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날 이후로 많이 변한 거 알아요?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잖아요. 전 BH 그룹에 남을 생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 할 거니까 더 이상 강요하지 말아요.”“BH 그룹에 남을 생각이 없다니?”반희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며 있는 힘껏 손으로 그의 팔을 꼬집었다.“그럼 뭐 할건데? 나도 이제는 지분이 없는데 너까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우린 BH 그룹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한푼조차 받지 못할 거야. 왜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거냐?”임경헌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시울을 붉혔다.“도대체 무슨 근거로 형이 우릴 내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승우 형이 그동안 추잡스러운 일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저질렀는데 승제 형은 그냥 묵묵히 혼자 다 참고 있잖아요. 엄마, 그리고 말끝마다 승제 형이 마음이 모진 사람이라며 핀잔을 주는데 제가 봤을 땐 가장 야박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은 엄마랑 저 사람들이에요.”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고 답답함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솔직히 왜 승제 형한테만 이렇게 매정하게 구는지 이해가 안 돼요. 승제 형은요, 제가 용돈이 없다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카드를 건네는 그런 사람이에요. 인턴 생활하면서 모르는 게 있다고 연락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해도 승제 형은 제 마음속에서 완벽한 사람이에요. 앞으로 레이싱할 거니까 제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경헌아!”깜짝 놀란 반희월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동시에 그녀는 반승제에게 매우 화가 났다.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임경헌이 레이싱을 할거라며 강력주장하니 무조건 반승제가 옆에서 부추겼다고 생각했고 이 모든 건 그들은 반씨 가문에서 내쫓으려는 그의 작전이라고 생각했다.“경헌아, 승제를 너무 좋게 생각하지 마라. 넌 지금 걔한테 현혹된 거야. 네가 BH 그룹을 그만두는 순간 우린 반씨 가문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승제는 지금 본
그 시각 반현우는 성혜인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차단했다는 알림을 듣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호로 바꿔가며 전화를 걸었다.방해를 참지 못한 성혜인이 통화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인아, 같이 점심 먹을까?”“그쪽이 선배 아닌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연기 그만해요.”그 말에 핸드폰 너머에서는 정적이 흘렀고 배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그럼 예전에 네가 울고 있을 때 휴지를 건넨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거야?”그건 성혜인과 반현우의 첫 만남이다. 그때의 성혜인은 제원에서 서천으로 향했고, 임지연이 너무 그리워 혼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훈훈한 장면이었는데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오자 오싹하게 느껴졌다.배현우는 할말을 이어갔다.“우리 서천에서 길거리 음식도 많이 먹었잖아. 네가 스케치할 때마다 옆에 있어 줬는데 잊은 거야? 가끔 너랑 대화를 주고받으면 내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했었잖아. 이제는 싫어?”성혜인은 역겹다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으나 배현우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그날 밤, 넌 엄청 적극적이었어. 네 몸 곳곳에 내가 흔적을 남겼거든.”“그 입 닥쳐요!”그 말을 들은 성혜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배현우와의 그날 밤은 잊고 싶은 흑역사나 다름없었다.배현우는 여전히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반응을 보니까 신경 쓰는 모양인데? 내가 승제한테 그날 밤 일에 대해서 얘기하면 엄청 속상해하겠지? 안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한테 무시당하며 살아왔는데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형이랑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성혜인은 그가 일부러 이런 얘기를 꺼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심장이 요동쳤다.의자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배현우의 얼굴에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 엿보였다.“참 불쌍한 동생인 건 맞아. 매번 가족들 선물을 챙겨주면서 정작 선물을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 생일 때마다 혼자 조용히 구
배현우가 차 한 잔을 따라 성혜인 앞에 내려놓았다.“오늘 새로 가져온 찻잎이래. 그나저나 여기 참 인적도 드물고 사람도 적다. 우리 혜인이 나랑 하는 데이트 어디 들킬까 봐 가게 열심히 골랐나 보네?”성혜인은 그가 건네주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한 채 차갑게 물었다.“대체 뭘 어쩌려고요?”배현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성혜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곤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불쾌한 시선이 얼굴을 훑기 시작했다.성혜인은 확실히 아름답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혜인아, 너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슬퍼. 우리 전엔 할 말 못 할 말 다 했던 사이였잖아.”성혜인이 망설임 없이 테이블 위의 찻물을 배현우의 얼굴에 뿌렸다.배현우는 눈을 감았고 찻물은 얼굴을 따라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옆의 휴지를 가져다 찻물을 닦을 뿐이었다.그런 배현우가 성혜인은 역겹기만 했다.“그 얼굴로 저한테 역겨운 말 하지 마세요. 전 당신이 선배가 아니라 악마라는 걸 알고 있어요.”그녀의 말이 끝나기에 바쁘게 배현우의 손이 다가오더니 목을 졸랐다.힘은 점점 세졌고 눈빛은 죽일 것처럼 이글거렸다.성혜인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부림치자, 그는 그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살짝 몸을 숙이니 입술이 성혜인의 귓불에 닿을 뻔했다.성혜인이 역겨움에 옆으로 피하니 턱이 그의 손아귀에 의해 잡아당겨졌다.“악마라니? 그 말은 좀 듣기 싫네.”턱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성혜인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그러나 절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눈물이 고인 눈은 더욱 사슴 눈망울같이 맑고 유리같이 투명해 보였다.잠시 정신이 팔린 배현우가 저도 모르게 성혜인을 놓아주었다.그리고 놓아주었음을 의식했을 때 성혜인은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성혜인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잡아끌더니 입술을 가져다 댔다.성혜인은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그러나 턱이 여전히 붙잡혀 있었고
“아니에요. 승제 씨 앞에서 헛소리 하지 말라고 경고하려고 만난 거예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반승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비웃음이 섞인 냉랭한 웃음이었다.“내 앞에서 헛소리할까 봐 두려워?”성혜인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해명하려면 반승우와 보냈던 그날 밤의 일을 말해야 했기에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반승제가 전부터 조사하는 거로 보아서 그날 밤을 몹시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반승제뿐만 아니라 사실 성혜인이 더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그 사람이 헛소리하는 걸 원치 않아서 같이 밥을 먹고, 키스하게 하고, 껴안게 한다?”그가 몸을 살짝 기울이며 비아냥거렸다.“참, 거룩한 희생이네.”“반...”방금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가 몸을 곧추세우더니 입을 열었다.“형 이미 갔는데, 안 따라가?”그의 말은 성혜인의 가슴을 쥐어뜯는 듯 아프게 했다.성혜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갑자기 목구멍이 아파지고 두통이 느껴졌다.그러나 반승제는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돌아서서 떠났다.한편 배현우는 자기 손가락에 묻어있는 약을 보고 있었다.반승우는 유명한 연구원의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그가 연구한 약은 적어도 앞으로 20년 이내의 기술보다 앞서 있었다. 그의 손에 묻어있는 이 약은 사람의 피부에 닿기만 하면 경직되어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움직임도 있을 수 없었다.그는 냉소하며 수도꼭지를 틀고 물약을 깨끗이 씻었다.반승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배현우,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이제 약을 만드는 과정까지 알게 된거야?손을 천천히 씻고 난 배현우가 씩 웃었다.“이제 겁나기 시작한 거야? 내가 널 완전히 대신할까 봐 겁나?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혐오 가득한 얼굴로 널 보면 괴롭지 않아? 네가 연구기지에서 그렇게 고생해도 아무도 슬퍼해 주지 않아. 게다가 네 동생은 네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와서 제 여자를 뺏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할 거야. 난 네 기분이 다 느껴져. 너 사실
가게에 한 시간 동안 머무른 성혜인이 밖으로 나갔을 때 반승제의 차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그녀는 오늘 자기 행동이 반승제의 의심을 샀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반승제는 아마 제가 반승우를 놓지 못했을 거로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반승우가 자신을 협박하던 그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반승제에게 알려야 한단 말인가?성혜인은 매우 난감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 난감함은 배가 되었다.성혜인은 그날의 일이 사람들에게 얼른 잊히고 아무도 언급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 점이 배현우에게 약점으로 잡히게 되었다.운전대를 잡은 성혜인의 두 눈이 텅 빈 듯했다.심장은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아팠다.그녀는 반승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괴롭고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이때 갑자기 연령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혜인 씨, 제가 어떻게 해야 온수빈 씨를 이 일에서 빼낼 수 있을까요?”정신을 차리고 이성을 되찾은 성혜인이 자신의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냈다.회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보니 여론은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온수빈과 S.M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듣고 있었고, 심지어 정의감에 취한 사람들이 회사 앞에 몰려와 온수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시위하기 시작했다.성혜인은 우선 온수빈더러 SNS에 게시물을 올리도록 했다.--저는 결백하며,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성혜인은 또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경찰서에서 공식적인 번호로 대중들의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하도록 했다.몇 분 후 공식 계정에서도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아직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니 섣부른 판단으로 회사나 연예인 측에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이 두 게시물로 들끓던 여론은 잠시 안정되었다. 적지 않은 이성적인 사람들이 이 일에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중립을 유지하겠다 했으나, 더 많은 여론은 온수빈, 성혜인, 그리고 회사에 대한 꾸중이었다.여론을 확인한 성혜인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상상하다 보니 연령은 신이 나고 심지어 마음이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이미 성혜인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만 같았다. 흥분된 마음에 얼른 다른 사람을 찾아 자신의 곧 생길 업적을 자랑하고 싶기까지 했다.그러나 성혜인이 도와주지 않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에. 우선은 지금의 감정을 참고 손경민이 가정으로 돌아오면 S.M과 성혜인을 쌍으로 지옥으로 날려버릴 것이라고 다짐했다....성혜인은 본래 연령과의 거래에 성심성의껏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령이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분수를 모르고 마구 날뛰는 연령이 마침 성혜인의 심기를 건드렸다.성혜인은 우선 유시은의 오늘의 행적을 조사하도록 했고 곧이어 유시은이 오늘 산전 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 타이밍에 손경민은 연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있었다. 보아하니 그는 지금 유시은이 싫증이 났고 연령과 다시 화해하려는 것 같았다.성혜인은 곧바로 차를 몰고 유시은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막 산부인과로 들어서니 복도에 유시은의 성 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말 좀 들어! 네 아빠는 다른 여자 찾으러 갔는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창피해 죽겠네, 진짜.”그는 아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비록 평소에는 장난꾸러기였지만, 엄마가 슬프게 우는 모습에 아이는 겁을 먹은 채 곁에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유시은도 엄연히 공인이었으므로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들킬지 두려워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래도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멀지 않은 곳에서 이를 바라보던 성혜인은 잠시 고민하고는 곧바로 다음 대책을 생각해 냈다.성혜인은 가방에서 휴지를 찾고는 유시은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건넸다.잠시 어리둥절한 유시은은 정신을 차린 뒤,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며 얼버무리려 했다.팬이 알아보고 건네는 것으로 생각했던 유시은이 고개를 들자 본 것은 성
성혜인은 그녀가 한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싶었다. 연령에게서처럼 뒤통수를 맞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시은 씨가 리즈 시절에 은퇴하고 아이를 낳은 건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었어요. 애초에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지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유시은이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정말이지 과거로 돌아가 자기 뺨을 쳐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그녀와 손경민의 첫 잠자리는 술에 취한 후였다. 연애를 해본 적도 없는 유시은은 손경민의 타이름에 홀라당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손경민은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성숙했으므로, 콩깍지가 쓰인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에게 둘도 없이 잘해준다고 생각했다.이미 한번 결혼했다 해도 뭐 어때.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의 결혼은 유명무실하니 조만간 이혼하고 자신에게 올 것이다.그렇게 몇 년을 기다렸고,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어도 손경민은 이혼하지 않았다.유시은은 당연히 견딜 없이 화가 났다.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성혜인이 스크롤을 내리며 휴대폰 메시지를 보다 한마디 던졌다.“두 사람의 관계가 폭로되면 연령이 또 딸을 들먹일 거예요. 그럼 대중들은 시은 씨가 손경민을 꼬셨다고 생각할 거고 당신은 욕받이가 되겠죠. 손경민은 자기 사업을 위해서 당신과의 관계를 청산할 거고요.”유시은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톱에 의해 깊게 파인 손바닥에서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절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거예요.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제 사업을 망치고 싶진 않아요.”성혜인이 멀지 않은 곳의 베란다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우리 얘기 좀 할까요?”유시은이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조용히 베란다로 향했고, 성혜인은 그녀를 도와 현재 상황을 분석해 주었다.유시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결국엔 온수빈을 구해달라는 거네요.”“시은 씨, 제 말대로만 하면 S.M은 전적으로 시은 씨를 도울 겁니다. 그리고 서브여주 자리도 몇 개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잘
초인종이 울리자 연령은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손경민 일 줄이야!“여보!”그녀가 깜짝 놀라며 기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손경민은 자신을 반기는 이러한 눈빛을 꽤 맘에 들어 했다. 그는 쇼핑몰을 지나다니다 사 온 선물을 옆에 두었다.연령은 얼른 남편을 집 안으로 초대하고 싶었지만 처음엔 열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던 성혜인의 조언을 떠올리고 현관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된 지 10분 되었을 무렵, 손경민의 뒤에 여자 한 명이 나타났다. 유시은이 한쪽에 아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 것이었다.연령의 표정은 금세 백지장이 된 듯 창백해졌다. 이는 유시은이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두 사람의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돌아서서 두 모자를 본 손경민의 얼굴에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유시은이 점점 분수를 모르고 날뛴다. 감히 두 사람이 살던 집까지 찾아오다니.역시 평소에 너무 봐주고 산 것 같았다.그가 마침 유시은을 타일러 돌려보내려고 할 때, 유시은이 입을 열었다.“부인께 할 말이 있는데, 잠시만 자리 비켜주시겠어요?”유시은은 손경민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집 안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손경민을 밖에 세워둔 채.손경민이 자리에 없게 되자 연령도 더 이상 본색을 숨기지 않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야, 이 천한 년아. 너나 성혜인이나 다 한통속이야. 두고 봐, 성혜인 처리하면 그다음은 너야.”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시은이 문을 걸어 잠가 손경민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그녀의 시선이 집 안을 한바퀴 훑더니, 곧 침실 입구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두 사람을 보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아이는 뼈가 앙상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듯했다.“연령 씨, 애한테 밥도 제대로 안 먹인 거예요?”이에 연령이 눈을 싸늘하게 희번덕거렸다.“내가 밥을 먹였으면 손경민이 우릴 퍽이나 보러 왔겠다. 유시은, 괜히 여기 찾아와서 착한 척 하지 마.”유시은도 손경민을 원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