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을 손에 가두고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했다.“소원아, 이제 다 그만하자. 난 널 놓지 않을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부탁이 아니라 선포였다.이 순간에 그런 말을 하면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원망할지 알면서도 그는 해야만 했다.어차피 자신이 뭘 하든 그녀는 미워할 테니까.“언젠가 너에게 기회를 줄게.”나를 죽일 수 있는 기회.소원은 절망하며 고통에 잠식된 목소리로 흐느꼈다.“육경한, 난 죽어야만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꿈도 꾸지 마!”육경한의 눈꺼풀이 파들 떨리며 소리쳤다.“네가 감히 죽으려고 하면 널 도와줬던 사람들 한 명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소원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늘 증오와 고통을 안고 사는 건 두려웠다.육경한은 그녀를 흔들며 경고했다.“내 말 기억해.”소원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하늘이 밝아오고 오늘은 소진용이 화장되는 날이었다.이준혁, 윤혜인도 마지막 작별을 위해 찾아왔다.화장이 끝난 후 소원은 나지막이 말했다.“육경한, 아빠의 마지막 소원은 바다에 뿌려지는 거였어.”육경한은 얼굴을 찌푸릴 뿐 차마 거절의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차에 타기 전, 소원은 윤혜인에게 말했다.“혜인아, 네 절친이 될 수 있었던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었어.”한 마디에 윤혜인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지고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다.윤혜인은 소원의 손목을 잡고 흐느끼며 말했다.“내가 여기서 기다릴게.”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육경한의 차에 탔다.육경한은 모든 일을 뒤로 하고 그녀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은 채 지켜보았다.소원은 소매를 걷어 올린 그의 팔에 이빨에 물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안쪽 살이 뒤집힌 걸 보아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것 같았다.육경한은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낮게 말했다.“남겨두려고.”이빨 자국을 말하는 것이다.소원은 충동적으로 그를 깨물었던 걸 후회하며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그녀
파도는 거칠었고 육경한은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려 했지만 뒤따라오던 소종이 붙잡았다.“대표님, 안 돼요! 이 가파른 절벽에서 떨어졌다가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소종은 뒷말을 생략했다. 그때 가서 응급조치를 해봐야 소용없었다.소원은 죽을 것이다.“이거 놔!”육경한은 악마처럼 사나운 눈빛과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바다에서 지체하는 동안 소원이 살 가능성도 줄어든다.“대표님! 소원 씨는 이미 죽으려고 결심했어요!”소종은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오늘 아침 전미영 씨 병원 계좌에 앞으로 50년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거액의 돈이 들어왔고 돈을 보낸 사람은 소원 씨였습니다.”누가 봐도 확실한 징조였다. 어쩌면 어제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을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순간 육경한은 온몸의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그녀는 이미 결심을 했다… 그의 곁에 있느니 죽는 게 나았던 것이다.순간 육경한은 심장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피에 물든 상처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 같았다. 통증이 심장에서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고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어두운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경한 씨... 경한 씨...” 한 번씩 부를 수록 심장이 산 채로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소종이 그를 일으켜 세우자 육경한이 시선을 옮겼다.“내가 올라오지 않으면 찾았을 때 같이 묻어줘.”이윽고 그는 훅 뛰어내렸고 그의 몸은 순식간에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바다에 삼켜졌다.“대표님!” 소종이 비명을 질렀다.그리고는 곧바로 관리실을 찾아 여러 척의 요트를 보내 수색에 나섰다. 육경한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 날 되었다. 소종이 데리고 온 구조대가 그를 구했던 것이다.한 시간 가까이 바다를 수색한 끝에 육경한을 발견했을 때 그는 너무 지쳐서 바닥에 가라
육경한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국땅에서 맨손으로 늑대도 찢어 죽이던 손이 지금은 파킨슨병 환자처럼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힘겹게 하얀 천이 벗겨지고 순간 무언가 머리를 세게 내리친 듯했다.주위에 적막이 감돌았다.순간 이명이 들린 육경한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그는 감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피투성이가 되어도 얼굴 윤곽이 소원의 얼굴과 일치했다.“말도 안 돼! 내가 네 속임수를 모를 것 같아, 소원!”육경한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시뻘겋게 빛났고 그는 미친 사람처럼 갈아입힌 시체 옷을 찢었다.소종이 깜짝 놀라며 제지했다.“대표님!”허리 자락을 들어 올리자 가느다란 허리에 유일하게 남은 피부 조각에 작은 붉은 점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이 너덜너덜한 시체랑은 어울리지 않게.“헉!”새빨간 피가 흰 천에 튀었다.육경한은 치명적인 한 방을 맞은 듯 피를 토했다.잔인한 현실은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았다.“아아악!!!”육경한은 너덜너덜해진 시체를 안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극심한 고통의 비명이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요란한 소리 뒤엔 숨 막힐 듯한 적막감이 돌았다.기억 속에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던 눈물이 남자의 눈에서 툭툭 떨어졌다.“소원아, 더는 널 가두지 않을게. 돌아와 제발, 곁에 묶어두지 않고 자유롭게 보내줄게… 내가 잘못했어, 내가...”육경한은 미련이 가득한 모습으로 뼈가 다 드러난 머리에 얼굴을 갖다 댔다. 소종은 이 시체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말해서 진아연의 흉측한 얼굴보다 더 소름 끼쳤다.진자연은 기껏해야 아주 못생겼을 뿐 그래도 숨 쉬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이 시체는 피투성이가 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뿜었고, 특히 움푹 파인 두 눈은 사람의 영혼까지 송두리째 뽑아갈 정도로 오싹했다.육경한은 진아연의 소름 끼치는 모습은 싫어하면서 품 안에 피투성이가 된 시체는 내치지 않았다.“소원아, 제발 돌아와, 제발. 내 목숨이라도 줄 테니...”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품에 안긴
윤혜인은 얼떨결에 뒤로 넘어졌고 다행히 이준혁이 제때 잡아주었다.“뭐가 네 건데 이 미친놈아. 소원이는 널 떠나려고 죽었어. 네가 건드리는 걸 원하지 않아. 빨리 그 손 놔!”윤혜인은 여전히 가서 뺏고 싶었지만 이준혁이 뒤에서 가지 못하도록 손을 붙잡고 있었다.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이준혁은 육경한이 조금은 미쳐 있고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실수로 윤혜인이 다칠까 봐 두려웠던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충동적으로 가지 마, 네가 다칠 수도 있어.”육경한은 소원의 시체를 안은 채 밤낮으로 자리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소종이 다그치자 육경한은 얇은 입술로 차가운 말을 뱉어냈다.“집으로 데려갈 거야.”두 사람이 가장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오아시스로 돌아갈 것이다.소종의 표정이 급변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어떻게 데려가요?”“가서 무덤을 준비하고, 사람 시켜서 얼음 관을 집에 가져오라고 해.”“!!!”미쳤다!대표님이 미쳤다!얼음 관이 집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물건이었던가?하지만 차마 더 이상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육경한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곧 장례식 날짜가 정해지고 윤혜인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다.가짜 무덤일 뿐 소원의 시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몰랐다.조문이 끝난 후 윤혜인은 육경한을 무시한 채 일찍 자리를 떴다.죽은 다음에야 슬픈 척하는, 전혀 동정할 가치도 없는 놈과 같이 참배하고 싶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 이준혁의 전화가 울렸다.주훈은 임세희가 몸이 좋지 않다며 그를 만나려 한다는 말을 전했다.윤혜인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차 문에 손을 뻗었다.끼익-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멈췄고 이준혁은 윤혜인을 뒤로 끌어당기며 소리쳤다.“미쳤어?”윤혜인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를 힘껏 뿌리쳤다.“꺼져! 나 건드리지 마!”윤혜인의 엄지가 이준혁의 손등을 스치면서 할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다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고집
이걸 알리는 건 이준혁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최근 이천수는 갑자기 미친 듯이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렸다.송휘재는 이천수를 무너뜨릴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고 있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문서를 몰래 숨겼다.송휘재가 죄를 저질러 구치소에 들어간 후 이천수가 이 난리를 치자 그에게 연락이 왔다. 이준혁이 임세희의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온 뒤에 무조건 협조하겠다고 했다.이천수의 경계를 늦추기 위해서는 임세희의 아이가 이준혁의 아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이런 복잡한 일은 윤혜인이 모를수록 좋았고 3개월만 버티면 이천수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소원의 죽음에 이준혁의 마음은 늘 불안하기만 했다.윤혜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슬퍼하지 않는 다기엔 조금 전 울면서 죽일 듯이 육경한을 욕했지만, 그렇다고 슬프다고 하기도 이상한 행동이었다.이준혁은 그녀를 지켜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윤혜인, 넌 날 떠나지 않을 거지?”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를 석 달 동안 계속 가둬두는 게 도망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윤혜인은 줄곧 이혼을 언급하고 있었다.윤혜인은 그녀의 눈빛에 담긴 소유욕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지금 그를 자극하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이렇게 말했다.“안 떠나요.”이윽고 그녀는 가녀린 얼굴로 나지막이 부탁했다.“이준혁 씨, 출근 안 해도 되니까 지금처럼 저 가둬두지 않으면 안 돼요? 꼭 죄수가 된 기분이에요.”이준혁은 그녀의 말 속에 담긴 진실을 캐내려는 듯 덤덤하게 바라봤다.윤혜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소원이도 없어서 충분히 힘든데 매일 날 가둬놓기만 하면, 대체 날 사람으로 보기는 해요?”“그만 울어.”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고 마음이 약해져 이렇게 말했다.“외출은 할 수 있지만 경호원이 동행해야 하고 밖에 너무 오래 있지 마, 알았지?”윤혜인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탈의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다 됐어?”이준혁의 목소리였다.“다 됐어.”곧이어 치맛자락을 잡고 나온 임세희는 이준혁과 마주쳤다.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화장을 두껍게 한 탓에 얼굴이 새빨개진 것은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가자.”이준혁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임세희의 얼굴에는 이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앞에 있는 전신거울에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췄다.웨딩드레스는 아름다웠지만 그렇게 화장을 두껍게 했음에도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정신병원에서 밤낮없이 겪은 고문과 툭 튀어나온 뱃살로 인해 그녀는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때문에 이준혁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은 당연했다.뒤이어 둘은 촬영실로 갔다. 이것은 특별한 촬영이었다. 임세희 옆에는 모델 소품이 서 있었는데 최신 기술로 나중에 모델링하여 얼굴을 바꿀 예정이었다.촬영할 때, 이준혁은 창가에 서서 맞은편에 대기하고 있는 차를 확인했다.그것은 그를 미행하기 위해 이천수가 보낸 사람들이었다.이준혁은 일부러 직원들에게 커튼을 얇게 남기게 해 맞은편에서 그와 임세희가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을 몰래 찍을 수 있게 했다.얼마 후 촬영이 끝나고, 이준혁은 임세희와 함께 나가려 했다.그때, 임세희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준혁 오빠...”하지만 곧 자신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이준혁이 싫어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그녀는 이내 말을 바꿨다.“준혁 씨, 나랑 진짜로 사진 한 장만 찍어주면 안 돼?”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볼 뿐, 이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세희는 이유 없이 긴장하여 목이 멨다.“준혁 씨, 나 요즘 매일 악몽을 꿔. 정신병원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나 정말 송휘재가 나오기 전에 나와 아이 모두가 무사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그녀는 이준혁이 이 아이를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임세희 본인은 이 아이가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때문에 그녀는 한 번도 검진을 받지 않았었다. 당시
이준혁이 지시했다.“몇 명 데리고 가서 방금 탈의실에서 나온 사람을 찾아.”그러자 주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이천수가 계속 이준혁을 미행하고 있는데, 만약 그와 임세희의 관계가 가짜라는 것이 발각되면 틀림없이 이천수가 무언가를 알아낼 것이다.즉시 주훈은 앞뒤 출구를 조용히 봉쇄하게 한 뒤, 사람들을 데리고 건물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스튜디오 건물이 너무 큰 탓에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탈의실이 많기도 하고 큰 소란을 피울 수도 없어서 그들은 반드시 조용히 찾아야 했다.그 시각, 윤혜인은 이미 준비된 검은색 벤에 앉아 있었다.다행히 오늘 도망을 위해 미리 스튜디오의 통로 지도를 손에 넣었기에 그녀는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이준혁이 이렇게 신중할 줄이야... 웨딩 촬영 하나에 이런 규모라니.’비록 이준혁에 대한 기대는 일찍이 접었지만, 조금 전의 그 장면은 여전히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임세희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면 그 사람 성격상 웨딩 촬영 같은 걸 할 리 없는데... 근데 그럼 나는 왜 속이는 거지? 나한테 더 이상 무슨 이용 가치가 있다고...’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나머지 윤혜인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머릿속에는 당장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운전기사는 외국인이라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곧 차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스튜디오 입구에 다다랐을 때, 윤혜인은 이준혁이 나오는 것을 보고 습관적으로 머리를 숙여 숨으려 했다.그러나 이내 차에 선팅이 되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이준혁이 한 손으로 임세희를 차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어둡고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수려한 외모는 유독 빛났다.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은 넋을 잃고 임세희에게 부러운듯한 눈길을 보냈다.임세희는 계속 배를 손으로 감싸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이었다.“툭, 툭.”굵은 눈물이 윤혜인의 턱 끝에서 땅에 떨어졌다
앞 좌석의 운전사가 좌석째로 뒷좌석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그 피가 전부 뒷좌석으로 흐르게 되었다.윤혜인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깨진 유리에 이마가 찔려 온 얼굴에 피가 흘렀고 머릿속은 혼미했다.교통사고로 인해 가드레일이 날아가 대교 도로가 차단되었다.그 시각, 검은색 고급차 안에서 임세희는 갑자기 심한 복통을 느꼈고 아래쪽에는 출혈이 보였다.“준혁 씨, 나 배가... 배가 너무 아파...”임세희가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했다.그러자 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즉시 앞서가던 차에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멈춰서 좀 기다려.”그 후, 그는 차에서 내려 임세희를 안고 다리를 건너 걸어갔다.벤의 앞부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윤혜인은 뒷좌석에서 고통스럽고 무력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흐릿하게나마 이준혁의 모습을 보았다.“이준혁!”그녀는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입을 여는 것조차 어려웠다.피투성이 손을 힘겹게 뻗어 가까이 있는 창문을 잡으려 하며 윤혜인은 속으로 말했다.“준혁 씨, 우리 아이를 구해줘...”하지만 눈앞에선 임세희를 안은 이준혁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윤혜인은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그때,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윤혜인은 희망을 본 듯 힘겹게 눈을 떴다.그러자 구급차가 아직 멈추기도 전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불타며 강물 속으로 빠져들었다.곧 차는 차가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차 안으로 들이닥쳤고 윤혜인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도망치려 하지 않았다면 교통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그녀는 후회했다.‘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다신 이준혁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배 속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느껴졌고 윤혜인은 그것이 첫 태동이라는 것을 알았다.아기가 엄마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아 심장이 미어지는 듯 아파왔다.“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무능해서... 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병원.임세희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준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