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이 말에 이끌려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최용호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썹을 치켜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설우현이 말하길 당신들 구금섬으로 간다면서요?”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반승제가 그녀에게 준 주소였다. 최근 그녀도 정보를 찾고 있었지만 얻을 수 있는 소식이 너무나 적었다.최용호는 손끝으로 종이를 잡았다. 그의 자세는 대범하고 여유로웠다.“마침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조금 알고 있어요.”성혜인의 눈빛이 반짝였다.“고마워요.”“고맙긴요. 기웅이 동생이면 당연히 제 동생이기도 하죠.”눈꼬리를 휘며 미소를 짓는 그는 설우현의 말대로 웃음 속에 칼을 숨긴 사람이었다.그녀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종이에 적힌 몇 가지 단서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가 여기에 몇 줄 나열된 것을 보니 최용호의 정보가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성혜인은 그 종이를 반승제에게 건넸다. 반승제의 시선이 최용호와 마주쳤다.분명히 두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아마도 플로리아에서 부딪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도 친구는 아닌 것 같았다.성혜인이 외쳤다.“승제 씨?”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이 막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벽에 매달려 있던 ‘설경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먼저 반승제를 바라보더니 다시 반승우를 바라보았다.“실험체, 실험체, 전부 실험체야.”“성공한 실험체, 버려진 실험체.”이 두 마디는 현장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이때 배현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닥쳐!”그의 머리는 깨질 것 같았다!머릿속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울부짖으며 갑자기 어떤 장면이 스쳤지만 그는 그것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더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벽을 짚으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치 여기 머무는 것이 몹시 고통스러운 것처럼.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반승
지하 격투장으로 돌아온 성혜인은 설우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혜인아, 설씨 가문 일은 다 해결됐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주식 양도 증서는 아직 유효해. 네가 없는 동안 내가 설씨 가문을 보고 있을게. 이제 일도 해결됐으니 형더러 떠나라고 했어.”설기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온 도구나 다름없었다.수화기 반대편에서 설우현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쳐보며 설명했다.“회사 일은 내가 천천히 익히면 돼. 정 안 되면 형을 다시 불러오면 되니까 넌 아무 걱정 말고 가서 해독제를 찾아. 기다리고 있을게.”성혜인은 안심이 됐다. 그녀는 설우현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매우 짧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설우현은 언제나 오빠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반대로 설기웅은 설인아를 극도로 애지중지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그때 성혜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을 사람은 그녀였을 것이다.설기웅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 아낌없는 사랑과 포용을 올바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다는 거였다.전화를 끊은 성혜인은 창가에 서 있는 반승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 두 가짜가 지껄인 인체 실험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설마 이 모든 것이 반승제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성혜인은 뒤에서 천천히 반승제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의 손바닥이 그녀의 손들을 덮었다.“혜인아,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깊게 생각하지 마.”그녀는 이마를 그의 등에 기댔다.“제가 어떻게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요?”반승제는 무력한 듯 돌아서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더러 설명하라고 하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조차도 너무 혼란스러워. 그래서 이번 여정에 배현우를 데려가야 해. 그라면 도중에 뭔가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몰라.”고개를 끄덕인 성혜인은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전폰을 꺼내 장하리에게 전화했다.성혜인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장하리의 목소리가 약간 쉰 것 같았다. 왠지 아픈 것 같았다.“하리야
장하리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그냥 무시해요. 제가 안 내려가면 그만이에요.”다행히도 회사 사람들은 매우 단결하고 있었다. 예전 장하리가 어머니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을 때도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이것 또한 성혜인이 모두에게 가르친 것이기도 했다.장하리는 성혜인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다른 회사였다면 사장의 비서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일찌감치 권위를 잃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S.M 사람들은 전부 서수연의 욕을 흘려들으며 장하리에게 협조했다. 회사가 단결할수록 장하리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곳은 대가족과 같았다. 모두가 성혜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해은은 가방에서 영양제 몇 박스를 꺼냈다.“전 분명 알려줬어요. 하리 씨 지금 안색이 말이 아니에요. 사장님 휴게실에 가서 반 시간이라도 자요. 조금 있으면 또 파티에 참석해야 하잖아요.”장하리는 손끝을 움찔했다. 그녀는 마음이 뭉클해졌다.“전 괜찮아요.”유해은은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유해은이 나가려고 돌아서자 장하리가 물었다.“백현문 씨랑 요즘 친해지지 않았어요?”지금 백현문이 유해은을 쫓아다닌다는 소문은 업계에 쭉 퍼졌다. 모두가 백현문이 유해은의 뒤를 봐준다고 생각했다. 성 상납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은 감히 유해인을 건드리지 못했다. 감독들도 그녀에게 예의를 갖췄다.“친해지진 않았지만 매일 우리 촬영장에 와서 죽치고 있어요.”눈살을 찌푸린 유해은은 백현문이 낯선 사람인 것처럼 말투가 평온했다.“하리 씨, 만약 힘든 일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야 해요. 백현문을 이용하면 되거든요. 이것도 사장님이 저에게 가르쳐 준 거예요. 필요할 때는 실컷 이용해야죠. 백현문이 저에게 빚진 거니까요.”장하리는 서수연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백현문이 나서면 서수연이 다시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일은 없
장하리의 시선은 다시 서주혁에게로 향했다. 그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는 담담하게 잔을 들고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권한 사람들은 마지못해 잔을 비웠다.서주혁은 어디서든 빛나는 금수저였지만 그녀는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흙수저였다. 역시나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 자신만 인연이라고 우길 뿐이었다.조현은 장하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떠났다. 장하리는 몇 분 동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때 서수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X년이 왜 또 여기 있어! 우리 오빠 뒷조사를 하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서수연은 오늘 밤 분홍색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분명 부드러운 이미지였지만, 입으로 내뱉는 말은 마치 길거리의 불량소녀 같았다.“장하리 맞지? 그 미천한 여자.”서수연의 주변에는 여전히 거짓된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장하리는 그녀들 중 몇 명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지난 몇 번의 파티에서 이 몇 명은 계속 장하리를 괴롭혔다. 다만 장하리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그녀의 신분으로 어떻게 이 부잣집 아가씨들에게 강력히 맞설 수 있겠는가. 게다가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서수연은 턱을 치켜들고 오만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장하리, 따라 와!”그녀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서수연은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다. 어쨌든 서주혁이 예전 장하리에게 꽤 관심이 많았는데 혹시라도 그녀가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본다면 갑자기 없던 정이라도 살아난다면 큰일이었다.그래서 장하리를 괴롭힐 때면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조용히 괴롭혔다. 장하리는 물러터져서 그녀들이 마음껏 괴롭힐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그녀들은 장하리를 여자 화장실에 데려와서 미친 듯이 뺨을 때렸다.“X년! 앞으로 우리 오빠한테 접근하지 마!” “수연아, 너 왜 힘없이 때려. 내가 때리는 거 봐.”짝! 짝!쉴 새 없이 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마치 학창 시절
서주혁은 담배 절반을 피우고 꽁초를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계속 보고 있을 거야?”그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모퉁이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장하리는 자리에 얼어붙은 채 뺨에 있는 마스크를 만지더니 가만히 서 있었다. 서주혁은 성냥갑을 들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장하리는 전에 이런 종류의 성냥갑을 본 적이 있었다. 사고 싶었지만 인터넷에서도 매점에서도 판매하지 않았다. 이것은 특별히 주문 제작한 성냥갑인 것 같았다. 때때로 그는 라이터를 사용하고, 때로는 이런 종류의 성냥갑을 사용했다.그는 턱을 살짝 들어 올리고 입안 가득한 연기를 내뿜었다. 그를 바라보던 장하리는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마스크를 내리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려는 듯 조용히 돌아섰다.지금 상태로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일에 관한 협상 건은 유해은과 송아현이 실수 없이 처리할 것이니 장하리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서주혁은 떠나는 발소리가 들리자 속눈섭이 떨렸다. 복도의 등도 꺼지고 그의 입에 물고 있는 담배만 미약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한참 후 그는 고개를 숙이고 성냥에 불을 붙이고 불이 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짜증이 치밀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서주혁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때 온시환도 담배를 피우러 다가왔다.“냄새가 왜 이렇게 심해? 몇 대나 피운 거야?”온시환은 반대편 벽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오늘 저녁 장하리를 봤는데 두 연예인과 함께 왔더라. 성혜인이 떠난 후 장하리가 회사를 관리하는 것 같던데.” “응.”서주혁은 그녀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온시환은 계속 그 이야기를 꺼냈다.“너 기억 상실했을 때, 맨날 저 여자를 덮쳤잖아.”모두가 서주혁이 기억상실을 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온시환이 누구인가? 서주혁이 깨어난 첫날
성혜인과 반승제는 격투장에서 하룻밤을 쉬고 제원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출발을 결심했다.반승제는 처음 배현우를 데리고 한국을 떠났을 때 백겸에게 연구 기지를 찾아내겠다고 약속했다.그 때문에 백겸은 배현우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배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어도 아무도 한국에서 배현우를 데려갈 수 없었을 것이다.격투장의 빌라 꼭대기 층. 배현우는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반승제, 정말 나를 데려갈 거야?”반승제는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워 헬기에 고정하고 문을 닫았다.“X발!”배현우는 머리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부딪히며 고통으로 눈앞이 어지러웠다. 반승제를 바라보니 성혜인과 함께 다른 헬기에 타고 있었다.빨리 임지연을 찾아 해독제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제 설의종 쪽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먼저 BK에 대해 알아야만 연구 기지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배현우의 몸에는 아무런 통신 장비가 없었다. 반승제가 그를 눈앞에 두고 감시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배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면과 점점 더 멀어지는 땅만 내려다보았다. 다른 헬기에서는 성혜인이 총을 조립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인터넷에서 수없이 이곳을 찾아봤지만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바다 한가운데에 완전히 둘러싸인 세 개의 섬은, 수천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그곳은 지하 격투장과 다소 비슷했지만 지하 격투장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지만 그곳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달랐다.그곳은 구금섬으로 불리며 300여 년 전에는 정신병이 있는 범인을 가두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섬에 보내진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백여 년 전에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여 질서가 다시 확립되고 완전히 분리되고 폐쇄된 국가가 만들어졌다.그곳의 원주민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외부인과 결혼 할 수 없었으며 외부 세계와의 무역은 온전히 네 가문에서 관리했다.최용호가 알려준 몇 가지 단서를 근거로 성혜인이
세 사람 모두 보안 검색을 통과했다. 성혜인이 더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곳은 반년에 한 번만 개방되고 한 번에 세 사람만 통과할 수 있으며 이번 입장 자격을 얻기 위해 큰 대가를 치렀다.게다가 이 섬에 들어가기 위한 아주 역겨운 규칙이 하나 있었다. 외부인이 힘을 합쳐 내부의 운영을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은 환각제를 복용해야 하고 다시 깨어나면 함께 들어온 사람과 헤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성혜인은 최용호가 준 정보를 통해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석판에 새겨진 천 개가 넘는 빼곡하게 적힌 규칙을 보자 극도의 불쾌감을 느꼈다.현대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런 규칙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려웠다.반승제는 그녀의 곁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들어가서 나를 찾으려고 서두르지 말고 너부터 지켜.”말을 마친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성혜인의 배를 바라보았다.“혜인아, 정말 널 돌려보내고 싶어.”이곳은 그녀에게 안전하지 않았고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몰랐다.“괜찮아요.”성혜인은 차분한 표정으로 총을 건넸다.“승제 씨도 자신을 잘 지켜요.”그녀는 차가운 표정의 배현우를 흘겨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이 사람을 따라오게 놔둬도 괜찮을까요? 들어가면 우리랑 떨어질 텐데.”“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어.”반승우라면 이 섬에 대한 단서를 줄 수 있었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배현우의 존재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밝히지 못하는 것 같았다.성혜인을 본 경비병은 눈빛이 빛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쯧쯧, 몇 년 동안 여자가 들어가는 건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예쁘게 생긴 여자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구금섬에 숨으려는 건지.”그들은 모든 국가에서 수배 중인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아닌 이상 스스로 이곳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이곳은 구금섬이었고, 그 당시에는 이곳에 정신병원이 가득했다. 지금까지도 섬에는
소년은 고개를 돌려 성혜인을 바라봤다.그러자 성혜인의 얼굴에는 금세 미소가 번졌다.“그게...”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몸이 너무 안 좋은 원인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이 녀석에게 따로 말을 걸 기회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여 연약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양심이 있다면 날 데리고 가겠지.’그러나 예상과 달리 성혜인이 쓰러진 후, 소년의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쓰러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갔다.10분 정도 기다려 소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성혜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처음 온 곳이라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조차 몰랐으나 일단 일어나서 거리로 나갔다.이곳은 연락과 의사소통이 힘든 것 외에 바깥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그렇게 한 시간 동안 걷다가 피곤함을 느껴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 밖에 앉았다.“주문 도와드릴까요?”남자의 목소리는 풋풋함과 성숙함이 공존했다.고개를 들어보자 방금 전에 매정하게 돌아섰던 그 자식이었다.노예찬도 성혜인을 알아본 듯했으나 별 표정 없이 메뉴판을 건넸다.성혜인은 오는 길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지만, 눈에 띄는 부분에 해파리 문신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앞의 이 고등학생을 제외하고는.‘설마 BK 쪽 사람인 건가?’성혜인은 자신이 우연히 BK의 본거지에 들어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임지연이 숨어 있는 곳은 BK의 은신처가 아닐까?마음속에 의심이 피어날수록 불안함도 동시에 밀려왔다.미스터 K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성혜인이 이곳에 왔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독 안의 든 쥐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다.성혜인이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자 노예찬은 묻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순간 정신을 차린 성혜인은 메뉴판을 건네받고 음식을 몇 개 주문했다.“다 못 먹을 거예요. 양이 많으니까 두 개만 시켜요.”노예찬은 마침내 입을 열었고 성혜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