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눈치 챘니?”최란이 씁쓸하게 웃었다.“네가 보이에는 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니?”최양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3년 전, 하준의 정신병원 사진이 유출된 일로 모두가 추동현을 의심했을 때도 자신을 의심했을 때 최양하만이 자신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믿었었따.나중에 그 사진이 추신 쪽에서 흘러나왔다는 정보가 들어왔을 때에야 최양하는 그것이 추동현이 벌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버지가 겉보기는 유해 보이고 세상사와는 등지고 사는 분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그러나 최양하가 아무리 물어도 추동현은 정확하게 답을 해주지 않았었다.그 동안 최양하가 FTT에서 온갖 멸시를 당했지만 추동현은 도와주겠다는 소리 한 마디 없었다. 최양하와 보내는 시간보다 추성호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추신에 갈 때마다 그쪽 식구들은 겉으로는 최양하에게 잘 해주기는 했다. 그러나 한번은 삼촌에게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어 주주로 참여하고 싶다고 했더니 삼촌은 그 프로젝트는 별로 돈이 안 돼서 외주를 부었다며 거절했다.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삼촌은 그것을 외주를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 쪽 조카에게 넘겼던 것이다.친조카보다 조카를 더 챙긴 것이다.그리고 어렸을 때 명절이라고 추신에 갔을 때 할머니 가방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탕을 보고 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해놓고서는 나중에 할머니가 몰래 추성호에게만 주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최양하도 어엿한 손자인데 말이다.나중에 최양하는 그것이 다 자기가 최 씨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추신이 국내 제2의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동안에도 최양하는 추신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이다.“어머니, 저는 정말 아버지 친 아들이 맞나요?”별안간 최양하가 물었다.최란은 흠칫하더니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네가 아버지 아들이 아니면 누구 아들이니? 네 엄마가 밖에서 다른 사람이라도 만났다는 말이니?”“그런 뜻이 아니고요. 아, 뭐. 그냥 해본 말이에요.”최양하는 그러더니 자리를 떴
장춘자가 다시 신신당부했다.“아 참, 여울이가 4살이란다. 선물 살 때 나이에 맞춰서 고르거라. 그리고 말해둘 게 있는데 내가 쌍둥이들에게 주려고 만들었던 유아실을 일단 여울이에게 내줬단다. 어쨌든 너는 당장 급하지 않잖니?”그러더니 장춘자는 전화를 끊었다.하준은 수화기를 들고 한동안 꼼짝도 않았다.‘4살이라고…?그때 강여름의 아이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그 나이겠구나.’이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백지안이었다.“준, 오늘 야근이야? 우리 같이 웨딩 사진 고르러 가기로 했잖아?”“오늘은 시간이 없네. 퇴근하고 본가에 좀 가야 해서 집에 못 가.”하준이 답했다.백지안은 입술을 깨물었다.“아직도 우리 오빠가 강여름 네 집 부순 일로 화났어? 준, 나는 정말 몰랐어. 전에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었는데도 내 말은 듣지를 않아. 미안해. 이런 오빠를 둬서 네 명예에 먹칠이나 하고….”“지안아,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말자. 어쨌든 앞으로는 백윤택이랑 거리를 좀 둬. 도저히 방법이 없는 인간이야.”하준이 말을 끊었다.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백윤택이 저지르는 짓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래,”백지안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답했다.“오늘은 정말 본가에 일이 있어.”하준은 통화를 끝내고 상혁에게 어린애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다.상혁은 하준의 집에 4살 짜리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더니 온몸이 굳어서 가만히 있었다.“뭘 멍하니 있어? 빨리 안 가?”하준이 상혁을 노려봤다.상혁은 사무실에서 나와 조용한 곳을 찾아 바로 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강 대표님, 회장님 댁에 있다는 그 여자애가….”“맞아요. 여울이에요,”여름은 할 수 없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상혁은 울상이 되었다.3년 전 여름의 ‘유산’은 최양하와 상혁이 손을 잡고 벌인 쇼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당시 하준이 여름을 밀쳤을 때 하혈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쌍둥이를 지키지 못할 뻔했으나 다행히도 쌍둥이의 생명력이 강해서 살아남았다.그러나 상혁은 하
상혁이 눈을 끔뻑거렸다.“FTT에서 제일 작은 공주님이 생겨서 노마님께서 무척 기뻐하신다던데요. 곧 아이들이 많아질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좀 샀습니다.”하준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렇다고 내 딸도 아닌데.”“……”‘그게… 회장님 딸이거든요.’----하준은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갔다.막 들어서는데 양갈래 머리를 항 여자애가 이쪽으로 막 뛰어오고 있었다.뛰어오며 소리쳤다.“나옹이가 도망갔어! 내가 잡아야지!”“뛰지 마라.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최란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여울이는 그대로 하준의 다리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이 녀석, 걸어 다닐 때는 조심해야지.”하준은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여름을 안아 올렸다.여울이 고개를 들어보니 하준의 얼굴이 보였다. 귀족적인 이목구비에 또렷한 쌍꺼풀이었다.‘어? 본 적 있는데? 며칠 전에 하늘이가 찾아서 보여준 얼굴이다.’막상 실물을 보니 사진이 영 실물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 지금까지 본 아저씨들 중에 제일 잘생겼는데?’여울은 그 사람이 아빠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빠는 늘씬해서 아무렇지 않게 입은 블랙 셔츠와 브라운 팬츠도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따.여울은 눈이 반짝였다.‘아빠는 나쁜 사람이지만 참 잘생겼다. 마음에 드는 걸.’하준도 고개 숙여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발그레한 볼이 아직 아기 티가 났다. 인형처럼 귀여운 아이였다.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친근감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마의 드레싱을 보니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그런 감정이 느껴지다니 너무 이상했다. 하준은 아이를 좋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아마도 애가 나랑 많이 닮아서 그런가 보지?양하가 낳은 애가 왜 이렇게 나랑 닮았을까?’“여울아, 괜찮지?”이때 최란이 뛰어왔다.하준을 보고 다시 여울을 보더니 나무랐다.“네 이모가 닮았다 닮았다 할 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제 보니 아주 그냥 쏙 빼닮았네.”“저는 괜찮아요. 이 아저씨가
‘하지만… 얘는 최양하의 딸이라고. 어려서부터 그렇게나 꼴도 보기 싫던… 최양하의 딸인데.내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귀여웠겠지?’하준은 지갑에서 블랙 카드를 꺼내 여울에게 주었다.“자, 큰 아빠 선물이다.”최란은 깜짝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하준이가 양하의 딸에게 이렇게까지 우호적일 줄이야? 하준이는 워낙 쌀쌀맞은 성격인데 여울이에게만 특별하네?’“이게 뭐예요? 증조 할아버지도 하나 줬는데. 하나 있으니까 됐어요.”여울은 블랙카드를 하준에게 돌려주었다.“더는 필요 없어요.”하준은 그런 여울이 마음에 들었다.‘엄마에게서 교육을 잘 받았군.’“괜찮아. 증조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고, 이건 네가 주는 거니까 다른 거야.”“받아두렴. 네 큰아빠는 아주 부자란다. 잃어버리만 말거라.”최란이 말했다.여울은 고개를 갸웃하고 잠깐 생각했다.‘뭐, 이건 받아서 하늘이에게 줄까?하늘이도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까 하나 더 받아서 하늘이에게 줘도 되겠지.그리고 아빠 거니까 내가 안 가져가면 그 나쁜 이모만 좋은 거잖아?’“알겠어요.”한껏 달콤하게 대답하며 여울은 하준의 손을 잡았다.“나옹이 찾으러 같이 가요.”최란은 하준이 안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막아주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하준은 넙죽 대답하더니 여울을 어깨에 태우고 나갔다.최민이 바나나를 하나 까면서 다가왔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녀인 줄 알겠네.”“그러게나 말이다.”----밤. 파티가 끝나고 나니 늦은 밤이었다.하준은 본가에 남아서 자기로 했다.3년 동안 하준은 본가에 거의 오지 않았었다. 그 건물에는 여름과 함께했던 추억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밤이 되어 하준은 침대에 누웠다. 아무래도 밤새 잃은 아이들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똑똑똑’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여울이 귀여운 곰돌이 잠옷을 입고 불쌍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큰아빠, 같이 자도 돼요?”“왜 아빠랑 자
“……”하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여울이가 말하는 건 비밀 금고겠지. 3년 전 이 방을 썼을 때 강여름이 비밀 번호를 설정했었지.강여름이 떠나면서 다른 것들은 다 가져갔는데 이 비밀 금고만은 두고 갔지만 아무도 비밀 번호를 몰라서 열지 못했는데.’예전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에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이 꼬맹이가 무심코 누른 번호에 열린 것이었따.“이건… 목걸이구나.”하준은 목이 잠겨서 답했다.“큰아빠 거예요?”여울이 궁금한 듯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다.”하준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짐작 가는 사람은 있네. 돌려줘야겠다.”“알았어요.”여울은 목걸이를 하준의 손에 떨어트리더니 세수하러 갔다.----아침 먹을 때가 되자 최양하가 후다닥 다가와 여울을 잡더니 속삭였다.“이 녀석아, 네가 이렇게 네 아빠한테 붙어 있는 걸 알았다가는 엄마가 엄청 화낼 걸.”“아빠! 쉿! 말하지 말아요.”최양하는 울고 싶었다.“어이구, 그래도 아직 사람들 앞에서 날 아빠로 부르는 건 안 잊었구나. 어제 만나고부터는 아주 네 눈에는 네 아빠밖에 안 보이는 것 같더니. 밤에도 자다 말고 난 버리고 아빠한테 가고… 이 녀석아 사기를 칠 거면 좀 더 조심해야지.”“삼촌, 그런 게 아니에요. 이것도 작전이라고요.”여울이 입을 비죽거리더니 천진하게 말을 이었다.“이제부터 내가 그 나쁜 이모를 혼내 줄 거예요.”“……”최양하는 골치가 아팠다.“제발 그냥 얌전히 있어. 네 엄마가 이제 곧 너랑 하늘이를 같은 유치원에 보내준대.”“잘 됐네요. 남는 블랙카드 하나 하늘이 줘야 하는데.”여울이 진지하게 말했따.“……”‘이 꼬마 녀석을 상대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어.’----곧 식구들이 하나 둘 내려와 식사를 시작했다.최정은 하준의 오른손 옆에 빌로드 보석함이 놓인 것을 보았다. 저도 모르게 슥 열어보더니 깜짝 놀랐다.“이거 이잖아?”하준이 눈썹을 치켜 세우고 물었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다행이었다. 출근시간이었더라면 온 회사 직원들이 다들 서서 구경이 날만한 미모였다.“여긴 또 왜 왔어요?”여름이 힐을 또각거리며 다가갔다. 하얀 손가락으로 하준의 차를 가리켰다.“최하준 회장님, 여기는 주차위치가 아닌데요.”최하준이 여름을 내려다 봤다. 오늘은 메이크업도 하지 않고 왔지만 여름의 미모는 여전했다. 오히려 깨끗한 피부와 청순함이 드러났다.하준은 갑자기 확 더운 느낌이 들어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저기… 이거 당신 건데.”하준이 차에서 빌로드로 싸인 보석함을 내밀었다. 열어보니 Heart of Queen이 붉은 빛을 반짝였다.여름은 깜짝 놀랐다.Heart of Queen은 하준이 동성에서 거금을 들여 여름에게 선물한 두 사람의 사랑의 증표였다.여름은 조심스럽게 가지고 있었지만 3년 전 마음을 접고 떠나면서 잊고 있었던 것이다.“예전에는 내 거였지만 이제는 아니지.”여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에 드러날 복잡한 감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따.“무슨 뜻이야?”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건 전에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선물이에요. 잊어버렸나 보네.”여름이 담담히 말했다.하준의 눈이 어두워졌다.“아마도 예전에 죽어라 생떼를 써서 나에게 사달라고 한 모양이지.”여름이 ‘하!’하고 웃었다.“마음대로 생각하셔. 어쨌든 이혼했으니 백지안에게 주시던지.”그러더니 하준을 피해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려고 했다.하준은 본능적으로 여름의 손목을 잡더니 보석함을 여름에게 쥐여주었다.“당신이 찼던 거라 지안이가 안 받을 거야. 가져가.”여름은 고개를 숙여 그 보석함을 보았다. 자조적인 웃음이 스쳤다.‘아, 백지안이 안 받을 테니 내가 다시 가져가라?’“그러시던지.”여름은 그대로 받아서 걸어갔다.그러더니 쓰레기통에 그대로 던져 넣었다.하준의 눈이 커지더니 차갑게 외쳤다.“귀한 걸 왜 그렇게 던져?”“나더러 가져가라고 했으니까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거 아닌가?”여름은 그대로 개인 전용
백지안은 철렁했던 심장이 다시 쿵했따.‘아니, 어딜 봐서 내가 겨우 직원으로 보여?’“아니, 큰아빠랑 결혼할 사람이야.”하준이 설명했다.“안녕하세요?”여울은 바로 달달하게 인사했따.“응.”백지안은 환하게 웃었다.“준, 애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네. 우리도 얼른 하나 만들어야겠어.”“그러게.”하준은 담담히 대답했다.“아마 나랑 엄청 닮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우리 아이는 너랑 더 닮았을 거야.”백지안이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가렸다.여울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고 하준의 소매를 만졌다.“큰아빠, 나중에 아가가 생기면 이제 여울이는 안 예뻐해요?”꼬맹이의 실망이 담긴 까만 눈이 하얗게 질린 얼굴과 선연히 비교되었다.하준은 심장이 뜨끔했다. 낮은 소리로 꼬맹이를 달랬다.“그럴 리가 있나? 우리 아기가 생겨도 여울이는 좋아할 거야.”“고마워요.”여울이 하준의 볼에 뽀뽀를 쪽했다.백지안은 얼굴이 굳어졌다. 겨우 서너 살 밖에 안 된 아이인데도 무의식적으로 여울에게 반감이 들었다.게다가 하준이 여울에게 보여주는 다정함은 평소의 모습과는 영 본적이 없었다.“저기, 우리 오늘….”“이거 큰아빠 밥이에요?”갑자기 여울이 물었다.“그래.”하준은 기대에 찬 여울의 눈을 보며 눈썹을 찡긋했다.“배고프구나? 먹을래?”“네, 네!”여울은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입 먹더니 곧 인상을 찡그렸다.“힝, 맛이 없다. 우리 엄마는 맛있는 것만 해줬는데.”백지안은 하마터면 유지하던 포커 페이스가 무너질 뻔했다.‘뭐야? 내가 한 밥을 먹으면서 맛 없다니?’하준은 그런 백지안의 표정은 눈치 채지 못했다. 어쨌든 속으로는 여울의 말에 매우 동의했기 때문이다.“엄마가 해준 건 맛이 있었어?”“응. 엄마가 한 보쌈이랑 아보카도 샐러드랑 감자채볶음 그런 거 다 맛있었는데.”하준은 어쩐지 갑자기 여름이 해주었던 아보카도 샐러드가 생각났다. 딱 한번 먹어본 게 다였지만 그 맛은 아직도 기억이 났다.하준은 여울도 여름의 아보
곧 FTT 식당의 주방장이 불려와서 여울이가 좋아할만한 음식을 했다.그러나 여울은 몇 입 먹다 말았다.“싫어. 엄마가 한 게 좋아. 엄마가 한 건 다 맛있는데. 깨도 많이 뿌려주고. 하지만 여울이도 이제 엄마가 한 밥은 못 먹는 거 다 알아요.”그렇게 말하는 여울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하지만 애써 참는지 우는 소리는 내지 않았다.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가 슬픔을 꾹 참으며 우는 것을 보니 하준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우리 아빠한테 가보자.”하준은 이제 정말이지 더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알았어요. 아빠한테 여름이 이모한테 가자고 해야지. 여름이 이모가 한 보쌈은 엄마가 한 것처럼 맛있거든요.”“강여름?”하준은 흠칫했다.“강여름을 말하는 거야?”‘이놈의 자식이 애까지 데리고 강여름을 찾아갔었어? 이런 뻔뻔한 자식을 봤나?’“몰라요. 어쨌든 여름이 이모는 이뻐. 내가 본 이모 중에 제일 예뻐요. 그리고 나한테도 엄청 잘 해줘요. 여름이 이모가 우리 새엄마 하면 안 돼요?”여울이 천진한 눈을 들어 물었다..“……”하준의 입술이 일자로 다물어졌다.‘강여름이 최양하의 아내가 되어 여울이 새엄마가 된다고?’생각만으로도 심장 깊은 곳에서 미친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걔들은 안 돼!”“왜 안 돼요? 난 여름이 이모가 해준 거 먹고 싶은데.”여울이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하준은 여울을 잠시 쳐다보다가 안아 올렸다.“큰아빠랑 여름이 이모한테 가서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하자.”“좋아요!”여울은 뛸 듯이 기뻐했다.----11시 반.하준은 다시 화신그룹으로 갔다.이번에는 아침에 여름에게 잔소리를 들은 경비가 하준의 차를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할 수 없이 밖에 차를 세워두고 여울을 안고 들어갔다.프론트에서 직원들이 하준이 자신과 똑 닮은 여자애를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완전히 깜짝 놀랐다. 다들 모여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세상에, 최 회장 딸이야?”“보면 몰라? 딸 맞네.”“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큰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