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몰과 진통제를 들고 몸을 돌렸다.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성혜인의 모습을 보고는 묘한 기시감이 들어서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먹어.”반승제는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성혜인에게 억지로라도 진통제를 먹였다. 하지만 의식이 온전치 않았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알약을 자꾸만 뱉어냈다.인내심이 금세 바닥 난 반승제는 손가락으로 알약을 잡고 목구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성혜인이 헛구역질을 시작한 다음에야 손가락을 빼고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성혜인은 비몽사몽 눈을 떠서 반승제를 바라봤다. 하얀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녀의 타액이 묻은 손으로 자그마한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것을 보고 반승제는 어쩐지 에로틱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다른 사람의 타액이 피부에 닿았는데도 반승제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결벽증이 그토록 심한 반승제가 말이다. 그는 황급히 손을 빼내더니 무엇이라도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이란 떠올리고 싶다고 해서 쉽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몸이라도 움직이자는 생각으로 반승제는 컵을 들고 성혜인에게물을 먹였다. 자칫 사레에 걸릴 뻔한 그녀는 잠깐 기침하다가 또다시 헛구역질했다. 하지만 알약을 게워 내지는 못했다.반승제는 에어컨을 틀고 담요까지 찾아내서 성혜인에게 덮어줬다.사실 반승제는 지금 다른 사람을 보살필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혜인이 자신과 특별한 사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무지 모르는 척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의 직감이 그는 아무 여자에게나 곁을 내어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반승제는 요즘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반씨 가문에 대해 대충 알아본 것만으로도 이미 그를 죽이려 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을 잃은 뒤로 모두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졌는지라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고도 반승제는 속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가족의
“페니야.”반승제의 부름에 성혜인은 약간 움찔했다. 아무래도 잠든 것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반승제는 편의점 주머니를 그녀의 앞으로 던졌다.“알아서 골라 써.”세상 무심하게 말하고 난 반승제는 다시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기 시작했다.진통제가 드디어 효과를 보기 시작했는지 통증이 조금 가신 것 같아 성혜인은 몸을 반쯤 일으켜 주머니 안의 물건을 확인했다. 의외로 기저귀형까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녀는 약간 놀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는 속옷을 버리게 생긴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대표님, 혹시 바지를 빌려주실 수 있나요?”반승제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얼굴은 불쾌한 듯 약간 찡그러졌다. 하지만 성혜인의 식은땀으로 젖은 머리카락과 핼쑥한 얼굴을 보니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픈 사람과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반승제는 침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정장 바지 하나 대충 들고나와서 성혜인에게 던져줬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어떻게든 몸을 씻어야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할 것 같아 반승제의 바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이때 반승제는 갑자기 신경을 곤두세우더니 몸을 확 일으켰다. 성혜인이 화장실로 가는 것을 보고 결벽증이 도졌던 것이다.“설마 내 화장실을 쓰려고?”성혜인은 창백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반승제는 이마의 신경이 다 툭툭 뛰는 것 같아 바로 호텔 로비에 전화를 걸었다. 같은 층의 다른 스위트룸에 사람이 있는지 묻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반응도 개의치 않은 채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해 걸어갔다. 그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 어쩐지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성큼성큼 성혜인을 따라가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호텔 직원이 데리러 올 때까지 가만히 있어. 내 화장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성혜인은 머리를 들어 반승제를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 저희 화장실에서 한 적도 있는데요?”‘젠장!’갑작스레 알게 된 엄청
“마음에 들면 선물로 드릴게요.”반승제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예상 밖의 대답에 반기태는 한참이나 핸드폰을 든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반승제가 성혜인을 잊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래도 반기태는 계획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반승제도 허락했으니, 계획을 진행하는 편이 미래 기억을 떠올린 그에게 더욱 큰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통은 그가 성혜인에 대한 마음과 정비례할 것이다....호텔에서 나간 성혜인은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택시를 잡고 올라타자마자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서서히 잠들었다.어느 순간 차가 세차게 흔들렸고 성혜인은 약간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기사님, 저는...”성혜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운전기사가 갑자기 차 속도를 높였다. 이제야 이상함을 눈치챈 성혜인은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갑자기 급정거하며 차를 세웠다.성혜인은 관성으로 인해 차량 앞좌석에 머리를 박았다. 그녀가 어리둥절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운전기사는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 갔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억지로 머리를 들게 했다.짝!뺨을 맞은 성혜인은 머리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제기랄, 가만히 있지 못해?! 또다시 신고하려 들었다가는 병신으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온몸에 힘이 다 빠졌던 성혜인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차가운 표정으로 운전기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어폰을 통해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운전기사는 또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같은 시각, 전화를 끊고 난 반승제는 이만 회의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정장에 기시감이 들었던 그는 핸드폰을 들고 심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나랑 페니는 어떤 사이였죠?”심인우는 당황한 듯 잠깐 멈칫하다가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사귀는 사이는 아니었나요?”“네, 그건 아니었습
성혜인은 아직도 생리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두 명의 도우미에게 이끌려 한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반재인은 아직도 산산이 부서진 물건들을 짓밟으며 화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안으로 들어온 여자를 발견한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이게 누구야? 나를 이 꼴로 만든 반승제의 여자 아니야?’반재인은 상기된 얼굴로 한쪽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물었다.“반승제는 어떡하고 이 여자를 잡아 왔어?”반재인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반승제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반승제 씨의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여러 사람을 잊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여자도 포함해서요. 조금 전에는 직접 마음에 들면 선물로 준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반승제의 짧은 말 한마디는 이렇듯 성혜인의 인생을 망쳐버리고 말았다.경호원의 말을 들은 성혜인은 피식 웃었다. 씁쓸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반승제는 늘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마치 보잘것없는 쓰레기라도 되는 듯이... 성혜인은 수도 없이 반승제에게 버림받았었다. 그런데도 가끔 선심 쓰듯 베푸는 친절에 설렜다니, 성혜인은 그런 자신이 너무 우습고 답답했다.이 순간 성혜인의 마음은 결국 차갑게 식고 말았다. 이제는 반승제를 다시 떠올린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반재인은 반승제가 성혜인을 잊었다는 말에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가만히 서서도 비틀대던 성혜인은 전혀 반항하지 못했다.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픈 것이 진통제를 먹지 않은 것만 같았다.반재인은 성혜인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어서는 소파 앞으로 갔다.“이야~ 나한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 반승제도 참 무심하지, 한때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여자를 내쳐버리다니 말이야.”반재인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이는 남자구실을 못 하는 그를 대신해 먼저 잡혀 온 여
반기태는 당연히 반승제가 이 정도만 하고 멈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반승제를 얕잡아 봐도 한참 얕잡아 봤다. 이 세상에는 반승제가 하지 못할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아 한참 어버버하다가 겨우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에게 지시했다.“얼른 페니를 데리고 와! 얼른!”반승제가 미쳐 날뛰도록 내버려 뒀다가는 별장 전체가 폐허로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반기태가 큰마음 먹고 시내에 산 이 값비싼 별장이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이번 일이 기사화된다면 그는 체면이 구겨져서 감히 외출도 못 할 것 같았다.반승제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트럭을 후진시키며 다른 기둥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기둥이라면 이미 쓰러질 대로 쓰러져 얼마 남지 않았기에 별장이 무너지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었다.이때 반승제는 잠깐 멈춰서서 머리를 돌렸다. 성혜인이 두 명의 경호원에게 이끌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보다 더욱 허약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가슴팍의 단추도 몇 개 풀어져 있었다.반승제는 이제야 차 문을 열어 바닥에 자빠져 있는 반기태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싸늘한 말투로 짧게 물었다.“누가 페니를 건드렸죠?”반기태는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성혜인을 부축하고 있던 경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미모에 눈이 멀어 탐하려고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들이었기 때문이다.반승제는 조수석에서 총을 꺼냈다. 권총이 아닌 한 방에 30발을 발사할 수 있는 SG 돌격소총을 말이다. 그러자 반기태는 눈을 크게 뜨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반승제, 너... 너 쏘기만 해!!”탕탕탕!반기태가 말을 마치자마자 별장에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명의 경호원은 가슴팍에 각각 10발씩 맞았다. 신이 와도 살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반승제는 성혜인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안았다.“페니는 제가 데려갈게요.”반승제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총구는 반기태를 향해 있었다.반기태는 몸을 벌벌
얼마 지나지 않아 반기범은 기다리고 있던 보고를 받았다.“알아냈습니다. 반승제 씨가 대형 트럭으로 반기태 씨의 별장을 부수고 경호원 두 명을 사살했다고 합니다.”반기범은 우아한 자태로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음산한 눈빛의 첫째 반기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승제가 형님한테 총을 쏘지는 않았고?”반기범은 당연히 오늘이 반기태의 제삿날이 될 줄 알았다. 그래도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네. 근데 오줌 지릴 정도로 겁먹고 회장님한테 이르러 갔답니다.”“허허, 감히 아버지를 만나러 가다니...”반기태의 멍청함에 반기범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반태승을 찾아가는 건 자신이 지은 죄를 밝히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더구나 반태승은 반승제의 광기 서린 성격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그를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반씨 가문에 남아 있을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반승제는 애초부터 가족이란 무엇인지 모르는 미친놈이었다. 반태승이 아직 살아있기에 그나마 귀공자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반태승이 돌아간 다음에는 아마도 그의 광기를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반승제에 비해 반기범은 반승우를 더욱 좋아했다. 그는 부드러운 사람이었기에 다음 계획을 계산해 내기 아주 쉬웠다. 하지만 반승제는 다르다. 그는 언제나 변수에 변수를 잇는 선택만 해왔다.반승제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100%의 확신이 없으면 절대 나서서는 안 되기도 했다.같은 시각, 반기태는 다른 별장으로 가서 바지를 갈아입고 부랴부랴 반태승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굳게 닫힌 대문을 그를 위해 열리지 않았다.집사는 아주 가벼운 얘기라도 하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했다.“회장님께서 앞으로 손님은 안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엎지른 물은 스스로 닦으라고 하십니다. 잠자는 늑대를 건드렸으면 살집이 물어뜯길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보다시피 반태승은 기억을 잃은 반승제가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반씨 집안사람
반승제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시선은 자연스레 성혜인의 목으로 향했다. 그녀가 반항하지 못할 때 그냥 죽여버릴 생각으로 말이다.하지만 꿈속에서 나쁜 일이라도 당하고 있는지 눈초리를 파르르 떠는 성혜인의 모습을 보니 분노도 금세 식었다. 그래서 반승제는 이만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고요한 밤은 빠르게 지나고 어느덧 아침이 왔다.성혜인은 반승제가 깨어난 다음에도 깨지 않았다. 스케줄대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친 반승제는 그녀를 신경 쓰지도 않고 호텔을 떠났다.성혜인은 반승제가 떠난 지 한 시간이 되어서야 서서히 눈을 떴다. 어젯밤의 기억은 짧은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지만 반승제가 결국 와줬다는 것은 기억에 남았다.하지만 반승제보다 더욱 인상 깊었던 건 7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이던 순간이다. 욕망에 휩싸인 남자들의 눈빛보다 더 역겨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성혜인은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서 한참이나 토했다. 피부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고 구역질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은 탓에 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물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반승제의 호텔방에 한시라도 남아있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부랴부랴 포레스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 핸드폰에 새 전화번호를 만들도록 지시하고 속이 따듯해지는 영양죽까지 먹었다.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기 방에서 샤워하고 난 성혜인은 해가 질 때까지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깨난 다음 진통제 한 알을 더 먹고 나서야 생리통이 진정된 것 같았다.초저녁, 성혜인은 회사로 향했다. 안유결의 사건이 아직도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었다.성혜인은 어느덧 안유결이라는 훌륭한 감독과 온수빈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S.M이 아직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순리롭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훌륭한 대본만 있으면 되었다.“감독님, 저희가 대학로 근처에서 투자자를 찾는 작
성혜인은 휴지를 뽑아서 반승혜에게 건네줬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내치고 말았다.“승제 오빠는 아직도 페니 씨가 누군지 모르죠? 사람 속이는 거 재밌어요? 오빠를 불륜남으로 만드니까 재밌냐고요! 두 사람 이혼까지 했다면서 오빠가 알게 될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 아니, 페니 씨는 애초에 자기 생각밖에 안 했죠? 그러니까 오빠 몰래 이런 빅엿을 준비했겠죠... 역시 성씨 집안사람은 하나같이 이기적이네요.”반승혜는 흐느끼면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성혜인도 뒤따라 나가기는 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에 가로막혀 결국 쫓아가지 못했다.반승혜는 오늘 큰 용기를 내서 성혜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원래는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정리했었지만, 사무실 문을 열어 낯선 모습의 그녀와 마주한 순간 수치심이 확 솟아올라 이성이 가출하고 말았다.그녀는 차에 돌아간 다음에도 한참이나 흐느꼈다. 반승제가 기억을 되찾자마자 바로 진실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반승제가 계속 성혜인에게 속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이때 반승혜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성혜인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다.「미안해요, 승혜 씨. 저도 마음 같아서는 알려주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요.」‘찌질한 변명이야...’성혜인의 문자를 보고 나니 반승혜는 더욱 정떨어지는 것 같았다.그동안 두 사람은 여러 번 만났었다. 반승혜가 성혜인에게 ‘새언니’의 뒷담화를 한 횟수만 해도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분명 나를 바보라고 생각했겠지? 본인 앞에서 뒷담화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반승혜는 결국 서러움이 터져 목 놓아 울었다.같은 시각, 성혜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미간을 누르며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사무실 안에 들어선 장하리는 그녀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바로 위로 삼아 말을 걸었다.“사장님, 제가 점심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대본 일은 어떻게 됐어요?”“조금 전 이미 알아보러 갔으니, 지금쯤 직원들이 성원예대에 도착했을 거예요.”성주대학교의 예술대학은 영화의 요람이라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