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말아요. 쓸데없는 생각 안 하니까. 지금은 우리 아버지 말고는 다른 생각할 틈도 없어요.”여름이 담담히 말을 끊었다.하준은 여름이 백지안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여름은 하준의 마음속에 얼마나 백지안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지 잘 알았다.‘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이제는 미워해 봐야 소용도 없어.산 사람은 영원히 죽은 사람과는 다툴 수도 없잖아.’“…뭐, 그러면 다행이고.”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준의 마음은 무거웠다.여름이 오해할까 봐 걱정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또 불편했다.‘쓸데없는 생각을 안 한다니, 날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가?’하준은 여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속에서 초조한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나가서 담배를 피웠다.30분쯤 지나서 돌아와 보니 여름이 서경주에게 물을 먹이다가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돌아보다가 눈을 마주치니 시선을 돌렸다.하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30분씩이나 나가 있어도 뭘 하고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왜 이렇게 쌀쌀맞지?’그러나 서경주의 상태를 보니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닌 듯했다.그래서 헛기침하고는 먼저 말을 걸었다.“방금 주혁이한테 말 넣어 놨어. 간병인 붙여서 아버님 좀 봐달라고 부탁했어. 그리고 해외 권위 있는 해당 분야 전문가랑 상의도 해볼 거야….”******“고마워요.”여름이 진심으로 인사했다.“고맙기는, 내 아내인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여름이 너무 격식을 차리니 섭섭한 듯 하준이 부루퉁했다.“그나저나 위자영이 의심스러워서 그렇게 아버님 간병 직접하겠다고 고집부린 겁니까?”“네. 아버지가 나에게 주식 양도하려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위자영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뒤에 위지웅 같은 사람까지 끼고 있으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거든요.”“확실히 그렇지.”하준이 동의했다.“이미 사고 원인은 사람 풀어서 조사해 보고 있어요.”여름은 생각에 잠겼다
“궁금해서 그래요.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 안 하고… 참을 수 있어요?”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애매하게 여름을 쳐다봤다.“참을 수야 있지. 당신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혼자 해결했는데.”“…전 여친도 있었으면서?”여름은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다 알아도 말 안 하고 있는데 사람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하준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한참 만에 복잡한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나는….”여름은 더는 듣기도 싫어서 화제를 바꾸었다.“남자가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한다는 건 밤일이 안 되거나 아니면 마음에 둔 누군가가 있는 거겠죠. 아무래도 서경재가 위자영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설마.”“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예요?”여름이 미간을 찌푸렸다.“여자의 직감은 정확하다고요. 어려서부터 장애가 있는 경우 어떤 사람은 밝고 낙관적으로 자라고 어떤 사람은 장기적으로 어두운 성격이 된대요.”“어쨌든 당신 추측일 뿐이잖아. 증거가 있어야지. 하지만 아버님을 해친 사람은 의식 회복하실까 봐 걱정이거나 어쩌면 직접 손을 댈지도…”“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잡으려고 누가 손을 뻗을지 기다리는 중이에요.”여름은 의미심장하게 하준과 눈을 맞추었다.‘역시 내 와이프야. 이 복잡다단한 권력관계를 다루어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성장이 빠르군.”******다음 날, 새벽.상혁이 조사 결과를 가지고 왔다.“서 회장님을 들이박은 화물차 기사는 깨끗합니다. 그 도로에 커브가 있었는데 서 회장님께서 탄 차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들이받았습니다. 검시 결과 회장님 운전기사 위에서 상당한 양의 마약이 발견됐습니다.”“기사가 마약을 하고 환각을 일으켰나요?”여름이 깜짝 놀라 물었다.“사고의 주요 원인이 그겁니다. 하지만 검사를 진행했던 의사 말로는 장기 복용은 아니라고 합니다. 잘못 복용했을 수 있는데 사망해서 생전에 누구와 접촉했는지, 누가 먹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위지웅 쪽도 조사를 했습니다만,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어
“……”‘갑자기?동성에 있었을 때 같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여름이 순간적으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가?”“사랑해요, 사랑해. 얼른 출근이나 해요.”여름이 하준의 등을 떠밀었다.여름의 뒷모습을 보는 하준이 눈빛이 무거워졌다.하준도 바보가 아닌데 뭔가를 숨기는 듯한 말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회사에 도착했다.하준은 짜증스럽게 검색했다.Q: 왜 여자가 질투하지 않나요?A1: 성격이 독립적이라 연애도 지적으로 분석하며 자제력이 강한 경우A2: 자아가 단단해 상대를 믿고 매우 신뢰하며 이해하는 경우A3: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경우“……”‘A3는 뭐야?’하준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탕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상혁이 걱정스러운 듯 들어와 하준을 한 번 쳐다봤다. 요즘 최하준의 성질이 늘어서 걱정하던 참이었다.‘이해가 안 되네. 요즘 신혼이라 한창 깨를 볶을 때인데 왜 이렇게 화를 내시지?’하준의 병세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상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한편, 큰 사무실에서 여름은 벨레스 주식 동향을 보고 있었다.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서경주에게 사고가 났으니 오늘 벨레스 주식은 큰 폭으로 떨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주식 상황이 꽤 안정적이었다.그렇게 보니 서경재가 점점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한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윤서에게서 전화가 왔다.“나 어디 있~게?”“지친다, 그냥 말해라.”“그래. 나 지금 너희 회사 주차장 들어가는 중. 아빠 사고 났다며? 속상할 것 같아서 내가 유명한 달달이 가게에서 디저트 사 왔지.”윤서가 웃었다.“최하준이 그 정도로 널 다정하게 챙겼을 것 같지 않아서.”여름은 움찔했지만 바로 답했다.“올라오지 말고, 당장 차 돌려서 나가!”“야, 강여름. 섭섭하게 왜 이래? 너 위로해 주려고 일부러 멀리까지 가서 달달이까지 사 왔는데. 차까
윤상원이 반짝이는 윤서의 모습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무래도 윤서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뭐, 보아하니 만난 것 같네.”휴대폰 저쪽에서 여름의 한숨이 들려왔다.“어제 너 찾는다고 왔었거든. 얘기 잘해 봐.”“그, 그래.”윤서도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랜만이야’하는 눈빛으로 전 남친을 올려다봤다.“왜 서울로 이직했다고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해줬어?”윤상원이 쓴웃음을 지었다.“전화도 톡도 다 차단했더라. 그렇게까지 난리를 치고 아직도 화가 다 안 풀렸어?”“난리를 쳐?”윤서의 마음이 차게 식었다.‘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내가 짜증 난 줄 알고 말 몇 마디면 달래질 줄 알았나 보네?’“그래,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반성했다니까. 몇 달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화를 내면 어떡해? 돌아가자. 내가 네 부모님 찾아뵙고 사과 드리고 나서 바로 결혼하자.”윤상원이 윤서의 손을 잡았다.윤상원에게는 윤서가 없는 삶이 너무 낯설었다.예전에는 연애가 소중해서 일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윤서를 만나곤 해다.그러나 윤서가 떠나고 나서 가끔 시간이 남으면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공허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졌다.그러나 전에는 윤서를 제대로 아껴주지는 못했다.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난 돌아가지 않아.”윤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지금 오슬란에서 일하는데 전망도 좋고.”윤상원은 깜짝 놀랐다.“동성에서도 잘살고 있었잖아?”“……”윤서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대체 얼마나 나한테 관심이 없었던 거야?’“전에는 내가 오빠 때문에 동성에 있었던 거지.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어. 아직 젊은데 넓은 세상을 더 봐야지. 결혼도 하기 싫어. 내가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는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이제 그만 해라. 그렇게 나하고 결혼하고 싶다더니….”“이제는 결혼 같은 거 하기 싫다니까.”윤서가 말
윤서는 화가 나서 팔짝 뛸 지경인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돌아보니 그 잘난 송영식이 건방진 미소를 장착하고 다가왔다.“어젯밤까지만 해도 나만 사랑한다더니 오늘은 다른 사람이랑 밀당입니까? 난 가지고 논 거예요, 자기?”송영식이 야릇한 소리에 윤서는 소름이 돋았다.“누구야? 무슨 사이야?”윤상원이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를 보더니 안색이 확 바뀌었다.경계심에 확 불이 들어왔다. 상대가 자기보다 못하다면 관심을 껐겠지만, 송영식은 키도 크고 기품 있고 카리스마까지 풍기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한눈에도 보였다.윤서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리더니 갑자기 송영식에게 팔짱을 꼈다.“내가 깜빡하고 말을 못 했네. 여기 내 새 남친이야. 인사해.”송영식은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어? 이게 아닌데? 남친이 아니었나? 더 싸우다 헤어지라고 끼어들었더니 이거 도와준 꼴인가?’“말도 안 돼.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윤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런 식으로 날 자극하려는 거지? 그래, 충분히 마음 아팠다. 우리 이제 그만 하고 집으로 가자.”“우린 이미 헤어졌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윤서는 송영식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봐봐, 얼마나 사람이 우아한가? 품위 있지, 매력 있지 누구나가 꿈꾸는 애인이라고. 예전에는 이 세상에 오로지 윤상원밖에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근사한 남자들이 너무 많은 거야. 이제 더는 윤상원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송영식은 멍한 기분이 되었다.‘아니, 얼마 전에는 나한테 그렇게 욕을 욕을 해대더니?거지 같다며?구리다며?말이 머리를 안 거치고 막 나오는 거야?’“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윤상원이 아무리 해도 못 믿겠다는 듯 서글프게 고개를 저었다.“아직도 나랑 아영이 때문에 화가 나서 질투심을 유발하려는 거라면….”“거짓말 아니야. 난 진짜 이 사람 사랑해. 못 믿겠다면 보여주지.”윤서는 그대로 넥타이를 홱 잡아채더니 발끝을 바짝
방금 전까지 키스하던 여자가 뭔가 더러운 것이라도 묻었다는 듯 입술과 얼굴을 문질러 닦는 게 아닌가.“임윤서 씨….”송영식은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티슈라도 드릴까요?”윤서가 휴지를 한 장 건넸다.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송영식이 홱하고 휴지를 채가서 입술을 박박 문질렀다.“더럽게!”“이하동문이네요.”윤서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키스라니 정말 참을 수 없군요.”“……”‘난 지금 네 얘기 하는 거야. 알아듣고 그런 소릴 하는 거냐?’송영식은 화가 나서 애꿎은 휴지에 화풀이를 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플 지경이었다.“울긴 뭘 웁니까? 그렇게 아쉬우면 뭐 한다고 그러고 못된 소리를 해요?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니냐고?”“여자친구 없죠?”임윤서가 갑자기 물었다.“키스 되게 못 하시던데, 설마 첫 키스였어요?”“아니, 이 사람이 진짜….”팩트를 저격당한 송영식은 임윤서가 자기를 모욕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해서 말투가 사뭇 곱지 못했다.“맞나 보네.”폭주하는 송영식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가식 좀 떠는 것도 못 받아 주면 여자친구 못 만든다고요. 알아두세요.”송영식은 이를 꽉 물었다.“이봐요, 방금 내가 좋은 마음으로 도움까지 줬는데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습니까?”“내가 와 달라 그랬나요? 자기가 먼저 와서 남 오해하기 좋게 나더러 ‘자기야~’ 했으면서. 무슨 생각하고 그랬는지 내가 그 시커먼 속을 모를 줄 알아요? 도와주기는 개뿔….”윤서가 콧방귀를 끼고 돌아서는데 막 마중 나온 여름을 만났다.여름은 뒤에 서 있는 송영식을 보더니 흠칫했다.“둘이….”송영식이 ‘허!’하더니 뭔가 잘못한 게 있는 사람처럼 돌아서서 가버렸다.“……”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내가 잘못 봤나? 어째 송영식에게서 츤데레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둘이 또 싸웠어? 윤상원은?”“갔어. 이번에는 진~짜로 해어졌어. 이제 다시는 찾아
“항상 4인분을 하는데도 하준 씨가 다 먹어버리던데요.”여름이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냈다.이진숙은 희한하다는 표정이었다.“그게 사랑의 힘인가 봐요. 내가 어려서부터 회장님을 모셨는데 진짜 식욕이 없거든요. 좋아하는 게 없는지 하루에 한 그릇도 제대로 안 드시곤 했어요.”“……”사실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여름은 이진숙의 말씀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되돌아 보니 하준은 동성에 있을 때 여름이 해준 음식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말로는 그냥 그렇다고 말했었다.‘어휴, 츤데레.’어쨌거나 여름도 자기가 한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어서 좋았다.“이따가 원래 얼마나 잘 먹는 사람인지 보여드릴게요.”여름은 삼겹살을 실로 묶기 시작했다.삼겹살을 삶는 것은 시간이 걸렸다.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다.그러다가 오늘 저녁 검색 수 상위권에 있는 는 헤드라인을 보고 여름은 깜짝 놀랐다.좋지 않은 예감이 불쑥 올라왔다.여름의 심장이 심하게 떨렸다. 기사를 내려 사진을 보았다.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 몇 장 있었는데 얼굴 생김새가 완전히 하준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 중 한 장은 하준이 손에 칼을 들고 얼굴과 손이 온통 피에 물든 모습이었다. 어린아이인데도 눈을 미친 듯이 부릅뜬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경찰에게 체포된 사진과 하얀 옷을 입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진도 있었다.-그런 병이 있대. 우리 동네에도 저 병 때문에 살인한 사람 있었어. 완전 무서워-개무섭. 자기 유모를 죽인 거임? 완전 도랏!-아니 왜 안 가둬 두고 정신병원에서 내보낸 거임? 또 사람 해치면 어떡해? 저런 병은 계속 약 먹어야 재발 안 한다던데…-지금 여하그룹 만들었다며? 저런 정신병자가 회사 경영해도 되는 거야?-와이프는 쟤 환자인 거 아나
여름은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 서재 책상 서랍을 열어 약병을 꺼내 보았다.얼른 검색해보니 그중 2병은 신경안정제와 향정신성 약물이었다.‘그 뉴스가… 진짜야?자기를 돌봐주던 유모를 죽이고 날 그렇게 해쳤으니 앞으로도….’온몸이 떨렸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사모님, 회장님이 안 오시는데 전화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이진숙이 올라왔다가 여름의 손에 들린 약병을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그 약은….”“하준 씨 어려서부터 자라는 거 다 봤다고 하셨죠? 그러면… 정신질환 있는 것도 다 아셨어요?”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이진숙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그게….”“지금 인터넷에 다 떠돌아요.”여름이 휴대폰을 열어 보여주었다.“이게 다 사실이에요?”이진숙은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누가 이런 걸… 너무 하네. 사모님, 회장님을 믿으셔야 해요. 회장님은 좋은 분이세요.”“하지만 평소에도 성격이 폭력적이고 화도 잘 내고 극단적이잖아요. 그리고 이 약이 그 증거 아닌가요?"여름은 약병을 꼭 쥐고 중얼거렸다.“사실 나는 평소에도 너무 무서워요. 그때 하준 씨에게 다치고 나서는 너무 두렵다고요. 그냥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그래요. 말씀드릴게요. 다른 사람들처럼 회장님을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이진숙이 한숨을 쉬었다.“그게 회장님이 8살 때 발병했어요. 그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예요. 어머님은 도련님(우리 회장님 말이에요.)을 본체만체했고 할아버지는 사업에만 몰두하는 차가운 분이셨죠. 할머니는 도련님을 아껴주셨지만 돌봐야 할 자식도 많고 손자도 많았죠. 게다가 접대에 교제에 바쁘셨으니 도련님 신경 쓸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 유모가 도련님을 학대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거예요.”“학대요?”여름은 깜짝 놀랐다.그래요. 도련님은 어렸을 때 불안이 좀 높아서 툭하면 울고불고했거든요. 사실 그냥 어린애잖아요. 그런데 유모는 그게 짜증 났던 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