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은 옆에 준비된 옷을 입고는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전원이 켜지고, 밤새 서민규의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와있었는데 그사이에는 승제의 메시지도 있었다.그가 해외로 출국한다는 말이었다.메시지를 읽은 혜인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듯했다.‘해외로 간다는 건, 적어도 이틀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는 소리잖아?’그녀는 세수하고 곧장 로즈가든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정말 피곤하고, 쑤시고, 아픈 탓에 집에 돌아갈 힘이 남아돌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조용히 배식카를 밀고 들어오더니 긴말하지 않은 채 약상자를 놓아주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혜인은 그 안에 있는 약들이 무슨 약들인지 대충 다 알아보았다.왜냐하면 전부 전에 그녀가 병원에서 사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인제 보니 반승제 본인도 어젯밤이 꽤 격렬했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샤워를 마치고 혜인은 상처에 약을 바른 다음 해열제 한 알을 먹고 소파에 기대 그대로 잠들었다.원래 그녀는 그날 밤 바로 로즈가든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휴식과 치료를 반복하다 보니 이 호텔에서 이틀이나 더 머무르게 되었다.이틀이 지나서야 그녀의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고 그제야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혹시라도 들킬까 봐 혜인은 몹시 초조해했다.로즈가든으로 돌아와서, 혜인은 곧바로 컴퓨터를 켜 인터넷에 도움을 청했다.「남편 정력이 과도하게 좋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성욕을 억누르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혜인은 떨리는 손으로 물음을 겨우겨우 작성해냈다.손이 떨리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정말 힘에 부쳐 다른 일을 할 정신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매우 절실했다.다행히 십여 명의 사람들이 곧 답장을 보내왔다.「자랑하려고 온 거예요?」「복에 겨운 줄 모르네 진짜. 제 남편은 길어봤자 3분이에요. 나는 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끝난다고요. 울고 싶은데 눈물도 안 나오네.」「없으면 없다고, 있으면 있다고 또 난리네.」「결혼 10년 차가 되니 이제 욕심도 없습니다.
일찍이 승제가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단미가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단미라는 청순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녀는 매우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아무 적의가 없는 척, 단미가 물었다.“그 사람은 너랑 이혼하면 아마 시집 못 가지 않을까? 반씨 가문에서 내쫓은 거나 다름없잖아.”승제는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밖에 준비된 차에 올라탔다.“나랑 무슨 상관이야.”단미도 서둘러 뒤따라 오르며 승제가 자신의 이런 ‘너그러운 마음씨’를 알아봐 주길 희망했다.“이혼하면 그 사람한테 재산 나눠줄 거야?”그 말을 들은 승제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성씨 가문이 반씨 가문에서 얻은 이득이 얼만데. 굳이 그래야 하나? 포레스트 별장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그 여자를 좋아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조건인 집안에 시집가는 건 꿈도 못 꿨을 거야.’그 여자가 생각나니 승제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해외에 있는 이틀 동안, 반태승은 승제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왜 혜인이와 같이 가지 않았냐고 물으며 그를 재촉했다.그 전화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혹시 혜인이와 싸운 게냐?”승제는 누군가의 간섭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반태승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을 것이다.단언컨대, 이 세상 그 누구든 타인에 의해 압박감을 느끼면 모두 반항심리가 생길 것이다.심인우에게 호텔로 차를 몰아달라 부탁하려는데, 또 반태승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승제야, 내일 혜인이 생일인 거 알고 있지? 잊지 말고 꼭 생일 선물 준비하렴.”순간 표정이 어두워진 승제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대답했다.“알겠습니다, 할아버지”승제가 순순히 자신의 말에 따르자 반태승은 매우 흡족해했다. 반태승의 건강은 최근 더욱 악화되어 문밖을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포레스트를 한 바퀴 둘러봤을 텐데 말이다.“어렸을 때 혜인이가 고생을 꽤나 해서... 생일 선물은 꼭
민지는 조금 기분이 언짢았다.“네가 숨긴 왜 숨어, 정작 숨어야 할 사람은 저 두 사람인데!”혜인은 민지를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승제가 자신을 보지 못했는지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지금은 나도 남편 몰래 남자 만나잖아, 누구도 떳떳하지 않다고.”그러자 민지가 피식하고 가볍게 웃어 보이더니 혜인의 어깨를 잡았다.“맞네, 맞아. 너도 이제 예전의 순진하기만 했던 성혜인이 아니라는 걸 내가 잠시 깜빡하고 있었네. 가자! 내가 룸을 예약해놨어. 오늘 밤 너에게 화려한 이 제원의 밤 생활을 보여주도록 하지.”지난번, 민지는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 혜인의 생일을 쇠주었다.어렸을 적 고생스럽게 큰 혜인은 이후 아빠 성휘의 사업이 서서히 일어서게 되면서 생활 여건이 조금 나아졌지만, 기쁨도 잠시 곧 그녀의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었다.사업이 잘될수록 성휘는 점점 더 바빠지게 되었다. 그 때문에 혜인이와 놀아주기보다는 그녀를 데리고 고객을 만나러 다니거나 세운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사무실에 데려가거나 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그곳은 한 무리의 중년 남성들이 미래를 얘기하며 피운 담배 연기로 가득한 곳이었고, 일찍 철이 들었던 혜인은 어른들을 방해하지 않고 얌전하게 있었다.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혜인이는 대부분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선택했는데 이래야 성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성휘가 소윤과 재혼했고, 두 부녀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멀어지게 되었다.어렸을 적 성휘는 혜인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곳은 사람으로 붐볐고 혜인은 성휘의 어깨에 올라타 세 식구가 놀이공원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하지만 어린 혜인은 알지 못했다. 그때 엄마 임지연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다는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힘들게 버텼다는 것을.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안 혜인은 죄책감에 시달렸고 놀이공원에 더는 갈 생각이 사라졌었다. 그래서 여태까지 딱 두 번밖에 가보지 않았다.한 번은 가
서주혁은 이런 광경에 흥미가 없었는지 곧바로 그녀를 옆을 슥 지나 옆에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이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고 있는 자신이 혜인은 정말 존경스러워질 정도였다.온시환은 원래 그녀를 도와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우려고 했는데 그때, 반승제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시환아, 먼저 들어가 봐.”시환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얄밉게 한마디 했다.“아이고, 재수가 없었네, 재수가.”혜인은 머리가 막 저려나는 것 같았다.‘민지가 정말 나를 결국 골로 보내는구나.’온시환이 자리를 뜨자, 이곳에는 반승제와 성혜인, 단 두 사람이 남게 되었다.한 작은 물건이 마침 승제의 발 옆에 떨어져 혜인이 주우려는데 그가 가죽구두로 그녀의 손을 살짝 짓밟았다.그러고는 몸을 숙여 혜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혜인은 사실 억지로 버텨내는 중이었다. 그녀 역시 민지가 이런 선물을 준비했는지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혜인이 그 물건을 다 줍고 나서도, 반승제는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혹시 이런 거 좋아하시면, 대표님 드릴게요.”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승제가 그녀의 턱을 끌어당겼고, 혜인은 아파 얼굴을 찌푸렸다.“많이도 아니고 단지 이틀을 못 본 것뿐이었는데, 그렇게나 목이 말랐어?”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혜인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다행히 그 물건들은 꼼꼼하게 포장이 된 것들이었다.“누구랑 쓰려고 이러는 건데?”혜인은 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고 눈꼬리는 빨개져 몹시 불쌍하게 보였다.하지만 하필이면 그때 온수빈이 따라 나오며 외쳤다.“페니 씨.”반승제를 본 온수빈의 눈동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승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기운은 온수빈으로 하여금 쉽게 건드릴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그러나 혜인이 그에게 턱을 잡혀 있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온수빈은 조금 망설이더니 이내 그들에게 다가갔다.승제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손으로 승제의 목을 감싸고 입술을 갖다 대 그에게 키스했다.그러나 앞선 승제와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늘 리드를 당하는 쪽이었기에 도대체 어떻게 더 깊게 나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그녀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승제는 놀란 것도 잠시 이내 그녀를 자신의 몸 아래로 눕혀 깔았다.또다시 승제가 리드를 시작했다.그렇게 10분 정도 뜨거운 키스를 하고 나서야 혜인은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고 있던 혜인은 승제에게 물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조금이나마 남아있었던 화가 깡그리 사라진 듯, 승제는 혜인의 얼굴을 보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 결벽 있어.”“알아요.”“나랑 네 남편 빼고, 또 다른 남자랑 한 적 있어?”“아뇨.”그제야 승제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고 옆에 있던 문을 열었다.“좋아, 일주일 쉬어.”“감사합니다, 대표님.”승제는 대답도 없이 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혜인은 그를 따라나서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그는 갑자기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혜인이 키스를 하는 순간, 승제는 자신의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빠르게 뛰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었다.승제가 룸에 돌아오자 온시환은 술잔을 들며 얄밉게 말했다.“이렇게 빨리? 반승제 안 되겠네.”빠르다, 안된다는 남자에게 있어서 굴욕적인 단어였다.“꺼져.”온시환이 아래 우로 쓱 훑어보더니 곁에 있던 휴지를 뽑아 건네줬고 승제는 그를 한번 힐끗 바라보았다.그러자 시환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입에 묻어있는 립스틱을 개의치 않는다면 닦지 않아도 돼.”휴지를 건네받아 승제가 입가를 한번 닦자 정말 빨간 립스틱이 묻어나왔다.‘뭐야, 오늘은 립스틱을 전보다 더 짙게 발랐잖아?’서주혁은 조금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너 진짜 그 디자이너랑 한 거야?”승제는 그 휴지를 손바닥 안에 구겨 넣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혜인은 꼭대기 층에 있으면서 민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먼저 돌아간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다시는 남자를 소개해주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전했다.그러면서 자신이 이곳에 갇혀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승제가 오지 않으면 청소하는 사람이 와서 어쨌든 발견될 거니까 말이다.혜인은 벽에 기대에 복도에 앉아있었다. 오늘 밤 하이힐을 신고 오래 서 있는 탓에 발이 아팠다.그때 복도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 혜인이 급히 머리를 들어보니 다름 아닌 승제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혜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고는 약간 억울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반 대표님.”그녀는 차마 승제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혹시라도 밉보이면 자신도 PW사와 같은 결과를 맞이할지 몰랐기 때문이다.승제는 그녀의 곁에 서더니 몇 초가 지나서야 말을 꺼냈다.“가자.”이번에 혜인은 또다시 여기에 혼자 남겨질까 봐 승제를 바짝 따라나섰고 두 사람은 그 길로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혜인은 지하주차장에 도착하자 지난번의 일이 생각나 뭔가 마음이 불편해졌다.승제는 문을 열어주며 올라타라고 손짓했다.그러자 혜인이 시선을 피하고 머뭇거리며 말했다.“일주일 쉬어도 된다고 대표님이 얘기하시지 않았나요...?”승제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잠깐 피식 웃더니 이내 멈췄다.“너 데려다주려는 거야.”그제야 혜인은 한숨을 돌리며 부담 없이 차에 올라탔고 스스로 안전벨트를 맸다.승제는 운전석에 앉아 능숙하게 후진을 하며 스카이웨어를 떠났다.신호등을 기다리며 승제가 손수건을 건네주자 혜인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립스틱.”오늘 밤 나오며 짙게 발랐던 립스틱이 승제와 10분간 진한 키스를 나누며 엉망이 되어버렸다.혜인은 손수건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여 입술을 닦았다. 얼마 안 지나 그녀의 입술은 다시 자연색을 띠었다.그때 민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혜인아 너 집 돌아간 거 아니었어? 왜 로즈가든에 누구도 문 열어주는 사람이 없어?”혜인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
혜인이와 즐겁게 케이크를 다 먹고 민지는 떠났다.혜인은 홀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잤고 깨어나서는 겨울이를 보러 성씨 별장으로 향했다.사실 혜인은 이미 성휘를 병원에 며칠 동안 더 입원시켰었다. 하지만 오늘 딸과 생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예전에는 아빠인 성휘가 매번 생일을 함께 보내줬었는데, 혜인은 그게 참 즐거웠다.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나 나이가 든 다음에는 조금 어색해졌다. 부녀는 마주 앉아 서로 바라보았고 그들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이 침묵만이 흘렀다.오늘 성휘는 요리사에게 맛있는 반찬을 여러 가지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한편, 지난번 혜인에게 쪽을 당한 성훈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그의 두 아들은 취업도 못 한 반면, 자신의 큰 형은 큰 별장에서 살고 있는 사실이 떠오르면 질투가 나 미쳐버릴 것 같았다.성훈은 라정옥에게 말했다.“엄마, 가만 보면 성혜인 그 계집애 형님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 않아요? 형님한테서 그런 애가 나왔다기에는 너무 예쁘잖아요. 임지연이 다른 남자랑 놀아나서 생긴 애일 수도 있어요.”그 말을 들은 라정옥이 두 눈을 크게 떴다.“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나는 성혜인이 큰형 친딸이 아니고 임지연 그 여우 같은 여자랑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애 같아요. 그래서 안 그래도 떠나서 올 때 성혜인 머리카락을 몇 가닥 가지고 와서 형님이랑 친자확인을 맡겨놨어요.”성훈의 얼굴은 음흉하기 그지없었다.“만약 성혜인이 큰형 아이가 아니라면, 소윤이랑 성혜원도 다 잡혀갔지, 성한이라는 애는 식물인간이 됐다잖아요? 제 아들이 당연하게 성씨 집안의 재산을 물려받게 될 거예요.”자기 아들이 이런 심오한 계획을 꾸미고 있을 줄 상상하지 못한 라정옥은 너무 흥분된 나머지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래서, 결과는 나왔어?”“아마 곧 나올 거예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다. 병원에서 친자확인 보고서를 집으로 보내준 것이었다.성훈은 서둘러 보고서를 뜯어보았고 제일
성휘는 최근에 너무 많은 변고를 당했다. 쓰러진 그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이미 병원 쪽과 얘기를 나눌 때 이제는 약물로밖에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은 혜인은 더 병원에 있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환자가 흥분시키지 않는 것이다.그러나 지금 성휘는 바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성훈과 라정옥은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성휘가 죽고 나면 자신들이 재산을 물려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혜인이 성휘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자 의사에게 전화를 걸며 그녀에게 친자확인서를 보여줬다.라정옥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이만 나가봐도 된다. 성씨 집안 일은 너와 상관이 없어."말이 끝나자마자 혜인은 밖에 있는 보디가드들을 불렀다."이 사람들 빨리 끌고 나가주세요!"화가 난 라정옥은 찻주전자를 들어 그녀에게 던지려고 했다. 그러자 혜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라정옥을 째려보았다."저한테 그거 던지시면 보디가드들더러 당신 머리를 깨라고 할거예요."라정옥은 놀라 굳어버리더니 천천히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혜인은 성휘의 가슴을 살며시 두드려주며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다.그리고 세 사람은 이미 보디가드들에 의해 밖에 내보내졌다.성휘는 2층 침실 침대로 옮겨졌고 얼굴색은 더 창백해져 늙어 보였다.의사가 와 그의 상태를 점검해보았지만 별다른 소견 없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혜인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성휘의 머리카락을 의사에게 건네주었다."친자확인 부탁드립니다. 결과가 나오면 수고스러운 대로 저에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혜인이 내려가 보니 도우미들이 성휘의 핏자국을 정리하는 중이었고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이미 차가워진 지 오랬다.그때, 누군가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남편분께서 생일 선물을 보내셨습니다."'남편? 반승제?'지금 혜인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내가 아빠 딸이 아니라면, 내 가족들은 어디에 있지.'그러나 택배를 받아든 혜인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