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켜진 스크린을 보자 안심되었다. 차에 타려고 할 때 반승제의 휴대폰이 여전히 마수연이라는 사람의 손에 있다는 것이 떠올라 상대방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마수연은 성혜인이 돈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작은 스크린의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 반승제가 큰 스크린을 한 달 계약했을 때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 성혜인이라는 여자도 마찬가지였다.마수연은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성혜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내밀었다.성혜인은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반승제의 휴대폰을 뺏었다. 마수연은 화가 치밀어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내 휴대폰은 왜 뺏어?” “이거 당신 거 아니잖아. 반승제가 어쩌다 실수로 잃어버린 휴대폰을 당신이 마침 주웠겠지.”마수연이 다가와 다시 휴대폰을 뺏으려고 하자 성혜인은 그녀를 밀쳐냈다. “뻔뻔하게 대낮에 남의 물건을 훔치다니!”마수연은 너무 화가 나서 다시 앞으로 가려고 했지만 성혜인은 이미 차에 앉아 있었다. 중간 섬에는 반승제를 아는 사람이 많았는데 성혜인이 아무에게나 물어봐도 상대방은 반승제가 한 일을 몇 가지 거론할 수 있었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아무도 몰랐다.어쩔 수 없이 성혜인은 먼저 노예찬과 배현우를 데리고 머물 곳부터 찾아야 했다. 배현우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아주 신나 있었는데 마당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진흙 놀이를 하고 있었다.진흙을 문지르던 그의 두 손목에 드러난 주삿바늘 구멍을 보자 성혜인은 마음이 불편했다.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배현우가 말했다.“혜인아, 나 집에 가고 싶어.”성혜인이라고 왜 집에 가고 싶지 않을까. 그녀는 배현우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조금만 놀다가 들어오라고 말했다.지친 모습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는 지금 반승제가 먼저 연락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먼저 반승제의 생일을 입력했지만 잠금이 해제되지 않았다. 다시 자신의
“알았어. 내가 잘 지켜볼게.”노예찬은 얌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온 성혜인은 반승제의 휴대폰을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새 휴대폰에는 쓸만한 정보가 없었다.마지막으로 메모를 였었는데 그 안에는 반승제가 적어둔 몇 개의 메시지가 있었다.[중간 섬에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안쪽 섬에 있는 거야?][설마 바깥 섬에 있는 건 아니겠지? 대체 어디 있는 거야.][진작 알았더라면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짜증 나.]메시지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성혜인의 입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부승민은 그녀의 연락처가 없어서 메모에 대고 불평할 수밖에 없었다.성혜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속 아래로 내리다가 맨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혜인이가 죽었다니.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실종되지도 않았을 거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혜인은 미간을 구겼다.누군가 반승제에게 그녀가 무슨 일이 생겼다고 말한 걸까? 그리고 방금 전화 와서 반승제가 다른 선택을 하면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은 또 뭐고. 성혜인의 죽음이 거짓 소식이라면 방금 전화에서 한 말은 도대체 진실인가, 거짓인가?휴대폰을 꽉 움켜쥔 그녀는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지만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밖에서 노예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저 배현우라는 사람이 비를 맞으며 마당에서 계속 진흙을 가지고 놀아. 들어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성혜인은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배현우 옆으로 갔다. 배현우는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있는 개미굴을 파고 있었다.“밖에 비 오잖아. 빨리 집으로 들어가.”그의 손은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고, 여전히 땅을 비비며 흙을 점토 삼아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혜인아, 먹어.”배현우는 흙덩이를 집어 성혜인의 앞으로 가져갔다. 성혜인은 그의 순진무구한 눈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바보라서 때릴 수도, 욕할 수도 없었다. 성혜인은 흙을
10분 후, 노예찬이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누나, 현우 씨 열이 나는 것 같은데 집에 약이 없어. 내가 나가서 해열제를 사 올게.”“그래, 수고해.”성혜인은 문을 열고 배현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배현우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약을 사러 나간 노예찬은 적어도 30분 뒤에나 돌아올 수 있었다.배현우의 옷은 이미 갈아입힌 상태였다. 성혜인은 옆에 있던 수건을 가져다가 물에 적셔 그의 이마에 얹었다.배현우의 속눈썹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편히 잠들 수 없는 듯 몸을 뒤척이다가 팔 전체에 빼곡히 있는 바늘구멍이 드러났는데 몹시 끔찍해 보였다.성혜인은 이 몸이 반승우의 것이라고 생각하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말하자면 반승우 본인은 그녀를 해친 적이 없었다. 그 일은 모두 배현우가 한 짓이지 반승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몸에 있는 수많은 상처는 전부 반승우가 감당해야 했다.한편, 노예찬은 우산을 들고 모퉁이를 돌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그는 천천히 옆에 있는 집 처마 밑으로 걸어가 우산을 거두며 뒤에 있는 사람에게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소식 있어?”“10장로님, 아직 성녀를 찾지 못했지만 K는 이미 조직으로 돌아왔습니다. 최근 밖으로 일절 나오지 않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노예찬이 고개를 숙이자 소년의 분위기가 싹 가셨다. 그는 손끝을 문지르며 말했다.“계속 지켜봐. K가 큰 움직임을 보이면 언제든지 내게 보고해. 이미 해파리 인장의 행방을 알았으니 곧 찾아서 돌아갈 거야.”뒤에 있던 사람은 털썩 무릎을 꿇으며 기쁨에 찬 표정을 지었다.“축하합니다, 10장로님.”10장로의 자리는 그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성녀가 사라진 이후 모두 해파리 인장을 찾아 떳떳하게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해파리 인장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10장로의 눈빛이 음침하게 변했다.“바깥 섬 그 여자를 잘 감시해. 성녀를 배신한 자이니 절대 내버려
성혜인이 배현우의 침대 옆에서 거의 30분 동안 기다리고 있을 때 노예찬이 약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누나, 여기 몇 가지 해열제를 사 왔는데 한번 봐 봐.”성혜인은 열을 내리는 데 가장 효과가 빠른 두 가지 약을 골라 배현우에게 먹였다.“내과의원에 다녀왔는데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놔줄 수 있대. 전화번호를 남겼는데 주사 맞힐래? 열이 더 빨리 내릴 거야.”팔에 빽빽하게 있는 바늘구멍을 생각하며 성혜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됐어.”노예찬도 옆에 앉았다. 성혜인은 배현우의 입에 약 두 알을 강제로 밀어 넣고 내친김에 물도 조금 부어 넣었다.혼수상태에 빠진 배현우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눈을 뜨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성혜인이 그를 눕히고 손을 들어 이마를 짚고 있을 때 노예찬이 물었다. “사람 불러서 돌보라고 할까?”“그럴 필요 없어. 주변에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 왠지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감시하고 있는 사람의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항상 누군가의 감시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구금섬 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관리가 난잡하고 계급도 존재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단결되어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은 위험 요소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뜻이었다.성혜인은 일어나 창문을 닫으려다가 노예찬의 손등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았다.“이건 어쩌다 다친 거야?”“들어올 때 나뭇가지에 긁혔어.”성혜인은 방금 사 온 약들을 살펴봤는데 다행히도 여러 종류의 약이 들어있었고, 그중에는 외상 치료용 약도 있었다. 그녀는 소독 스프레이를 꺼내 노예찬의 손등에 뿌렸다.“예찬아, 너 그 문신이 걱정돼? 걱정하지 마. 승제 씨를 찾고 나면 내가 반드시 해결할 방법을 찾을 거니까.”소독이 끝난 후 그녀는 연고를 발라주었다. 이때 갑자기 방 안의 불이 꺼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섬 전체의 불이 꺼져 있었다.“무슨 일이지?...”말을 마치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성혜인은 반사적으로 노예찬을 밀었다.
손가락이 깨끗해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소독한 후 그는 멈춰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10대 소년처럼 보였지만 눈빛은 잔혹하고 사악했다.그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나갔다. 의사는 이미 성혜인의 상처를 다 꿰맸지만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테이블 위에 촛불을 켜놓았다. 의사는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노예찬을 흘끗 보았다. 노예찬은 소파에 앉아 곁눈으로 성혜인을 관찰했다. 최근 반승제에 대한 걱정에 더해 오늘 밤 발목을 다치며 몹시 초췌해진 성혜인은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빛이 매우 어두웠지만 농예찬은 그녀가 열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충격 때문인 것 같았다. 거실 안에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옆에서 주사기를 꺼내 성혜인의 손목을 잡고 주사를 놓으려는 순간 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게 귀를 꿰뚫는 높은 총소리에 성혜인은 눈을 번쩍 떴다. 노예찬은 손에 있던 주사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소파 밑으로 차서 넣었다.“누나, 열이 나는 것 같아.”성혜인은 일어나서 그를 옆방으로 밀어 넣었다.“너와 배현우는 여기 숨어있어. 내가 나가서 무슨 상황인지 보고 올 테니까, 내가 올 때까지 섣불리 나오지 마.”노예찬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설핏 그의 눈동자에 악의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누나, 구금섬에서는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어. 밖은 위험해.”성혜인은 노예찬의 손등을 토닥였다.“괜찮아. 나가서 보고 금방 돌아올 테니 잘 숨어 있어.”노예찬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풀었다. 성혜인은 몸을 추스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혜인이 나가자마자 노예찬은 전화를 걸어 중간 섬의 상황을 물었다.“10장로님, 안쪽 섬에 있던 사람이 직접 검문소를 뚫고 중간 섬으로 온 것 같습니다.”노예찬은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꽉 움켜쥐고 얼굴을 굳혔다.“어떤 놈인
성혜인은 20분 정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차도 그림자도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 노예찬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성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내가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계속 돌아오지 않으니까 걱정돼서 나와봤어.”성혜인은 방에 들어가 모자를 쓰고 나왔다.“예찬아, 나 지금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해. 배현우를 부탁할게. 고열에 정신까지 이상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네가 잠시 나 대신 좀 도와줘.”“언제 돌아와?”“모르겠어.”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방금 그 세력이 누구인지, 체포된 남자가 반승제가 맞는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맞다면 그녀는 가서 그를 구해야만 했다. 변장하고 들어가야만 한다.노예찬의 눈빛이 음침해졌다. 내섬에 있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길래 한밤중에 중간 섬에 침입하여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킨단 말인가.성혜인이 섣불리 그들을 따라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해파리 인장은 어디가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그래서 그는 성혜인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누나. 저 사람들은 내섬에서 온 사람들이야.”“네가 어떻게 알아?”“외섬, 중간 섬, 내섬의 번호판이 다 달라. 내섬의 세력은 매우 복잡해. 몇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데 이 가문 사람들만 총을 사용할 수 있거든. 그들을 건드리면 아마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거야.”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게. 예찮아, 배현우 잘 부탁해.”지금 짐을 떠넘기는 건 좀 뻔뻔한 일이지만, 배현우는 돌봐줄 사람이 정말 필요했다.노예찬은 눈썹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오늘 밤 일을 일으킨 사람들을 욕했다. 부하들이 아직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성혜인을 붙잡아 둬야 했다.하지만 성혜인은 반승제에 관한 일을 마주쳤고 게다가 아침에 누군가 반승제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으니 침착할 수 없었다. 그녀는 노예찬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갔다. 심지어 택시를 타고.“X발!”
“구씨 가문 측에 최근 여자를 죽이려거든 먼저 나와 상의하라고 전해.”“네.”전화를 끊은 노예찬은 바지 주머니에 전화를 넣었다. 이때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노예찬.”노예찬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바보는 언제 나왔지?문 안에 서 있던 배현우는 노예찬의 살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순진하게 물었다.“혜인이는? 혜인이 보고 싶어.”노예찬은 짜증을 내며 손을 흔들었다.“물건 사러 나갔어. 곧 돌아올 거야.”배현우의 열은 아직 내리지 않았고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운 상태였다.“정말이야? 안 믿어. 나 견과류가 들어간 요구르트 먹고 싶어.”노예찬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곧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먹고 싶으면 더 기다려. 지금 섬 전체가 정전되어서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서 살 수 없어.”“안 믿어.”배현우는 그대로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안 믿어. 빨리 나가서 사줘.”노예찬이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보니 그는 땅에서 구르고 있었다.“너무 배고파.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요구르트, 스테이크, 불고기... 먹고 싶어.”배현우가 음식 이름을 줄줄이 읊었지만 노예찬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후 비가 한바탕 퍼부어서 땅은 아직도 축축했다. 배현우는 땅에서 구르며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노예찬은 의자를 테라스로 옮겨와 앉았다. 주변에 촛불을 켜 놓았지만 여전히 매우 어두웠다. 전기가 언제 들어오는지도 모르겠고, 그는 진흙탕에서 아이처럼 데굴데굴 구르는 남자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10분 동안 구르던 배현우는 아마도 오늘 밤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너무 화가 나서 그대로 기절했다.노예찬은 일어나 그의 앞으로 걸어가 다리를 뻗어 발로 차고 나서야 그 남자가 정말 기절했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배현우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 난방을 켜고 온도를 올린 후 바닥에 내팽개쳐 버린 채로 내버려두었다.배현우는 원래 열이 나고 있었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며 열이 더 심해졌지만 정신을 차
성혜인은 성큼성큼 다가가 두 사람의 상처를 확인했다.“우선 숨을 곳부터 찾아야 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밤 중간 섬이 너무 어수선해. 우리도 표적이 됐어.”성혜인은 총을 들고 매우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배현우, 예찬이를 부축해줘.”“혜인아, 나 너무 배고파.”방금 바닥에서 오랫 동안 굴렀지만 노예찬은 그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는 정말 배가 고프고 몸이 뜨껍고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성혜인은 서둘러 뜨거운 우유 한 병을 꺼내 비스킷과 함께 먹였다. 그 사이 또 5분이 지체되었다.“역시 혜인이가 좋아.”배가 부른 배현우는 노예찬을 일으켜 세울 힘이 있었다. 성혜인은 총을 들고 길을 열었다. 노예찬은 절뚝거리며 잠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다시 묵묵히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바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둘 다 바보였다. 그에게 놀아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오늘 밤 일은 그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해파리 인장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어렸을 때부터 체질이 남달랐던 그는 죽을 수 없었다. 구석진 곳에 방치되더라도 숨이 조금만 붙어 있으면 스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이 사람들 왜 우리를 감시하는 거야? 누나한테 뭔가 있어서 그래?”이때 세 사람은 한 골목길에 이르렀다. 한참을 걸어왔는데도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아마 방금 전에 머물렀던 작은 별장을 폭파한 것 같았다.“누나,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그는 구금섬 전체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무리를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성혜인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오늘 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른다. 총을 잡은 손이 이 순간까지도 계속 떨리고 있었다.오늘 밤은 그녀의 관점이 뒤집힌 밤이었다. 예전 바깥 세상에 있을 때 그녀는 이렇게 스릴있고, 자극적인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실제 총격전을 한 적도 없었다.낡아빠진 다리 아래의 구멍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멈춰섰다. 이 다리 구멍의 위치는 매우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