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그렇게 고생한 끝에 날이 밝아올 무렵, 유진이의 열이 드디어 내렸다.소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 잠시 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교대하러 온 아주머니는 의자에서 자는 소원이의 모습이 불편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그래서 침대에서 쉬게 하려고 깨우려 했다.“소원 씨.”아주머니가 불렀지만 소원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원래 몸이 약한 데다 밤새 지친 탓에 깊이 잠든 것이다.아주머니가 손을 뻗어 소원을 살짝 흔들려는 순간, 단단하고 길쭉한 한 손이 그녀보다 먼저 움직였다.육경한이 아주머니를 지나 소원을 가볍게 안아 올렸다.그러자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육 대표님...”하지만 그녀의 말을 육경한의 날카로운 시선이 단번에 막아버렸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유진이를 잘 돌보는 거야말로 아주머니의 책임입니다.”유진이가 밤마다 이유 없이 울지 않았다면 육경한은 아주머니를 이곳에 남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아주머니도 함께 따라왔는데 육경한이 나타나는 순간 그녀는 이 남자가 유진이의 생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판박이였다.심지어 말투와 행동조차 닮아 있었다.유진이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이 적은 아이였는데 그것도 분명히 육경한에게서 물려받은 성격일 것이다.아주머니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전에 유진이의 생부가 뛰어난 수단을 많이 쓰고 통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소원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소원은 아주머니에게 만약 그와 마주치게 된다면 절대 정면으로 대립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그가 유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그냥 데려가게 두라는 것이었다.유진이는 해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해를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다행히 그때 아주머니는 재치 있게 약 한 보따리를 꺼내며 유진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이 약을 먹이는 법은 자신만이 안다고 말했다.그래서 육경한은 그녀를 데리고 왔다.지금 이 별장에서, 아주
다음 순간, 소원은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곧장 육경한의 침실에 있는 약장을 향했다.유진이의 양육권을 되찾으려면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육경한이 계속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약들은 모두 개인 주치의가 처방한 것으로 병원에서는 처방받은 적이 없었다.‘만약 육경한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유진이를 양육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거야.’언제든지 무너질 위험이 있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키우기에 지나치게 위험하니 말이다.약장에서 약을 찾아보았지만 어쩐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소원은 약장의 맨 위 칸에 있는 약상자를 꺼내려 발끝을 세우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너무 높아 그곳까지는 닿지 않았다.방법이 없었던 그녀는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올라섰고 간신히 약상자를 손에 넣었다.그러나 소원은 자신이 아직 의자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곧 몸이 휘청거리며 그녀는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순간,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막으며 비명을 삼켰다. 누군가 들을까 두려워서 말이다.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한 단단한 가슴에 안기는 느낌과 함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가 들고 있던 약상자는 땅에 떨어져 안에 든 약들이 와르르 쏟아졌다.뒤이어 머리 위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찾고 있는 건데?”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은 냉혹한 비웃음으로 가득했다.표정이 굳어졌지만 소원은 금세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몸이 좀 안 좋아서 약 좀 찾으려고.”“어디가 안 좋은데?”육경한은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머리가... 머리가 아파.”소원은 대충 둘러댔다.그러자 육경한은 바닥에 흩어진 약들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먹어. 두통에 좋은 약이야.”하지만 소원은 그 약을 감히 먹을 수 없었다.그가 무슨 약을 건넨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방금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약을 고른 걸 봤으니 말이다.하여 소원은 고개를 저었다.“이
소원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이 남자와는 단 1초도, 조금의 신체 접촉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는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꺼져! 너 같은 짐승은 인간 취급도 못 받으니까!”그러나 육경한은 뜻밖에도 웃음을 터뜨리며 낮고 욕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약으로 억누르지 않았다면 지금 너랑 하기 전에 먼저 목 졸라 죽이고 나서 했을 거야.”시체와 그런 일을 하겠다는 이 미친 발언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아니고서야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이런 사람이 아빠라면 유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지만 소원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그럼 날 죽여 봐.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기어가서라도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네가 날 강제로 덮쳤다고.”그러자 관자놀이에 있던 힘줄이 붉어지며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분노가 이미 극에 달한 듯했다.소원은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며 비웃었다.“육경한, 너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왜? 서울 여자들은 네 입맛에 안 맞아? 안타깝지만...”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갑게 덧붙였다.“안타깝지만 난 너 같은 놈은 너무 혐오스러워서.”순간, 육경한의 얼굴은 광기를 띤 짐승처럼 일그러졌다.쫘악!소원의 옷이 반쯤 찢겨 나가며 매끈한 쇄골과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드러났다.가늘고 잘록한 허리는 여전히 감싸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았고 지금의 그녀는 이전보다 더 풍만하고 아름다워진 모습이었다.사실 예전에 뼈만 남은 듯 마른 몸일 때도 육경한은 그녀에게 흥미를 잃지 않았었다.소원은 말라 있어도, 지금처럼 풍만해도 치명적으로 매혹적이었다.마치 육경한을 파멸시키기 위해 내려온 여우 요괴처럼 말이다.육경한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물었다. 고운 백조 같은 목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는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들었다.소원은 고통에 찡그리며 약한 떨림을 보였고 육경한은 그녀의 몸에 빠져들듯 계속해서 탐닉했다.그
육경한 같은 사람은 유진이를 진심으로 좋아할 리 없었다.정말로 아이가 필요했다면 그에게 아이를 낳아줄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다.그가 유진이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단지 소원을 협박하기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소원은 유진이가 이 비참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육경한을 증오했고 그가 사라지길 바랐지만 아이는 무고했다.그동안 유진이가 아주머니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볼 때면, 소원은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쳤다.“아빠와 엄마는 같이 있지 않지만 아빠도 엄마도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소원은 유진이가 자신과 육경한처럼 증오 속에서 평생을 살길 바라지 않았다.또한 부모 간의 갈등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지거나 기이하고 자존감 낮은 아이로 자라길 원하지 않았다.그런 이유로 유진이는 별장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유진이는 아빠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언젠가 유진이가 자신이 단지 아빠가 엄마를 협박하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일 것이다.“육경한, 제발 유진이를 놓아줘.”소원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전까지 몸부림치며 모든 기운이 사라졌으니 말이다.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았다.창백하고 연약해 보이는 그녀는 곧 부서질 듯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곧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선택해.”그리고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갔다.“유진이에게 부모가 함께 있는 삶을 줄지 말지, 선택은 네게 달렸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그는 과거를 불문에 부치고 그녀가 서현재와 함께 지냈던 것도 따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심지어 소원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서현재를 용서할 수도 있었다.비록 유진이에게 큰 감정은 없었지만 육경한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냉혹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지만 연기하는 법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그러니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은 배우면 그만이라 생각했다.하지
소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어찌 됐든 아직 믿을만한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모든 서러움과 울분을 왈칵 쏟아냈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말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웅아... 웅아...”윤혜인이 부드럽게 말했다.“아이고, 내 새끼, 일단 아줌마랑 나가서 놀아. 엄마는 친구랑 통화 중이니까 이따 놀아줄게.”“네...”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말할 줄은 몰라 그저 엄마라는 발음을 얼추 따라 하며 웅얼대는 목소리가 참으로 귀여웠다.소원은 윤혜인에게 아직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아마도 쌍둥이 중 더 어린애 같았다. 친구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 소원도 너무 기뻐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윤혜인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육경한은 수단이 셀뿐더러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육경한은 이준혁과 친구였기에 소원은 윤혜인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게 싫어 말을 짧게 끝냈다.“혜인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이따 다시 얘기하자. 일단 하나만 부탁할게.”윤혜인은 약간 서운했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는 말했다.“무슨 일인데?”“성분 감정할 수 있는 기관이 있을까? 약물 성분 검사하고 싶은데.”“그래, 일단 준혁 씨한테 연락해 보라고 할게. 이 부분은 준혁 씨가 잘 알아서.”윤혜인은 소원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친구 간의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에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준혁 씨한테 비밀로 하라고 할게.”윤혜인이 한마디 덧붙였다. 소원과 육경한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고 이준혁은 육경한과 이준혁이 친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소원이 부탁하는 일은 육경한을 피해야 했다.결혼한 후로 이준혁은 회식 자리가 줄었고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회식에 나가지 않았다. 매일 퇴근하면 끝내지 못한 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고 먼저 두 아이를 달래서 재운 후 곽아름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이 다 잠에 들고
이준혁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관찰했다. 잘 묶었던 샤워 타올이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흐트러진 상태였다.출장을 다니기도 했고 아이도 생겼던지라 보름 남짓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이렇게 말했다.“그... 아기들 잠들었는지 한 번만 확인해 볼게요...”몸을 돌리려는데 이준혁이 윤혜인의 허리를 꼭 끌어안더니 자기 다리에 앉히고는 오후의 커피숍에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처럼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매혹적이게 말했다.“엄마가 아기들 데리고 옆집으로 갔어. 아름이도 따라가서 오늘 여기 아무도 없어...”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며 한 손을 윤혜인의 허리에 갖다 대고 다른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윤혜인은 그대로 테이블에 눕고 말았다.윤혜인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지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여기는 서재잖아요. 도우미들이 보면 어떡해요...”“다 휴가 갔어.”이준혁이 윤혜인의 샤워 가운을 풀어 헤치자 샤워 가운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길고 부드러운 윤혜인의 머리가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촥 펼쳐져 유난히 매혹적이었다.“휴가...”윤혜인의 얼굴이 이 자세로 인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미칠 듯이 벌렁거렸다.“내가 휴가 보냈어.”이준혁이 고개를 숙여 윤혜인의 목과 쇄골에 뽀뽀하며 흔적을 남겼다. 뜨거운 숨결이 살갗에 닿자 간지러우면서도 전율이 흘렀다.“읍... 여보...”윤혜인이 교태를 부렸다.“오늘은 마음껏 즐겨도 돼.”이준혁이 갈라질 대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없으니까.”이준혁은 오늘 밤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휴가를 줬고 퇴근하기 전 문현미에게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했다. 문현미는 이준혁의 뜻을 바로 눈치챘고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기뻐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옆집으로 향했다.“방으로 돌아가요... 여보...”윤혜인은 너무 부끄러워 얼른 손을 들고 얼굴을 가렸지만 이준혁은 기회
이렇게 차분한 성격의 부모님이 있으니 교육한 아이들도 매우 뛰어날 테지만 육경한은 달랐다. 자기 자신도 컨트롤이 잘 안되는데 아이를 잘 교육할 리가 없었다.실수로 유진이 육경한의 그런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어떤 후과가 있을지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웠다. 한번 각인된 기억은 그림자처럼 영원히 평생 따라다니게 된다.소원은 약을 윤혜인이 알려준 기구에 맡기며 어떻게든 아이를 그 처지까지 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돌아가는 길에 소원은 서현재가 보내온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나 외국 나가서 치료받으니까, 걱정하지 마요.]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소원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두 사람은 전에 서로만 아는 암호로 문자를 보낼 때 점을 찍지 않기로 했는데 마지막에 점이 붙었다는 건 서현재가 보낸 문자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게다가 외국으로 나가 치료받을 생각이라면 전화로 말하거나 만나서 말하지 이렇게 문자만 딸랑 보낼 리가 없었다.소원은 마음이 불안해져 미간을 찌푸리고는 얼른 택시를 불러 서현재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서현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로 나왔다. 유일한 연락처마저 없어졌다는 생각에 소원의 마음이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병원에 도착한 소원은 바로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젖히며 이렇게 물었다.“현재야?”침대에 누워있던 남자가 몸을 돌렸지만 서현재가 아니었다.“누구세요?”상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소원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소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밖으로 나가려다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죄송해요. 혹시 전에 있던 환자는 언제 나갔는지 알아요?”남자가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오늘 아침에 들어왔거든요.”“아, 그러시구나. 죄송해요. 쉬세요.”소원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몸을 돌렸다. 아마도 서현재네 가족이 서현재를 빼돌린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것저것 알아보니 확실히 육경한이 말한 것처럼 서씨 가문에는 대를 이을 사람이
비록 걱정되긴 했지만 아줌마가 있으니 그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신경전을 펼치며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고 소원이 원하는 건 양육권이었기에 절대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이제 한주라는 시간이 흐르면 육경한도 통지를 받을 거라고 생가했는데 소원이 연락했던 변호사가 갑자기 선임 비용을 돌려주며 사건을 수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에서 양육권 다툼에는 제일 좋은 변호사라 선임료가 비쌌지만 소원은 변호사의 능력을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유명한 변호사가 선임했던 사건을 못 하겠다고 다시 내려놓을 줄은 몰랐다.소원이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변호사는 만나주지 않았다. 너무 억울했지만 변호사가 협박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로펌을 찾아가도 사전에 누가 언질이라도 한 것처럼 사건을 수임하는 사람이 없었고 상대가 육경한이라는 말만 들으면 모두 절레절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소원은 윤혜인을 불러냈다. 카페에서 윤혜인이 소원의 손을 덥석 잡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소원아, 너 말랐어.”소원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예전보다 찐 거야.”서현재와 같이 있으면서 쪘던 살이 아이를 만날 수 없게 되면서 생긴 골치 아픈 일로 다 빠지고 말았다.윤혜인이 고개를 저었다.“나도 다 보여. 그러니까 무슨 일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해.”육경한이 아이를 뺏어갔다는 사실을 듣고 윤혜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네.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아이를 뺏어가서는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소원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육경한의 손에는 유전자 감식 결과가 있는 데다 소원의 병원 이력, 소원의 아버지가 연루된 금융 문제, 그리고 소원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던 자료가 있었다. 여기서 하나만 공개되어도 생모인 소원은 양육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바로 육경한의 정신질환이었다. 육경한을 법정에 세울 수만 있다면 법원은 정신질환이 있는 육경환이 아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