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지. 강신희가 어떻게 죽었는지 잊었어?”“알겠어.”위자영이 눈이 다시 표독스럽게 빛났다.“나를 손절하겠다니 어쩔 수 없지.”“그럼.”*******새벽.여름은 아침 식사 후 출근을 준비했다. 막 문을 나서려는데 하준이 화이트 팬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따라왔다. 그을린 피부가 성숙한 매력을 드러내고 있었다.오늘은 펜트하우스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 공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여름이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의 금속 벽에 비친 하준의 모습을 흘깃 쳐다봤다.‘이 사람은 정말 뭘 입어도 너무 근사하단 말이야.’“왜 따라와? 옷 갈아입고 출근해야 하지 않아요?”“배웅.”애교스러운 하준의 저음에 여름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말았다.출근 시간이라 오르락내리락 사람이 많았다. 아침은 특히 젊은 여자들 비중이 높았다.엘리베이터에 탄 여자들이 거의 모두 하준을 훔쳐보고 있었다. 새로 사람이 들어오자 하준에게 몸을 밀착하는 과감한 타입까지 나타났다.여름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하긴 저 정도 매력이면 예전의 나라도 훔쳐봤을 거야. 당연하지.그렇지만 남의 남자한테 그러지들 말라고.’“마누라, 나 손 시리다.”갑자기 하준이 뒤에서 여름의 팔 사이로 자기 팔을 끼워 넣어 껴안으며 여름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 츤데레스러운 애교에 옆에서 보고 있던 여자들도 녹아내릴 지경이었다.물론 놀라기도 했다.‘너무 하네. 저렇게 이상한 얼굴을 하고도 저런 남자를 데리고 산다고?’엘리베이터가 주차장 층에 멈추자 다들 내렸다.저만치 걸어간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다.“여자가 돈이 많은가 보다. 펜트하우스에 미스터리 금수저가 산다고 하던데 그게 저 여자인가 봐.”“세상에, 나도 그 여자처럼 돈 좀 있어 봤으면 좋겠다. 저런 명품남 키워보게.”“……”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런데 여름은 ‘풉’하고 웃었다.“명품남 님, 이제 올라가세요. 착하지?”여름이 그렇게 즐겁게 웃는 모습
“마음에 들어?”하준이 낮은 소리로 웃더니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여름을 바라보았다.“내 차도 있는데 뭐 한다고 차를 또 샀어요?”여름은 하준에게 너무 넘어가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렸다.“그 차 너무 낡아서 강여름에게 어울리지 않아. 당신한테는 최고로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준이 키를 눌렀다. 문이 날개처럼 올라가더니 호화로우면서도 절제된 인테리어를 드러냈다.“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여름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예전 같았으면 거절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최하준의 아내로서 마음이 편안했다.“그냥 ‘고마워’ 하고 끝인가?”하준이 음흉하게 눈썹을 올렸다. 불만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뭐 더 없어?”그런 하준을 보니 얼굴이 달아올랐다.“뭘 더 어쩌라고? 이제 부부면 당신 게 내 거죠.”“그러네. 나도 당신 거야.”하준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여름을 차에 밀어붙이며 키스했다. 그러고 나서야 아쉽다는 듯 여름을 놓아주었다.“자기는 점점 더 달콤해지네.”“아, 몰라. 그만 해요. 나 출근 해야 해.”여름은 이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쿨하던 하준이 이제는 너무 오글거려서 손이 없어질 지경이었다.그러나 얼굴이 어떻게 변해도 정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안정됐다.여름은 새 차를 몰고 새벽 거리를 달렸다.그 낯선 수퍼카와 보란 듯 요란한 차 번호판은 당연히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신호에 걸려서 잠시 정차해 있는데 윤서에게서 전화가 왔다.“야야야, 여름아. 아침에 애들이 뭔 슈퍼카 영상 공유하고 난리 났더라. 완전 부러워.”“뭐라고?”“어우, 세상에. 하얀 슈퍼카인데 국내에는 없는 모델이래. 그게 그렇게 비싼 데다 주문 제작하는 거라네? 근데 글쎄 차 번호판이 012 4865래. ‘영원히 사랑해요!’. 솔로 부러워 죽어!!!”“……”‘그게 그렇게 부러울 일인가?’“너도 최하준한테 하나 뽑아달라고 해. 그렇게 부자인데. 사람이 얼마나 로맨틱하니? 내가 영상 보내줄게. 너도 최하준에게
여름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사에 도착해서는 또 한 차례 부러움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엄상인이 웃었다.“요즘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가 얼굴 너무 좋아 보이세요. 이제 최 회장님이 얼마나 대표님을 아끼는지 다 알겠네요. 아 참, 하영그룹에서 비즈니스 나이트에 초청장 보냈습니다. 천인그룹 따님이 보낸 파티 초청장도 있고요.”여름은 수북이 쌓인 초청장을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엄상인이 말을 이었다.“이제 FTT 신제품 발표가 코앞이라 각계에서 최 회장님과 줄을 대려고 합니다. 회장님 아내로서 줄을 대야 할 주요 인물로 인식되는 거죠.”“그러네 전에는 이런 초대장 하나 받기도 그렇게 어렵더니….”여름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역시나 서울에 오니까 인맥이 중요하구나.”“아무래도 최 회장님은 업계에서 주요 인물이시니까요. 대표님 사람 보는 눈이 너무 좋으세요.” 엄상인이 열심히 여름의 비위를 맞췄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초대장은 이사들에게 적당히 나눠주세요. 같이 가게.”“알겠습니다.”엄상인이 나가고 낯선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오랜만이다. 나 지금 서울인데 커피 한잔할 시간 되나?”윤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름은 실소가 터졌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까 윤서랑 얘기했다고 나타난 건가?’******회사 1층 커피숍.여름은 다시 윤상원을 만나게 되었다.역시 윤상원은 잘 지내지 못하는지 매우 야위어 이전과 비교하면 초췌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의기소침해 보였다.그러나 여름은 별로 감정적으로 동요되지는 않았다. 이런 결과도 결국 자업자득이었다.“오랜만… 이네.”윤상원은 여름을 보더니 표정이 이상해졌다.“내 얼굴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여름이 담담히 말했다.“알겠어. 이제는 화신 대표가 최하준의 아내라는 거 전 국민이 다 알지. 내가 널 너무 얕봤구나.”윤상원이 약간 괴로운 듯 말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뭔데요? 그냥 말해 봐요.”“윤서가 어디 있는
“정말 너무 하네. 이건 나랑 윤서 사이의 일이야.”윤상원이 화냈다.“이제 최하준 와이프가 되었다고 잘난 척하지 마!”“이제 보니 윤서의 친구를 내내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었군요. 그건 윤서에 대한 존중도 없다는 뜻이지. 윤서가 너무 아깝네요.”여름은 말을 마치더니 커피를 들고 일어섰다.“난 한동안 이쪽에서 지낼 거야. 윤서 못 만나면 나도 못 가.”윤상원이 고함쳤지만 여름은 상대하지 않았다.******사무실.갑자기 하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름은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받았다.“나 몰래 남자랑 카페에서 데이트 했다는 소문이….”“푸흡!”여름은 그만 모니터에 커피를 뿜고 말았다. “차 실장이 또 보고했나 보네?”“아닌데. 당신 내 와이프라고. 이제는 어지간한 아이돌보다 끌고 다니는 카메라가 많아. 내가 폭로를 막아야 할 사진이 수시로 들어온다는 말이지.”하준이 테이블을 톡톡 치는 것 같았다.“그런 사람은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사람 추레하던데.”이제 누굴 만날 자유도 없다는 사실에 여름은 화가 났다.“윤서 전 남친이에요. 윤서 소식 알아 보러 왔었고, 안 알려줬어요.”“응, 앞으로는 모르는 남자 따라나가지 마시죠.”“곧 발표회인데 안 바쁜가 봐요? 한가하네?”포스 강한 하준의 말투를 들으니 여름은 머리가 아팠다.“회사가 아무리 바빠도 와이프가 먼저지.”하준이 나지막이 말했다.“요즘 여자 덕 보려는 남자도 많습니다.”“쓸 데 없는 소릴. 누가 이렇게 생긴 사람한테 관심이나 있겠어요?”“그건 모르지.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예쁘거든.”“……”전화기를 타고 넘어오는 말이 너무 달콤해서 듣고만 있어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이 분이 요즘 꿀만 먹고 다니나….”“강여름이 보쌈을 만들어 주면 더 달콤한 말도 할 수 있는데.”낮게 웃는 목소리가 첼로 소리처럼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여름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가지가지 하네. 보쌈 먹자고 저러고 낯 부끄러운 소리까지
“…아유, 정말.”여름은 쓴웃음을 지었다.‘세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뭐, 저녁에 가서 보쌈이라도 삶아줄까?’******퇴근 후 여름은 일부러 마트에 가서 돼지고기를 샀다.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틀었다. 긴급 속보가 흘러나왔다.30분 전 벨레스 그룹의 서경주 회장이 탄 차가 대형 트럭과 충돌해 기사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현재 서경주 회장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며 아직 생사불명이다. 현장 소식에 따르면 현장은 매우 처참하며 내일 주식 시장에 크게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 뒤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서경주와 오래 지낸 건 아니지만 여름에게는 유일한 혈육이었다.‘아버지에게 교통사고가 났어?’여름은 급히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응급실 복도에는 벨레스 식구들로 가득했다.울고불고하던 위자영이 악에 받쳐서 달려왔다.“이 재수 없는 것. 네가 집안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사고뿐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여름은 붉어진 눈시울로 맞받아쳤다.“우리 아버지는 안에서 사경을 헤매는데 아내라는 분이 남편 걱정은 안 하고 그 틈에 화풀이할 생각뿐인가요?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녜요?”“너한테 피해 본 것이 있으니 화풀이도 하겠지!”위자영은 여름의 날카로운 시선에 살짝 당황한 듯했다.“당연히 내 남편은 걱정되지. 누구보다 걱정된다고!”“그렇다면 그 화부터 거두세요. 다들 힘들다고요. 이제는 난리 좀 작작 치세요. 나도 어렵사리 아버지를 되찾았는데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렇게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여름이 슬픔에 잠겨 애원했다. 생트집 잡는 사람 보듯 쳐다보니 위자영은 화가 치밀었다.“난리라니 내가 무슨….”“됐다, 입 다물어.”안 그래도 아들 때문에 심란하던 박재연은 여름의 쓴소리를 들으니 위자영이 하는 짓이 도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여름이 하는 말이 맞지. 경주는 안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 치료받고 있는데 너는 이러고 입씨름할 정신이 있니? 작작 해야지.”위자영은 망신스러운 나
“그건 안 되지.”위자영이 얼른 막아섰다.“내 남편인데 왜 네가 돌봐? 명의라면 나도 아는 분 많다.”“그러니까 말이야.”서유인이 끄덕이며 짜증스럽게 덧붙였다.“그리고 아빠를 간호하더라도 내가 해야지 네가 뭔데? 잘 알아둬. 넌 우리 가족관계 증명서에도 못 올라오는 애라고.”“과연 두 분이 아는 명의가 많을까요, 주민그룹에서 아는 명의가 많을까요?여름이 되물었다.위자영은 말문이 막혔지만, 억지를 썼다.“어쨌든 난 죽어도 서경주 간호 권리를 너에게 못 넘긴다. 내가 멀쩡할 때도 네 엄마를 못 이겼는데 남편 식물인간 돼서는 강신희 딸에게도 못 당해서야 되겠어?”그러더니 위자영은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다시 울었다.여름은 위자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서신일만 바라보았다.“요즘 아버지가 이혼하려고 얼마나 확고하게 결심하셨었는지는 누구보다 할아버지께서 잘 아실 거예요. 하지만 이제 사고가 났으니 두 분은 아직 부부니까 아버지 재산 분배는 법에 따라서 배우자, 자녀, 부모 순이 되는 거죠?”서신일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위자영이 다가오더니 강여름을 밀쳤다.“뭐야? 지금 내가 남편을 해쳤다는 거냐? 저가 악랄하니까 다른 사람도 다 그런 줄 아나 봐? 내가 서경주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 세상에서 내가 서경주를 제일 사랑한다고!”“그쪽 분께 하는 말 아니에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 알려드리는 거지. 우리 아버지 깨어나시면 아주머니께는 하나도 좋을 게 없다고요.” 여름의 말투가 사뭇 날카로웠다.“물론, 나는 아주머니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저 역시 여러 가지로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어쨌든 우리 같은 집안은 다른 집이랑은 사정이 좀 다르니까요.”박재연은 완전히 여름의 말에 넘어갔다.“그렇지, 난 네가 경주를 간호하는 데 동의한다.”“어머님, 쟤 말만 듣고 제가 경주 씨를 해칠까 봐 그러시는 거예요?”위자영은 격한 감정에 울먹였다.“못 해요. 남들이 알면 얼마나 저를 욕하겠어요?”“아주머니를
서경주를 눕히고 서신일 일행이 병실 밖으로 나가다가 서둘러 들어오던 최하준과 마주쳤다.“안녕하십니까? 이주혁 선생에게 아버님 상황 얘기해 놓았습니다. 꼭 최고의 의사가 담당할 수 있도록 해 놓겠습니다.”하준의 말투는 사뭇 공손했다. 지난번 서유인과 함께 생신에 왔을 때와는 너무 다른 태도였다.“잘 부탁한다.”서신일은 여름을 가만히 보더니 하준이 그 손녀를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알았다.‘이제부터는 여름이 녀석에게 잘해줘야겠구나.이제 경주에게 사고가 났으니 벨레스는 의지할 데가 없어. 앞으로는 저 손녀사위가 희망이구나.’그렇게 생각하면서 여름을 돌아보았다.“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직 젊으니 할 일은 해야지. 앞으로는 종종 집으로 와서 나랑 네 할머니도 만나고, 혹시 벨레스에 가보고 싶으면 언제든 우리한테 말만 하렴.”여름에게는 너무 뜻밖이었다. 그러나 곧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벨레스 사람들은 권력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구나.’“할아버지, 저런 애를 우리 집안에 들이시는 거예요?”서유인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소리 질렀다.“됐다, 어쨌든 네 언니 아니냐. 앞으로는 너도 도와줄 테고.”그렇게 말하고 서신일은 박재연과 나가버렸다.서유인은 달갑지 않다는 듯 발을 구르고 고개를 돌려 여름을 노려 보려고 했다. 그러나 하준과 눈이 마주치고는 심장이 두근거렸다.“회장님….”하준은 서유인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바로 여름에게 걸어가 허리에 손을 얹더니 부드럽게 위로했다.“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 이제 내가 곁에 있잖아.”그 모습을 보니 서유인은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한 번도 자기에게는 주지 않았던 다정한 시선이었다.추성호가 잘해주기는 하지만 최하준처럼 지적이지도 않고 품위가 있지도 않았다.서유인은 증오심에 이를 갈았다.“강여름, 잘난 척 그만해. 우리 할아버지가 최 회장 체면 봐서 그러시는 거야. 아니었으면 너 같은 거 우리 집안에 발끝도 못 들여놔.”여름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정말 대단하네.
“걱정하지 말아요. 쓸데없는 생각 안 하니까. 지금은 우리 아버지 말고는 다른 생각할 틈도 없어요.”여름이 담담히 말을 끊었다.하준은 여름이 백지안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여름은 하준의 마음속에 얼마나 백지안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지 잘 알았다.‘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이제는 미워해 봐야 소용도 없어.산 사람은 영원히 죽은 사람과는 다툴 수도 없잖아.’“…뭐, 그러면 다행이고.”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준의 마음은 무거웠다.여름이 오해할까 봐 걱정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또 불편했다.‘쓸데없는 생각을 안 한다니, 날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가?’하준은 여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속에서 초조한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나가서 담배를 피웠다.30분쯤 지나서 돌아와 보니 여름이 서경주에게 물을 먹이다가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돌아보다가 눈을 마주치니 시선을 돌렸다.하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30분씩이나 나가 있어도 뭘 하고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왜 이렇게 쌀쌀맞지?’그러나 서경주의 상태를 보니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닌 듯했다.그래서 헛기침하고는 먼저 말을 걸었다.“방금 주혁이한테 말 넣어 놨어. 간병인 붙여서 아버님 좀 봐달라고 부탁했어. 그리고 해외 권위 있는 해당 분야 전문가랑 상의도 해볼 거야….”******“고마워요.”여름이 진심으로 인사했다.“고맙기는, 내 아내인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여름이 너무 격식을 차리니 섭섭한 듯 하준이 부루퉁했다.“그나저나 위자영이 의심스러워서 그렇게 아버님 간병 직접하겠다고 고집부린 겁니까?”“네. 아버지가 나에게 주식 양도하려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위자영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뒤에 위지웅 같은 사람까지 끼고 있으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거든요.”“확실히 그렇지.”하준이 동의했다.“이미 사고 원인은 사람 풀어서 조사해 보고 있어요.”여름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