상치 않은 젊은이가 뺨 몇 대, 몇 마디 말로 항도 하 씨 가문, 심지어 항성과 도성 두 도시에 칼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탁!”하현이 가든 별장을 떠나던 그 시각.빅토리아 항 오피스텔에서 하백진은 뭔가 언짢은 듯 탁자를 내리쳤다.누군가 핸드폰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며 그녀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하구천, 너희 사람들은 점점 더 쓸모없는 쓰레기들이 되어 가고 있어!”“임세인 같은 것한테 우리 얘기가 새어나가게 만들다니!”“그뿐만 아니라 항도 하 씨 가문까지 가는 것도 막지 못했어!”“임세인이 당난영의 심복이란 걸 몰랐어?”“임세인이 살아 있는 한 우리가 한 얘기는 모두 당난영에게 전해질 거야!”“그렇게 되면 네가 윗선으로 올라서는 데 분명 문제가 생길 거라구!”“하구천, 요즘 너무 편하게 사는 거 아니야?!”“아랫사람들 기강도 제대로 못 잡아!?”하민석, 곽영준, 허지강 세 사람은 맞은편에 서서 눈만 멀뚱멀뚱 마주칠 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하은수는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백진은 하구천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임세인은 사람이 가벼워서 아무도 그 여자 말은 믿지 않을 거야.”“하지만 그런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도 분명 문제야.”“기회를 봐서 섬나라 사람들한테 그 여자를 처리하도록 해.”하백진의 냉정한 말 몇 마디가 임세인의 운명을 이미 결론내어 버렸다.바로 그때 하민석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구석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받았다.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안색이 많이 일그러지는 것이 역력했다.하민석은 하구천에게 다급하게 달려와 말했다.“하구천, 큰일 났어!”“당난영이 친위대를 기용해 십 년 전 일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대!”“하현이 옆에서 부추겼다는군!”“임세인의 증언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커.”“촤랑!”하백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하구천도 사나운 얼굴로 씩씩거렸고 무릎을 꿇은 하은수에게 다가가 그대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멍청이 같은 놈!”“쓰잘데기 없는 놈!”“바로 쓰레기 같은 이놈들 때문이야! 그래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거라구!”“안 돼! 절대 당난영이 십 년 전 사건의 진상을 알아서는 안 돼!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내 자리도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죽을 거야!”하백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겨우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구천아, 흥분하지 마. 그때 일은 우리가 아주 깨끗하게 처리했어.”“아무리 당난영이 대단하다고 해도 절대 단서 하나 찾지 못할 거야.”“이미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까.”말을 마치며 하백진은 곽영준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디서도 본 적 없는 살벌한 눈빛이 곽영준을 쏘아보고 있었다.만약 필요하다면 그녀는 이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하구천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훑어보며 극도로 안색
”내가 방법을 강구해서 하현을 설득해 볼게.”“그가 겸손의 겸자도 모르는 인간이라면 바로 손을 써서 죽여 버려야지!”하백진은 결심이 선 듯 결연한 얼굴로 하구천을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안 그래도 이전에 하현에게 당한 일로 벼르고 벼르던 참이었다.하지만 하현이 한발 물러선다면 하백진은 용전 항도에 대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도 상관없었다....삼계호텔.이슬 같기도 안개 같기도 한 가랑비가 대지를 소리없이 적시며 삼계호텔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토요타 프라도에서 내린 하현이 로비에 들어서려던 순간 갑자기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빨간색 페라리 한 대가 하현의 옆에 사납게 멈춰 섰다.차창이 열리자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이목구비와 매끈한 얼굴이 하현의 시야에 들어왔다.게다가 샤넬의 검은 치마와 명품 선글라스로 멋을 낸 그녀는 더없이 세련되고 아름다웠다.인형의 세상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은 여인을 보고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항도 하 씨 가문, 하백진.이 여인의 출현은 하현에게 뜻밖이면서도 한편으론 뜻밖이 아니기도 했다.하민석이 그런 큰 판을 벌였으니 분명 당난영이 십 년 전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하구천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볼 때 하백진이라는 여인이 하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다만 하현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이 여자가 사람을 몰고 칼부림을 시전한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페라리를 몰고 찾아왔다는 것이다.왜?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하현은 무심코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의아해하는 것을 눈치챈 하백진은 운전대를 잡고 태연하게 차창에 기대어 하현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하현, 얘기 좀 나눌까? 차에 타!”“이렇게 안개 같은 비가 내리는 날 도시 순환 고속도로를 달리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줄게.”담담하고 여유로운 표정이었다.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슬쩍슬쩍 내비치는 고혹적인
”미인이 이렇게 초대하시는데, 그럼 재미있게 놀아 볼까요?”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을 띠며 하백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이 여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그래서 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일단 차 문을 당겨서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하현이 앉는 것을 보고 하백진은 싱긋 웃으며 액셀을 밟았다.그러자 페라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굉음을 내며 들짐승처럼 도시 순환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차는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해안선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하현은 옆에 앉은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부인, 정말 나랑 비 오는 날 드라이브나 하자고 온 건 아니죠?”“나이 든 여자랑 드라이브하는 거 별로 관심 없거든요.”“이 시간에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을 테니 이제 그만 솔직히 말씀하시죠.”하백진은 하현의 말을 듣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당신이 조건을 내걸고 당난영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얘기 들었어.”하현은 느물대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역시 소식 한번 빠르시군요. 혹시 당난영이 하구천을 양자로 들이지 않는 게 내 조건이라는 것도 아시려나.”하현의 말을 듣고 하백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빛이 살짝 일그러졌다.하현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무심히 말했지만 이 말은 무시무시한 말이었다.결국 하현은 하구천이 당난영의 양자로 들어가는 걸 막겠다는 것이었다.이 조건대로 된다면 하구천은 당난영의 양자가 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하 씨 가문 문주 후계자가 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된다.하현은 간단한 듯 보이는 조건으로 하구천을 단번에 쳐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하현,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어.”“당신도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야. 그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강을 건너 온 맹룡이라고 해도 항도 하 씨 가문의 일에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는 걸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하백진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붉은 입술을 움직였
’쓰레기'라는 말에 하백진의 눈 밑이 살짝 실룩거렸다.“하현, 당신 말대로 우린 모두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야.”“그러니 당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전에 당신을 건드린 건 하구천이 잘못한 거야. 내가 돌아가서 하구천을 야단치고 꼭 사과하도록 할게.”“하지만 당신도 조금 성의를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이렇게 해야 양측이 오해를 풀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지 않겠어? 그게 당신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안 그래?”“어쨌든 당신이나 하구천이나 젊은 세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고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어. 만약 누구라도 죽는다면 이득을 보는 이는 따로 있을 거야.”하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성의를 보여라?”“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어제 용문 도관에서 있었던 일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구요?”“한밤중에 오매 도관의 사송란이 대열을 이끌고 날 습격했어요. 정말 몰랐던 일입니까?”“말로는 평화롭게 지내자면서 당신들은 한 발짝 한 발짝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수작 아닙니까?”“내가 당난영의 처소에 가게 된 것도 다 당신들이 판을 짜놓고 날 끌어들인 거잖아요?”하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핸드폰을 꺼내 낯선 번호로 온 메시지를 보여주었다.“끼익!”메시지의 내용을 본 순간 하백진은 허둥대며 브레이크를 밟았고 빗속을 달리던 페라리는 요동치며 스키드 마크를 그으며 멈춰 섰다.하백진은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이 메시지 누가 당신한테 보낸 거야?!”하백진은 화가 나서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아마도 하구천의 측근일 가능성이 컸다.그렇다면 항도 하 씨 가문 내에 또 다른 세력이 하구천을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순간 하백진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마침 하현을 찾아온 것이 뜻밖의 성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하현은 비아냥거리는 눈빛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메시지를 보낸 사람, 하구천 아닌가요?”“내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