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보아하니 오늘 밤에 이 사기꾼이랑 같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하엔 그룹 대표도 모르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 차라리 내일 내 동창 슬기를 만나게 해줄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하현은 은아에게 말했다.“진짜? 그러면 너무 좋지.” 은아는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슬기는 하엔 그룹 대표의 비서인데, 그녀의 연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떠한 고위 인사를 만나는 것보다도 쓸모가 있었다.진우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세리는 이미 살며시 고개를 젓고 있었으며 그에게 말을 이어가지 말라고 암시했다. 이 상황 속에서 그는 명백히도 말실수를 했으니, 무어라 더 말해도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이 시각, 경매장에 있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늘어났고, 결국 천 명 가까이 되었다. 구르미 경매 행사는 실로 인기가 많았다.잠시 후, 경매가 시작되었다.앞서 나온 몇몇 경매품들은 고전적인 시계, 진주와 보석 등등의 물건이었다. 비록 전부 보기 드문 물건이었지만, 사람들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이 물건들의 낙찰가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골고루 있었고, 그 값은 상당히 비쌌지만 사람을 놀랍게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다음 경매품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참지 못하고 탄성을 내뱉었고, 그녀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아주 큰 다이아몬드 반지였는데, 눈으로만 대충 봤을 때 최소 12, 13캐럿 정도 되어 보였다. 게다가 그 다이아몬드 반지는 매우 맑고 투명했고, 컷이나 투명도를 봐도 굉장히 훌륭했다.이런 다이아몬드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고, 지금 이렇게 경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세상에! 이게 바로 전설의 비둘기 알이구나. 당시에 남아프리카에서 발굴한 그 스타 다이아몬드 맞지?”“듣기로는 이 다이아몬드가 유럽의 다이아몬드 대가가 직접 컷한 거라던데. 게다가 다이아몬드를 프러포즈 반지에 박아서, 이 비싼 반지의 이름은 영원한 별이야!”“그럼 이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소리야?
세리는 안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진우에게 관심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은아만을 바라보았고, 세리에게는 인정사정 없었다. 이것이 바로 세리 마음속의 영원한 아픔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리는 진우같이 키 크고 잘생긴 돈 많은 남자에게 일찌감치 달려들었을 것이지, 어디 또 은아에게 추천했겠나?“하현 씨, 자기 아내가 갖고 싶은 것도 못 사주는데 여기서 허세 좀 그만 부리면 안 돼요? 보기만 해도 짜증 나요!” 세리는 안색을 계속 바꾸며 차갑게 쏘아붙였다.“하현, 진세리, 둘 다 한 마디씩만 줄이자.” 이 광경을 보니 은아는 머리가 아팠다. 세리는 전부터 하현을 경멸해왔는데, 예전에 하현이 말대꾸를 안 했을 때 세리는 두 마디만 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의 하현은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졌고, 세리는 말싸움에서 진 적이 이미 몇 번 되었다...옆에 있던 진우는 웃으며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이때.“100억!”“110억!”“120억!”진우에게 잘난 척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영원한 별의 가치가 배로 뛰려고 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진우는 어리둥절했다. 이 여자들은 완전히 미친 거 아닌가? 다이아몬드라는 것은 물론 좋았지만, 고작 보석 하나였는데, 이렇게까지 돈 쓸 일인가?그런데 아까 자신이 그렇게나 떠들어댔는데, 이 다이아 반지를 손에 넣지 못한다면…이 생각을 하자, 진우는 진절머리가 났지만 이를 악물며 말했다. “1… 21억!”“여기 신사분, 저희의 입찰가는 10억입니다. 1억만 추가하신다면 입찰 인정이 안 됩니다.” 여자 경매사가 짧고 간단하게 한 마디 알려줬다.“하하하!”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구르미 경매장은 대체 어떻게 된 곳인가? 진우의 이 입찰방식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알아차렸다. 이 녀석은 분명 돈을 추가하지 못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나?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기는 했지만
은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초에 진우가 그녀를 위해 돈을 이렇게나 많이 꺼내 들었으니, 그녀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하현을 비웃자, 은아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비록 하현은 돈이 없었지만, 비록 하현은 데릴사위였지만, 지난 3년 동안 그는 옷을 세탁하고 요리하며 바닥을 쓸고 닦고 정말 뼈 빠지게 일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은아는 처음에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금 조금씩 그의 좋은 점을 알아가고 있었다.게다가 자기 남편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바깥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 대면 망신당하는 것은 은아였다.이 순간, 은아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서 대표님, 이전에 하셨던 말들을 취소하시고 하현에게 사과하시길 바랍니다.”“내가 저 사람한테 사과하라고요?” 진우는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저는 다 은아 씨 좋으라고 한 거예요. 은아 씨, 이 녀석은 노력도 안 하고 밖에서 이렇게 건방지게 굴기나 하고, 언젠가 사고 칠 거예요. 저는 선량한 마음으로 저 녀석한테 뭐라 따지지도 않았고, 많아도 말 몇 마디만 꾸짖었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곧장 저 녀석을 때렸을 거예요!”다른 한쪽에 있던 시훈도 말을 덧붙였다. “맞아, 은아야, 너는 너무 순진해서 사람 마음이 사악하고 위험한 걸 몰라. 이렇게 면전에서 얘기하는 게 오히려 별일 아니지, 정말 무서운 건 문제를 일으켜서 다른 사람의 원한이라도 사게 된다면, 그때 불행해질 사람은 저 녀석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집안 전체도 포함이야. 은아야, 절대 작은 일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보면 안 돼. 동창이 아니었으면,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거야.”시훈은 진심 어린 얼굴을 내비쳤다.옆에 있던 수정은 시훈을 힐끗 보더니, 그에게 또 가산점을 주었다. 이 남자 은근히 괜찮단 말이지, 예의 바를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자기 동창을 위해 생각했다.반면, 하현은 너무 역겨웠다. 데릴사위인 것은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주제 파악도 못 해서
은아는 부인하지 않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은아의 작은 손 위에 얹은 다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남편이 선물해줄게!”은아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잠시 멍하게 있었다. 오히려 수정이 하현을 힐끗 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이 녀석은 능력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쳐, 허세도 제대로 부릴 줄 모른다. 이 물건이 하씨 집안 손에 들어가면 누가 가서 되찾아 올 수 있겠나?하현 같은 한낱 데릴사위가 할 수 있겠나?......“아래는 여섯 번째 경매품입니다. 이 물건은 저희 감정사도 진위를 감정하지 못했지만,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앞으로 나와 살펴보시고 입찰할지 결정하셔도 됩니다…”이때, 무대 위에 있던 여자 경매사의 눈앞이 반짝이며 현장 분위기가 좋다는 걸 느낀 후 박수를 치자, 누군가 재빨리 크고 높은 나무 선반을 밀며 무대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사람들의 시선이 나무 선반으로 향했고,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물건인지, 구르미 경매 행사의 감정사조차 눈을 뜰 수가 없었다.곧이어,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림 하나가 선반 위에 나타났는데, 강화 유리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만지지는 못하되 사람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그림을 보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차가운 한숨을 들이쉬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그러자, 어떤 사람이 실성하여 입을 열었다. “이건 황공망의 ? 어떻게 이럴 수가?!”“뭐? 이게 바로 전설의 10대 중국 명화 중 하나인 ?!”“이 그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벌써 오래되지 않았나? 어떻게 여기에 나타날 수 있지?”“이 그림의 시작가는 얼마인가요?”많은 사람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현장에 있던 수많은 골동품 거물은 이 순간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경매사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여러분 모두 이 물건을 모르시는 것 같으니 제가 바로 말하겠습니다. 판매자의 신원은 신비스럽고 이 그림의
“물론, 이 그림은 진품이랑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서 훗날에 어떤 사람이 그린 매우 흡사한 복제품인 것 같아. 게다가 현대에, 심지어 만 원의 가치도 없는 온라인으로 구매한 공산품일 지도 몰라…” 시훈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동시에 시훈은 경매사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저기요, 저는 이 구르미 경매를 망치려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는 거니까 개의치 않으시길 바라요.”경매사는 웃으며 말했다. “이 그림은 저희 감정사조차 진위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품이 오래전에 두 개로 나누어졌군요. 예전에는 정말 진품과 똑같게 모방한 걸 줄 알았는데 감정사도 가짜라고 말하지 못하다니, 감정도 할 필요 없이 가짜라고 증명할 수 있던 거군요.”“이제 누군가는 알겠죠? 이 그림은 만 원도 안 한다는 걸.” 시훈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은 순간 탄성으로 가득 찼다.고수다! 분명 고수야!이 젊은이는 의 진위를 분석할 필요 없이 역사를 인용하여 이 그림의 진위를 증명하다니, 이 수법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매 시대마다 인재가 태어난다고 하던데, 서울에 이렇게 대단한 골동품 감정 고수가 있을 줄이야!특히 골동품 거래를 즐기는 몇몇 거물은 존경하는 얼굴로 시훈을 바라보았다.그들도 아까 이 의 진위를 고민했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입찰 경쟁을 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지금 박시훈은 한마디만으로 사람들을 꿈에서 깨우다니, 아주 대단했다. 모두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어쨌거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니, 가품을 사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역겨울까.시훈의 비웃음을 들으니, 옆에 있던 진우도 조롱하는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데릴사위는 과연 멍청이다. 구르미 경매에서 싼 물건을 주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어찌 됐든 웃음거리밖에 안 됐고, 시훈이 자기를 내세우게 했을 뿐이
하현은 쓸데없는 소리 없이 몸을 반나절 뒤적여 만 원 한 장을 겨우 꺼냈다. 그리고 그는 아쉬운 듯이 경매사에게 돈을 건넸다.어쩔 수 없다. 하현에게 현금이라고는 만 원밖에 없었다.“푸흡!”“하하하, 너무 웃겨, 현금 만 원으로 를 구매하는 사람이 있어?”“만 원을 참 꼭꼭 숨긴 거 보면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던 거 아니겠지?”“어쩐지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더니, 만 원밖에 없는가 보죠?”“하현, 이 그림을 잘 보관해야 해. 시간 나면 그림 감상하러 찾아갈게, 만 원이나 하는 세기의 그림이잖아! 하하하…”진우와 시훈은 입을 못 다물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현은 너무 웃기다. 혹시 그는 연극배우인가?하현은 원래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싶었으나, 은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시대는 역사를 조금 아는 것만으로도 골동품 감정을 할 수가 있나?”“쏴아…”눈 깜짝할 사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하현에게 떨어졌다. 이 녀석은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지? 설마 지금 이 가 진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돈에 환장했나?옆에 있던 시훈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하현의 얼굴을 때릴 기회도 찾지 못했는데, 이 녀석은 아까 한번 맞은 걸로도 모자라 지금 맞고 싶어 안달 나다니, 죽으려고 작정했나? 정말 끝을 보고 싶나?“은아야, 말 좀 안 하게 막으면 안 돼? 너무 쪽팔리잖아!” 세리는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은아는 조금 곤란해하며 말했다. “입을 열었으니, 하현도 자기만의 이유가 있겠지?”이 순간, 은아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설마 하현에 대한 시선이 조금 좋아져서 그런 건가?하현은 세리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온화한 얼굴로 은아를 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의 역사를 말하자면, 두 번째도 있어. 그건 바
이 말에, 진우는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하현이 계속 망신만 당한다면, 자신에게는 기회가 있었다.하현은 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아셔야 할 것이, 황공망은 원사대가 중 한 명이며 제일 잘하는 것이 바로 산수화입니다. 황공망은 수묵화를 아주 노련하게 잘 그리고, 그의 그림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황공망은 수목의 기초 위에 엷은 적색의 채색을 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바로 전설의 ‘천강산수’ 기법입니다. 이 산수 화법이 그의 작품에 웅장하고 망망한 기운을 더하죠… 모두 한번 보셔도 돼요. 이 그림, 제가 말한 것과 똑같지 않나요?”사람들은 하현이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자,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몇 번 자세히 봤는데 하현이 말한 것과 일치했다. 시훈만 소리 내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을 뿐이다.이놈이 그런 말을 한다고? 설마 인터넷에서 파는 많은 그림이 모두 고품질 프린터기로 인화됐다는 거 모르나? 원작과 얼마든지 똑같이 인화할 수 있다.이 시각, 시훈은 냉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확신했다. 하현은 사람들이 자신이 낸 만 원이 그 값을 한다고 느끼게 하며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서 여기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반면, 수정은 골동품 명가 출신이라 골동품 감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제일 진지하게 임했기 때문에, 지금 그녀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문제는, 가짜는 가짜라는 것이에요. 만약 단순하게 이런 화법을 분석하자면, 진품의 사진 아무거나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죠. 당신이 구매한 이 그림이 진짜라고 말하고 싶다면 증거를 꺼내야겠죠? 만약에 오늘 증거를 꺼낼 수 있다면, 원하는 거 뭐든지 다 할게요! 만약 꺼내지 못한다면, 바닥에 머리 박고 나한테 사과하세요!”“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네!” 수정은 은니가 거의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증거를 꺼내서 이 그림이 진짜라고 말할 수
절매수는 민국시대 감정사의 독보적인 감정 방법이었다. 듣기로는 손을 내밀기만 하면, 어떤 명화 골동품도 진위를 감정할 수 있었다.현재까지 이 감정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수정 역시 할아버지가 절매수를 할 수 있어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안 씨 어르신도 당시에 절매수를 전수한 사람은 두 번째 사람에게 또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기에, 안씨 집안에는 할 줄 아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그런데 지금 이 절매수가 데릴사위의 손에 나타났으니, 수정은 자기가 꿈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뭐? 절매수?”현장에 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정의 말을 듣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이 데릴사위가 막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능력이 좀 있는 건가?시훈과 진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을 뿐,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들도 조금의 지식은 있어, 안 씨 집안 어르신이 절매수를 할 줄 안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안 씨 집안 다른 사람들은 할 줄 몰랐다.현장에는 오직 하현밖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강남 하 씨 집안은 집안도 크고 사업도 막대하여, 무술뿐만 아니라 무슨 골동품 감정, 피아노, 승마술 등등 대강 할 줄 알았다.하지만 이 대강 할 줄 안다는 것도 보통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 씨들이 모셔온 선생님들은 모두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하현의 골동품 감정 선생님을 예로 들자면, 하현은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모르고 그가 곧 100세가 될 노인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의 감정 방법과 안목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했다. 하지만 노인의 말에 따르면, 하현은 청출어람이었다. 단지 하현이 골동품 감정에 흥미가 많지 않아서 여태까지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오늘, 하현은 조그마한 것을 했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자기가 접은 흔적을 가볍게 만지며, 하현은 뒤돌아서 수정을 힐끗 보더니 웃을락 말락 말했다. “수정 씨, 방금 말씀하셨죠, 이 그림이 진짜라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겠다고?”이
”이 정도 이유는 되어야 우리 남해 칠절이 나설 명분이 있지.”양제명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당신들 말을 듣자 하니 이미 당신들은 날 여러 해 동안 지켜봤겠군, 그렇지?”칠절의 우두머리는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당연하지.”“남양국에서 나온 유일한 전신이니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었을 거야. 그들은 십수 년 전부터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거액의 대가를 치렀지.”“남해궁에서 이 임무를 받은 후 줄곧 손쓸 기회를 잡지 못했어.”“심지어 당신은 반쯤 독에 중독된 후에도 양유훤이 밤낮으로 보호하고 있어서 우리들이 손을 뻗칠 틈이 없었던 거야.”“이 일은 수십 년 동안 우리 남해궁의 치욕이었어.”“우리 세대에 와서 이런 해묵은 일을 해결하게 되다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어?”우두머리는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이곳은 풍수가 좋고 지금 날씨도 좋으니 내년 오늘 당신의 기일에 모이기에는 딱 좋은 날이지!”말을 마치며 우두머리는 오른손을 흔들어 끝이 날카롭게 휜 남양칼을 빼들었다.그의 동료 여섯 명도 냉소를 흘리며 남양칼을 꺼냈다.잔뜩 독기를 뿜고 휘어져 있는 칼끝이 양제명을 향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퍼런빛을 번쩍이고 있었다.일찌감치 독에 담가 둔 것임이 분명했다.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둑이 어떻게 훔칠까 걱정하진 않고 내 걱정을 다 해주다니!”“당신들 남해궁 사람들이 내 걱정까지 해주느라 아주 수고 많아!”“그런데 내가 한 가지 궁금해서 말이야. 당신들이 나한테 손을 쓰는 건 이해가 가는데 하현의 목숨은 왜 가져가려는 거야?”“개인적으로 제안 하나 하지. 하현은 아무 상관없으니 가게 해줘.”“안 그러면 사람 하나 더 남아 있는 거니까 당신들한테도 좋을 게 없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이놈들은 날 노리고 온 겁니다. 내 목숨을 노리고 값을 두 배나 쳐 줬다잖습니까?”칠절의 우두머리는 들고 있던 남양칼을 돌리며 섬뜩한
양제명이 어렵게 꺼낸 말을 듣고 하현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양제명의 말이 그의 마음속을 어지럽게 휘저으며 당혹스럽게 만들자 하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머리를 돌렸다.“참, 어르신. 세 번째 하실 말씀은 무엇입니까?”말을 하면서 하현은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두 사람은 어느덧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이어 하현은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양제명은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을 정자 아래로 옮겨달라고 부탁한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세 번째 일은 그리 번거롭지 않아.”“하현, 이 늙은이를 도와 마지막 이 문제를 좀 도와줘.””자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당최 일어설 수가 없어서 너무 불편해. 자네가 조금만 힘을 써 준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떤가?”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어르신도 무도 고수입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전신이십니다. 그러니 어르신의 몸은 어르신이 가장 잘 아실 겁니다.”“어르신은 충분히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반 년 정도 시간이 걸릴 뿐이죠. 어르신, 설마 반 년도 못 기다리시는 겁니까?”양제명이 한숨을 깊이 내쉬며 말했다.“기다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러네. 시간은 날 기다려 주지 않아.”“양 씨 가문이 일어서려면 결국 전신이 필요해.”“그렇지 않으면 3대 가문 중 하나가 되는 영광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난 일어설 수 없네. 자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받쳐준다고 해도 결국은 사상누각일 뿐이야.”하현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지금 무리해서 회복하면 어르신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앞으로 몇 년은 끄떡없이 사실 수 있는데 고작 반 년 일찍 일어서려고 이렇게 무리하시는 건 아무 가치가 없어요!”하현은 지난번에 양제명의 다친 몸을 살폈을 때 이미 그의 상태를 파악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하현은 진작에 양제명의 몸을
”하현, 오늘 밤 자네와 나 사이에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네.”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는지 양제명은 가는 도중에도 절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첫째, 이번 양 씨 가문 일에 많은 도움을 준 거 너무 고맙게 생각하네.”“자네가 없었다면 이 늙은이는 생각지도 않은 데서 의외의 좌절을 겪고 신음하고 있었을 걸세. 우리 소중한 손녀도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과찬이십니다. 양 씨 가문의 일은 결국 양 씨 가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내가 끼어들면 양 씨 가문은 더욱 분열될 뿐입니다.”양제명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세상에 영원한 왕조도 없고 시들지 않는 가문도 없어.”“한 가문이 세대교체를 해야 할 때가 되면 대가를 치러야 하네. 그래야 가문을 이어갈 수 있어.”“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우리 양 씨 가문은 앞으로 백 년은 거뜬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양 씨 가문 주식의 30%를 자네한테 넘기고자 하니 부디 받아주시게.”하현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양제명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끝에 승낙했다.어쨌든 그의 지분이 있어야 원 씨 가문이든 이 씨 가문이든 다른 가문이 양 씨 가문을 넘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그리고 남양 무맹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양 씨 가문은 더욱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갈 수 있다.하현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제명은 웃으며 하현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걸 너무 탓하지 말고 들어주시게.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네는 이미 전처와 이혼한 거라던데, 아닌가?”하현은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아, 뭐,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하현, 내 말 좀 들어봐!”양제명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하현의 말을 끊었다.“두 번째 할 말은... 자네, 우리 양 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올 생각 없는가?”“자네만 동의한다면 지금부터
노부인은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후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축 처진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양제명은 한숨을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에게 자신을 가게 안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그는 노부인 일행은 그대로 바깥에 무릎을 꿇도록 내버려두었다.십수 년 동안의 부귀영화를 생각한다면 지금 무릎 꿇은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양제명이 이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부의 정은 여전히 깊다고 할 수 있었다.한 시간 후 노부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짚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뒷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서늘함과 밀려오는 원한이 뒤엉켰다.노부인은 운전기사에게 어서 출발하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사적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보호 유리를 완전히 올린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노부인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하 씨 그놈이 왜 아직도 죽지 않았지?”“내가 이미 금액을 올려서 입금했을 텐데?!”“언제 죽일 작정이야?!”전화기 너머에서 대답했다.“노부인, 하현의 신분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만반의 계획을 세웠지만 도무지 손을 쓸 기회가 없었어요...”노부인은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나는 그놈이 어떤 신분이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없어!”“당신들이 어서 빨리 그놈의 숨통을 끊어주기만 하면 돼!”“돈이 더 필요하면 더 주지! 천억 더 줄게!”“그놈만 죽여 준다면 우리 양 씨 가문 재산의 절반까지도 떼어 줄 테니까 명심해!”노부인은 이 모든 일의 주범이 하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오지랖 넓게 감히 양 씨 집안일에 방해를 놓는 그놈만 죽인다면 양제명과 양유훤이 어찌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자신의 계략으로 얼마든지 양제명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좋습니다. 노부인께서 이렇게 대범하시니 저희
”맞아요. 노부인이 양제명과 양유훤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문은 이미 많이 발전했을 것이고 일찍이 남양 제일 가문이 되었을 거예요!”“맞습니다. 이건 노부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일입니다!”“양유훤이 노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양제명 어르신이 오랜 부부의 정을 생각해 주신다면!”“우리는 그들 덕분에 앞으로 수십 년은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어요!”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었다.그들은 지금껏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는 한편 수십 년 동안 더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런 기회를 내동댕이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그들은 사회로 나가 일할 능력을 잃은지 오래였고 가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밖에 구걸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양제명과 양유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말하자면 양 씨 가문의 노부인의 지위가 흔들렸고 더 이상 노부인이 양 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를 본 양호남이 입을 열었다.“무슨 말이야?!”“당신들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지금 할머니를 의심하는 거야? 당신들 살고 싶지 않아?”“살기가 지겨워?!”양신이도 옆에서 거들었다.“오늘날 우리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다 할머니 덕분이야. 그런데 지금 그런 할머니를 몰아붙인다니, 당신들은 양심도 없어?”“당신들 나중에 우리 할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어?”양호남과 양신이는 다른 사람들이야 양유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 용서를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기회가 절대로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현과 양유훤이 내건 첫 번째 조건이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었다.하 씨 저놈은 정말로 악랄하기 그지없어!“닥쳐! 모두 입 닥쳐!”이 광경을 보고 노부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기업청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우리 가문의 장부와 납세 명세서를 살펴보겠다고 합니다!”“노부인, 노동청에서도 우리 양 씨 가문 공장에 와서 그동안 직원들 월급을 주지 않은 일이 발각되었으니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했습니다.”“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몇몇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양유훤과 접촉하여 아주 낮은 가격으로 우리 가문의 주식을 넘겼습니다!”“그리고 지금 공급업체에서는 대금 상환을 재촉하고 있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에서는 만기도 도래하지 않은 대출을 상환하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노부인, 원 씨 가문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원천신이 가문에서 쫓겨났다구요. 이제 더 이상 원 씨 가문 사람이 아니랍니다...”나쁜 소식들이 줄을 이어 들어와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노부인, 남양 무맹은 양씨백약을 불량품이라 선포하고 앞으로 양가백약 제품만 사용할 거라고 합니다...”“우리 가문은 완전히 망했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넋을 잃은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지금 같으면 하현은 정말로 1분 만에 양 씨 가문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한순간에 모든 부귀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자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하냐구요!”“하현은 지금 급소를 찌르며 우리 가문을 공격하고 있어요. 이러다간 우리 가문이 금방 마비될 수 있다구요!”“하현이 이렇게 밀어붙이다가 쌍방이 모두 손실을 입는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완전히 무너지면 그때 하현은 양유훤과 손을 잡고 양가백약으로 시장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어요.”“노부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뭐라도 한 마디 하시죠!”“아니면 양유훤 앞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요. 어쨌든 양유훤도 양 씨 가문 사람이니까 우리가 용서하면
”그리고 엄마가 금정에 있는데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내가 코스 짜 줬어. 아마 기분 좀 나아질 거야.”“날 봐서라도 나중에 엄마 만나면 너무 충돌하지 말고, 응?”“그래, 그럼.”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은아에게 물었다.“아, 당신 뭐 잊은 거 없어?”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뭔데?”“사흘 뒤면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우리 이번 참에 혼인신고 다시 할까?”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굴이 볼그레지며 허둥지둥 영상통화를 끊었다....오후 3시, 페낭 종합병원 VIP 병동.양 씨 가문 노부인은 한참 전에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그녀는 지금 병상에 기대어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깊고 날카로운 주름이 움푹 패어 있었다.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화를 내기는커녕 그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녀 주위로 살벌한 기운이 자욱이 맴돌았다.방에 모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 노부인만 쳐다보고 있었다.다들 노부인이 뭐라도 얼른 생각을 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하지만 노부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한참이 지나 양호남이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침묵을 깨고 나왔다.하현이 내건 조건들을 노부인이 들어줄까 봐 양호남은 마음 가득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하현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자신의 다리도 부러질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은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무슨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맞아요. 할머니는 우리 양 씨 가문 기둥이잖아요.”“이럴 때일수록 할머니가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그리고 우리한테 지시를 내려주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싸울 수가 있어요.”양신이가 얼얼한 얼굴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우리 양 씨 가문은 기개가 있는 집안이에요. 남양 3대 가문 중
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할머니!”양호남이 쏜살같이 달려갔다.“할머니, 괜찮으세요?!”양신이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당신이 사람이야?!”“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을 괴롭혀야 되겠어?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관대하게 봐줬다구!”“그런데 당신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할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어!”“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양신이가 자신에게 마구 악담을 퍼붓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양 씨 가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내일 이맘때 양 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양유훤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면!”“그리고 노부인이 직접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면!”“미안하지만 양 씨 가문은 이대로 끝나는 거야!”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슬 퍼런 하현의 말에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흉악한 낯빛으로 말했다.“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양제명, 어떻게 외지인 놈과 손을 잡고 집안 식구들을 괴롭힐 수가 있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양제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하현,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원가령이 참지 못하고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노부인이 뭐라고 하시든 당신한테는 어르신이잖아!”“대하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그러고도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앞세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원천신도 매서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남자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어?”“사람이 대범해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천신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제가 기회를 드리죠. 악인을 옆에서 부추기며 나쁜 짓을 한 거, 당장 사과하세요!”“사과?”원천신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원 씨 가문을 뭘로 보고 이래? 나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