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 칼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게다가 칼은 이미 파손이 된 상태라 소장 가치가 크지 않아 보였다.역시나 많은 권력자들은 잠시 힐끔 쳐다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저러나 칼 한 자루의 경매 시작가는 십억이었다.그때 하현은 중앙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눈빛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잃어버린 아버지라도 만난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뜨거운 눈길을 보냈다.순간 하현은 칼의 주인이 누구인지 마리아는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만약 이것이 대하 병부의 전설이자 살아있는 신화의 검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몰려들 것이다.이런 물건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 게 가장 좋다.하현은 동리아의 손등을 갑자기 두드리며 말했다.“저거 손에 넣어야 해.”동리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군말 없이 푯말을 들었다.“이십억.”조용하던 홀이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많은 권력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고작 부러진 칼 한 자루에 이십억? 정말 그런 가치가 있는 거야?이억도 아니고 이십억?!마리아와 장묵빈의 표정이 모두 굳어졌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 표정으로 동리아를 노려보았다.이 물건은 마리아 자신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그런데 자신이 푯말을 들기도 전에 동리아가 이십억이라는 고가를 불러?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겠다는 심보야? 아니면 고의로 이목을 좀 끌어보겠다는 심보야?마리아는 동리아를 향한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지금 당장 동리아를 씹어 죽여도 속이 후련할 것 같지 않았다.아쉽지만 가격을 처음 부른 사람은 동리아였고 그녀는 물건을 꼭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사람들은 동 씨 집안의 아가씨가 부러진 칼에 홀딱 반했다고 생각했다.아니면 부러진 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든가 둘 중 하나라고 여겼다.그래서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불
치열한 경매가 곧 시작되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부러진 칼에 진심으로 빠져들었다.여러 차례 경합을 벌인 끝에 결국 이를 갈며 마리아가 벌떡 일어섰다.“이백억!”“누군가가 계속 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 노국 황실에게 덤빈다는 걸로 간주하겠어요!”“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노국 황실은 이 물건을 손에 넣을 거예요!”노국 황실이라는 말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중동의 거물, 북유럽의 왕자들도 모두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외면했다.마리아가 이런 경합에 뛰어들었다면 이미 상황은 끝난 얘기였다.누가 그녀의 물건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노국 황실의 장공주가 얼마나 다루기 힘든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저 한 자루의 칼 하나 때문에 노국 황실과 원한을 맺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아무도 우리 물건을 빼앗아 가진 않겠죠?”마리아는 의기양양하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우리 노국 황실 앞에서 당신들이 감히 나와 경합을 벌이지 못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어요!”“총교관의 칼의 주인은 바로 우리라구요!”“이 칼을 가진다는 건 우리가 총교관에게 우리 황실로 들어오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죠!”“왜냐하면 우리 노국 황실 정도 되어야 총교관을 가질 능력이 있으니까요!”“당신들 대하는 이런 출중한 전설적인 남자를 가질 능력이 없어요!”마리아는 장중이 조용해진 것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마리아의 말에 내륙에서 온 거물들 중 누군가 화가 치밀어 올라 비꼬는 한마디 했다.“마리아, 당신이 이 칼을 원한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노국을 대표한다는 것도 알고 있죠. 경쟁하지 않을 테니 가지고 싶으면 가져요!”“하지만 당신과 경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우리 대하를 함부로 모욕해도 된다는 건 아니죠!”“하물며 총교관 같은 인물은 당신이 모독할 수 있는 사람이 더더욱 아니에요!”“충고 하나 하죠. 그런 생각일랑 아예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총교관은 대하의
경매장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하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칼 한 자루에, 그것도 부러진 칼 한 자루가 삼백억?아무리 총교관을 만나 한 가지 요구할 수 있다고 해도 삼백억은 너무 지나친 금액이었다.게다가 지금 누군가 가격을 부른다는 건 노국의 황실과 경합하겠다는 뜻이었다.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노국의 황실과 견줄 수가 있는가?아니면 누군가 가격을 올릴 목적으로 그냥 불러보는 건가?삼백억이라니!경매장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놈이 담력 하나는 무지 크구만!“하현! 이 개자식이!”장묵빈은 하현의 목소리를 듣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일부러 소란 피우려고 이러는 거지? 당신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졌을 리 없잖아!”“돈도 없으면서 악의적으로 가격만 올리려는 수작은 주최 측에도 해를 끼치는 짓이야!”“이것 보세요! 이놈을 당장 끌어내야 해요!”마리아도 성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 씨,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짓은 하지 마!”“일부러 이런 소란을 피워?”“악의적으로 가격만 올리려 한다고?”“해를 끼치다니?”하현은 무덤덤한 기색으로 매섭게 몰아쳤다.“지금 한 말은 당신들이 한 짓을 두고 하는 말이지, 안 그래?”“자신 있으면 가격을 계속 부르면 되잖아!”“돈 없으면 여기서 꺼지든가. 뭘 어쩌려는 거야?”“돈 없으면 포기하면 되는 거지 노국 황실 운운하며 사람들을 꼭 위협해야겠어? 응?”“다들 세 살배기 아이들도 아닌데 누가 당신들 말에 겁을 먹겠어?”“당신은 오늘 오후에 노국 황실에서 제명당한 사람이잖아. 황실 신분을 박탈당했다구. 그런데 아직도 여기서 황실 사람인 척 행세하고 있다니! 그게 당신 노국 황실에선 큰 중죄라는 것도 몰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여러분, 노국에 관련된 최근 뉴스를 확인해 보세요. 이 마리아라는 아가씨가 황실에서 제명되었다는 소
”거래 완료되었습니다!”하현이 가격을 올리려 하자 주최 측의 여자가 서두르며 경매를 종료시켰다.의심할 여지없이 뭔가 냄새가 났다.“사백억. 총교관의 부러진 칼은 마리아의 손에 넘어갔습니다.”“땅땅땅!”하현에게 더는 기회조차 없었다.이미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매를 시작한 격이었다.하현은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규칙에 어긋납니다!”“아직 입찰이 끝나지 않았어요!”“오백억 하겠습니다!”“우리 마리아가 이미 사백억이라고 말했고 이 칼의 주인은 마리아가 되었습니다!”주최 측 여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하현을 훑어보며 말했고 더는 아무 말도 없이 마리아에게 시선을 돌려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리아, 어서 무대 뒤로 가서 비용을 지불하고 총교관의 칼을 받아 가세요!”“오매 도관을 대표해서 축하드립니다!”마리아와 장묵빈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계속 가격을 물고 늘어져서 그들은 총교관의 칼을 손에 넣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오매 도관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어서 손쉽게 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옆에 있던 오매 도관의 사비선은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 수 있었던 것이다.경매장의 규칙은 원래 그녀가 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지금 당장 그녀가 규칙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말릴 수 없다.마리아에게 있어 그 정도 가격은 가방 하나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여전히 그녀는 감당할 수 있었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총교관의 칼을 손에 쥐었다.사비선은 마리아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비록 마리아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규칙에 맞지 않지만 사비선이 먼저 규칙을 어겼으니 이런 사소한 것쯤 아무 상관없었다.“불복합니다!”하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내가 여기 앉아 있는 한 모든 권한은 나한테 있어요!”“만약 당신네 오매 도관이 경매에 물건을 내놓지 않고 사적으로
”난 이 물건에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오백억, 오백억 제시하겠습니다!”“경매장의 규칙은 항상 가격이 비싼 사람이 물건을 얻는 것입니다.”“가격을 부르더라도 셋까지 외쳐야 확정이 되는 거구요!”“그러나 당신들은 다른 사람에게 가격 경쟁의 기회도 주지 않고 낮은 가격으로 경매를 마감하려 하고 있어요!”“당신들 무슨 속셈이 있는 겁니까?”“설마 당신들이 노국과 결탁하여 우리 대하 물건이 노국의 손에 들어가도록 의도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노국의 손에 이 물건이 들어간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이것은 총교관의 소지품입니다!”“당신들이 그의 물건을 경매에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에 대해 무례를 범한 거라구요, 아시겠어요?”“아직도 특정 구매자가 구매하도록 유도하다니! 총교관을 모독하는 겁니까?”“감히 건방지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진행하던 여자가 버럭 화를 냈다.“지금 우리 오매 도관을 모독하는 겁니까? 그 결과가 어떨 거라는 거 짐작이나 하고 이러는 거예요?”이때 사방에 있던 오매 도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하현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하현이 또 한마디 더 한다면 그녀들은 당장 나설 태세였다.“모독?”하현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한 짓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나서서 모욕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당신들은 나한테 제대로 설명하세요. 설명이 만족스럽다면 내가 순순히 물러나겠습니다!”“물론 그 설명은 나뿐만 아니라 여기 모든 사람들이 다 수긍할 만한 것이어야 해요!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하현은 대중의 호응을 끌어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경매장에 있는 사람들은 오매 도관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도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사람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그가 최근에 항성과 도성을 흔들어 놓은 그 사건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역시 보통이 아니야.사람들의 머릿속에 하현에 대한
하현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매에 참가하지 않아도 됩니다.”사비선이 단호하게 말했다.“여기에 왔으면 내 결정에 따라야 해요.”“이곳은 우리 오매 도관이 관할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처리하겠어요!”“자,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죠. 동리아, 하현을 데리고 여기서 어서 나가세요.”“이번엔 당신들 동 씨 집안의 체면을 봐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이 정도로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 당신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지는 않을 겁니다.”“하지만 다음에는 절대 봐 주지 않을 거예요.”사비선의 차갑고 서늘한 말이 장내를 울렸다.마치 그녀가 말한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의 뇌리에 콕콕 박히듯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설명, 다 끝난 겁니까?”“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고매하신 오매 도관의 규칙이라는 거냐구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매 도관은 참 포악하군요. 당신들은 정말 스스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사비선은 하현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아니면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오히려 경매를 진행했던 여자가 소리쳤다.“이 손님들 어서 배웅해 드려요!”십여 명의 오매 도관 제자들이 하현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매서운 눈초리를 내걸고 쫓아 나왔다.“하현, 우리 돌아가요.”하현이 나서려고 했을 때 동리아는 그의 오른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러지 마세요, 정말. 제발 참아요!”“오매 도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에요!”“여기서 오매 도관에게 미움을 산다면 살아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내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그냥 조용히 나가자구요!”“우리 동 씨 집안은 이제 겨우겨우 항성 최고 책임자가 되었어요.”초조해하는 동리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오늘은 당신 말 들을게.”
”하지만 총교관이 쓰던 칼일 뿐입니다!”“다른 의미는 없는 거죠!”“게다가 부러졌구요. 총교관이 유라시아 전장에서 쓰다 버린 쓰레기일 뿐이라구요!”“어떤 놈인지 전쟁터에서 나뒹구는 쓰레기를 주워오다니, 염치없기는!”“이런 보잘것없는 부러진 칼에 기대어 총교관에게 가서 요구를 한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생각이란 것을 발로 한 거예요?”“부러진 칼 한 자루 손에 쥐었다고 총교관에게 요구를 해?”“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이 물건은 기껏해야 집에 가져가서 잡귀를 물리치는 데 쓰일 정도라구요. 어쨌든 무수한 망혼들이 스쳐 지나갔으니까.”“하지만 당신 앙상한 팔다리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만약 이 부러진 칼에 실수로 다치는 일이 있다고 해도 절대 총교관을 찾아가서 트집을 잡고 돈을 갈취할 생각은 하지 마시죠!”“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마쳤다.자신이 가진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이 부러진 칼 하나를 마음에 두겠는가?방금 입찰을 한 이유는 단지 이 물건이 노국의 황실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오매 도관 경매장의 편파적인 진행에 화가 치밀어 올랐을 뿐 그는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그래서 이제는 부러진 칼에 대한 ‘가치'라는 것을 걸고넘어진 것이다.하현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방금 오매 도관은 당당히 발표했었다.이 부러진 칼을 가지고 가서 총교관에게 한 가지 요구를 할 수 있다고.하지만 지금 하현은 이 물건이 전혀 그런 효과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하현이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현의 말은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들렸고 사람들도 조금씩 수긍하는 눈치였다.하현의 말처럼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총교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다면 이 부러진 칼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하현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자신을 거론하는 것을 듣고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며 하현이 입을 열었다.“난 어떤 증거물도 제시할 필요가 없어.”“왜냐하면 내가 바로 총교관이니까!”“내 입으로 그 물건이 증거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면 될 수 없는 거야!”“알겠어?”하현의 말에 경매장은 갑자기 발칵 뒤집어졌다.모두가 하현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하 지회장, 하 세자, 그가 바로 전설의 총교관이라고?!만약 그렇다면 그의 말처럼 이 칼은 확실히 아무런 증거물이 되지 못한다.하현의 말을 듣고 무대 옆에 서 있던 사비선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온몸이 떨리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녀 같은 사람에게 총교관이란 세 글자는 그야말로 흠모의 대상이었다.그런데 연약한 여자 뒤에 서서 비호나 받는 이 남자가 그녀가 흠모하던 총교관이라고?말도 안 돼!경매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깨고 나온 사람은 장묵빈이었다.“무슨 말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당신 말을 믿을 줄 알아?”“난 노국 황실에서 총교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지.”“옆모습일 뿐이었지만 군복 차림에 위풍당당하고 늠름한 모습, 일거수일투족이 용맹함 그 자체였어.”“그런데 이놈을 봐! 경매장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옆에 있는 이 여자 덕분이었어!”“자칭 무슨 하 세자네, 하 지회장이네 하지만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모두 여자의 힘을 등에 업고 오른 자리에 불과해!”“하 세자, 아마 아내가 대구 정 씨 집안 아홉 번째 안주인이라지. 그 여세를 몰아 겨우 일어선 주제에!”“하 지회장, 왕주아의 치마폭 덕에 지회장 자리에 올랐다지? 그녀가 당신을 치켜세웠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 거잖아!”“솔직히 말하면 이놈은 그냥 여자를 잘 이용해 먹는 소인배일 뿐이야!”“웃기지도 않아,
”저 뚱보는 누구야? 여자 처음 봐? 왜 우릴 자꾸 쳐다보는 거야?”“변태가 틀림없어. 봐 봐. 아직도 내 다리만 쳐다보잖아!”“정말 재수없어! 오늘 우리가 스타킹도 안 신고 나온 건 어떻게 알고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아 짜증나!”“저런 남자는 부끄러움도 몰라. 아마 우리가 꽃다운 처녀란 걸 모르나?”“저렇게 빤히 쳐다보면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좋은 자리에 시집갈 수 있겠어?”“아 정말!”“변태 같은 놈!”“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단 말도 모르나?!”“주제도 모르고 넘보다니!”여자들은 서로 재잘거리며 떠들었다.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산들도 이때 고개를 살짝 들었다.나박하에게 시선을 던진 순간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어머? 나박하? 나박하잖아!”이산들은 한눈에 나박하를 알아보았다.꽤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순간 지난 일을 떠올리던 이산들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그녀는 아리따운 얼굴에 조롱하는 기색을 떠올렸다.“너네들 저 사람 몰라? 우리 금정에서 분리수거 사업을 하던 사람이잖아! 예전엔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완전 파산한 빈털터리!”“그가 고급차를 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운전해서 버는 돈은 한 달 고작 벌어 봐야 얼마 되지도 않아!”처음에 나박하를 쫓아다닐 때만 해도 이산들은 자신이 부잣집에 시집가는 줄 알았다.하지만 나박하가 별 볼 일 없어지자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른 임수범에게로 환승했다.나박하가 몰락한 뒤 그녀는 그를 한없이 원망했다.자신의 청춘을 엄한 놈에게 바쳤다고 생각하니 눈앞에서 그를 짓밟아 죽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어머? 정말이야? 이산들, 정말이냐고?”“저런 사람이 네 꽁무니를 따라다녀?”여자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들썩거렸다.“집에 거울도 없대? 자기가 어떤 몰골인지도 모르나 봐!”“얼굴도 별 볼 일 없고 가난한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래?”“혹시 뭘 잘못 먹은 거
”전 여자친구예요. 이산들.”“그녀는 수년 동안 날 따라다녔고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죠. 그녀에게는 세상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뜻밖에도 형제와도 다름없는 그와 함께하고 있었죠!”“내가 관청에서 자산을 동결당해 일을 멈추었을 때 그녀는 내 마지막 남은 현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꼬임에 내 도장으로 함부로 보증도 서서 결국 많은 빚을 떠안았어요...”“하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어요. 그때 형수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지난 일을 떠올리자 나박하는 다시 그 감정에 휩싸인 듯 마음 깊이 고마움을 표했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가 원망스러워요?”“원망스럽지만... 요 며칠 동안 깨달았어요.”나박하의 얼굴엔 당당한 기색이 떠올랐다.“한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죠.”“정말 능력이 있으면 직접 복수하면 되는 거예요.”“안타깝게도 지금 난 능력이 별로 없어요.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만 해도 벅차죠.”“복수할 자격도 능력도 없어요.”“그녀는 여러모로 나보다 훌륭해요.”“지금은 금정개발 구매 담당자로 연봉에 상여금까지 합하면 1년에 몇억은 벌 거예요.”“그리고 형제와도 같았던 임수범은 건축 자재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지위가 나랑 비교가 안 되죠. 그래서 날 함부로 짓밟을 수 있는 거고요!”“임수범은 금정개발 사장인 임단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어요.”“지금의 난 더더욱 그들을 건드릴 수 없어요!”나박하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그러나 그는 두 사람이 마치 버려진 개를 짓밟듯 자신을 대했다는 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입에 올릴 수 없었다.그저 속으로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금정개발이 그렇게 대단해요?”하현이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시총 이천억도 안 되는 이제 막 시작한 회사라고 들었는데.”“하고 많은 부동산 개발 회사 중에 보잘것없는 정도 아니에요?”
나박하는 한숨을 내쉬었고 하현은 한 남자의 삶의 고된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하현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누가 당신 일을 방해했죠?”“과거의 라이벌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할 수가 있어요?”나박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한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형제 같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내가 사랑했던 여자였어요...”“내가 초라해지자 두 사람은 완전히 얼굴을 돌리고 모른 척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날 짓밟았어요!”“그가 몇 년 동안 내 사업에서 많은 돈을 몰래 빼돌렸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내통하고 있었고요...”“난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그래서 그들은 내가 재기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거예요. 기를 쓰고 날 짓밟았죠.”“내가 재기하면 가장 먼저 그들을 죽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난 이제 사업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나한테 차가 있으니 이걸로 차량 운전이나 하면서 살래요.”“그러면 그 사람들도 나한테서 마음을 놓을 것이고 나도 자유로워지겠죠.”“분리수거 사업이 다 정리되면 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노후를 보낼 생각이에요.”그동안의 일들을 쭉 늘어놓은 나박하는 후련한 듯 소탈한 미소를 보였다.하지만 하현은 그의 강인함 뒤에 못내 내려놓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한때 승승장구하던 분리수거 업자가 정부 정책의 변화 때문에 한순간에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나박하 정도의 능력이라면 재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과거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짓밟힌 쓰라린 기억은 결국 그를 무너뜨리고 말았다.그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도록 아플까?그 슬픔이 얼마나 그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그는 닥쳐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받아들일 수밖에.하현은 짐짓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뻗어 위로
간민효를 구한 뒤 하현은 현장 처리 등을 그녀에게 맡겼다.간민효의 능력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 잘 처리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그러고 난 뒤 그는 나박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부탁했고 두 사람은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갔다.원래 하현은 길가에 있는 아무 노점에나 들어가려고 했는데 나박하가 굳이 하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두 사람은 금정호텔로 갔다.나박하는 현장에서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꾹 다물었다.그런 나박하의 성품이 하현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됨됨이로만 봤을 땐 충분히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다만 지금까지는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뿐이다.그들의 차는 곧 금정호텔 입구에 멈췄고 나박하는 무슨 일이 생각난 듯 은행 카드 한 장을 재빨리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 이 카드에는 내가 요 며칠까지 모은 백억이 있어요. 이것이 내가 지금 모을 수 있는 모든 자산입니다.”“이걸 형수님께 전해주세요. 우선 급한 데 먼저 쓰시라고요. 급하게 갚을 필요도 없어요.”“며칠 더 일찍 주려고 했는데 역부족이어서 며칠을 더 꼬박 모아서 겨우 이만큼 모았어요.”“형수님한테 내가 무능해서 이 정도밖에 은혜를 갚지 못하네요...”나박하는 은혜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 같았다.하현은 나박하를 처음 만난 날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빈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결국 하현은 나박하가 내민 카드를 되돌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돈, 다시 넣어 둬요. 은아의 자금난은 해결되었어요.”자신의 진심을 나박하가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현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엄도훈이 금정은행의 나천우 대표를 소개해 줬고 나 사장이 내 체면을 봐줘서 어떻게 대출이 성사되었어요.”“해결됐어요?”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장보아의 얼굴은 한기로 가득 뒤덮였다.그녀는 눈꼬리를 일그러뜨리며 하현을 흘겨보다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그때 갑자기 남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이놈아! 감히 나한테 총부리를 갖다 대? 너 죽고 싶어?!”“퍽!”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발로 남자를 차버렸다.남자는 땅바닥에 구르다가 완전히 기절하고 말았다.하현의 거침없는 행동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현은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결단력도 대단했다.장보아는 놀라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개자식, 당신 도대체 누구야?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하현은 대답 대신 손에 든 총구의 방향을 돌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탕!”총소리와 비명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고 하현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은 모두 얼굴을 감싼 채 땅바닥에 주저앉았다.하현이 순식간에 예닐곱 명의 부하들을 쓰러뜨리자 간지삼조차 얼굴색이 변했다.그들 모두는 하현이 이 정도로 대범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장보아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감히 내 사람을 건드리다니! 죽고 싶어?!”하현은 아무런 대답 없이 한 발짝 내디딘 다음 장보아가 미처 반응할 겨를도 주지 않고 그녀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밀었다.하현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어 놓고 냉랭하게 말했다.“당신은 그럴 자격 있어? 확실해?”간지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하현, 그 손 내려놔! 제발!”“이 사람은 금정 간 씨 가문 외척이야.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장보아 역시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며 소리쳤다.“맞아. 난 금정 간 씨 가문 사람이야. 간민효의 사촌 언니라고! 감히 날 건드려?!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덤비는 거야?!”“탕!”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총구를 살짝 비틀어 장보아의 어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총소리가 사방을 찢어 놓았고 장보아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자신이 그렇게 소리치는데도 하현이
”은인이라고?”장보아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간민효는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바로 이 사람이야! 하현!”“지난번 비행기에서도 날 구해 줬어.”“말하자면 이 사람은 날 두 번이나 구해 준 거야.”“두 번?”간민효의 말을 듣고 장보아의 시선이 하현에게 쏠렸다.장보아는 도무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의혹만 가득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사람이 널 두 번이나 구해 줬단 말이야?”“널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라고?”간민효는 짧게 대답했다.“맞아.”“그런데 날 이렇게 싫어하니 정말 마음이 아파!”장보아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이봐! 이 사람을 잡아!”“감히 널 싫어하다니! 이 자리에서 바로 밟아 버려!”간민효는 화들짝 놀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그게 무슨 뜻이야?”장보아는 하현을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젊은 나이에 병왕을 짓밟을 수 있다니 놀랍군! 그것도 무학의 성지에서 온 병왕을 말이야!”“분명히 한통속인 게 틀림없어!”“어서 죽여!”그녀의 부하들은 그녀의 명령을 듣고 모두 총을 꺼내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장보아가 한마디만 더 하면 가차 없이 쏠 생각인 것 같았다.하현은 장보아가 그러든 말든 핸드폰을 꺼내 장보아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날 죽이려고?”“지금 나한테 총을 겨눈 거야?”“정말로? 진심이야?!”간민효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보아는 난폭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맞아. 당신은 해골파 사람임에 틀림없어. 사람의 목숨을 이용해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거야!”“당신의 목적은 바로 간민효에게 접근하는 거지.”“경고하겠어! 당신이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 나를 속일 수는 없어!”하현은 그녀의 제복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증거 있어?”“증거고 뭐고 그따위 거 필요없어!”장보아의 얼굴엔 도도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사람을 구하
“어? 그래?”“알고 보니 당신은 꼭 보답을 받아야 되는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군, 안 그래?”간민효는 활짝 웃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하현의 턱을 살살 만졌다.“이렇게 하면 어때? 내가 이 한 몸 허락할게!”하현은 얼굴이 붉어지며 헛기침을 했다.“당신 정말! 그런 말만 자꾸 할 거야?”“정상이라면 평생 은혜를 갚겠다거나 뭐 그런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간민효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건 못생긴 사람들한테나 하는 말이고. 당신처럼 잘생긴 사람한테는 당연히 몸을 허락해야지!”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절대 안 돼!”“우리 강호 사람들이 의협심으로 사람을 구하는 건 당연한 거야!”하현의 말을 들은 간민효는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러니까 당신 말은 내가 못생겨서 싫다는 거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당신도 알잖아?! 난 거짓말은 못하는 사람인 거!”하현의 말을 들은 간민효는 뾰로통해져서 입술을 깨물었다.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금정에서 줄을 세우면 연경까지 닿고도 남을 것이다.그런데 이놈은 왜 자신한테 눈길도 주지 않는 거지?두 사람을 쳐다보는 간지삼의 시선에 의아함이 가득한 걸 보고 하현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민효, 우리 쓸데없는 얘긴 그만하자고.”“사람들을 불러 어서 현장이나 처리해.”해골파 사람들을 완전히 다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서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만약 이 사람들이 정말로 장생전과 관계가 있다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간민효는 핸드폰을 쳐다보며 말했다.“신호가 차단되었으니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자.”하현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붕!”바로 그때 산길에 몇 대의 도요타 엘파 차량이 몰려왔다.차량은 녹색 일색이어서 눈에 거슬리도록 도드라졌다.곧이어 문이 열렸고 검은 제복을 입은 여자가 마찬가지로 검은 제복을 입은 남녀 몇 명을 데리
“퍽퍽퍽!”얼굴에 해골을 새긴 남자의 몸이 날아가는 순간을 이용해 하현은 몸을 휘돌러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해골파 사내들은 온몸을 휘청거리며 하나같이 본능적으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매서운 하현의 손바닥은 그들의 뺨을 툭툭 스쳐 지나갔고 그들은 나부끼듯 쓰러졌다.손바닥이 아니라 전기 충격 같은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회색 옷을 입은 노인과 간민효의 놀란 시선 속에 하현의 몸놀림은 거침이 없었고 매서웠다.검은 옷의 사내들이 날아올라 뒤엉킨 가운데 마지막 남은 사내도 무너졌다.그는 ‘퍽’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형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그는 방아쇠를 당길 기회가 있었지만 감히 당길 용기가 없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그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마구 걷어차여 땅바닥에 널브러졌다.죽었는지 살았는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이봐. 우리 강호의 규칙에선 포로를 죽이지 않아.”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그의 뒤를 따르는 몇 명의 여자들도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현은 다시 칼을 들이대며 해골파 사내를 발로 걷어차 정신을 잃게 한 뒤에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들의 규칙은 당신들이나 지켜.”“내가 죽이든 말든 당신들과 무슨 상관있어?”하현은 말을 마치며 부두목의 단전에 발을 디뎌 그대로 밟아 버렸다.하현이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하현의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했기 때문이다.전쟁터를 오래 경험한 그들조차도 하현 앞에서는 자신들이 세 살배기 아이처럼 더없이 순진하게 느껴졌다.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잠시 후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젊은이, 내 이름은 간지삼이야.”“우리 아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다니! 쯧!”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발밑에 깔린 사람을 보았다.옷차림을 보아하니 모두 해골파에서는 거물급인 듯했다!그런데 결과는?그냥 슬쩍 밟았을 뿐인데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이게 정말 엄도훈이 그토록 열변을 토하며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말한 해골파인가?설마 엄도훈이 일부러 자신한테 겁을 주려고 한 건 아니겠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비분강개하며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들개처럼 달려들었다.그들은 손에 총, 칼, 활, 쇠방망이 등을 쥐고 있었고 사슴을 앞에 둔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렸다.그들의 노기가 하늘을 찌를 태세였다.이때 간민효는 차량 뒤에서 뛰쳐나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말을 하면서 동시에 그녀는 검은 사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총알은 나가지 않았고 ‘차칵’하는 소리만 황망하게 들렸다.“부두목!”그리고 이때 정신을 잃었던 부두목을 본 검은 옷의 사내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포효했다!“이 개자식! 감히 우리 부두목을 저렇게 만들다니!”“죽여 버리겠어!”얼굴에 해골을 새긴 한 남자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형제들아! 이 개자식을 죽이지 않고 부두목의 복수를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두목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어서 죽여!”사내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고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다고 느낀 것이다.순간 그는 발밑에 힘을 꽉 주었고 발밑의 자갈들이 회오리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촤촤촤촥!”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몸 위로 자갈이 날아들었고 그들은 순식간에 모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았다.활과 쇠방망이들은 갈 곳을 잃고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졌다.곧이어 하현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 앞에 다가와 손바닥을 휘갈겼다.해골파들은 안색이 급변하며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의 손놀림이 너무나 빨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