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물건에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이에요. 오백억, 오백억 제시하겠습니다!”“경매장의 규칙은 항상 가격이 비싼 사람이 물건을 얻는 것입니다.”“가격을 부르더라도 셋까지 외쳐야 확정이 되는 거구요!”“그러나 당신들은 다른 사람에게 가격 경쟁의 기회도 주지 않고 낮은 가격으로 경매를 마감하려 하고 있어요!”“당신들 무슨 속셈이 있는 겁니까?”“설마 당신들이 노국과 결탁하여 우리 대하 물건이 노국의 손에 들어가도록 의도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노국의 손에 이 물건이 들어간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이것은 총교관의 소지품입니다!”“당신들이 그의 물건을 경매에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에 대해 무례를 범한 거라구요, 아시겠어요?”“아직도 특정 구매자가 구매하도록 유도하다니! 총교관을 모독하는 겁니까?”“감히 건방지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진행하던 여자가 버럭 화를 냈다.“지금 우리 오매 도관을 모독하는 겁니까? 그 결과가 어떨 거라는 거 짐작이나 하고 이러는 거예요?”이때 사방에 있던 오매 도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하현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하현이 또 한마디 더 한다면 그녀들은 당장 나설 태세였다.“모독?”하현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한 짓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나서서 모욕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당신들은 나한테 제대로 설명하세요. 설명이 만족스럽다면 내가 순순히 물러나겠습니다!”“물론 그 설명은 나뿐만 아니라 여기 모든 사람들이 다 수긍할 만한 것이어야 해요!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하현은 대중의 호응을 끌어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경매장에 있는 사람들은 오매 도관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도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사람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그가 최근에 항성과 도성을 흔들어 놓은 그 사건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역시 보통이 아니야.사람들의 머릿속에 하현에 대한
하현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매에 참가하지 않아도 됩니다.”사비선이 단호하게 말했다.“여기에 왔으면 내 결정에 따라야 해요.”“이곳은 우리 오매 도관이 관할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처리하겠어요!”“자,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죠. 동리아, 하현을 데리고 여기서 어서 나가세요.”“이번엔 당신들 동 씨 집안의 체면을 봐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이 정도로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 당신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지는 않을 겁니다.”“하지만 다음에는 절대 봐 주지 않을 거예요.”사비선의 차갑고 서늘한 말이 장내를 울렸다.마치 그녀가 말한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의 뇌리에 콕콕 박히듯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설명, 다 끝난 겁니까?”“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고매하신 오매 도관의 규칙이라는 거냐구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매 도관은 참 포악하군요. 당신들은 정말 스스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사비선은 하현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아니면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오히려 경매를 진행했던 여자가 소리쳤다.“이 손님들 어서 배웅해 드려요!”십여 명의 오매 도관 제자들이 하현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매서운 눈초리를 내걸고 쫓아 나왔다.“하현, 우리 돌아가요.”하현이 나서려고 했을 때 동리아는 그의 오른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러지 마세요, 정말. 제발 참아요!”“오매 도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에요!”“여기서 오매 도관에게 미움을 산다면 살아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내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그냥 조용히 나가자구요!”“우리 동 씨 집안은 이제 겨우겨우 항성 최고 책임자가 되었어요.”초조해하는 동리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오늘은 당신 말 들을게.”
”하지만 총교관이 쓰던 칼일 뿐입니다!”“다른 의미는 없는 거죠!”“게다가 부러졌구요. 총교관이 유라시아 전장에서 쓰다 버린 쓰레기일 뿐이라구요!”“어떤 놈인지 전쟁터에서 나뒹구는 쓰레기를 주워오다니, 염치없기는!”“이런 보잘것없는 부러진 칼에 기대어 총교관에게 가서 요구를 한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생각이란 것을 발로 한 거예요?”“부러진 칼 한 자루 손에 쥐었다고 총교관에게 요구를 해?”“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이 물건은 기껏해야 집에 가져가서 잡귀를 물리치는 데 쓰일 정도라구요. 어쨌든 무수한 망혼들이 스쳐 지나갔으니까.”“하지만 당신 앙상한 팔다리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만약 이 부러진 칼에 실수로 다치는 일이 있다고 해도 절대 총교관을 찾아가서 트집을 잡고 돈을 갈취할 생각은 하지 마시죠!”“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마쳤다.자신이 가진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이 부러진 칼 하나를 마음에 두겠는가?방금 입찰을 한 이유는 단지 이 물건이 노국의 황실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오매 도관 경매장의 편파적인 진행에 화가 치밀어 올랐을 뿐 그는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그래서 이제는 부러진 칼에 대한 ‘가치'라는 것을 걸고넘어진 것이다.하현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방금 오매 도관은 당당히 발표했었다.이 부러진 칼을 가지고 가서 총교관에게 한 가지 요구를 할 수 있다고.하지만 지금 하현은 이 물건이 전혀 그런 효과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하현이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현의 말은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들렸고 사람들도 조금씩 수긍하는 눈치였다.하현의 말처럼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총교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다면 이 부러진 칼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하현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자신을 거론하는 것을 듣고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며 하현이 입을 열었다.“난 어떤 증거물도 제시할 필요가 없어.”“왜냐하면 내가 바로 총교관이니까!”“내 입으로 그 물건이 증거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면 될 수 없는 거야!”“알겠어?”하현의 말에 경매장은 갑자기 발칵 뒤집어졌다.모두가 하현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하 지회장, 하 세자, 그가 바로 전설의 총교관이라고?!만약 그렇다면 그의 말처럼 이 칼은 확실히 아무런 증거물이 되지 못한다.하현의 말을 듣고 무대 옆에 서 있던 사비선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온몸이 떨리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녀 같은 사람에게 총교관이란 세 글자는 그야말로 흠모의 대상이었다.그런데 연약한 여자 뒤에 서서 비호나 받는 이 남자가 그녀가 흠모하던 총교관이라고?말도 안 돼!경매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깨고 나온 사람은 장묵빈이었다.“무슨 말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당신 말을 믿을 줄 알아?”“난 노국 황실에서 총교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지.”“옆모습일 뿐이었지만 군복 차림에 위풍당당하고 늠름한 모습, 일거수일투족이 용맹함 그 자체였어.”“그런데 이놈을 봐! 경매장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옆에 있는 이 여자 덕분이었어!”“자칭 무슨 하 세자네, 하 지회장이네 하지만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모두 여자의 힘을 등에 업고 오른 자리에 불과해!”“하 세자, 아마 아내가 대구 정 씨 집안 아홉 번째 안주인이라지. 그 여세를 몰아 겨우 일어선 주제에!”“하 지회장, 왕주아의 치마폭 덕에 지회장 자리에 올랐다지? 그녀가 당신을 치켜세웠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 거잖아!”“솔직히 말하면 이놈은 그냥 여자를 잘 이용해 먹는 소인배일 뿐이야!”“웃기지도 않아,
30분 후 하현과 동리아는 호텔 스위트룸으로 돌아왔다.동리아는 방으로 들어선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동정감이 문 앞에 서 있었다.동리아의 옆에 하현이 서 있는 것을 본 동정감은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하현은 동리아를 한 번 힐끔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동정감은 껄껄껄 웃으며 발걸음을 옮겨 놓고는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자네 우리 리아한테 뭐라고 하지 말게. 오늘 밤 일은 얘가 나한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들을 수 있었어. 항성에서의 내 입지를 생각해 본다면 알 만하지 않는가?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누가 나한테 일러도 일렀을 거야.”“그러니 우리 리아가 자네한테 숨기고 나한테 일러바친 게 아니란 걸 알아주게.”하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동리아가 말을 했어도 날 위해 그랬을 건데, 다 이해합니다. 절대 동리아한테 뭐라고 할 수 없죠.”“그럼 됐어.”동정감은 스스로 찻잔에 차를 따르고는 천천히 찻잔에 입을 갖다 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뭔가 고심하는 눈치였다.“하현, 우리 집안사람들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빙빙 둘러말하는 성격도 못 되네. 정말로 자네가 그 총교관인가?”“우리 형제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하하, 나한테 말해 줄 수 있겠어?”“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야!”“만약 자네가 정말 총교관이라면 내가 항성에서 못할 일이 없지!”동정감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총교관인지 아닌지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요?”“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부러진 칼이 더 이상 증거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걸 인지했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 칼을 들고 총교관에게 뭔가를 요구할 수 없어요, 그럼 된 거잖아요?”동정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의 허벅지를 툭 치며 말했다.“역시 자네 대단하네! 이렇
”네? 하구천은 사송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나요? 왜 사비선 뒤에 붙었죠?”하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오매 도관은 온통 하구천의 후궁들만 모인 거예요?”“쉿!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동정감은 갑자기 긴장한 표정으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는 감청의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항도 하 씨 가문은 항성과 도성에선 왕이나 다름없어. 강남은 물론 강남 너머에 이르기까지 오매 도관의 영향력은 막강해!”“무도 성지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야!”“자네는 이번에 사비선의 미움을 샀을 뿐만 아니라 한마디로 오매 도관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거야!”“이 두 가지 상황으로 이미 자네는 오매 도관의 미움을 사기 충분해!”동정감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요 며칠 동안은 잠자코 호텔에 머무르는 게 좋겠어. 함부로 어디 가지 말고. 오매 도관에서 자네를 상대할 핑계를 찾지 못하도록 해야 해.”하현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화 씨 집안 일로 사송란과 다툼이 있은 뒤로 오매 도관과는 이미 원한이 맺힌 사이가 되었어요.”“오늘 일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났을 거예요.”“언제 다시 오매 도관과 부딪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에요.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오늘 밤 일은 단지 그 서막에 불과해요.”동정감은 하현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하현, 그래도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오매 도관은 보통 상대가 아니야. 그냥 일개 가문도 아니라구. 오매 도관의 미움을 산 사람은 절대로 감당하지 못해!”“적어도 자네가 이 항성과 도성에 있는 한 오매 도관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기란 어려운 일이야!”동정감은 입이 바싹바싹 마르도록 하현에게 당부했다.오매 도관이 항성과 도성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하면 하현의 힘은 너무나 보잘것없었다.그는 항성에 온 지 겨우 보름밖에 되지 않은 내륙인이었다.어찌
동리아는 노파심에 낮은 목소리로 거듭 충고했다.“하현,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넓은 하늘을 바라보기도 해야 해요.”“화가 난다고 아무렇게나 내뱉는 건 결국 자신을 해칠 뿐이에요.”“심지어 난 오늘 밤 일은 당신이 정식으로 오매 도관에 사과해야 한다고 제안했어요.”“이런 자리는 조만간 또 찾아올 거예요.”하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찻잔을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지잉! 지잉!”바로 그때 동정감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양해를 구하는 듯한 몸짓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러니까 장묵빈과 마리아가 낙찰받은 칼을 장 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칼을 뺏겼다는 거야?”하현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동정감을 쳐다보았다.누군가가 이렇게 빨리 손을 쓸 줄은 몰랐다.마리아는 돈을 다 지불한 후 장묵빈과 함께 가장 먼저 그 자리를 떠났었다.하지만 삼계 호텔을 떠난 지 채 1 킬로미터도 되기 전에 신호등 길목에서 복면을 쓴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에워싸여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복면을 쓴 사람들은 마리아와 장묵빈의 경호원을 쉽게 넘어뜨린 뒤 마리아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칼을 빼앗아 달아났다.경찰은 신고를 받고 곧바로 CCTV 조사에 착수했다.하지만 사고 당시 CCTV가 마침 수리 중이어서 제대로 찍힌 것이 없었고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당연히 복면을 쓴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가지고 있는 것 모두를 털어 칼을 손에 넣었던 마리아는 울먹이며 어쩔 줄을 몰랐다.그녀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이 소식을 듣고 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도대체 항성에서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총교관의 칼이 소장 가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노국 황실과 항성 장 씨 집안의 미움까지 사 가며 그런 짓을 벌일 만한 것
대문 앞에는 마리아와 장묵빈 외에 동리아와 최문성 두 사람도 함께 있었다.만약 그 두 사람이 마리아 일행을 막지 않았다면 노기충천한 서양인들은 아마 벌써 동정감의 집으로 쳐들어가 행패를 부렸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동 씨 집안 경호원 몇 명은 이미 서양인 무리들에게 얼굴을 몇 대 맞았고 몇 명은 발길질을 당해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뭘 하는 거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누가 경호원들한테 손찌검을 한 거야?”장묵빈은 뻔뻔스러운 얼굴을 내밀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이 파렴치한 소인배! 드디어 나타나셨군!”“어젯밤 경매장에서는 제대로 경합도 하지 않더니 결국 강도 짓을 해?!”“당신 같은 사람은 정말 비열하고 천박해!”“게다가 뻔뻔스럽게 자신이 총교관이라고 말하고 다니다니!”“에이 퉤!”“당신은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어!”“당신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대하의 핏줄인 게 너무 창피하고 괴로워!”“나한테 당신 같은 동족이 있다니 창피해 죽겠다구!”“할 수만 있다면 내 피를 다 뽑아서 서양인의 피로 바꿔서 당신들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장묵빈은 마치 서양인이 된 것처럼 하현에게 끝없는 모욕을 퍼부었다.서양 앞잡이가 된 장묵빈은 씹어 먹을 듯 하현을 노려보며 악랄하게 말했다.“하 씨, 잘 들어. 어서 칼 내놔!”“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 서 있는 자리에서 바로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거야!”“그리고 내가 직접 당신들이 빼앗아간 내 칼 찾아올 거야!”마리아도 성난 얼굴로 거들었다.“이 뻔뻔한 대하인들, 빨리 내 물건 내놔!”“그렇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해결할 거야! 인터폴에 당장 신고해서 조사하라고 요청하겠어!”“장묵빈, 마리아! 아무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남을 헐뜯지 마!”동리아가 눈썹을 찌푸리며 엄중하게 말했다.“어젯밤 우리는 삼계 호텔을 떠난 후 바로 이곳으로 왔어. 아무도 당신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구.”“당신들이 계속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