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좋은 형제는 의리를 중시하지!” 규천이 손을 뻗어 민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건 아주 좋은 일이야. 얼른 모두에게 알리고 싶네, 그때 그 서울 여신을 내가 차지하게 됐다고! 그리고 그 데릴사위한테도 알릴 거야, 자신이 손도 못 잡아본 여자가 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는 것을!”“걱정하지 마, 설은아가 명예를 잃어야 나를 고분고분 따를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설은아를 차지할 수가 없어!” 규천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민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내일이 지나면 수많은 남자들이 형님을 부러워할 겁니다. 어쨌거나 우리 누나는 서울에서 제일 예쁜 여신이거든요! 여기서 형님을 매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매형의 신혼을 미리 축하드려요! 즐거운 시간 보내셔야 해요?”민혁이 매형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자, 규천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지금 그의 얼굴에는 변태 같은 웃음이 가득했고, 그는 제자리걸음을 하며 기대했다.이튿날 아침, 민혁은 은아의 사무실에 일찍 도착했다.“시간과 장소는 이미 잡아놨어요. 여러 사람에게 부탁해 연락할 수 있었던 거니까, 절대 내가 곤란해지게 뒷걸음질 치면 안 돼요. 안 그러면 다음 번에는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민혁이 팔짱 끼며 거만하게 굴었다.출근 복장을 입고 있는 은아를 보자, 민혁은 안색이 싸늘해졌다. 그는 미친듯이 웃고 싶었지만 미친듯이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다. 어쨌든 간에 민혁의 계획은 은아의 명예를 실추시킨 후 설씨 집안에서 내쫓는 거였으니, 그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은아는 민혁의 갑작스러운 관심을 일찌감치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젯밤에 하현이 이 일은 민혁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은아는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쇼핑몰은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야, 아무도 내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어. 나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거야. 이 일이 나의 웃음거리로 보인다면 미안
“아빠는 정말 내가 진심으로 누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민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 말은, 이건 함정이라는 거야?” 동수가 물었다.민혁은 아빠 앞에서 감출 것도 없어 그저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나에게 깨달음을 준 사람도 아빠니까 내가 진실을 말해줄게. 설씨 집안을 괴롭힌 사람은 내가 지시한 거야.”동수는 얼굴을 찌푸리며 민혁을 쳐다보고 말했다. “외부인을 이용해서 은아를 괴롭히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면 너도 나서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되는 거 아니야? 왜 은아를 도와주는 건데?”“아빠, 잘못을 바로잡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데? 설은아 그 여자가 계속해서 쇼핑몰 프로젝트를 손에 쥐고 있는 게 우리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 내가 하려는 건 이 여자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거야. 그래야 내가 나중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장애물이 없어!”민혁은 의기양양했다. 이 일을 외부인에게 말할 수 없어 자랑할 곳이 없었는데, 지금 자신의 아빠 앞에서 말하니 속이 뻥 뚫렸다.은아를 처리한 다음, 민혁은 순조롭게 쇼핑몰 프로젝트 매니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그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일석삼조였다!이 순간, 민혁은 자신이 제갈량의 환생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도대체 무슨 술수를 준비한 거야?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동수가 추궁했다.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면 그는 정말 안심할 수가 없었다.“아빠, 조규천이라는 사람 들어봤지?”“조규천은 서울 길바닥 출신 아니야?”“맞아, 그 사람이야. 내가 부탁한 거물이 바로 그 사람이야. 원래 쇼핑몰 프로젝트만 조금 방해해서 누나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려고 했는데, 어쩌다 우연히 조규천이 누나를 마음에 들어해서 갖고 싶어하는 걸 알게 되었어.”“그래서 오늘 밤에 누나가 약속된 장소에 가기만 하면, 조규천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거야. 게다가 나는 이미 조규천이랑 약속을 했어. 오늘 밤에
그날 오후, 하현은 약속대로 포르쉐를 몰고 은아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다. 본래 그는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지만, 협상 자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는 없지 않겠나?은아를 태운 후, 하현은 네비게이션의 동선을 따라 교외에 있는 농촌 민박집으로 향했다.은아는 조금 걱정이 돼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은아가 말했다. “하현, 오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일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 민혁이가 일부러 나를 욕먹이려는 거 아니야? 이따가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하현이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든 내 시체 위를 걸어가야지만 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야.”말을 하던 하현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든 은아를 때리려는 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하현의 말을 듣자, 이런 상황일지라도 은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마치 하현이 있으면, 모든 불안정한 요소들이 사라지거나 분해될 것만 같았다.가는 길 내내 두 사람은 조용했다. 곧이어 차가 농촌 민박집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쪽에는 두 줄의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들 모두 대머리에 민소매 런닝을 입고 있었고, 온몸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문신으로 가득해 딱 봐도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포르쉐가 들어오는 걸 보자, 그들은 차가 마당으로 들어오도록 손짓했다.......“규천 형님, 도착했습니다.” 부하 한 명이 식당 안에서 규천 옆으로 달려갔다.규천은 소주를 찔끔찔끔 삼키고 있었는데, 은아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눈앞이 반짝였다. 그는 잔 안에 있던 술을 단번에 삼키고 박수 치며 말했다. “너희들 형수님이 오셨다. 내가 직접 마중을 나가지, 오늘 저녁은 신혼 첫날밤이니까, 하하하!”“규천 형님, 형수님 옆에 남자 한 명이 같이 왔습니다.” 부하가 조심스럽게 알려주었다.“남자? 혼자 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규천이 살며시
“제 남편 하현입니다.” 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이 말이 흘러나오자, 규천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폭소를 터뜨렸다. 부인할 수 없이, 하현 이 머저리 데릴사위가 워낙 유명해 서울에서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쯧쯧쯧, 그래도 격에 맞지 않게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가지고는, 어째서 데릴사위나 돼서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버리는 거야? 이 자식이, 설마 내시는 아니겠지?” 규천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규천 형님, 이놈이 너무 역겨워서 한 대 때리고 싶네요!”“내가 할게, 너는 힘이 너무 세서 한 방에 훅 갈 것 같아. 내가 좀 더 부드러우니까 내가 할게!”“부드럽기는 개뿔, 여자도 아닌데 뭐가 부드럽다는 거야? 이런 약골은 내가 맡을게.”주위에서 난리 난 동생들을 보자, 규천이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 “그만해, 뭐하는 짓들이야? 상대가 어린 놈인 거 안 보이니, 간도 조그만 것이? 이놈을 놀래켜서 바지에 오줌이라도 싸면, 얼마나 역겹고 꼴보기 싫겠니?”“하하하…”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은아는 어금니를 부셔질 것처럼 악물며 규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나서 그녀가 말했다. “저는 오늘 일 애기 하러 왔어요, 내 남편을 조롱하는 걸 들으러 온 게 아니라.”“네, 네, 일 얘기하시죠, 그게 급한 것이니. 모두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규천이 제자리에 앉았으며, 하현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의 눈에 이런 데릴사위는 개만도 못해서 존중 받을 가치가 없었다.“어떻게 해야 우리 설씨 집안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건가요?” 은아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규천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같이 길바닥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서 돈이 필요할 뿐이에요. 돈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든지 위해서 일을 하죠. 당신들 설씨 집안은 이번에 제대로 복 터졌더라고요. 돈이 있으면 다같이 써야죠. 당신들도 돈을 뿌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 말 이해했죠?”“얼마를 원하는데요?” 은아의 얼굴
250억!은아의 안색이 서서히 변했다. 설씨 집안의 자산이 천억은 됐지만, 이렇게나 많은 유동자산을 꺼낼 수 있었다면 하엔 그룹의 투자가 필요했겠나? 게다가 하엔 그룹이 1차로 송금한 금액은 90억 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규천은 250억을 달라고 하니, 명백히도 제대로 협상할 생각이 없었다.“설씨 집안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돈이 그렇게나 많았다면, 우리 설씨 집안은 외부에서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었겠죠. 조규천 씨,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건지 그냥 말하세요. 우리 설씨 집안은 당신과 아무 관계도 없었고 원한을 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괴롭히는 건가요?” 은아가 억지로 냉정함을 유지하며 말했다.“내가 당신들을 괴롭히는 건 당신들 체면을 세워주는 일인 거 아세요? 언제부터 내가 당신들에게 이유나 핑계를 대야 했습니까? 설씨 집안이 뭐라고 나한테 설명을 하라는 거예요?” 규천이 인상 쓰며 불쾌한 얼굴로 은아를 바라보았다.은아는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며 차분함을 억지로라도 유지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조규천 씨, 오늘 제가 이곳을 찾은 건 상당한 성의를 보인 겁니다. 당신도 성의를 보였으면 하네요.”“음, 저는 이렇게 단도직입으로 말하는 사람이 좋아요.” 규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의적인 것 같으면서도 고의가 아닌 것 같게 말했다. “성의를 논하신다면, 당신의 성의를 저에게 보여주세요. 이 뒤에 괜찮은 방이 하나 있는데, 목욕물은 이미 준비해 뒀으니 아마 마음에 드실 거예요.”이 말을 듣자, 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규천이 이렇게 뻔뻔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감히 이런 선 넘고 무례한 요구를 하다니, 은아는 절대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이때, 옆에 있던 하현이 갑자기 앞으로 한걸음 나서더니 은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조규천, 당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설 씨 집안을 괴롭힐 리가 없어. 이 일의 배후가 따로 있지? 당신 같은 서울 길바닥 1대 거물도 남의
하현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기가 어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병을 낚아채더니, 쨍그랑 소리가 나며 그 놈의 머리 위에서 병이 산산조각 났다.그 놈은 믿기지 않는 듯한 기색을 띠며 바닥 위에 픽하고 쓰러져 잠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이…”“제기랄, 이 머저리도 독한 놈이었어!”“이럴 수가? 그냥 쓰레기 아니었어?”“쫄기는 뭘 쫄아! 티비에서 맥주병 깨뜨리는 거 따라한 것뿐이잖아? 그냥 운이 좋았어…”이 순간, 부하들은 큰소리를 쳤지만 앞으로 나설 용기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머저리 데릴사위는 아무 쓸모도 없었는데, 어떻게 자신들과 맞설 엄두가 있겠나? 이건 소문과 완전히 딴판이었다.은아도 잠시 멍해졌다. 하현이 설 씨네 집에서 강이준을 난폭하게 때린 적이 있지만, 강이준은 그저 헬스장을 몇 년 다녀본 자였기에 은아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다르다. 모두 길바닥에서 먹고 사는데다가 싸움을 하는 데 도가 트였다. 그런데 하현이 그중 하나를 손쉽게 무너뜨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런 거대한 반전은 은아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은아는 자신의 쓰레기 남편에게 이렇게 강한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하현, 여기는 내 구역인 거 알고 있어? 내 구역에서 내 사람들을 다치게 하다니, 사는 게 싫어?” 규천이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하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무시와 업신여김으로 가득 찬 게 아니라, 엄숙함이 조금 추가되었다.이 데릴사위가 감히 이런 상황 속에서 먼저 나서다니, 그에게 용기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규천을 살짝 놀라게만 했을 뿐, 그가 겁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간에 또 싸울 수 있는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또 상대할 수가 있겠나? 아까 그 한 방도 운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조규천, 우리 거래 하나 하자. 일을 전부 자세히 설명해주면 내가 당신을 한번 살려줄게, 어때?” 하현이 재떨이를 만지작거리며 평온한 얼
“내 친구가 준 거야.” 하현이 대충 둘러댔다. “아무튼, 어쨌든 간에 우리가 오늘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고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으면 된 거야. 다른 일은 중요하지 않아, 알겠어?”은아는 살며시 이를 악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비록 하현이 뜬금없이 꺼낸 영상이 은아의 의구심을 더 키웠지만, 지금 이곳이 매우 무서워 그녀는 빨리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반대편에 있던 규천의 얼굴이 변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당신이랑 거래할 수 있지만, 이 일이 진짜인지 확인해본 다음에야 당신들을 놓아줄게.”하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남을 테니까 우리 아내는 먼저 가게 해줘. 우리 아내가 집에 안전하게 도착하면 알려줄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 “조규천, 내가 남아있는데 당신한테 알려주지 않을까 봐 무서워? 게다가 당신은 아마 그 일을 확인하고 나서야 배후가 누군지 말하겠지.”“그리고 우리 아내가 먼저 가야 내 마음이 놓여. 안 그러면 당신도 믿지 못 해…”규천의 낯빛이 바뀌더니 그가 갑자기 큰소리로 하하 웃으며 말했다. “시원시원하군. 그렇다면 형수님 먼저 보내지!”규천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전에 나쁜 생각에 두 눈이 가려져서 일처리를 조금 극단적으로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정했다.지금 규천에게 여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현의 소식이 더 중요했다.만약 규천이 신중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의 결말이 지용과 같을지도 모른다.신분, 지위, 권력과 여자 중에 어느 게 더 중요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 규천 같이 야심 찬 사람은 당연히 일의 중요함을 구분할 수 있었다.“길을 터!” 규천이 손짓했다.그의 부하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길을 트고 문까지 열어줬다.“하현, 당신…” 은아는 멍해졌다. 어떻게 말 몇 마디로 그녀를 놓아주나, 그녀가 가면 하현은 어떡하나?“당신 먼저 집에 가, 걱정하지 마. 나는 금방 올 테니까 조심해서 운전하고.” 하현이 은아에게 차 열쇠를 떠밀어 넘
이때, 백범은 공손하게 하현 곁으로 가더니 두 팔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도련님, 이 녀석을 어떻게 할까요?”이 모습을 보자 규천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변백범, 너 미쳤어? 이런 데릴사위, 머저리를 도련님이라고 불러? 그래도 나랑 서울 길바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급이 높은 사람인데, 그러고 싶어? 이 자식이야말로 진정한 쓰레기 사위인 거 알아 몰라!”백범은 늘어뜨린 두 팔을 거두지 않고, 그저 살며시 고개를 들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규천, 아직도 모르겠어? 죽어도 어리석은 귀신이 되겠네!”규천이 차가운 웃음을 연이어 터뜨렸다. 백범이 뜬금없이 왔고 부하들도 아주 많긴 했지만, 변백범이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대겠나? 그럴 엄두가 있었다면 이미 손을 댔겠지,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변백범, 나한테 겁줄 필요 없어. 나도 위에 누가 계셔,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오늘 손을 썼으면 너는 좋게 끝나지 않았을 거야. 내 일에 감히 끼어들어?” 규천은 하찮다는 표정을 내비쳤다.백범은 픽 웃더니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예전에 규천을 건드리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규천도 나름 배경이 있었으니, 그를 건드리면 큰일 났을 게 뻔하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제 하현이 그를 데려가 지용을 처리했으니, 이참에 조규천 하나도 처리하는 게 대수인가?비록 많은 사람의 눈에 하현은 그저 모두가 하찮게 보는 쓰레기 데릴사위였지만, 백범은 알고 있었다. 도련님의 출신은 결코 무시할 게 못 됐고, 그는 수년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패가 있을 지 누가 알겠나?이 순간, 백범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하현 앞에서 그는 말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백범이 침묵하는 걸 보자, 규천은 백범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걸로 착각하여 더더욱 자신만만해졌다. “너도 내 배경을 알고 있으니, 얼른 네 사람들을 데리고 꺼지지 그래? 꼭 내가 널 내다 버려야겠니?”이때, 하현이 느닷없이 일어서더니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