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더니 백지안은 죽은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지안아!”하준이 다급히 외쳐 부르더니 코 밑에 손을 대보았다. 아직 미약하게 숨이 붙어 있었다.“주혁아! 빨리! 이쪽으로!”하준이 다급하게 이주혁을 소리쳐 불렀다.송영식은 화가 나서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주혁아, 살려줘. 제발….”“알겠어.”이주혁은 급히 지안을 바닥에 눕히고 가지고 온 응급처치 키트를 펼쳤다.10여 분을 분투한 끝에 기절했던 백지안에게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지만 깨어나지는 못했다.“난 최선을 다했어. 일단은 위기는 넘겼지만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야 해.”이주혁이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알겠어. 바로 이송하지.”하준이 곧 백지안을 안고 내달렸다. 차에 타자마자 그대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내달렸다.한바탕 처치 끝에 마침내 백지안의 목숨은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하준은 의자에 앉아서 피범벅이 된 손을 바라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회장님, 놈은 지룡 보호소에 넣어두었습니다.전성이 하준에게 와서 보고했다.하준이 고개를 들더니 전성의 얼굴에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괴로워 보이는 송영식의 얼굴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한 놈인데 자네랑 영식이 둘이 덤볐는데도 부상을 입었나?”전성이 헛기침을 했다.“저 혼자서 상대했으면 얼추 괜찮았을 텐데 송 대표님께서 끼어드는 바람에….”“무슨 소리야? 내가 실력이 없다고 우습게 보는 거야?”송영식이 불같이 화를 냈다.“……”전성은 매우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하준의 날카로운 동공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자네와 맞붙을 수 있을 정도 고수라니 드문 상대군. 도대체 어떤 놈인지, 왜 지안이를 납치했는지, 배후에 지시한 놈은 누구인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도록 하지.”“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가보겠습니다.”전성은 말을 마치더니 자리를 떴다.VIP병실로 옮길 때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은 지안을 보는 하준 매우 괴로운 심정이 되었다.지안이 그렇게나 결연하게 자살을 하려고 들 줄은 생각
“일어나.”하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싫어.”송영식이 간절한 눈을 하고 이를 악물었다.“하준아, 의사가 지안이 목숨을 살려는 두었지만 희망이 없다면 지안이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어? 어렸을 때 지안이가 정신병원에서 널 격려해 주지 않았더라면, 넌 이미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르잖아? 지안이는 너 때문에 의학을 공부했어. 3년 전 지안이가 아니었다면 넌 미쳤을지도 몰라. 넌 쟤한테 일말의 연민도 없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냐?”하준의 태양혈이 불뚝불뚝 튀었다. 하준은 병실에서 걸어 나갔다.송영식이 하준의 다리를 잡았다.“하준아. 제발 부탁한다. 들어주기 전까지 난 이렇게 꿇어앉아 있을 거야.”“영식아, 네가 내 친구라면 이렇게 사람을 압박하면 안 되지.”하준은 송영식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걸어 나갔다.“영식아, 일어나자.”이주혁이 한숨을 쉬었다.“네가 지안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만 그렇다고 지안이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 만들어서는 안 되지. 하준이는 안 그래도 지안이에게 죄책감과 목숨을 빚지고 있어서 마음이 무거울 텐데.”그러더니 이주혁도 병실에서 나갔다.복도에 서 있던 하준이 입을 열었다.“난 가끔 3년 전에 지안이가 날 구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사실 네가 잘못한 것도 없지, 뭐.”이주혁이 하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전에 지안이랑 결혼하려고 했을 때도 그렇게 마음이 내켜서 하려고 한 일은 아니었잖아.”“알아주니 고맙다.”하준은 씁쓸하게 웃었다.하준은 휴대 전화를 꺼내 여름에게서 온 톡이 없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전화도 한 통 없었다.하준은 인사를 남기려다가 백지안이 결연하게 머리를 들이박던 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이 너무나 피곤해져서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말았다.----해 질 녘.전성이 소식을 가져왔다. 전성은 송영식과 이주혁을 보더니 우물쭈물 망설였다.“그냥 말하지. 다들 내 친구니까.”하준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이
사진을 받아든 하준의 몸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부르르 떨렸다.너무나 놀라웠다.아무리 해도 놈을 여름이 사주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이래도 강여름을 믿어?”송여식이 사진을 빼앗아 들고 하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보이냐? 완전히 똑같잖아. 이래도 모르겠어? 이건 강여름의 계략이라고, 네가 당한 거야!진작부터 지안이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는 널 오천으로 꾀어내서 지안이를 납치한 거지. 우리가 일찍 발견했기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었더라면 지안이는 놈에게 완전히 당했을 거야. 강여름… 어떻게 그렇게 악랄할 수가 있지.”하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주혁을 바라볼 뿐이었다.“네 생각은 어때?”이주혁은 심경이 복잡했다.“내 생각에는 영식이 말이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강여름에게는 동기도 있고, 납치범도 강여름의 사람이고. 전에도 강여름이 너에게 접근하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내가 경고한 적도 있었잖아.”“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못 믿겠냐? 너는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할 것 같으니 지안이 복수는 내가 하겠어. 내가 경찰서에 끌고 갈 거야.”송영식이 병실에서 뛰어나갔다.하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따라 나갔다.그러나 송영식이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내려갔기 때문에 하준은 할 수 없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야 했다.----이때 아무리 해도 육민관을 찾을 수 없었던 여름은 A국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양우형, 속히 귀국 요망. 육민관에게 사고 발생”문자를 보내고 여름은 차를 몰아 성운빌로 돌아갔다.마음속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2년을 알고 지냈지만 육민관은 연락이 닿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귀국해서 처음으로 완전한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육민관은 여름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오른팔이었던 것이다.차를 막 주차 시키던 참이었다.웬 자가 미친 듯 여름의 차에 달려들어 충돌했다. 여름은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받혀버렸다. 에어백이 튀어나와 보호해 주긴 했지만 온몸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이
“인정하는 거지?”송영식이 싸늘하게 웃었다.“선택지를 두 가지 주겠다. 하나는 감옥에 가는 거고, 하나는 우리 애들 손에 실컷 두들겨 맞는 거야.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끝내주겠다.”여름은 피식 웃었다.“쿠베라 후계자도 못된 인간 따위가 쿠베라의 고수들을 데려왔을 리 없지. 자신 있으면 다 같이 덤벼 봐. 어디 실력 한번 보자.”송영식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때 하준이 도착했다.하준의 차가 두 사람 코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서더니 하준이 내렸다.몸에 걸친 셔츠는 어제와 같은 것이었지만 어제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살기 등등한 얼굴이었다.송영식은 하준을 보더니 냉랭하게 웃었다.“마침 잘 왔다. 강여름이 이미 다 인정했어. 자기가 했다고. 이번에는 이 못된 인간에게 제대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 이번에는 저지른 잘못에 응당의 처벌을 받아야지.”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언제 백지안을 납치했다고 인정했어?”“납치범이 네 수하라고 인정했는데 네게 벌인 짓이 아니면 그놈이 저 혼자서 가서 납치를 했다는 거야?”송영식이 딱 집어서 말했다.여름은 인상을 썼다.‘민관이는 내 사람이니까 내 명령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사람을 납치하거나 할 애가 아니야.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한 게 틀림없어.하지만 민관이는 내내 내가 꽁꽁 감춰두고 있어서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만 그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며칠 전 호프집에서 찍힌 사진 때문에 누군가가 눈치챈 것일까?그게 대체 누구지?니아 만에 갔다는 그 젊은 남자도 백지안을 배후에서 돕는 한 패가 아닐까?혹은… 이것도 백지안의 새로운 계획일지도 모르지. 백지안의 목표는 나와 최하준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내 오른팔인 민관이를 제거하는 것이었을 지도 몰라.배후에 있는 인물이 누군진 몰라도 너무나 악랄해.’귀국 후 여름은 처음으로 한기를 느꼈다.‘내가 백지안을 너무 얕잡아봤어.지금까지 백지안의 배후에 있는 인간이 누군지 땅짐도 못 하고 있잖아.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민관이를 구출하는 거야. 민관
하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송영식의 말에 동의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준의 눈이 서서히 싸늘해지는 것을 보며 여름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하루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사람에게 흔들렸었다니.그 수많은 일을 겪고도 난 아직도 남의 말을 너무 잘 믿는단 말이야.저 사람은 내가 필요할 때는 입으로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한 마디만 물어볼게. 어떻게 해야 민관이를 풀어줄 거야?”여름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놓아줘?”송영식이 우습다는 듯 말했다.“꿈 깨시지. 지안이를 그렇게 괴롭힌 인간은 죽도록 고통을 당해 봐야 해. 겨우 보디가드에게 그렇게 촉을 곤두세우다니 둘이 무슨 관계인데 그러지?”“말 함부로 하지 마시지.”여름의 분노에 찬 경고가 끝나가 하준의 차가운 눈동자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여름은 속으로 송영식을 오천만 번 저주했다.“풀어달라? 가능하지.”하준이 매서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죽으면 풀어줄 수 있어.”“나랑 민관이는 결백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송영식의 말은 믿고 당신과 한 베개를 베고 누웠던 내 말은 못 믿겠다는 거구나. 알겠어.”여름은 눈을 내리깔아 속눈썹으로 눈에 어린 살기를 감추었다.하준은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을 칼로 에는 듯 아팠다.‘날 겨우 그런 놈으로 보는 건가? 어째서 육민관을 구하지 못해서 저렇게 목을 매는 거야?’“강여름, 너무나 실망스럽군. 난 당신이 그렇게 못된 인간인지 몰랐어.”그런 소리는 송영식에게 수도 없이 들었지만 여름은 신경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여름은 어쩔 수 없이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내가 못됐다고?3년 전에도, 3년이 지나도, 여전히 눈이 멀었군.아직도 백지안의 가면 뒤 얼굴이 안 보인단 말이야?’“지금 웃음이 나와?”송영식이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 웃겨서.”강여름은 눈가의 눈물을 닦더니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거기 서!”송영식이 바로 손으로 여름을
지난번 일로 이미 집안의 명예를 한번 더럽히기는 했지만 그건 그래도 사생활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송영식이 사적으로 사람을 처벌하고 감금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삼촌에게 크게 누가 될 일이었다.“날 잡아가고 싶다면 증거를 가져오시라고.”여름은 냉랭하게 말하더니 돌아서서 가버렸다. “기다려! 내게는 가도 좋은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하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섰다.“내가 가도 좋다고 했던가?“그래서, 날 잡아가시게?”여름이 하준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하준은 본적도 없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심장이 욱씬했다. 갑자기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지금 여름을 잡으면 두 사람 사이의 틈은 분명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점을 잘 알았다. ‘하지만 여름이가 그렇게 잔인무도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까?’“하준아, 대체 뭘 망설이고 있어?”송영식이 외쳤다.“지안이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을 잊었어?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려던 모습을 잊었냐고?”여름은 깜짝 놀랐다.‘백지안이 자살을 시도했구나. 이번에는 아주 독한 수를 썼는걸.’“나랑 지룡으로 같이 가자.”하준의 눈에 위엄이 서리더니 거칠게 손을 뻗어 여름의 손을 잡아채려고 했다.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여름이 가스총을 꺼내 하준을 겨누었다.하준은 멈칫했다. 눈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여름이 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자신을 겨누었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도 파악이 잘 안됐다.“난 당신이랑 같이 돌아가지 않아. 강제로 잡아가겠다면 쏘는 수밖에 없어.”여름의 눈은 이상스러우리만치 침착했다.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한다면 진짜로 발사를 할 것으로 보였다.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이 가득한 하준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에게 총을 쏘겠다는 건가, 지금?”“그러면 내가 순한 양처럼 끌려가야 한다는 거야?”여름의 표정은 사뭇 냉랭했다.“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끌려가서 문초를 당하고 싶지는 않다고. 다 나를 스스로
주차장.엘리베이터가 올라가자 하준은 주먹으로 세게 벽을 내리쳤다.주먹을 타고 피가 흘렀지만 하준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먹보다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여름이가… 나에게 총을 겨누다니….’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어진 것보다 더 마음 아픈 일이 있을까?‘하아….여름이가 날 사랑하기는 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야멸차게 변할 수가 있지?’“지금 이 꼴을 보고도 모르겠어? 강여름은 애진작에 변했어. 총까지 들고 다니잖아?”송영식이 분노에 차서 외쳤다.“내가 보기에는 너에게 숨기는 게 많은 것 같다. 너랑 사귀는 것도 다 거짓인지도 몰라. 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너와 지안이에게 복수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고. 아직도 이해가 안 돼?”“시끄러워.”하준의 싸늘한 시선이 송영식을 향했다.“내가 말한 건 사실이라고. 정신 차려. 누가 정말 널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지.”송영식은 그렇게 말하더니 혀를 차며 차 문을 열었다.“난 이렇게는 못 넘어가. 오늘은 도망쳤을지 몰라도 절대로 못 놔줘. 일단 나는 지금 잡아놓은 그 납치범 자식 족치러 간다.”----하준과 영식이 떠나고 얼마 뒤.임윤서가 급히 달려왔다.“민관이가 정말 최하준에게 잡혔어?”“응.”막 샤워를 마친 여름이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나왔다.밤새 잠을 자지 못해서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얘기를 들어보니 현장에서 민관이가 백지안을 마구 때리고 있었대. 백지안은 그 자리에서 더는 살기 싫다면서 자살을 시도했다나 봐.”“백지안이 꾸민 짓이 분명해. 민관이가 어디 백지안 같은 인간을 건드린 애니? 젠장.”임윤서는 홧김에 욕을 퍼부었다.여름은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문질렀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어쨌든 민관이를 계속 지룡에 둘 수는 없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어쩌려고?”임윤서가 물었다.“…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여름은 약간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민관이는 꼭 한번 만나야겠어.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결백을 밝히지.”“
게다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 중인 송연재까지 있었다.“서 회장, 이 시간이 우리 집에 웬일인가?”송우재가 허허 웃으며 물었다.“어르신,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서경주는 분개한 기색이 역력했다.“저도 이제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딸애를 데리고 좀 찾아뵈었습니다. 송 회장, 거 아들 간수 좀 잘 하지 그래.”송태구가 움찔했다. 두 아들 중 누구를 말하는 것인 것 당황스러웠다.“왜 그런….”“송영식 씨가 오늘 오후에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성운빌로 절 찾아와서 말썽을 부렸습니다.”여름이 단도직입적으로 휴대 전화를 열어 영상을 틀었다.“이건 주차장 CCTV 영상입니다. 제가 복사해 두었어요. 보시죠. 송영식 씨가 제 차를 들이받는 장면입니다.”송영식의 가족이 모두 모여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송영식이 여름의 차를 들이받더니 여름을 차에서 끌어내 멱살을 잡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뒤로는 송영식의 수하가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송우재, 송태구 등 식구들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지금 송씨 집안은 특수한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 이런 영상이 퍼져나갔다가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못 나갈 지경이었다.“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이야?”그래도 송태구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필시 무슨 원인이 있지 않겠는가?”“회장님은 그래도 이성적인 분이시지만 사정을 잘 모르실 테니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백지안이 납치당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어쩐 일인지 현장에 있었던 제 보디가드가 잡혔습니다. 그랬더니 송영식 대표는 제가 했다고 생각한 겁니다.사실 저도 대체 어째서 제 보디가드가 현장에 있었는지조차도 모릅니다. 며칠 오천에 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돌아오자마자 송영식 대표가 제 차를 들이받고 자기 수하들에게 절 잡아가라고 명령을 하지 뭡니까?”순식간에 송태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본시 쿠베라는 대대손손 엄격한 규율로 자식들을 가르쳐 성실하고 반듯한 자손들을 키워왔는데 어쩌다가 이런 망나니 같은 자식이 태어났는지 모를 일이었다.여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