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이 동리아의 손목을 잡는 것을 보고 장묵빈은 눈이 뒤집혔다.마리아가 노국 황실에서 제명되다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게다가 전화 한 통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노국 사람들은 노국의 황실 운영 규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더욱 놀라웠다.대하인이 전화 한 통으로 노국 황실의 황녀를 제명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하현, 저놈은 어디서 저런 능력을 갖게 된 거지?전화 한 통으로 노국 황실을 발칵 뒤집어 놓다니!지금 무슨 장난하는 건가?“마리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분명 뭔가 잘못 전달된 걸 거야. 정확하지 않은 정보일 거라구!”장묵빈은 스스로에게 되뇌이듯 말을 이었다.“저런 놈이 어떻게 고귀한 노국 황실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어?”“내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그는 문명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이라구. 외국에 나간 적도 없다니까!”“그런 사람이 어떻게 노국 황실과 친분이 있을 수 있겠어? 그냥 아무나한테 전화를 걸어 놓고 우리한테 겁을 주려는 걸 거야!”“그리고 막말로 정말 당신이 황실에서 제명되었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귀족이야!”“여기서는 여전히 고귀한 노국 황실의 신분이라구!”장묵빈은 점점 더 일그러져 가는 마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위로의 말을 늘어놓느라 바빴다.“내가 당신한테 항성 상류층 사람들 죄다 소개해 줄게.”“마리아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허리를 굽히며 절을 할 거라구!”“장묵빈, 난 노국에서 온 귀한 손님이야. 그런데 손님 대접은커녕 이 촌구석 같은 곳에서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어. 당신, 나한테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마리아는 정신이 혼미해지며 두려움이 밀려왔었는데 장묵빈이 옆에서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보고 서서히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 모양이었다.“만약 당신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노국 땅에 발 들일 생각하지 마! 알았어?”“당신이 장 씨 가문 사람이라도 소용없
”그래. 자기야, 난 자기 능력을 믿어!”“자기가 그랬잖아. 장 씨 가문은 항성에서 왕이라고. 어서 직접 증명해 봐!”자신을 치켜세우는 장묵빈의 말이 몹시 흡족했던지 마리아 역시 장묵빈을 치켜세우기 바빴다.“참, 오늘 밤 경매 행사에서 우리 황실이 원하는 물건을 꼭 가져갈 거야!”“그것만 여왕에게 바칠 수 있다면 난 황실 신분을 바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서열도 조금 앞당길 수 있을 거야!”“마리아, 걱정하지 마. 자기가 원하는 물건, 당연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야!”마리아가 다시 황실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자신도 덩달아 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장묵빈의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장묵빈의 가슴속에 희망이 다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그는 자신의 가슴을 탁탁 치며 말했다.“난 주최 측과 친분이 두터우니까 그들은 반드시 내 체면을 살려줄 거야!”“우리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얻을 거라고!”장묵빈은 마리아가 원하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그건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그에게 중요한 것은 노국 황실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그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쟁취하고 말 것이야.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장묵빈은 어느새 입가에 점잖은 웃음을 되찾았고 노국에서 온 남녀들을 향해 연신 사과를 했다.“여러분, 정말 미안해요. 방금 그 장면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대하인들이 전체적으로 자질이 부족합니다. 우리 서양 문명 세계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죠!”“이런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에요!”“그러니 여러분도 마음에 담아 두지 말길 바라요. 어쨌든 한 번 개한테 물렸다 생각하자구요. 또 물릴 일이 있겠어요?”장묵빈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민족의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다 허세예요!”“내가 장담할 수 있어요. 방금 하현이나 동리아도 내가 외국에 정
”장묵빈이 갑자기 항성으로 온 이유는 아마도 오매 도관이 주최한 경매 때문이었을 거예요.”“이 경매는 부정기적으로 열리는데 매번 내놓는 물건들이 희귀한 보물들이에요!”“그래서 도처의 권력자들을 불러들이죠.”“중동과 서양의 일부 황실, 미국의 일부 재벌 상속자들이 신분을 숨기고 경매에 참여한다고 해요.”“재미있군.”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오매 도관이 주최한다니까 가고 싶은 마음이 훅 드는데. 나도 같이 가.”...저녁 7시 정각.하현과 동리아는 말끔한 턱시도와 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삼계호텔 꼭대기 층에 나타났다.하현은 오매 도관에 대해 사실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오매 도관은 강남 지역의 무술 성지였고 이전에 오매 도관에서 스승으로 있었던 사송란은 하구천의 편에 서서 화 씨 집안과 맞섰다.이런 무술의 성지가 귀족들 다툼에 함부로 개입하는 일을 하현은 더 두고 볼 수가 없었다.그런 오매 도관에서 경매까지 주최하다니 하현은 더욱 구미가 당겼던 것이다.삼계호텔의 맨 꼭대기 층에 올라서자 경매로 인해 더없이 삼엄한 경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많은 경비원들이 배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첨단 장비까지 동원되어 있었다.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초대장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초대장이 없으면 아예 출입이 불가했다.초대장을 든 사람은 최대 한 명까지 다른 사람을 대동할 수 있었다.그만큼 오늘 이 경매장은 들어가기 까다롭다는 걸 말해 주었다.동 씨 집안은 항성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히 초대장을 받았다.“동리아, 이곳에서 매달 이런 경매가 열리는 거야?”하현은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매달?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어깨를 살짝 드러낸 샤넬 드레스가 제 주인을 찾은 듯 동리아의 몸을 화려하게 휘감아 그녀의 몸매를 더욱더 빛내 주었다.동리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하현, 오매 도관이 무슨
하현은 동리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우리 대하의 국수 무도 교본을 경매에 내놓는다고?”“그건 오매 도관이 선을 넘은 것 같은데, 아니야?”동리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오매 도관의 이름이 고명한 이유도 그래서예요. 그들이 내놓는 무도 교본들은 모두 과거에 전설로만 존재했던 것들이고 당대에도 이미 전해 받은 사람이 없었대요.”“그래서 그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증명할 수 없어요. 오직 오매 도관만이 암묵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죠.”“오매 도관이 자기 물건을 가지고 경매에 내놓았는데 누가 사 가지고 가든 그들이 어떻게 관여할 수 있겠어요?”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리아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듯했지만 눈빛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대하 문화가 해외에 전파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하지만 대하 문명의 정수를 경매로 팔다니.그건 도저히 하현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동리아는 하현의 눈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이런 이유 때문에 오매 도관이 주최하는 경매에는 매년 수많은 국내외 거물급들이 몰려드는 거라고요.”“매년 경매에 올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삼천오백 명이래요!”“오늘 이미 한 사람이 몇 백억짜리를 거머쥐었다고 들었어요!”“우리 초대장은 우리 아버지한테 온 거예요.”“우리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 초대장을 구할 수 없었다고요.”하현은 어느새 얼굴빛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앞을 바라보았다.“보아하니 마리아도 이 경매장에 온 것 같군.”“뭘 얻으려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의 말에 동리아도 얼굴을 찡그리며 앞을 바라보았다.동리아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갔다.눈앞에 마리아의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장묵빈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보였다.딱 봐도 한 쌍의 커플이었다.많은 항성 상류층 사람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항성이 아무리 국제도시라고 해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
동 씨 가문은 별로 대접할 필요가 없는 손님이었던지 지정받은 좌석이 최악이었다.항성과 도성의 상류층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동 씨 가문은 현재 항독을 맡고 있고 어디 가도 빠지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항성과 도성에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화 씨 가문과 최 씨 가문에서도 사람들이 왔을 것이다.하지만 현장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하현은 그들이 왔는지, 왔으면 어디에 있는지 인사조차 나룰 수 없었다.하지만 장묵빈과 마리아는 버젓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의도적인 건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들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그들은 약간 가운데 쪽에 앉았기 때문에 눈에 쉽게 띄었다.하현은 두 남녀를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도대체 노국의 황실 사람이 주변의 이목을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던 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안내 책자를 뒤적였다.그러다 순간 그의 시선이 멈췄고 얼굴빛은 말할 수 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귀한 신사 숙녀 여러분, 오매 도관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약 30분 후 거만한 표정을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그녀의 나이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주름 하나 없는 얼굴로 보아 꽤나 관리를 한 것 같았다.유일한 단점은 차가운 얼굴에 미소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녀는 당당하게 걸어 나와 거리낌 없이 입을 열어 경매의 서막을 알렸다.첫 번째 경매품은 고려에서 온 청화자기로 색이 투명하고 질감이 일품이며 온전히 보관된 완벽한 물건이었다.이것은 현세의 청화자기 안에서는 보기 드문 진품이었다.곧 이 물건은 수백억의 몸값을 자랑하며 대하의 부유한 자산가의 품에 안겼다.두 번째 물건은 나무로 조각한 불탑이었다.득도한 고승의 소지품이라고 소개했는데 깨달음을 얻었을 때 안에 있는 불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칼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게다가 칼은 이미 파손이 된 상태라 소장 가치가 크지 않아 보였다.역시나 많은 권력자들은 잠시 힐끔 쳐다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저러나 칼 한 자루의 경매 시작가는 십억이었다.그때 하현은 중앙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눈빛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잃어버린 아버지라도 만난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뜨거운 눈길을 보냈다.순간 하현은 칼의 주인이 누구인지 마리아는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만약 이것이 대하 병부의 전설이자 살아있는 신화의 검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몰려들 것이다.이런 물건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 게 가장 좋다.하현은 동리아의 손등을 갑자기 두드리며 말했다.“저거 손에 넣어야 해.”동리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군말 없이 푯말을 들었다.“이십억.”조용하던 홀이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많은 권력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고작 부러진 칼 한 자루에 이십억? 정말 그런 가치가 있는 거야?이억도 아니고 이십억?!마리아와 장묵빈의 표정이 모두 굳어졌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 표정으로 동리아를 노려보았다.이 물건은 마리아 자신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그런데 자신이 푯말을 들기도 전에 동리아가 이십억이라는 고가를 불러?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겠다는 심보야? 아니면 고의로 이목을 좀 끌어보겠다는 심보야?마리아는 동리아를 향한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지금 당장 동리아를 씹어 죽여도 속이 후련할 것 같지 않았다.아쉽지만 가격을 처음 부른 사람은 동리아였고 그녀는 물건을 꼭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사람들은 동 씨 집안의 아가씨가 부러진 칼에 홀딱 반했다고 생각했다.아니면 부러진 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든가 둘 중 하나라고 여겼다.그래서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불
치열한 경매가 곧 시작되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부러진 칼에 진심으로 빠져들었다.여러 차례 경합을 벌인 끝에 결국 이를 갈며 마리아가 벌떡 일어섰다.“이백억!”“누군가가 계속 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 노국 황실에게 덤빈다는 걸로 간주하겠어요!”“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노국 황실은 이 물건을 손에 넣을 거예요!”노국 황실이라는 말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중동의 거물, 북유럽의 왕자들도 모두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외면했다.마리아가 이런 경합에 뛰어들었다면 이미 상황은 끝난 얘기였다.누가 그녀의 물건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노국 황실의 장공주가 얼마나 다루기 힘든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저 한 자루의 칼 하나 때문에 노국 황실과 원한을 맺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아무도 우리 물건을 빼앗아 가진 않겠죠?”마리아는 의기양양하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우리 노국 황실 앞에서 당신들이 감히 나와 경합을 벌이지 못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어요!”“총교관의 칼의 주인은 바로 우리라구요!”“이 칼을 가진다는 건 우리가 총교관에게 우리 황실로 들어오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죠!”“왜냐하면 우리 노국 황실 정도 되어야 총교관을 가질 능력이 있으니까요!”“당신들 대하는 이런 출중한 전설적인 남자를 가질 능력이 없어요!”마리아는 장중이 조용해진 것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마리아의 말에 내륙에서 온 거물들 중 누군가 화가 치밀어 올라 비꼬는 한마디 했다.“마리아, 당신이 이 칼을 원한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노국을 대표한다는 것도 알고 있죠. 경쟁하지 않을 테니 가지고 싶으면 가져요!”“하지만 당신과 경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우리 대하를 함부로 모욕해도 된다는 건 아니죠!”“하물며 총교관 같은 인물은 당신이 모독할 수 있는 사람이 더더욱 아니에요!”“충고 하나 하죠. 그런 생각일랑 아예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총교관은 대하의
경매장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하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칼 한 자루에, 그것도 부러진 칼 한 자루가 삼백억?아무리 총교관을 만나 한 가지 요구할 수 있다고 해도 삼백억은 너무 지나친 금액이었다.게다가 지금 누군가 가격을 부른다는 건 노국의 황실과 경합하겠다는 뜻이었다.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노국의 황실과 견줄 수가 있는가?아니면 누군가 가격을 올릴 목적으로 그냥 불러보는 건가?삼백억이라니!경매장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놈이 담력 하나는 무지 크구만!“하현! 이 개자식이!”장묵빈은 하현의 목소리를 듣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일부러 소란 피우려고 이러는 거지? 당신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졌을 리 없잖아!”“돈도 없으면서 악의적으로 가격만 올리려는 수작은 주최 측에도 해를 끼치는 짓이야!”“이것 보세요! 이놈을 당장 끌어내야 해요!”마리아도 성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 씨,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짓은 하지 마!”“일부러 이런 소란을 피워?”“악의적으로 가격만 올리려 한다고?”“해를 끼치다니?”하현은 무덤덤한 기색으로 매섭게 몰아쳤다.“지금 한 말은 당신들이 한 짓을 두고 하는 말이지, 안 그래?”“자신 있으면 가격을 계속 부르면 되잖아!”“돈 없으면 여기서 꺼지든가. 뭘 어쩌려는 거야?”“돈 없으면 포기하면 되는 거지 노국 황실 운운하며 사람들을 꼭 위협해야겠어? 응?”“다들 세 살배기 아이들도 아닌데 누가 당신들 말에 겁을 먹겠어?”“당신은 오늘 오후에 노국 황실에서 제명당한 사람이잖아. 황실 신분을 박탈당했다구. 그런데 아직도 여기서 황실 사람인 척 행세하고 있다니! 그게 당신 노국 황실에선 큰 중죄라는 것도 몰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여러분, 노국에 관련된 최근 뉴스를 확인해 보세요. 이 마리아라는 아가씨가 황실에서 제명되었다는 소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