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쓸데없는 소리 없이 몸을 반나절 뒤적여 만 원 한 장을 겨우 꺼냈다. 그리고 그는 아쉬운 듯이 경매사에게 돈을 건넸다.어쩔 수 없다. 하현에게 현금이라고는 만 원밖에 없었다.“푸흡!”“하하하, 너무 웃겨, 현금 만 원으로 를 구매하는 사람이 있어?”“만 원을 참 꼭꼭 숨긴 거 보면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던 거 아니겠지?”“어쩐지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더니, 만 원밖에 없는가 보죠?”“하현, 이 그림을 잘 보관해야 해. 시간 나면 그림 감상하러 찾아갈게, 만 원이나 하는 세기의 그림이잖아! 하하하…”진우와 시훈은 입을 못 다물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현은 너무 웃기다. 혹시 그는 연극배우인가?하현은 원래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싶었으나, 은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시대는 역사를 조금 아는 것만으로도 골동품 감정을 할 수가 있나?”“쏴아…”눈 깜짝할 사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하현에게 떨어졌다. 이 녀석은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지? 설마 지금 이 가 진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돈에 환장했나?옆에 있던 시훈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하현의 얼굴을 때릴 기회도 찾지 못했는데, 이 녀석은 아까 한번 맞은 걸로도 모자라 지금 맞고 싶어 안달 나다니, 죽으려고 작정했나? 정말 끝을 보고 싶나?“은아야, 말 좀 안 하게 막으면 안 돼? 너무 쪽팔리잖아!” 세리는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은아는 조금 곤란해하며 말했다. “입을 열었으니, 하현도 자기만의 이유가 있겠지?”이 순간, 은아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설마 하현에 대한 시선이 조금 좋아져서 그런 건가?하현은 세리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온화한 얼굴로 은아를 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의 역사를 말하자면, 두 번째도 있어. 그건 바
이 말에, 진우는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하현이 계속 망신만 당한다면, 자신에게는 기회가 있었다.하현은 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아셔야 할 것이, 황공망은 원사대가 중 한 명이며 제일 잘하는 것이 바로 산수화입니다. 황공망은 수묵화를 아주 노련하게 잘 그리고, 그의 그림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황공망은 수목의 기초 위에 엷은 적색의 채색을 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바로 전설의 ‘천강산수’ 기법입니다. 이 산수 화법이 그의 작품에 웅장하고 망망한 기운을 더하죠… 모두 한번 보셔도 돼요. 이 그림, 제가 말한 것과 똑같지 않나요?”사람들은 하현이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자,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몇 번 자세히 봤는데 하현이 말한 것과 일치했다. 시훈만 소리 내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을 뿐이다.이놈이 그런 말을 한다고? 설마 인터넷에서 파는 많은 그림이 모두 고품질 프린터기로 인화됐다는 거 모르나? 원작과 얼마든지 똑같이 인화할 수 있다.이 시각, 시훈은 냉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확신했다. 하현은 사람들이 자신이 낸 만 원이 그 값을 한다고 느끼게 하며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서 여기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반면, 수정은 골동품 명가 출신이라 골동품 감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제일 진지하게 임했기 때문에, 지금 그녀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문제는, 가짜는 가짜라는 것이에요. 만약 단순하게 이런 화법을 분석하자면, 진품의 사진 아무거나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죠. 당신이 구매한 이 그림이 진짜라고 말하고 싶다면 증거를 꺼내야겠죠? 만약에 오늘 증거를 꺼낼 수 있다면, 원하는 거 뭐든지 다 할게요! 만약 꺼내지 못한다면, 바닥에 머리 박고 나한테 사과하세요!”“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네!” 수정은 은니가 거의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증거를 꺼내서 이 그림이 진짜라고 말할 수
절매수는 민국시대 감정사의 독보적인 감정 방법이었다. 듣기로는 손을 내밀기만 하면, 어떤 명화 골동품도 진위를 감정할 수 있었다.현재까지 이 감정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수정 역시 할아버지가 절매수를 할 수 있어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안 씨 어르신도 당시에 절매수를 전수한 사람은 두 번째 사람에게 또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기에, 안씨 집안에는 할 줄 아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그런데 지금 이 절매수가 데릴사위의 손에 나타났으니, 수정은 자기가 꿈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뭐? 절매수?”현장에 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정의 말을 듣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이 데릴사위가 막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능력이 좀 있는 건가?시훈과 진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을 뿐,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들도 조금의 지식은 있어, 안 씨 집안 어르신이 절매수를 할 줄 안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안 씨 집안 다른 사람들은 할 줄 몰랐다.현장에는 오직 하현밖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강남 하 씨 집안은 집안도 크고 사업도 막대하여, 무술뿐만 아니라 무슨 골동품 감정, 피아노, 승마술 등등 대강 할 줄 알았다.하지만 이 대강 할 줄 안다는 것도 보통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 씨들이 모셔온 선생님들은 모두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하현의 골동품 감정 선생님을 예로 들자면, 하현은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모르고 그가 곧 100세가 될 노인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의 감정 방법과 안목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했다. 하지만 노인의 말에 따르면, 하현은 청출어람이었다. 단지 하현이 골동품 감정에 흥미가 많지 않아서 여태까지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오늘, 하현은 조그마한 것을 했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자기가 접은 흔적을 가볍게 만지며, 하현은 뒤돌아서 수정을 힐끗 보더니 웃을락 말락 말했다. “수정 씨, 방금 말씀하셨죠, 이 그림이 진짜라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겠다고?”이
이 시각, 시훈의 안색은 수없이 변했고, 그는 앞으로 몇 걸음 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이 그림이 여전히 가짜라고 생각해요. 그래 봤자 진짜와 극도로 흡사한 복제품일 뿐이라고요. 수정 씨, 당신 할아버지가 감정계의 조상급 인물 아닌가요? 어르신을 모셔와서 한번 보게 할 수 있을까요?”이 말을 듣자, 수정은 순간 몸을 떨더니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시훈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자기도 지금 이 의 진위를 알지 못하니, 자기 집안 어르신을 모셔와야 진위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시훈은 이런 상황일지라도 이런 침착함을 유지하다니, 그가 매우 훌륭한 남자라는 것을 대변해주었다.이때, 수정이 심호흡 한 번 하고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를 모셔와서 이 그림의 진위를 한 번 보게 하죠!”말을 끝마치자, 수정은 핸드폰을 꺼내어 영상통화를 걸었다.이 장면을 보자, 많은 사람이 온몸을 떨더니 깜짝 놀란 기색을 띠었다.수정의 할아버지 안흥섭은 골동품계의 원로급 인물이었다. 그는 현재 연세가 많아 자주 나서지는 않지만, 업계에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흥섭의 감정서가 있고 없고에 따라 가격이 10배 이상 차이 났다!이런 사람이 직접 나선다고 해주면, 이 의 진위를 반드시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곧이어, 영상통화가 연결되었다. 한복을 입은 노인 한 명이 화면에 나타났고, 그의 수염과 머리카락 모두 하얬지만 매우 비범하게 느껴졌다.세상에!진짜 안흥섭이었다!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탄성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은 일반적으로 티비의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장소에서 흥섭 같은 대가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주변 사람들의 기분이 바뀐 것을 느끼자, 수정도 조금 자신만만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힐끗 보았지만, 그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순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남자가 자기한테 아버지라고 부
“거기 데릴사위, 수정 씨 핸드폰 안 놓아요?”“아직도 안 씨 어르신을 반박하고 싶다니, 미쳤어요?!”“우리도 바보지, 당신을 믿었다니!”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하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끊임없이 그를 질책했다.이때, 화면 건너의 흥섭이 갑자기 차가운 한숨을 들이마시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천강산수’ 기법? 그건 황공망의 독보적인 화법인데, 가짜 그림 한 폭에 어떻게 이게 나타날 수가 있지? 여태까지 모사 수준이 이렇게 높은 사람은 없었는데, 불가능해, 불가능해…”흥섭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여기 어린 친구, 당신이 하는 말에 따르면 이 그림이 진품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럼 설명 한번 해봐, 박물관에 있는 완전하지 않은 그림 두 폭은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 있는데 당신의 이 그림도 가짜가 아닌 듯하니, 정말 이상하지….”뭐라고? 양대 박물관에 있는 결본도 진품이고, 눈앞에 있는 이 그림도 가짜가 아니라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이 말을 하자, 적지 않은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하현과 그 핸드폰을 왔다 갔다 주시하며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을 띠었다.옆에 있던 시훈이 이마를 살짝 찡그리더니, 잠시 후 하현을 째려보며 소리쳤다. “하현, 당신이 어떻게 안 씨 어르신이랑 말을 나눠? 어쩜 예의가 하나도 없어? 얼른 수정 씨에게 핸드폰을 돌려줘!”지금 시훈의 눈에 이 그림의 진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흥섭이 그건 가짜라고 말했으니, 진짜라고 하더라도 가짜여야만 했다.만분의 일도 안 되는 기회일지라도, 시훈은 하현에게 어떠한 나설 기회도 주고 싶지 않았다.“당신은 말하지 마요!” 수정이 갑자기 시훈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제일 심취해 있는 것은 골동품 감정이었다. 이 시각, 수정은 할아버지의 말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 그녀 역시 진실을 알고 싶었다."할아버지, 뭐라도 알아내셨거나 생각이 나셨나요?" 수정이 공손하게 물었다.화면 너머의 흥섭은
수정은 하현의 판단을 안 믿어도 되었지만, 그녀는 흥섭에게 100%의 믿음이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골동품 감정계의 시조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그와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어린 친구, 최근에 시간 나면 우리 안씨 집안에 한번 놀러 와요, 내가 언제든지 환영할 테니.” 화면 건너의 흥섭은 빙긋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하현은 수정에게 아무렇게나 핸드폰을 던지고 웃을 듯 말 듯 말했다. “수정 씨, 조금 전에 한 저희의 내기를 기억하고 있나요?”“난…” 수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설마 진짜로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나?곁에 있던 시훈은 분노에 가득 차 소리쳤다. “하현, 당신이 그러고도 남자야? 수정 씨는 너랑 장난친 건데, 그걸 진짜라고 생각해? 여자랑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만큼의 능력밖에 없나 보지!”“당신은 입 좀 다물어요!” 수정이 갑자기 입을 열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하현을 주시하며 잠시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현 씨, 내가 잘못 봤다는 거 인정할게요. 하지만 우리 골동품계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신용이에요. 당신과 내기를 했으니, 오늘부로 저… 저는… 저는…”수정은 붉어진 얼굴로 반나절 동안 망설였지만, 여전히 “아버지” 세 글자가 입 밖에서 튀어나오질 못했다.“안되나요?”“수정 씨, 절대 안 돼요. 어떻게 이 데릴사위를 그렇게 불러요!”“저 자식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어떻게 수정 씨랑 비교하겠어요!”“맞아요, 게다가 이 를 감정한 사람은 안 씨 어르신이세요, 이 녀석이 아니라!”적지 않은 사람이 재빠르게 입을 모았는데, 이는 수정이 정말 입을 열게 돼서 안씨 집안이 부끄럽게 되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끝장났기 때문이다.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현에게 무릎을 꿇고 싶은지 모른다. 이렇게 간절하게 빌 테니, 절대 수정 씨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안씨 집안은 보이는 것과 같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하현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기 귀찮았고, 살
은아도 조금 조급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수정 씨, 정말 죄송합니다. 하현은 말만 그렇게 한 것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이 사람이랑 싸우지 마세요.”시훈은 조용히 물었다. “은아야, 이 사람이 너의 남편이긴 하지만, 항상 그렇게 감싸주면 안 돼. 겁먹은 거면 겁먹은 거지, 이럴 필요 없어.”수정은 이마를 찡그리며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본래 상황은 종료되었는데, 지금 또 이렇게 끼어들어서 일을 점점 크게 만들수록 그녀도 더욱더 창피해졌다.이 생각을 하자, 수정의 말투가 조금 차가워졌다. “하현 씨, 우리 안 씨 집안의 명예는 장난 아니에요. 제대로 설명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이 일은 끝이 없어요.”반면, 하현은 수정이 더 존경스러워졌다. 요즘 이렇게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매우 적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하현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정 씨, 조급해할 필요 없습니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전에 수정 씨는 박물관에 있는 가 진짜라고 말하고, 저는 이곳에 있는 가 진짜라고 말했죠. 근데 사실 두 그림 다 진짜이니,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신이랑 나 두 사람의 안목은 비슷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거죠.”“휙!”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순간 여기로 집중되었다. 이 데릴사위는 논리적으로 말했고, 진짜 그럴싸했다. 두 폭의 그림 모두 진품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안목 모두 높다는 뜻이었고, 누가 이기고 지든 중요하지 않았다.수정은 이 말을 듣자, 얼굴에 풍기던 한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느끼며 웃어 보인 후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그렇게 부를 필요가 없겠죠…”하현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얼음 공주에게 정말 그렇게 부르라고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은데?이때, 수정은 이미 스스럼없게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현 씨에게 한 수 배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골동품 감정은 착실하게 해야지, 편견이 있으면 안
시훈, 진우와 세리 등의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하현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지금 하현을 대변해주겠나?다른 사람들은 다시 경매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는 그만큼 매우 유명했기 때문에,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넘쳐났다.그런데 이때, 수트 차림의 젊은이 한 명이 경호원 몇 명을 대동한 채 빠른 걸음으로 무대 뒤에서 걸어 나왔다.“구씨 집안 도련님…” 젊은이를 보자 경매사는 한숨을 들이쉬었다. 저 사람은 구씨 집안의 구기찬이었다. 그는 현장의 담당자라 아까 일어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기찬의 눈빛은 매우 싸늘했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없이 현장을 한 바퀴 쭉 훑다가 하현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손님, 저희 대신 이 의 진위를 감정해주셨다고 들었는데 맞으신가요? 저희 구르미 경매 회사의 죄송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손님에게 1억 원의 감정료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하현은 미세하게 이마를 찡그렸다. 이 구기찬이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감정료를 준다고? 이건 완전 뻔뻔하게 억지 부리는 것 아닌가?하지만 그 말도 맞기는 했다. 진정한 세기의 명화 였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시훈도 웃으며 말했다. “기찬 씨, 이 데릴사위한테 뭐 하러 친절하게 대하세요? 아직도 만 원으로 를 가져가고 싶다고 하나요? 웃기지 않나요?”기찬은 인상을 쓰며 무의식적으로 시훈을 힐끗 보았다. 이 자식은 일부러 그러는 거지? 설마 구르미 경매는 최소한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나? 내가 이미 나서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이 빌어먹을 자식이 또 그걸 언급해? 죽고 싶어 안달 났나?그러나, 는 확실히 진귀했기에 그 뒤에 있는 이 거물을 구씨 집안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기찬은 지금 원하지 않더라도 를 되찾아올 방법을 생각해야했다.이런 생각을 하자, 기찬은 계속해서 웃으며 말했다. “손님, 1억 원의
”이 정도 이유는 되어야 우리 남해 칠절이 나설 명분이 있지.”양제명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당신들 말을 듣자 하니 이미 당신들은 날 여러 해 동안 지켜봤겠군, 그렇지?”칠절의 우두머리는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당연하지.”“남양국에서 나온 유일한 전신이니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었을 거야. 그들은 십수 년 전부터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거액의 대가를 치렀지.”“남해궁에서 이 임무를 받은 후 줄곧 손쓸 기회를 잡지 못했어.”“심지어 당신은 반쯤 독에 중독된 후에도 양유훤이 밤낮으로 보호하고 있어서 우리들이 손을 뻗칠 틈이 없었던 거야.”“이 일은 수십 년 동안 우리 남해궁의 치욕이었어.”“우리 세대에 와서 이런 해묵은 일을 해결하게 되다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어?”우두머리는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이곳은 풍수가 좋고 지금 날씨도 좋으니 내년 오늘 당신의 기일에 모이기에는 딱 좋은 날이지!”말을 마치며 우두머리는 오른손을 흔들어 끝이 날카롭게 휜 남양칼을 빼들었다.그의 동료 여섯 명도 냉소를 흘리며 남양칼을 꺼냈다.잔뜩 독기를 뿜고 휘어져 있는 칼끝이 양제명을 향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퍼런빛을 번쩍이고 있었다.일찌감치 독에 담가 둔 것임이 분명했다.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둑이 어떻게 훔칠까 걱정하진 않고 내 걱정을 다 해주다니!”“당신들 남해궁 사람들이 내 걱정까지 해주느라 아주 수고 많아!”“그런데 내가 한 가지 궁금해서 말이야. 당신들이 나한테 손을 쓰는 건 이해가 가는데 하현의 목숨은 왜 가져가려는 거야?”“개인적으로 제안 하나 하지. 하현은 아무 상관없으니 가게 해줘.”“안 그러면 사람 하나 더 남아 있는 거니까 당신들한테도 좋을 게 없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이놈들은 날 노리고 온 겁니다. 내 목숨을 노리고 값을 두 배나 쳐 줬다잖습니까?”칠절의 우두머리는 들고 있던 남양칼을 돌리며 섬뜩한
양제명이 어렵게 꺼낸 말을 듣고 하현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양제명의 말이 그의 마음속을 어지럽게 휘저으며 당혹스럽게 만들자 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참, 어르신. 세 번째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말을 하면서 하현은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두 사람은 어느덧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이어 하현은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양제명은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을 정자 아래로 옮겨달라고 부탁한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 번째 일은 그리 번거롭지 않아.”“하현, 이 늙은이를 도와 마지막 이 문제를 좀 도와줘.””자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당최 일어설 수가 없어서 너무 불편해. 자네가 조금만 힘을 써 준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떤가?”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어르신도 무도 고수입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전신이십니다. 그러니 어르신의 몸은 어르신이 가장 잘 아실 겁니다.”“어르신은 충분히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반 년 정도 시간이 걸릴 뿐이죠. 어르신, 설마 반 년도 못 기다리시는 겁니까?”양제명이 한숨을 깊이 내쉬며 말했다.“기다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러네. 시간은 날 기다려 주지 않아.”“양 씨 가문이 일어서려면 결국 전신이 필요해.”“그렇지 않으면 3대 가문 중 하나가 되는 영광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난 일어설 수 없네. 자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받쳐준다고 해도 결국은 사상누각일 뿐이야.”하현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지금 무리해서 회복하면 어르신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앞으로 몇 년은 끄떡없이 사실 수 있는데 고작 반 년 일찍 일어서려고 이렇게 무리하시는 건 아무 가치가 없어요!”하현은 지난번에 양제명의 다친 몸을 살폈을 때 이미 그의 상태를 파악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하현은 진작에 양제명의 몸을
”하현, 오늘 밤 자네와 나 사이에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네.”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는지 양제명은 가는 도중에도 절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첫째, 이번 양 씨 가문 일에 많은 도움을 준 거 너무 고맙게 생각하네.”“자네가 없었다면 이 늙은이는 생각지도 않은 데서 의외의 좌절을 겪고 신음하고 있었을 걸세. 우리 소중한 손녀도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과찬이십니다. 양 씨 가문의 일은 결국 양 씨 가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내가 끼어들면 양 씨 가문은 더욱 분열될 뿐입니다.”양제명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세상에 영원한 왕조도 없고 시들지 않는 가문도 없어.”“한 가문이 세대교체를 해야 할 때가 되면 대가를 치러야 하네. 그래야 가문을 이어갈 수 있어.”“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우리 양 씨 가문은 앞으로 백 년은 거뜬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양 씨 가문 주식의 30%를 자네한테 넘기고자 하니 부디 받아주시게.”하현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양제명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끝에 승낙했다.어쨌든 그의 지분이 있어야 원 씨 가문이든 이 씨 가문이든 다른 가문이 양 씨 가문을 넘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그리고 남양 무맹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양 씨 가문은 더욱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갈 수 있다.하현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제명은 웃으며 하현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걸 너무 탓하지 말고 들어주시게.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네는 이미 전처와 이혼한 거라던데, 아닌가?”하현은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아, 뭐,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하현, 내 말 좀 들어봐!”양제명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하현의 말을 끊었다.“두 번째 할 말은... 자네, 우리 양 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올 생각 없는가?”“자네만 동의한다면 지금부터
노부인은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후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축 처진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양제명은 한숨을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에게 자신을 가게 안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그는 노부인 일행은 그대로 바깥에 무릎을 꿇도록 내버려두었다.십수 년 동안의 부귀영화를 생각한다면 지금 무릎 꿇은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양제명이 이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부의 정은 여전히 깊다고 할 수 있었다.한 시간 후 노부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짚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뒷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서늘함과 밀려오는 원한이 뒤엉켰다.노부인은 운전기사에게 어서 출발하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사적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보호 유리를 완전히 올린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노부인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하 씨 그놈이 왜 아직도 죽지 않았지?”“내가 이미 금액을 올려서 입금했을 텐데?!”“언제 죽일 작정이야?!”전화기 너머에서 대답했다.“노부인, 하현의 신분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만반의 계획을 세웠지만 도무지 손을 쓸 기회가 없었어요...”노부인은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나는 그놈이 어떤 신분이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없어!”“당신들이 어서 빨리 그놈의 숨통을 끊어주기만 하면 돼!”“돈이 더 필요하면 더 주지! 천억 더 줄게!”“그놈만 죽여 준다면 우리 양 씨 가문 재산의 절반까지도 떼어 줄 테니까 명심해!”노부인은 이 모든 일의 주범이 하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오지랖 넓게 감히 양 씨 집안일에 방해를 놓는 그놈만 죽인다면 양제명과 양유훤이 어찌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자신의 계략으로 얼마든지 양제명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좋습니다. 노부인께서 이렇게 대범하시니 저희
”맞아요. 노부인이 양제명과 양유훤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문은 이미 많이 발전했을 것이고 일찍이 남양 제일 가문이 되었을 거예요!”“맞습니다. 이건 노부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일입니다!”“양유훤이 노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양제명 어르신이 오랜 부부의 정을 생각해 주신다면!”“우리는 그들 덕분에 앞으로 수십 년은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어요!”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었다.그들은 지금껏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는 한편 수십 년 동안 더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런 기회를 내동댕이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그들은 사회로 나가 일할 능력을 잃은지 오래였고 가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밖에 구걸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양제명과 양유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말하자면 양 씨 가문의 노부인의 지위가 흔들렸고 더 이상 노부인이 양 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를 본 양호남이 입을 열었다.“무슨 말이야?!”“당신들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지금 할머니를 의심하는 거야? 당신들 살고 싶지 않아?”“살기가 지겨워?!”양신이도 옆에서 거들었다.“오늘날 우리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다 할머니 덕분이야. 그런데 지금 그런 할머니를 몰아붙인다니, 당신들은 양심도 없어?”“당신들 나중에 우리 할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어?”양호남과 양신이는 다른 사람들이야 양유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 용서를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기회가 절대로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현과 양유훤이 내건 첫 번째 조건이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었다.하 씨 저놈은 정말로 악랄하기 그지없어!“닥쳐! 모두 입 닥쳐!”이 광경을 보고 노부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기업청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우리 가문의 장부와 납세 명세서를 살펴보겠다고 합니다!”“노부인, 노동청에서도 우리 양 씨 가문 공장에 와서 그동안 직원들 월급을 주지 않은 일이 발각되었으니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했습니다.”“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몇몇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양유훤과 접촉하여 아주 낮은 가격으로 우리 가문의 주식을 넘겼습니다!”“그리고 지금 공급업체에서는 대금 상환을 재촉하고 있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에서는 만기도 도래하지 않은 대출을 상환하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노부인, 원 씨 가문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원천신이 가문에서 쫓겨났다구요. 이제 더 이상 원 씨 가문 사람이 아니랍니다...”나쁜 소식들이 줄을 이어 들어와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노부인, 남양 무맹은 양씨백약을 불량품이라 선포하고 앞으로 양가백약 제품만 사용할 거라고 합니다...”“우리 가문은 완전히 망했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넋을 잃은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지금 같으면 하현은 정말로 1분 만에 양 씨 가문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한순간에 모든 부귀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자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하냐구요!”“하현은 지금 급소를 찌르며 우리 가문을 공격하고 있어요. 이러다간 우리 가문이 금방 마비될 수 있다구요!”“하현이 이렇게 밀어붙이다가 쌍방이 모두 손실을 입는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완전히 무너지면 그때 하현은 양유훤과 손을 잡고 양가백약으로 시장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어요.”“노부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뭐라도 한 마디 하시죠!”“아니면 양유훤 앞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요. 어쨌든 양유훤도 양 씨 가문 사람이니까 우리가 용서하면
”그리고 엄마가 금정에 있는데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내가 코스 짜 줬어. 아마 기분 좀 나아질 거야.”“날 봐서라도 나중에 엄마 만나면 너무 충돌하지 말고, 응?”“그래, 그럼.”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은아에게 물었다.“아, 당신 뭐 잊은 거 없어?”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뭔데?”“사흘 뒤면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우리 이번 참에 혼인신고 다시 할까?”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굴이 볼그레지며 허둥지둥 영상통화를 끊었다....오후 3시, 페낭 종합병원 VIP 병동.양 씨 가문 노부인은 한참 전에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그녀는 지금 병상에 기대어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깊고 날카로운 주름이 움푹 패어 있었다.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화를 내기는커녕 그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녀 주위로 살벌한 기운이 자욱이 맴돌았다.방에 모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 노부인만 쳐다보고 있었다.다들 노부인이 뭐라도 얼른 생각을 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하지만 노부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한참이 지나 양호남이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침묵을 깨고 나왔다.하현이 내건 조건들을 노부인이 들어줄까 봐 양호남은 마음 가득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하현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자신의 다리도 부러질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은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무슨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맞아요. 할머니는 우리 양 씨 가문 기둥이잖아요.”“이럴 때일수록 할머니가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그리고 우리한테 지시를 내려주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싸울 수가 있어요.”양신이가 얼얼한 얼굴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우리 양 씨 가문은 기개가 있는 집안이에요. 남양 3대 가문 중
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할머니!”양호남이 쏜살같이 달려갔다.“할머니, 괜찮으세요?!”양신이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당신이 사람이야?!”“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을 괴롭혀야 되겠어?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관대하게 봐줬다구!”“그런데 당신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할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어!”“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양신이가 자신에게 마구 악담을 퍼붓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양 씨 가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내일 이맘때 양 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양유훤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면!”“그리고 노부인이 직접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면!”“미안하지만 양 씨 가문은 이대로 끝나는 거야!”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슬 퍼런 하현의 말에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흉악한 낯빛으로 말했다.“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양제명, 어떻게 외지인 놈과 손을 잡고 집안 식구들을 괴롭힐 수가 있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양제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하현,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원가령이 참지 못하고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노부인이 뭐라고 하시든 당신한테는 어르신이잖아!”“대하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그러고도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앞세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원천신도 매서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남자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어?”“사람이 대범해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천신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제가 기회를 드리죠. 악인을 옆에서 부추기며 나쁜 짓을 한 거, 당장 사과하세요!”“사과?”원천신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원 씨 가문을 뭘로 보고 이래? 나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