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난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잠시 후 얇은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은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군.”“당신이 다 알아챘으니 나도 더 이상 숨기지 않겠어.”“십 년 전 아들을 낳았지. 그렇지만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요절하고 말았어.”“내 생애 가장 큰 고통이었지!”“수년간 항도 하 씨 가문에서는 아무도 그 일을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다네.”“어디서 들었든, 짐작에 불과하든 한 가지만 묻겠네. 내 병을 어떻게 치료할 생각인가?”“내 아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겠는가?”어느새 당난영의 얼굴에는 자조하는 빛이 역력했다.그녀는 죽은 아들을 되살려야만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써도 모두 허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말씀드렸다시피 부인께서 내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분명히 부인의 병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당난영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만약 내가 허락한다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하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부인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반드시 해결할 것입니다.”“항도 하 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부인을 속이고 이런 일을 감행하고자 한다면 부인은 얼마든지 제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어쨌든 현재까지 부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한번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당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내가 당신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하구천과, 아니 심지어 항도 하 씨 가문과 맞서겠다는 의미야!”“그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해?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겁니다.”“그리고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당난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약속하지. 하지만 자네의 치료
”그만, 아무도 건드리지 마!”바로 그때 당난영은 비틀거리며 벌떡 일어났지만 안색은 이미 평소와 다름없이 회복되어 있었다.“하현은 내 병을 고치고 있는 거야.”“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해선 안 돼!”하운빈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저놈이 부인께 이리 무례한 짓을 하다니...”“무례를 범한 것이 아니야. 그는 정말 날 치료해 주었어.”당난영도 처음에는 하현이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살짝 미심쩍게 생각했었다.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검붉은 피를 내뿜고 있었고 지금은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한결 편안해졌다.하운빈 일행은 당난영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핏기 하나 없이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당난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그제야 인간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믿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방금 뺨 몇 대와 찻물을 부은 것 외에 한 일이 없는데 당난영의 표정이 이렇게 변하다니!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하운빈 일행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눈앞의 장면을 주시했다.항성 10대 명의도 북유럽 명의도 섬나라 황궁 명의도 부인의 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은 손바닥 몇 대와 찻물로 해결하다니!이 모든 것은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부인, 저는 방금 부인의 뺨을 때림으로써 부인 마음속에 묵은 오랜 분노를 끌어냈습니다.”“십 년 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그 한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지요.”“앞으로 한 달 동안 푹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밤마다 보이던 악몽도 사라질 것이고 아들을 잃었던 그날로 돌아갈 것입니다.”하현은 탁자 위의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다만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며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닙니다.”당난영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확실히 이전보다 훨씬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이제 그녀는 하현에 대한 의심과 의문을 거두
”일은 그때 당시에 일어났지만 알아내려면 오늘이라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일이지요.”“십 년이 흘렀지만 알아내고자 한다면 분명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사건에 대해 제가 증거를 찾아드릴까요?”“제가 제시한 증거를 부인과 문주께서 믿을 수 있겠습니까?”당난영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녀는 힘겹게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오늘은 내가 더 이상 당신을 대접할 여력이 없네. 미안해.”“대신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주겠네.”“만약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제시한 요구가 없더라도 하구천은 절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가 없을 거야!”하현은 일어나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 한 통을 한 후에 최영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하운빈 일행은 하현과 최영하가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하운빈 일행은 그제야 깨달았다.범상치 않은 젊은이가 뺨 몇 대, 몇 마디 말로 항도 하 씨 가문, 심지어 항성과 도성 두 도시에 칼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탁!”하현이 가든 별장을 떠나던 그 시각.빅토리아 항 오피스텔에서 하백진은 뭔가 언짢은 듯 탁자를 내리쳤다.누군가 핸드폰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며 그녀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하구천, 너희 사람들은 점점 더 쓸모없는 쓰레기들이 되어 가고 있어!”“임세인 같은 것한테 우리 얘기가 새어나가게 만들다니!”“그뿐만 아니라 항도 하 씨 가문까지 가는 것도 막지 못했어!”“임세인이 당난영의 심복이란 걸 몰랐어?”“임세인이 살아 있는 한 우리가 한 얘기는 모두 당난영에게 전해질 거야!”“그렇게 되면 네가 윗선으로 올라서는 데 분명 문제가 생길 거라구!”“하구천, 요즘 너무 편하게 사는 거 아니야?!”“아랫사람들 기강도 제대로 못 잡아!?”하민석, 곽영준, 허지강 세 사람은 맞은편에 서서 눈만 멀뚱멀뚱 마주칠 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하은수는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백진은 하구천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임세인은 사람이 가벼워서 아무도 그 여자 말은 믿지 않을 거야.”“하지만 그런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도 분명 문제야.”“기회를 봐서 섬나라 사람들한테 그 여자를 처리하도록 해.”하백진의 냉정한 말 몇 마디가 임세인의 운명을 이미 결론내어 버렸다.바로 그때 하민석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구석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받았다.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안색이 많이 일그러지는 것이 역력했다.하민석은 하구천에게 다급하게 달려와 말했다.“하구천, 큰일 났어!”“당난영이 친위대를 기용해 십 년 전 일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대!”“하현이 옆에서 부추겼다는군!”“임세인의 증언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커.”“촤랑!”하백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하구천도 사나운 얼굴로 씩씩거렸고 무릎을 꿇은 하은수에게 다가가 그대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멍청이 같은 놈!”“쓰잘데기 없는 놈!”“바로 쓰레기 같은 이놈들 때문이야! 그래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거라구!”“안 돼! 절대 당난영이 십 년 전 사건의 진상을 알아서는 안 돼!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내 자리도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죽을 거야!”하백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겨우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구천아, 흥분하지 마. 그때 일은 우리가 아주 깨끗하게 처리했어.”“아무리 당난영이 대단하다고 해도 절대 단서 하나 찾지 못할 거야.”“이미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까.”말을 마치며 하백진은 곽영준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디서도 본 적 없는 살벌한 눈빛이 곽영준을 쏘아보고 있었다.만약 필요하다면 그녀는 이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하구천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훑어보며 극도로 안색
”내가 방법을 강구해서 하현을 설득해 볼게.”“그가 겸손의 겸자도 모르는 인간이라면 바로 손을 써서 죽여 버려야지!”하백진은 결심이 선 듯 결연한 얼굴로 하구천을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안 그래도 이전에 하현에게 당한 일로 벼르고 벼르던 참이었다.하지만 하현이 한발 물러선다면 하백진은 용전 항도에 대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도 상관없었다....삼계호텔.이슬 같기도 안개 같기도 한 가랑비가 대지를 소리없이 적시며 삼계호텔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토요타 프라도에서 내린 하현이 로비에 들어서려던 순간 갑자기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빨간색 페라리 한 대가 하현의 옆에 사납게 멈춰 섰다.차창이 열리자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이목구비와 매끈한 얼굴이 하현의 시야에 들어왔다.게다가 샤넬의 검은 치마와 명품 선글라스로 멋을 낸 그녀는 더없이 세련되고 아름다웠다.인형의 세상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은 여인을 보고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항도 하 씨 가문, 하백진.이 여인의 출현은 하현에게 뜻밖이면서도 한편으론 뜻밖이 아니기도 했다.하민석이 그런 큰 판을 벌였으니 분명 당난영이 십 년 전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하구천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볼 때 하백진이라는 여인이 하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다만 하현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이 여자가 사람을 몰고 칼부림을 시전한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페라리를 몰고 찾아왔다는 것이다.왜?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하현은 무심코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의아해하는 것을 눈치챈 하백진은 운전대를 잡고 태연하게 차창에 기대어 하현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하현, 얘기 좀 나눌까? 차에 타!”“이렇게 안개 같은 비가 내리는 날 도시 순환 고속도로를 달리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줄게.”담담하고 여유로운 표정이었다.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슬쩍슬쩍 내비치는 고혹적인
”미인이 이렇게 초대하시는데, 그럼 재미있게 놀아 볼까요?”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을 띠며 하백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이 여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그래서 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일단 차 문을 당겨서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하현이 앉는 것을 보고 하백진은 싱긋 웃으며 액셀을 밟았다.그러자 페라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굉음을 내며 들짐승처럼 도시 순환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차는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다가 해안선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하현은 옆에 앉은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부인, 정말 나랑 비 오는 날 드라이브나 하자고 온 건 아니죠?”“나이 든 여자랑 드라이브하는 거 별로 관심 없거든요.”“이 시간에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을 테니 이제 그만 솔직히 말씀하시죠.”하백진은 하현의 말을 듣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당신이 조건을 내걸고 당난영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얘기 들었어.”하현은 느물대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역시 소식 한번 빠르시군요. 혹시 당난영이 하구천을 양자로 들이지 않는 게 내 조건이라는 것도 아시려나.”하현의 말을 듣고 하백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빛이 살짝 일그러졌다.하현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무심히 말했지만 이 말은 무시무시한 말이었다.결국 하현은 하구천이 당난영의 양자로 들어가는 걸 막겠다는 것이었다.이 조건대로 된다면 하구천은 당난영의 양자가 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하 씨 가문 문주 후계자가 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된다.하현은 간단한 듯 보이는 조건으로 하구천을 단번에 쳐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하현,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어.”“당신도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야. 그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강을 건너 온 맹룡이라고 해도 항도 하 씨 가문의 일에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는 걸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하백진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붉은 입술을 움직였
’쓰레기'라는 말에 하백진의 눈 밑이 살짝 실룩거렸다.“하현, 당신 말대로 우린 모두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야.”“그러니 당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전에 당신을 건드린 건 하구천이 잘못한 거야. 내가 돌아가서 하구천을 야단치고 꼭 사과하도록 할게.”“하지만 당신도 조금 성의를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이렇게 해야 양측이 오해를 풀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지 않겠어? 그게 당신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안 그래?”“어쨌든 당신이나 하구천이나 젊은 세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고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어. 만약 누구라도 죽는다면 이득을 보는 이는 따로 있을 거야.”하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성의를 보여라?”“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어제 용문 도관에서 있었던 일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구요?”“한밤중에 오매 도관의 사송란이 대열을 이끌고 날 습격했어요. 정말 몰랐던 일입니까?”“말로는 평화롭게 지내자면서 당신들은 한 발짝 한 발짝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수작 아닙니까?”“내가 당난영의 처소에 가게 된 것도 다 당신들이 판을 짜놓고 날 끌어들인 거잖아요?”하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핸드폰을 꺼내 낯선 번호로 온 메시지를 보여주었다.“끼익!”메시지의 내용을 본 순간 하백진은 허둥대며 브레이크를 밟았고 빗속을 달리던 페라리는 요동치며 스키드 마크를 그으며 멈춰 섰다.하백진은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이 메시지 누가 당신한테 보낸 거야?!”하백진은 화가 나서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아마도 하구천의 측근일 가능성이 컸다.그렇다면 항도 하 씨 가문 내에 또 다른 세력이 하구천을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순간 하백진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마침 하현을 찾아온 것이 뜻밖의 성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하현은 비아냥거리는 눈빛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메시지를 보낸 사람, 하구천 아닌가요?”“내
”하구천 곁에 첩자가 잠복해 있는 게 분명해. 이 일은 우리가 확실히 조사해서 당신한테 설명할게.”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하백진의 얼굴에는 어느새 매섭고 사나운 기운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살뜰한 미소만 남았다.“하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당신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하지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당난영한테 양자를 들이지 말라는 그 조건 철회하면 안 될까?”“하구천은 당난영의 든든한 아들이 될 수 있어.”“당난영은 지금처럼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편안하게 살 수 있어.”하현은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부인, 당신은 도대체 자신의 매력에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나라는 인간이 여자를 본 적도 없어서 여자라면 침이나 흘리는 색마처럼 보여요?”“진한 향내를 풍기고 너른 바다를 보여주고 말 몇 마디 하면 날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원하는 게 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손도 안 대고 코 풀려는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셨군요.”하현의 말을 들은 하백진은 사뭇 애처롭고 가엾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내가 절대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할게.”“당신은 가서 당난영한테 말만 해 주면 돼.”“그리고 당신, 다시는 하구천과 맞서지 않겠다고 맹세해!”“그렇게 한다면 당신과 우리 사이의 모든 원한은 이걸로 청산되는 거야. 약속해!”“앞으로 항성과 도성에서 당신은 우리의 귀빈이 되는 거야. 당신이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돼. 아무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거야!”“또한 천억 줄게!”“그리고 별장도 한 채 줄게!”“용전 항도의 모든 비밀 커넥션 다 당신한테 넘겨줄게. 당신이 철저히 용전 항도를 장악할 수 있도록 말이야.”“돈, 지위, 권세, 다 줄 수 있어!”“하현, 제발 도와줘.”“심지어 당신이 다른 것을 원한다면 그것도 기꺼이 해 줄게!”하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