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감싸 안았다. 이준혁의 발차기가 거의 그의 무릎을 부서뜨릴 뻔했던 것이다.“이 자식...”하지만 이천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준혁은 한 장의 사진을 그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그 사진에는 강가에서 누군가가 자루를 강에 던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천수는 몸을 떨며 물었다.“너, 너 이걸 어디서...”이준혁은 차갑게 말했다.“이천수 씨, 당신이 주 집사님을 살해하도록 사주한 것에 대한 모든 증거를 경찰에 넘겼습니다.”경찰들이 이미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그들은 경찰증을 보여주고 수갑을 꺼내 이천수의 손목에 채우기 시작했다.상황을 깨달은 이천수는 발악하듯 몸부림치며 소리쳤다.“이 자식, 네가 날 함정에 빠뜨린 거야! 이건 다 너 때문이야!”이준혁은 그에게 다가가 결정을 내리듯 낮게 말했다.“증거는 충분해요. 당신은 이제 바깥세상의 햇빛을 볼 수 없을 겁니다. 주 집사님께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할 거예요.”이천수는 미친 듯이 발악하며 소리쳤다.“난 안 가! 아무도 날 쓰러뜨릴 수 없어! 네가 뭔데 감히...”그러자 이준혁은 조소를 지으며 속삭였다.“지하에 내려가면 할아버지께 절 많이 해요. 그리고... 내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에게도.”“아이...”이천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뭘 알아낸 거야?”이준혁의 목소리는 차갑게 얼어붙었다.“당시 송소미가 혜인이를 납치해 우리 아이를 유산하게 만든 일, 당신과 원지민도 연루되었죠?”이 말에 이천수는 한 걸음 비틀거렸다. 그의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그토록 비밀스럽고 오래된 일이 어떻게 이준혁의 손에 넘어갔을까 매우 의문스러웠다.이준혁은 흥미로운 듯 무심하게 말했다.“당신을 도와 일을 처리했던 비서를 찾아냈거든요.”그러자 이천수는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그,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 비서는 이미 차 사고로 죽었는데!”이준혁은 설명했다.“그 비서 사실 죽지 않았어요. 당신이 자기를 제거할까 봐 죽은 척 한 거지. 그 사람은 살아서 당신 손아
이천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충격에 빠졌다.이제야 그는 자신이 그동안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칭송받던 천재가 얼마나 무서운 면모를 가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그가 한때 ‘아들’이라 부르던 이준혁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정말로 이준혁은 이천수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이씨 집안에 몸담았지만 이방인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아무리 그가 모범적인 사람처럼 행동하고 귀한 옷을 입어도 본질적으로 여전히 임산이었다.그것이 이천수가 이선 그룹을 빼앗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던 이유였다.그는 한구운에게 자신이 이씨 집안의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한구운이 이씨 집안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냈다.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이준혁, 넌 정말 길러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구나!”이준혁은 차갑게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자신이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는데. 앞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고통은 인과응보일 뿐입니다.”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싸늘해졌다.“이천수 씨, 당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어요. 당신이 애지중지하던 아들도 절대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 테니 두고 봐요.”그러자 입술이 시퍼렇게 변하며 이천수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너... 너 정말 독한 놈이구나!”“남의 목숨을 함부로 짓밟을 땐 그렇게 당당하더니 내가 반격하니까 독하다고요? 난 단지 정의를 되돌리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저지른 짓의 1%도 되지 않아요.”분노에 찬 이천수가 고함을 질렀다.“너한테 남은 길은 이제 없어.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널 키웠는데 이선 그룹을 나한테 넘길 바에는 남한테 넘기겠다는 거야?”그는 자신이 엄청난 비밀을 폭로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준혁은 놀라지 않은 채 오히려 평온한 태도로 대답했다.“작은아버지가 돌아
“누가 먼저 죽나 어디 한번 보자고!”이천수는 이준혁에게 독설을 남기고 두 명의 경찰에게 끌려나갔다.이천수가 떠난 후, 현장은 다시 조용해졌다.이준혁은 무대로 돌아와서 바로 선언했다.“죄송합니다, 여러분. 예상치 못한 일로 모두의 기분을 망쳤습니다.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호텔 연회장으로 이동해 식사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사람들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진 후에 결혼식을 계속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을.어차피 결혼이라는 건 혼인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결혼식은 치르든 말든 상관없었다.이번 소동을 통해 이준혁의 존재감은 더 확고해졌고 누구도 그를 쉽게 흔들 수 없게 되었다.사람들은 이준혁에 관한 가십거리를 감히 더 두고 지켜볼 수 없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곧이어 직원들이 손님들을 안내해 모두 퇴장시켰고 현장은 다시금 고요해졌다.그 자리에는 원지민만 남아 어리둥절해 했다.왜 결혼식에 온 손님들이 전부 떠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아직 반지 교환도 하지 않았고 어떤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준혁은 코사지도 꽂지 않은 상태였다.원지민은 이 상황에 관해 묻고 싶었으나 이신우가 이준혁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하지만 마음속 불안감과 상상의 나래는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귀를 기울이며 이준혁과 이신우가 무슨 말을 나누는지 듣고 싶어 했지만 너무 멀어서 그들의 대화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이신우는 이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음에는 뭘 할 생각이야?”“저녁 연회는 삼촌이 신경 안 써도 돼요. 나가셔서 손님들을 안심시키고 전부 안전한 통로로 옮겨서 다른 건물로 대피시키세요.”이신우는 떠나기를 거부하며 말했다.“그건 내 비서가 처리해줄 거야. 뭘 하려든 내가 함께하마.”“삼촌, 우리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요.”이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삼촌은 밖에 계셔야 해요. 만약을 대비해서 뒷수습을 해 주셔야 하니까요.”이신우는 오랜 침묵 끝에 속에 담긴 우려를 드러냈다.“사실 나는 네
이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원지민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원지민은 속으로 불안했지만 애써 자신을 달래며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왔는데... 준혁이가 나한테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이미 온 세상에 우리 둘이 결혼한다고 알렸는데 날 어떻게 할 수 없을 거야.’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까 그 일 때문에 불길하다고 생각해서 결혼식 장소를 옮기는 거지? 그럼 난 축하주를 바꿔야 하나?”이준혁은 여전히 무표정한 채로 말했다. “필요 없어.”얼굴이 굳어졌지만 원지민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준혁아, 아까 사람이 많아서 설명할 틈이 없었는데 청첩장 일은 사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 사람들이 나한테 강요한 거야!”눈물을 참는 듯 그녀는 눈가를 가리며 이준혁의 반응을 살폈다.속으로는 한구운을 원망하며 욕하고 있으면서 말이다.결국 그는 이씨 집안의 사람도 아니었고 이천수의 유일한 자식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그날 그렇게 뻔뻔하게 말할 때 난 왜 한구운의 말을 믿었지?’ 이천수와 한구운은 이씨 집안의 사람들과는 달랐다.이씨 집안의 사람들은 당당하고 정직했지만 이천수와 한구운은 그렇지 않았다.원지민은 자신이 그동안 눈이 멀었다고 자책하면서도 다행히 자신이 한 행동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다는 점에 위안을 삼았다.“준혁아...”그녀는 이준혁이 여전히 반응이 없자 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한구운이 나한테 찾아와서 준혁이 네가 이씨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고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청첩장을 준 거야. 준혁이 네 명성을 지키려고 한 거였어.” 그 변명은 말도 안 되는 구멍투성이였지만 지금 원지민은 더 나은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이준혁은 살고 싶다면 그녀의 말에 따라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녀는 그에게 핑계를 대주면서 스스로도 숨통을 틔웠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의 차가운 얼굴을 보며 원지민은 다시 한 번 덧붙였다.“정말로 그 사람들이 이렇게 소동을 일으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한 채 이준혁은 비웃듯이 말했다. “사랑이라니, 그건 네가 스스로 만든 핑계일 뿐이야. 넌 내가 너에게 굴복하길 원했지. 오랜 시간 동안 쏟아부은 것 때문에 이제는 반드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 후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사랑이라는 그 위대한 단어로 네 악행을 덮으려 했고.”“원지민, 넌 정말 역겨워.”이준혁은 짧은 한마디로 자신의 감정을 끝맺었다.그 말은 그가 원지민을 진심으로 역겨워한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했다.눈빛에는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는 깊은 혐오가 뒤섞여 있었다.그 광경은 원지민에게 마치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그녀는 다급하게 외쳤다.“준혁아!”이준혁의 칠흑 같은 눈동자는 차가운 독기마저 띠고 있었다.“내 이름 부르지 마. 너는 자격이 없어.”그가 한 자 한 자 내뱉은 말은 마치 고추 물을 묻힌 칼날처럼 원지민의 얼굴을 베어냈다.‘역겨워... 자격이 없어...’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오자 원지민은 심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지고 하얗게 질렸다.격한 감정이 지나가고 나서야 원지민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그리고 이제는 어떤 가식도 없는 진짜 본모습을 드러냈다.“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결혼한 걸 알고 있어. 네가 사랑하는 여자는 이미 너를 떠났어. 내가 없으면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녀는 비웃듯이 크게 웃었다.“이준혁, 그렇게 잘난 척해봤자 결국 내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잖아. 넌 절대 내 곁을 떠날 수 없어.”점점 광기에 휩싸인 원지민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난 내가 원하는 건 절대 놓치지 않아. 너도 예외는 아니야!”그러자 이준혁은 차갑게 말했다.“보아하니 널 과대평가했군. 넌 후회할 줄 모르니 말이야.”원지민은 더욱더 자랑스럽게 웃어댔다.“내가 왜 후회해야 하지? 나는 절대 지지 않아!”후회는 약자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하
이준혁의 눈빛에는 차가운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고? 너무 늦었어.”“넌 미쳤어!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원지민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넌 아직도 내가 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는 거야? 내가 죽으면 너도 살아남을 수 없어!”“당연히 믿지.”이준혁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깊고 검은 눈빛에서 모든 걸 꿰뚫는 듯한 빛을 내뿜었다.“네가 날 구할 수 있다는 건 맞아. 하지만 그게 내가 생각할 능력조차 없이 침대에 누워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꼴로 살아남는 거라면 말이야.”원지민은 그 말에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굳어졌다.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원지민이 가지고 있는 약이 이준혁을 살려낼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그가 생각 없는 시체처럼 누워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그것은 죽지는 않겠지만 살아있는 게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할 수 있는 삶이었다.이천수와 한구운이 완전히 제거된 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준혁은 이씨 집안의 유일한 친손자로서 어떤 상태로든 살아있는 것이 중요했다.비록 마비 상태가 되더라도 그 존재 자체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그러면 원지민은 이준혁의 아내로서 이선 그룹의 업무에 개입할 수 있고 그 이익을 조금씩 자신의 손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순간적으로 상황이 변했음을 깨달은 원지민은 드러난 거짓말을 잠시 잊고 다시 모른 척하며 말했다.“준혁아, 내가 하는 모든 건 너를 위해서야. 이 약도 삼촌께 부탁해서 겨우 얻어낸 거라고. 삼촌이 이 약을 구하려다 얼마나 많은 용맹한 부하들을 잃었는지 알아?”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이 약은 북안도의 무녀 가문이 소유한 것이었다.무녀들은 북안도에서 특별한 존재였고 그들은 어떤 세력의 위협도 받지 않았다.이 조건은 섬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협상이 끝난 것이었다.게다가 무녀 일족은 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숭상하며 외부의 화폐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그들만의 작은
“아!”김성훈은 돌면서 외쳤다.“고마워! 정말 고마워! 넌 내 여신이야!”그가 안고 도는 탓에 여 박사는 어지러워하며 소리쳤다.“김성훈! 나 토할 것 같아! 빨리 내려놔!”“미안, 미안...”김성훈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두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정말 고마워. 네 노력 덕분에 돌파구를 찾은 거야. 내 친구... 이제 살 수 있게 됐어!”그들은 매일 4시간밖에 자지 않고 각종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실험실에 갇혀 지냈다.한 달 동안 실험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끝에 마침내 치명적인 주사제의 성분을 밝혀냈다.처음 이 독액을 연구한 유전자 전문가는 이 주사제가 해독할 수 없다고 했지만 성분이 밝혀진 이상 이제 해답이 없는 건 아니었다.여 박사는 그에게 말했다.“가장 시급한 건 네 친구에게 다른 주사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그래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어.”“맞아, 맞아! 지금 바로 전화할게.”김성훈은 즉시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핸드폰이 꺼져있었다.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꺼져있었다.당황한 김성훈은 주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연결되었다.“주 비서님, 지금 어디에 있죠? 준혁이는요? 핸드폰이 왜 꺼져있죠?”“김 대표님, 이 대표님은 지금 결혼식장에 있습니다. 저는 지금 결혼식장 밖에 있어요.”“...결혼식장?”김성훈은 실험실에 오래 틀어박혀 있었기에 그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그렇습니다.”주훈은 설명했다.“오늘이 대표님과 원지민 씨의 결혼식입니다.”“뭐라고요?!”김성훈은 충격을 받았다.“준혁이가 원지민과 결혼을 한다고요?”“네, 그렇습니다.”주훈이 대답했다.“막아요! 빨리 막아요! 준혁이는 절대 원지민과 진심으로 결혼하려는 게 아니예요!”김성훈은 믿을 수 없었다.그가 아는 이준혁이라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할 리 없었다. 설령 세상이 뒤집혀도 그는 원지민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주훈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건물 아래에는 무장을 한 특수 요원들이 가득 서서 그들을 막아섰다.“이곳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W는 혼혈아로 성격이 매우 불같아 바로 검은 옷을 입은 특수 요원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주훈이 재빨리 W를 붙잡아 막았다.“경거망동하지 마!”주훈이 W를 꾸짖었다. 이곳 한국에서 그는 W가 어떤 실수도 저지르지 않도록 반드시 신경 써야 했다.“안녕하세요.”주훈은 명함을 내밀며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말했다.“저희 대표님이 안에 계십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죄송합니다. 공무 수행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즉시 철수하십시오.”W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주훈이 그를 강제로 끌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가지 않고 건물에서 멀지 않은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초조해진 W가 물었다.“무슨 상황이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지?”주훈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가 특수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 있게 대피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정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 주세요.”주훈은 전화를 끊지 않고 그쪽의 답변을 기다렸다.5분 후, 정보센터에서 답이 왔다.“인터내셔널 호텔센터에 다량의 폭탄이 설치된 것 같아요.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해야 한다고 합니다.”주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누가 폭탄을 설치한 거죠?”상대편이 답했다.“찰스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찰스... 찰스...’주훈은 머릿속으로 이준혁의 최근 일정을 빠르게 훑어보았다.그리고 갑자기 비 내리던 밤에 이준혁의 팔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문득 깨달은 듯 소리쳤다.“20일 전에 북안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줘요!”상대편은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략 10분쯤 지나자 타이핑 소리가 멈췄고 정보센터가 답했다.“20일 전에 발
“네.”주석훈은 전화를 끊고 직원증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있는 예쁜 여자를 깊게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사진을 얼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수정아, 봤지? 하늘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아니면 네가 나를 돕는 거야?”사진 속의 여자를 보는 주석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이때 주석훈의 가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한 주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제트 님, 제발 도와주세요...”주석훈이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상대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저... 외국으로 보내 주세요.”“하하...”주석훈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사악해졌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저... 저는 제트 님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트 님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내가 잡히면 이 비밀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석훈이 한마디 했다..“많이 똑똑해졌네?”“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트 님, 돈만 주시면 멀리 외국으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긴 주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얼마면 되는데?”“5천만 원이요.”전화기 너머로 금액을 말한 여자는 혹시라도 주석훈이 화낼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적어도 5천만 원은 있어야 외국에서 살 수 있어요.”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틀 동안은 시간이 없어. 모레 밤에 항구에서 보자.”“아니요, 제트 님!”상대방은 경계하며 말했다.“우린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트 님이 돈을 그곳에 두시면 제가 가서 가져갈게요.”주석훈이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알았어. 항구에 둘게, 시간은 다시 알려주지.”“지금은 안 될까요...”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매우 급한 듯했다.“나와 흥정할 생각하지 마!”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알겠어요...”전화가 끊
황진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간 후 소원은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주석훈이 죽을 다 먹고 소원에게 말했다.“소원 씨, 이만 돌아가세요. 여기는 의사와 간호사가 많으니까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소원 씨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소원은 밤에 유진을 보러 갈 예정이었기에 진짜로 돌아가야 했다.주석훈을 위해 간병인을 구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간병인을 찾기 어려웠다. 감염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환자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이제 막 열이 내린 주석훈은 소원의 고민을 알아채고 농담을 던졌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요. 이렇게 큰 병원에 있는데 설마 죽기라도 하겠어요?”소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번 일, 여자친구에게 말씀하셨나요?”“여자친구요?”주석훈이 멍해 있자 소원이 급히 말했다.“방금 물컵을 들다가 변호사님의 직원증을 떨어뜨렸어요. 죄송해요, 일부러 본 건 아니에요. 여자친구 사진인 것 같아서...”소원의 말을 들은 주석훈은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지만 소원이 보기엔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았다.평소 밝고 남을 잘 돕는 그의 얼굴과 조금 달랐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여자친구 맞아요.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없어요.”몇 초 동안 충격에 빠졌던 소원이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몰랐어요.”“괜찮아요. 이미 오래된 일이니까.”주석훈의 말에 소원이 한마디 했다.“정말 예쁘더라고요.”그러자 주석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잘 웃고 또 성격도 좋았어요. 그리고 동물들도 정말 좋아했죠.”소원은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온화해 보이던 여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니...두 사람이 몇 마디 더 나눈 후, 주석훈이 소원에게 얼른 돌아가라고 재촉했다.주석훈의 말에 소원도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했다.주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원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석훈의 전화벨 소리가
황진수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미우 그룹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하나같이 대표님의 권한을 기다리고 있어요. 게다가 회의도 많아서 시시각각 대표님 곁을 지킬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도 속이 바질바질 타요. 대표님이 빨리 업무 복귀하셨으면 좋겠어요.”황진수은 소원에게 왜 육경한을 보러 오지 않냐고 대놓고 질책하지 않고 월급쟁이로서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만 얘기했다. 이렇게 되면 가스라이팅까지는 아니지만 누구든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수락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소원은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비서님, 수고하셨어요. 시간 되면 그때 찾아갈게요.”가겠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고 시간 될 때 찾아간다고 말했다. 지금 바로 병원인데 시간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황진수도 이 말까지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그러면 소원 씨, 일 보세요. 일 끝나면 대표님 좀 꼭 보러 오시고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컵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수액실로 돌아와 보니 주석훈은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소원은 딱히 깨우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주석훈 눈에 난 다크서클만 봐도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기 그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그 누구든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주석훈의 정서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미 너무 안정적인 편이었다.침을 뺄 때가 되자 주석훈이 잠에서 깨 간호사를 불렀다.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는 역시나 중무장하고 들어왔다. 병원 측은 주석훈의 상황을 대비해 수액실도 단독으로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바늘을 뽑은 간호사들은 주석훈에게 오늘 밤 다시 열이 나는지 체크해야 하므로 밖에는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주석훈은 아직도 병실에 남아있는 소원을 보며 멋쩍게 말했다.“소원 씨, 정말 너무 고마워요. 이렇게 옆에서 있어 주기 힘든데.”“괜찮아요.”소원이 말했다.“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요.”소원이 물을 주석훈에게 건네주는데 핸드폰이 올렸다. 배달 기사가 걸어온 전
소원은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 주석훈은 이번에 병원을 바꿔 제일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전문가들이 이런 유형의 감염류 질병에 더욱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소원이 도착하자 수액을 맞던 주석훈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소원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소원이 말했다.“마침 근처로 왔다가 얼굴이나 보려고 왔죠.”소원은 주석훈이 신세 지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주석훈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석훈의 창백해진 얼굴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목마르죠? 물 좀 마실래요?”주석훈은 목이 마르지 않았지만 목이 불편해 이렇게 말했다.“괜찮으면 소원 씨가 뜨거운 물 좀 따라줄래요?”“그래요.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소원이 말했다.“컵은 내 가방에 있어요.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소원 씨가 좀 가져다줘요.”소원이 주석훈의 가방에서 컵을 꺼내다 주석훈의 사원증이 딸려 나왔다. 사원증 뒷면에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보관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사진에 보이는 여자는 밝고 수수하고 웃음이 참 예쁜 사람이었다.소원은 그 사람이 주석훈의 여자 친구라고 생각했다. 본적도, 그렇다고 들어본 적도 없는 여자였지만 그래도 사진을 사원증 뒷면에 넣어두고 다닌다는 건 무척 사랑한다는 의미였다.주석훈은 머리가 흐리멍덩한 상태라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소원이 사원증을 다시 집어넣고는 뜨거운 물 받으러 갔다.뜨거운 물을 받고 왔던 길로 돌아가는데 마침 육경한의 비서 황진수가 보였다. 황진수는 소원을 보고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소원 씨, 혹시 대표님 보러 오셨어요?”소원은 황진수의 열정에 살짝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아니요.”황진수는 소원이 들고 있는 남성용 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친구가 홍콩에 있어서요.소원이 설명했다.“아 그래요?”황진수의 말투에서 실망이 묻어났다. 소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황진수가 입을 열었다.“소원 씨, 우리 대표님 좀 보러 가주실
소원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소원이 언짢은 표정으로 취객과 함께 온 사람을 바라봤다. 동행한 사람은 주석훈 손에 난 상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연신 이렇게 말했다.“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술에 취해서 그렇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주석훈은 동행자의 태도가 좋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얼른 데리고 올라가요.”취객이 여전히 중얼거리며 말했다.“음냐... 맛있다. 음냐...”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주석훈이 여전히 앞에 서서 그들이 떠나가길 기다렸다. 소원은 주석훈 손에 난 상처가 걱정되어 이렇게 말했다.“주 변호사님, 상처 아무래도 소독해야 될 것 같은데요.”주석훈이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성가실 필요는 없어요.”소원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치료해요. 어차피 지금 병원이잖아요. 상처 처리하는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주석훈은 소원의 권고에 치료하러 향했다. 간호사가 바쁘다 보니 한참 기다려서야 소독할 수 있었고 치료를 마쳤을 땐 이미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주석훈이 다시 휠체어를 밀어주려는데 소원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주 변호사님, 저는 괜찮아요. 이제 휠체어 안 타도 돼요. 다 나았는데 앉아 있으려니까 낯 간지럽네요.”주석훈은 소원의 상태가 확실히 괜찮아 보이자 휠체어에 앉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더니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당황한 기색의 간호사 두 명이 토론하는 게 들렸다.“너 그거 알아? 큰일 났대.”“무슨 일?”“아까 실려 온 환자가 있는데 혈액 검사를 해보니 에이즈래. 그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전부 검사받아야 한다던데?”“뭐? 접촉한 사람은 다 받아야 한다고? 그런 병이 있다고 직접 밝히진 않았나 보지?”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환자는 병원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소수의 환자가 병을 속여서 혈액으로 감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원이 얼른 말했다.“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그저 배가 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친구 차 타고 왔어요.”원보경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어느 병원에 있어요?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아니에요.”소원은 원보경도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나는 정말 괜찮아요. 수액만 다 맞으면 집으로 갈 거예요.”“어떻게 그래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원보경은 여전히 시름을 놓지 못했다.“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소원이 말했다.“조금 이따 친구가 데려다줄 거예요. 여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경 씨 도착할 때쯤이면 진작 수액 다 맞았을 거예요. 병원에서 기다릴 바엔 차라리 두 사람 다 집에 가서 쉬는 편이 나아요.”원보경은 그제야 포기하고 여러 번 당부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소원은 아직도 남아있는 주석훈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주 변호사님도 얼른 들어가요. 많이 나아져서 이제 혼자 들어가도 돼요.”소원이 아까 그렇게 말한 건 수고한 원보경이 여기까지 오는 걸 막으려고 그랬다.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졌으니 이제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주석훈이 말했다.“그럴 순 없죠. 친구한테 나라는 친구가 이따 태워다 준다고 말했는데 약속 지켜야죠. 이따 바래다줄게요.”소원은 주석훈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주석훈은 성격이 밝았기에 같이 있으면 꽤 편했다.“그래요.”소원도 이미 신세를 진 이상 끝까지 신세 지기로 마음먹고는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소원은 속으로 주석훈을 위해 좋은 선물을 하나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 현금으로 주면 너무 속물 같아서 주석훈이 받지 않을 것 같았다.게다가 주석훈은 확실히 이미 협의한 비용 외에 다른 비용은 받지 않았다. 이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소원도 그냥 넘어가긴 마음이 걸렸다.수액이 끝나자 주석훈이 간호사를 불러와 바늘을 빼고는 휠체어를 끌어왔다. 소원은 앞에 놓인 휠체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이... 이건 필요 없지
소원은 운전기사의 성격이 이렇게 불같을 줄은 몰랐다. 이제 정말 운전기사를 하나 뽑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임신한 관계로 차를 직접 운전할 수가 없어 맨날 차를 잡고 다녔는데 확실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차를 다시 잡으려는데 어떤 차가 앞에 멈춰 섰다. 차창이 열리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소원을 보더니 놀란 듯 물었다.“소원 씨? 소원 씨가 왜 여기 있어요?”소원도 이런 난감한 상황에 주석훈을 만날 줄은 몰랐다. 쪽팔리지만 택시 기사가 길가에 내려주고 그냥 가버렸다는 얘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주석훈이 씩씩거리며 말했다.“해도 해도 너무하네. 어떻게 소원 씨를 길가에 버려두고 가요. 위험한데.”주석훈이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타요. 데려다줄게요. 시간이 늦어서 택시 잡아서 가는 건 위험해요.”맞는 말 같아 소원은 주석훈의 차에 올랐다.“근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어요. 마칠 퇴근하는데 길에서 소원 씨를 만나다니.”주석훈이 말했다.“그러게요. 기막힌 우연이네요. 아참, 저번 일은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렸네요. 고마워요. 주 변호사님.”소원은 그날 현장에서 주석훈이 육연주를 제압한 일에 대해 정식으로 인사했다.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주석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 다만 육경한이 더 가까이 서 있어서 소원을 구한 것이다. 그것 외에 재판에 관한 일도 성심성의껏 소원을 대신해 타이르고 있었다.“별말씀을. 소원 씨, 우리 안 지 꽤 오래 지났는데 친구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주석훈은 늘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온화했다. 가끔 소원은 주석훈을 화나게 하는 일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아무튼 감사 인사는 꼭 전하고 싶었어요.”소원이 말했다.“그러면 소원 씨 시간 될 때 밥이나 한번 사줘요.”주석훈이 말했다.“당연하죠.”소원이 웃으며 대꾸했다.주석훈은 소원의 목적지가 병원인 줄 몰랐기에 집으로 가는 줄 알고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주소가 어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원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원보경을 해고할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원보경은 한이 그룹으로 오기 전 미우 그룹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사실 소원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보경처럼 말도 잘하고 여러 방면으로 능력이 뛰어나려면 일개 영업팀 직원이 아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어야 했다.그러다 원보경이 미우 그룹에서 일하던 사원이라는 걸 알고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리고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한이 그룹처럼 작은 회사에 남으려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소원은 육경한의 그 어떤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기에 엄숙하게 원보경에게 사직을 권고했지만 원보경이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제가 대표님 회사로 온 건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거지 시간 때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미우 그룹에서 일한 적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여기로 오기 전에 여러 큰 기업에서 제 이력서를 통과했지만 결국엔 미우 그룹에서 나와 한이 그룹을 선택했습니다. 원인이라면 이곳에서는 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미우 그룹을 포함한 다른 회사는 워낙 인재가 많으므로 제가 알고 있는 방법은 써먹을 기회도 없을뿐더러 얄팍한 수단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큰 기업에는 저보다 능력 좋은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외모도 빼어난 게 없고 능력도 특출난 건 아닌데 동료들과 이익 다툼도 해야 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여러모로 생각하고 검토한 결과 한이 그룹으로 오는 걸 선택했습니다. 육 대표님이 보내서 온 게 아닙니다.”“사실 육 대표님이 황 비서님께 빠릿빠릿한 사원을 뽑으라고 해서 저는 선택받지 못했고 더 노련한 분이 선택받았는데 미우그룹을 떠나 전망도 모르는 작은 회사로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하지만 저는 한이 그룹 자료를 찾아보고 황 비서님께 먼저 지원한 사람입니다. 황 비서님도 제가 의향이 강하니까 결국 저를 선택해 주셨어요. 게다가 미우 그룹에서 이미 퇴사해서 제가 모실 분은 이제 육 대표님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 남으려고 한 건 제 능력을 인
집으로 돌아간 소원은 일단 다른 건 제쳐두고 잠부터 잤다.사실 황산이 하늘에 흩뿌려졌을 때 소원도 마음속으로 너무 두려웠다. 여자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몸에 난 상처는 옷으로 가려본다 해도 얼굴은 어떻게 가려도 가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황산으로 인한 상처는 아무리 돈을 들여도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였기에 영향이 매우 컸다.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그렇게 악독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절체절명의 순간 육경한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왔는데 소원도 사람인지라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원이 육연주를 먼저 건드린 것도 아니고 육경한이 오냐오냐 키우지만 않았다면 육연주가 이렇게 무법천지가 될 일도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소원의 마음속에 생겼던 감격도 많이 줄어들었다.육경한은 사람에게 잘해줄 때 적정선이라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자기가 심어놓은 화근에 걸려들고 말았다.한잠 자고 일어난 소원은 정신이 말짱해졌다. 그 뒤로도 병원은 가볼 시간이 없었다. 육경한이 입원해 있는 동안 소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낮에는 한이 그룹 일로 바빴다. 회사는 진작 등록해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시 일어서는 게 생가보다 너무 어려웠다.몇 년간 여러 기업이 생겨나고 바뀌면서 한이 그룹 같은 오래된 기업은 에너지 영역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없게 되었다.게다가 처음엔 능력 좋은 사람들을 채용하지 못해 혼자서 여러 사람의 업무를 도맡아 하느라 보고서도 만들고 회의도 하고 프로모션도 해야 했다.일이 너무 많기도 했고 임신 초기라 마침 피곤할 때였기에 거의 매일 휴식이 모자란다는 생각만 들었다. 게다가 저녁이 되면 유진도 봐야 했고 중간중간 짬을 내 요양원에 어머니 보러도 가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육경한이 입원해 있다는 사실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소원이 이렇게 미친 듯이 일하는 것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두 아이가 원하는 걸 선택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누군가에게 잡혀 살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