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지키고 있던 소종이 간호사의 말에 넋을 잃었다.육경한은 평소에 몸을 아끼는 편은 아니었지만 폐렴 말고는 다른 질병이 없었다. 하지만 소원이 내뱉은 말에 생명이 위급한 상황까지 될 줄은 몰랐다.소종이 멍한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물었다.“비서라도 사인이 가능한가요?”간호사가 엄숙하게 말했다.“사인하면 법적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가족이 사인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대표님은 가족이 없습니다.”간호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결혼은요?”소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부모님은요?”“돌아가셨습니다.”간호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겉은 번지르르한 남자가 가족 하나 없다니. 저 정도 외모면 엄청나게 잘생겼는데 결혼을 못 하는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왜 대를 남길 생각을 못 했을까?간호사는 차트를 소종에게 건네주며 당부했다.“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옆에 사람이 없으면 안 돼요. 일단 사인하고 친척이나 꼭 와야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다 알리세요.”심부전은 급성질환이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간호사도 혹시나 남은 사람들이 후회를 안고 살아갈까 봐 귀띔한 것이었다.수술실 문이 닫혔다. 소종은 손에 든 차트를 보고 심장이 벌렁거렸다.간호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꼭 와야 되는 사람이라...소종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입력했다....문 빌리지.샤워를 마친 소원이 아무렇게나 가운을 걸치고는 맨발로 러그를 밟고 창가로 향했다. 창가엔 갓 개봉한 와인이 놓여 있었다.소원은 와인을 잔에 조금 따랐다. 빨갛게 번지는 와인과 야경이 어우러져 황홀하기 그지없었다.이 도시는 여전히 참 번화했다. 그녀의 거지 같은 삶과는 달리 너무 아름다웠다.소원은 와인을 한 모금 맛보더니 이내 한잔을 다 비웠다. 미각이 잃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시면 취기가 올라왔다.소원은 편한 환경에 있으면서 의식이 흐릿한 걸 좋아했다. 운이 좋으면 부모님이 아직 살아있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그러면 화목했던 장면들이 떠올라 이 거지 같은
소원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소 비서님, 육경한이 이 정도로 말 잘 듣는 사람인 거 알았으면 절대 꿇리지 않았을 거예요.”소종은 소원이 웃는 게 기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긋한 말투로 말했다.“소원 씨, 저는 소원 씨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대표님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가족도 없고 서류에 사인할 사람도 없어서 그래요. 그리고 대표님이 지금 이 순간 누구를 제일 보고 싶어 하는지도 잘 알아요.”소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소 비서님, 소 비서님이야말로 내 말뜻을 오해했어요. 내 말은...”소원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이 정도로 말 잘 듣는 줄 알았으면 바로 가서 죽으라고 했죠. 지옥에 가도 시원찮은데 죽으면 오히려 좋죠.”소종은 소원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 정도로 육경한을 증오할 줄은 몰랐다.소원이 말을 이어갔다.“소 비서님, 동생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용서하라는 말이 나오는지? 무시한다고 매정한 건지?”소종은 반박할 수 없었다.소원의 말이 맞았다. 서로 입장이 다를 뿐이다. 육경한의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그런 육경한이 마음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친한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용서는 개뿔 아마 당장이라도 가서 죽여버리고 싶을 것이다.소원은 듣고 싶지 않은 얘기가 자꾸 들려서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하여 귀찮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다음부터 내가 듣고 싶지 않아 하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라면 아마 육경한이 죽었다는 소식일 거예요.”뚝하는 소리와 함께 소원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세상이 왜 이 모양일까?육경한, 그녀에게 온갖 상처란 상처는 다 주고 한이 그룹을 파산하게 만들고 아버지를 핍박해 투신하게 하는 바람에 엄마까지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육경한은 소원의 자존심을 짓밟았다.오해라는 한마디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상처를 줄 수는 없다. 그런
소원이 힘겨운 듯 이마를 짚으며 대답했다.“그래.”대답하는 목소리는 전보다 확연히 더 무거워졌다.서현재가 잠깐 침묵하더니 물었다.“누나, 유진이 목소리 듣고 싶지 않아요?”소원은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고 가슴도 잔잔하게 아팠다.한참 지나서야 소원이 매정하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아니.”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소원의 텅 빈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원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든 위장이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소원은 유진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다.소원은 어깨를 들썩이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채 힘없이 울기만 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안았지만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임세희와 이진영이 서로 물고 뜯는 영상이 유출되자 아니나 다를까 며칠간 검색어를 독점했다. 안에 든 내용이 너무 화끈했기 때문이다.이진영이 만났던 남자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죄다 유부남이었다. 그중에는 도덕의 한계를 벗어난 인물도 들어있어 팬들은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이진영의 팬덤은 뿔뿔이 흩어졌고 팬카페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이진영 본인도 모든 광고에서 내려지고 말았다.이진영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말고도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내야만 했다. 전에 벌어놓은 돈을 다 쏟아붓는다 해도 모자랐다.이어진 소식은 경찰이 이진영의 남편, 시누 엔터의 장 대표를 성추행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했다는 것이었다.그렇게 사건은 대반전을 이루었다.전에 곽아름이 다니는 유치원을 공격하던 광팬들도 경찰에 연행되었고 다른 팬들도 진심으로 반성하며 인터넷에 사과문을 올렸다.이런 행보에 윤혜인과 그녀의 작업실 ‘달밤’도 검색어에 올랐다.여러 큰 회사에서 협력 의향을 보였기에 업무량이 급증해 윤혜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보냈다.DS와 장기적으로 협력하던 고객들도 목표를 한국 본연의 미에 방점을 둔 ‘달밤’을 타깃으로 돌렸다.임세희는 DS 디자인 작업실의 이사로서 큰 잘못을 저지르다 보니 회사에 대한
전화로도 윤혜인은 원지민의 말투가 매우 오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윤혜인이 내연녀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순간 윤혜인은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아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원지민이 이준혁의 약혼녀라고? 윤혜인은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그럼 전에 쫓아다니면서 했던 말은 다 뭐지? 도대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야?’윤혜인은 이준혁이 정말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침착하게 대답했다.“미안해요. 당신이 이준혁 씨 약혼녀인 줄은 몰랐네요. 앞으로 다시 전화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윤혜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사과했다. 잘못한 게 없으니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절대 이준혁과 엮일 일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엮이게 된 것도 윤혜인이 아니라 이준혁이 일방적으로 쫓아다녀서 그렇게 된 일이었다.여러 가지 상황으로 비추어 보아도 이준혁은 쓰레기임이 틀림없었다.“윤혜인 씨, 이런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인터넷만 하면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전에 났던 기사 못 봤나요?”원지민은 일부러 기사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인터넷에서 이준혁과 관련된 기사는 거의 사라지고 없었지만 인터넷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건 없었기에 조금만 깊이 파보면 원씨 가문과 이씨 가문에 곧 희소식이 있을 거라는 기사를 찾아낼 수는 있었다.기사가 실제로 있으니 이준혁이 직접 윤혜인에게 해명한다고 해도 원지민은 무서울 게 없었다. 이런 일은 해명하면 해명할수록 점점 더 이상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그리고 백 퍼센트 거짓말한 건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두 사람은 언젠가 결혼하게 될 것이다.그렇게 오랫동안 계획해 왔고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갑자기 윤혜인이라는 여자가 튀어나온 것이다.임세희가 함정을 잘 파놓았으니 윤혜인을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윤혜인을 건드리기도 전에 임세희가 먼저 나락으로 가고 말았다.그러니 원지민도 먼저 자신을 드러내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
윤혜인은 갑자기 생각을 바꾼 곽아름이 이상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기분은 원래 빨리 해소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세 사람이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려는데 배남준이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들고 걸어왔다. 포장지에는 공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삼촌!”곽아름이 그쪽으로 달려가 안겼다. 며칠 전 배남준에게 말한 신상 인형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구했을 줄은 몰랐다.배남준은 외출하려는 세 사람을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어디 나가려고?”인형을 받고 신난 곽아름이 먼저 대답했다.“삼촌, 아름이랑 엄마랑 놀이공원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아름이 삼촌이랑 같이 가고 싶어?”배남준이 쪼그리고 앉아 부드럽게 물었다.“네, 같이 가요! 삼촌.”배남준이 고개를 들어 윤혜인을 바라봤다.그날 배남준이 윤혜인에게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윤혜인은 지금까지 답을 하지 않았기에 조금 민망한 상태였다. 하여 얼른 이렇게 말했다.“아름아, 삼촌 오늘 바쁘대.”“그래요? 그럼 같이 안 가도 돼요.”곽아름은 딱히 슬퍼하지는 않았다. 사실 곽아름에게 배남준은 곽경천과 같은 존재였다.배남준이 몸을 일으키더니 마른기침하며 말했다.“사실 오늘 나 안 바쁜데.”윤혜인이 멈칫했다.“같이 가도 될까?”배남준이 다시 물었다.최근 몇 년간 학술 연구에만 매진했지 여자에게 먼저 다가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되죠. 근데 아름이가 얌전한 편은 아니라서 혹시나 귀찮게 할까 봐...”“귀찮지 않아. 나는 아름이랑 같이 있는 거 좋아해.”이에 외출은 세 사람에서 네 사람으로 바뀌었다.홍 아줌마도 윤혜인과 배남준을 이어줄 생각이었다. 하여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된 놀이기구는 선뜻 곽아름과 같이 타겠다고 나섰다.윤혜인과 배남준은 밖에서 조용히 곽아름이 노는 걸 지켜봤다.“그날...”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고 오디오가 겹쳤다.배남준이 부드럽게 말했다.“먼저 말해.”“미안해요. 남준 오빠. 그날 사귄다고 인정한 건 그 사람한테 보여주느라 일부러 그런
원지민이 걸음을 멈추고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요, 아마 방금 서류를 놓을 때 실수로 건드렸나 봅니다.”이준혁의 얼굴은 차가웠다.“내가 전에 말했듯이 서류를 전달하는 일 같은 건 지민 씨가 직접 전달할 필요 없어요. 부사장이 돼서 그렇게도 할 일이 없다면 그만둬도 좋습니다.”이 말에 사무실 전체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 듯했다. 숨을 내쉬기조차 어려웠으니 말이다.손가락으로 손바닥을 파고들듯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원지민은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문을 나선 후,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주위의 분위기는 매우 냉랭해져 있었다.그러던 와중 서류를 전달하던 직원이 실수로 그녀와 부딪쳤고 원지민은 즉시 그 직원의 팔을 꽉 잡았다.“눈은 어디에다 뒀어요?”그녀가 날카롭게 물었다.원지민의 손톱이 팔에 깊이 박히는 바람에 직원은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곧이어 직원은 두려움에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항상 온화한 분이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이러시는 거지?’그러나 화를 내는 것도 잠시, 원지민은 이내 손을 떼고 다시 온화하고 단정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됐어요, 다음부터 조심해요.”그녀는 아주 상냥하게 당부하고는 돌아섰다.그 자리에 남은 직원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파일을 전달하고 휴게실에서 소매를 걷어보니, 뚜렷한 다섯 개의 피가 맺힌 손톱자국이 있었다.움직이기만 해도 아파서 직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그때 다른 동료가 들어와서 물었다.“세윤 씨, 이게 뭐야?”뒤이어 자초지종을 말하려다가 세윤은 최근 몇 년간 회사에서의 원지민의 평판과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어차피 내가 말해봐야 믿어줄 사람이 없을 거야... 괜히 일 키우지 말자.’그녀는 팔을 내리며 어물어물 말했다.“벌레에 물렸어요.”한편 차 안에서.원지민은 어딘가로 전화를 건 뒤 냉정하게 말했다.“그 임세희
놀이공원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마지막 퍼레이드 시간에 배남준은 아름이를 어깨에 올려주며 꽃수레를 따라 걸었다.아름이는 너무나 행복해하며, 반짝이는 눈이 초승달처럼 되도록 활짝 웃고 있었다. 며칠 전 유치원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우울함은 완전히 사라진 모습이었다.윤혜인은 아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저녁노을의 빛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아, 마치 화장을 한 듯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그녀는 마치 요정처럼 아름다웠다. 거기에 사랑스러운 아름이와 잘생기고 품위 있는 배남준까지 더해지면, 세 사람이 함께 걷는 길이 곧 멋진 풍경이 되곤 했다.행인들은 연신 그들을 주목하며 부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한 외국인 관광객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물었다.“안녕하세요,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관광객은 남자가 의아해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설명했다.“당신들 가족은 제가 본 중 가장 잘생긴 가족이에요, 정말 아름다워요.”그러자 윤혜인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저희는 부부가 아니에요.”“그럼 당신들은 무슨 사이인가요?”윤혜인은 짧게 대답했다.“남매 같은 관계예요.”하지만 상황을 이해한 후에도 외국인 관광객은 물러서지 않았다.“사진 찍어드릴까요?배남준은 윤혜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괜찮겠어?”그는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윤혜인이 신경 쓸까 봐 걱정되었다. 사진 찍는 것은 그다지 문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윤혜인은 아름이도 사진을 찍고 싶어 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이윽고 외국인 관광객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몇 번 셔터를 눌렀다. 그 후, 그는 사진을 윤혜인에게 보여주었다.사진은 즉석 사진기였기 때문에 바로 인화되었다.놀랍게도 그 관광객은 사진작가 출신이었고 사진을 아주 잘 찍었다.그는 사진 한 장을 윤혜인에게 주고, 다른 한 장을 배남준에게 건넸다. 배남준이 사진을 건네받으려 할 때 관광객이 물었다.“buddy, 당신은 이 아름다운 여성분의 오빠가 되고 싶지 않죠
놀이공원에서의 즐거운 시간도 막을 내렸고 피곤했던 아름이는 배남준의 어깨에 기대어 깊이 잠들었다.공원을 나서는 사람들로 붐비는 가운데, 배남준은 한 손으로 아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윤혜인의 등을 살짝 받쳐주며 사람들이 밀치지 않도록 보호했다.주차장에 도착하자, 홍 아줌마가 아름이를 받아안고 배남준은 차를 찾으러 갔다.곧이어 그의 세심한 행동을 모두 눈여겨본 홍 아줌마가 윤혜인에게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남준 씨가 아가씨를 참 좋아하는 것 같네요. 사람도 점잖고 아름이에게도 잘해주고... 정말 한번 잘 생각해봐요.”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아주머니가 잘못 보신 거예요. 남준 오빠는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그러자 홍 아줌마가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제가 잘못 봤다고요?”“네. 차 왔네요, 타세요.”윤혜인은 차 문을 열어 홍 아줌마가 먼저 타도록 했다.얼마 후 집에 도착해서 홍 아줌마는 잠든 아름이를 안고 먼저 들어갔다.윤혜인은 예의 바르게 차 옆에 서서 배남준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량의 후미등이 사라진 후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윤혜인의 앞으로 갑자기 눈부신 전조등이 켜졌다.뒤이어 그녀의 시선에는 이준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자신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본능적으로 돌아서서 도망치려 했지만, 남자의 긴 다리와 빠른 몸놀림을 피할 수 없었다.이준혁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그리고 순식간에 윤혜인의 몸은 가볍게 남자의 품에 안겼다.“이거 놔요!”그의 행동에 극도로 혐오감을 느끼는 듯 윤혜인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약혼자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정말 역겹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하지만 남자의 강력한 힘 앞에 윤혜인의 저항은 마치 독수리를 상대하는 병아리처럼 무력했다.더 이상 저항할 수 없자, 그녀는 이준혁의 품에 안겨 그를 차고 물고 때리며 안간힘을 썼다.그러나 남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녀를 차에 태우고 문을 잠갔다.“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