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환은 마치 희망이라도 본 듯 모든 걸 포기할 각오로 소원의 손목을 꼭 잡았다.“소원아, 나 안 믿는 거 알아. 근데 나 정말 후회해. 네가 떠난 그날부터 뼈저리게 후회했어. 그때야 발견했지. 너를 원망하는 것보다 너를 사랑하는 게 더 많았다는 걸.”육경한은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남은 핑계가 얼마 남지 않은 원망이었지만 진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의 원망은 애초부터 모래성에 쌓아 올렸기에 진실의 공격을 받은 순간 그대로 와르르 무너졌다.하지만 소원은 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사랑한다니, 육경환이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우스웠다.그녀에게 육경환은 그녀의 명예를 짓밟고 그녀의 회사를 무너트리고 그녀의 가족을 핍박해 죽게 만든 사람일 뿐이다.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한 육경환이 매 순간 지옥이었으면 했다.그런데 지금 감히 ‘사랑’을 거론하다니. 소원은 육경환에게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소원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원망을 꾹꾹 누른 채 덤덤하게 말했다.“대표님, 기회를 원한다고요? 뭐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육경한은 머리가 하얘졌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곧이어 소원이 전시 센터 대문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대표님, 저기 보여요? 저기는 전시 센터에서도 유동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죠. 저기 가서 기회 줄 때까지 무릎 꿇고 있어요. 어때요?”육경한은 소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는 전시 센터의 랜드 마크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하여 중요한 회의나 경매, 그리고 기자회견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꼭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육경한은 그냥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뉴스에 날 정도인데 무릎을 꿇고 있는다면 더 대박일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알 수 있었다.육경한의 표정을 살핀 소원의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대표님, 조금 전만 해도 후회한다고 그러더니, 이제 그 후회가 얼마나 싸고 우스운
참으로 큰 도약이 아닐 수 없었다.윤혜인이 노크하자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윤혜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울로 누군지 확인한 이진영이 순간 경계하기 시작했다.“당신 누구야?”윤혜인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진영 씨는 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나를 폭로하겠다는 거예요?”이진영이 넋을 잃더니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당신이 우리 남편을 꼬신 그 사람이에요?”윤혜인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이진영 씨, 입은 삐뚤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어요. 제가 그쪽 남편에 의해 누명을 쓴 건 맞아요. 근데 남편분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은 거 보면 모르겠어요?”이진영은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이 안에 갇혀 있는데 전혀 관심하지 않고 누구의 감언이설을 들었는지 윤혜인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사법 체계가 고작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영향은 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윤혜인은 이진영이 멍청한지 아닌지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냥 이 사건의 배후가 대가만 치르면 된다.감히 곽아름까지 들먹이다니, 윤혜인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줄 생각이었다.폭로를 좋아한다면 이번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의 대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사실 이진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임세희가 이 기회에 여론의 힘을 빌려 남편도 살리고 사람들에게 피해자 이미지도 굳힐 수 있다고 알려줘서 그대로 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일약 톱스타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여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우리 남편 가정적이기로 소문난 사람이에요. 모함할 생각이라면 포기해요.”“그냥 우리 남편한테 빌붙어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이었나 보죠?”“약을 탄 것도 모자라 검색어까지 내리고, 지금 이렇게 찾아와서 훈수까지 두는 거예요?”윤혜인의 눈동자는 경멸을 감추지 못했다. 윤혜인은 이진영의 머리로 어떻게 살벌한 정글
윤혜인이 이렇게 말한 것도 사실 이진영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이진영의 체면을 지켜준다고 그녀를 용서하는 건 아니었다.그녀가 팬을 시켜 곽아름이 다니는 유치원을 공격한 것만으로도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지시나 부추김을 받아서 한 일이라고 해도 한가지는 설명할 수 있었다.이진영은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공인으로서 팬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 힘을 빌려 악을 도모한다면 정말 동기가 불순하고 심보가 사악한 자가 틀림없었다.이진영이 코웃음 치며 조롱했다.“웃기지 마요. 내 체면을 왜 당신이 지켜줘요?”이진영의 눈에 윤혜인은 서울로 상경해 일거리를 찾으러 온 젊은 여자로밖에 안 보였다.젊고 예쁜 여자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몸을 팔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조건을 거론한단 말인가.이진영은 피해자 연기만 잘하면 돈과 명예를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진영이 얄짤없이 말했다.“당신이 뭔데 이래요! 몸 파는 여자 주제에 자기 걱정이나 해요.”윤혜인이 시선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었다.이진영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더 입씨름할 필요도 없었다. 이 사람의 민낯을 팬에게 드러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윤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이진영 씨, 기자 회견에서 원하던 바를 이루길 바랄게요.”이 말을 뒤로 윤혜인은 이진영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먼저 대기실에서 나왔다.윤혜인의 예쁜 날개뼈와 아름다운 몸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보이는 매혹적인 자태는 누가 봐도 있는 집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 같았다. 이진영이 아무리 후천적으로 배운다 해도 배워낼 수 없는 뼈에 새겨진 기품이었다.순간 이진영은 걷잡을 수 없는 화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내 음침한 눈빛으로 툴툴거렸다.“잘난 척은. 내가 조금 이따 내 팬들에게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이진영의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시작되었
관중석에 앉은 팬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진영아, 울지 마!”“진영아, 힘내!”“진영아, 너는 아무 잘못 없어! 사과 안 해도 돼!”아래 서 있는 기자들도 일부는 그들이 미리 손 써놓은 사람이었다. 질문지도 사전에 맞췄기에 질문지에 있는 문제만 질문했다.“이진영 씨,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이진영 씨, 내연녀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계신가요?”“...”이진영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먼저 제 남편은 유혹을 당한 거지 바람을 피운 건 아닙니다. 우리 사이에 끼어든 여자는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습니다. 질문 사항 있다면 지금 그 내연녀도 현장에 있으니 직접 물어보시는 게 좋겠네요.”이 말에 현장이 들끓기 시작했다. 누군데 이 정도로 나대는 건지 저마다 궁금해했다.윤혜인은 가만히 있었다. 뒤집어씌운 게 사실도 아니니 절대 먼저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이때 임세희가 침통한 표정으로 윤혜인을 힘껏 밀었다“혜인 씨, 또 이런 짓 하고 다니는 거예요? 했으면 반성의 기미라도 보여야지 현장까지 오는 건 뭐예요? 아내분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윤혜인에게로 쏠렸다. 몇몇 기자들은 기레기 정신을 발휘해 그쪽으로 뛰어가 임세희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임세희가 DS 디자인 작업실 이사인 걸 아는 사람도 있었기에 바로 임세희의 이름을 찍어 이렇게 물었다.“임 대표님, 이분도 혹시 대표님 친구인가요? 왜 ‘또’라는 단어가 붙었을까요? 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는 말씀이세요?”임세희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큰 비밀이라도 얘기했다는 듯 생쇼를 했다.“제 남자 친구까지 꼬셨다고 한 적은 없어요. 절대 함부로 추측하지 마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기자들은 눈치가 빠르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기에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그럼 이 여자분이 남자 친구한테도 찝쩍거렸다는 겁니까?”“아니요. 아닙니다. 다 지나간 일이니 함부로 추측하지는 말아주세요. 안 그러면 윤혜인 씨를 뒤에서 보호해 주고 있는 사
이준혁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아무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저것들 치워버려!”주훈은 저것들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쭉 훑어봤다. 제일 소리가 높은 사람은 다름 아닌 몇몇 팬들과 기자, 그리고 임세희와 이진영이었다.기자회견의 주인공을 치워버린다는 건 기자회견이 끝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준혁의 명령이라 주훈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주훈이 옆에 선 보디가드에게 손짓하며 움직이라고 사인을 보냈다.“잠깐만.”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일단 좀 지켜보지.”그가 이 일에 끼어드는 걸 윤혜인이 싫어하니 망정이지 아니면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윤혜인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생각하며 이준혁은 최대한 화를 삭였다. 윤혜인이 잘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윤혜인의 수완을 연습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은 이준혁이 고개를 살짝 돌려 이렇게 말했다.“보디가드를 혜인이 저쪽으로 더 보내. 누가 손찌검이라도 하면 바로 잡아낼 수 있게 말이야.”이준혁은 여은의 실력으로 막아내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윤혜인이 뭘 하든 간에 이준혁은 그녀의 안전이 최우위라고 생각했다.현장에 있는 팬들은 기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말해! 벙어리야?”“파렴치한 여자 같으니. 다른 사람의 남편을 꼬실 때도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지는 않았겠지.”더는 참을 수 없어 엉덩이를 들썩이던 몇몇 팬들은 행동을 보이기도 전에 까만 슈트를 입은 보디가드에 의해 바닥에 제압되고 말았다.놀란 윤혜인이 보디가드의 눈빛을 따라가 보니 주훈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기다란 체구의 이준혁이 보였다. 둘은 뒷문 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한쪽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모습이 마치 듬직한 산처럼 안전감을 주었다.윤혜인이 드디어 입을 열어 반박했다.“이진영 씨, 제가 남편을 꼬셨다고 했는데 증거 있나요?”우쭐대던 이진영은 갑작스레
쥐고 흔들기 쉽다고 생각한 이진영이 갑자기 임세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임세희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부드럽게 말했다.“이진영 씨, 일단 내 말 좀 들어봐요. 나는 진짜 그런 적 없어요. 저 영상 속에 나오는 사람 정말 내가 아니라고요.”“아니긴 뭐가 아니야!”“빌어먹을 년이! 내 남편의 침대에 기어오른 것도 모자라 입김까지 불어 넣어? 그리고 지금은 나를 시켜서 다른 사람 모함이나 시키고! 내가 오늘 너랑 끝장 본다!”이진영이 이렇게 말하더니 테이블을 넘어가 임세희의 머리채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이리저리 마구 흔들었다.순간 기자회견장은 시원한 따귀 소리가 들려왔다.철썩. 철썩. 철썩.이진영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런 역겹고 억울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임세희의 착한 척이 이 정도로 완벽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그냥 임세희를 때려죽이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이미지 관리는 진작에 포기했다.임세희는 몰아치는 이진영의 따귀 공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다 반응하고는 이진영을 할퀴며 엉겨 붙어 싸웠다.이진영이 욕설을 퍼부었다.“빌어먹을 년! 내 남편을 꼬신 것도 모자라 나를 모함까지 해? 내가 오늘 너 때려죽이고 만다!”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몇몇 팬들은 혼란한 틈을 타 무대 위로 올라가 임세희를 폭행하는 데 동참하며 이진영과 함께 싸웠다.이진영은 때리면 때릴수록 더 흥분했다. 따돌림과 폭행에 능했으니 말이다. 이진영은 옆에서 팬들을 부추겼다.“사정없이 막 때려요. 오늘 내가 저년 얼굴 못쓰게 만들 거예요. 그래야 앞으로 유부남 꼬실 생각 못 하지.”이성을 잃은 팬들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바로 임세희의 머리채를 잡거나 얼굴을 잡아 뜯으며 미친 좀비들처럼 임세희를 물고 뜯었다.“아악! 이거 놔!”임세희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너무 아팠다. 누군가의 손톱에 제대로 할퀸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눈이 돌아간 팬들은 임세희의 고함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점점 매섭게 잡아
그러다 늙고 힘 빠진 제작자를 만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었고 과거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다시 수립할 수 있었다.어렵게 포장한 이미지인데 임세희가 때문에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제일 짜증 나는 건 임세희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미리 조사한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들었으니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이진영은 화가 난 나머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당장이라도 임세희의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이진영은 신고 있던 8cm짜리 하이힐을 벗어들고 테이블 아래로 달려가 하이힐로 임세희의 입을 마구 후려갈겼다.하이힐은 바로 임세희의 입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버렸다.풉!임세희가 더는 견뎌내지 못하고 피를 한 모금 뿜어냈다. 토해낸 피를 보니 부러진 이빨도 두 개 보였다. 이진영이 마구 휘두른 하이힐에 이빨까지 나간 것이다.“아악!”임세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을힘을 다해 반항했다. 버둥거리던 두 손으로 이진영의 머리를 부여잡더니 테이블 다리에 가져다 박았다.두 사람이 머리채를 잡고 싸운 지도 어느새 반 시간이 지나갔다. 옷도 찢겨서 너덜너덜해졌고 꼴이 말이 아니었다.어떤 사람은 라이브를 켜고 이 재미난 장면을 생중계했다. 이진영과 임세희가 개처럼 물어뜯으며 싸운 일은 시사를 다루는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또 한 번 전파되었다.순간 인터넷이 뜨겁게 달구어졌다.[이진영이 그간 보여준 청순한 이미지가 다 가짜라니. 그러면 그 나이 많은 남편도 한통속 아니야?][늙은 남자를 그렇게 많이 만났다는 것도 충격인데 계부까지? 너무 에바 아니야?][젠장.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드라마에나 있을 법한 막장이 현실에 존재한다고?][임세희라는 사람 신상 파봤는데,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던데? 전에 이선 그룹 대표님과 엮이고 싶어서 뻘짓하다가 이선 그룹 홈페이지에서 바로 공지 떴던데? 대표 이준혁에게는 부인밖에 없다고.”“임0희와 올드 장의 뜨거운 영상, 모자이크가 없는 버전을 보고 싶다면 대댓
영상이 찍힌 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윤혜인이 설명했다.“호텔에 있는 패밀리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과 가까웠거든? 호텔 주방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화장실에 갔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통풍구를 통해 올라간 거야. 그러다 화끈한 장면을 보고 찍은 거지.”정말 단순한 우연이었다. 통풍구로 올라가는 건 호텔 스태프가 아니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이 영상이 없다 해도 복도 CCTV 영상을 곽경천이 복구해 냈다. 그것으로도 윤혜인의 결백은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었다. 비록 임세희가 나오는 영상보다는 덜 흥미진진하겠지만 말이다.더 신기한 건 이 영상을 건네준 사람이 주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준혁도 봤다는 말이다.첫사랑이 이렇게 방탕하게 노는 걸 알았으니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윤혜인이 그 첫사랑을 이렇게 괴롭히는 데도 가만히 있는 걸 봐서는 첫사랑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윤혜인은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소원의 손을 잡으며 애교를 부렸다.“여기 전시 센터 꼭대기에 맛있는 훠궈집이 있대. 온천에서 반신욕도 할 수 있고. 우리 훠궈 먹고 마사지도 받으러 가자. 어때?”“그래.”멀지 않은 곳. 김성훈이 두 여자의 행복한 뒷모습을 보며 오버했다.“와, 나 이제 윤혜인 씨를 내 우상으로 삼으려고. 인간쓰레기를 치워버리는 방법이 아주 일품인데?”김성훈의 이준혁의 어깨를 툭 치며 비아냥댔다.“네 도움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설마 실망한 거 아니지?”이준혁이 잠깐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자기를 보호할 수 있으면 좋은 거지.”김성훈이 웃었다.“대범한 척하기는. 아까 진짜 일말의 걱정도 없었어?”“아니, 걱정 안 해.”이준혁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웃었다.“무슨 일이 있든 내가 지켜줄 거니까.”김성훈은 그런 이준혁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사랑에 빠진 이준혁이라니. 윤혜인 씨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해도 너는 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