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너무 차분했다. 연령은 물론이고 유시은, 손경민과도 초면인 듯한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며 확신했다.그 시각 연령은 여전히 무릎 꿇은 자세를 유지하며 흐느껴 울었다.이때 송아현이 끼어들었다.“유시은, 이제 어떡할 거야? 애꿎은 사람을 때린 것도 모자라 무릎까지 꿇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피해보상금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어?”송아현은 이 현장에서 가장 큰 선배였다. 그런 그녀가 입을 열자 다른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신 발언하기 시작했다.“그러게 말이에요. 피가 날 정도로 때렸으니... 솔직히 시은 씨 이번엔 좀 심했어요.”성혜인은 재빨리 다가가 연령을 일으켜 세웠다. 그제야 입가에 묻은 핏자국이 보였고 유시은이 힘을 얼마나 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저분을 고소하셔도 됩니다. 이건 명백한 과실치사니깐요.”유시은은 피해보상금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명예가 훼손된다면 지금처럼 영화를 찍는 건 불가능한거나 다름없다.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투자자인 성혜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서는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졌고 그 순간 유시은은 이 모든 게 그의 일방적인 모함임을 깨달았다.사태 파악을 마친 유시은과 달리 아이는 여전히 난동을 부렸고 사악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째려봤다.“당신도 나쁜 사람이에요. 당장 나가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라고요!”아이는 성혜인을 향해 행패를 부렸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마음이 초조해진 유시은은 다급하게 손경민을 끌어당기더니 얼른 이 일을 해결하라고 눈치를 줬다.그 시각 손경민의 눈에는 착잡함이 담겨 있었다. 특히 연령의 얼굴에 찍힌 손바닥을 보았을 때 죄책감은 극에 달했다.알고 보니 연령은 정말로 아이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기 아들을 끌어당겼다.“됐어, 얼른 사과해.”
“정말요? 아이가 엄청 기뻐할 거예요. 저한테 기사를 얘기해줬던 그날 기억하죠? 그때 전 정말 멘붕이었거든요. 경민 씨에게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는데도 받지 않아서 바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딸아이 몸에 생긴 상처를 보고 나니 두려움이 밀려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경찰들이 지금 수사하고 있대요. 만약 온수빈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게 맞다면 그 또한 온라인에 해명해서 진실을 밝힐 거예요.”연령은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쳤다.“여보, 난 우리 딸에게 모든 걸 걸었어요.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나도 확 죽어버릴 거예요.”남자의 죄책감은 참 이상한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그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 유시은의 말 한마디에 흔들려 죄책감을 까맣게 잊어버릴 게 뻔하다.“여보, 전 이만 가볼게요. 아이가 영상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얼든 들어가 봐요. 어쩌면 경민 씨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손경민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방금 그 도시락이 다시 떠올랐다. 그건 연령이 예전에 가장 즐겨 만들던 도시락이었다.“아니야, 같이 가서 저녁 먹자.”선물 같은 그의 말에 당장이라도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때마침 이어폰에서 성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절해요. 고작 밥 한 끼에 그동안의 서러움을 풀어버릴 거예요? 경민 씨는 밥 먹고 나오는 순간 모든 걸 잊어버릴 거예요. 지금 이걸 거절하면 앞으로 몇 시간동안 연령 씨의 대한 미안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겁니다. 자연스레 딸아이도 같이 떠오르겠죠. 유시은 씨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아시잖아요. 분명히 싸울 이유가 생길 겁니다.”그녀의 말에 연령은 이성을 되찾았다.“유시은 씨가 지금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어요. 식사를 거절하면서 자연스럽게 경민 씨에게 입맞춤해요. 이 일로 두 사람이 싸우게 된다면 연령 씨의 소중함을 알게 될 거예요.”연령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손경민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같은 식탁에서 밥 먹는 장면은 수없이 상상했
“유시은, 작작 좀 해!”유시은 자신을 향해 윽박지르는 손경민의 모습에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주제 파악 좀 해요. 당신이 뭔데 나한테 소리치는 거죠?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요.”순간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손경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의실에서 나왔다.마침 문 앞에 서 있는 성혜인을 발견했다.그녀는 손에 핸드폰을 든 채 통화를 하고 있었고 손경민을 보고선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건넸다.그는 불편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방금 유시은과 언성 높여 싸운 걸 들었을까 봐 걱정했으나 그 어떤 감정 기복도 없이 태연하게 서있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을 내려놓았다.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성혜인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리고선 자리를 떴다.성혜인은 그가 연령을 만나러 간다고 추측했다. 이곳에서 천대받았으니 당연히 화풀이할 상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성혜인은 핸드폰을 든 채 통화하는 척하며 두 사람의 싸움을 엿들었다.그녀는 곧바로 이어폰에 대고 속삭였다.“손경민 씨는 지금 그쪽으로 갈 겁니다. 연령 씨,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저한테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연령은 이 모든 걸 손쉽게 해내는 성혜인의 능력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30분 후, 정말로 성혜인의 말대로 손경민이 찾아왔고 심지어 손에는 작은 케이크가 있었다.비록 값비싼 케이크는 아니지만 연령은 이미 감동한듯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의 모습에 손경민의 마음은 금세 풀렸다. 유시은과 있으면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연령과 함께 있으면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것 같았다.연령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그럴수록 손경민의 마음은 더 편해졌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손경민은 떠났다.연령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정말 혜인 씨 말대로 찾아왔어요. 믿기지 않아요.”성혜인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이제 연령 씨도 약속을 지켜야죠? 앞으로 보름 동안 손경민 씨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요
연령이 도착했을 때, 재벌 2세 몇 명은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광대를 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린다는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앉아. 그래서 알려주려는 정보가 뭔데?”연령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앉았다.“성혜인 씨에게 다른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이름은 반승우, 반승제 씨의 형이에요.”“고작 이딴걸 알려주려고 찾아온 거야?”반승우의 복귀는 이미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기에 이 일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린다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정보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설기웅에 관련된 일은 또 뭐야?”“성혜인 씨가 알려준 건데.. 설인아 씨가 제원에서 설기웅 씨에게 여자를 소개해 줬다고 해요. 인아 씨는 그 여자가 새언니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했다는데 결국에 두 사람은 흐지부지하게 끝났어요.”“말도 안 돼!”연령이 말을 마치자마자 린다가 반박했다.설인아는 린다가 설기웅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겠는가?린다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성혜인 씨한테 돈 받았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찾아온 거야?”연령은 겁에 질려 즉시 무릎을 꿇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누가 봐도 그 여자는 린다 씨의 상대가 아니잖아요. 전 그쪽에서 쓸만한 정보를 들은 것 같아 얼른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것뿐이에요.”억울함이 가득 담긴 연령의 표정을 보자 린다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정말 설인아가 설기웅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옆에서 말렸다.“린다야, 누가 봐도 성혜인이 지어낸 말이잖아. 네가 기웅 형을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 기웅 오빠가 너한테 엄청 잘해주잖아.”“맞아, 성혜인이 지껄이는 헛소리는 마음에 담아두지 마.”연령은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참, 성혜인 씨가 사람을
같은 시각, 설인아는 일찌감치 설기웅의 별장으로 옮겨졌고 허약한 모습을 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설기웅은 그녀에게 죽을 먹이면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엔디 씨를 불렀으니까 혜인 씨의 일은 나한테 맡겨. 넌 내가 꼭 반 대표님이랑 결혼하게 할게.”설인아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설기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오빠, 고마워.”설기웅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때마침 설우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린다 씨의 일행이 인아 별장에서 마약 하다가 경찰에 붙잡혔어요. 경찰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을 거예요. 별장 소유자가 인아니까 경찰 쪽에서는 일부러 숨겨준 거라고 의심하고 있어요.”국내에서 마약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그 소식을 들은 설기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제원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형, 이미 경찰에 잡힌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설기웅은 머리가 아파졌고 표정이 잔뜩 어두워졌다.“인아는 이제 방금 병원에서 돌아왔어.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해결하기 어려울 거예요. 제원에서 요즘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거든요.”설기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심의 화살은 저도 모르게 반승제를 향했다.하지만 반승제는 요즘 반승우의 일로 정신이 없으니, 몸을 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설마 성혜인인가?’설기웅은 단 한 번도 성혜인을 자신의 상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일로 인해 재벌 2세들은 제원에서 강제 추방되고 앞으로는 근처에 얼씬도 못 한다. 심지어 설인아까지 끌어들였으니 이런 악랄한 수법을 성혜인이 했을 리가 없다며 단정지었고 그녀에게는 이럴 능력조차 없다고 확신했다.한참의 정적 후 설우현이 말을 이었다.“성혜인 씨가 했을 거예요. 린다가 소속 연예인을 건드렸거든요. 그래서 반격하는 모양인데, 린다에 비하면 정말 고수예요. 경찰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잡혀갔던 사람들은 오늘밤에 강제로 추방된다고 해요. 그리고 인
설의종이 상대방의 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전화를 끊어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인아도 바보는 아니었다. 몇 마디를 엿들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깨달았고 어느새 눈시울을 붉어진 채로 애처롭게 서 있었다.“오빠, 나 안 도와줄 거야?”설기웅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그런 뜻이 아니야. 린다가 이번에 일으킨 일이 워낙 커서 제원 상부에 보고될 예정이거든. 다들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인지 너도 잘 알잖아. 심지어 네 별장에서 일어났으니 당연히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듣게 된 거지. 둘째 삼촌이 약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 그런지 아버지가 이런 일에는 엄청 예민하셔. 그래서 화를 내신 거야.”설인아는 둘째 삼촌이 마약에 빠져 인사불성이 됐다는 건 알고 있었다.자유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플로리아의 재벌 2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 교육이 엄격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이 쉽게 약에 손을 댈 수 있다. 설씨 가문은 뼈아픈 교훈을 몸소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설의종은 일찍이 약에만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당시 설의종의 형이 마약에 취해 모르는 사람과 원나잇을 했고 실수로 그 여자를 임신시켰다.그 여자는 뱃속의 아이로 본처를 협박했고, 그 스트레스와 충격을 견디지 못한 본처는 끝내 목을 매어 자살했다.당시 이 일로 설씨 가문은 난리가 났다. 모든 사람이 둘째 삼촌의 집으로 달려갔으나 그 와중에도 마약에 취한 그는 하마터면 칼로 나미선을 죽일뻔했다.비록 사람들이 재빨리 앞을 막아섰지만, 나미선은 결국 칼에 찔렸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처치를 받았다.그 후 의식을 되찾은 둘째 삼촌은 죄책감에 시달린 끝에 아내와 동일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고등학생인 아이가 있었는데 설씨 가문에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지금은 그 아이가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니, 설의종은 마약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그러니 설인아가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설기웅 역시도 이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설인아가 처음이었다.“인아야...”그 순간, 설인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방금 막 퇴원했는데 또 병원에 입원해야 할 판이다.설기웅은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사람을 불러 재빨리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시켰다.한편 의자 밑에 숨긴 도청기로 모든 상황을 엿듣고 있었던 성혜인은 린다 일행이 경찰에 잡혀가고서야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만하게 날뛰는 재벌 2세들을 해결했으니, 이제 연령의 도움으로 온수빈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 남았다.성혜인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고 마침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사장님, 그 사람들은 강제 추방됐다고 합니다.”성혜인은 연락처를 뒤지더니 설인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린다 씨가 떠났는데 배웅 안 하세요?]그 말인즉 지금 린다에게 일어난 모든 것들은 그녀가 계획한 일임을 밝히는 거나 다름없었다.성혜인은 설인아가 병원에 실려간 줄 몰랐고, 지금 핸드폰을 쥐고 있는 사람이 설기웅이라는 것도 몰랐다.설기웅은 문자를 본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두려울 게 없었던 성혜인은 곧바로 통화버튼을 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인아 씨, 아픈 건 좀 괜찮아요?”성혜인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설씨 가문이 그녀를 처리하려고 손을 쓴 마당에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을까?그러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설인아가 아니라 설기웅이었다.“혜인 씨, 이번에 사람 잘못 건드렸어요.”설기웅은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인재 중의 한 명이다. 하여 인맥이 넘쳐흘렀고, 이번에 반승우와 손을 잡게 된 것도 여러 사람에게 인사만 했을 뿐이지 크게 공을 들인 건 없었다. 반승우의 편의를 봐달라고 한 건 맞지만 반승제를 처리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다.하지만 성혜인이 저지른 일은 그의 마지노선을 넘었다.설인아는 성혜인에게 두 번이나 당했고, 심지어 또 병원에 실려 갈 상황에 놓였다. 건강이 나날이
성혜인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곧이어 반승제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고 성혜은은 여전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솔직히 저는 BH 그룹이 반승우 씨에게 넘어가는 게 싫어요.”반승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액셀도 밟지 않았다.“반승우 씨의 몸에는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모습은 예전이랑 너무 달라요. 예전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웠다면 지금은 난폭하기 그지없잖아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너무 이상해요. 사라진 6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요.”성혜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말했다.조심하라고 충고할 의도로 꺼낸 말이었으나 돌아오는 건 반승제의 싸늘한 말투뿐이었다.“예전에 어땠는지 아주 잘 아나 봐?”그 말에 성혜인은 정신을 번쩍 차렸고 차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반승우와의 관계가 떠오른 그녀는 뭔가 찔리는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편으로는 괜한 말을 꺼낸 스스로를 자책했다. 반승우의 친동생인데 어떻게 그 사람의 변화를 모를 수 있겠는가?그녀가 고개를 죽이자마자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입에서 그 사람이랑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아.”차가 포레스트에 멈출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혜인은 앞장서서 대문을 들어서자, 그 순간 겨울이가 달려왔다.“멍멍!”겨울이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성혜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겨울이의 얼굴을 감싸안은 채 쓰다듬듯 문질렀다.곧이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고,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겨울이의 외침 소리를 듣고 재빨리 달려 나온 유경아는 반승제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대표님도 오셨네요.”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성혜인은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겨울이는 반승우가 선물해 준 강아지기에 지금으로선 그 의미가 남다르다.그녀는 외투를 벗자 유경아가 물었다.“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