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여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어느 셰프 솜씨인가요?”“아니야. 내가 오전 내내 집에서 만든 거야.”하준이 조그맣게 말했다.동성에서는 당신이 나에게 잘해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당신을 따라다닐게.”여름이 비웃었다.“정말 여자 마음을 흔들 줄 아시네요. 백지안 사귈 때 하던 솜씨인가 봐요?”“믿거나 말거나 당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밥 해줘 본 적 없어.”하준이 여름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 주었다.“먹어 봐.”“안 먹어요.”여름이 성질을 부렸다.‘먹고 싶으면 자기나 먹던지 왜 남한테 먹어라 마라야?’“허니, 정말 너무 하네. 자기도 전 남친은 있었으면서.”“그런 식이라면 나도 한선우 닮은 남자 하나 구해서 내 비서로 쓰게요. 그래도 되나요?”여름이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역시나 하준의 눈에 불만이 어린 것을 보고 여름은 웃었다.“거 봐. 내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니까.”“미안해.”하준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지다빈 문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짓 안 해”“최하준 씨, 우리에게 이제 ‘앞으로’는 없어요.”강여름이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하준이 얌전히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당신이 이거 안 먹으면 나 절대로 안 나가.”여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준을 쳐다봤다. 하준이 이 정도로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몰랐다.“자, 자, 빨리 와 봐.”하준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가 갑자기 물었다.“당신 혹시 근시야?”“아니거든요.”“그런데도 내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 게 당신 눈에는 안 보여?”하준이 그 섹시한 입술로 시옷을 만들며 물었다.“……”여름은 기함했다.‘뭐야? 이거 완전히 내가 처음에 최하준 유혹할 때 하던 말 같잖아?’여름이 입술을 씰룩거리자 갑자기 하준이 검지 손가락을 여름의 입에 댔다.“아무 말도 하지 마.”“……”그러더니 한숨을 지었다.“당신이 아무 말도 안 하는데도 내 머릿속에는 당신 목소리만 들려, 어떡하지?”“……”‘뭘 어떡해? 당신
‘여하간 love라고?’여름은 놀라서 딸국질을 했다.“왔어? 내가 새로 넣어 놓은 닉이야.”하준이 찡긋해 보였다.“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다 당신한테 배운 짓이지.”“……”여름은 예전에 자신이 하준을 꼬드기려고 엄청 노력하던 시절 ‘하여간 love’가 생각났다.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하염없이 부끄러웠다.‘내가 그땐 완전히 정신이 나갔었지.’“잘 보고 서명해.”정신이 들도록 하준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여름이 흠칫해서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나 최하준이 잘못을 저질러 무기징역에 처해진다면 강여름의 마음속에 영원히 갇히겠습니다.’하준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헛기침을 했다.“마음에 들어?”변호사로서 아마도 최하준은 가장 로맨틱한 말을 쥐어짜낸 것이리라.여름이 하준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뭐 해?”“열 있나 보게요.”하준이 정색했다.“나 참, 이 문구를 생각하느라고 내가 밤새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아? 회사 일도 안 하고….”여름은 속으로 풋 하고 웃었다.‘그러니까 시가 총액이 그 어마어마한 그룹을 경영하시는 분이 몇 시간 동안 이딴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아 몰라, 이게 다 당신이 내 와이프라서 그런 거잖아.”하준이 도시락을 정리했다.“밤에 일찍 퇴근해. 내가 밥해놓고 기다릴게.”“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소영이랑 밥 먹고 마사지 받으러 갈 거거든요.”하준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돌아보며 한마디 하려는데 여름이 먼저 말을 막았다.“나랑 소영이가 가까이 지내지 못하게 만들고, 소영이 욕을 하고 싶겠지만 내가 보기에 걘 의리 있고, 대범하고, 착하고, 가식이 없어요. 장점투성이야.”하준은 정말이지 여름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열어서 꺼내 보고 싶었다.“완전 백소영에게 세뇌당했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가 완전히 세뇌당하고 싶다면 어떨 건데요?”여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뭐, 또 당신 친구들 불러서 날 해코지라도 할 셈인가요?”“그게 무슨 소리야?”
“야, 최하준. 너 강여름 때문에 나한테 지적질하는 거 이걸로 벌써 두 번째야.”송영식이 짜증을 냈다.“다빈이는 지안이 동생이잖아. 이제 지안이도 없는데 이제는 내가 어떻게든 그 집 식구들 도와주고 싶다고.”“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지다빈이 자꾸 선 넘는 것도 슬쩍슬쩍 봐주고 그랬던 거야.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백윤택 하는 짓 봐라.몇 년 전 백윤택은 사람을 해쳤어. 모든 증거가 백윤택을 가리키는 상황인데도 나는 국민적으로 욕 들어 먹을 각오를 하고 변호를 맡았어. 그 일을 겪고 나서 난 내 직업에 강한 회의감이 들어서 법조계에서 물러나려고 했지. 그동안 윤정후가 날 죽이려고 하는 것도 내버려 둔 거 너도 다 알잖아?”“……”송영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하준은 여름의 손을 꼭 쥐었다.“백윤택을 4년이나 돌봐주었어. 심지어 지다빈네 가족 기업인 이서가 영하에 압박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직접 영하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지. 그런데 이제 그것 때문에 내 결혼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었어. 사람은 앞을 보고 살아야지. 난 이제 더는 백지안에게 목매고 평생을 끌 다니고 싶지 않다. 그건 내 와이프에게 너무 불공평해.”송영식은 불만스러운 듯 이를 물었다.“지안이는 죽었어. 혹시… 나보다 네가 더 지안이를 좋아했던 거 아니냐?”송영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제 들켰군.’“네가 아직도 내 친구라면 앞으로는 내 아내를 좀 더 존중해 주기 바란다.”그러더니 하준은 전화를 끊었다. 여름은 너무나 똑바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하준의 시선에 조금 당황했다.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예전에 하준이 국내 최고의 변호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법조계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그게 백윤택 때문인지는 몰랐다.‘게다가 송영식이 백지안을 좋아했다니?이게 무슨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같은 상황이야?’“자기야, 나는 이제 당신을 위해서 과거는 잊고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고 싶어.”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최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네 할아버지는 이미 현역에서 물러나셨잖니? 경고하는데 이렇게 일을 극단적으로 처리하지 마라. 그러다가 내가 너무 한다고 원망하지도 말고.”“저한테 뭘 어떻게 너무 하실지는 잘 압니다. 하지만….”하준이 갑자기 리모컨을 누르니 벽에 큰 스크린이 나타났다. 화면 속에는 FTT 이사들의 얼굴이 보였다.“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화상 이사회의 중이었거든요. 방금 하신 말씀을 다른 이사들이 다 들어버렸네요.”그중 가장 나이가 지긋한 주 이사가 입을 열었다.“추신에서 그 프로젝트로 그렇게 많이 벌었으면 투자한 우리 몫도 적지 않은 것 아니오? 최란 부회장이야 뭐 돈이 많으니 그까짓 푼돈… 싶은지 몰라도 우리는 안 그렇습니다. 회수할 이윤은 회수해야지요.”권무영 이사가 묘한 말투로 끼어들었다.“추신이 시댁인 건 우리도 이해하니 그 동안 뭐 어느 정도 보고도 못 본 척 해왔는데 이윤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났는데도 수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죠.”모 이사도 콧방귀를 끼며 거들었다.“우리 아들 보니까 그렇게 죽도록 프로젝트팀에서 수십 년을 일해서 쥐어짜도 몇 푼 안 남던데 추신은 그 많은 FTT 자본을 가져다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어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벌어들였으니, 이거 뭐 FTT에서 죽 쒀서 개 주자는 것도 아니고….”주 이사가 다시 말했다.“얼마 전에 최양하가 추신에다가 또 새로 프로젝트 만들어 주면서 거액의 이윤을 넘겨주려던 걸 최 회장이 중지시켰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FTT 손해가 아주 천문학적일 뻔했어.”모 이사가 불만스럽게 말했다.“우리는 그렇게 추신에게만 충성하는 부회장은 원치 않습니다.”최란은 점점 얼굴이 창백해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FTT를 경영한 지 수십 년인데 이사들이 최란에게 이렇게 따박따박 찔러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여러분, 제가 예전에 추신을 지원해 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최하준 회장이 추신에 청구한 금액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주
“어리석은 짓 말아요. 추신이 하준이와 소송을 한다면 절대 이길 수 없어요. 법률 방면에서 하준이는 전문가가 아닙니까? 하준이를 상대로 장난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최란이 카드를 추동현의 손에 쥐여 주었다.“나도 회사 경영하는 사람이에요. 상장 회사에 현금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알아요. 추신에 현금이 돌면 그때 돌려주세요.”“고마워요.”추동현이 최란을 꼭 안았다.최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때 최대범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디냐? 할 말이 있으니 당장 건너오거라.”“네….”“혼자서 와.”최란은 흠칫 놀랐다.1시간 뒤 최란이 거실로 들어섰다.“아버지,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지금 가진 현금이 얼마나 되니?”최대범이 예리한 눈으로 최란을 쳐다 봤다.최란은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서 입술을 핥았다.“얼마 없어요. 다 투자해서요.”최대범이 천천히 일어섰다.“네 연봉이며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내가 제일 잘 안다. 현금을 최다 네 남편에게 줬다는 소리는 하지 말거라.”최란이 불만스럽게 답했다.“하준이가 지금 추신을 압박하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추신에 어디 그렇게 많은 현금이 있겠어요?”“그래서, 정말로 네 수중의 현금을 죄다 줬어?”최대범이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네.”최란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대범이 소리를 질렀다.“이 어리석은 것!”“아버지…..”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추동현과 결혼한 일 말고는 아버지로부터 칭찬만 받고 자랐었던 최란은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똑똑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어째 이렇게 머리가 클수록 바보가 되는 게냐?”최대범이 파일 하나를 툭 던졌다.“네가 직접 보거라. 최근 추신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다. 추신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최근 죄다 외부에 투자해 버리고 지금 남은 건 1/10도 안 된다.”그 자료를 들여다 보던 최란은 깜짝 놀랐다.추신이 그렇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몰랐다.시부모들은 늘 최란에게 자금 유동
정신을 차렸을 때는 추동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동현 씨, 아까 그 카드 잠깐 다시 돌려줄 수 있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추신 건은 내가 아버지랑 잘 얘기해서 하준이를 막아 주기로….”“미안해요, 여보. 내가 이미 성호에게 주었어요.”추동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성호가 방금 그걸 출금해서 FTT에 전달했다고 하더라고."“……”최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목구멍이 뭔가로 꽉 막힌 듯했다.“괜찮아요, 여보. 내가 하준이에게 그 돈을 당신에게 돌려달라고 할 게요”추동현이 웃었다.“우리 추신을 이렇게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랑해요.”예전 같았으면 최란은 그 말을 듣고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등에서 식은 땀이 났다.“동현 씨, 그동안 추신의 비즈니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던데 현금 줄이 그렇게나 말랐었나요?”“어쨌든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아마도 날 속이진 않으셨겠죠.”최란은 이제 슬슬 이해가 됐다. 추신에서는 추동현까지도 속이는 것이었다.‘동현 씨가 날 속일 리는 없으니까.”******사무실.통화를 마치자마자 추동현의 우아한 얼굴에 싸늘한 비웃음이 번졌다.추동현은 휴대폰을 툭 던졌다.추성호가 비위를 맞추듯 웃었다.“작은 어머니가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진 않네요. 최하준에게 그 돈 내주기가 딱 아쉬운 참에 그렇게 큰 돈을 우리에게 턱 내주시다니요, 하하하. 어머니 돈으로 아들에게 비린 돈을 갚다니 최하준이 알면 머리끝까지 화가 나겠어요.”“이 정도면 그 사람도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다.”추동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상관 없어요. 어쨌든 우리 추신의 굴기는 이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추성호가 웃었다.“삼촌은 정말 대단하세요. 혼자 힘으로 우리 추신을 여기까지 끌어올리시다니.”“그래, 이제 곧 유인이와 결혼이지? 혼인이 성사되어야 양가가 이제 제대로 한 배에 올라타게 되는 거다.”“그럼요. 앞으로 제가 벨레스를 차츰차츰 먹고 나면 우리 추신이 이제 우리 나라 최
백소영은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확 가라앉더니 벌떡 일어 서려고 했다. 여름이 소영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저 따위 소리를 듣고도 참는다고?”백소영이 여름을 돌아보았다.“급할 거 뭐 있어? 일단 다 씻고 얘기하자.”여름이 두 눈을 감으며 등을 기댔다.20분 뒤, 지다빈이 친구 셋을 데리고 목욕 가운을 입고 탕에서 나왔다. 이때 여름과 백소영이 앞을 막아섰다.“어머, 왜 이러세요? 사람 괴롭히시려는 건 아니죠?”지다빈은 당황한 듯했다.뒤에 있던 키 큰 친구가 앞으로 나섰다.“이거 보세요. 바람이 났으면 남편부터 간수하세요, 괜히 여기 와서 이러지 마시고요. 꼭 자기 남자 냅두고 여자한테 와서 이러는 사람들 있더라.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라고요.”백소영이 싸늘하게 노려봤다.“유유상종이라더니, 똑같은 것들끼리 노는구먼.”여름은 헛웃음이 나왔다.“난 그냥 골드 카드 받으러 온 거예요. 나랑 최하준 씨는 부부니까 배우자의 재산은 우리 공동 소유물이거든. 그러니까 최하준 씨가 당신한테 준 우리 재산에 대해서 나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어요.”“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제 돈은 제가 번 거예요.”지다빈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지다빈, 너 어쩌다가 애가 이 모양이 됐냐? 전에는 애가 그렇게 성실하고 분수도 잘 알더니. 너 18살 생일에는 백지안이 준 다이아 목걸이도 안 받았잖아. 너무 과하다면서.”백소영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언니, 저는 내내 변한 거 하나도 없어요.”지다빈이 눈시울을 붉혔다.백지안 찌릿하고 지다빈을 노려보았다.“됐고, 그 골드 카드 안 내놓으면 경찰 부를 거야.”여름이 한숨을 쉬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일단 경찰 와서 당신이 내 남편 카드 가지고 있는 거 확인하고 나면 난 절도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자신 있으면 최하준 씨 부르시던가.”막 신고 전화를 누르는 여름을 보더니 지다빈이 입술을 깨물더니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신고해 보세요. 이건 송 대표님이 저한테 주신 거거든요. 불러서 증
“마사지는 안 받을래. 급한 일이 생각났어. 먼저 가볼게.”여름은 후다닥 옷을 갈아입더니 집으로 차를 몰았다.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하준이 자기 집 소파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자기 마사지 받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일찍 왔네?”하준이 노트북을 내려 놓더니 일어났다.“밥 먹었…?”“동성에서 나중에 강여경 본 적 있어요?”여름이 하준의 말을 끊었다.“갑자기 그 사람은 왜?”하준의 조금 덤덤해져서 물었다.“강태환 부부가 수감되고 나서 강여경이 갑자기 실종됐거든요. 혹시 당신이 관련됐던 건 아니에요?”여름이 하준을 똑바로 쳐다봤다.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내가 손을 좀 봐줬지, 강여경은….”하준은 갑자기 찌르는 듯 머리가 아팠다.“아아… 내가 어떻게 했지?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안 나.”여름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간 하준의 기억력은 내내 문제가 없었는데….“김 실장에게 전화해서 물어 보지. 그 친구는 다 알고 있을 거야.”하준이 상혁에게 전화 걸었다.“어, 혹시 전에 강여경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 나나?”“시골 어디 두메산골에 보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상혁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여름이 전화를 빼앗았다.“그 동네가 어디에요?”“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집에 들여보내 놨습니다. 평생 눈에 띄지 않을 겁니다.”상혁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사모님….”“여러 소리 말고 한번 조사해 주세요.”여름이 꽤나 강경한 말투로 부탁했다.“알겠습니다.”상혁은 마지못해 대답했다.통화가 끝나자 하준이 불만스럽게 물었다.“집에 오자마자 강여경 일은 왜 물어?”“당신이 한 일인데 그럼 당신한테 물어야죠. 왜 기억을 못한담? 그리고, 갑자기 두통은 또 무슨 일이래?”“어? 나한테 관심 가져 주는 거야?하준의 눈이 반짝하더니 손을 뻗어 여름을 안았다.“이럴 줄 알았어. 당신은 날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최하준, 이거 놔요. 마음에 두긴 누가….”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