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이 대하 총교관을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다만 총교관께서는 여러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하전에서 이긴 것은 병부 전체의 공이지 본인 혼자만의 공이 아니라구요.”“대하가 총교관을 만들었지 총교관이 대하를 만든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양제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래. 대하 총교관은 실력과 인품이 모두 대단하실 뿐만 아니라 겸손함이 뭔지 몸소 보여주셨군. 오늘날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네!”“만약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콜록콜록!”하현은 그만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여러 번 하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어르신, 이제 비행기 그만 태우십시오.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어르신, 이제 어르신 상황에 대해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양제명은 하현을 빤히 쳐다보았다.“젊은이가 참 강인하군. 하지만 자네의 총교관과는 비교할 수 없네.”“그러나 자네의 천부적인 재능이라면 앞으로 얼마든지 전설적인 총교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어. 난 그렇게 믿네!”“그러니 자네 너무 으쓱해하지 말고 계속해서 착실히 실력을 쌓게. 그게 중요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이 가르쳐 주신 말씀, 유념하겠습니다.”양제명은 자신의 말이 누군가의 가르침이 되었다는 흐뭇함 때문인지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살인술을 아는 것은 자네가 비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세상에 자네 같은 젊은이는 많지 않아.”“하지만, 그런 자네도 날 살릴 수는 없을 것이네!”“이 세상에서 날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저세상 문턱에 있는 늙은 요괴들 외에 오직 한 사람 총교관뿐일 걸세!”“총교관이라면 날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텐데.”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양제명의 얼굴에 씁쓸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담담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니 자네 여기서 시간 낭
”유훤아, 네가 몇 년 동안 날 살려 보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상황은 그리 쉽게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어.”양제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양유훤을 바라보았다.따뜻하고 애틋한 눈빛이었다.“아쉽지만 할아버지는 더 이상 너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지 못하는구나.”“할아버지는 한 달 정도밖에 못 살 것 같아.”“나한테 온 정신을 쏟느라 너의 찬란한 청춘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내가 죽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생각해 둬.”“우리 양 씨 집안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이 지경이 되고 난 후부터는 그 영광이 사라졌지.”“가족 내부의 싸움이 치열해져서 네 삼촌들은 모두 너의 돈과 지위에 눈독을 들이고 있잖아. 남양의 다른 세력들은 내가 수련할 때 남겨 두었던 무예 비책을 손에 넣으려 안달이지.”“지금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남양 제일의 고수라는 이름으로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거야!’“하지만 내가 죽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널 공격하려들 거야!”“그래서 너의 미래를 잘 계획해야 한다, 유훤아.”“남양에는 절대 다시 돌아가면 안 돼.”“가장 좋은 방법은 대하의 영주권을 받아 한평생 대하에서 편안하게 사는 거야.”“절대 남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돌아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너의 목숨도 잃을 수 있어!”“유훤아, 넌 천성적으로 아름답고 고운 사람이야. 그건 남자를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해.”“하지만 네가 상대를 제압할 힘과 능력을 잃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널 해치게 될 것이야! 모든 남자들이 널 원하기 때문이지!”“내가 안심하고 갈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퇴로를 잘 마련하겠다고 약속해 주겠느냐?”양유훤은 처량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내 길은 다 마련해 놓았어요. 뒷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그럼 내가 이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양제명은
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시신이 몸에 들어온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어요.”“시신이 몸에 들어온 다음부터 어르신 몸에서 발작이 일어난 거예요.”“그래서 지금 어르신 상태는 시신 때문도, 다른 병 때문도 아니고 단순 중독일 뿐이에요.”“단순 중독? 정말이야?”양유훤은 충격을 받은 듯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얼마나 많은 의사들과 풍수사들을 불렀는데. 그들은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진단도 못했어. 그냥 외부에서 사악한 기운이 침입했기 때문이라고만 했어.”“할아버지가 천 년이나 묵은 시체들의 기운을 들이마셨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단언한 사람도 있었어.”“그런데 이제 와서 할아버지가 중독되었다고? 단순 중독?”양유훤은 얼굴을 찡그렸다.“하현, 당신도 알고 있을 거야. 무도를 수련하는 사람은 약리학에 대해 조금 알게 돼. 우리 할아버지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검사해 봤어. 그런데 중독된 건 발견하지 못했어.”하현은 담담하게 물었다.“메스 있어?”양유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정교하게 정리되어 있는 수술 장비를 가지고 왔다.하현은 깨끗하게 소독된 메스를 꺼낸 후 양제명의 오른손을 잡고 지그시 바라본 후 양제명의 손목을 칼로 찔렀다.양유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 지금 뭐하는 거야? 우리 할아버지는 지금 몸이 아주 허약한 상태라구!”그녀는 막으려고 했지만 양제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 하현이 뭘 하는지 잘 보자구!”“어쨌든 이 늙은이는 손발에 감각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아.”양제명의 말을 듣고 양유훤은 안쓰러운 눈길로 양제명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하현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하현의 손놀림은 매우 재빨랐다.메스는 양제명의 손목에 있는 혈도를 찔렀다가 빠르게 다른 혈도를 찔렀다.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피가 튀지 않고 약간 희끗희끗한 빛을
양유훤은 표정이 말할 수 없이 굳어졌다.“도대체 누가 할아버지에게 독을 먹인 거야?”“그게...”하현은 말끝을 흐렸다가 잠시 후 말을 이었다.“극야한독은 몸 안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야. 반드시 외부에서 유입이 되어야 하는 거지. 대부분은 음식이나 물에 섞어 먹이지.”“독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우리는 추측할 수 없지만 어르신께서는 아마 알고 계실 거야.”하현은 확실히 단정하며 말했다.양유훤의 얼굴에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그제야 그녀는 하현의 말뜻을 이해한 듯했다.독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매우 가까운 사람이고 양제명의 신임을 받은 사람임이 틀림없다.이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에 찾아내려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다만 가족 중 누군가가 이 독극물을 넣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양 씨 집안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그때 양제명이 갑자기 온몸을 움찔거렸고 얼굴에 검은 기운이 드리워지며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언제라도 숨을 거둘 사람처럼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독기가 발악을 한 거야!”하현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자신이 양제명의 상태를 판단한 후 양제명이 체내의 독소를 억제하지 못해 발작할 줄은 몰랐다.하지만 이것도 정상적인 과정이었다.아마도 양제명은 독극물을 먹인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렸을 것이다.마음이 상처받는 것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이 때문에 양제명은 정신을 잃고 체내의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할아버지, 어서 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 줘!”양유훤은 당황스러워하며 하현에게 말했다.“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내가 할게!”하현은 재빨리 양제명의 가슴에 손을 얹어 여러 곳의 혈을 찍어서 그의 혈맥을 막았다.그러고 나서 하현은 또 메스를 가져와 양제명의 왼손에 있는 혈을 찔렀다.거무스름한 핏물이 상처를 타고 흘러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면서 바로 얼음으로 굳어졌다.검은 피가 다 흐른 뒤에야 하현은 양유훤에게 양제명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두 분, 제가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사람처럼 보이세요?”“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했던 말은 값을 더 높여 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르신 몸속의 독소는 단번에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이 독은 이미 몸에 들어간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뼈에 붙은 구더기처럼 착 달라붙어 있어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죠.”“다행히 어르신께서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고수셔서 아직은 희망이 있어요!”“자네 뜻은...”양제명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른 것 같았고 그는 뭔가 무언의 말로 하현에게 물음을 던지듯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어르신께서는 아마도 온몸을 사지로 몰어넣어야 살 수 있을 거예요.”하현이 조용히 말했다.“어르신 몸 안에 독소를 제거하려는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은 다음 독소가 완전히 발작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해요. 발작이 극에 달했을 때 단숨에 독소를 뽑아 버리면 완전히 제거되는 거죠.”“독소를 완전히 발작시킨다고?”양유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그러다가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실 거잖아?”“맞아.”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온몸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살 수 있다고 한 거야.”“어르신의 현재 상황은 제가 방금 한 일을 포함해서 평범한 방법으로는 체내의 독소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어요.”“그러나 사지로 몰아넣는 기간은 기껏해야 열흘이나 보름 정도 일 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효과가 있을 거예요!”“독소를 완전히 발작시켜 한꺼번에 빼내는 것만이 위험하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양유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분명 위험한 방법임에는 틀림없었다.까딱 잘못하다간 할아버지를 완전히 잃게 될 수도 있었다.그녀가 어려운 선택에 고심하고 있을 때 양제명이 갑자기 손을 흔들며 양유훤에게 가만히 기다리라는 듯 손짓을 했다.양제명은 눈을 가늘게
하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맞아. 독성이 강할수록, 나이가 드실수록 좋아.”“이렇게 해서 어르신 몸에 있는 극야한독을 완전히 발작시키는 거야.”“독은 독으로 공격하는 거지.”“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거야.”양유훤은 갑자기 안색이 확 변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자,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이 독극물들을 구해야겠어.”양제명도 처방전을 훑어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유훤아, 하현이 이런 처방을 쓰다니 정말 우리를 자기 사람으로 여기는가 보구나.”“어쨌든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절 너무 탓하지는 마십시오, 네?”“자네 마음대로 하게. 어떠한 대가도 이 늙은이가 다 책임질 테니.”“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하현이 빙긋이 웃었다.“어르신, 7일 동안 버티셔야 합니다. 독이 완전히 발작할 때까지는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 뒤따를 것입니다.”“어르신께서는 무도 고수이시니 잘 버티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죠?”양제명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이 지경에 와 보니 가장 두려운 게 뭔 줄 아나? 내가 의식을 잃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물인간이 되는 걸세. 그게 가장 두려워.”“고통을 느낀다는 건 적어도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잖는가!”“그러니 자네 걱정 말게. 단 7일이잖는가. 잘 버텨 보겠네!”하현은 몇 마디 당부의 말을 전한 후 양유훤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양유훤은 얼른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린 후 하현을 돌아보며 말했다.“하현, 고마워.”“당신과 나는 원래 좋지 않은 관계로 만났는데 이렇게 선뜻 좋은 마음으로 날 도와줘서 고마워.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하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거래했잖아. 이건 당신과 나 사이의 거래일 뿐이야. 내가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구.”“하지만 앞으로 7일 동안 당신은 특히 남양인들 단속 잘 해야 해. 만약 내가 당신 사람들 손에 죽임을 당한다면 할아버지의 목숨도 끝이야
”빨리 여자를 데리고 가. 무카이 도련님이 이미 많이 기다리셨단 말이야!”“쯧쯧쯧, 대하 아가씨 인물 좋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우리 무카이 도련님이 한눈에 마음에 드셨어. 우리가 꼭 데리고 가야 한다니까.”선두에 선 섬나라 남자는 옷에 카메시타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그의 얼굴은 사악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이번에 항성에 온 것이 헛되지 않았구만!”말을 하는 동안 그는 여자의 몸에 손을 대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여자는 발버둥치는 듯 몸을 흐느적거렸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해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머리카락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하현은 불쾌한 듯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이곳은 퇴폐 구역으로 유명했고 원조교제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많았다.그래서 하현은 손을 쓸지 말지 망설였다.만약 여자가 자원해서 남자를 따라온 것이라면 자신이 말참견을 하게 되는 꼴이 되는 것이다.그들이 하현의 곁을 스쳐 지나가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섬나라 남자들을 쳐다보았다.섬나라 남자 몇 명은 모두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젊은 여자는 분명히 저항하는 듯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다만 그녀의 상태는 술에 취해 섬나라 건장한 남자 여럿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순간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여자가 고개를 약간 젖히는 순간 그 여자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화 씨 집안 딸, 화소혜!?하현은 이곳에서 화소혜를 만날 줄은 몰랐다.게다가 술 취한 모습으로 끌려가는 모습일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간혹 이런 사건들을 듣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이런 일을 마주하게 되자 하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현은 자신과 화소혜 사이의 불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려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거기 서!”술에 취한 섬나라 남자들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매서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저리 꺼져!”멱살을 잡힌
하현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건달들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당신들도 어쨌든 모두 대하인이잖아. 길바닥에서 굴러먹는 처지라고 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가져야 하지 않아?”“섬나라 사람들이 우리 대하의 여인을 짓밟으려는 것을 보고도 말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서 나쁜 짓을 도와주고 있어?”“당신들 그러고도 남자야?”“짓밟는다고?”카메시타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우리 무카이 형님을 모시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영광이야!”“이 대하 아가씨는 조상님이 은덕을 많이 쌓으셔서 그나마 우리 고귀한 섬나라 남자들을 섬길 수 있게 된 거라구!”“그런데 어떻게 그게 짓밟는 거라고 할 수 있어?”“섬나라 사람이라고만 하면 수많은 대하 여자들이 달려드는 거 몰라?”“당신들 대하인들이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건 알지만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강자가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지!”“언뜻 봐도 어디 힘 하나 없어 보이는 남자가 꽃처녀랑 같이 노는 건 고사하고 보호하려 해? 당신은 절대 불가능해!”“어서 무릎 꿇고 사과해. 그리고 썩 꺼져!”“그렇지 않으면 바로 죽여 버릴 거야!”감히 항성에서 이런 횡포를 부리다니 이 남자, 정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다.어떻게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과는 달리 하현은 카메시타의 말을 듣고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여자를 놔줘. 내 말 못 알아듣겠어?”“손 대지 말라구!”“허허, 이러다 당신 사람 치겠어?”건달들의 눈동자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우리가 누군지 알기나 해?”“우리는 홍성 사람들이야!”“항성과 도성 바닥을 주름잡고 있는 홍성이라고!”“우리가 당신 가족까지 손대길 바라지 않는다면 어서 순순히 무릎 꿇고 사과해!”“그렇지 않으면 당신 이 자리에서 바로 황천길 직행할 거니까!”카메시타의 비웃는 얼굴이 역겨웠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매섭게 말했다.“지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
이 말을 듣고 하현은 돌아서서 형나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집에서 볼 때보다 밖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이 훨씬 성숙하고 듬직했기 때문이다.비록 아직 철없이 밀어붙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럴 때는 노련한 기질이 더해져 함부로 나서지 않고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하현은 잠시 지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없어. 여기서 잠깐 봐 봐”“보고 나서 바로 가게 물색하러 가 봐야 해.”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화가 나서 하마터면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다.지금 자신이 얼마나 우아하게 참고 있는데 그게 할 소린가?그러나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유하고 정숙한 척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했다.눈먼 장님에게 아무리 눈빛을 보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형나운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천천히 자신의 코트를 벗고 하현이 보는 앞에서 앞 단추 두 개를 풀었다.그녀는 자신의 심장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오늘 아침 무술을 연마할 때 여기가 답답해져서 죽을 뻔했어요.”“한번 봐 보세요.”말을 하면서 형나운은 은근슬쩍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단추 풀지 않아도 돼.”“그러다가 험상궂은 당신 경호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왜요? 무서워요?”형나운은 놀리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도 두려울 때가 있어요?”“내가 지금 누가 날 추행한다고 소리 지르면 내 경호원들이 쫓아와 당신을 쫓아내기라도 할까 봐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도대체 나한테 봐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옷 입어.”“딱 3초 줄게. 내 말대로 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이면 난 그냥 갈 거야!”하현이 약간 화가 난 것을 보고 형나운은 비로소 다소곳해졌다.“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난 정말 이 거추장스러운 외투는 안 입고 싶은데요. 이
형나운의 말을 듣고 우다금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정말로 하현이 자신의 딸을 뒷문으로 들여보냈을 줄은 몰랐다.그러니까 하현이 없었다면 자신의 딸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얘기다.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우다금은 갑자기 난처한 듯 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하지만 우소희는 하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깔보던 데릴사위의 도움을 받았다니!그걸 인정한다면 앞으로 설은아의 집에 가서 어떻게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어제 설은아 앞에서 얼마나 큰소리 떵떵 치고 나왔는데 이렇게 단번에 고개를 숙일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스치자 우소희는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채 기세를 꺾지 않았다.“형 대표님, 인사팀 팀장님이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이 회사가 사람의 외모나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 아니겠어요?”“데릴사위가 뒷문으로 들여보냈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우소희는 나름 상류사회에서 놀던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섞어가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몇몇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경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없어했다.그들은 우소희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우소희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형나운, 이 사람이 데릴사위인 내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그럼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줘!”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홀연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형나운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무 팀장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지시했다.“하현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부대로 해. 우소희 씨가 그렇게 능력이 출중하다고 자신하니 공정하게 원칙에 따라 채용하도록 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줘야지.”“누가 청탁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 스스로의 능력이 가장 중요해.”형나운의 말을 듣고 무 팀장은 곧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우소희 씨. 스스로 능력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선생님, 여기는 형 씨 가문 그룹입니다. 무엇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기업이죠.”“만약 당신이 여기서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이때 몇몇 경비원도 냉담한 표정으로 걸어왔다.하현은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힐끔 보며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2분 남았어요.”우소희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그만해요. 센 척 좀 그만해요!”“당신이 그런다고 누가 내려올 줄 알아요?”“잘 들어요. 당신이 설령 간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해도, 혹은 김 씨 가문 후계자라고 할지라도 이럴 자격은 없어요. 알겠어요?”우다금도 하현을 한심스러운 듯 노려보며 냉소를 연발했다.“하현, 우리 앞에서 허풍 떠는 짓 그만해!”“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그래? 어?”“여기 대표님이 내려와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묻힐 곳도 없이 이승을 떠돌 거야!”“내가 한마디 충고할게. 더 이상 망신당하지 말고 썩 꺼져! 얼른!”“그리고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대표님한테 나쁜 인상을 주게 생겼다고!”“우리 딸은 앞으로 연봉 이억을 받을 인재야!”“당신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우다금은 하현이 자신들을 등에 업고 뭔가 이득을 볼 심산으로 여기 왔다고 확신했다.그런 목적이 들통났으니 이판사판으로 사람을 불러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데릴사위놈이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꼴이라니!고약한 놈!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1분 전.”하현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개의치 않았다.“내가 당신이라면 벌써 전화를 걸었을 거예요.”“일이 잘못된다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당신이 형나운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갈 텐데?”하현이 기세 좋게 몰아붙이자 프런트 데스크 직원도 잠시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하현, 이제 그만해. 충분히 했잖아!”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