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일단 약은 빨리 먹어. 먹는 거만 보고 갈게.”하준도 이러는 자신이 싫었지만 십 수년간 지안을 기다리게만 한 것을 생각하면 차마 져버릴 수 없었다.“알겠어. 먹으면 되잖아.”여름은 흥분해서 돌아서더니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혀 위에 놓인 약을 보여주더니 꿀꺽 넘겼다.“이제 가!”여름은 힘껏 하준을 밀어내더니 탁하고 문을 닫아버렸다.하준은 영 속이 말이 아닌 채로 뭍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겨우 억지로 돌아갔다.그러나 하준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은 곧 눈물을 닦고 밥을 하러 갔다는 사실은 몰랐다.‘아, 나쁜 놈에게 눈물 연기 보여주는 것도 나름 힘드네.’배부르게 먹고 나서 얼마 있자 임윤서에게서 전화가 왔다.“계획은 순조롭게 잘 굴러가고 있어?”“뭐, 그런 대로. 차근차근 해야지. 그런데 내가 너무 쪼아서 백지안인 뭔 수를 쓰지 싶네. 그리고 서경재랑 서유인이 요즘 너무 조용한 것도 수상하고.”여름은 요거트에 과일을 넣고 저어서 막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참이었다.“그러면 너 혼자서 거기 있기는 좀 위험한 거 아니야?”임윤서가 걱정했다.“그래도 육민관이 있으니까.”“하긴 그러네. 그리고 양 대표도 있고, 재하 선배며 최양하도 있고. 다들 너의 수호자들 아니냐.”임윤서가 큭큭 웃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오슬란에서 일자리 오퍼가 들어왔어. 어마어마한 연봉을 제시하면서 같이 항노화 라인을 개발하자는 거 있지?”여름이 이 상황을 즐기듯 입꼬리를 올렸다.“그거 재미있네. 그쪽에서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뜨고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몸값 높은 다크 호스 조향사가 자기네가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모함했던 너라는 걸 알면 어떤 얼굴이 될지 정말 궁금하다.”“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다고.”임윤서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그러면 너도 돌아올 거야?”“아니, 일단 아시아 SE에서 강연을 의뢰 받아서 월말에 한 번 가기는 할 건데, 너네 애들은 어떡할까? 애들이 너 되게 보고 싶어 하던데.”“그것도 좋
“됐어. 내가 데리고 갈게.”하준은 백지안을 안아올렸다. 민정화가 따라갔다.차에 태우려는데 갑자기 백지안이 하준의 목을 부여잡더니 울었다.“준, 내 손 놓지 마. 날 떠나지 마. 과거가 있다고 날 건드리기 싫어하는 거 알아.”“아니야. 그런 적 없어.”하준은 마음이 고통스러웠다.“말 안 해도 다 알아.”백지안이 검지를 하준의 입술에 댔다.“나도 다 안다고. 요 며칠 계속 강여름에게 갔던 거. 나한테 출장간다고 거짓말하고…. 하지만 난 할 말이 없긴 하지. 내가 널 만족시켜 줄 수 없으니까. 너만 만족한다면 난 평생 가려진 사람으로 살아도 상관없어. 그냥 너하고 함께 있게만 해줘. 매일 아침 눈 뜨고 널 볼 수만 있다면 난 다 상관없어.”백지안이 계속 줄줄 읊어댔다.“사랑해. 난 어쩌자고 그렇게 널 사랑하는 걸까? 처음 널 봤을 때부터 완전히 널 사랑하게 되었어. 너와 한 번만 결혼할 수 있으면 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백지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준의 품에서 잠들었다.민정화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말했다.“회장님, 사실 어제 출장 가신다고 거짓말하셨을 때 얼마나 괴로우셨던지 대표님이 우시더라고요. 그런데도 회장님께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뭐든 받아들이기로 하신 것 같아요. 심지어 내연녀로라도 남고 싶다고 하시고….”“그만 해.”하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다음 달에는 지안이와 결혼식을 올리겠어.”“너무 좋네요. 하지만… 아직 이혼도 안 하셨잖아요.”“내일 당장 가서 이혼할 거야.”하준이 냉정하게 말했다.----다음날.성운빌, 아침 8시,여름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다급한 벨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어보니 입구에 여럿이 와서 서 있었다.최하준, 김상혁, 민정화, 그리고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지룡파 2명이 서 있었다.“이 기세로… 뭘 하시려고?”여름은 깊이 한숨을 쉬며 앞치마를 벗었다. 눈에는 경계하는 빛이 떠올랐다.민정화는 무표정하게 하준을 한 번 쳐다보더니
최하준은 눈을 피하면서 돌아서서 민정화에게 말했다.“혼인관계증명서는 찾아내고 이혼합의서에 사인시켜. 난 밖에서 기다리지.”그러더니 나가 버렸다.“알겠습니다.”민정화는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애진작부터 강여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여기거지 몸을 뒤지는 척하며 여름의 니트를 벗겨내 안에 입은 얇은 슬립이 드러났다. 여름은 바닥에 눕혀진 상태라 순식간에 노출이 심하게 되었다.옆에는 죄 남자들이었다. 여름은 수치심에 고개를 쳐들었다.“이게 대체….”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정화가 여름의 입을 틀어 막았다. 그저 ‘읍읍’소리가 날 뿐이었다.문정화는 하준이 들어올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입에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아무리 욕해봤자 입만 아플 뿐입니다. 저는 그냥 혼인관계증명을 찾으려는 것뿐이에요.”그렇게 말하면서 청바지를 더듬어 갔다.“이 안에 숨긴 거 아니야?”옆에 있던 지룡파 둘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미 보이는 것만 해도 꽤나 화끈한 장면이었다.여름의 흰자에 핏발이 올라오더니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어찌나 몸이 꽉 눌려있는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여름이 부끄러워할수록 문정화는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여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서두르지 마세요. 내가 하나하나 다 벗겨줄 테니까. 남자 유혹하는 게 강여름 씨 전문 아니던가? 함 해보자고요. 도와드릴 테니까.”문정화가 하는 짓을 보고 상혁은 도저히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문정화 씨, 옷 벗기러 왔습니까? 수색하러 왔습니까?”강여름을 철저히 괴롭히려던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문정화가 상혁을 한번 쳐다보더니 억울하다는 듯 답했다.“어디 몸 안에 숨겼을 것 같아서 그러죠. 내가 잘 못하는 것 같거든 김상혁 씨가 직접 해보시던 가요.”상혁은 순간 당황했다. 어쨌든 하준이 다른 남자가 여름에게 손대는 것을 좌시할 리 없었다. 이때 문 밖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문정화가 여름에게 얼른 외투를 덮었다.하준은 들어오더니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문정화의 눈에 짜증이 스쳤다. 지룡파 둘은 조용히 여름을 풀어주었다.여름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오래 눌려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하준의 다리가 움찔하더니 하마터면 후다닥 다가가서 여름을 부축할 뻔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더니 냉정한 얼굴로 합의서를 건넸다.“사인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마. 위자료는 넉넉하게 준비해 줄게. 이혼하자고.”여름이 비웃듯 웃음을 띠었다.하준은 여름을 보고 있을수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부러 더욱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나중에 질척거릴 생각이 안 들게 하려는 것뿐이야. 얼른 사인해. 나 바쁘다고.”“그래.”결심한 듯 여름이 펜을 들고 합의서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었다.가만히 사인하는 여름의 손을 보고 있던 하준은 여름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수시로 여름에게 이혼해 달라고 했었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오자 해방감이 느껴지기는커녕 문득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몰려왔다.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았다가 다시 잃어버리는 기분이었다.“자, 가져가.”여름이 건넸다. 시선은 사뭇 평온해졌다.“오후에는 처리될 거야.”하준은 서류를 들고 돌아서 가버렸다.문정화는 기세등등하게 여름을 한번 꼬아 보더니 모두를 따라 갔다.집에 조용해지자 여름은 문에 등을 기대고 손에 든 펜을 보며 웃었다.‘결국 이혼했구나.이것도 괜찮지. 어쨌든 복수하러 온 거잖아. 최하준에게로 돌아갈 생각이 아니라.’----최하준은 1층으로 내려오더니 이혼합의서를 상혁에게 주었다.“처리해.”“알겠습니다.”상혁은 문정화를 흘끗 보고는 자리를 떴다. 상혁은 은근히 여름에게 차라리 더 잘되었다고 생각했다.‘이제는 회장님과 얽히지 않아도 되시겠구나. 이미 눈이 멀어버린 우리 회장님은 더 이상 강여름 씨에게 어울리지 않지.회장님 주변에 있는 저 불여우들은 정말이지 못 봐주겠다고.’곧 이혼결과가 하준에게 통보되었다. 하준은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았다.문정화가 말을 건넸다.“회장님, 저…
여름은 담담히 웃고는 TV를 껐다.‘지금은 행복하겠지. 기다려. 결혼식 날 내가 아주 큰 선물을 해줄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맛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어.’----한편 최근 내내 세상의 온갖 악플의 대상이던 위자영, 서유인, 서경재 세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은근히 통쾌했다.특히나 위자영은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강여름, 지가 돌아왔으면 어쩔 거야? 최하준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데.”“맞아. 전에 내게서 최하준을 뺏어 가더니 결과적으로 나보다 결혼을 잘 한 것도 아니네.”서유인도 속 시원한 듯 말했다.그러나 서경재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둘이 그렇게 허구한 날 남의 가십에 열 올리지 말라고. 지금 당장 우리에게 급한 일은 어떻게 벨레스를 되찾아 오느냐 하는 문제잖아.”위자영은 태연자약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서경주는 지금 하루하루 몸이 허약해져서 곧 벨레스를 경영할 수준이 안 될 거예요. 강여름은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고요. 때가 되면 여론은 우리와 당신의 관계를 다 잊어버리고 문제삼지 않을 거예요.”서경재가 인상을 썼다.“우리 형님만 죽어주면 강여름 따위야 걱정할 것 없지. 하지만… 그 감유한이라는 사람은 정말 문제 없겠어?”“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내가 그 인간 약점을 꽉 잡고 있으니까. 그리고 벨레스 별장에는 내가 다른 눈도 심어 놔서 감유한이 발각된다면 바로 알 수 있어요.”위자영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이때 바로 전화가 울렸다.“감유한입니다. 지난 번에 주셨던 약이 없어졌습니다.”“없어졌다고?”위자영이 인상을 썼다.“이번에 한 달 분량만 주셨잖아요. 지난 번에 커피에 타려다가 너무 긴장해서 손이 떨리는 바람에 왈칵 쏟아서 커피를 다시 내렸거든요.”“내일, 늘 만나던 데.”위자영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었다.다음 날 위자영이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서 내려 교외의 외딴 창고에 나타났다. 곧 감유한도 차를 몰고 나타났다.위자영은 곧 뭔가로 싼 물건을 감유한의 손에 쥐여주었다.“6개월 뒤에는 서경
모두들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니 대표라는 사람이 조제사 하나 정도 밟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는 잘 알았다.게다가 임윤서가 정말 레시피를 표절했다면 어떻게 갑자기 국제적으로 최고로 인정받는 조제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임윤서는 실력만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송영식은 화나 가서 무릎에 올려 놓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은 시퍼렇게 변했다.“당시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이 뭔가 오해했던 모양입니다.”송영식은 한참 만에야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변명해 보았다.“그래군요.”임윤서가 시원스럽게 웃더니 놀리듯 말했다.“잘 몰랐다는 말씀 한 마디면 날 그렇게 모함해도 되는 건가요? 하지만 어쨌든 저는 송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대표님께서 제 발목을 잡아주신 덕에 제가 해외로 나가 심슨 선생님께 사사받을 기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이어서 임윤서는 화장품 브랜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풀어내기 시작했다.송영식은 발로 확 차주고 싶을 정도로 윤서가 미웠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강의 자체에 빠져들게 되었다.지금의 임윤서는 지식이 풍부해서 자기 회사의 어느 조제사 보다고 훌륭했다.포럼이 끝나갈 때쯤 기자가 질문했다.“이제 보니 생각났는데, 3년 전 임윤서 씨는 영하 그룹의 백윤택 대표를 꼬셔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지 않았습니까?”SE 한 대표의 안색이 확 번하더니 기자를 노려보았다.“어디서 온 기자인데 함부로 말 하는 거야?”“저는 사실 대로 말씀 드리는 건데요. 당시 그 사건은 매우 큰 사건이었죠. 병원에 입원도 하셨었잖아요?”기자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러나 끝까지 떠들었다.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윤서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임윤서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느긋하게 무대에서 내려와 기자에게로 걸어갔다.전혀 두려워 하거나 당황한 빛이 없었다.“그래서 사람은 힘이 있어야 해요. 사람이 힘이 없으면 잘못한 게 없어도 누군가가 권력으로 내려 찍어 누르는 경우 무자비한 폭력을 당
보도가 나가자 다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세상에, 대체 뭔 매력이냐? 벨레스 회장과 결혼해서 시동생을 가지고 놀더니 그 비서와 얽히다니, 벨레스 회장은 아주 제대로 당했네.-이거 서경재는 아는 거야? 완전 피를 토하고 있겠네.-다른 남자 더 있다는 데 500원 건다.-그래서 서유인도 바람둥이 기질 타고 나지 않았을까? 추성호도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님?-서유인 모녀가 서경주를 독살하려고 했던 일을 서경재는 모를까? 아무래도 다 알 것 같은데.- 아주 집안이 시궁창이구먼. 추신은 어쩌다가 저런 집이랑 사돈을 맺어가지고, 쯧쯧…“……”댓글을 보고 서유인은 폭발하기 일보진전이었다. 침실에 있던 컵을 냅다 집어 던졌다.“어디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이래?”마침 들어서던 추성호가 그 장면을 보고 별안간 벌컥했다.“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야? 아주 망신스러워 죽겠다고. 지난번에 나온 추문만 해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데 이제는 아주 내 평판까지 있는 대로 다 잃었어. 내가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랑 결혼을 해가지고.”“나랑 결혼한 게 뭐 어쨌다고요? 우리 벨레스가 아니었으면 추신이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나 있었고?”서유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추성호의 말에 있는 대로 약이 올라서 마구 쏘아 붙였다.추성호의 눈에 혐오스럽다는 빛이 스쳤다. 말투도 점점 무시가 짙어졌다.“뭐라는 거야? 당신 아버지는 서경재고, 보유한 벨레스 주식도 서경주와는 비교도 안 되잖아? 당신 아버지가 서경주가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았으면 애초에 결혼하지도 않았어.”“이… 이런 나쁜!”서유인이 발작적으로 베개를 잡아 추성호에게 집어 던졌다.“당신이 지금 날 칠 수 있는 상황이야? 결혼하고 몇 년 째 애가 안 생기는 거 보면 어디 나가서 다른 놈이랑 노느라고 피임하고 있는 거 아냐?”“뭐… 뭐라고?”서유인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내 말이 틀려? 내가 진작부터 당신이 어려서부터 남자들이랑 어울려 노는 거 좋아해서 집에도 안 들어 간다는 말은 듣고 있었다고. 벨레스라는
“아빠,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가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서유인이 고개를 흔들며 열심히 변호했다.“유인아, 그만 하거라. 나도 다 알아보았다.”서경재의 분노가 폭발했다.“경찰이 현장을 덮쳤을 때 네 엄마는 감유한의 옷을 막 잡아 당기고 있더란다. 백주대낮에 창고에서 말이다! 경찰에서 감유한에게도 물어보았는데 둘은 4~5년 전부터 그런 관계를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매달 평균 한두 번은 만났는데, 호텔, 차 안, 야외에서도 만났다고 하더라.”그 말을 들은 서유인은 얼굴이 백지장이 됐다.서경재는 점점 흥분해서 완전히 이성을 잃은 짐승 같은 모습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집어 던졌다. 두 눈에 잔혹한 빛이 가득했다.“날 무시하는 거야. 내내 나 같은 병신을 우습게 알았던 거지.”서경재는 자신의 두 다리를 마구 내리쳤다.“나는 위자영을 위해서 강신희까지 죽였는데! 위자영 때문에 식구들 모두와 맞서고 오명을 뒤집어 썼는데, 나한테 감사하기는커녕 날 도구로 이용해 먹었어.”서유인은 깜짝 놀랐다.“가…강신희를 아빠가 해치웠다는 게 사실이에요?”서경재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나는 네 엄마를 좋아했다. 하지만 네 엄마는 서경주를 사랑해서 죽어도 서경주와 결혼하고 싶어했어. 난 네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내가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래서 서경주와 네 엄마가 같이 하룻밤을 지내도록 만들었지. 사실 그날 밤 서경주는 네 엄마를 건드리지도 못했따. 하지만 네 엄마는 아이를 가져서 서경주와 결혼하고 싶어 해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어.”서유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엄마는 정말 미쳤어….’서경재가 한탄했다.“기상국에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태풍의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가 일부러 태풍이 몰아치는 시기에 강신희에게 전화해서 형님이 외국에서 술에 취해 사람을 다치게 만들어 놓고 계속 강신희의 이름을 부른다고 말해서 강신희가 당장 그곳으로 무리해서 달려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