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환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여름은 상당한 효녀였다.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보지 않았을 뿐.“네 말이 맞다, 여름아. 내가 잘못했다.”“감옥에서 제대로 뉘우치시길 바래요.”여름은 일어나 나갔다.회사로 돌아온 여름은 비서에게 강여경의 행방을 조사해보라고 지시했다.비서가 금방 소식을 알려왔다.“강여경 씨 실종된 지 며칠 된 것 같습니다. 집에 물건도 그대로고 은행 카드도 사용 기록이 없습니다. 마치 사람이 그냥 증발해 버린 것처럼요.”여름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 싸워온 사람인데 그렇게 어이없이 사라져버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상황을 보니 도망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그 뒤로 한동안 여름은 일과 양유진 병간호를 병행했다. 이제 반동거나 다름없었다.설 전날도 양유진의 집으로 가서 보냈다.밤이 되자 양유진의 집이 환하게 밝하졌다.여름은 양유진이 탄 휠체어를 밀며 방에서 나오다가 한선우를 보았다. 약혼녀인 서도윤, 어머니 양수영과 함께 와서 밥을 먹고 있었다. 세 사람의 대면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양수영은 바로 정색했다. “얘, 네가 지금 우리 집에 무슨 낯짝으로….”“시끄럽다. 이제 올케라고 불러야지.”민현숙이 다가오며 나무랐다.“설 지내고 나서 두 사람 약혼한다. 지난 일은 다시 입에 담지 마라.”한선우에게도 말했다.“그리고 넌, 앞으로 외숙모라고 부르고.”“…….”양수영과 한선우는 모레알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여름도 식은땀이 났다. 정말 울고 싶었다.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이 꿈꾸던 장면 아닌가? 드디어 그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아버지, 이게 지금 장난도 아니고….”양수영은 미칠 지경이었다. 예전에 며느리가 될 뻔했던 여름을 이제 올케라고 부르라니,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양 전 회장도 양수영을 노려보았다.“쟤도 이제 화신 회장이다. 올케라고 부르는 게 뭐 그렇게 억울해?”양수영은 말문이 막혔다.양수영도 바보가 아니다. 양유진과
여름은 양유진이 침대에 올라가는 것을 부축해 도왔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자 양유진이 여름의 손을 와락 잡았다.불꽃이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서 반짝반짝 피어나고 있었다.“여름 씨, 정말 나랑 약혼하고 싶은 거예요?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요.”“전 되려 유진 씨가 후회할까 봐 겁나는데요.”여름은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내년엔 화신 본사를 서울로 옮길 거예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된 원인을 찾아야겠어요. 내 미래의 적이 얼마나 거물인지는 모르겠지만…”“내가 함께할게요. 이번 생에 나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도울 겁니다.”양유진이 결연하게 말했다.여름은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어떻게 모질게 거절하고 상처 주겠어.’“고마워요.”설이 지나고 여름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화신이 새로 건축한 건물이 반응이 좋아서 자금도 금방 회수되었다.저녁에 퇴근 준비를 하는데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다.“정 이사 왔습니다. 다른 분하고 함께 왔는데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여름은 조금 놀랐다. 정호중은 자신이 대표이사가 되는 걸 돕고 나서 바로 해주로 돌아갔었다.‘어쩐 일이시지?’5분 후 사무실 문이 열렸다.정호중이 먼저 들어온 다음 정중하게 팔을 펼쳐 뒷사람을 안내했다. 매우 기품 넘치는 훤칠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준수한 외모였으나 입가에 살짝 주름이 있는 걸 보아 40대 쯤 돼 보였다. 남자의 성숙미가 발하는 나이이다. 정호중도 비슷한 나이였지만 이 남자의 분위기와 아우라는 비교 불가 수준이었다.남자는 들어와 여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움, 기쁨, 슬픔, 괴로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눈빛이었다.“아저씨, 이분은 누구…?”여름은 의아했다.“네 아버지, 서경주 씨다.”여름은 머릿속이 폭발하는 듯했다.자신의 친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그리고 서경주라는 이름이 어쩐지 귀에 익었다.작년에 10대 올해의 인물로 꼽혔던 분이 아닌가!
“여름아….”서경주는 애가 탔다.“꼭 같이 가줬으면 한다. 내가 보이는 데 두고 지켜주고 싶구나. 네 아버지가 나라는 건 오래 못 가 알려질 거다. 나와 네 엄마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여름이 흠칫 놀랐다정호중이 거들었다.“벨레스는 자산이 상당하단다. 그 집 사람들이 모두 노리고 있지. 서경주 회장의 딸이니 당연히 네게도 상속권이 있어.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둬라.”여름은 화가 나고 어이없었다. 돈, 재산 그런 건 자신도 아쉽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뭐, 서두르지 마십시오. 제가 설득할 테니. 이제 강신희 씨 묘소에 가보시죠.”정호중이 화제를 돌렸다.여름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가는 길에 서경주는 여름에게 강신희와 사귈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하지만 여름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다만 이런 질문을 던졌다.“그럼 그때 왜 엄마랑 헤어지신 건가요?”“20년 전,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단다. 가족들에게 속아 어쩌다가 지금 아내인 위자영과 관계를 맺게 됐어. 네 엄마는 그걸 알고 바로 떠났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서경주의 얼굴에 씁쓸함이 묻어났다.“그 뒤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구나. 위자영이 아이를 가졌고 책임을 지기 위해 난 결혼에 동의했다.”여름은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혐오스러웠다.‘무슨 이런 막장 드라마가 있어? 우리 엄마만 불쌍하잖아.’성묘를 마치고 여름은 일이 있다는 핑계로 먼저 떠났다.서경주는 떠나는 여름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흠, 아무래도 내 딸은 날 인정하기 싫은가 봅니다.”“여름이가 올해 저 집안 식구들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 그렇습니다.”정호중이 설명해 주었다.“그렇군요. 다 내가 너무 늦은 탓이지. 이제는 꼭 저 아이를 데려가 돌보고 싶습니다.”서경주이 자책하며 말했다.******다음 날 아침, 여름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정호중이 벌써
“그런 말 마세요. 전 그 집 재산에 관심 없어요.”여름의 말투는 피로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은 꼭 갈 거예요. 난….”“가요.”양유진이 여름의 손등을 살짝 덮어 쥐었다.“내 걱정은 말아요. 간병인이 잘 돌봐줄 테니.”“고마워요.”여름은 매우 감동했다. 양유진은 최하진과 너무나 달랐다. 늘 온화하게 자신을 감싸주었다.최하준은 늘 오만하고 멋대로였다. 항상 여름이 양보하거나,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갖은 꾀를 내어 달래고 얼러야만 동의했다.그 사람과 사귈 때는 늘 피곤했다. 사람을 시켜 자신을 감시하는 것도 싫었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 상황에 적응이 잘 안 됐다.“무슨 생각 해요?”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자가 돌연 넋이 빠져 있는 걸 보며 양유진은 눈에는 불안감이 스쳤다. 여름을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여름이 다시 정신이 들었다. 어째서 또 최하준 생각을 하고 있을까….“벨레스가 같은 큰 집안은 얼마나 얽히고 설킨 게 많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양유진이 미소지었다.“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함께 서울에 가줄 테니 여름 씨는 혼자가 아니에요. 사실 작년에 막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서울에서 사업 확장할 계획을 세웠어요. 2년 전에 신규 산업단지에 우리가 쓰려고 부지도 이미 사두었었습니다.”여름은 놀라며 감탄했다.“그렇게 멀리 내다보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가장 장기적으로 본 건 당신을 좋아하는 일이지만.”양유진이 살짝 웃으며 여름의 코를 꼬집었다. 여름의 몸이 경직됐다. 예전에 하준도 이렇게 꼬집었었지만, 양유진의 스킨십은 어쩐지 부자연스러웠고 거부감이 들었다.“늦었네요, 전 방으로 갈게요.”여름은 담담하게 웃었다.“약 먹고 일찍 쉬세요.”돌아서려다가 양유진이 아직 자신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고개를 돌려 양유진의 부드러운 두 눈을 마주했다.“여름 씨, 밤에 그냥 같이 있어 주면 안 될까요?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상처가 안 나아서 건드릴 일은 없어요.”“… 미안해요. 아직 헤어진
여름은 약간 놀랐다. 아버지가 달리 보였다.“그런 거, 귀찮지… 않으시겠어요?”“그쯤 별일 아니다.”서경주는 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혹시나 결혼을 물리게 되더라도 그 사람한테 빚지는 기분은 남지 않을 테니.”“아버지….”정말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이 단어가 튀어나왔다.서경주가 매우 기뻐했다.“한 번 더 불러주겠니?”여름은 난처함에 얼굴을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서경주가 웃었다.“나도 뜨겁게 사랑해 보았단다. 네 엄마랑 잠깐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정말이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힘들었어. 그런데 너희들은… 그 사람이 널 좋아하는 건 분명히 느껴지는데, 너는… 아까보다 지금이 훨씬 편해 보이는구나.”여름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를 이렇게 세심하게 관찰할 정도로 관심을 두는구나.’강태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나도 좋은 분이었다.이번에 동성에 가면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정을 느껴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도착 후 서경주는 바로 여름을 데리고 서명산에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서명산 위에는 큰 정원을 갖춘 저택이 많이 있었다. 크건 작건 모두 진정 파워있는 집안이나 전국에서 손꼽는 재벌들이 사는 곳이었다. 여름이 뭔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처음 봐서 서경주는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저기가 최하준의 본가란다.”'FTT라….'여름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최하준과 다시는 부딪힐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사람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게 될 날이 있을 줄은!‘최하준도 저 집에 사는 걸까? 그 사람은 저 집안에서 어떤 위치일까? 우리가 만나게 될까?관두자, 그만 생각해. 이미 다 지난 일이야.’집에 도착해 차가 멈추자 현관에서 단아하고 우아한 용모의 부인이 나왔다. “왔어요, 여보? 얘가 강여름이군요. 이렇게 예쁠 줄 몰랐네요.”“이쪽은 내 와이프다. “서경주가 온화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여름은 약간 의외였다. 위자영이 차
“네가 이해심이 많구나.”서경주가 대견스럽다는 듯 말했다.여름은 화가 나 죽을 것 같은 서유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너무 우스웠다. 강여경이 자신에게 쓰던 내숭 수법을 자신이 쓰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꽤 유용하잖아?’“뒤늦게야 찾은 딸이라고 너무 미안해 하거나 제 편만 들고고 그러지 마세요. 유인이가 편하지 않으면 자매 관계에도 좋지 않을 거고 가족도 화목해질 수가 없잖아요. 제가 왔다고 이미 있는 가정을 흔들고 싶진 않아요.”서경주는 이 말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어리광 피우며 자란 유인과 달리 여름은 사람 마음을 잘 헤아렸다.“가자, 네 방 보여주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뭐든 말하려무나.”부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서유인은 약이 올라 죽을 것 같았다.“완전 가증스럽네?”위자영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니 맘대로 주무를 수 있겠지 했었다.‘제 어미 똑 닮았네. 만만하지 않겠어.”그때 그 여자를 처치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딸을 지킬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됐다. 진정해. 엄마가 안 겪어본 사람이 있겠니? 저쯤은 아무것도 아니다.”위자영이 서유인을 꽉 붙잡았다.“오늘 최 회장네 파티 준비는 어떻게 됐니?”파티 얘기에 서유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핑크색 드레스랑 목걸이 최고급으로 맞춰놨고 케이한테 방문 메이크업도 예약해 놨어요. 오늘 밤에 내 미모로 다 쓸어버려야지. 그 집 큰아들이 나보고 한눈에 반하게.” 위자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알아봤는데 그 댁 어르신께서 집이 너무 썰렁하다고 돌려 말하는데 오늘 밤 사실은 큰 손주며느리감 찾으려는 것 같다더라. 서울에 내로라하는 집안에서 미혼인 아가씨들만 불렀다나 봐. 최 회장이 한동안 일 그만두고 여행 좀 갔다가 연말에 돌아왔대. 올해 결혼시킬 생각인가 보더라.”“엄마, 저 그 사람 좋아요.”서유인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내가 본 사람 중에 그 사람이 제일 잘 생겼어요.
3층 서재.최하준이 한 손에 담배를 끼고 또 한 손은 서류를 넘기며 읽고 있었다. 탁상등의 밝은 불빛이 그의 완벽하기 그지없는 얼굴 위로 번지고 있었다. 주위의 그 모든 떠들썩함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콰당하고 문이 열렸다.장춘자 여사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여기 있었구나. 네 와이프 될 사람 찾으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파티를 열었는데 참 잘하는 짓이다. 방구석에 숨어 있기나 하고, 대체 결혼할 생각이 있니, 없니?”“없습니다.”하준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하준의 할머니는 화가 나 쓰러질 지경이었다.“싫어도 가라. 누가 이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랬어? 결혼은 해야 할 거 아니냐? 지안이는 죽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허송세월하고 있을 작정이야?”서류를 넘기던 하준의 기다란 손가락이 잠시 주춤했다.장춘자가 서류를 한쪽으로 치워버렸다.“일이야 나중에 하면 되지. 오늘 밤에 마음에 드는 아가씨 안 골라 온다면 내가 그냥 죽어버릴란다.”“할머니….”하준이 맨손 세수를 했다. 이래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었다. 서른이 다 된 사람에게 아침저녁으로 결혼 이야기라니!‘그래서 여름과 결혼을 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나 했었는데….’여름이 떠오르자 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차피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일찍 하든 늦게 하든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냥 할머니가 하란 대로 따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알겠습니다.”하준은 일어나 장춘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장춘자는 매우 기뻐하며 하준과 함께 이층에서 아래에 있는 아가씨들을 관찰했다. “잘 보렴. 어느 집 딸이 마음에 드니?”하준은 아래를 내려다보자마자 골치가 아팠다. 거기 있는 여자들은 모두 떡칠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지우고 난 맨얼굴은 분명히 다를 것이었다.여름은 달랐다. 메이크업을 했든 안 했든 깨끗하고 맑았다.하준의 시선이 갑자기 어떤 여인의 얼굴에서 멈췄다.장춘자도 하준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벨레스 서경주 회장 딸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분위기가 뭔가 달랐다.서경주는 소파에 앉은 채 꼼짝 않고 있었고 서유인이 서경주의 팔에 매달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아빠, 어젯밤에 최 회장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모를걸요? 그 많은 사람 중에 날 딱 찍어서 춤추자고 했다고요. 저녁에 어르신도 저한테 한참 말 거시고… 그 사람 여자친구 하래요.”위자영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유인이가 복이 있어요. 얘 미모에 재능이면 당연히 괜찮은 신랑감을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FTT가 장손과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우리나라 재벌 중의 재벌이잖아요. FTT도 곧 그 사람 소유가 될 거고요.”“그 집에 최양하도 있잖아.”서경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두 모녀에게 주의를 주었다.“그 사람이 뭐요? 장손이 잠시 떠나있긴 했었지만, 최양하가 FTT를 장악하긴 무리죠.”서유인이 핏대를 세우고 말했다.“그 사람이 FTT 대표가 못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전 그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할래요.”위자영이 웃었다.“아유, 서로 눈맞는다는 게 이런 거지 뭐니? 선남선녀가 만났어.”서경주는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었다.“그러니까 어젯밤 한나절을 공들여 그 집 파티에 간 거냐? 어제 왜 날 속인 거냐? 내가 여름이도 가라고 할까 봐? 참 대단한 모녀군.”서유인이 입을 삐죽였다.“걔는 가라 그래서 뭐 하게요? 그런 데 가본 적도 없을 텐데요. 우리 집 망신이나 시킬까 봐 겁나네요. 그리고 걔는 약혼자 있잖아요? 괜히 잘난 서울 재벌들 만났다가 맘 변해서 약혼자 차버리면 어떡해요?”“뭐라고!”서경주는 화가 나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났다. 그러다 계단 위에 서 있는 여름을 보고는 멈칫했다.“여름아….”“어머, 오해하지 말거라!”위자영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유인이 말은 네가 막 동성에서 와서 그런 파티에 가는 게 익숙하지 않을까 봐 그런 거지. 게다가 그 집안 파티는 또 일반적인 파티랑은 달라서 말이다.”여름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