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이 매우 내키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솔직히 FTT는 8년 전 여사님 손에 있을 때도 순조롭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회장님께서 자리를 물려받으시고 나서는 여러 차례 직접 해외에 가서 특급 인재도 초빙해 오시고 직접 랩도 만드시면서 과학기술 분야를 개척해서 국내 최고의 기업이자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최양하에게 양보하시렵니까?”“최양하가 한 게 뭐 있습니까? 새벽 2시까지 일하고 4시에 일어나며 업무 보시는 동안 최양하는 외국 나가서 실컷 놀다가 돌아오자마자 고위직을 받은 거 아닙니까?”“내가 남 좋은 일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보이나?”하준이 문득 눈썹을 치켜 올렸다.상혁은 흠칫했다.“어젯밤 일은 좀 조사해 봤나?”하준이 수건을 던지더니 말을 돌렸다.“회장님께서 드신 술을 누군가가 흥분제가 든 술로 바꿔치기한 겁니다.”상혁이 말을 이었다.“그 뒤에 누군가가 서유인에게 강여름 씨가 강제로 회장님 방으로 끌려갔다고 전했습니다.”“그랬군.”하준이 끄덕였다.‘어젯밤에 나, 서유인, 구 이사가 죄다 최양하의 손에서 놀아났군.’하준은 2층 침실 쪽을 한번 보더니 이모님께 말했다.“좀 올라가서 봐주시겠어요?”이모님이 내려오더니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침대에서 꼼짝도 안 하네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대요.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아주 영혼이 다 빠져나가서 더 이상은 살고 싶지 않은 사람 같아요.’이모님은 차마 다음 말은 하지 못하고 삼켰다.“단식을 하시겠다?”하준의 눈이 짜증과 분노로 번뜩였다.벌떡 일어나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이모님 말씀처럼 여름은 창백한 얼굴로 눈을 꼭 감고 있었다.그러나 하준은 여름이 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런 방식으로 날 압박하는 겁니까?”하준이 냉랭하게 웃었다.“강여름 씨,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졌습니까?”여름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언제부터냐고? 강태환 부부가 내 친부인 줄 알았을 때, 하루하루 날 죽음으로 몰아가고, 감옥에 처넣고
“내가 할게요.”여름은 하준이 갑자기 이렇게 다정한 것이 어색했다.칫솔을 받아 들고 욕실로 들어가 거울에 비친 처참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자신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이젠 죽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구나.나를 내려놓자. 그리고 매일 그냥 타락한 삶을 살면 되지.아니야. 그럴 순 없어.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면 이제 세상에 겁날 게 뭐가 있어?숨이 붙어 있는 한 저 인간하고 싸워보자.!’여름이 욕실에서 나왔다. 하준이 다시 여름을 보았을 때는 뭔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오늘은 같이 쇼핑이나 갑시다. 아니면 어디든 가서 좀 쉬어도 좋고.”“출근할 거예요.”여름은 옷방으로 들어가더니 정장을 들고 나왔다.“......”붕대를 감은 여름의 표정이 이상한 걸 보고 하준이 물었다.“이러고 회사에 가겠다고?”“왜? 사람들이 보고 놀랄까 봐 그래요?여름은 남 얘기하듯 침착하게 답했다.하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알아서 하십시오.”그래도 여름에게 할 일이 있다면 집에 박혀서 죽느니 사느니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오전 10시.화신그룹, 브라운 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여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뒷모습을 찍는다면 당장 아무 패션잡지에라도 올라갈 듯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가득한 붕대를 본 직원은 다들 아연실색했다.그러나 아무도 감히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다.여름이 지나가고 나서야 귓속말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대표님 무슨 일이래? 성형 실패인가?”“뭔 소리야? 그 얘기 못 들었어? 임자 있는 사람 침대에 뛰어들었다가 현장을 딱 걸려서 그 여자한테 맞았대.”“말도 안 돼.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우리 대표가 혼외자라던데? 엄마도 남의 가정을 파탄 냈었는데, 이제는 강 대표가 자기 배다른 동생 약혼자를 꼬드겼대. 못하는 짓이 없어.”“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지?”갑자기 뒤에서 여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속말을 주고받던 두 사
“치웠습니다. 하지만 아마 회사 사람들이 거의 다 봤을 겁니다.”엄상인이 우물쭈물 답했다.“다른 사람들 하는 소리 귀담아듣지 마십시오.”“사실인데, 뭘.”여름이 엄상인을 똑바로 쳐다봤다.엄상인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했다.이때 다른 비서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큰일 났습니다. 누가 사람들을 끌고 와서는 난리입니다. 지금 막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있어요. 대표님을 뵙겠답니다”“내가 가보죠.”여름이 일어섰다.비서가 난처한 듯 말을 이었다.“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카메라까지 들고 왔던데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 것 같아요.”“상관없어요.”여름은 그대로 내려갔다.도중에 여름은 하준의 전화를 받았다.“가지 말아요. 내가 차윤을 보냈습니다. 차윤이 알아서 해결할 거예요.”“됐어요. 내가 해결하죠.”“감정적으로 덤비지 말아요. 거기 위지웅도 있으니까. 그 인간은 그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여름은 피식 웃었다.“당신하고 엮일 거라면 뭐든 직접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죠. 당신이 24시간 날 지켜줄 수는 없을 거 아녜요?”“......”전화를 끊더니 여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맞은 편에서 썩은 계란이 날아왔다. 계란은 순식간에 흘러내리며 붕대에 스며들어서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냈다.“이 더러운 것. 남의 남자친구를 뺏어? 젠장, 어디 내 손에 죽어봐라.”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서유인 옆에서 욕을 쏟아냈다.“대표님…”엄상인이 깜짝 놀라 휴지를 꺼내서 여름의 얼굴을 닦았다.여름은 그냥 붕대를 풀어서 여기저기 시뻘건 상처를 드러냈다.“꼬라지 봐라. 토 나오는 꼴일세.”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의기양양하게 내질렀다.“너 같은 쓰레기는 여기서 살면 안 돼. 너에게 어울리는 촌구석으로 돌아가!”“미안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하준 씨는 내 침대에 누워 있었어. 날 안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던데.”여름이 빙긋 웃었다. 서유인은 화가 자서 부들부들 떨었다.“이게 진짜!”따귀를 날리려고 손을 올렸다
“이제 됐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왔다.“회사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 받고 왔습니다.”위지웅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여름이 서유인을 밀치더니 눈시울을 붉히더니 경찰에게 다가갔다.“이 사람들이 막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기물을 파손하더니 제 얼굴에는 계란까지 던지더라고요.”서유인이 소리를 질렀다.“아니에요. 저 여자가 제 머리채를 잡고 위협했다니까요. 저 여자를 잡아 가야 해요.”경찰이 온 얼굴에 찰과상을 입은 데다 머리카락에서 아직도 썩은 계란이 흘러내리고 있는 여름을 보았다. 그러더니 말쑥하게 차려입고 생채기 하나 없이 얼굴이 반들반들한 서유인을 보더니 소리쳤다.“누가 누굴 위협합니까? 딱 봐도 무슨 상황인지 다 알겠는데!”“그래도 살살 해주세요. 저분이 벨레스가 따님이시거든요. 다른 분은 신지의 위지웅님이시고요. 대단한 깡패들과 줄이 닿아 있는 분이라고 하던데요.”여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위지웅이 그 말을 듣더니 목소리를 높였다.“어디 소속이야? 내가 당신 네 서장 다 알아!”여름이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였다.“그 나이에 벌써 경찰서장을 알 정도로 유치장을 들락거리셨어요?”경찰이 소리쳤다.“우리 서장님은 당신 같은 사람 모릅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난동을 부렸으니 일단 서로 갑시다.”경찰들이 곧 위지웅을 끌고 가버렸다.“정말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겨우 안정이 됐네요. 조심해 가세요.”여름은 고맙다는 듯 경찰들을 입구까지 전송했다.막 도착해서 그 장면을 본 차윤은 바로 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준은 듣더니 기분 좋게 웃었다.여름의 이런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가서 인사나 하고 말썽 일으킨 인간들은 며칠 좀 구치소에 넣어 놔. 특히 그 계란 던진 인간은 맛없는 거 먹이라고 해.”차윤이 조용히 말했다.“그렇지만 하진 그룹 따님인데요….”“알 게 뭐야! 하진그룹 따위!”그러더니 전화가 끊겼다.경찰들이 완전히 물러갔다.여름은 상처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할 수 없이 병원으로 갔
“핸드폰으로 뉴스 검색 안 해봤어요?”이주혁이 다가왔다.“오늘 그게 제일 큰 뉴스인데. 지금 온라인에서는 그거 때문에 난리라고요.”여름은 아찔했다. 주혁이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결혼하려고 하준이 회장직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인과응보네요. 뻔히 여자 친구 있는 사람이 여자친구의 자매에게 손대려고 했지. 그 일로 FTT 자선의 밤 망했지. 이렇게 문제 있는 사람을 그냥 두면 되겠어요?”이주혁은 흠칫했다.그러나 이주혁은 친구가 욕을 먹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유쾌하다는 듯 웃어 젖혔다.“아주 정확한 평가네요. 하준이 품행이 방정하지는 않지.”여름은 이주혁이 왜 웃는지 몰라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웃겨요?”“아주 웃겨요.”이주혁이 씩 웃었다.“그런데 좀 틀린 부분이 있네요. 그날 밤에 우리 하준이가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다음에 식구들이랑 크게 싸웠어요. 할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서유인이랑 결혼하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하준이가 한사코 여름 씨랑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할아버지께서 대노하셨어요.”“결혼을 나랑 한다고요?”여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이주혁이 의미심장하게 여름을 쳐다봤다.“FTT의 반은 하준이가 키웠어요. 조금 문란하게 놀았다고 할아버지께서 내쫓지는 않아요. 하준이가 너무 진심으로 나오니까 노인네가 진짜로 화나신 거예요.”******병원에서 나올 때 여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최하준이 날 사랑하지 않아서 평생을 날 내연녀로 곁에 두고 괴롭히겠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그런데 뭐라고? 나랑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파면당했어?FTT 회장이 어떤 자리인데?누구나가 우러러보는 자리잖아.그런데 이제는 최하준이 구름에서 내려온 셈이네.FTT라는 배경이 없이도 최하준은 그 사람 그대로일까?’여름이 막 차에 나자 서경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름아, 시간 되니?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하자꾸나.”“…
여름은 서글프게 웃었다.“저는 아버지에게 겨우 그런 사람이었군요. 나를 정말 사랑하긴 하세요? 나를 알려고 해보셨어요? 사실 저는 최하준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예요. 최하준이 계속 사귀어 달라면서 한동안 우리 회사와 양유진 대표를 압박한 것도 다 그 사람이 한 짓이에요. 제가 정말 이렇게 자존심을 다 버려야 하는 삶을 살아야겠어요? 저라고 사람들이 제게 천박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게 달가운 줄 아세요?”결국 여름은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서경주는 멍해졌다.“뭐라고? 왜 내게 좀 더 일찍 말하지 않았니?”“말씀드리면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여름이 자조적으로 말했다.“아버지는 집에서도 절 보호해주지 못했어요. 그런데 최하준에게서 절 보호해준다고요?”서경주는 낭패한 기색을 드러냈다. 갑자기 10년쯤 늙어버린 듯했다.“미안하구나. 내가 널 여기로 데려와서 수모를 당하게 만들었어. 내가 그 사람을 찾아가겠다. 사람을 너무 괴롭히는구나.”“됐어요. 제가 왔잖아요.”룸 문이 와락 열리더니 최하준이 들어왔다. 마치 약속에 좀 늦었다는 듯 아주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요?”화가 나서 여름이 벌떡 일어섰다.“미행했어요?”“아닙니다. 그냥 여름 씨와 아버님을 뵙고 싶었습니다.”하준이 여름을 밀면서 옆에 와 앉았다. 그 뻔뻔한 얼굴을 보니 서경주는 열불이 뻗쳤다.“누가 자네 아버님인가? 유인이랑 사귀면서 여름이를 협박하고 있었어? 난 자네 같은 사람과 내 딸을 맺어줄 생각이 없네.”“전 꼭 강여름 씨랑 결혼할 겁니다. 다 보셨을 텐데요?”하준이 큰 손을 여름의 손 위에 얹더니 여름의 눈동자를 따스하게 들여다봤다.“강여름과 결혼하겠습니다.”여름은 깜짝 놀랐다.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상대를 쳐다봤다.‘정말 나랑 결혼하겠다고?서유인이 했던 말이 정말이었어?’“안 돼!”서경주는 분노에 차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여름이랑 결혼할 거면 유인이에게는 애초에 왜 집적거렸어?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유인이를 여자친구라고
“아버님, 동의해 주셨으면 합니다.”하준이 천천히 여름을 잡아 일으켰다.“아버님의 축복만 있다면 저희는 당당합니다. 그리고 제가 여름 씨와 결혼하면 여름 씨도 당당하게 아버님 집안에서 받아들여질 겁니다. 다시는 누구도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못할 겁니다. 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마지막 말이 서경주의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결국 여름은 어쩐 일인지 하준에게 이끌려 차에 타게 되었다진지하게 운전하는 하준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떠올랐다.‘그래서, 나랑 결혼하겠다고 해서 회장직을 박탈당한 건가?’“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잠시 후 하준은 차를 세우더니 고개를 돌려 여름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결혼반지 맞추러 갑시다.”“당신하고 결혼 안 해요!”여름은 미칠 지경이었다.‘평생을 이런 무서운 사람이랑 엮이고 싶진 않아!’“강여름 씨, 당신 하나 얻겠다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겠다니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하준이 배신당했다는 듯 상처 입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FTT의 회장이 아니어도, 재산이 없다고 해도 최하준 씨랑 결혼하고 싶어할 사람은 얼마든지 많을 거예요.”“좋습니다. 그러면 계속 내연녀로 남으시죠.”최하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서유인과 결혼하더라도 당신을 놓을 생각은 없으니까요.”“당신 정말 악마군요!”여름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내연녀와 와이프, 어느 쪽으로 하겠습니까?”최하준이 여전히 사악하게 웃으며 물었다.여름은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결혼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협박을 당하다니 참을 수 없어.대체 로맨틱한 프로포즈는 어디 있는 거야? 예전에도 이번에도 난 프로포즈를 받아본 적이 없잖아.하지만 지금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나? 세상에 평생 내연녀로 남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도 서유인에게 멸시받아가면서 사는 내연녀라니….아니, 아니지. 우라 엄마를 위해서라도 내가 위자영 모녀에게서 멸시받으
“아닙니다. 몸매도 모델 같으시고 머릿결도 찰랑찰랑해서 너무 매력이세요.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요.”거침없이 흘러나오는 점장의 찬양을 듣다가 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장사하는 사람답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뭐 하나를 놓치지 않고 줄줄 읇잖아.’곧 온갖 화려한 예물이 줄줄 나왔다. 어찌나 화려한지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좋아하는 걸로 편하게 골라봐요. 다 가져가도 상관없고.”하준이 시원스럽게 말했다.“…….”여름은 큰 다이아에 작은 다이아들이 박힌 반지를 골랐다. 그러나 하준은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핑크색 꽃잎 모양 반지를 여름에게 끼웠다. 손가락이 희고 가늘어서 끼워보니 화사하게 잘 어울렸다.점장이 웃었다.“역시 보는 눈이 높으시네요. 13.14캐럿짜리입니다.“이건 너무 무거워서….”여름은 슬쩍 거절하려고 했다.“그냥 하고 있어요. 빼지 말고.”하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나더러 고르라더니?’그러나 하준은 확실히 보는 안목이 있었다. 여름은 확실히 핑크색을 좋아하기도 했다. 동성에서였다면 분명 무척 기뻤을 것이다.“보는 김에 내 반지도 하나 골라줘요.”하준이 말했다.하준은 큼직한 걸 좋아하지만 여름은 일부러 조그만 다이아몬드가 잔뜩 박힌 반지를 골랐다.자칫하면 촌스러워 보일 디자인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하준의 손가락에 끼워놓고 보니 그렇게 패셔너블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여름은 멍하니 하준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았다. 하준은 그렇게 매혹된 여름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만족스럽다는 듯 여름의 머리카락을 쓸었다.“보는 눈이 있군요.”“그게….”‘이런 젠장, 이렇게 잘 어울릴 일이 아닌데….’두 사람이 막 쥬얼리 샵을 나오자 플래시가 번쩍였다. 기자였다.하준이 여름의 허리를 감더니 물었다.“이런 거 신경쓰입니까?”“당신 때문에 하도 당해서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여름이 되려 놀렸다.“최하준 씨야말로 여자친구가 서유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괜찮겠어요?”“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