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우와 사귀었었고 그 사람도 여름에게 잘해주었지만, 둘은 같이 잔 적도 없고 아프다고 이렇게 배를 문질러준 적은 더더욱 없다.그 콧대 높은 최하준이 이런 걸 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여름이 미안해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최하준은 계속 문질러주었다. “이제 됐어요. 이제 별로 안 아프….”“쉿, 자요.”명령조로 말하면서도 최하준의 손은 계속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여름은 더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곧, 통증이 사라지면서 금세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6시 경, 여름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려 일어나다가 곁에 있는 최하준의 잠을 깨우고 말았다.“뭐 합니까?”“더 자요. 난 아침밥 하러….”“몸도 안 좋은데 됐습니다.”최하준은 다시 한번 여름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손은 자동으로 여름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이제 안 아파요.” 여름이 손을 치웠다.“응, 그럼...”최하준이 다시 눈을 감자, 여름은 눈치 못 채게 고개를 들어 자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떤 여자도 거부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자상할 때라면 더욱.무언가가 두드리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려 다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주화그룹과의 재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재판 당일, 여름은 최하준, 김상혁과 함께 법원으로 향했다.법원에 도착해 주차하고 세 사람이 내리려는데 갑자기 최하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먼저 데리고 올라가. 난 전화 좀 받고 갈게.”최하준은 휴대전화를 들고 한쪽으로 갔다.여름과 김상혁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려는데 사람들이 서있는 게 보였다. 강태환 부부, 강여경, 이민수였다. 주화그룹의 주대성과 변호사도 와있었다.주대성은 여름을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갔다. 얼굴엔 분노가 가득했다.“마지막 자유 잘 누려두시지! 재판 끝나면 당신 인생은 끝이니까.”여름은 의외로 화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주대성도 피해자니까.“믿지 못하시겠지만, 이 사고는 저와는 무관합니다.”“무관해?” 주대성이 피식 웃었다.“나더러 프로젝트
“증거 없으면 입 다물어.”이정희도 여름을 무섭게 노려봤다.”“네가 이 집에서 사고 친 거 말고 뭐 한 게 있니?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감옥에서 잘 반성하거라!”한기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는데, 자신의 부모는 호랑이보다 더 가혹한 것 같았다.“모두 벌 받을 거예요!”여름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절 인정하지 않으셔도, 싫어하셔도 할 수 없지만 안 한 일을 했다고 하시면 안 되죠! 내 손으로 TH를 무너뜨려 버릴 거예요!”강여경이 비웃었다. “그런 미래가 너에게 있을까? 주화그룹 쪽 변호사 말로는 최소 20년 형 이상이라던데. 감옥에서 잘 지내렴. 가끔 얼굴은 보러 갈게.”“허, 내 패소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얘기하네?”자신을 빨리 감옥에 못 넣어 안달 난 것 같은 식구들을 보며 여름은 헛웃음이 났다.이민수가 목을 빳빳이 세우고 말했다.“긍정적인 자세는 좋은데 네가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어. 주화에서 고용한 변호사는 동성 최고의 변호사, 장기철이라고, 너는….”옆에 있던 김상혁을 보고 이민수가 ‘풉’하고 웃었다.“헐, 이건 또 뭐야? 갓 졸업해 사시 붙은 애송이냐?”이민수가 김상혁에게 다가가 가슴을 쿡쿡 찔렀다.“이봐, 누구랑 붙게 되는지는 알고 있나? 주화그룹이라고!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인생 종치는 거야. 늦기 전에 얼른 도망쳐.”김상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워낙 동안이긴 했지만 이제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 취급을 받게 되다니, 우스웠다.강여경도 한껏 선량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우리 여름이 재판 아마 맡으려는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아마 이쪽에 발 들인지 얼마 안 돼 잘 몰랐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그쪽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진심으로 누굴 생각합니까?”냉랭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고개 돌릴 필요도 없이 여름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잠시 후 법정에서 이 사람들한테 한 방 먹일 생각을 하니 기대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강태환 가족은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언제
여름도 긴장해서 최하준 쪽을 보았다. 하지만 최하준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마치 모욕을 당한 사람은 따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시끄럽네.”최하준은 싸늘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여름에게 말했다.“들어갑시다.” 최하준이 법정으로 들어가자 여름도 따라 들어갔다. 김상혁이 실웃음을 지으며 이민수에게 말했다.“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습니까?” 악의 없어 보이는 미소였으나 이민수는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저 별일 없겠죠?”“걱정 마라. 네 이모부가 증거 전부 깔끔하게 처리해 놓았잖니. 오늘 넌 증언만 하면 되는 거야.”“쯧쯧, 그만한 배짱도 없는 녀석이, 다음부턴 좀 조심해라.”혀를 끌끌 차는 강태환의 눈엔 한심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강태환은 이민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정희가 감싸고 돌아 그렇지, 이민수는 평소 아첨이 너무 심했다.“걱정 놓으세요. 저 자식 다 허풍이에요. 본 적도 없는 듣보잡이에요.”강여경이 얼굴을 찌푸렸다. “난 본 적 있어. 이지훈 친구야. 지난번에 식당에서 나랑 가은이, 시아를 쫓아낸 게 저 사람이라고. 오빠, 다음부턴 말 좀 조심하는 게 좋겠어.”“뭐? 저 사람이 이지훈 친구야?!”이민수는 깜짝 놀랐지만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괜찮아, 오늘 여름이 재판에서 주화그룹에 아작날 걸 뭐. 이지훈이 빽이면 뭐? 그 집안 사람도 아닌데.”강여경도 생각해 보니 그랬다. 하지만 저 남자는 마치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것 마냥 기세가 남달랐다. 동성에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엘리베이터가 또 열렸다. 양유진과 한선우가 함께 걸어 나왔다.한선우는 여경을 보자마자 분함에 치를 떨었다.“강여경, 이 쓰레기! 너 같은 것한테 속다니, 내가 눈이 삐었지!”“말 곱게 못해!”강태환이 소리쳤다.“자네가 우리 여경일 꼬셨던 거 아닌가? 지금 형편으로 어디 우리 앨 넘볼 수나 있나?”한선우는 강태환 부부의 얼굴을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저를 어렸을 때부터 보시고 친아들이나 다름없다
들어가자 마자 주화그룹 쪽 사람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다.주대성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고 장 변호사는 연신 물만 마시는 게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여름은 윤서와 수다 중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내내 깔깔거리고 있었다.옆에 앉은 변호사는 더욱더 가관이었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조금 불안해진 강태환은 주대성 쪽으로 갔다.“장 변호사 왜 저러는 거요? 뭔가 불안해 보이는데.”주대성이 무섭게 노려보았다.“따님 능력이 대단하십니다.”강태환이 영문을 몰라 하자 장 변호사가 탄식하듯 말했다.“강여름 씨가 무패 신화를 데려왔어요. 이번 소송은 장담 못 하겠습니다.”아니다. 장담이 아니라 아예 이길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무, 무패 신화?!”강태환은 순간 멍해졌다.“장 변도 그런 거 아니었소? 승소 문제없다고.”장 변호사가 눈으로 ‘우물 안 개구리시군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 명색이 대기업 회장님께서 법조계 최정상 클래스 변호사 최하준의 이름을 못 들어보셨단 말입니까? 저 사람 젊지만, 아직 어떤 재판에서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에요. 아무도 못 이길 겁니다. 제 스승님도 증거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조차 저 사람한테 무참히 깨졌다고요.” 강태환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어쩐지 여름이 전혀 당황하지 않더라니, 하지만 어떻게 그 아이가 이런 인물을 알게 된 걸까?“장 변,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소?”그저 호기심에 물어봤다.장 변호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웃는 듯 마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어쨌든, 따님인데 이길 수 있다면 기뻐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기뻐할 수 있겠는가? 여름이 수감되지 않으면 불똥이 이민수에게 튈 텐데.하지만 장 변호사가 정말 승소할 수 없다면 다른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필요하다면 이민수는 버리는 수밖에 없다. 강 씨 핏줄도 아닌데 괜히 엮일 수는 없지 않은가?“그저 순리대로 하려는 거요. 여름이가 처
곧 마태수가 안내되어 들어왔다.깊이를 알 수 없는 최하준의 눈동자가 마태수에게 고정됐다.“증인과 함께 몰래 저질 전선으로 교체한 사람이 누구입니까?”마태수는 이민수 쪽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입니다.”이민수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무슨 헛소리야 이게, 강여름이 매수한 건가?”마 회장은 머쓱하게 말했다.“날 매수한 건 당신이지. 호텔이 불탄 뒤 당신이 해외에 있는 내 아들에게 2억을 송금했잖소.”이민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정희 여사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주대성은 더욱 노발대발했다.“전선을 바꾼 게 당신이었다니! 강여름 씨를 내세워 날 농락한 건가?”하준이 말했다.“주 선생님, TH에선 친딸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선생님을 농락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저 조카를 보호하려던 거죠.”다시 법정이 술렁거렸다.“강 회장은 알고 있었단 거야?”“아이고, 모를 리가 있겠어요? 그룹 총수가?”“맙소사, 이민수 혹시 강씨 집안 사생아 아냐? 어떻게 조카 보호하겠다고 친딸을 버려?”“강 회장 부부가 이 딸을 미워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정말이었네, 너무 심하잖아.”강태환 부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강태환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최 변호사, 말조심하시오. 이 일에 대해 우리 부부는 아는 바가 없소. 마태수가 매수당했다는 것도 몰랐소.”최하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명세서 한 장을 내밀었다.“그럴지도요. 두 분께선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강 선생님께 이민수가 2억짜리 골동품을 선물했던데요.”“헐, 그러니까 조카한테 뇌물까지 받고도 모른 척하는 거야?”“당연하지, 일개 시공 담당자가 어떻게 저런 짓을 벌여? 분명 TH 대표자가 묵인한 거지.”“TH 정말 역겹다. 그래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인테리어 회산데.”“됐어. 이딴 형편없는 회사는 불매해야 해.”“망해라, 그지 같은 회사.”순식간에 법정 뿐 아니라 SNS에서까지 일대 소란이 일었다.더욱이 라이브로 중계되던 재판에 순식간에
“좋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요.”최하준의 훈훈한 얼굴이 다시 침착하고 냉정해졌다.“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민수는 이번 루브린호텔 사건에서 전선만 바꿔치기한 게 아닙니다. 이 자가 사용한 방수 자재 또한 최하품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주화그룹 공사 건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리모델링했던 주택, 박물관, 비즈니스클럽에도 똑같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이민수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그럴 리 없어, 저 녀석이 다 알아냈을 리 없어!’“하지만 후반 작업을 담당했던 업체들 모두 누수, 단전 등의 부실 상황에 대해 보고한 바 있습니다. 여기 업자들이 직접 녹화한 비디오가 있습니다.”최하준이 메모리카드를 제출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건축 공정도 날림으로 진행해 건물 몇 동에서는 벽면 타일이 떨어져 내려 사람이 다친 사례까지 있었습니다. 이민수의 배경이 워낙 세서 피해자는 배상금 조금 받고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업자들의 고발 영상이 재생되자 이민수는 스르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전부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사람이다. 잘 묻어놨기에 영원히 드러날 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이 인간은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괴물인가!두려움과 절망이 함께 밀려왔다.이렇게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여름이 이런 대단한 인물과 연줄이 닿아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오만함을 완전히 뺀 이민수는 여름을 보며 구원이라도 청하듯 말했다.“여름아, 나 좀 살려주라. 내가 잘못했어. 나 네 오빠잖아, 우린 사촌이야, 가족, 어?”여름은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날 모함할 때는 우리가 가족인 게 생각 안 났나 봐? 하늘이 다 보고 있어.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벌 받아야지.”말을 마치고 여름은 주대성을 보았다.“호텔 일은 제 책임도 있습니다. 제가 TH를 믿고 계약하시라고 했으니까요. 사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것도 이민수 씨가 자재 대금 빼돌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그랬던 겁니다. 윗선에
재판이 끝난 뒤 이민수는 죽은 듯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이윽고 경찰이 와 끌고 나갔다.강태환 일가는 완전히 기가 죽은 채 뒷문으로 서둘러 빠져나갔다.윤서가 감격에 겨워 달려와 여름을 꽉 안았다.“완전 사이다! 진짜 대단하세요! 저는 뭐 길어봤자 20년 형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무기징역이라뇨. 완전 인정! 팬 됐어요, 진짜.”“맞아요, 정말 대단했어요.”여름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빨리, 더 통쾌하게 끝났다. 이민수를 제대로 혼내줬고, 가족들은 잘 빠져나갔지만, TH는 망했다. 이제 TH에 공사를 맡기는 곳은 없을 것이다.“대단? 그게 전부입니까?”최하준이 눈썹을 치켜 올려 여름을 응시했다.이제껏 재판이 끝나면 늘 들어오던 찬사지만 오늘 여름의 평가는 더 듣고 싶었다.여름이 고개를 들어 최하준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 심장이 마구 뛰었고 왜 그런지 얼굴마저 뜨거워졌다. 당연히 그냥 대단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너무 멋있고 매력적이었다.다만 이런 닭살 멘트를 내뱉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바로 이때, 양유진이 품위 있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를 한선우가 따라왔다.“우리 여름 씨, 축하해요.”양유진이 대견하다는 듯 부드럽게 여름을 보다가 최하준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최 변,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여름 씨 이렇게 승소할 수 있게 도와줘서.”잔뜩 올라가 있던 최하준의 입꼬리가 조금씩 쳐지고 있었다.‘뭐지, 지금 이 상황은? 내 사람 일에 왜 다른 남자가 나한테 감사하다는 거야?”싸늘한 기운이 최하준을 휘감았다. 윤서와 여름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그러나 한선우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양유진에게 여름을 뺏기기라도 할까 봐 다급히 최하준의 손을 잡고 말했다.“오늘 정말 신세 많았습니다. 제가 여름이를 대신해서 감사드릴게요. 시간 되실 때 제가 식사 대접하겠습니다.”“흥!”목 깊은 곳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빛은 더욱더 싸늘해졌다. 최하준이 웃자 여름은 머리카락
“그럼요.” 윤서도 얼른 나서서 거들었다.“오늘 최 변호사님 공이 너무 커서, 여름이가 따로 대접을 해야 할 거예요.”“예, 그러니까요. 제가 벌써 예약을 해놨거든요. 먼저 갈게요.”여름은 서둘러 최하준을 끌고 나갔다.빨리 피해야지, 안 그러면 최하준의 마수에서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았다.여름이 최하준을 휙 잡아끌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양유진과 한선우 표정이 심각해졌다.양유진은 최하준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었다. 워낙 까다로워서 말 씹히는 것도 다반사인데 여름은 이 사람 팔을 잡아끌고 간다?갑자기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이 함께 사라졌던 일이 생각났다. 이 두 사람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한선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직 남아있는 윤서를 붙들고 물었다.“윤서야, 여름이랑 최 변 사이에 뭔가 있는 거지? 최 변이 설마 여름이 좋아하는 거냐?”“맞다, 네 친구가 최 변을 안다고 했지? 그게 누구야?”“최 변호사는 의뢰하기도 힘들고 사건을 맡는다고 해도 수임료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 여름이가 그런 큰 돈이 있어?”한꺼번에 여러 질문이 쏟아지자 윤서는 짜증이 났다.“오빠랑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가! 짜증 나게.”“너….”한선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잘 들어요. 그나마 지난번에 여름이 파출소에서 꺼낼 때 힘 보탠 거 때문에 봐주는 거지, 아니면 벌써 내 손에 죽었어, 흥!”윤서가 한선우를 떨치고 가버렸다.******지하 주차장.김상혁은 앞에서 운전하고 뒷자리엔 두 사람이 말없이 앉아있었다.최하준은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보며 눈 한 번 돌리지 않았다.그러나 온몸에서 퍼져 나오는 싸늘한 기운에 차 안은 마치 에어컨이라도 켜놓은 듯 몹시 싸늘했다.여름은 수시로 최하준을 곁눈질했다. 이 남자 기분이 안 좋다는 건 잘 알 수 있었지만, 질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아마 조신하지 못하게 행동했다고 의심하는 거겠지.여름이 다른 남자 차를 타