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당주를 보호해!”“얼른 관청에 신고하고!”건물 안으로 용전 정예들이 헐레벌떡 뛰어들어가자 사송란의 입가에 빈정거리는 미소가 번졌다.역시 하현은 별것 없는 놈이었어.그를 지키는 경호원들조차 겁에 질려 헐레벌떡 뛰쳐 들어갈 정도이니 안 봐도 뻔했다.얼마나 무능하길래 이 정도 경호원들을 데리고 그렇게 위세를 부렸던 말인가?사송란은 거침없이 손에 든 섬나라 장도를 휘두르며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어서 해치워!”현장에 있던 삼십여 명의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허리춤에 찬 섬나라 장도를 빼들고 전방을 향해 돌진했다.삼계호텔 꼭대기층에 우뚝 선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은 대지면적이 150평 정도에 불과했다.사송란 일행은 순식간에 스위트룸을 에워쌌다.순간 그녀는 하현이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몇 번 낭패를 본 경험을 거울삼아 그녀는 결코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모든 경호원들에게 총을 꺼내라고 지시한 뒤 자신도 총구를 꺼내 망설임 없이 발로 문을 걷어찼다.응접실 안에 십여 명의 용전 정예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사송란은 얼굴 가득 도도한 기색을 띠었다.“하현에게 얼른 나오라고 말해!”“안 나오면 다 죽여 버리겠어!”사송란은 오만한 표정으로 세상의 모든 패기를 가슴에 장착한 듯 호령했다.어제 용문 도관에서 혹독한 망신을 당했던 그녀가 그제야 오만방자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갑자기 움츠러들었다.침실 문이 열리고 하현이 찻잔을 움켜쥔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살벌한 눈빛으로 호령했던 사송란의 존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동시에 응접실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흐늘거리는 가락이 심금을 울리며 사람들의 마음에 퍼졌다.뭔가에 씐 듯 가락에 홀려 있던 사송란은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십면매복!?”하현은 사송란의 그
사송란의 경호원들이 울부짖으며 섬나라 장도를 든 채 매서운 기운을 뿜고 있었다.“촤랑!”최문성은 양손에 칼을 쥔 채 멈추지 않고 사정없이 휘둘렀다.사송란의 경호원들이 들고 있던 섬나라 장도가 힘없이 두 동강이 났고 순간 최문성의 칼날은 경호원들의 목구멍을 향했다.사송란의 경호원들은 모두 사나운 눈빛으로 뒤로 물러서며 퍼붓는 듯한 최문성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을 겨누었다.“휙휙휙!”최문성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들의 목을 쳤다.순간 총을 들고 있던 경호원들은 도망칠 겨를도 없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목을 가린 채 주저앉았다.최문성은 이미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은, 누구보다 강한 존재로 우뚝 서 있었다.이렇게 쉽게 수많은 고수를 처단하는 것은 결코 평범한 병왕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최문성은 정말로 전신의 문턱에 와 있었다.수십 명의 경호원들을 처단한 최문성은 더 이상 칼을 휘두르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사송란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장내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최문성...”사송란은 최문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감히!?”“어떻게 감히 내 사람들을 죽여?”“이 사람들이 누군지 알기나 해?”“정말 항성과 도성에서 쫓겨나고 싶어?”“하현 곁에서 연명하는 길을 택했나 본데 정말 최 씨 가문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거지?”“이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야!”하구천이 친히 사송란에게 보내준 그의 비밀 용병들이었다.입만 열면 사모님, 사모님 하며 그녀를 추켜세우던 충성스러운 자들이었다.사송란은 자신이 문주의 부인이 된 후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을 내릴지 즐거운 상상에 빠졌었다.그러나 최문성의 손에 이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줄은 몰랐다.최문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손짓을 했다.그러자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고 곧바로 시신들은 수습되었다.동시에 총을 든 용전 항도 정예들은 모든 퇴로를 막아 버렸다.순식간에 대세가 기운 것이다.사송란은 눈알을
사송란의 눈에는 아직도 하현이 여자의 치마폭에 둘러싸인 물렁한 남자로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사송란은 하현과 최영하의 관계를 흔들어 놓기만 하면 뒤집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사송란, 당신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 모르겠어? 그런 말로 날 자극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모르겠냐고?”“내가 당신을 죽이려 했다면 방금 바로 죽였을 거야, 그런데 왜 지금까지 죽이지 않고 이렇게 기다렸을까?”“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사송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간단해. 당신 뒤에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말해! 누가 당신더러 날 죽이라고 명령했는지 말하라고! 내가 가서 되갚아줘야겠어!”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아마 내 짐작이 맞다면 아무 생각 없는 그 하구천 짓일 거야!”“하지만 당신이 굳이 오매 도관에 누명을 씌운다 해도 난 이견이 없어.”“어차피 오매 도관을 찾아가 따져 묻고 싶었으니까!”하현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세상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송란을 쳐다보았다.사송란은 얼굴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하구천을 모함할 생각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 지금 그 말, 그러니까 하구천은 사람을 보내 날 죽일 수는 있어도 난 하구천을 모함하면 안 된다는 얘기야?”“이렇게 말하고 보니 당신도 참 딱한 여자야.”“그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것도 모자라 아직도 마음속에서 그를 내려놓지 못하고 보호하려 애쓰다니!”“사송란, 하구천이 도대체 어떤 말로 당신을 구워삶았길래 이렇게 하구천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거야? 너무 궁금한데?”“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 항도 하 씨 안주인 자리라도 주겠다고 약속한 건가?”“만약 당신이 그의 헛소리를 믿었다면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고 멍청할 수가 있지?”하현의 말에 사송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눈앞의 하현은
최영하가 일행을 이끌고 삼계호텔 꼭대기 층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주변 정리가 끝난 상황이었다.타일 틈새에 묻은 핏물까지 말끔히 닦여져 있었다.여기저기 뿌려진 공기 청정제와 따뜻한 햇살에 지난밤의 피비린내는 모두 사라졌다.하현은 공중정원 한가운데 있는 긴 벤치에 앉아 있었다.벤치 앞에는 차와 다과가 예쁜 빛깔로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했지만 하현은 관심이 없는 듯 그저 찻잔을 기울이기만 했다.최영하가 나타나자 그는 최영하에게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항성과 도성에 온 이후 그는 많은 여자들을 알게 되었다.화소혜, 동리아, 강옥연 등등...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 정말 그의 최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최영하뿐이었다.게다가 최영하의 결단력 있는 일 처리가 하현은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이런 이유로 그는 용전 항도 지부에게 어젯밤 일을 맡긴 것이다.하현은 최영하가 잘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어제 일, 당신 어떻게 생각해?”하현은 최영하에게 손수 차를 따라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최영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하현, 사송란은 그렇게 죽게 해선 안 되는 거였어.”“내가 죽인 거 아니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그녀가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거야.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을 무슨 수로 막겠어?”“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증언할 사람은 많아.”최영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문제는 그 사람들이 다 우리 쪽 사람들이라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거지.”“현장의 CCTV는 다 해킹된 상태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사송란을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왜?”“하구천과 오매 도관이 관청에 신고하려고 준비 중이야?”“항성의 왕법으로 날 제재하려고?”최영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경찰서 사람들한테 맡긴다면 우린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하지
”용오행 일은 해결됐어. 사송란 쪽은...”최영하는 하현이 분명 이 일에 대해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걸 알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 이 일은 하구천과 관련이 있다는 걸 말이야.”“다만 이 시체를 가지고 하구천을 찾아가도 아무 의미 없을 거야.”“우리가 아는 한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르고 매정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니까.”“아마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비난하려 들 거야. 우리한테 누명을 씌우려 한다면 더 일이 꼬여.”“그러니까 당신 뜻은...”최영하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그녀는 하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하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USB를 사송란의 주검 위에 던진 뒤 냉엄하게 말했다.“모든 CCTV가 다 망가져 있었지만 우리 쪽 사람들은 사송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뒀지.”“시신은 오매 도관에 보내고 영상도 인터넷에 올릴 거야.”“아마 오매 도관에서 우리한테 뭐라고 하겠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최영하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다면 오매 도관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오매 도관의 일 처리 방식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현은 이번 일의 피해자이지만 오매 도관은 일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반드시 선동자를 찾아내려고 난리를 부릴 것이다.그러면 이 선동자는 오매 도관의 미움을 살 것이고 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도 어렵게 된다.최영하는 그제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정말 천 리 밖을 내다보는 계획을 짰던 거구나!”“정말 대단해! 인정!”하현은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더 따라주며 조용히 말했다.“가능한 한 빨리 일을 정리해야지.”“그건 그렇고 나 누구한테 밥 한 끼 사야 해.”최영하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밥을
하현은 시큰둥하게 말했다.“왜 우리가 접근해야 해? 당난영이 우리를 만나러 나오면 되잖아?”“당신이 날 대신해 말을 전해줄 사람을 좀 찾아줘. 강남 하 세자 하현이 당난영에게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고.”하현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최영하는 약간 어리둥절했다.그녀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하현, 우리가 왜 이 중요한 순간에 당난영을 만나야 하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곧 항도 하 씨 노부인의 생일이야. 그렇기 때문에 항도 하 씨 사람들은 당난영을 요주의 인물로 두고 바깥출입에 매우 삼엄하게 경계할 거야.”“왜냐하면 그들은 노부인의 생일에 당난영이 하구천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공표를 꼭 하게 만들어야 하거든.”“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당난영을 만난다는 건 항도 하 씨 가문에 정면으로 도발하는 행위야.”“권하고 싶지 않아.”하현은 단호하게 내뱉었다.“괜찮아.”“우리가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하구천이 가만히 우릴 내버려둘까? 어떻게든 우릴 죽이려고 하지 않겠어?”“그렇지만 노부인의 생일이 다가오니 하구천도 자신의 지위 확보를 위해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하지만 그가 차기 문주 자리에 앉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날 죽이려고 할 거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최영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그러니까 당신 말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강남 하 씨 가문도 항도 하 씨 분파라 할 수 있어.”“강남 하 세자인 내가 항성에 이렇게 오래 와 있는 동안 항도 하 씨 문주 부인에게 간단히 식사 대접을 하는 거야.”“너무 과하지 않잖아?”“과하지 않지.”최영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마도 하구천이 머리가 좀 아프겠는데.”최영하는 하구천이 괴로워할 것을 기도하는 사람처럼 피식 웃으며 내뱉었다.하현은 원래 항도 하 씨 가문 일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그러나 하구천이 계속해서 자신을 건드리자 그도
항성 태평산자락 허 씨 집안 별장.곽영준과 허지강은 서로 마주 앉았고 둘 다 안색은 좋지 않아 보였다.그들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차를 마시고 있는 하민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최신형 핸드폰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던 하민석은 메시지가 뜨자 곽영준과 허지강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두 사람 모두 항성 S4니까 긴말하지 않겠어. 방금 내가 말한 거래, 할 의향이 있어?”“만약 할 의향이 있다면 오늘부터 우린 한 식구야. 내가 자리만 잡으면 두 사람 공은 잊지 않을 거야.”“만약 할 의향이 없다면 하구천한테 말할 수밖에 없지. 당신들 두 사람이 하구천을 배신하려 한다고. 그거면 충분해.”방금 하민석에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하구천인 것이 분명했다.하민석의 말을 듣고 곽영준은 얼굴빛이 일그러지며 냉랭하게 말했다.“지금 하구천을 들먹이며 우릴 협박하는 거야?”“하민석,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증거도 없이 하구천이 당신 말을 믿을 것 같아?”“당신은 하구천이 키우는 개일 뿐이야!”“그렇지만 우리는 그와 호형호제하며 오랜 세월을 보냈어. 기르고 있던 개가 사실은 배은망덕한 늑대였다고 하구천에게 말한다면, 그 늑대가 항도 하 씨 가문의 문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면 하구천이 당신을 어떻게 할까? 가만 놔둘까?”하민석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가만 놔둘 거야.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난 그에게 충성을 다했고 심지어 항성 S4라는 이 타이틀도 하구천이 나한테 준 거야!”“하구천을 떠나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윗자리에 앉겠어?”“그러니 그는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거야.”“반면 여기 영상이 하나 있어. 이걸 다 보고도 지금처럼 침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말을 하는 동안 하민석은 핸드폰을 꺼내 홀의 TV에 연결해 영상을 재생했다.“대장부가 태어났으면 천지를 한 번 호령해 봐야지!”“어떻게 남의 밑에서 오래 머물 수 있겠어!”화면 속 곽영준은 격앙되어 있었고 누구보다 오만방자
그 시각 항성 순환 고속도로에서는 검은 포르쉐 한 대가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운전자는 금옥회관의 임세인이었다.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뭔가에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그녀는 당난영의 사람으로, 당난영에게 정보를 전하기 위해 수년간 금옥회관에 숨어 있었던 끄나풀이었다.그런데 방금 그녀가 무심코 룸을 지나갈 때 마침 하백진과 하구천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구천아, 곧 네가 자리에 오를 거야. 하 씨 가문 문주가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그 여자가 노부인 생신날 너를 양자로 삼는다면 넌 명실상부 하 씨 가문을 손에 넣게 되는 거야.”“나까지 합치면 항도 하 씨 가문에서 다섯 명이 널 지지하는 거야. 네가 항도 하 씨 문주 자리에 앉는 건 따 놓은 당상인 거지!”“물론 일이 성사되면 가장 먼저 그 여자를 처리해야겠지!”“그 여자는 너한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아. 만약 다른 젊은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그녀는 언제든지 방향을 틀어 버릴 수가 있어!”이를 들은 임세인은 깜짝 놀라 옆에 있던 꽃병을 깨뜨리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 버렸다.분명 누군가 그녀를 쫓아와 죽일 것이다.그녀는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얼른 자신의 포르쉐 차량에 뛰어올라 그녀의 주인인 당난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지금 이 순간 임세인의 머릿속엔 이 소식을 얼른 당난영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었다.그녀의 차 뒤에는 언제 따라붙었는지 도요타 미니밴이 몇 대 줄지어 있었다.이 미니밴들의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여서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백미러로 미니밴에 있는 잘생긴 얼굴을 확인한 임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항도 하 씨 가문 하은수!한때 강남 하 씨 4대 거물 중 한 명인 하은수였다.그는 항성에 온 뒤로는 더없이 조용하게 하구천의 심복이 되어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들었다.하은수를 보자 임세인은 방금 자신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신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