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지 알지 못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장하리의 동공이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마치 무언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듯 놀라며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표님께서 모든 직원에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계신 참된 사장이라는 것을.성혜인은 소속사 아티스트의 일이라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온수빈, 송아현, 한서진, 유해은, 그리고 장하리의 일까지 성혜인은 항상 팔 걷고 나서곤 했다.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성혜인이 방금 한 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정 붙일 데가 필요하면 S.M에 붙여보라니.장하리는 가슴이 아파 손을 얹은 채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다른 사람들은 장하리의 사정을 들으면 이해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뿐. 어떻게 돈으로 부모의 정을 살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어떻게 그런 취급을 받고도 반항할 생각 한번 못할까.아무도 그녀의 어두운 이면의 강박적인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그러나 성혜인은 이해해 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까지 캐치해냈다.“장 비서?”장하리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성혜인이 이름을 불렀다.장하리는 일을 성실히, 그리고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감정이 섞인 일을 마주하면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구제 불능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 장하리는 방우찬에게 의존했었다. 하지만 방우찬이 바람을 피우고 홍규연과 결혼한 이후, 장하리는 빠르게 놓아주고 포기했다. 이는 그녀가 연인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존이 더 강하다는 것을 설명했다.장하리가 서둘러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눈물은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자꾸자꾸 흘러내렸다.장하리는 조금 전 어머니께 폭행당한 여파로 입술이 터지고 찢어졌고 얼굴도 조금 부어있었다.오늘 회사에서 크게 일을 쳐버려 체면을 잃었으니 앞으로 그녀를 대하는 모든 사람의 눈에 편견이 생길 것이었다.그러나 장하리는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았고 성혜인 같은 우수한 상사를 떠나고 싶지 않았
노임향은 놀라서 얼른 장하리 등 뒤로 숨었다. 그저 장님에게 몇 마디 뱉은 것뿐인데, 왜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질책하고 욕하는지 몰랐다.노임향은 장하리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장하리, 얼른 저 사람들 좀 말려 봐.”하지만 장하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손을 까딱하며 경호원에게 노임향을 데려가라 했다.집에 돌아간 후, 남자에게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면 이렇게까지 막 나가지 않을 것이다.노임향은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빌어먹을, 무슨 근거로 나를 그렇게 대해?’그녀를 화를 내며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자에게서 위안이라도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기도 전에,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온 연락이었는데, 남편이 경찰에 잡혀갔다고 했다.그리고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경찰에 잡혀갔다는 말만으로도 노임향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경찰이 사람 잘못 잡은 거 아닌가요? 제 남편은 잘못한 게 없는데... 요즈음에 조용히 잘 있었단 말이에요. 안 되겠어요, 얼른 경찰서에 가 봐야겠어요.”그녀에게 연락하여 사실을 통보한 사람은 그녀의 주절거림을 듣지도 않은 듯했다.노임향은 얼른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지만, 남자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노임향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머릿속에 성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아까 성혜인이 그녀의 남편을 감방에 보내버린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정말로 경찰에게 잡혔다. 이러한 우연 속에 그녀가 한 일이 아니라면 또 누가 있을까.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노임향은 얼른 다시 회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회사 아래에 도착했을 때야 깨달았다.‘간단한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을 감옥에 보냈는데, 지금 계속 신경을 건드리면 또 어떻게 되는 거지?’노임향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얼른 장하리에 전화를 걸었다.장하리는 아직
그는 손에 들어온 먹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장하리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남자의 손끝이 날렵하게 그녀의 허리를 꼬집으며 고개를 돌렸다.장하리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노임향 때문에 화가 나서 정신이 나간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과 한 번도 키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었다.그는 키스가 매우 역겨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개를 돌려 날렵한 턱선을 드러낸 그를 보며 그녀는 얼른 물러나 옆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그녀의 치마를 밀어 올려 침입해 왔다.차의 가림막이 내려졌다. 장하리는 심장이 떨려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그녀의 손은 옷감이 좋은 그의 양복 위에 올려져 있었다. 오늘 그의 기분도 괜찮은 듯했다, 등을 뒤로 기대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힘을 줬다.그의 시선은 장하리의 얼굴에 꽂혀있었다. 장하리는 온몸이 델 듯 뜨거워 났다.자동차가 목적지에서 멈출 때까지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꽂혀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차마 그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남자는 에너지가 넘쳤다. 차 안에서의 40분으로는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차가 멈추고, 기사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 차만 정원에 주차해 두었다.남자는 한 시간 동안 더 괴롭히고 나서야 성에 찬 듯 그녀를 놓아주었다.온몸이 나른해진 장하리에 그가 말했다.“약 먹는 거 잊지 마.”“네.”그녀는 침대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그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콘돔 없이 관계를 맺고, 스스로 약을 먹는 것이었다. 이제 그마저도 습관이 되었다.그녀는 눈을 내리고 조용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남자는 입고 있는 양복을 벗지 않은 상태여서 조금만 정리하면 나갈 수 있었다.그제야 장하리는 이곳이 그의 집 별장임을 의식했다.온몸이 굳어진 그녀는 불편함에 옷을 움켜쥐었다.오늘 밤, 이 남자는 가문의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자동차가 한 시간 동안이나
하지만 차 안의 공간은 제한적인데 또 어디 숨을 곳이 있을까.장하리는 갑자기 양쪽 커튼을 내려 밖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잡히지만 않으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밖의 사람들에게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었다.“봐요! 제가 말씀드린 게 맞죠? 뻔뻔하고 천한 여자가 정말 안에 있잖아요!”“쟤 끌어내, 어떤 여우 같은 여자가 감히 함부로 사람을 꾀는지 봐야겠어.”“얼른 나와! 직접 움직이게 만들지 말고. 왔으면 인정을 해, 피하지만 말고!”장하리는 조용히 안쪽에 앉아서 저 사람들이 얼른 가기만을 바랐다.하지만 선두에 선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즉시 경호원을 불러왔다.“오빠 기사 찾아서 차 키 좀 가져와. 불여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 좀 해야겠어.”장하리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그 사람의 여동생?’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다.보통 그녀가 건 전화는 다 받지 않았다. 또한 함부로 연락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한 차례 받았다.하지만 지금은 긴급상황이었다.장하리가 다시 한번 연락을 했지만, 무참히 끊어졌다.다섯 번의 시도 끝에 남자가 드디어 연락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어두웠다.“무슨 일인데?”“여동생이 차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요. 저... 저 어떡해요?”최소한 여동생을 불러들일 줄 알았는데, 남자는 그저 비웃으며 말했다.“차 안에서 유혹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사람들한테 들키는 게 겁나? 오늘 우리 집 연회인 거 몰랐어?”장하리는 정말 몰랐다. 남자의 모든 걸, 그녀가 알 방도는 없었다.밖에 있는 여자가 질서정연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걸 들으며 장하리는 아연실색했다. 밖에 있는 여자는 장하리를 끌어내려 그녀의 뺨을 세게 때리겠다고 했다.장하리는 이런 장소에서 쪽팔리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음 말을 내뱉었다.“밖에 있는 사람 좀 불러들여 가주세요. 제발요...”하지만 남자가 내뱉은
장하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와서 이 여자 끌어내. 얼굴도 기억하고 앞으로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볼 때마다한 번 보면, 한 번 때릴 거야. 꼬실 사람이 없어서 감히 우리 오빠한테 꼬리를 쳐! 흥! 연회에도 늦게 참석하게 만들고!”장하리가 두 남자에게 죽은 개처럼 끌려 나갔다.존엄이고, 체면이고 모두 없었다.부잣집 아가씨들은 여전히 안에서 웃고 있었다.“사진 다 찍었어.”“동영상도 찍었어. 다음에 또다시 우리 오빠 앞에 나타나면 이 영상으로 치욕을 안겨줄 거야!”이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문밖으로 팽개쳐진 장하리는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그녀는 간신히 일어나 자신의 찢어진 옷을 꼼꼼히 정리했다.집안 연회에서는 이 집안의 난다 긴다 하는 젊은이들이 모두 한데 섞여 있었다.나이 많은 어른들은 쉬러 갔기에, 홀 안에는 그냥 오락의 장소로 바뀌었다. 남자는 맨 가운데에 앉은 남자는 았는데, 늦게 와서 이미 술을 여러 잔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몇 마디 안부를 나누고 다시 최근 주식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그는 장하리의 도움 요청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차 키는 운전기사에게 있고, 기사가 본인의 말만 듣기에 정말로 열쇠를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여 기껏해야 밖에서 협박만 당하고 차 안에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그는 장하리를 잊어버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과 최근의 경제 상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여자들이 들어오는 걸 보고 그는 미간을 찌푸릴 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까놓고 말해서, 장하리는 그저 남일 뿐이다.니 조금 억울함을 당하면 참겠지 싶었다.하지만 그는 가끔 멍하니 손에 든 술잔을 쳐다보았다. 그조차도 본인이 왜 멍하니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장하리는 먼 길을 나왔지만, 여전히 차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하이힐을 벗어 손에 들고 가로등 빛을 빌려 줄곧 앞으로 걸어갔다.전방에 갑자기 고급스러운 차 한 대가 나타났는데 누
화면에 스친 이름을 보니 그 남자였다.“형, 무슨 일이야? 지금 오라고? 근데 가기지 싫은데? 내 일에 상관하지 마. 어차피 가족 연회는 다 형 위주로 돌아가는데 내가 가든 안 가든 상관없잖아?”그는 장하리에 의도적으로 몸을 비볐다. 그녀가 놀라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갔다.“가던 길에 예쁜이를 주워서. 아직 못 따먹었는데 아쉬워서라도 못 가.”몇 초간 침묵한 상대편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번에는 또 누구한테 뒷수습해달라고 하게?”장하리를 안은 남자가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화가 나 장하리의 치마를 끌어 내렸다.“무슨 뒷수습이야!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놀든 내 맘이야. 형이 안 논다고 해서 나를한테 간섭하지 마! 다른 사람들이 형을 떠받들고 있는 걸 몰랐다고 하지 마. 형한테 권력이 없었으면 그 사람들도 형한테 들러붙지 않았을 거야.”“놔, 놓으라고!”장하리가 힘껏 버둥거리더니 그대로 남자의 품에서 떨어지며 바닥으로 넘어졌다.남자는 ‘쯧’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에게 말했다.“얌전히 있어, 난 여자도 때려. 오늘 밤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전화기 너머에 있던 남자는 그 말을 전부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리고 있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장하리인 것만 같았다.‘장하리는 차에 있는 거 아닌가?’“오든 말든 마음대로 해.”말을 마친 남자가 바로 전화를 끊었다.다른 한편, 장하리가 창백한 안색으로, 필사적으로 치마를 움켜쥐었다.남자가 몸을 굽혀 다시 장하리를 끌어올렸다.“나한테 찍힌 것도 복인 줄 알아내가 널 찍은 건 네 복이야. 얼른 움직여. 다 하면 6억 줄게.”6억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번 장하리의 가슴을 후벼팠다.그녀는 참다못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치고 허겁지겁 도망쳤다.남자는 멍하니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볼을 만지며 한참을 생각하다 침을 뱉었다.“씨발, 뭐야! 따먹지도 못하고 뺨만 맞았어!”오늘 밤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밤이었다. 남자가 더 이상 쫓아오지 않
성혜인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어버리려고 했으나 상대방이 반승제라는 것을 떠올리고 손끝을 멈칫했다.반승제는 두 팔로 그녀를 가두고는 흥미롭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성혜인은 이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어쩔 바를 몰라 했다.그가 보자고 한 건 어디 하나 빠짐없이 세세하게 보는 것이었다.성혜인은 저도 모르고 다리를 꼭 가두었고, 이때 그가 입을 맞춰 왔다.위에서부터 아래로 모든 부분을 다정하게 달래주었다.모든 세포가 떨리며 소리치는 것 같았고 자극으로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것 같았다.“그만, 그만...”그를 밀고 싶었지만, 반승제는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다.성혜인은 마지막에 조금 후회되기까지 했다. 밥상에 안겨 온 다음 또다시 소파에 안겨 갈 때까지 그녀는 여전히 어지러웠으니까.그가 마지막 부분까지 가려 한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승제 씨, 우리 아이라도 가질까요?”말을 끝낸 즉시 그녀는 그의 몸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그는 빠르게 물러났고, 이마에 땀이 그녀의 가슴에 떨어졌다.“안 돼.”그는 단호하게 대답하며 천천히 그녀의 옷을 입혔다.“왜요?”“아직 때가 아니야. 나중에 얘기해.”미스터 K와 비밀스러운 연구 시설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그는 그녀가 위험을 무릅쓴 채 아이를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이 몇 번 그는 모두 조치를 취했다. 조심조심하지 않으면 그녀가 고통을 겪을까 봐 두려웠으니까.“왜 아직 때가 아닌 거예요?”성혜인이 이 말을 한 다음 갑자기 임지연을 떠올렸다.눈이 나아지면 그녀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말이다.그러니 정말로 아이를 낳을 때가 아니었다.약간 아쉬웠다.반승제는 그녀를 껴안고,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야.”성혜인은 웃으며 말했다. “네.”“내가 부엌에 가서 부서진 조각들 정리할게, 겨울이와 흰둥이가 밟지 않게.”“네.”반승제가 부엌으로 갔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장미의 전화였다.“
성혜인은 그의 말이 감정적인 것을 알고 몰래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설씨 집안 여주인에게도 그다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밤에 침대에 누웠을 때, 그녀는 참지 못하고 반승제의 품에 들어갔다.“설씨 집안 안주인도 별로일 것 같아요. 설인아 같은 딸을 키운 걸 보면 사리 분별에 능하지 못한 사람일 거예요.”반승제는 서류를 보고 있으면서 그녀를 더 꽉 껴안았다.“음, 역시 네 양어머니가 더 나아.”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인지라 말문이 닫히지 않았다.“그럼요.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자예요. 예전에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맞을 때마다 엄마는 날 보호하고 위로해 주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녀 대신 손자를 더 원하셔서 엄마가 많은 억울함을 겪으셨어요.”그런데 이런 여자가 어떻게 BK와 연관이 있단 말인가?성혜인은 그간의 성장 궤적을 곰곰이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임지연과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함께 있을 때마다 임지연이 가져다준 치유력은 엄청났다.그녀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모두 임지연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임지연이 BK의 성녀였다면 왜 성휘 같은 일반인과 엮이게 되었는지, 그 당시 도대체 무슨 내막이 있었을까?미스터 K가 전에 그녀에게 임지연이 최면술사라고 말했었다.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최면술사라면 한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착각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만약 과거의 흔적들이 대부분 거짓이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모르는 게 투성이라 성혜인은 참지 못하고 반승제의 손을 잡았다.한순간, 그들이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바깥세상의 시비를 상관할 필요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그와 함께 이 작은 곳에서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하지만 임지연의 일을 눈 뜨고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스터 K도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머리가 또 아프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침에는 몸 상태가 아주 괜찮다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