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두 사람은 노래방 입구에 도착했다. 옆으로 한 커플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말끔한 차림에 준수한 외모의 남자와 브라운색 코트에 웨이브 머리를 흩날리는 귀여운 여자였다.그 순간, 임윤서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분명 조금 아까 회사 일로 바빠 데리러 올 시간이 없다던 사람이 어째서 지금 다른 여자와 함께 여기 있는 것인가!여름은 윤서를 끌고 다가가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어머, 윤 대표, 여기서 뵙네요? 윤서 말로는 회사에서 야근하느라 바쁘셔서 픽업 나올 시간도 없으시다던데.”가시 돋힌 말에 윤상원은 당황했다.“원래는 진짜 야근하려고 했는데 아영이가 천재국이 자기한테 찝쩍댄다고 연락 와서 바로 온 거야. 신아영이 얼른 거들며 징징댔다.“네, 맞아요. 언니도 천재국 알죠? 정말 짜증 나 죽겠어요.”윤서가 입술을 뜯었다. 웃을 수가 없었다.여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정말 부럽다. 이렇게 든든한 오빠가 파티 갈 때 파트너 해줘, 위기 상황 닥치면 제일 먼저 달려와. 근데 이래 가지고 연애하겠어요? 누가 보면 너 남친 있는 줄 알 텐데?”신아영의 얼굴이 불안해 보였다.“언니, 무슨 뜻이에요?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맨날 의심하고 그래요? 윤서 언니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윤상원도 굳은 얼굴이었다.신아영은 당황해하며 상원에게 말했다.“오빠, 미안해요. 윤서 언니한테 가봐요. 이따 무슨 일 생기면 제가 알아서 피할게요.”“됐어, 그만해.”윤상원은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여름을 보았다.“강여름 씨, 그쪽이 이해하지 못 하는 일도 있는 겁니다. 말 좀 가려 해요.”여름은 어이가 없었다. “전 순수하게 알려주려던 것뿐이에요.”“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그런 오지랖 필요 없어요.”윤상원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래? 근데 오빠가 알아서 하는 것 같지 않네.”윤서는 자신의 친구가 공격당하는 걸 보자 참았던 화가 솟구쳤다.“매번 쟤가 일 생기면 오빠가 제일 먼저 달려가는데,
위로 올라간 윤서는 너무 화가 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여름이 부축해주었다.“윤서야, 미안해. 진작 알았으면 그렇게 말 안 했을 텐데.”“나도 늘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윤서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넌 딱 두 번 보고도 이상하다고 알아차렸는데 말이지. 생각해 보면 신아영 만난 횟수가 우리 데이트 횟수랑 비슷할 거야.”여름은 너무나 놀랐다. 해외에서 유학했던 터라 친구의 상황을 잘 몰랐다. 윤서가 씁쓸하게 말했다.“내가 상원 오빠랑 데이트할 때면, 열에 일곱 번은 아영이를 데리고 나왔어. 심지어 영화 볼 때도 같이 갔고. 나머지 세 번도 그중 두 번은 신아영 전화 받고 먼저 자리를 떴다고. ““왜 진작 말 안 했어?”여름은 안타깝기도 하고 화나기도 했다.“진작 알았음 방금 그렇게 예의 안 차리고 바로 욕을 퍼부었지.”“너랑 상원 오빠가 등지고 싸우게 되는 건 원치 않았어.”“나 정말 그 사람 좋아하거든, 처음에도 내가 오래 쫓아다녔고. 집에도 얘기했어. 올해 설에 부모님께 인사시킨 것도 정말 결혼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야.”“잘 생각했으면 좋겠어. 늘 다른 사람 옆을 붙어 있는 남자를 믿을 수 있겠어? 그 아영이란 애 한 눈에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던데. 상원 오빠더러 분명히 하라 그래. 여친인지 아니면 신아영인지.”여름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있었다.“늘 저렇게 신아영 바라기 하고 있으면 나중에 어찌어찌 결혼하더라도 조만간 이혼하게 될 거라구.”윤서는 멍하니 한참을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쓸데없는 생각은 마. 기분 안 좋으면 몇 잔 더 마시고 내가 바래다줄게.”여름은 윤서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끌벅적한 룸 안에 남녀 여럿이 있었다.여름이 아는 사람은 이지훈, 주대성, 그리고 구석에 앉아 있는… 최하준 뿐이었다. 히터가 켜져 있어서 그는 흰색 와이셔츠만을 입고 있었다. 왼손엔 술잔을 쥔 그의 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넘쳤다.그는 늘 그렇게 눈에 띄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
최하준과 이야기를 하던 변호사는 몸을 떨었다.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못하고 술잔을 들고 저쪽으로 갔다.이지훈이 아무 말 없이 옆으로 와서 앉았다.“어이, 내가 오라고 불렀어. 둘이 언제까지 이럴 거야?”“흥, 주대성에게 불러준 거 아니고?”최하준이 비꼬았다.“거 억울하네.”이지훈이 화를 냈다.“네가 상대도 안 하니까 그런 거 아니냐?”최하준이 싸늘하게 웃었다.“뭐, 됐어. 저렇게 분수도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아봤자 기분만 나쁘지.”이때 두 사람이 들어왔다. 진현일이 진가은과 강여경을 데리고 들어왔다.이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아니, 오늘 무슨 날인가, 온갖 웬수들이 왜 여기 다 모이냐?’속으로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진현일이 쓱 돌아보더니 이지훈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친구들이랑 놀다가 다들 여기서 논다는 얘기가 들려서 한잔하려고 왔지. 이분이 그 유명한 최 변호사시구나.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최하준은 꼼짝도 하지 않고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지훈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진가은은 신경 안 써도 그만이지만 진현일은 최근 재벌가에서 떠오르는 인물인 데다 JJ그룹도 요즘 성장세가 빠른 집안이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아이고, 진 대표. 축하드립니다. 이제 JJ그룹을 맡으시게 되었던데.”이지훈이 빙긋 웃으며 강여경을 흘끗 봤다.“그런데 어쩌다 이런 분이랑 노시나?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진현일이 껄껄 웃더니 갑자기 강여경을 감싸 안고 큰 소리로 소개했다.“자자, 소개하겠습니다. 내 여자친구 화신그릅 대주주 강태환 이사의 딸입니다.”룸이 왁자지껄 해졌다. 이지훈과 최하준의 얼굴이 곧 일그러졌다.“그럴 리가. 강태환이 언제 화신의 대주주가 됐습니까?”“거짓말 아니야?”“......”“아유, 적당히 해요.”강여경이 민망한 듯 말했다.“뭘 적당히 해? 우리 자기 신분이면 이제 동성에서 제일가는 신붓감인데.”진현일이 강여경의 볼에 뽀뽀를 쪽 했다.“아오, 어쩌다 요런 귀한 보물 같은 걸
“지훈 씨, 같이 좀 앉을까요? 여기 사람이 없네.”입구까지 걸어온 진현일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아니, 일부러 사람 긁으려고 온 겁니까?”이지훈이 버럭 화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굳이 내가 긁을 것까지야 있나?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니 이득 되는 대로 움직이는 거죠.”진현일이 눈썹을 쓱 올렸다.“뭐 얼마 못 가서 그쪽 집안은 이제 동성 제1가문의 지위는 내놓아야 할 겁니다.”“너무 과한 꿈을 꾸시는 거 아닙니까. 저런 여자를 등에 업고 과연 JJ그룹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으려나?”이지훈이 강여경을 가리켰다.“더구나, 지난달까지 다른 남자의 약혼녀였던 분은 더 조심하셔야지.”강여경의 낯빛이 확 바뀌더니 싸늘하게 뱉었다.“지훈 씨, 말 좀 가려서 하시죠. 우리 아빠가 다음 달에 이사장되시고 나서 이성에 손댈지도 몰라요.” 옆에서 듣던 여름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 아닌가? 다음 달에 강 이사님이 이사장 못 되시면 어쩌시려고?”윤서도 사악하게 웃었다.“그러게. 강 이사님 평판이 과히 좋지 않던데 화신의 브랜드 벨류에도 영향 미치는 거 아니야?”“그러게나 말입니다.”이지훈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지금 실컷 웃어둬. 다음 달에 펑펑 울게 될 거다!”강여경이 싸늘한 얼굴로 진현일을 데리고 룸에서 나갔다.남아있던 진가은이 한껏 끼를 부리며 최하준 곁으로 갔다.“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실까?”최하준은 차갑게 쏘아보더니 ‘저리 가시죠’하고 말았다.진가은은 신경도 안 썼다. 이 남자를 처음 만난 이후로 그보다 멋진 남자를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겨우 변호사 직업 정도로는 자신에게 기운다고 생각됐지만, 국내 최고의 변호사라는 걸 알고 나서는 자신에게 어울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JJ그룹을 잘 모르시나 보다.”진가은이 빙긋 웃었다.“자산 규모 한 10조 정도 되고요, 지금은 요식업, 여행업, 금융, 과학기술 등 영역에 투자하고 있어요. 곧 화신하고도 손잡을 예정이라 전도유망하죠. 앞으로 국내 최
진가은이 기가 살아서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들었냐? 나가란다!”여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당신 말입니다. 나가시라고.”최하준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진가은을 밀었다.다들 놀라서 얼어붙었다. 진가은이 소리를 빽 질렀다.“뭐 이런 게 다 있어? 날 밀어? 너, 가만 안 둬!”최하준이 티슈를 한 장 뽑더니 방금 진가은의 손이 닿았던 어깨를 더러운 오물이라도 닦아내듯 싹싹 닦아냈다. “뭐, 그러시던지.”보고 있던 여름은 끓어오르던 분노가 많이 가라앉았다.최하준이 분위기를 파악했기 망정이지 평생 꼴도 보기 싫었을 뻔했다.“최하준!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언젠가는 울면서 나한테 매달리게 될 거다!”모욕에 치를 떨며 진가은이 벌컥 문을 열고 나갔다.“......”이지훈이 화를 냈다.“저가 뭐라고 하준이가 매달려? 쯧쯧.”윤서와 주대성이 동시에 ‘푸흡’하고 웃어버렸다.여름과 최하준만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었다.“넌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 불러 놓고 뭔 할 말이 있냐?”최하준이 이지훈을 보고 비아냥거렸다.이지훈은 민망했다.“겨우 JJ그룹이잖아. 화신이랑 손잡는 대도 난 신경도 안 써. 자자, 한 잔들 하자고. 놀아보자. 이제 우리 진짜 놀 사람들만 남았네, 뭐.”곧 이지훈이 나서서 부를 노래를 골랐다. 윤서도 노래를 골랐다.갑자기 긴 소파가 텅텅 비었는데 여름은 하필 딱 두 남자 사이에 앉게 되었다. 한쪽은 주대성, 한쪽은 최하준이었다.슬슬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아까는 흥분해서 기세좋게 최하준에게 손도 대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긴 했는데, 커흡….“이쪽으로 앉으십시오.”최하준이 별안간 자기 옆자리를 툭툭 쳤다.할 수 없이 여름이 그리고 가 앉자 최하준이 한 손을 여름 뒤쪽 등받이에 올리고 한 손으로는 여름의 턱을 슥 당겼다.“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나한테 손도 대지 말라고?”“…….”여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깊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봐도 대체 최하준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최하준이 꼼짝도 않고
최하준은 그 말을 듣고 속이 시원해진 것이 아니라 되려 실망했다.“일이 생겼을 때 날 찾아오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호감을 가진 남자를 찾아가는군요. 내가 한동안 너무 잘해주니까 이제 만만한가?”“아니, 나랑 양 대표는 진작에 다 설명했잖아요, 양 대표님이...”“그래서 지금은 양유진이 강여름 씨를 그저 친구로 여긴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최하준이 비웃었다.“나도 날 따라다니던 여자랑 친구 하면 되겠네요?”“......”여름이 흠칫했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니 확실히 좀 부적절한 데가 있었다.“미안해요.”여름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제일 먼저 쭌을 찾아갈게요. 양 대표 도움은 안 받을게요. 내 마음속에는 쭌 뿐이에요”최하준이 담배에 불을 붙여 깊이 빨아 당기더니 후 뱉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여름은 최하준의 옆 모습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윤서의 발라드가 끝나가고 있었다.여름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얼른 노래를 한 곡 고르더니 우선 예약을 걸었다.곧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다들 곧 무슨 노래인지 알아차리고 기대에 차서 여름을 돌아보았다.여름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이런 짓을 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래도 최하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조그맣게 말했다.“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노래를 바칠게요.”말을 마치고 얼른 하준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최하준은 눈썹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명이 여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것이 보였다. 눈은 별이 가득 찬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심장이 욱신거렸다.지훈은 휘파람을 불며 박수까지 쳐댔다.“와우, 제수씨! 대단하네. 하준아, 들었냐? 너에 대한 사랑 고백이란다!”최하준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다리를 꼬고는 여름을 바라보았다.여름이 마이크를 잡았다.얼마나 사랑하냐고?내 마음 아마도
여름은 너무 부끄러웠다.간신히 키스를 끝내고 급히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쪽으로 몰려가서 술 게임을 하고 노래 부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이지훈이 헤헤거렸다.“뽀뽀 끝났으면 어여 와요. 우린 벌써 몇 판 놀았지.”난감해하며 돌아보자 최하준이 나른하게 툭 던졌다.“난 싫습니다.”그러더니 얼굴을 찰랑찰랑한 여름의 머리에 묻었다.“집에나 가죠.” “아니, 윤서 술 마셔서 데려다 줘야 해요.”“대리 불러줘요.”잠시 망설이던 여름이 고개를 잘레잘레 저었다.“남친이랑 싸웠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잔하면 내가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래요?”최하준은 다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무슨 뜻입니까? 난 친구보다 못하다는 뜻입니까?”“......”‘당연하지. 친구가 더 중요하지, 이 양반아!’그러나 속마음은 꿀꺽 삼키고 귀염을 떨었다.“아잉, 그런 말이 어딨어요? 오랜만에 나오기도 했고, 쭌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아주 거짓말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현주 이모에게 들은 이야기를 최하준에게 해야 할 판이었다.최하준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 빛났다.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지난번에 공사현장에서 다친 게 사고가 아니라 강태환 일가의 짓이군요. 어디, 날 건드리시겠다?”그때 최하준을 다치게 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강태환 모녀는 정말이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었다.최하준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김상혁의 번호를 눌렀다.“뭐 하게요?”여름이 물었다.“손 봐야지요.”헉헉, 무슨 이런 대범한 짓을! 여름이 황급히 최하준의 핸드폰을 손으로 눌러 막았다.“기분 나쁘다고 함부로 덤비지 말아요. 요즘 그 집안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집이에요. 진현일이랑 강여경이 결혼이라도 하면 이제 동성 제1재벌이라는 지훈 씨네도 발밑으로 내려다보게 될 거라고요.”“......”‘내가 그따위를 겁내야 하나?’최하준이 속으로 웃었다.“뭐, 걱정하지 말아요. 복수는 내가 해줄게요.”여름이 호언장담했다.“내가 화신
그 소릴 들은 여름은 술이 확 깨서 벌떡 일어났다.“어우야, 너 걸을 수 있겠냐? 내가 잡아줄까?”“아뉘야. 이 언니 안 취예따. 이 언니는 10병 먹어도 안 취얀다니까!”윤서는 쿨하게 손을 젓더니 휘적거리며 들어가 버렸다.“삼촌?”최하준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여름은 놀라서 몸이 떨렸다.“쭌이 쟤 외삼촌이랑 닮았나 봐요. 그래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쭌을 삼촌이라고 부르거든요.”“다 큰 아가씨 삼촌이라니 별로군요. 그렇게 부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최하준이 다시 시동을 걸자 여름은 겨우 한숨 돌렸다. 아직 안 들킨 모양이다.돌아가는 길에 술기운도 올라오겠다 피곤해서 여름은 졸음이 쏟아졌다.얼마나 지났는지 누군가가 여름을 안아 들었다.몽롱한 채 눈을 떠보니 최하준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꿈인가 싶었다. 통통한 아랫입술을 쭉 내밀더니 최하준의 목을 감쌌다.“쭈운, 나한테 자꾸 화내지 마요. 요 며칠 동안 쭌 보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다고.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져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한테는 이제 쭌밖에 없어요.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 줄 거죠?”그러더니 최하준을 꼭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여름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최하준의 목덜미까지 흘러들었다.최하준이 흠칫 놀랐다. 아마도 여름이 아직 잠에 취했나 싶었다.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며칠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연약한 사람에게 그 많은 일이 벌어졌는데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으니….’“그럼요. 내가 꼭 당신 곁에 있을게요.”최하준이 여름의 귀에 속삭였다.따스한 목소리가 진정제 역할을 했는지, 차츰 진정되더니 최하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다.최하준은 여름을 안고 올라가서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았다. 말랑한 여름의 뺨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이번엔 정말 당했군.’며칠 동안 여름이 곁에 없으니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막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눈 밖에서 조그맣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어보니 김상혁이 서 있었다. 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