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퍽!”하현은 인정사정 없이 몸을 날려 건달들을 발로 걷어찼다.한 줄기 날쌘 그림자가 여러 남자의 몸을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그 자리엔 고통에 나뒹구는 남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꿈틀거리고 있었다.선두에서 건달들을 이끌던 남자의 안색이 갑자기 음흉해지더니 뒤춤에 꽂고 있던 비수를 뽑아들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촤칵!”그러나 남자는 하현을 건드리기도 전에 하현의 손에 목이 끼여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남자는 내심 하현의 실력에 놀랐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하현을 깔보며 말했다.“어이! 당신 본토 사람이지?”“그래서 우리 홍성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던 거구만!”“감히 나를 건드리면 홍성 사람들이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야!”건달은 자신의 목이 하현의 손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성의 세력이 강하다는 걸 믿고 하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남자의 목에 힘을 주었고 순간 남자의 목은 촤칵 소리를 내며 그대로 꺾여 버렸다.남자는 그대로 힘없이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자신의 부하들과 자신의 안보를 책임지는 몇몇 홍성 건달들이 맥도 못 추는 것을 본 카메시타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화소혜를 놓아주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어쭈! 제법 하는데!”“어쩐지 감히 겁도 없이 우리 섬나라 사람들을 귀찮게 하더라니!”“그런데 말이야. 당신 감히 우리 상대가 된다고 생각해?”말을 마치자마자 카메시타는 갑자기 칼을 꺼내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하현은 조금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카메시타가 달려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하현을 보고도 카메시타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가소로운 대하인 같으니라구! 조금 할 줄 안다고 자기가 무슨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아나 봐?”“미인을 구해 내는 영웅이라고 되고 싶은 거야, 뭐야?”“유치하기는.”카메시타는 하현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이 세상에는 사람 위에
하현은 섬나라풍 술집 1번 룸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이 나타나 섬나라 사람들을 억류했다.동시에 최영하는 의사를 한 명 보냈고 제일 먼저 화소혜의 위를 세척해 주며 해독을 했다.화소혜는 술을 조금 마시기는 했지만 평소 주량으로 봐서 이렇게까지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던 것은 놈들이 약을 먹였기 때문이었다.최영하가 파견한 의사는 기술이 좋아서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화소혜의 몸을 돌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소혜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비로소 화소혜의 몸 안에 있던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하현은 생수 한 병을 가져와 물컵에 따랐다.그때 화소혜가 천천히 눈을 뜨며 눈동자를 두리번거렸다.겨우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어렴풋한 시선 너머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자 화소혜는 자신도 모르게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당신 누구야?”“뭘 원하는 거야?”“나 건드리지 마!”“내 아빠는 도박왕이야. 감히 날 건드린다면 아빠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화소혜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보아하니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었다.하현은 침착하게 말했다.“화소혜, 진정해. 진정하라구. 나 하현이야. 당신을 해치지 않아.”“하현!?”화소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새하얀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신이 나한테 약을 먹이다니, 당장 아버지한테 말할 거야! 당신 대가를 톡톡히 치를 테니까 각오해!”“퍽!”하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화소혜의 뺨을 때렸다.순간 화소혜는 넋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이제 정신이 좀 들어? 이제 제대로 대답할 수 있겠어?”하현이 휴지를 꺼내 오른손을 닦으며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자신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당신 잘 모르겠어?”“누가 당신 몸을 더럽히려 했다구.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봤어?”화소혜의 얼굴
화소혜의 말을 듣고 하현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화 씨 집안의 천금 같은 딸이 자신을 미워해서 복수를 하려고 했다가 지금은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니.화 씨 집안의 일로 자신에게 원한이 생겼는데 섬나라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을 상대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그녀는 아직 이쪽 세계를 잘 몰랐던 것이다.섬나라 사람들을 찾아간 순간 그녀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하지만 어쨌든 하현과 화소혜가 이런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이번 일로 양측 간의 껄끄러웠던 감정은 많이 완화되었다.이것은 앞으로 화 씨 집안의 지지를 얻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화소혜,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말해 주니 당신이 사람을 찾아 나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일은 내가 모르는 일로 해 줄게.”“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다신 그러지 않을 거예요.”화소혜는 아직도 좀 겸연쩍은지 머뭇거리며 말했다.“전에는 내가 철이 없어서 그랬어요. 용서해 주세요.”하현은 환한 미소를 보였다.더 이상 이 주제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구속에서 울부짖고 있던 섬나라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당신을 구하면서 섬나라 사람 몇 명을 잡았어. 지금은 이놈들의 주인이 날 찾아오길 기다리는 중이야.”“적어도 3분이면 그들이 올 거라 생각해.”“우선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당신을 먼저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할까?”말을 하면서 하현은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화소혜의 대답을 기다렸다.화소혜는 얼굴빛이 약간 변하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안 갈래요!”“당신이 날 구해주셨는데 내가 당신을 버리고 혼자 가 버리면 그건 우리 화 씨 집안 체면을 깎는 일이 되는 거예요!”“게다가 우리 화 씨 집안이 섬나라 사람 몇 명을 두려워할 처지도 아니구요!”말을 마치며 화소혜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진홍두의 심드렁한 표정을 보고 건달들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사실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오늘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심호흡을 하고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그러니까 그놈은 무카이 도련님이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1번 룸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도련님을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만약 우리가 능력이 있다면 당장 자신을 건드려도 좋다고 큰소리를 치고 갔어요!”“그리고 카메시타 형님이랑 다른 형님들도 몇 명 생포되어 끌려 갔구요. 카메시타 형님은 허리가 부러져 처참하기가 이를 데 없었어요!”“아가씨, 우리 실력이 보잘것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놈이 워낙 강했다구요!”“우리 체면이고 뭐고 봐주지 않았어요!”홍성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건달들이 이 말을 듣고 하나둘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구룡성 이곳은 예로부터 건달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날고 긴다는 건달들이 다 모여 있다.홍성은 이 지역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었다.그런데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어떻게 함부로 홍성 사람들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가?가장 중요한 것은 홍성 귀빈의 허리까지 부러졌다니 이것은 죽자고 덤비는 놈의 짓이다!건달들은 생각만 해도 그놈을 당장 쳐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그놈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가문과 세력들까지 모조리 절단 낼 것이다.홍성 건달들은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었다.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무카이는 카메시타의 허리가 부러졌다는 얘길 듣고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우리가 섬나라 음류라는 걸 말했어?”“말했습니다.”그 건달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홍성뿐만 아니라 무카이 도련님 이름도 말했어요. 무카이 도련님이 섬나라 음류라고 말했는데도 그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어요.”“제 생각에는 그놈이 일부러 우리를 건드리려고 그러는 거 같아요!”건달의 말에 무카이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떠올랐다
”상대가 누구야?”“항도 하 씨 사람이야?”“항성 4대 가문 사람이야?”“아니면 도성 화 씨 가문?”“그것도 아니면 남양 사람이야?”진홍두는 냉랭한 얼굴로 항성과 도성에서 힘깨나 쓴다는 가문들을 열거했다.이런 가문 사람들이라면 상황에 따라 그녀가 직접 나설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이라면 상대방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간에 진홍두는 상대를 한 방에 짓밟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아가씨, 상대의 억양으로 보아 항성과 도성 사람이 아닌 본토 사람인 것 같습니다.”“하지만 본토 사람들이 감히 함부로 설칠 수는 없으니 분명 뒷배가 든든한 놈일 겁니다!”“맹호가 강을 건너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본토 사람이라고?”진홍두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본토인이 아무리 힘이 세고 뒷배가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 항성과 도성에서는 설칠 자격이 없어!”“우리가 그놈을 한번 제대로 손봐 줘야겠군!”“본때를 보여줘!”“사정 봐주지 말고 밀어붙여!”“10대 최고 가문 사람들이 와도 우리 홍성한테 굽신거리며 눈치를 보는데 하물며 본토 사람이 우리를 건드려?”“탁!”진홍두는 말을 마치며 에르메스 핸드백에서 청동으로 만든 구룡령을 꺼내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사람들의 시선이 청동 구룡령에 쏠렸고 홍성 건달들은 모두 반쯤 무릎을 구부린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장면을 본 무카이는 눈빛이 반짝였다.진홍두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흑구야, 우리 홍성 구룡령을 가지고 가서 그 하찮은 녀석에게 똑똑히 말해.”“무카이가 마음에 들어한 여자를 직접 데리고 와서 내가 만족할 때까지 무릎을 꿇으라고 전해.”“오늘 밤은 특별히 무카이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 정도로 끝내는 거라고.”“평소 같으면 때려죽였을 거야.”“네!”건달들 속에서 검은 피부에 양복 차림을 한 남자가 튀어나와 탁자 위의 구룡령을 집어 들었다.이 남자는 진홍두의
맨 앞으로 나온 흑구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의 시선은 천천히 하현에게 떨어졌다.하현 앞에는 카메시타가 죽은 개처럼 널브러져 있었고 살아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 이따금씩 경련을 일으켰다.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하현은 흑구를 향해 눈동자를 들어올렸다.“홍성의 개가 온 모양이군.”“헛, 이놈이 감히 나를 알아보다니!”흑구는 음흉한 미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우리가 홍성 사람들인 줄 알면서도 감히 우리 앞에서 시건방을 떨다니!”“아주 든든한 뒷배를 둔 모양이야?”“실력도 아주 놀라워!”“자자, 어디 그 든든한 뒷배가 누군지나 한 번 들어보자구! 날 놀라게 하는 존재인지 아닌지 무척 궁금한데 말이야!”“날 놀라게 하지 못한다면 아마 오늘 당신 목숨은 여기서 끝장 날 거야!”말을 마치면서 흑구는 손짓을 했고 십여 명의 홍성 건달들이 손아귀를 우그러뜨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그들은 분명 하현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때려눕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차를 한 모금 더 홀짝이며 담담하게 말했다.“홍성 사람들 참 재미있어. 앞발은 항도 하 씨 집안에 걸쳐두고 뒷발은 섬나라 음류에 걸쳐두었어.”“내 생각엔 당신들을 홍성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아.”“그냥 견성이라고 부르면 딱일 것 같아.”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비아냥거리며 말했고 흑구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당장 꺼져!”“개자식!”“감히 우리 홍성을 헐뜯는 말을 해?!”“당장 네놈의 사지를 찢어서 저 바다에 던져 물고기밥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흑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에게 있어 홍성은 하늘이요, 땅이요, 그의 부모였다!누가 감히 홍성의 이름을 더럽힌다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았다.그런데 눈앞의 본토놈이 감히 홍성을 무시하며 견성이라고 부르다니 도저히 죽이지 않고는 배겨 낼 수 없었다.하현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자,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홍성 건달들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그러다 모르는 여자가 자신에게 뺨을 한 대 때리며 이건 꿈이 아니라고 일깨워주기라도 한 듯 얼른 정신을 차렸다!홍성의 구룡령을 감히 외지인이 두 동강 내다니!이 순간 건달들은 도저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개자식! 네가 뭔데 이런 짓을 해!”“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죽고 싶어 환장했어?”흑구는 벌떡 일어나 노발대발하며 눈알을 부라렸다.누군가가 눈앞에서 구룡령을 부러뜨리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니!만약 오늘 하현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아마 그는 진홍두한테 돌아가도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날 죽이겠다고?”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죽을 사람은 당신인 것 같은데!”“이렇게 깨진 구룡령을 보고도 날 굴복시키겠다는 거야?”“당신들 홍성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된 지 너무 오래된 거야, 아니면 너무 거만해서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잊어버린 거야?”“정말 당신들이 이 바닥의 왕인 줄 알아?”“돌아가서 진홍두한테 말해. 구룡령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네 교관이 내 앞에 오더라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겠다고 말이야!”“꺼져!”말을 내뱉으며 하현이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기자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룡령 조각이 날아와 피할 사이도 없이 흑구의 두 손을 가격했다.“찰싹!”“앗!”청동으로 만든 구룡령 조각이 뼈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흑구는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땅바닥에 뒹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그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아내며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개자식, 감히 내 손을 망가뜨리다니!”“우리 홍성의 보복이 두렵지 않은가 보군!”“도대체 당신 누구야?”“나?”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신의 신분을 지어내었다.“난 풍수 관상을 보는 사람이야. 하 도사라 불러도 돼.”“어때? 이제 좀 무서워졌어?”“하 도사!?”
”팍!”최문성은 한 발짝 다가가 흑구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여기서 그냥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최문성은 흑구 일행이 감히 하현을 건드렸으니 죽어서 가죽을 벗지 않고는 그곳을 못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여기가 오고 싶다면 오고 가고 싶다면 갈 수 있는 곳인가?머리를 땅에 처박힌 흑구는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고개를 틀어 하현을 쏘아보았다.“이놈! 감히 날 건드리다니!”“내가 홍성 사람이라는 걸 몰라?”“내가 홍성 공주 진홍두 휘하의 수장이라는 거 모르냐고?”“네놈이 감히 날 이렇게 화나게 하고 내 얼굴을 이 꼴로 만들고도 멀쩡히 살 줄 알아? 후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지?”하현은 일어나서 흑구에게 다가갔다.“당신은 정말 개인가 보군. 어떻게 머리가 하나도 없어?”“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렇게 떠들어대?”“당신네들을 이렇게 제압했는데 아직도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왜? 당신을 살려 두는 것이 홍성 체면을 세워 주는 건가?”“하 씨. 난 항성과 도성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뒤엉키며 살았어. 그런데 감히 나한테 이렇게 구는 놈은 네가 처음이야!”흑구는 누런 이를 악물고 원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능력 있으면 날 죽여 봐!”“안 그러면 내 손으로 반드시 당신을 죽여 버릴 테니까 각오해!”하현은 최문성을 힐끔 보고는 흑구의 얼굴을 들어 올리라고 손짓했다.그러고 나서 하현은 손바닥을 힘껏 뒤로 젖혀 흑구의 얼굴에 뺨을 때렸다.“퍽!”한 방에 흑구의 입에서 이빨이 툭 튀어나왔다.“쓸데없이 말이 너무 많군.”“당신네 아가씨 진홍두에게 전화해서 구룡령으로는 날 움직일 수 없다고 전해!”“당신과 카메시타, 나 모두 여기 있으니까 오라고 해!”“진홍두가 오지 않으면 당신 둘은 죽는 거야.”흑구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아무렇지도 않은 척해 보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하현의 냉랭한 표정은 그를 두려움에 떨게 했고 마지막 한 가닥 용기는 손아귀 속의 공기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설은아는 얼굴이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부장님이 이천억, 아니 이조를 준다고 해도 난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설 대표님,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어요!”“아니 그냥 잠 한 번 자는 것 가지고 뭘 그래요? 결국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닙니까?”“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가 없어서 꿈도 못 꾼다고요!”“그런데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혼도 한 번 했겠다 잠 한 번 자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남의 편의를 봐주고 내 이익을 챙기면 되는 거죠.’“이번에 잘 하면 앞으로도 대표님은 육 씨 도련님의 사람이 되어서 금정에서 편하게 사업할 텐데, 그런 기회를 발로 차버려요?”“대표님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정에선 사업하기 힘들어져요!”“왜 돈을 앞에 두고 내팽개치려는 거예요?”이국흥은 이 바닥에서 닳을 대로 닳은 인물이었다.이런 일에 경험도 많고 비열함 따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이리저리 이로울 대로 몰아가고 있었다.정신력이 보통인 여자가 아니라면 그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뻔뻔스러운 행동에 쉽게 넘어가고도 남았다.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이 부장님, 내가 돈이 필요하긴 해요!”“하지만 돈 때문에 내 몸과 영혼을 팔진 않을 겁니다!”설은아에겐 분명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었다.“좋아요, 안 받으셔도 됩니다!”“없던 일로 하죠!”이국흥은 테이블을 탁 치며 노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은 우리 금정은행에 따로 오백억 빚이 있습니다!”“계약대로 다음 달에 갚아야 하고요!”“기한이 지나면 우리 금정은행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 자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대표님도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 겁니다!”
”대출이 갱신이 안 되어서 우리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어요.”“직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고 공장 생산도 중단되었어요.”“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정말 파산할 거예요.”설은아는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했다.“이 부장님, 우리 회사랑 거래하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요.”“부장님도 우리 집안에 대해 잘 알고 계시고요. 우리 뒤에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대구 정 씨 가문이 있어요.”“도와주신다면 그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이국흥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설은아를 바라보았다.“설 대표님,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대표님 회사는 지금 장부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위험평가를 통과할 수가 없어요!”“내가 직업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업윤리를 어겨 가면서까지 대표님을 도와드릴 순 없잖습니까?!”“안타깝지만 우리 은행에서 이번 대출 연장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하지만 우리 은행에서 대표님께 기회를 안 드리는 건 아닙니다...”말을 마치며 이국흥은 미리 준비해 둔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서남 천문채 육 씨 도련님이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는군요.”“이건 이천억을 빌린다는 차용증입니다. 대표님이 여기 서명만 하면 당장 효력이 발생하고요.”“언제든지 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육 씨 도련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룻밤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육 씨 도련님?!설은아는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녀는 분명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모양이었다.그래서 그녀의 눈빛에선 겨울 칼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넘실거렸다.“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직업윤리도 없고 염치도 없으세요?”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국흥은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무슨 말씀인지 알 텐데요.”“난 대표님이 육 씨 도련님의 요구대로 했으면 합니다!”“그분이 누굽니까? 서남 천문채에서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까? 잘 아시면서 왜 그러
”아, 아니...”“대, 대사님! 대사님!”이때 나천우는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으며 하현을 쫓아가려고 발버둥쳤다.임단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나천우를 뒤따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은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나천우 부부가 급한 마음에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하현을 뒤쫓으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나천우를 뒤쫓아온 형나운은 나천우의 전화기를 툭 쳤다.“천우 오빠, 또 일을 그르치려고 그래?!”그녀는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다.“지금 하현이 화가 나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게 생겼는데 부하들이 쫓아간들 어쩌겠어?”“하현이 돕지 않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나천우는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형나운, 우리가 잘못했어.”“우리가 눈이 멀었나 봐.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제대로 볼 줄 몰랐으니 말이야!”“하지만 너랑 나랑 오랜 인연을 생각해서 부디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잘 좀 봐달라고 말 좀 해 줘!”“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돈 문제는 절대 신경 쓰지 마!”“맞아.”이때 임단도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형나운, 그러면 주소라도 알려줘. 우리가 가서 삼고초려라도 해 볼게!”“좀 진정해. 이렇게 쫓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형나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해 볼게.”그 시각 진회강 강변에 위치한 금정은행 본사 앞.설은아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은행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마침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하현이 설은아의 모습을 보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그녀의 사정을 급히 떠올리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하현이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마침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아보니 형나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 사장 부부가 잘못을 깨닫고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해요.”“내 얼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