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다녀갔던 의사들의 표정이 왜 그렇게 이상야릇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잠시 후 여름은 세수물을 들고 울분을 토하며 욕실에서 걸어나왔다.“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이거 봐요. 내 입술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다니. 이제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봐요!”여름의 얼굴을 보고 최하준은 속으로 무척 흡족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픈 기색을 잔뜩 드러냈다.“미안합니다. 이렇게 될 줄 미처 몰랐네요. 어젯밤에 너무 아파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혼자 꾹꾹 참아볼게요. 강여름 씨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미남자가 약한 모습으로 꼬리를 내리자 여름은 자신이 한 말을 곧바로 후회했다.그래, 사람이 아프다는데. 어쩔 수 없지.오전 아홉 시쯤, 김상혁과 이지훈이 방문했다. 여름이 마스크를 한 모습을 보더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 여름 씨. 웬 마스크 입니까?”“병원에는 환자들이 많으니까 마스크를 하는 것이 감염 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요.”여름이 진지하게 말했다.“요즘 바이러스성 감기가 유행이라더군요.”“아, 그럼 저도 하나 주세요. 저도 예방차원에서 써야겠군요.”이지훈이 황급히 마스크로 입을 가렸다.침대에 있는 최하준은 그저 속으로 웃기만 했다.******화신그룹 사무실.고소장이 날아오자 강태환은 여경을 호출했다. 다짜고짜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겨우겨우 그 늙은 노인네들한테서 분양 건을 빼앗아 네 손에 쥐어주었더니 이렇게 일을 그르쳐?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 하는 줄 알긴 아는 거냐? 부임 하자마자 대형 사고나 치고! 연말에 이사장 자리를 놓고 또 경쟁해야 하는데 이번 사고가 내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죄송해요. 강여름이 하도 설쳐대길래 손 좀 봐주려고 했어요.”강여경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최하준이 뛰어들어와 여름이를 구해줄 줄은 정말 몰랐어요.”“그놈의 최하준!”강태환이 분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공사인부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여기 피해 보상액을 가지고 왔습니다.”여름은 눈을 의심했다. 손에는 오천만 원이 놓여 있었다. 여름은 눈을 깜박깜박하며 최하준의 손에 있는 20억 짜리 수표를 번갈아 보았다.나와 이 사람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거였군.비록 상해를 당하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건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났는데 말이다. ‘하…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구나.’최하준은 손에 있던 수표를 침대 옆 테이블에 보란 듯이 툭 던졌다.“네, 이제 가셔도 됩니다.”“……”“괜찮으시다면, 명함을 교환하고 싶은데요.”부사장 입장에선 이렇게 어마어마한 변호사를 만날 기회를 놓치기 싫은 모양이었다.“제가 좀 피곤합니다. 배웅해 드리세요.”최하준이 지친 듯이 눈을 감았다.부사장은 이런 취급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무척이나 분했지만 굳은 얼굴로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여름은 난처해 하며 부사장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이렇게 오셨는데 어쩌죠. 최하준 변호사님은 상처가 깊어서 며칠 간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저, 잠시 화신그룹 인테리어에 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그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해당 부서와 연결해 보시지요.”부사장은 귀찮은 듯 짧은 대답을 마치고 가버렸다. 일개 디자이너와는 말도 섞을 필요가 없다는 투로.‘일만 아니면 당신 같은 사람한테 이런 취급을 안 받아도 되거든.’화신그룹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병실로 돌아왔더니 최하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버럭했다.“강여름 씨,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겁니까? 화신그룹 인테리어를 정말 하려고요?”“인테리어 건은 이대로 진행하고 싶어요. 일이 잘 성사되면 회사에서 큰 금액을 지급해 준다고 했어요. 공사 후에는 더 벌 수도 있고요.”여름은 수표를 슬쩍 곁눈질했다.“5억이 하준 씨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저같이 보통사람들한테는 평생 벌어도 못 모을 돈이에요.”
“그래요. 당신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최하준 씨는 내 행운의 네 잎 클로버~, 나의 구세주~.”여름은 입에서 나오는 데로 뱉었다. 아픈 환자와 다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때, 양유진이 톡을 보냈다.-여름 씨가 일하는 현장에서 사고가 생겼다면서요. 괜찮으십니까? 잠깐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많이 걱정되네요.여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양유진은 진심으로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다.다만 안타까운 것은, 한선우에게 복수할 필요가 없어져서 외삼촌에게 시집온 외숙모라는 타이틀이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름이 답장을 보냈다.-신경써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아무 일도 없어요. 별장 인테리어도 이제는 지체 없이 진행될 겁니다.-별장 공사는 급하지 않아요. 여름 씨 건강부터 챙기세요.양유진이 섬세한 마무리 인사를 보냈다.“누구랑 얘기합니까?”최하준이 무덤덤하게 물었다.“윤서요.”여름이 급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양유진이나 한선우 같은 인간들하고 톡하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그 사람들하고 연락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습니다.”사뭇 엄격한 말투였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여름은 놀라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대박! 어떻게 알고….’“으으, 이리 와요. 상처 부위가 또 아픕니다.”최하준이 원망하는 눈빛으로 여름을 힐끗 보았다.“……”‘그래서 또 키스해 달라고?’‘아니, 이 인간은 무슨 변덕이야? 전에는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죽일 것처럼 그러더니.’******최하준은 일주일 동안 입원한 후 퇴원을 했다.여름은 그동안 계속 최하준과 같이 지냈다. 직장에 휴가까지 쓰면서.도하건축디자인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근무 중에 큰 일을 당할 뻔했기 때문에 오히려 여름의 의중에 신경을 썼다.“화신그룹 프로젝트를 계속 맡을 거니? 네가 빠지면 디자이너를 바꾸려고.”“제가 해볼게요. 만약 안되면 그때 담당자를 바꾸세요.”여름은 프로젝트를 따내게 되면 얻어질 포상
“아직 잘 모르시나본데, 강여름 씨의 목숨은 내가 결정합니다. 당신은 진작에 결정권이 없어진 거 모릅니까?’말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최하준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다치지 않은 팔로 여름을 일으켜 세워 안았다.“쭌!”“싫다는 말은 안 듣는 걸로.”최하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경고했다.“그게 아니라, 내가 하려던 말은 날 놔주라는 말이었어요. 제 발로 걸어서 방에 갈 수 있어요. 이렇게 무거운데 한 팔로 안고 있으면 멀쩡한 한 쪽 팔도 남아나질 않겠어요.”여름이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꽤나 영리하게 눈치껏 행동하는 여름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최하준이 여름을 슬쩍 놔주었다. 여름은 얌전하게 그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최하준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서재로 돌아가 일을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여름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최하준이 이를 닦고 나와보니 침대 위에 여름이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깊은 잠에 빠졌는지 입가에 침이 흘러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쯧. 최하준이 입을 실룩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내어 몰래 이 모습을 찍었다.‘좋았어. 내일 보여줘야지. 흐흐. 창피해서 난리치겠지.’자신의 계략에 만족해하면서 조심스럽게 옆방 서재로 들어갔다.어쩌다 알아낸 노트북 비밀번호로 컴퓨터를 열어 방금 여름이 했던 작업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복잡하게 얽힌 디자인 원고를 자세히 보았다.최하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디자인들을 살펴보았다. 고작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한 작업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화신그룹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이틀만에 이걸 다 해내라고 했어?’*****아침 아홉 시.침대에서 번쩍 눈을 뜬 여름은 바로 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 반?! 미치고 팔짝 뛰겠네.완벽한 지각이다.여름은 서재로 총알같이 튀어 들어갔다. 시간이 없다. 아직 남은 작업을 끝내려고 노트북을 열었다.클릭하고 프로그램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러자 곧 여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네 개가 넘는
“…….”최하준의 근사한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아참, 방금 무슨 말 하려고 그랬어요?”여름이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최하준에게 물었다.최하준은 이상한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침을 잘 못 삼켰는데 왜 죽지 않나 갑자기 궁금해져서.”여름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못된 인간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여기는 최하준의 집이고 이 사람은 분명히 잠을 잤다.“어젯밤에, 누군가 서재에 들어와서 내 컴퓨터를 열었어요. 제 디자인을 누군가 와서 완성해줬어요. 누가 그랬는지 아세요?”“아, 어제 내가 사람 하나 불렀습니다. 강여름 씨가 급사해서 밥 해줄 사람을 새로 구해야 할 상황이 되면 곤란하니까.”최하준은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는 지나가는 말투로 담담하게 말했다.“급해 보이길래 이번 한번만 불렀습니다. 다음 번에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여름은 완전히 멍해졌다. 어젯밤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는데…‘그런데 그 밤에 다른 사람을 불러?고용주가 고작 밥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잘해준다고?게다가 저번에는 공사현장에서 다치면서까지 나를 구해줬잖아. 하마터면 머리에 중상을 입고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야.’여름의 심장이 격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금 최하준이 기분 나쁘게 한 말도 다 용서가 되었다.어쩌면 겉으로는 저렇게 차갑지만 속은 뜨거운 반전 매력의 소유자? 한참 만에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정말 고마워요. 그 친구 실력이 좋던데 어디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다음에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 때 같이 일하면 호흡이 잘 맞을 텐데.”‘픽’하는 가벼운 비웃음이 들렸다.“그럴 일 없어요. 이 정도 시시한 프로젝트에는 별 관심 없을 겁니다.”여름이 개의치 않고 말했다.“그럼, 그분께 식사라도 대접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요.”“그럴 필요 없습니다.”최하준이 딱 잘라 말했다.“식사는 나한테나 대접하세요.”“좋아요, 뭐. 출장 다녀오면
최하준의 통증을 가라앉히려고 요즘 거의 매일 밤 했던 입맞춤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하지만 오늘은 몸이 먼저 최하준의 키스에 화답을 하고 있었다.심장이 전보다 더 요동을 치는 것 같다. 입 속으로 파고드는 달달한 키스의 농밀함이 점점 짙어졌다.지금까지 여름의 입맞춤은 최하준의 입술을 늘 애타게 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좀 더….“꼬르륵!”여름의 뱃속에서 갑자기 또 다른 본능이 소리를 내고 말았다.뻘쭘해진 여름은 슬며시 최하준의 품에서 빠져나와 주방으로 쪼르르 달렸다.그 뒷모습을 보며 최하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여름은 방 팀장에게 연락을 했다. 디자인 기획안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다.방 팀장이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마침 윗분도 동석할 수 있으니 함께 회의를 하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이런 접대는 전에도 자주 있었다. 이런 식, 정말 싫지만 거절할 수 없다.저녁 여덟 시. 여름은 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내부는 고급스럽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는데 무척이나 호화롭고 넓었다.최고급 밍크 코트를 걸친 여경이 소파 가운데 앉아 있었고 그 옆에서 방 팀장이 조심스럽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 여름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바로 그때, 문 앞에 서있던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달려들어 여름을 제압했다. 여름의 손에 들려있던 기획안이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날 속였군요.”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여름은 분노에 치를 떨며 앞을 노려보았다.“이제 알겠어. 공사현장 사고, 너희가 꾸민 짓이지?”방 팀장은 겁에 질려 강여경 눈치를 슬슬 보았다. 그 사고는 방 팀장도 일이 벌어진 후에야 알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말단 직책부터 시작해서 가까스로 오늘 같은 위치에 올라온 그였다.도하 같은 일개 하청업체를 위해서 여경의 눈 밖에 난다면 그 동안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된다. “역시 일머
강여경이 한 말이 귓가에 박혔다.여름은 의외로 담담했다.‘그랬구나.’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여름에게 차갑고 엄했다. 그저 성격이 상냥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강여경이 온 후로 이 여사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사실 진작부터 의심은 했었다. 다만 자신이 천애 고아란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진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했다.‘친부모한테 버림받았다니, 후우.’“전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알아?”강여경이 여름의 뺨을 손으로 톡톡 쳤다. “난 납치돼서 그 고생을 했는데 너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호강했잖아. 한선우 같이 잘난 남자도 꿰차고.”“하지만 지금 내겐 아무것도 안 남았어. 네 걸 뺏을 생각도 없고.”인제 보니 강여경은 단순히 청순한 척하는 여우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사이코패스 같았다.“계속 날 망신 줬지, 파혼하게 만들었지, TH도 팔렸어. 내가 이대로 당하고 있을 줄 알아?”강여경은 싸늘하게 웃었다.“네가 이런 데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고서도 최하준이 널 도와줄까? 양유진, 한선우가 널 싸고돌까?”“강여경, 너 미쳤구나! 그러다 벌 받아.”여름이 욕을 퍼부으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뒤에서 누군가 붙들고 있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벌?”강여경이 개의치 않고 말했다.“내가 이제 화신 오너 딸인데, 누가 감히 날 건드려? 그깟 최하준? 흥, 기다리라 그래, 내가 천천히 손봐줄 테니.”그렇게 말하더니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여름은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얼굴이 빨개지도록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양손은 이미 묶여 있었다.여경은 바닥에 있던 설계도를 한 장 한 장 주워 들여다보더니 씨익 웃었다.“디자인 괜찮네? 고마워, 이건 내가 접수할게.”“넌 남의 것 빼앗아 가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 내가 가져가겠다는데, 네가 뭘 어쩌려고?”강여경은 두 사람에게 눈짓을 보내고 방 팀장과 함께 나갔다.“잘 모셔."문이 다시 닫히고 여름은 머리
지난번 사건으로 TH가 도산했으니 강여경 같은 악마가 여름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양유진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강여경이 나온 룸으로 들어갔다. 손잡이를 힘껏 눌러보았지만,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었다.문에 바짝 귀를 대보았다. 희미하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여름이었다.젠장!마침 지나가던 메이드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급하게 프론트와 연락해서 키를 얻어 방으로 뛰어들었다. 안에는 한 남자가 손이 묶인 여름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었고, 여름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격렬하게 버둥거리고 있었다.“누구야!”남자가 당황한 틈을 타, 양유진이 달려들어 바닥에 때려눕혔다.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자는 후다닥 도망가버렸다. 그 사람을 쫓을 새는 없었다. 바로 뛰어가 쓰러져 있던 여름을 안아 올렸다.익숙한 향기에 안심한 여름은 양유진의 품에 안겼다.비서가 들어왔다가 이 장면을 보고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문을 닫고 후다닥 나갔다.양유진은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여름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름을 떼어내고 말했다.“여름 씨, 정신 차려봐요. 병원에 데려다 줄게요.”여름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쓰러진 여름에게서 매혹적인 향기가 풍겼다.양유진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그림이 스쳤다. 양유진은 처음부터 여름이 좋았다. 하지만 여름은 계속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허락한다면, 여름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다.지금이 기회다.인정하기 싫지만 신사적이니 못한 이기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여름 씨, 나와 결혼해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양유진은 여름을 안아 소파에 눕히고 여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여름도 본능적으로 양유진을 안았다. 갑자기 바닥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환청인 듯 최하준의 목소리가 들리고 여름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이성을 찾은 여름은 양유진을 힘껏 밀어내고 자신의 팔을 세게 물었다.“여름 씨….”양유진은 가슴이 아파왔다.“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