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교외. 폐물 창고 한 켠. 설은아와 그녀의 비서는 꽁꽁 묶여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오늘 아침 제호그룹으로 가는 도중에 누가 길을 막아 서더니 지금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변백범이 그녀들을 지키라고 배치해두었던 사람들도 소리 소문 없이 없어져 지금 변백범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 창고 밖에서는 지금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의 몸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전쟁터에 출전한 적이 있는 병사들이었다. 이때 그는 보드카를 마시며 이따금씩 설은아와 그녀의 비서를 돌아보았다.“이 두 계집애들 참 괜찮네. 지금 손을 못 대는 게 아쉽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어르신이 시원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이 사람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 집사가 그의 직속상관이라 그 사람 앞에서는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다. 이 말에 설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이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는 한 이 모든 것은 돌아갈 여지가 있었다. 바로 이때 문 밖에서 또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남자 몇 명이 들어왔다. 이 남자들은 설은아와 비서를 탐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침이 고이는 표정을 지었다. “보스, 저는 진작에 대하의 여자들이 정말 예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쪽의 더러운 여자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네요. 제가 가지고 놀아도 되겠습니까?”한 작은 남자가 백주 대낮에 변태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앞에 선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 “집사의 명령을 잊은 거야? 일이 끝날 때까지 이 두 여자를 건드려선 안돼.”“일이 끝나면 이 두 여자는 우리의 장난감이 될 거야.”작은 백인이 웃으며 말했다. “보스, 이 여자는 하 세자의 내연녀라고 들었어요!”“하 세자, 강남의 1인자잖아요! 그의 여인을 가지고 놀 수 있다니, 정말 체면이 서는 일이네요!”“제 생각엔 우리가 이 기회를 틈타 손을 써야지, 그렇지
남원 체육관, 1분 1초가 흐르고 있다. 곧 10분이 지났다. 셋째 영감은 이미 먼저 링 위에 올라섰다. 하현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을 바로 그 때 갑자기 문자가 왔다. 하현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사진 속에는 설은아와 그의 비서가 꽁꽁 묶인 채 방 한 쪽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하현의 얼굴빛은 순간 극도로 안 좋아졌고 일종의 살의가 번졌다. 링 위에서 가볍게 서 있던 천하무적 고수 같은 태도를 취하던 셋째 영감도 갑자기 주변의 온도가 낮아 진 것을 느꼈고 전율을 했다. 이때 최 집사가 천천히 걸어나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이번에 우리 셋째 영감님과 싸우니 최선을 다해 대하의 풍모를 보여주기를 바라.”말을 마치고 그는 발길을 돌려 떠났다. 하현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협박, 이것은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문자가 도착하자 마자 최 집사가 다가왔는데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했다. 최 집사는 그가 지기를 원했고 게다가 ‘정정당당’하게 지지 않으면 설은아는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다. 하현은 비록 은아가 어떻게 상대방의 손에 넘어갔는지는 몰랐지만 그는 지금 이것이 가짜 뉴스라고 해도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미국 최가의 행동이 얼마나 파렴치한지 그는 이미 본적이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하현은 천천히 링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던 살기는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미국 최가, 토너먼트일 뿐인데 내 아내를 가지고 협박하다니, 아니, 그들이 원래 협박하려던 사람은 분명 하 세자였을 텐데……”“이기려고 별 짓을 다 하는 구나!”“기왕 너희들이 그토록 이기고 싶다니 내가 져주면 좋겠지만 너희 미국 최가들이 이 일의 후폭풍을 잘 견뎌내기를 바라!”하현은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뎠고 지금 그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링 아래에서 이슬기는 하현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말했다.“우 대표님, 무슨
이 손 동작은 아주 간들간들했다.아주 느린 속도로 하현의 가슴과 배를 직접 찍었다. 힘이……자, 이건 전혀 힘이 없었다. 이 셋째 영감은 무슨 고수도 아니고 모양만 좋지 실속이 없는, 무술동작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보통사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은아의 처지를 생각해 하현은 몸을 흔들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바로 장내를 떠들썩하게 했고 모두들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나왔다! 나왔어!”“이게 바로 셋째 영감의 ‘접화파’의 세 가지 수 중의 첫 번째, 접이야!”“데릴사위가 첫 수조차 막지 못했는데 어떻게 셋째 영감의 적수가 될 수 있겠어?”“이 우물 안 개구리는 이제 셋째 영감의 대단함을 알 수 있겠지? 앞으로 어떻게 날뛰는지 지켜보자.”“이번에 우리 대하를 대표해서 출전한 셈인데 이 일이 알려지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거야. 너무 창피하다!”많은 사람들의 의론 속에서 셋째 영감이 외쳤다.“화!”하현은 다시 물러섰고 이번에는 링 가장자리로 물러나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 곧 무너질 것 같았다. 심판이 나와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했고, 10초 뒤 ‘반격할 힘’이 없다고 선언하고는 하현은 지고 말았다. 셋째 영감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내려다 보며 차갑게 말했다. “젊은이, 나는 이미 충분히 봐줬어. 네가 질 줄은 몰랐네. 이건 내 탓이 아니야.”“돌아가서 하 세자에게 전해. 쫄았으면 그냥 말하라고, 괜한 핑계 댈 필요 없다고!”하현은 셋째 영감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다음에 다른 사람과 겨뤄도 네가 이렇게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셋째 영감은 냉소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데릴사위가 내가 그를 이긴 게 단지 운이 좋아서 그런 것뿐이라는데?”이 말을 듣자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셋째 영감님이 이미 네 사정을 봐 주셨는데 너는 모르겠니?”“여태 그걸 모르면 넌 이제 목숨도 잃게 될 거야!”“요즘 젊은이들은 참 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떨며 하현을 완전히 무너뜨리려 했다.물론 풍택재단을 필두로 했다.하현의 체면을 구기는 것은 하 세자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다. 그들이 매우 원하는 것이었다.“하현, 이 어르신이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며 잘못을 인정할 기회를 줄게.”셋째 영감의 안색은 냉담했다.이것은 그가 원하는 결과였다.이 건방진 사위가 며칠 전에 감히 미국 최가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고 했었다.그리고 지금 셋째 영감이 해야 할 일은 이 쓰레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었다.“셋째 영감,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하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이슬기와 우윤식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서둘러 따라갔다. 체육관 안에서는 지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천일그룹은 이번에 패배하여 돌아왔고, 셋째 영감과 미국 최가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높이까지 받들어 올려졌다.“대장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셋째 영감의 그 두 가지 수로는 그를 결코 이길 수 없었을 텐데?”체육관 한 귀퉁이에서 양정국의 안색이 안 좋았다.“제 생각엔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왕태환의 안색도 비할 데 없이 안 좋았다. 그들은 하현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모습이 대단히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진짜 원인을 알지 못했다.렉서스 한 대가 오자 이번에는 하현은 신분이 드러날지 말지는 신경 쓰지 않고 우윤식, 이슬기와 함께 함께 차에 올라탔다.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슬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회장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질 수 있어요?”하현이 차갑게 말했다.“은아한테 일이 생겼어. 셋째 영감네 사람이 잡아갔어.”그 말에 이슬기와 우윤식 두 사람 모두 온몸을 떨었고, 마침내 오늘 이 이상한 광경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은아가 셋째 영감의 손에 넘어갔구나. 어쩐지 하 회장님이 질 리가 없는데.“변
왜 설은아여야 했는지도 이해가 된다남원 최가 식구들 때문에 설은아는 하 세자의 내연녀로 여겨져 왔다.링 위에서 결국 손을 쓴 사람은 하현이었다. 최 집사가 설은아를 이용해 하현을 협박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일이었다.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지금쯤 미국 최가는 설은아를 풀어줬어야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은아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회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손을 댄 사람이 누굽니까?”변백범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지금 강남 길바닥은 그가 장악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설은아를 묶어 둘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대단히 사나운 용임을 말해준다.“대략 미국 최가 사람일 테지만 미국 최가의 일에는 빈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손을 댄 사람은 겉으로는 미국 최가와 아무 상관이 없을 거야.”“형제들에게 최근에 해외, 시외에서 온 패거리들이 있는지 좀 더 알아보라고 해.”하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셋째 영감,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최가는 반드시 망해야 한다.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설은아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하 회장님, 안심하세요. 우리는 이미 남원을 떠날 수 있는 모든 길을 봉쇄했습니다, 반드시 형수님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변백범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바로 이때, 하현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전보를 친 사람은 바로 설은아였다.하현은 온몸을 살짝 떨더니 잠시 후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2천억만 줘!”전화 상대편은 일부러 변조한 목소리였다.“그래, 어떻게 전해 줄까? 돈은 문제가 안 되는데, 나는 은아가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어.”하현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이럴 때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허, 네 데릴남편이 너와 얘기하고 싶어하네. 어서 받아!”“하현, 난 괜찮아. 걱정 마!”전화 맞은편에서 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별반 다를 것이 없어 하현은 절로 안도의
“설은아, 네 데릴남편이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와서 네 년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설민혁이 은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인상을 찡그리며 설민혁을 쳐다보았다. 비록 그는 붕대를 감고 얼굴과 억양을 감추고 있었지만 방금 하현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는 은아에게 너무 많은 허점을 보여 주었다.그러자 설은아는 차갑게 말했다. "설민혁, 너는 그 2천억 못 받을 거야.”설은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의기양양하던 설민혁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며 벌떡 일어섰다.“놀랄 필요 없어. 난 네가 누군지 벌써 짐작하고 있었어. 네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별 소용 없어.”“그리고 하현이 널 못 알아 볼 것 같아?” “설민혁, 너 너무 자신만만하다!”설민혁은 안색을 바꾸며 잠시 후 심호흡을 하고 얼굴의 붕대를 잡아당겼다.그의 얼굴은 온통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얼굴은 알아 볼 수 있었다.설은아에게 다가가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알아 보면 또 뭐 어때? 내가 2천억만 벌면 새가 맘껏 날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은 높고, 물고기가 맘껏 헤엄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바다는 넓게 될 거야.”“게다가, 내가 하현에게 직접 돈을 보내게 할 테니, 그때가 되면 이 형님들이 하현 앞에서 너를 짓밟을 거야!”“설은아, 너 오늘이 있다고 생각해?” “설은아는 안색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설민혁, 모든 게 완벽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돈을 받고 나면 팔자가 필 거 같아?”은아는 지금 하현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하고 있었다. 하현이 정말 그 사람이라면 설민혁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것이다. 설민혁이 웃었다. 돈을 많이 벌어 봤자 죽으면 소용없다는 것인가? 설은아, 설마 하현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설령 그녀가 하현을 위해 체면을 세우려 해도, 그런 큰소리를 칠 수는 없다. 이때 설민혁은 자신의 얼굴에 난 흉터를 만지며 말했다.
판자촌에 사는 데다 아들이 없어져 설동수는 그 동안 건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지금 문이 걷어차이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또 건달들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들어온 사람이 하현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차렸을 때 설동수는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고, 이때 그는 하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설동수가 보기에, 하현 이 데릴사위가 설씨 집안에서 계속 일을 벌리지 않았다면, 그들 설씨 집안은 지금 파산하지 않았을 것이다.하현이 바로 설씨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설동수에게 다가가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네 아들은 어디 있어?”설동수는 냉소하며 말했다. “하현, 너 지금 정말 날뛰는구나. 은아가 무슨 회장이 된 이후로 벌써 무법천지가 됐네?”“잊지 마, 난 네 윗 사람이야!”“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날뛰는 거야? 이건 반역이야!”하현은 차갑게 말했다.“내가 참을성이 없어서 다시 한 번 묻겠는데, 설민혁 어디에 있냐고!?” 설동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기둥서방이 뜻밖에도 그 앞에서 위세를 부리다니!고작 회장 하나로 기생오라비가 하늘로 승천을 하다니?설민혁이 그렇게 능력이 있는데도, 하현 이 쓰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리 타향으로 떠나야 했다니, 하늘은 정말 불공평하다!“몰라. 내가 안다고 해도 왜 내가 너한테 말해야 하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설씨 집안 일에 참견하는 거야? 설동수는 대답할 뜻이 없어 냉소적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은 설동수의 목을 걸고 그대로 그를 들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마지막으로 다시 묻겠어.”“난 설민혁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어!”“그렇지 않으면 너 하나쯤 목 졸라 죽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하현의 눈빛을 보고 설동수는 마침내 겁을 먹었다.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하현이 자신을 목 졸라 죽일 거라는 걸 알아챘다.“말할게! 말할게! 내려줘!”하현은 설동수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
남원국제공항에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평범한 옷차림에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고, 걸을 때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압박감을 주는 듯 말 못할 기품이 서려 있었다.설민혁이 그를 봤다면 그대로 벌벌 떨었을 것이다.왜냐하면 이 분은 대구 정가의 금지된 뒷산의 장로이자 설민혁과 설지연의 스승 정무성이었기 때문이다.금지 구역 뒷산에 던져진 뒤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은 밤낮으로 시달렸다.설민혁이 이번에 나온 것은 그의 명령 때문이었다.정무성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설민혁을 위해서가 아니었다.그는 설은아를 위해 왔다.설씨네는 몰락했지만 설은아의 사업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이는 대구 정가에게는 분명히 밝혀야 할 일이다.그런 최상급 가문에게는 그들의 하인들이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을 허용하지 않는다.설은아가 아무리 성공해도 대구 정가의 눈에는 하인일 뿐이다.남원 공항 입구에 이르자 정무성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내 못난 제자가 이번에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너를 위해 스승님이 너 대신 특별히 미국 최가에 연락을 드렸어."이렇게 했는데도 만약 네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스승님도 네 목숨은 지켜줄 수 없을 거야."......하현은 설민혁의 핸드폰 번호를 받은 뒤 곧바로 병부를 동원해 위치를 알아냈다.이어 혼자 차를 몰고 갔다.오래 전에 버려진 공장인데,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부랑자, 건달 등이 많이 모여 있었다.이곳은 회색 지대인 셈이다.하현이 도착했을 때, 공장 입구의 몇몇 건달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이 몇 사람이 건들건들 걸어와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얘아, 여기 와서 주차하면 유료야. 돈 내.” “얼만데?”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하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몇 사람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그들은 하는 일 없는 건달들이라 공갈 협박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야, 너 차 몇 억은 되는 거 같다. 좋아 보이네? 형님들께서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