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하는 소리만 머릿속에 울려 퍼질 뿐, 소원은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얼굴에는 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그녀는 무뚝뚝하게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매우 뜨거웠다!사랑했던 사람에게 뺨을 맞는 것이 이렇게 아픈 것이라니!육경한의 손은 여전히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왜 소원의 뺨을 때렸는데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것보다 더 아픈지!왜 그녀가 자신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역겨워한다는 말을 들은 후에 소원의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지!자신을 배신한 위선적인 여자가 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육경한은 그 일을 끝내고 그녀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무정하고 잔인한 배신이었다.그는 이미 그녀에게 두 번 속았다. 그러니 결코 또다시 소원에게 속을 수 없었다!‘소원이한테 조금의 연민도 품어서는 안 돼!’여러 번의 고심 끝에 육경한은 침착해졌다. 곧 그가 저승사자처럼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물을게. 아연이를 민 것에 대해 인정해?”“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고 감옥에라도 보내게?”육경한은 냉혹하게 말했다.“알긴 아네?”고개를 숙인 채, 소원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녀와 육경한 사이의 상황이다. 그들 사이에는 오직 끝없는 증오만이 존재했다!그녀는 턱을 들고 육경한의 핏기 어린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육경한, 당신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돼?”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경멸하는 듯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소원은 다시 자신감 넘치는 재벌집 딸 신분으로 돌아간 듯했다.“좋아! 네가 좀 이따도 이렇게 자부할 수 있기를 바랄게!”육경한의 눈 속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온기도 전부 사라졌고 말투는 비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는 주변 사람에게 몇 마디 속삭였다. 곧 옆에서 경호원 두
소원은 자신이 강물에 빠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할 수 있었다. 순간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안간힘을 쓰며 육경한의 팔을 붙잡았다.그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준비도 안 한 상황인데 내가 죽어버리면 견디실 수 없을 거야!’그녀는 불효자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하고 죽고 싶었다!공포에 사로잡힌 소원이 입을 열었다.“경한 씨, 나 진짜 아연 씨 안 밀었어. 여기 크루즈 선에 CCTV 없어? 돌려보면 되잖아!”하지만 육경한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날카로웠다.“위치를 아주 잘도 찾았던데? 마침 여기는 CCTV 사각지대라 보이지 않아.”소원의 몸은 난간에 기댄 채 기울어져 있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다. 실수로라도 떨어지게 되면 그녀는 영락없이 피라냐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창백한 그녀의 얼굴,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녀가 애원하며 말했다.“그토록 내가 죽기를 바래?”복잡한 표정으로 육경한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는 자신이 가차 없이 소원을 강물에 내던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비참한 모습을 보자 육경한은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소원이 한 번이라도 더 빌면 육경한은 그녀를 놓아줄 수도 있을 듯 했다.그때, 갑자기 뒤에서 진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경한 씨!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아요!”물에 빠진 탓에 그녀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가에는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소원 씨가 경한 씨에 대한 나쁜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걱정 마요. 그 선동에 난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난 평생 경한 씨를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순간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더니 그가 물었다.“소원이가 뭐라고 했는데?”진아연은 뭔가 초조한 듯 주저하며 말했다.“들어서 뭐 좋을 게 있다고 그래요. 그냥...”“말해!”냉담한 육경한의 말에 놀란 진아연이 흠칫하더니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소원 씨가 경한 씨 등에 있는 상처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토할 정도라 그랬어요
차가운 물에서 전해지는 한기가 소원의 뼛속 깊이까지 전해져 갔고 그녀의 온몸은 이미 마비된 지 오래였다.하지만 저 멀리서는 식인종인 물고기 떼들이 소원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 냄새를 맡고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으니 소원은 더는 물속에 있을 수가 없었다.마비된 몸의 감각을 되찾으려 소원은 혀끝을 힘껏 깨물었다. 혀에서 피가 날 때까지 깨물고서야 그 마비가 풀렸고 소원은 전력을 다해 보트로 헤엄쳐 갔다.보트에는 긴 밧줄을 하나 드리워져 있었는데 소원의 뛰어난 수영 실력으로 여기까지 헤엄쳐와 밧줄을 잡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보트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하지만 보트 위로 올라온다 해도 소원은 사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육경한은 그녀에 대한 원망이 이미 극에 달해 있었기에 그녀가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할 것이라 벼르고 있었다.이 재밌는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진아연이 갑판 위로 나오자 육경한은 이내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안 들어가고 나와 있어?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진아연은 육경한의 팔짱을 끼며 애교스럽게 말했다."경한 씨 옷도 이미 다 젖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갈아입어요. 나도 경한 씨랑 같이 있고 싶어..."진아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물었어!"사람들 속에서 들려오는 물었다는 말 한마디에 육경한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진아연의 손을 뿌리치고 서둘러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진아연은 그런 육경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까까지만 해도 부드럽던 두 눈을 질투로 가득 채웠다.'아무튼 사사건건 방해되는 년이라니까, 그냥 그대로 죽으면 얼마나 좋아, 왜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귀찮게 해!'진아연은 육경한이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그 말들을 들은 뒤 바로 제 손으로 소원의 숨통을 끊어놓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끝을 내지 못할 줄은 몰랐다.짜증 나는 마음에 발을 구른 진아연도 구경하러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몇 수까지? 시림이 전해지는 차가운 물 속에서 소원을
육경한이 물속으로 떨어지면서 일으킨 파동에 소원을 집어삼키려 하던 피라냐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소원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그들에게 거대한 케이크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었기에 피라냐는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흉악한 바다의 맹수다운 자태를 뽐내며 소원을 향해 덮쳐갔다.육경한이 수면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피라냐의 주의를 끌려 했지만 다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소원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피라냐는 육경한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소원만을 향해 이빨을 번뜩이며 다가갔다.-탕!그때 보트 위의 경호원이 총을 들어 피라냐를 향해 쏘자 그 큰 반동에 피라냐는 뒤로 물러나며 먹잇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피라냐들을 위협하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러다가 사람이라도 잘못 쏘게 되면 큰 불상사로 이어지기에 경호원은 함부로 총을 꺼내 쏠 수도 없었다.놀란 것도 잠시 이내 다시 사냥할 준비를 마친 피라냐가 다가오자 육경한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이마의 핏줄까지 도드라지며 허리춤에서 작은 단도 하나를 빼 들었다.이것은 육경한이 해외에 있을 때부터의 습관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모르게 늘 작은 단독 하나를 허리춤에 지니고 다녔다. 그게 육경한이 낯선 타지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육경한은 이를 악물며 빛의 속도로 제 팔을 베었다.날카로운 칼날에 살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육경한은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다시 제 종아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단도를 휘두르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인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은 마치 제 자신을 베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원수를 베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깊게 패인 상처로 피가 흘러나와 수면 위로 번져갔다. 빨간 피로 물들어진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한 송이 수면 위에 피어났다.그에 그치지 않고 육경한은 이를 꽉 악문 채 피라냐를 유인하려 계속해서 수면을 두드렸다.역시나 피라냐는 신선한 피에 이끌려 더 이상 소원에게 들러붙지 않고 육경한에게로 다가갔다.그 순간까지도 소원은 계속
비 맞은 강아지마냥 가냘픈 몸을 하고 제 품 안에 안겨 있는 소원을 보던 육경한은 그녀가 안쓰러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원망 뒤에 잇따르는 것은 증오였다. 소원은 코가 멘 목소리로 입을 열어 육경한에 대한 증오를 쏟아냈다."육경한, 난 네가 너무 싫어. 너는 악마야, 쓰레기라고! 네가 죽은 거 하나는 정말 잘된 일이야."육경한이 죽었으니 제 부모도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여생은 평온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고 보니 죽는 게 뭐 그다지 유감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육경한이라는 악마와 함께 죽었으니.하지만 소원의 말에 육경한은 꽤 충격받았는지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소원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소원은 숨기는 것 없이 제 머릿속의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너 잘 죽었다고, 죽어서 다행이라고!"소원을 살리기 위해 육경한이 무슨 짓까지 했는데 아직도 제 앞에서 저런 말 들을 내뱉는 소원을 보며 육경한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애초에 그녀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던 제가 잘못이었던 것 같다.소원은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하늘도 내 기도를 듣고 널 끌어내려 준 거지. 어떡해? 재수 없어서."그 순간 소원이 하려던 말들이 차가운 육경한의 입술에 의해 막혀버렸다.입술은 차가웠지만 입속만은 따뜻한 그 이상한 느낌에 소원은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따뜻... 따뜻해...입안이 따뜻한 걸 봐서 육경한은 아직 죽지 않았다.소원과의 입맞춤으로 육경한은 참아왔던 고통이 모두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그는 소원의 입술을 벌려 자신의 혀로 천천히 소원의 입술을 탐했다.이 상황을 즐기는 듯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려오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육경한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시 멈칫하던 소원은 제 입안을 훑고 지나가는 그의 혀를 꽉 깨물어 버렸다. 키스를 즐기던 도중 물린 혀에 육경한이 깜짝 놀란 틈을 타 소원은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그의 뺨을 내리쳤다.육경한의 입가로 새빨간 피
구명보트 위의 사람들은 일단 소원부터 구하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버린 육경한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짧은 찰나에 벌어진 많은 일들에 충격받은 소원은 벙찐 채 가만히 구조 대원들의 손에 이끌려 보트에 올랐다.지금 소원이 기억하는 거라고는 육경한이 자기를 밀쳤다는 사실 밖에 없었다.소원은 넋을 놓은 채 보트를 타고 뭍에 올랐고 경호원은 바로 육경한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했으며 소원 또한 다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보내졌다.물에 너무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던 탓인지 소원은 온몸에 한기가 감돌았고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한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육경한을 보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진아연은 상대적으로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 소원을 보자마자 그녀를 향해 소리 질렀다."경한 씨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너 가만 안 놔둬!"침대에 실려 들어가던 소원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진아연의 손목을 잡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진아연, 마지막 한 발 누가 썼어? 네가...""너 나 죽이려고 했지?"진아연의 눈을 보며 말하는 소원에 진아연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냥 경한 씨 살리려고 그 피라냐 쏘려고 했던 것뿐이야. 경한 씨한테 무슨 일 생기면 다 네 탓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육경한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죽어도 난 만족해."육경한이 죽고 소원도 그 뒤를 따라 죽는다면 목숨으로 저를 살려준 값은 톡톡히 치른 것이니 빚을 진 셈은 아니었다.지나야 하는 소음과 상대가 되지 않자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너 지금 경한 씨 저주했어? 경한 씨 일어나면 다 이럴 거야!"소원은 진아연의 팔을 쳐 내며 차갑게 웃었다."진아연, 너는 죽을 때까지 육경한 그늘 밑에서 살길 바랄게.""너 무슨 뜻이야 그게!"소원은 침대에 누워 피곤한 듯 두 눈을 감으며 진아연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무슨 뜻이냐고?"육경한이 지옥에 가면 그 뒤를 이을 건 너라는 말이지.소원이 마지막 말을 뱉
말을 하며 이준혁은 윤혜인의 손을 잡아 왔다.하지만 부자지간의 다툼에 끼고 싶지 않았던 윤혜인이 그 손을 빼내고 벗어나려 하자 이준혁은 더욱더 손을 꽉 잡아 오며 윤혜인을 가지 못하게 막았다.둘의 손이 맞붙어 있는 것을 본 이천수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제 말에 사사건건 토를 대는 불효자식이 얼굴 빼고는 볼 것도 없는 여자 하나 때문에 무려 정씨 집안을 건드렸던 것이다."할 말 있으면 빨리해요. 나 쉬고 싶어요."이천수는 애써 터져 나오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고 이사는 왜 잘랐어?""직무유기하고 다른 회사와 결탁한 증거가 발견돼서 잘랐어요.""필요 없는 정보만 팔아넘겼다잖아! 그게 뭐 얼마나 큰일이라고, 회사에 영향도 끼치지 않은 일로 사람을 잘라? 회사에 어디 이러는 게 한둘이야?!"이준혁은 이천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갑게 대꾸했다."아버지가 말씀하신 사람들, 제가 다 찾아낼 겁니다.""네가 누구 앞이라고 감히 그런 말을 지껄여! 그 사람들 다 우리 회사 창립멤버야, 퇴직할 나이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버려 둬 그냥."이천수는 눈을 부릅뜨며 한마디 더 보탰다."그리고 고 이사도 그래. 사람 해고할 때 네가 언제 내 의견 물어본 적 있어? 아주 이젠 내가 안중에도 없지!"이준혁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제 사람 건드실 때, 아버지는 저와 상의하셨어요?""내가 누굴 건드렸는데!"이준혁은 치가 떨린다는 듯 이천수에게 눈길로 주지 않으며 말했다."나가요, 우리 방해 말고."이준혁은 일부러 우리라는 단어를 좀 더 강조했다.그제야 이천수도 이준혁이 말하는 '내 사람' 이 윤혜인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생각 못 할 만도 한 것이 윤혜인은 한 번도 이천수 마음에 든 적이 없는 보잘것없는 이준혁의 전처였다.이 모든 게 윤혜인 때문이었다는 것을 한 번 더 상기시키는 이준혁에 이천수는 더욱더 화가 났다.여자 하나에 눈이 팔려서 감히 제가 회사에 심어둔 제 눈을 도려내다니, 그리고 몇 년 동안 조용히 감시할 때는
이천수는 이준혁에게 손가락질하며 역정을 냈다."네가 날 아버지로 생각한 적이 있긴 하니? 내가 한 모든 일은 다 널 위해서였어. 근데 넌 여자 하나에 눈이 멀어서 지금 아버지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회사에서 내치겠다고?""여자의 눈이 먼 걸 아셨으면 저 그만 건드리세요."이준혁은 차가운 표정으로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며 이천수를 향해 경고했다."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내 사람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막말도 하지 말고요. 그런 말 들을 사람 아닙니다. 다시 한번 더 제 경고 무시하시면 아버지 측근들 내보내는 것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예요."이준혁이 지금 하고 있는 건 제 속내를 완전히 드러낸 협박이었다.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명망과 체면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지자 이천수는 분노에 차 뒤틀린 듯 아파 오는 심장을 잡으며 말했다."이 불효자식! 네가 저딴 년 하나 때문에 회사 창립 멤버를 감옥에 보내면 내일에는 아주 나도 보내버리겠구나!"이준혁은 여전히 감정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이라도 제 말에 협조하시면 여생은 편히 보내실 수 있게 할게요."이준혁이 한 말은 이천수가 계속 이준혁과 그의 사람들을 건드린다면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당장 감옥에 보내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거야!"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이천수는 난간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그때 이준혁이 밖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소리쳤다."주훈!""이사장님 배웅해드려, 그리고 문밖에 경호원 두 명 더 둬. 아무나 들어오게 하지 말라고."이천수를 앞에 두고 하는 아무나 들여보내지 말라는 말은 꼭 이천수를 겨냥하는 말 같아 이천수는 가슴이 답답해나며 이준혁을 한 번 흘겨보고는 주훈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나섰다.이천수가 나가고 둘만 남은 병실에서 윤혜인은 살짝 부어오른 이준혁의 턱을 보며 그를 소파로 끌어당겨 앉히고는 말했다."기다려요."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얼음팩과 거즈를 꺼내 들어 이준혁에게로 다가갔다.소파가 작은 사이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