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심지어 최하준이 투자한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것까지 보았다.한때 국민 사위감으로 칭송받던 최하준이 이제는 온 국민의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여름은 복잡한 눈으로 테이블 맞은편에서 신문을 읽는 하준을 바라보았다. 느슨하게 묶은 잠옷은 앞섶이 살짝 벌어져 보이는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는 보일락 말락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오늘도 일하러 안 나갈 건가 보네.’사실 서유인과 결혼하고 여름과 헤어졌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여름은 아직도 하준이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최고의 지위와 명예를 버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아침 댓바람부터 왜 그렇게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봅니까?”하준이 갑자기 신문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여름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내가 그렇게 오래 쳐다봤나? 왜 난 몰랐지?’“보긴 뭘 봤다고 그래요?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여름은 급히 당황한 모습을 수습하며 얼버무렸다.하준은 신문을 접더니 일어나 여름 뒤로 왔다. 두 손으로 의자를 꾹 누르더니 물었다.“무슨 생각을 했습니까?”“무슨 상관이에요?”여름은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내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네.”하준이 허리를 숙이더니 여름의 목덜미에 얼굴을 댔다. 면도하고 뿌린 오드뜨왈렛이 코끝을 시원하게 간질였다.여름은 하마터면 우유 컵을 놓다가 엎지를 뻔했다.‘이 와중에도 장난칠 정신이 있어? 미쳤나 봐.’여름은 그런 마음을 꾹 누르며 뻔뻔하게 말했다.“최하준 씨,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날 놔줘요. 그러면 모두 다 제자리로 돌아갈 텐데.”“모두 다가 뭡니까? 명예? 지위?”하준이 빙긋 웃었다.“다 알면서 그래요?”“알지. 잘 모르는 건 당신인 것 같은데?”하준이 손가락으로 여름의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았다.“강여름, 아직도 몰라? 강여름을 위해서라면 뭐든 걸어 볼만 하지.”‘날 위해서라면 뭐든 걸어 볼 만하다….’그 몇 마디 말에 여름은 그간 어렵사리
하준은 흠칫하더니 얼른 여름을 풀어주고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부들부들 두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여름이 돌아보더니 두려운 듯 하준을 쳐다봤다.“당신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난 최하준 씨와 있을 때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져요. 난폭하고 멋대로에 억지를 부리니까. 조금이라도 잘못해서 성질을 건드리면 악마처럼 변하는데, 누가 그렇게 악마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그만, 그만 해요.”하준은 테이블에 있던 그릇을 모두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눈에는 시뻘겋게 핏발이 섰다.‘강여름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하지만 왜 이렇게 자꾸 날 건드리는 거야?’최하준도 사람이었다. 마음이 아팠다.곧 절제심을 잃을 것 같자 하준은 벌컥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휘청거리며 차로 들어가 약을 찾아 꺼내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아 핸들을 세게 내리쳤다. 손에 선연한 아픔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식당.여름은 엉망진창이 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마에서 식 땀이 흘러내렸다.방금 하준의 시선은 너무 무서웠다.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느낌이었다.‘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확확 바뀌지? 1초마다 천사와 악마를 오가는 것 같아.전에는 왜 최하준이 저렇게 무서운 사람인지 몰랐을까?도망쳐야 해! 최하준과 결혼해서 평생 살 수는 없어.’여름이 돌아서니 이모님이 주방 입구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계셨다.여름은 못 본 척하고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모님이 불렀다.“여름 씨, 회장님을 자극하지 말아요.”“네. 다시는 안 그러려고요.”여름은 창백한 얼굴에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이모님은 좀 더 설명하려고 입술을 달싹였다.‘회장님이 일부러 저러시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병이 발작한 것 같아요.’그러나 사실을 말하고 나면 여름이 더 겁을 낼까 싶어서 그냥 그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병원.이주혁은 하준의 손에 붕대를 감아주며 창백한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붕대를 감고 났는데 문이 쾅 하고 열렸다.송영식이 뛰어 들어와 하준의 손에 상처를 보더니 화나서 소리쳤다.“야, 너 제정신이야? 여자 하나 때문에 이게 다 무슨 꼴이야!”“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하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난 네가 내 형제 같아서 그래.”송영식이 쏘아붙였다.“양하 자식 하는 짓 보라고. 온라인에서 다들 너만 욕해. 이제 아주 온 국민의 욕받이가 됐어. 그렇게 떠받들던 너희 식구들도 이제 너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이제는 최양하만 쳐다보고 있잖아. 진짜 그러고 싶냐?”이주혁이 웃었다.“진정해. 하준이가 어디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인간이냐?”“그래도….”“최양하가 FTT 장악하기기 그리 만만치 않을 거야.”이주혁이 하준을 쳐다봤다.하준이 비죽거렸다.“그래도 네가 날 잘 아네.”송영식은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알겠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보네. 지난번에 배에서 너한테 한 대 맞아서.”“이 자식….”하준이 빙긋 웃었다.“…….”‘에이씨, 짜증나.’“됐어. 그런 우울한 얘기 그만두고, 지훈이도 네 소식 들어서 동성에서 왔어. 밤에 한 잔 해야지.”하준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뭐 하러 왔대? 도와주러?”“술 마시러 왔지.”이주혁이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한잔하고 다 풀자고.”“.......”*******서경주 네 별장.하준이 여름에게 엄청난 반지를 사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자영은 열이 올라서 거실 화병을 전부 깨버렸다.“최하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우리 유인이가 그렇게 잘했는데, 그딴 애랑 결혼을 한대! 으아아! 강여름! 어쩜 그렇게 지 에미랑 똑같은 짓을 하고 다녀!”“됐어요. 말이 좀 심하구려.”서경주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하여간 정말 도움이 안 돼요, 당신은.”위자영이 더 날뛰었다.“걔가 우리 애를 그렇게 몰아붙이고 괴롭히는데 하나도 안 도와주고, 이제 애랑 지웅이가 구치소 갇혀 있는데 꺼내주지도 못하고, 쓸모도 없어, 정말.”“거 말 좀
“잘 됐지, 뭐. 추성호 생긴 것도 아주 멀끔하고.”위자영은 멍하니 있는 유인을 바라보았다.“마음 접어라. 이제 최하준은 나중에 너에게 그런 모욕을 준 걸 후회하게 될 거야.”서유인은 확 정신이 들었다.‘그래. 최하준은 내내 날 가지고 놀았어. 심지어 그거 때문에 난 구치소까지 들어갔다 왔잖아.사람들 앞에서 내 사랑을 완전히 웃음거리로 만들었어!아아악!이제 최하준이 후회하면서 용서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게 만들겠어!그리고 강여름! 죽도록 괴롭혀 주겠어!’구치소에서 나오니 인터뷰하려고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서유인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기자들이 몰려왔다.“서유인 씨, FTT 자선기금의 밤에 최하준 회장과 내연녀의 불미스러운 현장을 포착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이러지들 마세요.”서유이는 처량하게 웃었다.“저는 최 회장님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회장님을 오래도록 흠모했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그냥 제가 사랑을 잘못한 거죠. 하지만 회장님을 탓하지 않아요. 그저 행복하시기만 바랍니다.”“서유인 씨, 정말 아량있으시군요. 최 회장 같은 사람은 서유인 씨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반드시 행복해지실 거예요.”어느 기자가 외쳤다.“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지금 너무 피곤하네요. 전 여자들이 자신을 잘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특히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요.”******사무실여름은 핸드폰으로 서유인의 그 인터뷰를 보고 인상을 썼다.온 국민에게 동정과 사랑을 받을 것을 노리고 한 인터뷰가 틀림없었다.교양 있고 똑똑한 게 역시나 명문가의 딸이라는 사람도 있고어쩜 저렇게 사람이 진실되고 마음이 넓으냐, 사연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서유인에게 최하준 따위 어울리지 않는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난리였다.그러나 서유인의 그 멍청한 머리에서 저런 고단수 작전을 짜냈을 리가 없다.일이 뭔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면 뒤에서 수를
여름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넌 내 친구야, 최하준 친구야?”“아이고, 넌 널 위해서 지위도 명예도 다 버리겠다는데 그게 정말 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뭐야? 난 그런 사람은 멸종인 줄 알았구먼.”“......”평온하던 여름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솔직히 지금의 최하준이랑 비교하면 상원 오빠는 널 사랑한 것도 아닌 것 같다.”“일하러 가야 돼, 끊어.”여름은 점점 더 윤서의 말에 짜증이 올라왔다.8시까지 야근하고 돌아와 보니 하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목욕하고 누워서 핸드폰을 열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추천 검색어에 뜨는 최하준을 눌렀다.누군가가 올린 동영상이 떴다.익숙한 화면이었다. 전에 송영식에게 잡혀 유람선에 끌려갔던 밤이었다.화면을 보니 하준이 여름을 꼭 안고 있는데 누군가가 물었다.“최 회장,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송영식이 나섰다.“하준아, 쟤들은 내가 불렀어. 나하고 얘기해.”최하준이 말했다.“오늘 밤 일에 대해서… 글이던, 사진이던, 동영상이던 관련된 어떤 거 하나라도 밖으로 유출이 된다면, 어느 집 자식이건 집안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줄 알아!”하준이 여름을 안고 가자 재벌 2세들은 다들 손이 꺾이고 눈물에 콧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고 비참하게 애원하는 모습이 보였다.조회수가 어마어마했다.-이제야 알겠네. 더러운 것들. 건방지기 짝이 없잖아? 저런 것들은 감옥에 처 넣어야 해.-최하준은 아주 금수저도 개돼지처럼 아나 봐. 어이, 잘나신 금수저들 다 어디 숨었어? 좀 기어 나와보시지?-이 영상 누가 퍼트린 거야? 최하준은 이제 끝났네. 자업자득이지.곧 하영그룹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최하준 회장이 우리 하영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에 대해 한 일에 대해 우리 하영그룹 회장은 최후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이진그룹도 바로 이어 입장을 표명했다.-이진그룹의 장 회장도 @하영그룹과 법적 책임을 묻는데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서울의 9개 재벌가에서 줄줄이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다 보고
최근 그런 일이 없었는데 여름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한참을 울린 끝에야 통했다. 그러나 곧 송영식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여름, 정말 문제 있군. 당신이 우리 하준이를 망쳤어!”“하준 씨는요?”좋지 않은 예감이 몰려왔다.“재벌가에서 우르르 몰려와서 조사하겠다고 하준이를 끌고 갔다고.”송영식이 마구 소리 질렀다.“당신만 아니었으면 우리 하준이는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거야!”“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죠? 그날 당신이 날 끌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영상은 찍히지도 않았을 거예요!”여름이 화가 나서 반박했다. 당신 배였으니까 이런 영상이 유출된 건 당신 책임이에요!”송영식은 여름의 공격에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지금 하준이를 무너트리려는 세력이 있어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여름은 전화를 끊고 상혁에게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다.1층에서 갑자기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여름은 얼른 겉옷을 걸치고 내려갔다. 하준의 본가 집사가 보디가드를 데리고 들어왔다.“강여름 씨, 저희랑 같이 본가로 좀 가주셔야겠습니다.”이모님이 급히 말려보았다.“연 집사님, 나중에 회장님이 돌아오시면...”“회장님은 이미 검찰에 소환됐습니다.”집사가 싸늘한 얼굴을 했다.“이게 다 저 강여름 때문이에요. 오늘 반드시 데려가야겠습니다.”“이모님, 그냥 두세요. 제가 갈게요.”여름은 계단을 내려왔다. 애진작에 본가에서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1시간 뒤.하준의 본가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여름은 두 번째 오는 것이었다. 들어가면서 보니 하준의 식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다들 분노와 혐오의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그 어마어마한 시선 앞에서도 여름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서울에 와서 정말 별별 일이 다 있었다. 평생 겪은 일보다 더 많은 일이 벌어졌다.여름은 이제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생각과 다르게 아주 침착하구나. 하긴, 그러니 하준이를 유혹할 수 있었겠지. 보통이 아니
“그러니까. 이제와서 부끄러워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최정이 입을 비죽거렸다.“이번에는 정말 하준이가 너 때문에 큰일 났어.”“평소에 그렇게 냉정하고 침착한 애가 왜 그랬을까?”최진이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엄마 아버지가 이번에는 골치 좀 아프시겠네.”최대범이 테이블을 ‘탁’ 쳤다.“그냥은 두고 못 본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라. 첫째, 비행기 표는 사줄 테니 이 나라를 떠나서 국적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거나, 둘째, 여기 남아서 죽도록 힘들게 살아보던가.”여름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국적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라고?최하준이 그렇게 괴롭힐 때도 내가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는데 최하준이 날 지키려다가 재벌가의 타겟이 되어 고생 중인데 가버린다면... 내 양심이 버틸 수 있을까?’“하준 씨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한참 뒤 여름이 주먹을 꼭 쥐었다.“구해주실 건가요?”“걔가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 계속 저러고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 집안에 그런 애 없는 셈치면 그만이다.”최대범이 싸늘하게 뱉었다.“흥! 어쨌든 이제 녀석의 명성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온 재벌가에서 그 애를 못 잡아먹어 난리가 났다. 그 많은 재벌가가 모두 우리 FTT를 압박하고 있는 데다 우리 집안이 100년 넘게 쌓아온 명성을 모두 잃게 만들었으니 이제 하준이 녀석이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여름은 하준의 식구를 돌아보았다. 다들 하준을 걱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엄마라는 최란도 마찬가지였다.갑자기 하준이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성격이 그렇게 차갑구나.’“하준 씨는 손자잖아요. 가문의 명예가 혈육보다도 중요한가요?”여름이 몸을 똑바로 펴며 말을 이었다.“하준 씨의 할아버지, 할머니, 낳아준 어머니시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나요? 하준 씨가 FTT를 키워서 명예와 부를 가져다줄 때는 다들 그렇게 우러러보다가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을 맞고 있는데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내친다고
여름을 바라보는 얼굴이 다들 달랐다. 한참 만에 갑자기 장춘자가 입을 열었다.“이렇게 고집이 셀 줄 몰랐구나.”최정이 입을 비죽거렸다.“할머니, 속지 마세요. 며칠 제대로 못 먹으면 정신 차리고 빌겠죠.”“무슨 소리야? 사람을 왜 밥을 안 줘?”최양하가 화가 나 소리쳤다.“너 안 좋다는 건 쟨데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최정이 맞받아쳤다.“됐다. 사람 죽으면 안 되지.”장춘자가 복잡한 심경으로 말했다.“전에 지안이 죽고 나서 하준이가 정신 나갈 뻔했잖니? 쟤도 일이 나면 이번에는 정말 큰일나지 싶다.”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자리를 파하자 최민은 방으로 돌아와 위자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자영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강여름만 처리해 주면 그쪽 회사에서 목표액에 부족하다던 금액은 우리가 채워드릴게요.”최민은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FTT 산하에 기업이 많지만, 자신이 현재 관리하는 FTT 보험은 매년 실적이 오르지 않아서 집안에서 무시당하고 있었다.‘이번 분기에 목표액만 달성할 수 있다면 노인네가 날 다시 봐줄 텐데….다만 하준이가 전에 그 병이 도진다면…’최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사람 목숨 어떻게 하는 것까지는 좀 어렵고요.”“어렵기는요. 최하준 때문에 그러세요? 최하준은 이제 평생 끝이에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어요.”“정말 못해요. 일단 사람을 살려놓는다는 전제 하에 다른 건 다 해볼 수 있어요.”최민이 말을 이었다.위자영은 조금 생각해보다가 사악하게 웃었다.“뭐 그것도 좋겠네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경지도 있는 법이니까. 걔는 남자 후리는 게 특기니까 다시는 누구 꼬드기지 못하게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 주세요.”“그건 문제없죠.”******지하 창고.보디가드가 강여름을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단 위에 있던 흐릿한 불마저 꺼졌다.너무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스마트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여름은 휴대전화 조명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구석에 쇠창살이 박힌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