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됐지, 뭐. 추성호 생긴 것도 아주 멀끔하고.”위자영은 멍하니 있는 유인을 바라보았다.“마음 접어라. 이제 최하준은 나중에 너에게 그런 모욕을 준 걸 후회하게 될 거야.”서유인은 확 정신이 들었다.‘그래. 최하준은 내내 날 가지고 놀았어. 심지어 그거 때문에 난 구치소까지 들어갔다 왔잖아.사람들 앞에서 내 사랑을 완전히 웃음거리로 만들었어!아아악!이제 최하준이 후회하면서 용서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게 만들겠어!그리고 강여름! 죽도록 괴롭혀 주겠어!’구치소에서 나오니 인터뷰하려고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서유인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기자들이 몰려왔다.“서유인 씨, FTT 자선기금의 밤에 최하준 회장과 내연녀의 불미스러운 현장을 포착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이러지들 마세요.”서유이는 처량하게 웃었다.“저는 최 회장님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회장님을 오래도록 흠모했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그냥 제가 사랑을 잘못한 거죠. 하지만 회장님을 탓하지 않아요. 그저 행복하시기만 바랍니다.”“서유인 씨, 정말 아량있으시군요. 최 회장 같은 사람은 서유인 씨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반드시 행복해지실 거예요.”어느 기자가 외쳤다.“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지금 너무 피곤하네요. 전 여자들이 자신을 잘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특히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요.”******사무실여름은 핸드폰으로 서유인의 그 인터뷰를 보고 인상을 썼다.온 국민에게 동정과 사랑을 받을 것을 노리고 한 인터뷰가 틀림없었다.교양 있고 똑똑한 게 역시나 명문가의 딸이라는 사람도 있고어쩜 저렇게 사람이 진실되고 마음이 넓으냐, 사연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서유인에게 최하준 따위 어울리지 않는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난리였다.그러나 서유인의 그 멍청한 머리에서 저런 고단수 작전을 짜냈을 리가 없다.일이 뭔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면 뒤에서 수를
여름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넌 내 친구야, 최하준 친구야?”“아이고, 넌 널 위해서 지위도 명예도 다 버리겠다는데 그게 정말 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뭐야? 난 그런 사람은 멸종인 줄 알았구먼.”“......”평온하던 여름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솔직히 지금의 최하준이랑 비교하면 상원 오빠는 널 사랑한 것도 아닌 것 같다.”“일하러 가야 돼, 끊어.”여름은 점점 더 윤서의 말에 짜증이 올라왔다.8시까지 야근하고 돌아와 보니 하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목욕하고 누워서 핸드폰을 열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추천 검색어에 뜨는 최하준을 눌렀다.누군가가 올린 동영상이 떴다.익숙한 화면이었다. 전에 송영식에게 잡혀 유람선에 끌려갔던 밤이었다.화면을 보니 하준이 여름을 꼭 안고 있는데 누군가가 물었다.“최 회장,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송영식이 나섰다.“하준아, 쟤들은 내가 불렀어. 나하고 얘기해.”최하준이 말했다.“오늘 밤 일에 대해서… 글이던, 사진이던, 동영상이던 관련된 어떤 거 하나라도 밖으로 유출이 된다면, 어느 집 자식이건 집안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줄 알아!”하준이 여름을 안고 가자 재벌 2세들은 다들 손이 꺾이고 눈물에 콧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고 비참하게 애원하는 모습이 보였다.조회수가 어마어마했다.-이제야 알겠네. 더러운 것들. 건방지기 짝이 없잖아? 저런 것들은 감옥에 처 넣어야 해.-최하준은 아주 금수저도 개돼지처럼 아나 봐. 어이, 잘나신 금수저들 다 어디 숨었어? 좀 기어 나와보시지?-이 영상 누가 퍼트린 거야? 최하준은 이제 끝났네. 자업자득이지.곧 하영그룹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최하준 회장이 우리 하영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에 대해 한 일에 대해 우리 하영그룹 회장은 최후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이진그룹도 바로 이어 입장을 표명했다.-이진그룹의 장 회장도 @하영그룹과 법적 책임을 묻는데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서울의 9개 재벌가에서 줄줄이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다 보고
최근 그런 일이 없었는데 여름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한참을 울린 끝에야 통했다. 그러나 곧 송영식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여름, 정말 문제 있군. 당신이 우리 하준이를 망쳤어!”“하준 씨는요?”좋지 않은 예감이 몰려왔다.“재벌가에서 우르르 몰려와서 조사하겠다고 하준이를 끌고 갔다고.”송영식이 마구 소리 질렀다.“당신만 아니었으면 우리 하준이는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거야!”“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죠? 그날 당신이 날 끌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영상은 찍히지도 않았을 거예요!”여름이 화가 나서 반박했다. 당신 배였으니까 이런 영상이 유출된 건 당신 책임이에요!”송영식은 여름의 공격에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지금 하준이를 무너트리려는 세력이 있어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여름은 전화를 끊고 상혁에게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다.1층에서 갑자기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여름은 얼른 겉옷을 걸치고 내려갔다. 하준의 본가 집사가 보디가드를 데리고 들어왔다.“강여름 씨, 저희랑 같이 본가로 좀 가주셔야겠습니다.”이모님이 급히 말려보았다.“연 집사님, 나중에 회장님이 돌아오시면...”“회장님은 이미 검찰에 소환됐습니다.”집사가 싸늘한 얼굴을 했다.“이게 다 저 강여름 때문이에요. 오늘 반드시 데려가야겠습니다.”“이모님, 그냥 두세요. 제가 갈게요.”여름은 계단을 내려왔다. 애진작에 본가에서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1시간 뒤.하준의 본가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여름은 두 번째 오는 것이었다. 들어가면서 보니 하준의 식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다들 분노와 혐오의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그 어마어마한 시선 앞에서도 여름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서울에 와서 정말 별별 일이 다 있었다. 평생 겪은 일보다 더 많은 일이 벌어졌다.여름은 이제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생각과 다르게 아주 침착하구나. 하긴, 그러니 하준이를 유혹할 수 있었겠지. 보통이 아니
“그러니까. 이제와서 부끄러워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최정이 입을 비죽거렸다.“이번에는 정말 하준이가 너 때문에 큰일 났어.”“평소에 그렇게 냉정하고 침착한 애가 왜 그랬을까?”최진이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엄마 아버지가 이번에는 골치 좀 아프시겠네.”최대범이 테이블을 ‘탁’ 쳤다.“그냥은 두고 못 본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라. 첫째, 비행기 표는 사줄 테니 이 나라를 떠나서 국적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거나, 둘째, 여기 남아서 죽도록 힘들게 살아보던가.”여름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국적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라고?최하준이 그렇게 괴롭힐 때도 내가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는데 최하준이 날 지키려다가 재벌가의 타겟이 되어 고생 중인데 가버린다면... 내 양심이 버틸 수 있을까?’“하준 씨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한참 뒤 여름이 주먹을 꼭 쥐었다.“구해주실 건가요?”“걔가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 계속 저러고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 집안에 그런 애 없는 셈치면 그만이다.”최대범이 싸늘하게 뱉었다.“흥! 어쨌든 이제 녀석의 명성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온 재벌가에서 그 애를 못 잡아먹어 난리가 났다. 그 많은 재벌가가 모두 우리 FTT를 압박하고 있는 데다 우리 집안이 100년 넘게 쌓아온 명성을 모두 잃게 만들었으니 이제 하준이 녀석이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여름은 하준의 식구를 돌아보았다. 다들 하준을 걱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엄마라는 최란도 마찬가지였다.갑자기 하준이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성격이 그렇게 차갑구나.’“하준 씨는 손자잖아요. 가문의 명예가 혈육보다도 중요한가요?”여름이 몸을 똑바로 펴며 말을 이었다.“하준 씨의 할아버지, 할머니, 낳아준 어머니시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나요? 하준 씨가 FTT를 키워서 명예와 부를 가져다줄 때는 다들 그렇게 우러러보다가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을 맞고 있는데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내친다고
여름을 바라보는 얼굴이 다들 달랐다. 한참 만에 갑자기 장춘자가 입을 열었다.“이렇게 고집이 셀 줄 몰랐구나.”최정이 입을 비죽거렸다.“할머니, 속지 마세요. 며칠 제대로 못 먹으면 정신 차리고 빌겠죠.”“무슨 소리야? 사람을 왜 밥을 안 줘?”최양하가 화가 나 소리쳤다.“너 안 좋다는 건 쟨데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최정이 맞받아쳤다.“됐다. 사람 죽으면 안 되지.”장춘자가 복잡한 심경으로 말했다.“전에 지안이 죽고 나서 하준이가 정신 나갈 뻔했잖니? 쟤도 일이 나면 이번에는 정말 큰일나지 싶다.”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자리를 파하자 최민은 방으로 돌아와 위자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자영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강여름만 처리해 주면 그쪽 회사에서 목표액에 부족하다던 금액은 우리가 채워드릴게요.”최민은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FTT 산하에 기업이 많지만, 자신이 현재 관리하는 FTT 보험은 매년 실적이 오르지 않아서 집안에서 무시당하고 있었다.‘이번 분기에 목표액만 달성할 수 있다면 노인네가 날 다시 봐줄 텐데….다만 하준이가 전에 그 병이 도진다면…’최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사람 목숨 어떻게 하는 것까지는 좀 어렵고요.”“어렵기는요. 최하준 때문에 그러세요? 최하준은 이제 평생 끝이에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어요.”“정말 못해요. 일단 사람을 살려놓는다는 전제 하에 다른 건 다 해볼 수 있어요.”최민이 말을 이었다.위자영은 조금 생각해보다가 사악하게 웃었다.“뭐 그것도 좋겠네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경지도 있는 법이니까. 걔는 남자 후리는 게 특기니까 다시는 누구 꼬드기지 못하게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 주세요.”“그건 문제없죠.”******지하 창고.보디가드가 강여름을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단 위에 있던 흐릿한 불마저 꺼졌다.너무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스마트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여름은 휴대전화 조명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구석에 쇠창살이 박힌 작은
“그렇군요. 나는 미칠 것 같지는 않은데.”여름이 담담히 웃었다.“전에는 이거보다 못한 곳에서도 살았어요. 여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요. 굶기는 것도 아니고 쉰 밥이나 썩은 물은 주는 것도 아니고, 이불도 있네요.”최양하는 멍해졌다.“무슨 소립니까? 쉰 음식과 썩은 물을 마신 적이 있어요?”‘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최양하는 사뭇 차분한 여름을 바라보며 자신이 여름을 한참 잘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거 물어봐야 소용 없어요.”여름이 힘 없이 피식 웃었다.“어쨌든 난 여기 있을 거예요. 부회장님이 이렇게 만들어 준 거잖아요.”최양하의 얼굴이 굳어졌다.“내가 그렇게 안 했어도 당신과 최하준의 관계는 밝혀질 거였습니다.”“그러니까 고맙다니까요.”여름이 냉랭하게 웃었다.“하준 씨에게 흥분시키는 술을 먹이고, 서유인을 이용해서 식구들 다 데리고 방으로 쳐들어와서 그런 장면을 보게 해준 것도 고마워요. 최하준의 명예를 땅바닥에 떨어지게 만들고 집안 어른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야 본인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겠죠.”여름의 팩폭에 최양하는 매우 난감했다.“내가 치사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순수하게 강여름 씨를 도와주고 싶어서….”“최양하 씨, 됐어요. 내게 있어서 당신은 최하준보다도 더 비열한 사람이에요. 내가 눈이 삐었지. 어쨌든 전에 한 번 구해줬던 건 이제 주고받았으니 저는 이제 빚은 없는 거예요.”“왜 이렇게 어리석게 굴어요?”최양하는 이제 살짝 화가 났다.“당신이 여기 남아 있어도 소용없어요. 최하준은 이제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쁘다니까요.”“내가 국적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나라로 못 돌아오는 일은 더더군다나 없고. 그리고 난… 하준 씨가 날 데리러 올 거라고 믿어요.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질 사람이 아니거든요.”가끔은 여름 스스로도 왜 최하준을 떠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그저 그 사람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보니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둘 사이에는 이루 다 말할 수
5일 뒤.하준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검찰청을 나왔다. 며칠 그 안에서 지내며 머리까지 깎였지만 훤칠한 미모는 여전했다.되려 얼굴 라인이 더 날카롭고 강렬해져서 더 매서워 보였다.“회장님, 고생하셨습니다”상혁이 얼른 다가왔다.송영식이 하준의 가슴팍을 툭 쳤다.“젠장, 다시는 너랑 술도 못 마시는 줄 알았잖아!”“온 재벌가들이 똘똘 뭉쳐서 날 감옥에 넣으려고 드니 싸움판이 작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만만한 인간은 아니지.”하준은 그렇게 말하고 두리번거렸다. 수행원들과 친구 말고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강여름은?”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거참, 야멸차기는, 설마 그 틈에 도망친 건 아니겠지?’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상혁은 고개를 숙였다.“어디 있어?”하준의 목소리가 사뭇 난폭해졌다.한참 만에야 어쩔 수 없이 이주혁이 답했다.“하준아, 여름 씨는 네가 조사받으러 가던 날 너희 식구들에게 끌려갔어.”하준이 상혁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사람 보내서 강여름 잘 지키라고 했잖아!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차 실장은? 차윤은 어디 갔어?”“정말 죄송합니다.”상혁이 어쩔 줄 몰라 했다.“지룡의 나한주가 배신을 하고 차윤을 기절시킨 사이에 집사가 여름 씨를 끌고 가버렸습니다.”“나한주가?”하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도 못 한 배신이었다.“그렇습니다.”“며칠이나 됐어?”하준이 물었다.“닷새째입니다.”상혁이 조심스럽게 답했다.“하지만 사람을 보내서 별장 쪽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여름 씨가 그쪽에서 쫓겨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쫓아내지 않았다면 어디 갇혀있겠군.”하준은 안색이 어둡게 변해 상혁을 노려봤다.“사람이 갇혔는데 왜 가서 빼내 오지 않았어?”송영식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며칠 동안 다들 각기 재벌가를 맡아서 해결하고 널 빼내느라고 동분서주했는데 그럴 정신이 어디 있냐? 상혁이는 네 수하일 뿐인데 FTT 별장을 무슨 수로 쳐들어가? 어르신이 얼마나 정예 요원들
송영식은 짜증이 났다.“너도 돕겠다고 나서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어디 형제라고 할 수 있겠냐?”송영식은 할 수 없이 애들을 불러서 하준을 도우라고 보냈다.******검은 스포츠카가 하준의 본가로 들어와 끼익하더니 본관 입구에 멈췄다.하준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식당에는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하준을 보더니 식당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주 이상해졌다. 장춘자는 깜짝 놀라더니 일어섰다.“나왔다니 잘 됐구나. 다음부터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말거라. 겨우 여자 때문에 그 여러 집안에 폐를 끼치고….”“강여름은요?”최하준이 말을 끊었다.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내놓으세요.”“탕!”최대범이 신경질적으로 그릇을 테이블에 세게 놓더니 고함쳤다.“며칠 동안 구치소에 들어갔다 오고도 여태 정신을 못 차리고 그 여자 생각뿐이냐? 내가 널 그렇게 키웠어?”“절 뭐 어떻게 키워주셨는데요?”하준이 냉랭하게 웃었다.“8살 전에는 보모가 키우고 8살 넘고부터는 정신병원 입원했잖아요. 퇴원하고 나니 미친놈이라도 거들떠보지도 않으셨고요. 밤잠도 안 자고 노력해서 겨우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으면서 기회를 얻어서 FTT를 지금 이 모습으로 키워 놓은 거잖아요. 사실은 FTT 전체가 저에게 빚지고 있는 거예요.”“됐다. 넌 그따위로 생각하고 있었구나.”최대범은 화가 났다.“잘 들어라.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우리 집안 사람이 될 기회도 없었을 거다. 이 은혜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됐어요. 그만 해요.”장춘자가 최대범을 말렸다.“쟤도 화나서 그냥 하는 소리잖아요.”“지금 이런 소리 하면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강여름만 내놓으세요.”최하준이 싸늘하게 뱉었다.“안 된다.”최대범이 대놓고 거절했다.“걔는 이제 생각도 말아라. 우리가 벌써 외국으로 보내버렸다.”“절 속일 생각은 마세요. 지금 여기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잖아요. 제가 직접 내려가죠.”하준이 안쪽 정원으로 향했다.“막아라.”최대범이 손을 휘둘렀다.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