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449화

작가: 이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17 19:00:00
소원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이 남자와는 단 1초도, 조금의 신체 접촉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는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꺼져! 너 같은 짐승은 인간 취급도 못 받으니까!”

그러나 육경한은 뜻밖에도 웃음을 터뜨리며 낮고 욕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약으로 억누르지 않았다면 지금 너랑 하기 전에 먼저 목 졸라 죽이고 나서 했을 거야.”

시체와 그런 일을 하겠다는 이 미친 발언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아니고서야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런 사람이 아빠라면 유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지만 소원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 그럼 날 죽여 봐.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기어가서라도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네가 날 강제로 덮쳤다고.”

그러자 관자놀이에 있던 힘줄이 붉어지며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분노가 이미 극에 달한 듯했다.

소원은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며 비웃었다.

“육경한, 너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왜? 서울 여자들은 네 입맛에 안 맞아? 안타깝지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갑게 덧붙였다.

“안타깝지만 난 너 같은 놈은 너무 혐오스러워서.”

순간, 육경한의 얼굴은 광기를 띤 짐승처럼 일그러졌다.

쫘악!

소원의 옷이 반쯤 찢겨 나가며 매끈한 쇄골과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드러났다.

가늘고 잘록한 허리는 여전히 감싸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았고 지금의 그녀는 이전보다 더 풍만하고 아름다워진 모습이었다.

사실 예전에 뼈만 남은 듯 마른 몸일 때도 육경한은 그녀에게 흥미를 잃지 않았었다.

소원은 말라 있어도, 지금처럼 풍만해도 치명적으로 매혹적이었다.

마치 육경한을 파멸시키기 위해 내려온 여우 요괴처럼 말이다.

육경한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물었다. 고운 백조 같은 목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는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들었다.

소원은 고통에 찡그리며 약한 떨림을 보였고 육경한은 그녀의 몸에 빠져들듯 계속해서 탐닉했다.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50화

    육경한 같은 사람은 유진이를 진심으로 좋아할 리 없었다.정말로 아이가 필요했다면 그에게 아이를 낳아줄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다.그가 유진이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단지 소원을 협박하기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소원은 유진이가 이 비참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육경한을 증오했고 그가 사라지길 바랐지만 아이는 무고했다.그동안 유진이가 아주머니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볼 때면, 소원은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쳤다.“아빠와 엄마는 같이 있지 않지만 아빠도 엄마도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소원은 유진이가 자신과 육경한처럼 증오 속에서 평생을 살길 바라지 않았다.또한 부모 간의 갈등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지거나 기이하고 자존감 낮은 아이로 자라길 원하지 않았다.그런 이유로 유진이는 별장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유진이는 아빠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언젠가 유진이가 자신이 단지 아빠가 엄마를 협박하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일 것이다.“육경한, 제발 유진이를 놓아줘.”소원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전까지 몸부림치며 모든 기운이 사라졌으니 말이다.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았다.창백하고 연약해 보이는 그녀는 곧 부서질 듯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곧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선택해.”그리고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갔다.“유진이에게 부모가 함께 있는 삶을 줄지 말지, 선택은 네게 달렸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그는 과거를 불문에 부치고 그녀가 서현재와 함께 지냈던 것도 따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심지어 소원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서현재를 용서할 수도 있었다.비록 유진이에게 큰 감정은 없었지만 육경한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냉혹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지만 연기하는 법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그러니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은 배우면 그만이라 생각했다.하지

    최신 업데이트 : 2024-12-17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51화

    소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어찌 됐든 아직 믿을만한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모든 서러움과 울분을 왈칵 쏟아냈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말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웅아... 웅아...”윤혜인이 부드럽게 말했다.“아이고, 내 새끼, 일단 아줌마랑 나가서 놀아. 엄마는 친구랑 통화 중이니까 이따 놀아줄게.”“네...”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말할 줄은 몰라 그저 엄마라는 발음을 얼추 따라 하며 웅얼대는 목소리가 참으로 귀여웠다.소원은 윤혜인에게 아직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아마도 쌍둥이 중 더 어린애 같았다. 친구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 소원도 너무 기뻐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윤혜인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육경한은 수단이 셀뿐더러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육경한은 이준혁과 친구였기에 소원은 윤혜인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게 싫어 말을 짧게 끝냈다.“혜인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이따 다시 얘기하자. 일단 하나만 부탁할게.”윤혜인은 약간 서운했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는 말했다.“무슨 일인데?”“성분 감정할 수 있는 기관이 있을까? 약물 성분 검사하고 싶은데.”“그래, 일단 준혁 씨한테 연락해 보라고 할게. 이 부분은 준혁 씨가 잘 알아서.”윤혜인은 소원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친구 간의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에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준혁 씨한테 비밀로 하라고 할게.”윤혜인이 한마디 덧붙였다. 소원과 육경한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고 이준혁은 육경한과 이준혁이 친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소원이 부탁하는 일은 육경한을 피해야 했다.결혼한 후로 이준혁은 회식 자리가 줄었고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회식에 나가지 않았다. 매일 퇴근하면 끝내지 못한 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고 먼저 두 아이를 달래서 재운 후 곽아름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이 다 잠에 들고

    최신 업데이트 : 2024-12-17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52화

    이준혁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관찰했다. 잘 묶었던 샤워 타올이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흐트러진 상태였다.출장을 다니기도 했고 아이도 생겼던지라 보름 남짓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이렇게 말했다.“그... 아기들 잠들었는지 한 번만 확인해 볼게요...”몸을 돌리려는데 이준혁이 윤혜인의 허리를 꼭 끌어안더니 자기 다리에 앉히고는 오후의 커피숍에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처럼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매혹적이게 말했다.“엄마가 아기들 데리고 옆집으로 갔어. 아름이도 따라가서 오늘 여기 아무도 없어...”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며 한 손을 윤혜인의 허리에 갖다 대고 다른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윤혜인은 그대로 테이블에 눕고 말았다.윤혜인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지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여기는 서재잖아요. 도우미들이 보면 어떡해요...”“다 휴가 갔어.”이준혁이 윤혜인의 샤워 가운을 풀어 헤치자 샤워 가운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길고 부드러운 윤혜인의 머리가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촥 펼쳐져 유난히 매혹적이었다.“휴가...”윤혜인의 얼굴이 이 자세로 인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미칠 듯이 벌렁거렸다.“내가 휴가 보냈어.”이준혁이 고개를 숙여 윤혜인의 목과 쇄골에 뽀뽀하며 흔적을 남겼다. 뜨거운 숨결이 살갗에 닿자 간지러우면서도 전율이 흘렀다.“읍... 여보...”윤혜인이 교태를 부렸다.“오늘은 마음껏 즐겨도 돼.”이준혁이 갈라질 대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없으니까.”이준혁은 오늘 밤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휴가를 줬고 퇴근하기 전 문현미에게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했다. 문현미는 이준혁의 뜻을 바로 눈치챘고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기뻐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옆집으로 향했다.“방으로 돌아가요... 여보...”윤혜인은 너무 부끄러워 얼른 손을 들고 얼굴을 가렸지만 이준혁은 기회

    최신 업데이트 : 2024-12-17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화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최신 업데이트 : 2023-12-28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2화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최신 업데이트 : 2023-12-28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화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최신 업데이트 : 2023-12-28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4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최신 업데이트 : 2023-12-28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5화

    송소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준혁 오빠, 저 나쁜 계집애가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계속 건방을 떨다니. 준혁 오빠, 저 여자 다시 불러와요! 난 오늘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여자를 때려야겠어요!”이준혁은 가녀린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적당히 해.”이준혁이 차갑게 대꾸했다.평소에도 독하기로 소문난 송소미는 이준혁이 조금 전에도 윤혜인의 편을 들지 않았기에 이준혁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윤혜인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다음에는 사람 불러서 저 여자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송소미!”이준혁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송소미를 쳐다보았고 송소미는 그 눈빛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네 머릿속에 있는 꿍꿍이를 접어. 저 여자 건드리지 마.”송소미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에서 들끓던 복수심을 도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요…”이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송소미를 힐끗 쳐다보다가 탕비실을 떠나면서 곁에 있던 주훈에게 명령을 내렸다.“앞으로 연관 없는 외부인은 회사에 들이지 못하게 해.”이준혁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송소미는 그의 뒤에서 계속 아부를 떨었다.“준혁 오빠 이렇게 큰 회사에 그런 명확한 규칙은 있어야 돼요.” 하지만 잠시뒤, 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송소미 씨, 이만 나가주세요.”송소미는 그제야 그녀가 바로 그 연관 없는 외부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단호하게 떠나는 이준혁을 쫓아가고 싶었지만 주훈이 부른 경호원에게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송소미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경호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자리로 돌아온 윤혜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고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이 생각나자 마음이 아팠다.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회사를 나서려던 윤혜인 앞에

    최신 업데이트 : 2023-12-28

최신 챕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52화

    이준혁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관찰했다. 잘 묶었던 샤워 타올이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흐트러진 상태였다.출장을 다니기도 했고 아이도 생겼던지라 보름 남짓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이렇게 말했다.“그... 아기들 잠들었는지 한 번만 확인해 볼게요...”몸을 돌리려는데 이준혁이 윤혜인의 허리를 꼭 끌어안더니 자기 다리에 앉히고는 오후의 커피숍에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처럼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매혹적이게 말했다.“엄마가 아기들 데리고 옆집으로 갔어. 아름이도 따라가서 오늘 여기 아무도 없어...”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며 한 손을 윤혜인의 허리에 갖다 대고 다른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윤혜인은 그대로 테이블에 눕고 말았다.윤혜인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지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여기는 서재잖아요. 도우미들이 보면 어떡해요...”“다 휴가 갔어.”이준혁이 윤혜인의 샤워 가운을 풀어 헤치자 샤워 가운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길고 부드러운 윤혜인의 머리가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촥 펼쳐져 유난히 매혹적이었다.“휴가...”윤혜인의 얼굴이 이 자세로 인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미칠 듯이 벌렁거렸다.“내가 휴가 보냈어.”이준혁이 고개를 숙여 윤혜인의 목과 쇄골에 뽀뽀하며 흔적을 남겼다. 뜨거운 숨결이 살갗에 닿자 간지러우면서도 전율이 흘렀다.“읍... 여보...”윤혜인이 교태를 부렸다.“오늘은 마음껏 즐겨도 돼.”이준혁이 갈라질 대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없으니까.”이준혁은 오늘 밤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휴가를 줬고 퇴근하기 전 문현미에게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했다. 문현미는 이준혁의 뜻을 바로 눈치챘고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기뻐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옆집으로 향했다.“방으로 돌아가요... 여보...”윤혜인은 너무 부끄러워 얼른 손을 들고 얼굴을 가렸지만 이준혁은 기회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51화

    소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어찌 됐든 아직 믿을만한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모든 서러움과 울분을 왈칵 쏟아냈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말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웅아... 웅아...”윤혜인이 부드럽게 말했다.“아이고, 내 새끼, 일단 아줌마랑 나가서 놀아. 엄마는 친구랑 통화 중이니까 이따 놀아줄게.”“네...”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말할 줄은 몰라 그저 엄마라는 발음을 얼추 따라 하며 웅얼대는 목소리가 참으로 귀여웠다.소원은 윤혜인에게 아직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아마도 쌍둥이 중 더 어린애 같았다. 친구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 소원도 너무 기뻐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은 편해질지 모르지만 윤혜인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육경한은 수단이 셀뿐더러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육경한은 이준혁과 친구였기에 소원은 윤혜인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게 싫어 말을 짧게 끝냈다.“혜인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이따 다시 얘기하자. 일단 하나만 부탁할게.”윤혜인은 약간 서운했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는 말했다.“무슨 일인데?”“성분 감정할 수 있는 기관이 있을까? 약물 성분 검사하고 싶은데.”“그래, 일단 준혁 씨한테 연락해 보라고 할게. 이 부분은 준혁 씨가 잘 알아서.”윤혜인은 소원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친구 간의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에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준혁 씨한테 비밀로 하라고 할게.”윤혜인이 한마디 덧붙였다. 소원과 육경한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고 이준혁은 육경한과 이준혁이 친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소원이 부탁하는 일은 육경한을 피해야 했다.결혼한 후로 이준혁은 회식 자리가 줄었고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회식에 나가지 않았다. 매일 퇴근하면 끝내지 못한 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고 먼저 두 아이를 달래서 재운 후 곽아름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이 다 잠에 들고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50화

    육경한 같은 사람은 유진이를 진심으로 좋아할 리 없었다.정말로 아이가 필요했다면 그에게 아이를 낳아줄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다.그가 유진이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단지 소원을 협박하기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소원은 유진이가 이 비참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육경한을 증오했고 그가 사라지길 바랐지만 아이는 무고했다.그동안 유진이가 아주머니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볼 때면, 소원은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쳤다.“아빠와 엄마는 같이 있지 않지만 아빠도 엄마도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소원은 유진이가 자신과 육경한처럼 증오 속에서 평생을 살길 바라지 않았다.또한 부모 간의 갈등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지거나 기이하고 자존감 낮은 아이로 자라길 원하지 않았다.그런 이유로 유진이는 별장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유진이는 아빠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언젠가 유진이가 자신이 단지 아빠가 엄마를 협박하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일 것이다.“육경한, 제발 유진이를 놓아줘.”소원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전까지 몸부림치며 모든 기운이 사라졌으니 말이다.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았다.창백하고 연약해 보이는 그녀는 곧 부서질 듯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곧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선택해.”그리고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갔다.“유진이에게 부모가 함께 있는 삶을 줄지 말지, 선택은 네게 달렸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그는 과거를 불문에 부치고 그녀가 서현재와 함께 지냈던 것도 따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심지어 소원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서현재를 용서할 수도 있었다.비록 유진이에게 큰 감정은 없었지만 육경한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냉혹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지만 연기하는 법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그러니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은 배우면 그만이라 생각했다.하지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49화

    소원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이 남자와는 단 1초도, 조금의 신체 접촉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는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꺼져! 너 같은 짐승은 인간 취급도 못 받으니까!”그러나 육경한은 뜻밖에도 웃음을 터뜨리며 낮고 욕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약으로 억누르지 않았다면 지금 너랑 하기 전에 먼저 목 졸라 죽이고 나서 했을 거야.”시체와 그런 일을 하겠다는 이 미친 발언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아니고서야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이런 사람이 아빠라면 유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지만 소원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그럼 날 죽여 봐.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기어가서라도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네가 날 강제로 덮쳤다고.”그러자 관자놀이에 있던 힘줄이 붉어지며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분노가 이미 극에 달한 듯했다.소원은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며 비웃었다.“육경한, 너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왜? 서울 여자들은 네 입맛에 안 맞아? 안타깝지만...”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갑게 덧붙였다.“안타깝지만 난 너 같은 놈은 너무 혐오스러워서.”순간, 육경한의 얼굴은 광기를 띤 짐승처럼 일그러졌다.쫘악!소원의 옷이 반쯤 찢겨 나가며 매끈한 쇄골과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드러났다.가늘고 잘록한 허리는 여전히 감싸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았고 지금의 그녀는 이전보다 더 풍만하고 아름다워진 모습이었다.사실 예전에 뼈만 남은 듯 마른 몸일 때도 육경한은 그녀에게 흥미를 잃지 않았었다.소원은 말라 있어도, 지금처럼 풍만해도 치명적으로 매혹적이었다.마치 육경한을 파멸시키기 위해 내려온 여우 요괴처럼 말이다.육경한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물었다. 고운 백조 같은 목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는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들었다.소원은 고통에 찡그리며 약한 떨림을 보였고 육경한은 그녀의 몸에 빠져들듯 계속해서 탐닉했다.그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48화

    다음 순간, 소원은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곧장 육경한의 침실에 있는 약장을 향했다.유진이의 양육권을 되찾으려면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육경한이 계속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약들은 모두 개인 주치의가 처방한 것으로 병원에서는 처방받은 적이 없었다.‘만약 육경한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유진이를 양육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거야.’언제든지 무너질 위험이 있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키우기에 지나치게 위험하니 말이다.약장에서 약을 찾아보았지만 어쩐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소원은 약장의 맨 위 칸에 있는 약상자를 꺼내려 발끝을 세우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너무 높아 그곳까지는 닿지 않았다.방법이 없었던 그녀는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올라섰고 간신히 약상자를 손에 넣었다.그러나 소원은 자신이 아직 의자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곧 몸이 휘청거리며 그녀는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순간,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막으며 비명을 삼켰다. 누군가 들을까 두려워서 말이다.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한 단단한 가슴에 안기는 느낌과 함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가 들고 있던 약상자는 땅에 떨어져 안에 든 약들이 와르르 쏟아졌다.뒤이어 머리 위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찾고 있는 건데?”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은 냉혹한 비웃음으로 가득했다.표정이 굳어졌지만 소원은 금세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몸이 좀 안 좋아서 약 좀 찾으려고.”“어디가 안 좋은데?”육경한은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머리가... 머리가 아파.”소원은 대충 둘러댔다.그러자 육경한은 바닥에 흩어진 약들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먹어. 두통에 좋은 약이야.”하지만 소원은 그 약을 감히 먹을 수 없었다.그가 무슨 약을 건넨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방금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약을 고른 걸 봤으니 말이다.하여 소원은 고개를 저었다.“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47화

    밤새 그렇게 고생한 끝에 날이 밝아올 무렵, 유진이의 열이 드디어 내렸다.소원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 잠시 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교대하러 온 아주머니는 의자에서 자는 소원이의 모습이 불편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그래서 침대에서 쉬게 하려고 깨우려 했다.“소원 씨.”아주머니가 불렀지만 소원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원래 몸이 약한 데다 밤새 지친 탓에 깊이 잠든 것이다.아주머니가 손을 뻗어 소원을 살짝 흔들려는 순간, 단단하고 길쭉한 한 손이 그녀보다 먼저 움직였다.육경한이 아주머니를 지나 소원을 가볍게 안아 올렸다.그러자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육 대표님...”하지만 그녀의 말을 육경한의 날카로운 시선이 단번에 막아버렸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유진이를 잘 돌보는 거야말로 아주머니의 책임입니다.”유진이가 밤마다 이유 없이 울지 않았다면 육경한은 아주머니를 이곳에 남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아주머니도 함께 따라왔는데 육경한이 나타나는 순간 그녀는 이 남자가 유진이의 생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판박이였다.심지어 말투와 행동조차 닮아 있었다.유진이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이 적은 아이였는데 그것도 분명히 육경한에게서 물려받은 성격일 것이다.아주머니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전에 유진이의 생부가 뛰어난 수단을 많이 쓰고 통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소원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소원은 아주머니에게 만약 그와 마주치게 된다면 절대 정면으로 대립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그가 유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그냥 데려가게 두라는 것이었다.유진이는 해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해를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다행히 그때 아주머니는 재치 있게 약 한 보따리를 꺼내며 유진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이 약을 먹이는 법은 자신만이 안다고 말했다.그래서 육경한은 그녀를 데리고 왔다.지금 이 별장에서, 아주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46화

    비록 유진이와 함께한 시간이 부족하고 마음의 벽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두려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소원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유진이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유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충분히 지켜볼 시간이 없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육 대표님이 데려온 의사 선생님 덕분이에요.”장씨 아주머니가 말했다.아주머니도 처음에는 육경한이 치료를 막을 줄 알았지만, 소원과 통화한 후 그는 의사를 불러 유진이의 열을 내리게 했다.유진이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아주머니는 그 의사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의사는 몇 번만 진찰하고 유진이의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냈다. 이어서 해열 주사를 놓고 해열 패치도 주었다.의사가 방을 나가 육경한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다시 들어왔을 때는 얼굴이 굳어 있었다.그는 유진이를 한 번 바라보고는 또다시 방을 나갔다.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소원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유진이의 병을 이용해 날 돌아오게 한 거였어. 이 비열한 자식!’역시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육경한은 자신의 친자식마저 협상의 도구로 삼았다.그래서 소원이 그동안 유진이를 숨기며 아이가 육경한의 협박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게 했던 것이다.엄청난 분노가 느껴졌지만 소원은 유진이의 곁을 지키며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저녁 무렵, 유진이는 잠시 깨어났다.아이는 소원을 보더니 갑자기 작은 손을 뻗으며 약간 서러운 얼굴로 말했다.“엄마, 안아줘요...”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유진이는 서현재에게는 종종 애교를 부리고 떼를 쓰곤 했지만 소원에게는 이런 모습을 거의 보인 적이 없었다.항상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유진이였기에 그녀는 아이가 병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고 생각했다.그럼에도 소원은 몸을 기울여 유진을 안아주었다.작고 부드러운 유진이의 몸이 자신의 품에 완전히 기대 안겨 있자 소원의 마음은 한없이 따뜻해졌다.자신에게 의지하는 이런 유진이의 모습과 모자간의 친근함이 소원으로 하여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45화

    “이건 대표님의 지시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전화하실 건가요?”도우미가 물었다.“네... 해야죠.”아주머니는 이를 악물고 핸드폰을 건네받았다.그녀는 육경한이 일부러 소원에게 전화를 걸게 하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시실 그녀는 늘 유진이에게 이곳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엄마인 소원이 걱정하지 않게 착하게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유진이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불편한 몸 상태를 참다가 고열로 결국 쓰러진 것이다.너무 놀란 나머지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따질 겨를이 없었다.‘일단 먼저 소원 씨한테 전화해야 해.”.전화는 금세 연결되었다.소원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주머니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소원 씨, 유진이가...”소원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유진이가 왜요?”“유진이가 고열이 나서 의식을 잃었어요... 육 대표님도 병원에 데려가 주질 않네요...”작게 울먹이며 아주머니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이 말을 듣자 소원의 가슴은 단단히 조여드는 것 같았다.전화를 끊고 난 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본 서현재가 물었다.“유진이한테 무슨 일 있어요?”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진이가 열이 나서 쓰러졌대...”그러자 서현재는 바로 주삿바늘을 뽑으려고 하며 말했다.“내가 같이 가줄게요.”“안 돼!”하지만 소원이 그를 막았다.“움직이지 마. 여기서 잘 치료받고 있어. 내가 가면 되니까.”그녀는 서현재가 가면 육경한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또 혹시라도 괜히 육경한을 자극해 유진이의 치료에 방해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었다.여러 가지 걱정이 소원의 머릿속을 채웠다.“걱정 마. 이제 난 육경한이 두렵지 않거든. 끝까지 맞서 싸울 거야.”그러고는 서현재를 안심시키며 덧붙였다.“너한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회복을 잘해야 한다는 거야. 잘 회복해야 우리 둘이 변호사를 찾아서 유진이를 되찾을 수 있지.”소원의 다급한 표정을 본 서현재는 자신이 가면 상황이 악화될 것을 알고는 말했다.“그럼 얼른 가서 유진이 먼저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444화

    그는 서진태와 계속 두서없는 논쟁을 이어갈 마음이 없었다.두 사람의 생각은 애초에 맞닿아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서씨 가문을 건드릴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할 가치는 없었다.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낭비되기 때문이었다.“어르신 아직 모르시죠? 어르신 아드님이 사랑하는 여자는 한때 심각한 병을 앓았어요. 그 사람 몸은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말입니다.”처음 듣는 말에 서진태는 크게 당황했다.비록 서현재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서진태는 소원이 외모도 괜찮고 아이만 낳을 수 있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소원이 외견상으로는 전혀 불임일 것 같지 않았다.그러나 육경한의 한마디에 그 생각은 곧바로 사라졌다.육경한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 아드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정말 사랑에 빠진 거면 다른 여자를 택해 아이를 낳는 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자기 사랑을 배신하는 일일 테니까.”서현재가 황소처럼 고집이 센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서진태는 말문이 막혔다.그렇지 않았다면 조금 전 육씨 가문과의 정면충돌을 피하지 않고 나섰을 리가 없었다.아무리 해도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소원이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라면 이제는 대책을 다시 세워야 했다.그리고 서진태의 머릿속에 곧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그 방법뿐이야.’세월의 흔적을 담은 그의 눈빛이 매서운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빛났다.“대표님, 저 혼자만으로는 힘들겠네요. 소원 씨를 다시 돌려보내는 데에는 대표님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어떠신가요?”서진태가 결심을 굳히자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좋아요. 우리가 굳이 적대적인 위치에 서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협력하면 더 나아질 겁니다.”“물론입니다. 물론이죠.”서진태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비굴한 자세로 돌아갔다.하지만 육경한은 이미 속으로 서씨 가문을 협력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