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이 도착했을 때, 재벌 2세 몇 명은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광대를 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린다는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앉아. 그래서 알려주려는 정보가 뭔데?”연령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앉았다.“성혜인 씨에게 다른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이름은 반승우, 반승제 씨의 형이에요.”“고작 이딴걸 알려주려고 찾아온 거야?”반승우의 복귀는 이미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기에 이 일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린다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정보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설기웅에 관련된 일은 또 뭐야?”“성혜인 씨가 알려준 건데.. 설인아 씨가 제원에서 설기웅 씨에게 여자를 소개해 줬다고 해요. 인아 씨는 그 여자가 새언니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했다는데 결국에 두 사람은 흐지부지하게 끝났어요.”“말도 안 돼!”연령이 말을 마치자마자 린다가 반박했다.설인아는 린다가 설기웅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겠는가?린다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성혜인 씨한테 돈 받았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찾아온 거야?”연령은 겁에 질려 즉시 무릎을 꿇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누가 봐도 그 여자는 린다 씨의 상대가 아니잖아요. 전 그쪽에서 쓸만한 정보를 들은 것 같아 얼른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것뿐이에요.”억울함이 가득 담긴 연령의 표정을 보자 린다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정말 설인아가 설기웅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옆에서 말렸다.“린다야, 누가 봐도 성혜인이 지어낸 말이잖아. 네가 기웅 형을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 기웅 오빠가 너한테 엄청 잘해주잖아.”“맞아, 성혜인이 지껄이는 헛소리는 마음에 담아두지 마.”연령은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참, 성혜인 씨가 사람을
같은 시각, 설인아는 일찌감치 설기웅의 별장으로 옮겨졌고 허약한 모습을 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설기웅은 그녀에게 죽을 먹이면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엔디 씨를 불렀으니까 혜인 씨의 일은 나한테 맡겨. 넌 내가 꼭 반 대표님이랑 결혼하게 할게.”설인아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설기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오빠, 고마워.”설기웅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때마침 설우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린다 씨의 일행이 인아 별장에서 마약 하다가 경찰에 붙잡혔어요. 경찰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을 거예요. 별장 소유자가 인아니까 경찰 쪽에서는 일부러 숨겨준 거라고 의심하고 있어요.”국내에서 마약은 절대 금지되어 있다.그 소식을 들은 설기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제원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형, 이미 경찰에 잡힌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설기웅은 머리가 아파졌고 표정이 잔뜩 어두워졌다.“인아는 이제 방금 병원에서 돌아왔어.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해결하기 어려울 거예요. 제원에서 요즘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거든요.”설기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심의 화살은 저도 모르게 반승제를 향했다.하지만 반승제는 요즘 반승우의 일로 정신이 없으니, 몸을 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설마 성혜인인가?’설기웅은 단 한 번도 성혜인을 자신의 상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일로 인해 재벌 2세들은 제원에서 강제 추방되고 앞으로는 근처에 얼씬도 못 한다. 심지어 설인아까지 끌어들였으니 이런 악랄한 수법을 성혜인이 했을 리가 없다며 단정지었고 그녀에게는 이럴 능력조차 없다고 확신했다.한참의 정적 후 설우현이 말을 이었다.“성혜인 씨가 했을 거예요. 린다가 소속 연예인을 건드렸거든요. 그래서 반격하는 모양인데, 린다에 비하면 정말 고수예요. 경찰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잡혀갔던 사람들은 오늘밤에 강제로 추방된다고 해요. 그리고 인
설의종이 상대방의 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전화를 끊어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인아도 바보는 아니었다. 몇 마디를 엿들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방 깨달았고 어느새 눈시울을 붉어진 채로 애처롭게 서 있었다.“오빠, 나 안 도와줄 거야?”설기웅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그런 뜻이 아니야. 린다가 이번에 일으킨 일이 워낙 커서 제원 상부에 보고될 예정이거든. 다들 어떤 신분을 가진 사람인지 너도 잘 알잖아. 심지어 네 별장에서 일어났으니 당연히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듣게 된 거지. 둘째 삼촌이 약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 그런지 아버지가 이런 일에는 엄청 예민하셔. 그래서 화를 내신 거야.”설인아는 둘째 삼촌이 마약에 빠져 인사불성이 됐다는 건 알고 있었다.자유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플로리아의 재벌 2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 교육이 엄격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이 쉽게 약에 손을 댈 수 있다. 설씨 가문은 뼈아픈 교훈을 몸소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설의종은 일찍이 약에만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당시 설의종의 형이 마약에 취해 모르는 사람과 원나잇을 했고 실수로 그 여자를 임신시켰다.그 여자는 뱃속의 아이로 본처를 협박했고, 그 스트레스와 충격을 견디지 못한 본처는 끝내 목을 매어 자살했다.당시 이 일로 설씨 가문은 난리가 났다. 모든 사람이 둘째 삼촌의 집으로 달려갔으나 그 와중에도 마약에 취한 그는 하마터면 칼로 나미선을 죽일뻔했다.비록 사람들이 재빨리 앞을 막아섰지만, 나미선은 결국 칼에 찔렸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처치를 받았다.그 후 의식을 되찾은 둘째 삼촌은 죄책감에 시달린 끝에 아내와 동일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고등학생인 아이가 있었는데 설씨 가문에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지금은 그 아이가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니, 설의종은 마약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그러니 설인아가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설기웅 역시도 이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설인아가 처음이었다.“인아야...”그 순간, 설인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방금 막 퇴원했는데 또 병원에 입원해야 할 판이다.설기웅은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사람을 불러 재빨리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시켰다.한편 의자 밑에 숨긴 도청기로 모든 상황을 엿듣고 있었던 성혜인은 린다 일행이 경찰에 잡혀가고서야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만하게 날뛰는 재벌 2세들을 해결했으니, 이제 연령의 도움으로 온수빈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 남았다.성혜인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고 마침내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사장님, 그 사람들은 강제 추방됐다고 합니다.”성혜인은 연락처를 뒤지더니 설인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린다 씨가 떠났는데 배웅 안 하세요?]그 말인즉 지금 린다에게 일어난 모든 것들은 그녀가 계획한 일임을 밝히는 거나 다름없었다.성혜인은 설인아가 병원에 실려간 줄 몰랐고, 지금 핸드폰을 쥐고 있는 사람이 설기웅이라는 것도 몰랐다.설기웅은 문자를 본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두려울 게 없었던 성혜인은 곧바로 통화버튼을 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인아 씨, 아픈 건 좀 괜찮아요?”성혜인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설씨 가문이 그녀를 처리하려고 손을 쓴 마당에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을까?그러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설인아가 아니라 설기웅이었다.“혜인 씨, 이번에 사람 잘못 건드렸어요.”설기웅은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인재 중의 한 명이다. 하여 인맥이 넘쳐흘렀고, 이번에 반승우와 손을 잡게 된 것도 여러 사람에게 인사만 했을 뿐이지 크게 공을 들인 건 없었다. 반승우의 편의를 봐달라고 한 건 맞지만 반승제를 처리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다.하지만 성혜인이 저지른 일은 그의 마지노선을 넘었다.설인아는 성혜인에게 두 번이나 당했고, 심지어 또 병원에 실려 갈 상황에 놓였다. 건강이 나날이
성혜인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곧이어 반승제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고 성혜은은 여전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솔직히 저는 BH 그룹이 반승우 씨에게 넘어가는 게 싫어요.”반승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액셀도 밟지 않았다.“반승우 씨의 몸에는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모습은 예전이랑 너무 달라요. 예전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웠다면 지금은 난폭하기 그지없잖아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너무 이상해요. 사라진 6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요.”성혜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말했다.조심하라고 충고할 의도로 꺼낸 말이었으나 돌아오는 건 반승제의 싸늘한 말투뿐이었다.“예전에 어땠는지 아주 잘 아나 봐?”그 말에 성혜인은 정신을 번쩍 차렸고 차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반승우와의 관계가 떠오른 그녀는 뭔가 찔리는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편으로는 괜한 말을 꺼낸 스스로를 자책했다. 반승우의 친동생인데 어떻게 그 사람의 변화를 모를 수 있겠는가?그녀가 고개를 죽이자마자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입에서 그 사람이랑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아.”차가 포레스트에 멈출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혜인은 앞장서서 대문을 들어서자, 그 순간 겨울이가 달려왔다.“멍멍!”겨울이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성혜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겨울이의 얼굴을 감싸안은 채 쓰다듬듯 문질렀다.곧이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고,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겨울이의 외침 소리를 듣고 재빨리 달려 나온 유경아는 반승제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대표님도 오셨네요.”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성혜인은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겨울이는 반승우가 선물해 준 강아지기에 지금으로선 그 의미가 남다르다.그녀는 외투를 벗자 유경아가 물었다.“
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풀고선 곧장 옷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승제 씨, 기분 안 좋아요?”어젯밤 얼마 하지 못하고 잠들었으니 아마 지금까지 참고 있는 게 틀림없다.“아니야, 회사로 나가봐야겠어.”그는 샤워를 마치고 현관으로 걸어갔다.“푹 쉬어.”성혜인은 아직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목에는 그가 흥분에 겨워 빨아들인 자국으로 가득했다.“승...”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승제는 이미 떠났다.또 무슨 일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던 성혜인은 머리가 아픈 듯 한숨을 내쉬었다.반승제가 거실 문을 나설 때, 겨울이가 달려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어뜯으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눈빛을 마주하고선 엄두가 나지 않는지 그저 옆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반승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성혜인에게 하는 것처럼 애교를 부릴 수 없었던 겨울이는 꼬리를 흔들며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반승제가 대문을 나서자 아쉬운 듯 철문 앞에서 멍멍하고 몇 번이나 짖었다.어젯밤 한숨도 못 잔 반승제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운전해서 회사에 도착한 그는 엘리베이터를 나서자마자 반승우를 마주쳤다.회사에서 반승우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반승제는 회사 임원들이 배신할 거라는 걱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전부 그를 따르는 믿을만한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반씨 가문에서는 반승우를 전력지지하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중에는 반희월과 임경헌도 있다.반희월은 지난번 반승제와 반기범의 경쟁에서 반승제의 미움을 샀다. 그러니 자연스레 반씨 가문에서의 지위가 걱정되었고, 심지어 손에 지분이 없었기에 반승우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때다 싶어 노선을 변경해 아부를 떨었다. 그녀는 반승우가 대표 자리에 앉기를 희망하고 있다.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반승우가 예전의 그 반승우가 아니라는 걸 몰랐다.배현우는 반승제와 눈을 마주치고선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볍게 웃었다.“승제야, 왔어
백연서마저도 반승우를 더 좋아했다.그녀는 항상 큰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누군가 반승제라는 작은아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면 어색하게 웃으며 얼렁뚱땅 넘기기 일쑤였다.“승제라는 이름만 들어도 답답하네요. 걔는 말수가 너무 적어서 딱히 할말도 없어요.”“정말요? 그래도 부대에서는 실력이 아주 좋았다면서요? 어르신이 엄청 칭찬하시잖아요.”백연서는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그냥 운이 좋은 거죠. 엄마인 내가 그걸 모르겠어요? 쟤는 다 형 따라 하는 거예요.”이 모든 대화는 반승제와 임경헌이 지켜보는 곳에서 이뤄졌다.반씨 가문의 편파적인 사랑을 느낀 그는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렸던 탓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반승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경자와 백연서는 기절한 정도로 흐느껴 울었다.그 후 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자 반승우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가 되기를 바랐다.반승제는 부대에서 돌아오는 걸 반대했다. 반태승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절대 반씨 가문의 후계자 자리에 앉지 않았을 것이다.백연서는 남은 아들마저 잃지는 않을까 늘 불안감을 느꼈고 그렇게 감시는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초반에는 매일같이 울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승우가 있었다면 반씨 가문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 텐데.”그런데 반승우가 정말 살아있을 줄이야?임경헌은 소파에 앉아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렸다.그 모습에 반승제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용돈 필요해?”임경헌은 그 말 한마디에 울컥했다.하지만 낯간지러운 말을 할 수 없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다 썼어요.”반승제는 카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요즘은 연애 안 해?”임경헌은 어려서부터 반승제를 무서워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저번에 헤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안 했어요. 엄마가 계속 지켜보고 있거든요.”반승제는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훑어보며 차분하게 말했다.“내가 용돈 줬다고 얘기하
“엄마, 그날 이후로 많이 변한 거 알아요?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잖아요. 전 BH 그룹에 남을 생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 할 거니까 더 이상 강요하지 말아요.”“BH 그룹에 남을 생각이 없다니?”반희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며 있는 힘껏 손으로 그의 팔을 꼬집었다.“그럼 뭐 할건데? 나도 이제는 지분이 없는데 너까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우린 BH 그룹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한푼조차 받지 못할 거야. 왜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거냐?”임경헌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시울을 붉혔다.“도대체 무슨 근거로 형이 우릴 내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승우 형이 그동안 추잡스러운 일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저질렀는데 승제 형은 그냥 묵묵히 혼자 다 참고 있잖아요. 엄마, 그리고 말끝마다 승제 형이 마음이 모진 사람이라며 핀잔을 주는데 제가 봤을 땐 가장 야박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은 엄마랑 저 사람들이에요.”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고 답답함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솔직히 왜 승제 형한테만 이렇게 매정하게 구는지 이해가 안 돼요. 승제 형은요, 제가 용돈이 없다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카드를 건네는 그런 사람이에요. 인턴 생활하면서 모르는 게 있다고 연락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해도 승제 형은 제 마음속에서 완벽한 사람이에요. 앞으로 레이싱할 거니까 제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경헌아!”깜짝 놀란 반희월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동시에 그녀는 반승제에게 매우 화가 났다.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임경헌이 레이싱을 할거라며 강력주장하니 무조건 반승제가 옆에서 부추겼다고 생각했고 이 모든 건 그들은 반씨 가문에서 내쫓으려는 그의 작전이라고 생각했다.“경헌아, 승제를 너무 좋게 생각하지 마라. 넌 지금 걔한테 현혹된 거야. 네가 BH 그룹을 그만두는 순간 우린 반씨 가문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승제는 지금 본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