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대표님 전처예요.”지휘관은 물었다.“건물 안에 있던 상관이 없는 사람들은 이미 대피했는데 어떻게 안에 있었나요?”“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모님과 연락해야 알 수 있어요. 사모님과 연락이 닿은 후에도 지휘관님과 어떻게 계속 계획을 세워야 할지 협의가 필요하므로 제가 무례하게 찾아왔네요.”지휘관이 위성 정보를 확인한 후 주훈이 말한 사람은 실제로 건물 안에 나타났다.두 시간 전 그들은 악랄하고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뱀파이어같은 에단 찰스가 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현장에서 그들은 호텔센터의 인파에 관심을 가졌고 다행히 모두 안전하게 철수했다.원래는 제보자도 함께 철수하라는 취지였다.하지만 제보자는 에단 찰스의 목표가 자신이며 이미 늦었다고 알려왔다.그는 안에서 그들의 체포를 돕고 있었다.원래는 모든 것을 다 안배해 놓았는데 에단 찰스가 그들 눈앞에서 호텔센터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이제 제보자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사태가 긴박하여 한시도 늦출 수 없었다.그는 주훈에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그쪽이 연결해 주세요.”주훈은 그 위성 전화를 걸었다.윤혜인의 휴대전화는 특수 제작된 것으로 특별한 경우 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방해받지 않고 위성 전화를 걸 수 있었다.전화의 단조로운 '뚜뚜' 소리가 한참 동안 울렸다.하지만 저쪽에서 받지 않았다.방 안에서 윤혜인은 귀를 막고 침대 모서리와 벽면의 삼각 지대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방금 그 폭발은 고막을 찢을 정도였다.다행히 그녀는 방금 자고 있었고 방음이 잘 된 방에서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충격으로 기절하여 생명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여파가 지나가자 공기 안은 온통 연기 냄새로 자욱했다.윤혜인은 순간 이것은 지진이 아닐 거로 생각했다.오후에 그녀는 방에서 티비를 보다가 한구운이 등장하자 갑자기 화면을 꺼버렸다.윤혜인은 결혼식이 호텔에서
순간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알고 보니 그녀는 이전에 이 남자가 허리를 구부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착각한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그가 정말 아파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주 비서님, 준혁 씨가 원지민 씨와 결혼한 것은 에단 찰스 쪽 사람들을 유인해 저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인가요?”“제 추측일 뿐이에요.”주훈은 바른대로 말했다.어쨌든 이준혁은 그의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주훈도 모를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이미 매우 명확해졌다. 오늘 대표님의 행동과 이후 손님들의 철수 계획을 보면 알 수 있었다.대표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결혼식을 올린 게 아니라 미끼만 던졌을 뿐이었다.“혜인 씨는 모르시겠지만 혜인 씨도 지금 에단의 사냥 명단에 있어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는 모두 혜인 씨를 위해서일 거예요.”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순간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전에 그녀는 이준혁의 의도를 의심한 적 있었다.가장 원하지 않던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지만 결국 피해갈 수 없었다.주훈은 말했다.“뒷걱정을 없애 드리기 위해서였어요. 대표님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은 대표님이 없으면 혜인 씨가 업신여김을 받을지 두려워서였을 거예요.”주훈은 이준혁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니 당연히 공감할 것이다.대표님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윤혜인한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니 그는 얼마나 억울했을가.그가 대신 억울해할 정도였다.지금 이 순간에 주훈은 이 남자에게 어떤 벌을 받을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만약 그가 돌아올 수 있다면 어떤 벌이든, 설령 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눈이 멀게 해도 전부 달갑게 받을 것이다.대표님처럼 좋은 사람이라면 차마 그도 같이 목숨을 던지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대표님은 좋은 결과를 얻으셔야 한다.윤혜인의 핸드폰을 든 손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어떻게...어떻게 이럴 수가!그녀는 분명히 믿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준혁이라고 외쳤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아직 그녀와 연락할 수 없었다.이준혁의 휴대전화에도 위성 전화가 있었지만 에단 찰스 쪽의 교란기는 매우 선진적이어서 위성 전화마저 차단했다.다행히 이 교란기는 거리 제한이 있어 윤혜인과 연결됐다.윤혜인은 도지훈이 이미 밖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이때 휴대전화는 이미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상대방은 자신을 소개했다.“윤혜인 씨, 안녕하세요. 일을 맡게 된 담당자예요. 저를 지휘관이라고 부르면 돼요.”“지휘관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지휘관은 윤혜인의 총명함을 높이 평가하기에 말을 꺼냈다.“지금 안에 몇 명이 있는지, 다이너마이트 모델이 어떤 건지 알아야 해요. 이 임무는 매우 어렵지만 이곳은 글로벌 항구로 주변 주민과 직원이 너무 많아 당분간 대피할 수 없을 것이에요. 따라서 외부인이 사용한 다이너마이트가 어떤 모델로 제작됐는지 알아야 해요.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추산할 수 있어야 더욱 효과적인 대피 작전을 할 수 있어요.”휴대전화에서 다시 소리가 끊기는 것을 보고 지휘관도 이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았다.만약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다이너마이트가 미리 폭파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녀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그래도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했다.지휘관은 말했다.“싫으면 거절하셔도 돼요. 저희가 알려준 장소로 가시면 저희 쪽에서 반드시 구출해 드릴게요...”지휘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은 의연하게 대답했다.“받아들일게요.”그녀는 이 글로벌 항구가 금융 항구이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대피가 확실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이너마이트의 수량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무고한 민간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반드시 임무를 완수할게요.”“고마워요. 에단 찰스는 수년간 여러 일을 저지른 국제 범죄자예요. 이번에는 우리가 반드시 막고 체포할 거예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한국의 첩보원들을 믿어요.”“지금 CCTV를 보
그 당부를 들은 윤혜인 눈시울이 붉어지며 다시 촉촉해졌다.그녀는 분명히 그 당시 진실을 더욱 파헤칠 수 있었는데 물러서려고 했던 자신을 원망했다.왜 조금만 더 버틸 수 없었는지.만약 그녀가 한 발짝만 더 버텼다면 이 남자가 겪는 고충을 알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렇게 많은 '만약'은 없었다.윤혜인은 눈물을 닦고 답장을 쓰려는데 문득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그녀는 즉시 경계하기 시작했다. 임신 후부터 그녀의 청각은 특히 예민해졌다.그녀는 주훈이 건물 안의 사람들이 모두 대피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했다.남은 건 그저 원지민과 이준혁, 그리고 에단 찰스의 사람들뿐이었다.이 발걸음은 마치 영국의 앵클부츠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그것은 에단 찰스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윤혜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베란다로 나오니 옆방 베란다의 창문이 닫혀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두 방 사이의 거리는 네다섯 뽐 정도로 어른이라면 누구나 기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한시도 늦출 수 없어 윤혜인은 기어올랐지만 자신의 짐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다시 뒤돌아 모든 것을 트렁크에 넣었다.그리고 무거운 캐리어를 베란다로 밀고 나가 반대편으로 던졌다.그녀는 물건이 많지 않아 순조롭게 던졌다.다행히 베란다에 담요가 깔려 있어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윤혜인이 맞은 켠 방으로 기어들어 오자 발소리가 벌써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었다.그리고 소리가 울렸다.우당탕.소리와 함께 그녀가 방금 있던 문이 누군가에 의해 걷어차여 열렸다.윤혜인은 살금살금 여행 가방을 감추고 다시 자기가 숨을 곳이 있는지 사방을 살폈다.하지만 호텔 방은 모두 개방형으로 꾸며져 있어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그때 옆방에 있던 에단 찰스가 방에 누가 있는지 찾고 있었다.그는 방금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원지민이 그를 속이는 줄 알았다.하지만 그는 바로 구겨진 침대 시트를 보고 눈치챘다. 이런 7성급 호텔의 방은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 침대 시트에 약간의 주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에단 찰스는 멈칫했다.옷장에 어디 사람이 있는가.가지런히 개어 놓은 이불과 베개 두 개뿐이었다.“shit!”에단 찰스가 욕을 해버렸다.그는 가지런한 이불을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려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내려놓고 짓밟았다.밟으면서 계속 욕했다.“shit! shit! shit!”한바탕의 분노가 폭발한 후에야 그는 무전기를 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거기 있는 여자를 잘 봐. 내가 돌아가서 입을 베어버리겠어.”이 말을 마친 남자는 다시 한번 옷장 문을 세게 내리쳤다.쾅 하고 문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아무도 없을 때 그의 어두운 면은 더 이상 억압되지 않았고 남들의 앞에서 보였던 모든 우아함도 뒷전으로 밀렸다.에단 찰스는 거의 도적 떼가 방안을 어지럽힌 것처럼 망친 뒤 거울 앞으로 다가가 옷과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그리고 거울을 보며 이를 드러내 그 만의 트레이드마크 미소를 짓고 나서야 비로소 기분 좋게 방을 나왔다.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윤혜인은 옷장을 뚫고 나왔다.옆 방 8020호가 아니라 원래 있던 8019호 옷장에서 나왔다.다행히 그녀는 에단 찰스가 거의 들어올 때 머리를 굴려 베란다 창문으로 다시 올라왔다.8019호까지 다시 온 뒤 베란다 창문을 옷걸이로 걸어 잠갔다.그래서 에단 찰스는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부서진 문과 고요한 복도를 바라보던 그녀는 주위가 텅 빈 탓에 이상한 공포감을 느꼈다.방금 그녀가 옷장에 숨어서 옆 방의 벽을 부수고 뚫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호텔 방이 아무리 방음이 잘 되어도 에단 찰스가 이렇게 집을 허물듯 부수는 소리는 들리기 마련이다.다행히 그는 8019호에 다시 와서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틀림없이 발견되었을 것이다.윤혜인은 숨을 고르고 기운을 북돋아 주고 밖으로 나갔다.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1초 망설였다.그리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파이프에 엎드려 짧게 두드렸다.맞은편에서 못 들었을까 봐 그녀는 재빠르게 세 번을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그들의 은신처를 하나하나 조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한 번에 공격하여 에단 찰스가 어디든 도망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윤혜인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층의 맨 끝으로 가기 위해 잠복하면서 달려갔다.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신발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양말만 신은 채 뛰었다.지도를 따라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윤혜인은 소화전 뒤편에서 작은 폭탄을 찾았다.윤혜인은 현실에서 실제 다이너마이트를 처음 보았다.생각보다 많이 달랐다.이 폭발 장치는 아주 초라하게 만들어져서 TV에서처럼 첨단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세 개의 다른 색상으로 만든 전기 알루미늄 와이어가 묶인 플라스틱 밀봉 상자의 형태였다.딱 봐도 후반에 더 작업하여 만든 것이었다.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총과 탄약에 대한 규제로는 에단 찰스가 다이너마이트를 직접 반입할 수 없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다이너마이트의 사진 디테일을 모두 찍어 보냈다.그리고 몇 명이 있는지도 다 알려줬다.뒤에 몇 군데도 윤혜인은 조심스럽게 잠복해서 다이너마이트를 하나씩 모두 찍었다.다행히 에단 찰스는 감시카메라가 첩보원에 의해 해킹당할까 봐 감시카메라를 모두 부쉈다. 덕분에 윤혜인은 들키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임무를 마친 후 윤혜인은 상대방의 회답을 기다렸다.곧바로 답장이 왔다.[B2F 주차장으로 가시면 돼요. 그곳에는 작은 문이 있어서 거기서 나올 수 있어요. 우리는 출구에서 혜인 씨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신중하고 조심해야 해요.]윤혜인은 머뭇거렸다.[그럼 이 다이너마이트들은 어떻게 처리해요?]에단 찰스가 지금 이렇게 날뛰는 이유는 다이너마이트 작동 버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이너마이트라는 위협을 제거하고 첩보원 중 엘리트들을 지하로 침투시키면 승산은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그건 혜인 씨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안전하게 나오시면 돼요.]윤혜인은 으스스한 빌딩을 둘러보더니 지휘관님의 말도 맞다고
이때 휴대전화의 위성 신호는 이미 박약해졌다.딱 한 칸만 남았는데 드문드문 신호가 아예 없어지기도 했다.윤혜인은 지휘관과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몇 차례나 신호음을 듣지도 못하고 나와버렸다.윤혜인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신호가 되는 창가 옆을 찾았다.그러자 주훈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조급했다.“혜인 씨, 서두르지 마세요. 이쪽에서 아직 다른 출구를 찾고 있어요.”그는 줄곧 첩보원 부대에 있었다. 그리고 윤혜인이 금방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일한 출구가 나쁜 놈들에 의해 폭파될 줄은 몰랐다.이는 주훈이 윤혜인과 이준혁의 운명을 걱정하며 초조하게 만들었다.위험지대에 있는 윤혜인이 오히려 주훈보다 더 차분했다.그녀는 입을 열었다.“지휘관님에게 전화를 넘겨주세요.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혜인 씨, 무슨 일인가요?”윤혜인은 물었다.“자체 제작한 원격조종 다이너마이트는 원격조종을 담당하는 선만 빼도 터지지 않는 걸로 기억하는데. 맞나요?”윤혜인은 이런 걸 몰랐는데 어느 한번 아버지의 서재에서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었다.아버지는 군인을 좋아하여 평소 이런 책들을 즐겨 읽고 윤혜인에게 지식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다이너마이트를 본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보다 서면으로 더 많이 접하고 이해했다.지휘관은 설명해 주었다.“이론적으로 원격 조종 다이너마이트는 특수성 때문에 그 안에 원격 조종을 담당하는 선을 한번 끊어버리면 원격 조종 다이너마이트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어요.”“그렇다면 제가 방금 찍어 드린 영상 속에서 전문가들은 어떤 게 그 선인지 알 수 있을거예요.”“...”지휘관은 그녀의 의도를 알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윤혜인은 말을 이었다.“지휘관님, 제가 가서 선을 다 잘라내고 지휘관님의 사람들을 창문으로 들어오게 하세요. 건물 전체에 인질이 저를 포함해서 3명밖에 없어요. 저들에게 들켰다고 하더라도 손에는 2명의 인질만 잡고 있기에 쉽게 죽일 수 없을 거예
감정을 숨기려고 했지만 입을 떼자마자 이미 목이 메었다.곽진명은 순식간에 윤혜인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지막하고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혜인아, 무슨 일이야?”윤혜인은 재빨리 감정을 감추며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아니에요, 아빠. 방금 물 마시다가 사레 들렸어요.”“그래? 그럼 지금 그쪽에 도착한 거야?”곽진명이 물었다. 그는 비행기 경유에 대해서는 몰랐기 때문에 아직 윤혜인이 출장 중인 줄 알았다.“네, 아빠, 도착했어요.”멀리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자 감정이 북받쳐 오를 것 같아 윤혜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아빠, 아빠가 아시는 분 중에 폭탄 해체하실 줄 아는 군인 한 분 계시죠?”윤혜인은 아버지가 해외에서 굉장히 친하게 지내던 군인이 있었고 그가 폭탄 해체 전문가였다는 걸 기억했다.그 군인은 해외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며 폭발물 처리 업무를 맡았었다.“아, 스미스 말이야? 왜, 그 사람한테 뭐 물어보려고?”“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제 친구 중에 감독인 강미연이라는 친구 있잖아요. 기억하시죠? 그 친구가 지금 영화 촬영 중인데 폭약 관련된 정보를 좀 알아봐야 해서요. 스미스 아저씨 연락처 좀 주실 수 있나요?”곽진명은 딸의 말을 신뢰했기에 대답했다.“아, 그럼. 내가 스미스한테 연락해서 너가 물어보면 다 알려주라고 할게.”“네, 고마워요, 아빠.”윤혜인은 또다시 목이 메였다.“바보 같은 녀석, 아빠한테 뭘 고맙다고 그래. 일할 때도 몸조심하고 건강도 잘 챙겨라. 아름이는 나랑 네 홍 아줌마가 잘 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네, 아빠도 건강 조심하시고요...”“알았다. 돌아오기 전에 네 오빠한테 미리 말해. 공항에 마중 나갈 거야.”“네, 아빠. 그럼 끊을게요.”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윤혜인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녀와 이준혁의 생존 확률은 각각 60%와 10%에 불과하다. 또 다른 가능성은 둘 다 폭약과 함께 목숨을 잃는 것이다.어느
“난 그런 적 없어요... 경한 씨, 제발 믿어줘요. 나 아니에요.”방민아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 방민아가 유진을 해친 게 된다면 더는 육경한과 이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민아는 육경한이 유진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을 위해 정관 수술까지 하겠다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었다.“그런 적 있는지 없는지는 경찰 조사에 맡기죠.”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멈추고는 한마디 보충했다.“그리고 최근에 방씨 가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민아 씨 아버지가 80%의 수익을 가져갔어요. 그때 도와준 은혜를 수천조로 갚았는데 그걸로 부족해요?”방민아가 계속 따라붙으려는데 보디가드가 막아섰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찰이 오기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온몸에 힘이 풀린 방민아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빌어먹을 년이 어쩌다 경한 씨의 와이프가 된 거지? 그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하는데.’방민아는 새로 한 매니큐어가 부러질 정도로 바닥을 박박 긁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다시 육경한의 와이프 자리를 꿰찰지, 어떻게 빌어먹을 소원과 짐승만도 못한 유진에게 복수할지로 가득 차 있었다....유진이 이끄는 대로 걸어간 유진은 이내 아주머니를 가둬놓은 방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머니는 누렇게 뜬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소원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침대맡으로 다가가 통곡했다.“아주머니...”유진이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더니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연신 불러댔다.“할머니... 할머니... 일어나봐요...”“아직 숨은 쉬고 있어.”뒤에 나타난 육경한이 이렇게 귀띔했다.소원이 고개를 들어 손을 아주머니의 코밑에 갖다 댔다. 호흡이 약하긴 했지만 확실히 숨은 쉬고 있었다. 흥분한 소원이 유진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유진아, 엄마 구급차 불렀어. 아주머니 선한 사람이니까 하느님
방민아가 육경한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말했다.“경한 씨,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소원 씨 안 건드릴게요. 다 질투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주면 안 돼요? 소원 씨가 경한 씨 마음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자꾸만 경한 씨를 뒤흔드는 게 질투 나서 그랬어요. 이제 잘못한 거 알았고 앞으로 소원 씨 존재도 묵인할 테니까 제발 나 버리지 마요...”방민아의 말에 소원은 넋을 잃고 말았다. 육경한만 동의하면 일부다처제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처럼 들렸다.다만 방민아는 원할지 몰라도 소원은 싫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역겨운 상황이었다. 조선시대가 망한 지 언젠데 있는 집 딸인 방민아가 남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구시대의 여인상을 보이는 게 너무 우스웠다. 게다가 소원은 한평생 육경한 곁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육경한이 언짢은 표정으로 다리를 들자 방민아는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나 와이프 있는 남자예요. 방민아 씨, 앞으로 말 가려서 해요.”육경한의 눈매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지만 ‘와이프’라는 말을 내뱉는 육경한의 말투에서 방민아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온도를 느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갑자기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는 늘 차분하고 덤덤하고 감정 기복이 없었는데 말이다.살아났다는 말이 제일 맞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낸 것처럼 피가 있고 살이 있는 육경한으로 다시 태어났다.그런 육경한을 보며 방민아는 너무 불안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사랑과 전쟁을 패러디하는 걸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육경한이 살인미수범인 방민아를 감싸면 어쩌나 걱정할 뿐이었다.하지만 육경한의 생각 따윈 상관없었다. 아까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소원은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안녕하세요. 경원 별장인데 신고 좀 하려고요. 누군가 제 아들을 해치려고 했어요. 네.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뺏어가려는 거죠. 어림도 없어요.”방민아의 머릿속엔 온통 소원이 육경한을 뺏어가는 장면으로 가득해 이성을 잃었다.“내 남편 뺏어갈 생각하지 마요. 소원 씨는 그저 뻔뻔한 세컨드일 뿐이에요.”“하하하...”소원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방민아 씨, 남편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요? 결혼 등기는 했어요? 왜 아는 사람이 없죠?”방민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자기가 미우 그룹 안주인이라고 생각해 차분하게 말했다.“곧 등기하러 갈 거예요. 경한 씨가 다음 주에...”“다음 주에도 등기는 못 할 거예요.”소원이 단칼에 잘라버렸다.“왜요? 소원 씨가 못한다면 못하는 거예요? 봐요. 내 남자 뺏어가려는 거 맞잖아요. 하하. 내가 잘 캐치한 거 맞죠?”이성을 잃은 방민아는 꼴이 우스워도 너무 우스웠다.“내가 오늘 등기했거든요.”소원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번개처럼 방민아에게 떨어졌고 방민아는 환청이라도 들리는 줄 알았다. 올해 들었던 중에 가장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이 왜 경한 씨랑 결혼 등기를...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방민아는 심장이 떨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민아의 얼굴이 잿빛이 되어가자 소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방민아가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많았다.소원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 방민기 씨 애인하라고 한 제안은 못 받아들이겠네요. 남편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방민아는 마치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거짓말하지 마요.”방민아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육경한의 팔을 부여잡고 캐물었다.“경한 씨, 진짜가 아니라고 해줘요. 소원 씨가 나 속이는 거라고 좀 말해줘요...”육경한의 침묵에 방민아의 마음도 점점 싸늘해졌다. 진실은 눈앞에 보이는 그
소원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방민아는 분명 소원의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소원을 때릴 때 보인 표정은 정말 소원을 죽이고 싶은 표정이었다.육경한은 여자가 이렇게 자주 변하는 동물인지 몰랐다. 방민아도 예전엔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민아 편을 든다고 생각해 바로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그 말은 경찰서 가서 얘기해요. 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방민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이딴 식으로 말해? 그냥 못 넘어가? 못 넘어가면 어쩔 건데.’방민아는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이 약해진 거라고 생각해 얼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했다.“소원 씨, 우리 원수라도 졌어요?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아니꼬운가 본데 나 소원 씨 아이 최선을 다해 보살폈어요. 나를 모함한 것도 뭐라 안 했는데...”방민아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소원 씨는 엄마라 그러겠지만 나도 누군가의 딸이에요. 내가 괴롭힘당하는 거 알면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방민아는 방민수까지 끌어들였다. 방민수가 나온 이상 육경한도 방씨 가문의 은혜를 저버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육경한이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졌을 때 방씨 가문이 없었다면 미우 그룹도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일 어려울 때 손길을 건넨 사람을 저버릴 순 없는 일이었기에 이 점만으로도 육경한은 방민아를 너무 심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소원이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우리 원수 진 거 없어요. 오히려 너무 열정적으로 대해줬죠.”방민아는 소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멈칫하는데 소원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까도 오빠 방민기 씨의 애인이 되라고 열정적으로 소개해 줬잖아요.”“그...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방민아는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왜 헛소리에요?”소원이 말했다.“방민기 씨 애인으로 반년만 있으면 3개월 후에
방민아가 아무리 울고 불쌍한 척해도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봐서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경한 씨, 아까 그 말 진심이 아니라 그저...”방민아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숨이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한참 호흡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유진이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린 나이에 이렇게 모함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방민아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악독한 걸로 치면 유진이 자기보다 백배, 천배 더 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방민아가 모르는 게 있었다. 만약 그녀가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면 유진처럼 어린아이가 꿍꿍이가 있다 해도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다.유진은 총명한 아이였기에 모든 수모를 꾹 참으며 목숨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것밖에 없었다. 조금만 멍청했으면 진작 죽어서 뼈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방민아는 이를 악물고 해명했다.“경한 씨, 하늘에 맹세해요. 난 절대 그 누구에게도 유진이 해치라고 한 적 없어요. 게다가 유진이가 한 말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요. 유진이가 정말 거짓말한 거라면 어린 나이에 잘해준 사람 모함한 게 되잖아요. 그건 짐승이나 다름없는 짓이에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닌지 의심해야죠.”육경한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정말 잘해줬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나는...”방민아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유진이 진실을 말했다 해도 방민아 손엔 피를 묻히지 않았으니 그들도 딱히 그녀를 어찌할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끝까지 발뺌하면 그만이다.육경한이 그런 방민아를 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그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요?”방민아가 멍한 표정으로 육경한을 바라봤다.육경한은 방민아가 진심으로 이 아이를 대해야만 결혼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방민아도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방민아가 아닌 다른 여자라도 그 제안을 흔쾌히 동의했을 것이다. 대답할 때만 해도 유진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고
시터도 사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박으려 했다. 부잣집은 체면을 중요시했기에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보디가드가 시터를 잡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자 시터가 펑펑 울며 억울하다고 아우성쳤다.그때 유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증거 있어요.”이 말에 모든 사람이 놀라고 말았다. 몇 살짜리 애가 증거를 확보했다고 큰 소리로 외치니 그게 뭔지 다들 의문이었다.유진은 목에 건 호루라기를 벗으며 말했다.“이 호루라기 사진 찍을 수 있는 호루라기에요. 시터가 두유에 약 타는 장면을 찍어서 남겼고 쓰레기통에 버린 약병에 적힌 진료소 이름도 찍어놨어요. 그리고 이모랑 둘이서 작은 방에 모여 있는 사진까지 전부 모아뒀어요.”이 호루라기는 서현재가 유진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 유진은 그 호루라기가 퍽 마음에 드는지 늘 목에 걸고 다녔고 소원마저 그 호루라기가 사실 작은 카메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총명한 유진이 시터가 약 타는 장면을 찍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유진은 줄곧 얌전하고 말이 별로 없어 누구든 쉽게 휘두를 수 있다는 착각을 줬지만 사실 총명함을 숨긴 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연기한 것이었다.사실 유진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그 누구보다 총명했다. 반항하면 육경한은 오히려 화만 냈고 반항하면 할수록 방민아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할 때 그 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순종하며 겁이 많은 척 연기해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나쁜 여자의 민낯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시터는 이제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작은 몸집에 이렇게 많은 꿍꿍이가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을 생각을 다 하다니, 유진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입이 떡 벌어진 시터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이제 벽에 머리를 박겠다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육경한은 넋을 잃은 시터를 보며 힘껏 발로 걷어찼다.“감히 내
방민아는 부들부들 떨며 얼른 앞으로 나아가 육경한을 당겼지만 육경한이 매몰차게 뿌리쳤다.쿵.그 힘이 어찌나 센지 방민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경한 씨...”방민아는 육경한이 이렇게 세게 밀칠 줄은 몰랐기에 너무 억울했다.“잘 생각해 보고 얘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내 아들이 거짓말하는 건지 아니면 방민아 씨가 거짓말하는지 말이에요.”육경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내뱉은 말도 하나같이 온도가 없어 가슴이 떨리게 했다. 그러더니 이미 혼비백산한 시터 앞으로 다가가 서늘하게 말했다.“누가 시켰어요?”시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경한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고 혀에 쥐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방민아도 너무 긴장해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시터는 진실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게 없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전 아무것도...”“다시 말할 기회 줄게요.”그러더니 한 걸음 한 걸음 시터에게로 다가가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경고했다.“그래도 거짓말한다면 가족 모두 힘들어질 거예요.”깜짝 놀란 시터는 눈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던 터라 이 일만 마치면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돈에 눈이 멀어 육경한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간과한 것이다.밉보여서는 안 될 사람에게 밉보였으니 이제 모든 게 늦어버렸다.방민아는 시터가 주저하자 얼른 입을 열었다.“맞아요. 얼른 얘기해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는지 아니면 모함을 받았는지 얘기하라고요. 나이도 들었는데 아이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잘 얘기해야 할 거예요. 잘못하면 벌받아야겠지만 잘못하지 않은 사람을 핍박하지는 않을 거예요...”“방민아 씨, 그 입 다물어요.”육경한의 차가운 경고에 방민아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다시 진정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해명했다.“경한 씨, 나도 혐의 벗고 싶어요. 경한 씨보다 더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나라고요. 그래야 나도 누명을 벗을 수 있을 테니까
방민아가 설득했다.“유진아. 이모랑 했던 약속 잊었어? 말 잘 듣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사실 방민아는 유진에게 두 사람이 한 약속을 잊지 말라고 귀띔하고 있었다. 만약 유진이 말을 듣지 않으면 더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약속 말이다.‘어린아이가 알면 뭘 안다고. 겁만 줘도 고분고분해질 텐데.’방민아가 말했다.“거짓말하면 코 길어지는 거 알지? 그러니까 얼른 이모한테 와.”하지만 유진은 들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점점 더 거세게 울었다.“왜 또 째려봐요...”유진이 소원의 품에 파고들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엄마, 저 여자 나 째려보기만 한 게 아니라 꼬집기도 하면서... 시켜준 대로 아빠한테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엄마 못 만날 거라고 했어요...”유진이 육경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빠, 이모가 한 말 사실이에요? 엄마 못 만날까 봐 하라는 대로 하긴 했는데 정말 너무 무서워요... 저 나쁜 아줌마가 그러는데 두유에 약 타라고 한 것도 이모가 시킨 거래요. 나 죽이려 드는데 고분고분 말 들어야죠...”이 말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방민아는 목덜미에 칼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온몸에 오한이 몰려왔다.‘짐승 같은 놈이 다 연기한 거야? 이렇게 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방민아는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런 꿍꿍이를 꾸몄다는 게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육경한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더니 유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아니야. 엄마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아빠가 있는데 감히 누가 엄마를 건드리겠어.”“아빤 절대 그 누구든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할 거야.”유진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빠, 정말 저 나쁜 이모가 유진이랑 엄마 해치지 못하게 지켜줄 거예요?”육경한이 대답했다.“너랑 엄마 다 무사할 거야. 아빠가 약속해.”유진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소원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의미심장한 눈빛으
시터가 퉁명하게 쏘아붙이며 유진을 뺏어가려는데 갑자기 날아든 발차기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아악.”힘이 잔뜩 들어간 발차기에 시터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두 번 뒹굴더니 배를 부여잡고 곡소리를 냈다.“누가 나를...”원망하던 시터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대표님이 나를 왜.’켕기는 게 많은 시터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까먹었다.“대표님...”육경한이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매섭게 쏘아붙였다.“누가 도련님 쫓으라 했어. 도련님을 돌볼 때 어떤 수칙을 지켜야 하는지 잊었어?”유진은 체질이 별로 좋지 않아 노트에 명확하게 달리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으니 추격전을 벌이는 건 더더욱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게 아니라...”시터가 화들짝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기도 모르게 옆에 선 방민아를 바라봤다. 해명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육경한이 매섭게 말했다.“물건 정리해서 꺼져요.”이 말에 시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급을 이렇게 많이 주는 일이 없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방민아를 바라봤지만 방민아는 그저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었다.‘멍청하긴. 나는 왜 보는 거야. 내가 언제 사람들 앞에서 유진이 데리고 뛰라고 했나?’방민아는 시터의 눈알이라도 파내고 싶었지만 얼르 이렇게 암시했다.“경한 씨 더 화내기 전에 얼른 가요.방민아가 이렇게 말하며 시터에게 눈빛을 보내자 시터가 바로 알아들었다. 따로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약속이었다.시터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지금 당장 짐 싸서 갈게요...”그때 유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아빠. 아줌마 이렇게 보내면 안 돼요.”육경한이 유진에게 물었다.“왜?”유진이 시터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나쁜 아줌마가 두유에 뭘 섞었어요. 할머니한테 준 약이랑 같은 건데 두유에 섞어서 유진이 먹이려는 거 내가 몰래 토했어요.”이 말에 시터와 방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