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너무 부끄러웠다.간신히 키스를 끝내고 급히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쪽으로 몰려가서 술 게임을 하고 노래 부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이지훈이 헤헤거렸다.“뽀뽀 끝났으면 어여 와요. 우린 벌써 몇 판 놀았지.”난감해하며 돌아보자 최하준이 나른하게 툭 던졌다.“난 싫습니다.”그러더니 얼굴을 찰랑찰랑한 여름의 머리에 묻었다.“집에나 가죠.” “아니, 윤서 술 마셔서 데려다 줘야 해요.”“대리 불러줘요.”잠시 망설이던 여름이 고개를 잘레잘레 저었다.“남친이랑 싸웠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잔하면 내가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래요?”최하준은 다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무슨 뜻입니까? 난 친구보다 못하다는 뜻입니까?”“......”‘당연하지. 친구가 더 중요하지, 이 양반아!’그러나 속마음은 꿀꺽 삼키고 귀염을 떨었다.“아잉, 그런 말이 어딨어요? 오랜만에 나오기도 했고, 쭌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아주 거짓말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현주 이모에게 들은 이야기를 최하준에게 해야 할 판이었다.최하준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 빛났다.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지난번에 공사현장에서 다친 게 사고가 아니라 강태환 일가의 짓이군요. 어디, 날 건드리시겠다?”그때 최하준을 다치게 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강태환 모녀는 정말이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었다.최하준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김상혁의 번호를 눌렀다.“뭐 하게요?”여름이 물었다.“손 봐야지요.”헉헉, 무슨 이런 대범한 짓을! 여름이 황급히 최하준의 핸드폰을 손으로 눌러 막았다.“기분 나쁘다고 함부로 덤비지 말아요. 요즘 그 집안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집이에요. 진현일이랑 강여경이 결혼이라도 하면 이제 동성 제1재벌이라는 지훈 씨네도 발밑으로 내려다보게 될 거라고요.”“......”‘내가 그따위를 겁내야 하나?’최하준이 속으로 웃었다.“뭐, 걱정하지 말아요. 복수는 내가 해줄게요.”여름이 호언장담했다.“내가 화신
그 소릴 들은 여름은 술이 확 깨서 벌떡 일어났다.“어우야, 너 걸을 수 있겠냐? 내가 잡아줄까?”“아뉘야. 이 언니 안 취예따. 이 언니는 10병 먹어도 안 취얀다니까!”윤서는 쿨하게 손을 젓더니 휘적거리며 들어가 버렸다.“삼촌?”최하준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여름은 놀라서 몸이 떨렸다.“쭌이 쟤 외삼촌이랑 닮았나 봐요. 그래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쭌을 삼촌이라고 부르거든요.”“다 큰 아가씨 삼촌이라니 별로군요. 그렇게 부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최하준이 다시 시동을 걸자 여름은 겨우 한숨 돌렸다. 아직 안 들킨 모양이다.돌아가는 길에 술기운도 올라오겠다 피곤해서 여름은 졸음이 쏟아졌다.얼마나 지났는지 누군가가 여름을 안아 들었다.몽롱한 채 눈을 떠보니 최하준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꿈인가 싶었다. 통통한 아랫입술을 쭉 내밀더니 최하준의 목을 감쌌다.“쭈운, 나한테 자꾸 화내지 마요. 요 며칠 동안 쭌 보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다고.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져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한테는 이제 쭌밖에 없어요.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 줄 거죠?”그러더니 최하준을 꼭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여름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최하준의 목덜미까지 흘러들었다.최하준이 흠칫 놀랐다. 아마도 여름이 아직 잠에 취했나 싶었다.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며칠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연약한 사람에게 그 많은 일이 벌어졌는데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으니….’“그럼요. 내가 꼭 당신 곁에 있을게요.”최하준이 여름의 귀에 속삭였다.따스한 목소리가 진정제 역할을 했는지, 차츰 진정되더니 최하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다.최하준은 여름을 안고 올라가서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았다. 말랑한 여름의 뺨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이번엔 정말 당했군.’며칠 동안 여름이 곁에 없으니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막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눈 밖에서 조그맣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어보니 김상혁이 서 있었다. 김상
최하준이 여름의 볼을 잡고 살랑살랑 흔들었다.“제발 얌전히 내 말 좀 들어요, 난 강여름 씨가 화신을 손아귀에 넣고 날 부양해 주기만 기다리겠습니다.”귀에 착 달라붙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해대니 여름의 방어력이 제로가 되어 버렸다.옆에서 듣고 있던 차윤의 시선이 사뭇 이상했다.여름이 그걸 봐뒀다가 최하준이 출근하자 웃으며 물었다.“원래 쭌을 알았어요?”‘쭌’이란 말을 듣더니 차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황급히 공손한 말투로 고쳐서 대답했다.“네.”여름이 다시 물었다.“그럼 여자친구 있었는지도 알겠네요? 몇 명이나 있었어요?”“변호사님께 여쭤보는 게 좋겠습니다.”차윤이 간단히 말을 돌려버렸다.여름은 지나치게 성실한 이 보디가드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이날부터 여름은 도하건축디자인을 그만두고 화신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강태환의 집.강 회장이 어느 주주의 전화를 받고 매우 기분이 좋았다.“구 이사께서 드디어 날 지지해 주시는군요. 하긴 뭐 이사장 자리를 내가 아니면 누가 맡겠소?”“여보, 축하해요.”이정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최근 강태환이 화신의 대주주 신분이 된 뒤로 자신을 깔보던 사모들이 와서 알랑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득의양양했다.“당신이 이사장 되고, 여경이랑 현일 군이랑 결혼하면 이제 우리가 동성 제일 재벌 되는 거지.”“좋지. 내가 전에는 내내 이성이니, 주화에 주눅이 들었었는데, 이제 우리가 곧 그 그룹들 다 능가하고 동성 제일이 될 거야. 앗하하!”생각할수록 신이 나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강여경도 웃었다.“아빠, 현주 이모는 찾았어요? 현주 이모를 남겨두면 화근이 될 거예요.”“그러게, 그 여자는 뭘 너무 많이 안단 말이야.”이 여사가 걱정스럽게 답했다.“알면 어쩔 거야? 내 지위가 이렇게까지 올라갔는데, 여름이 고 사기꾼 녀석이 이제는 날 어쩌지 못해.”강태환이 신경 안 쓴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배후에 최하준이 있다고 해도, 그놈도 얼마 안 남았어.”“아빠, 윤정
총회가 시작되었다. 강태환은 곧장 구 이사 오른쪽으로 가서 앉았다.구 이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물었다.“다들 오셨나?”“정호중 이사 빼고는 다들 오셨네요.”천 이사가 답했다.“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정 이사는 주주총회에는 참석을 안 하시고, 회사일에는 일절 간섭도 안 하시고 배당만 받으시죠.”“그럼 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구 이사가 입을 열었다.“내가 이제 나이가 일흔이 되었습니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해서 이제 좀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 이사장 직은 능력 있는 분이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올해 강옥경 어르신께서 별세하시고 60%에 해당하는 어르신의 주식이 아드님인 강태환 이사에게 갔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회사의 최대 주주로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방 안에 있던 주주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일시에 강태환에게로 향했다.태환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부러워 해봐야 다 소용없지. 팔자는 타고나는 거야.’류 이사가 웃었다.“강 이사님은 아직 젊으시면서도 진중한 분이니 저는 이사장 자리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그럼, 우리도 찬성합니다.”“강 이사로 하시죠. 이견 없습니다.”“…….”회의실 여기저기서 지지 선언이 나왔다.구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선거니까 정상적인 코스는 밟아야겠죠. 다들 거수로 표결에 부치겠습니다.”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구 이사장이 거수자의 손을 셌다.“주주 15분 가운데 10분이 지지하셨습니다. 이사장 자리는 강 이사가 맡으시는 수밖에 없겠군요. 아니, 이제 강 이사장이시군.”강태환이 으쓱해 하면서 일어섰다.“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제가 이사장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우리 화신을 일류기업으로 키워 여러분의 수익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우린 강 이사장을 믿습니다.”다들 박수치며 환영했다.강태환은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내 TH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지만 사실 화신에 비교하면 TH는 새 발의 피였다.
강태환은 그 사람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러나 누군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았다. 구 전 이사장이 일어섰다.“정 이사, 그간 ‘해주’에서 지내지 않았습니까? 오늘 어쩐 일입니까?”강여경의 표정이 굳었다. 이 사람이 그 미스터리의 인물 정호중이라는 걸 알아챘다.그러나 그가 가진 지분은 10%였다. 60%를 가진 강태환에 댈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강태환은 이사장이다.그런 생각을 하니 상대가 우스워 보여 비꼬았다.“이사면 들어오셔야지. 그렇지만 이사라고 쓰레기를 막 달고 오시면 어째요?”그러면서 여름을 한 번 쏘아 보았다.여름의 눈썹이 올라갔다.“쓰레기라니, 본인 얘기를 하시는 건가?”“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봐?”강여경이 비웃었다.“우리 아빠가 이제 화신 이사장이야. 이제 내가 여기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어디서 네까짓 게 그따위 소리야?”“난 표결에 참석도 안 했는데, 어쩌다 저 사람이 이사장이 됐습니까?”정호중이 침착하게 의자를 하나 빼서 앉았다.“그렇긴 한데...”구 전 이사장이 난처해 했다.“이제 강태환 이사가 이사장이 됐습니다. 바꿀 수는 없어요.”“강 이사장이 최대 주주라고, 60%를 보유하고 있어. 당신이 뭔데?”누군가가 비웃었다.“누가 당신이 최대 주주랍니까?”정호중이 웃었다.“기껏해야 30%밖에 보유하지 못 했으면서!”강태환이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가지고 계시던 주식은 다 내 소유요.”“무슨 말씀!”정호중이 손에 든 서류를 테이블에 탁 던졌다.“어르신께서 생전에 남기신 유언장이오. 돌아가시고 나면 보유하신 60%의 주식을 당신과 강여름 씨에게 30%씩 남긴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걸 혼자서 다 꿀꺽하시려고 했나?”그 말이 떨어지자 온 회의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강태환과 강여경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구 이사가 급히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낯빛이 어두워졌다.“확실히 그렇군요. 그리고 강옥경 어르신의 도장과 친필사인도 확실합니다.”“말도 안 돼!”강태환이 책상을
강태환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곧 냉정을 되찾았다.“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 주식은 이미 다 내 명의가 되었어. 네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오늘 내가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어.”“누가 그러던가요?”여름이 씩 웃었다.“아직 정확하게 안 찾아보셨나 본데, 30%는 이미 내 명의로 들어와 있습니다.”강태환의 얼굴이 확 변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1분도 안 돼서 눈빛이 흉악하게 변했다. 강여름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여름이 모두를 바라봤다.“정말 공교롭지 않습니까? 강옥경 여사께서 갑자기 중풍에 걸리시고, 갑자기 돌아가시고, 심지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조차도 저는 이틀이 지나서 식구에게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야 강신희 씨와 저의 인연을 알게 됐고요. 아니었으면 제 주식은 모두 외삼촌의 것이 될 뻔했죠.” 다들 소곤소곤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그러고 보니 어르신 돌아가신 정황이 너무 수상쩍은걸.”“그러게나 말이야. 여름에 뵈었을 때만 해도 어르신 아주 정정하셨거든.”“쯧, 정말 악랄한 사람이군. 친어머니인데 말이야.”“앞으로 가까이 못 하겠어. 무서운 사람이군.”“......”다들 강태환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강태환이 테이블을 탕 내리쳤다.“강여름, 한 번만 더 헛소리해 봐!”“외삼촌, 제가 딱히 삼촌을 꼭 집어서 말씀드리진 않았는데, 그렇게 흥분하시는 걸 보니 찔리는 게 있는가 보네요?”여름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눈빛은 사뭇 싸늘했다.“설마하니 친어머니를 죽였다고는 생각 못 하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할머니는 돌아가셔도 눈을 감지 못 하실 거예요.”강태환의 얼굴이 떨렸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더니 기분 나쁘다는 듯 얼른 화제를 돌렸다.“대체 뭘 어쩌겠다고 왔느냐?”“당연히 이사장 후보로서 외삼촌하고 경쟁하러 왔죠.”여름이 모두를 둘러보았다.“저와 강태환 이사님이 주식을 30%씩 보유하고 있으니 저도 후보 자격
여름이 실소했다.“강태환 전 대표의 조카인 이민수가 리베이트 자금을 횡령하는 것을 밝혔던 게 바로 저입니다. 건물 하나 제대로 짓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개발업자가 되려고 하는데 누가 분양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맞습니다. 안 되는 말이지요.”임 이사가 나서서 맞장구쳤다.“저도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화신의 평판이 나빠지면 여러모로 곤란합니다.”“……”주주들의 반응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자 여름이 완곡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여러분 말씀대로 저는 아직 어립니다. 아직 모자라지만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여기 계신 선배님들께 한 수 배워보려고 합니다. 화신이 이 위치에 오기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강태환 이사가 어떤 걸 미리 약속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화신이 앞으로 계속 승승장구해서 배당금 수익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옳습니다.”마침내 정 이사도 호응했다. 목소리에는 위엄이 넘쳤다.“상장사의 오너 리스크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강여름 씨가 대표 자리에 오르면 저는 성심성의껏 보좌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강신희 대표를 보좌했던 시절을 기억할 겁니다. 강신희 전 대표가 있었기에 오늘의 화신도 있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암, 정 이사 능력이야 우리가 인정하지.”임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 거수로 투표를 진행할까요? 구 이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호중 이사가 말했다.“내가 구 이사님과 대표자리를 놓고 경쟁하려고 했다면 오늘까지 이렇게 편안하게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셨을 겁니다?”“그렇겠지요.”구 전 이사장이 강태환의 눈길을 피하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자, 그럼 거수를 진행합니다.”거수로 표결이 시작되었고, 강여름이 9표를, 강태환이 7표를 얻었다.“강여름 신임 이사장님, 축하합니다.”정호중이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강태환은 책상을 탁 치며 벌떡 일어서 노기 어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이사장 선출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결과가 이랬다 저랬다 바뀌
“꼭 그렇게 만들 거야.”강여경이 이를 갈며 말했다.“하지만 일단은 보류해야 할 것 같아. 갑자기 강여름이 나타나서는… 방금 대표이사로 선출됐어.”“뭐?”진현일이 놀라 펄쩍 뛰었다.“무조건 당선된다고 하지 않았냐? 뭘 어쨌길래 강여름 하나를 못 당해내?”강여경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정호중하고 엮인 줄 누가 알았겠어. 우리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됐어. 내 여자친구가 화신그룹 대표 딸이라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녔는데, 이제 얼굴 못 들고 다니겠군.”“…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오빠.”강여경이 풀이 죽어 울먹였다.“무슨 말이 그래? 우리 아버지가 화신그룹 대표가 아니면 날 버리겠다는거야?”현일은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쨌거나 강여경은 화신그룹 이사의 딸이니 매년 배당금만해도 엄청난 액수다. 황급히 멋쩍은 듯 웃었다.“그럴 리가 있나. 별 생각을 다한다, 너. 난 그냥 네가 그런 일을 당했다니 너무 화가나서 그랬어. 내가 좋아하는 건 강여경이야. 누구누구의 딸이 아니라.”“안심해 오빠. 조금만 기다려주면 상황이 바뀔거야. 강여름이 대표이사 자리에 앉긴 했지만, 오래가진 못할거니까.”강여경이 악에 받쳐 이를 갈았다.“그렇겠지. 자리를 보존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으니까.”진현일이 음흉하게 웃었다.“나도 있는 힘껏 널 도울게.”“고마워, 오빠.”******12시 20분.드디어 회의가 끝났다.주주들이 한사람 한사람 여름과 정중하게 악수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대표실로 모시겠습니다.”비서인 노선경이 여름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네, 그럴게요.”여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태환이 여름과 정면으로 마주섰다.어둡게 일그러진 얼굴로 여름에게 소리를 질렀다.“천하에 배은망덕한 것! 네가 지금 다 가진 것 같지? 그래, 너한테 잠시만 양보하지. 곧 다시 내 자리가 될 테니…”“시끄러워요!”여름이 소리쳤다.강태환은 여름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신이 어질어질했다.화가 머리 끝까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